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주간 ‘특새’하면서 들었던 이런저런 생각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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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2019-03-16본문
새벽기도는 항상 하는 것이지만 ‘특별’이란 글자가 붙으면 달라집니다. 특히, 특별새벽기도(이하,특새)의 첫날은 더욱 힘듭니다. 이번에도 예외가 아니었습니다. 첫날 새벽을 맞이하면서 주일 밤늦게까지 말씀과 씨름하고 있는 것에서부터 벌써 긴장감이 나타납니다. 그리고 잠자리에 든 후에도 자주 눈을 떠서 시계를 확인해 보는 것은 특새 때마다 매번 똑같습니다.
2년 전부터 우리교회 특새 말씀은 유익한 신앙도서를 선정해, 그 책 내용을 요약해서 전하고 있습니다. 성도들은 한 주제를 요약해서 정리하게 되는 유익이 있고, 목사는 어떤 말씀을 전해야 할지 고민하는 것에서 자유로울 수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해보니 적어도 목사는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편하게 읽기만 하는 것과 읽은 내용을 정리해서 성도들에게 효과적으로 전해야 하는 것은 또 다른 문제였습니다. 책을 읽고 요점을 쉽고 탁월하게 전하는 사람들의 재주가 한없이 부럽습니다.
매일같이 밤 12시가 다 되어 들어가니 아내는 잔소리 아닌 잔소리를 합니다. 아마 ‘내일 새벽 일찍 일어나야 할 사람이 이렇게 늦게 자면 어떻게 하냐?’는 나를 위한 말인 것은 분명한데 그 말투가 곱게 느껴지지 않습니다. 격려하지는 못할망정... 하는 마음에 살짝 섭섭합니다. 우리 부부부터 ‘변화의삶’ 공부를 해야 할 것 같습니다.^-^
그런데 다음 날 새벽에 교회당에 나와 있는 성도들을 보면 얼마나 감사한지 모릅니다. 그 속에서 이제 막 믿음의 정착을 시작한 새가족까지 발견되면 감격까지 됩니다.
하지만 또 한편으로는 안타까운 마음도 금할 수 없습니다. ‘함께 있었으면...’하는 사람들이 생각나기 때문입니다. 새벽기도를 마치고 들어가면서 아내가 이 사람 저 사람 챙기면서 왔느냐고 묻습니다. 아내로서는 새벽 말씀이 꽤 은혜가 된 듯... 함께 나누지 못하는 것이 안타까운 것 같습니다.
셋째 날인가, 말씀을 전하고 강단 앞에서 무릎을 꿇었는데... 후회가 몰려왔습니다. 좋은 것은 자녀들에게 강요하고 싶은 부모의 심정과 같은 것이지 싶습니다. 하지만, “어디 특새 한 두 번 하나? 하려면 하고, 안 하려면 마는 거지.” “‘특새이니까 꼭 와야한다’라는 말을 아직까지 해야 하나? 이런 말은 하는 목사도, 듣는 성도들도 부끄러운 일 아닌가?” “이 목사, 성도들 다 힘들고 피곤하게 살아! 다 목사마음 같은 줄 알아?” “안 힘들 때가 어디 있었나? 그런 생각이 성도들 죽이는 거야!” 이런저런 생각이 나의 마음속에서 서로 싸웠습니다.
결국은 “그래, 좀 더 강조해서라도 억지로라도 함께 데려갔어야 했는데... 와서 보면 이렇게 좋은 시간인데...”라는 마음이 들기 시작하면서 그 다음 마음이 더욱 나를 질책합니다.
“이 목사, 너 지금 실수하고 있는거야~ 너 이전하고 많이 달라진 거 알아? 이전엔 ‘특새’하면 이 새벽에 근 200명이 모였어!”
미안하고 죄송스런 마음에 “예~ 주님, 4월 고난주간 특새 때는 마음 좀 고쳐먹겠습니다.”라고 답합니다. 그러면서도 평소에는 아니더라도 특새 때는 이젠 채근하지 않아도 되는 어른스런 성도들에 대한 기대를 내려놓을 수가 없습니다.
마지막 날 새벽, 합심기도를 하고 마무리 기도를 하는데 울컥해졌습니다. 이렇게 기도하러 나온 성도들이 있어 감사하고, 함께 기도할 수 있는 기도공동체(교회)가 있는 것이 감사했습니다. 곧 무릎 꿇고 기도하면서 등 뒤에 있는 성도들을 진심으로 축복합니다. 축복한 대로 금년 한 해 정말 좋은 일들이 일어났으면 좋겠습니다. 하나님이 기도를 통해 일하시는 것이 뚜렷하게 증거 되는 자들이 되기를 축복합니다.(*정말 특수한 사 정이 있어 특새에 참여하지 못한 성도들.. 충분히 이해합니다. 상처받지 마세요~^-^)(2019.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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