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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대통합예배’를 왜 드리는지 아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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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2019-03-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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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금년부터 매월 둘째 주일예배는 세대통합예배로 드리고 있습니다. 즉 매월 둘째 주일에는 연령별로 나뉜 주일(교회)학교에서 자체적으로 드리던 유치부, 초등부, 청소년부 예배를 각자 드리지 않고 전세대가 주일 2부 예배 시간에 다 함께 모여서 드리는 예배로 드리고 있습니다.

  세대통합예배의 필요성에 대해서는 간간히 말씀을 드렸지만 이제 우리교회가 매달 한 번 세대통합예배를 드리게 되었으니 다시 좀 더 구체적으로 그 의미에 대해 말씀드립니다.

  한국교회의 주일(교회)학교 시스템은 미국교회의 영향을 받은 것입니다. 대체로 미국선교사들에 의해 자연스럽게 한국교회에 들어왔고, 한국교회는 숫자가 늘어갈수록 세상의 학교체계로 신앙교육 하였습니다. 학교 교육은 아동을 연령별로 학년을 나눠서 교육하는 것인데 그렇게 교육하는 이유는 교육학자들의 인지발달(認知發達)이론 때문입니다. , 아동의 발달(성장)단계에 따라 교육을 해야 효과적인 교육이 이루어진다는 논리였습니다. 이 이론을 바탕으로 지금도 학교교육은 여전히 이루어지고 있고 교회도 역시 그 이론을 바탕으로 주일(교회)학교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런 교육이론이 교육에 기여를 한 것은 분명합니다. 하지만 우리는 이런 교육 이론과 체계가 신앙교육에도 그대로 적용되어야 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깊이 생각하지 못한 측면이 없지 않습니다.

  지식과 믿음은 다릅니다. 즉 믿음은 인지발달단계(認知發達段階)에 따라 성장하지 않습니다. 예를 들어, 초등학교 4학년 아이가 전도되어 왔을 때 주일교회학교 4학년으로 등반하는 것은 엄청난 모순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 아이는 사실 신앙수준은 논리상 이제 1학년 입학생이기 때문입니다. 이렇듯 영적인 일을 세상의 인지발달이론으로 쉽게 적용시킬 수는 없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신앙생활을 관계라고 정의했는데, 하나님과의 관계는 한 순간 깊어지기도 하고, 멀어지기도 합니다. 그것은 신앙 수준이 성경지식의 유무에 따라 결정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관계의 중요성은 다가온 4차 산업시대에서는 더욱 강조되고 있습니다. 즉 지식의 유무보다 관계를 맺는 능력이 더 큰 경쟁력을 가질 것이라고 합니다. 이 사실은 우리의 사회성(관계성)은 신앙생활만 잘하면 해결된다는 것을 말해주는 것입니다. 그래서 앞으로 주일(교회)학교도 인지발달단계를 기초해서 만들어진 학년 제도를 넘어서 관계중심의 체계를 가질 필요가 있는데 초등부, 청소년부를 비롯한 우리교회의 목장 시스템은 그것을 이미 실행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학원, 심지어 학교를 가는 것 못지않게 목장에 나오는 것이 중요하다는 생각을 합니다.

  그러므로 성경공부는 혹시 인지발달단계를 참고한다 하더라도 특히, 예배는 남녀노소가 구별이 있을 수가 없습니다. 즉 유치부의 하나님과 초등부, 청소년부, 장년의 하나님이 다르지 않고, 하나님이 예배를 받으시는 방법도 다르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이들 모두에게 같은 하나님입니다.

  많은 사람들은 설교에 대한 이해도에 따라 예배를 구분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지만 예배는 말씀에 대한 이해보다 앞서는 것이 예배 회중에 속하는 것이고, 그 자체가 예배입니다. 품안에 갓난아이는 어머니의 품에서 자면서 예배를 드리고, 유치부의 아이는 하나에 집중하지 못하는 한계를 지닌 채 예배를 드리는 것입니다. 예배는 공동체 그 자체로 의미가 있고, 그 공동체 속에 주님의 영은 임하시고 우리는 그것을 믿음으로 받아들이고 예배해야 합니다.

  오늘날의 예배에서 설교가 갖는 절대적인 비중은 설교에서 은혜를 받지 못하면 그날 예배의 의미마저 사라지게 만드는 경향은 예배의 다른 많은 요소(순서) 안에 있는 하나님의 은혜를 너무 쉽게 놓쳐버리는 결과를 가져오게 되어버렸습니다.

  하지만 우리교회 교역자들은 성도들이 걱정하거나 우려하는 현실적인 부분까지 생각하면서 더욱 의미 있는 세대통합예배가 드려지도록 여러 가지로 연구하고 노력합니다. 현재 우리가 드리는 세대통합예배는 실험적인 면이 없지 않습니다. 더욱 의미 있게 예배가 드려지기를 시도해 보고, 이것 역시 한계가 느껴지면 이전으로 다시 돌아갈 수도 있습니다.

  때로 변화는 두려움으로 나타나거나 그렇지 않다 하더라도 귀찮습니다. 또 다른 적응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하지 만 어떤 변화는 더욱 본질을 회복하게 만듭니다. 함께 예배를 예배답게 만들어 봅시다.(2019.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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