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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신자와 비신자(VIP) 중에 누가 더 중요하냐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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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2019-1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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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7.4.23. 장산레터를 발췌한 것입니다.)

  다자녀 가정의 부모들은 보통 첫째가 태어나면 집중적인 관심으로 애지중지 아이를 양육합니다. 그러다 둘째가 태어나면 첫째에 대한 관심은 점점 떨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심지어 약간의 터울이 있는 첫째는 일정부분 동생 양육에도 협조하고 기여해야 합니다.

저희 집의 두 아들은 두 살 터울입니다. 지금 생각하면 어린이집, 유치원 다닐 나이에 큰 아이를 어른 취급했습니다. 교인들 심방을 가면 큰 애에게 작은 애를 맡기고 심방을 다녔습니다. 요사이 이렇게 하면 아동 유기(방치)죄에 걸릴 지도 모릅니다. 작은 애는 형이 더 많은 관심을 받고 자란 것처럼 생각하지만 사실은 두 살 더 많다고 어른 취급을 한 큰 애에게 지금에 와서는 꽤 미안합니다. 그런데 보통 그런 과정을 통하여 큰 아이에게는 어릴 때부터 동생에 대한 책임감이 생기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대체로 덩치와 상관없이 생각하는 것을 보면 형은 형이고 동생은 항상 동생입니다.

  가정교회를 하고 난 뒤에 가끔 듣는 말이 있습니다. “목사님은 VIP밖에 모른다는 말입니다. 사실 그렇지는 않습니다. 오히려 신경은 기신자에게 더 많이 쓰입니다. 하지만 의도적으로는 VIP에게 더 많은 신경을 쓰려고 하는 것은 분명 있습니다. 하지만 영혼 구원하여 제자 만들자라고 하는 교회에서 담임목사가 VIP에게 집중하지 않는다면 영혼구원, 제자만들기는 허울뿐인 구호에 지나지 않을 것입니다. 이는 목장에서도 목자가 VIP에게 관심을 집중할 때 일어날 수 있는 상황입니다.

  신약성경 누가복음 15장에는 잃은 아들의 비유(보통 탕자의 비유’)가 나옵니다. 그 이야기에서 보면, 집을 나간 동생이 돌아오자 이제까지 집에 남아서 아버지의 일을 도와주던 형이 아버지에게 불만을 나타냅니다. 형의 불만은 돌아온 동생을 위해 아버지가 잔치까지 벌인 것에 있었습니다. 이후에 나타난 아버지와 큰 아들의 대화를 보면, 큰 아들은 아버지가 집 나간 동생에게 계속 마음을 빼앗겨 있는 것 자체가 불만이었던 것 같습니다. 지금까지 아버지의 근심은 집을 나간 둘째 아이 때문이었는데 둘째가 들어오니 이젠 집을 안 들어오려는 큰 아들 때문에 근심입니다. 그래서 이 비유는 돌아온 아들에 대한 기쁨뿐만 아니라 함께 있는 큰 아들이 아버지의 마음을 가져주기를 원하는 뜻이 포함되어 있는 비유입니다.

  부모에게 귀하지 않는 자식은 없습니다. 단지 좀 더 안 된 자식이 있을 뿐입니다. 자식들 중에 장애를 가진 아이가 있으면 부모는 그 아이에게 좀 더 신경이 쓰일 수밖에 없습니다. 탕자의 비유는 집에 같이 있는 큰 아들보다 집에 안 들어오는 작은 아들에 대한 아버지의 속상함을 말하는 것입니다.

  큰 아들에게는 일정 부분, 아버지와 함께 집을 걱정해야 하는 책임감이 있습니다. 그것은 어쩔 수 없습니다. 그것이 큰 아들의 운명(?)과도 같은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보면 하나님의 자녀로 부름을 받은 기신자들은 큰 아들입니다. 우리 뒤에는 계속 배려해 줘야 할 동생들이 생길 것입니다.

   ‘기신자와 비신자(VIP) 중에 누가 더 중요한가?’ 이 질문은 말이 안 되는 질문입니다. 누가복음 15장의 비유는 잃은 아들의 회복에 대한 기쁨을 하나님의 기쁨으로 비유한 것이지 큰 아들과 둘째 아들 중에 누가 더 귀한 아들이냐에 대한 비유는 아닙니다. 하나님께는 모두 다 귀합니다. 단지 더 급한 아들이 있을 뿐입니다. 기신자도 급할 때는 있습니다. 그러면 그때는 충분한 관심이 집중되어야 합니다. 하지만 혹 아버지의 마음을 이해하지 못해 쌓인 일시적인 투정이라면 큰 문제는 없지만 그것이 불만으로 쌓이게 만들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그것은 자신을 더욱 외롭고 불행하게 만드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사실 큰 아들 행복은 아버지의 집에서 아버지의 마음으로 아버지의 일을 하는 것에 있습니다.(2019.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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