주님이 바라보시는 나의 예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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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2026-04-11본문
제가 2001년에 부임했으니, 1,200번이 넘는 주일 예배를 인도했습니다. 그쯤 되면 강단이 익숙해질 법도 한데, 여전히 긴장감과 떨림이 있습니다. 이게 나의 성격일 수도 있지만 어쩌면 예배의 가치를 생각하는 마음에서 나오는 것일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사실 저는 표정에는 나타나지 않지만 예배의 작은 변화나 부조화가 느껴지면 금방 영향을 받고 곧바로 집중력도 흐트러집니다. 예를 들면, 찬양이 어긋난다든지, 음향이 흔들린다든지, 예배 중 자리가 움직이는 작은 일들에도 마음이 쉽게 영향을 받습니다. 사안의 경중(輕重)에 따라 금방 수습이 되는 것도 있지만 어떤 것은 예배가 마칠 때까지 여전히 남아 있는 것도 있습니다. 그래서 지난 주일 칼럼처럼 사담(私談)으로 어수선한 예배 직전 분위기도 언급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지난 주일 예배를 인도하면서 유독 강하게 느낀 것이 있어 오늘 나눕니다. 우리 교회의 예배에는 큰 은혜가 있습니다. 우리 스스로 그것을 느끼는 분들이 많거니와 타 교회 교인들이 우리 교회 예배를 드리고 난 뒤의 반응은 더 그렇습니다. 하지만 모든 교인들이 다 그런 은혜 속에 있는 것은 아닙니다.
여전히 의무감에서 예배를 드리는 성도들이 있고, 예배에 집중하지 못하고 산만한 성도들이 있습니다. 이런 분들이 눈에 직접 보이기도 하고, 앞을 보고는 있지만 마음은 담겨있지 않다는 것이 느껴지는 분들도 있습니다. 이런 분들은 아마 찬송을 부를 때 가사의 의미가 마음에는 거의 전달되고 있지 않을 겁니다. 내가 지금 하나님께 찬양하고 있다는 의식이 없는 겁니다. 설교를 들어도 눈만 앞으로 보고 있을 뿐 생각은 자유로운 영혼이 되어 있을 겁니다. 하나님께서 지금 나에게 말씀하고 있다는 의식이 없는 겁니다.
그런데 왜 그런 사람들은 눈에 더 잘 들어올까요? 선배 목사님들은 그런 사람들을 보지 말고 은혜받는 사람들만 보면서 설교하라고 합니다. 최영기 목사님은 이런 흔들림에 영향을 받지 않으려고 예배를 시작하면 정해진 한 곳만 바라보면서 예배를 인도하고 설교하신다고 합니다. 그런데 저는 그게 잘 안 됩니다.
이 정도로 은혜롭게 드리는 우리 교회 예배에서 그런 성도 몇 명 있다고 해서 심각하게 볼 것이 아니라 대수롭지 않게 넘길 수 있어야 하는데, 그게 잘 안 됩니다. 지난 주일은 그게 좀 더 크게 다가왔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이것은 단순히 제 성격의 문제가 아니라, 은혜에서 멀어져 있는 한 사람을 바라보시는 주님의 마음을 저에게 전달해 주신 것은 아닐까요? 마치 잔칫상에서 한 자녀가 먹지 못할 때 부모의 마음이 그 아이에게 머무는 것처럼 말입니다.
이 글은 이번 주 목장 모임에서 읽을 겁니다. 읽고 난 뒤, 지난 주일 나의 예배를 한 번 체크해 보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솔직하게 나누면서 혹시 내가 그런 상태라면 그 모습을 안타깝게 지켜봤을 주님의 마음을 생각해 보십시오.
그리고 무엇이 나를 그런 상태에 두고 있는지도 나눠보고 목원들이 성령님을 의지하여 조언해 주고 간절히 기도해 줍시다. 그런 상태가 지속되면 자신도 모르게 예수님이 가장 경계했던 바리새인이 되어갈 수도 있습니다.(2026.4.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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