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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아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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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2020-05-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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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제 어머니께 전화 안부를 묻고, 먼저 천국 가신 아버지를 잠시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저의 아버지는 11녀의 장남이셨습니다. 저의 할머니는 제가 세 살 때 돌아가셔서 기억은 전혀 없지만 할아버지는 상투를 틀고 갓을 쓴 채 경로당을 다니시던 모습을 기억합니다. 형들은 군것질을 하고 싶을 때 경로당을 기웃거리면 할아버지가 눈치를 채고 돈을 주곤 했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그 할아버지는 제가 7살 때 돌아가셨는데 그때 우리 집은 새집을 짓고 있어 잠시 외할머니 댁에 얹혀살고 있었습니다. 저의 부모님은 곧 완공될 새집에 한 번도 살아보지 못하고 돌아가신 할아버지에 대해서 안타까워하셨던 말을 자주 하셨습니다.

  그후 설명절이 다가와 우리 가족은 외할머니 댁에 갔습니다. 그런데 제일 먼저 절을 하시던 아버지께서 무릎을 꿇고 손을 모은 이마가 바닥에는 닿았는데 올라올 줄을 모르는 것이었습니다. 모두 의아해하며 지켜보고 있는데 그 자세로 흑흑~거리며 어깨를 들썩이기 시작하는 것이었습니다. 옆에서 지켜보시던 어머니가 저 양반 오늘 왜 저러느냐고 주책이라며 핀잔을 주었는데... 후에 어머니가 아버지에게 그때 왜 그랬냐고 물었는데, 아버지의 답은 나도 모르겠다.”였다고 합니다.

  사실 저의 선친은 배 다른 형과 함께 자랐습니다. 할아버지도 할머니도 재혼이셨기 때문입니다. 할아버지의 전 부인에게서 태어난 형들이 있고, 할머니의 전 남편에게서 태어난 형들이 있었습니다. 새로 재혼한 부부 밑에서 저의 부친과 고모 한 분이 태어났고, 할머니는 이전 남편의 아이들을 데리고 재혼한 것입니다. 제가 자랄 때 같은 동네에 성()이 다른 큰 아버지가 있었고 자주 저희 집을 찾아오셨습니다. 하지만 아버지는 같은 성씨(李氏)의 형들을 자주 그리워하였습니다. 할아버지의 재혼으로 일찍 독립해서 떠났던 형들이 만주 연해주를 돌면서 한 번씩 아버지(할아버지)를 뵈러 올 때는 동생(아버지)을 그렇게 좋아해줬나 봅니다. 그 분들 다시 한 번 만날 수 있기를 소원하셨는데... 구한말(舊韓末)의 한 많은 근대사 속에 이산가족의 한은 아버지에게도 있었습니다.

  아버지는 머리가 좋으셨던지 시험을 치면 합격을 잘 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정규과정의 학교를 나오지는 못했지만 시험으로 제법 일찍 경찰공무원이 되었습니다. 승진도 승승장구... 아버지는 통영경찰서에 경리과장으로 재직할 때 경찰서장의 재정 비리에 항의하다 부당한 대우에 상관을 폭행하는 일이 생겼고 계급사회에 있을 수 없는 하극상으로 좌천되고 결국 옷을 벗게 되었습니다. 무엇이든 하면 되지 않는 일이 없다는 교만과 젊은 혈기는 이후 되는 일이 없는 세월을 보내면서 무너진 것 같습니다. 서른다섯에 마지막으로 국제신문 사원모집에 합격하고 그 해에 제가 태어났습니다. 집이 너무 어려워 아기를 지울까 생각까지 했다는데 그렇게 할 돈이 없어 제가 태어났다는 우스갯소리를 들었습니다. 아버지는 기자생활보다는 돈이 되는 신문광고를 담당했고 그 이후로 저희 집은 경제적으로 안정을 찾았던 것 같습니다.

  처자식들을 교회에 보내면서도 자신은 나가지 않았던 아버지는 40대 후반에 결단하고 교회를 나가셨고 신앙이 급성장하면서 일찍 한 교회의 장로가 되셨습니다. 뜨거운 열정으로 교회와 목사님을 잘 섬기셨습니다. 저는 명절마다 아버지의 심부름으로 설탕 20Kg를 어깨에 메고 목사님 사택에 갖다드린 기억이 납니다.

  하지만 퇴사 후 투자한 회사가 도산하게 될 때 채권자 중 책임자로 그 회사를 운영하게 되면서 더 큰 재정적 손실을 입게 되었고, 오십대 중반에 파산을 경험하게 됩니다. 자식들이 삶의 기반을 잡기 위해 정신없이 살아야 하는 기간 동안 아버지 역시 정신적으로 경제적으로 많이 외롭고 힘들었을 기간이었는데 그것이 주님만을 바라보며 살아가는 훈련 기간이 되었던 것 같습니다.

아버지는 제가 노회의 일로 외국에 잠시 나가 있는 동안 천국에 가셨고 저는 상을 다 치른 다음날 입국하였습니다. 아버지는 경비용역을 하시면서 그리고 자식들이 보내는 용돈을 절약하여 모은 약 5천만원을 교회에 헌금하도록 유언으로 남겼습니다.

  우리 아버지, 천국에 가신 것은 의심치 않지만 제가 할 도리를 하지 못한 것 같아 아버지 생각이 나기만 하면 위축 되는 마음은 어떻게 할 수 없습니다.(2020.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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