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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이없는 전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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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2015-1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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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교회는 하나님이 자신의 피로 값을 치르고 사신 것입니다.(행20:28) 이 말을 쉽게 말하면 예수님이 ‘교회’를 위해서 십자가에 죽으셨다는 말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이 나를 구원하시기 위해 십자가에서 죽으셨다는 구원의 개인적인 적용에 관심이 많지만 사실은 나뿐만 아니라 나처럼 예수 믿고 구원 받은 사람들까지 생각하면 예수님은 분명 예수 믿는 공동체인 교회를 위해 죽으셨습니다.
 
  바울은 교회를 몸으로, 우리 각자는 몸을 이루는 지체에 비유하였습니다. 우리 몸의 지체는 각각 다른 기능을 하지만 내 몸 안에서는 하나로 통일되어 있습니다. 예를 들어 내가 밥을 먹을 때는 눈으로는 음식을 보고, 손으로는 젓가락질을 하고 입으로는 먹습니다. 이렇듯 내 몸의 지체는 아주 자연스럽게 협력하고 그래서 하고자 하는 목표를 달성합니다.
 
  교회는 하나님의 거룩한 뜻을 이루기 위해 이 땅에 존재합니다. 우리는 그 뜻을 이루기 위해 부름 받는 사람들입니다. 이 일에 우리의 진정한 행복이 있습니다. 그런데 이 하나님의 뜻을 방해하는 사단이 있습니다. 이 사단 마귀는 우리의 적입니다. 우리는 이 사탄 마귀와 싸워 이겨야 합니다.
 
  하지만 사단 마귀가 절대 만만하지 않습니다. 우리에게 없는 능력이 있고, 처음부터 교활한 수법을 사용하는 데는 능숙한 자였습니다. 능력도 있고 교활한 사단이 우리에게 아주 효과적으로 사용하는 방법이 ‘분쟁’입니다. 마치 북한이 정상적인 전투력으로는 안 되니까 남한 내에서 스스로 싸우는 남남갈등을 일으키는 것처럼 말입니다.
 
  전쟁에서 적군과 싸우다가 장열하게 죽는 것은 값진 죽음입니다. 제대로 싸워보지도 못하고 죽는 것은 안타까운 죽음입니다. 하지만 가장 어이없고 황당한 죽음은 아군의 총에 맞아서 죽는 것입니다. 구약성경에는 자기들끼리 자중지란에 의해 패배한 전투 이야기가 몇 번 있습니다.
 
  이런 말도 안 되는 전투는 사실 우리 교회 내에서도 일어날 수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거룩한 뜻을 위해 서로가 서로를 위하고 협력해야 하는 지체들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적질(적이 하는 역할)을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어이없는 것은 자신이 적질을 하는지도 모르고 한다는 것입니다.
 
  교회 내에서 하게 되는 어이없는 적질은 대부분 입술을 잘못 사용하여서 이루어집니다. 해야 할 말과 해서는 안 될 말을 가려서 하는 지혜를 구하지 않으면 쉽게 사탄의 입술로 이용될 수 있습니다.
 
  어느 단체에서든 힘든 일이 생기면, 책임을 전가하려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누가 이런 일을 했고 누구 때문에 이런 일이 일어났느냐 하는 것을 따지는 것입니다. 사건이 생기고 사고가 나면 더 이상 잘못하지 않기 위해서도 시시비비를 가려야 할 것은 가리고 책임을 져야 할 사람은 져야 합니다. 하지만 그것도 사람을 죽이기 위해서가 아니라 살리기 위해서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 영적으로 깨어있어야 합니다. 깨어있기 위해서는 기도해야 합니다.
“시험에 들지 않게 깨어 있어 기도하라”(마 26:41)
기도하지 못했던 제자들은 이 말씀 후에 주님을 배반하여 버리고 도망가는 가장 크게 후회할 일을 했습니다.
 
  사탄은 어떻게 해서든지 적게는 목장을, 크게는 교회를 시험 들게 하고, 혼란스럽게 합니다. 그렇게 되면 영혼구원의 하나님의 뜻은 이루어질 수 없기 때문입니다. 지상에 있는 교회가 문제가 없을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그것이 문제화 되고 안 되고는 우리의 영적 역량에 달려있습니다.(2015.1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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