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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산레터 - 목사의 죄송한 설날맞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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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2014-0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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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산레터 - 목사의 죄송한 설날맞이!
 

- 이 정 우 담임목사
   성도들이 이 글을 읽을 때는 설날이 지난 주일이겠지만 저는 설 명절을 맞는 마음으로 이 글을 쓰고 모친을 뵈러 떠납니다.
   목사는 목사이기도 하지만 한 아내의 남편이며 아이들의 아버지이며 또한 부모에게는 아들이기도 합니다. 그런 면에서 접근하면 적어도 천주교 신부와 절의 스(?)들과는 다른 입장인 것은 분명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목사의 삶은 일반 성도들과 별 다를 바가 없습니다.
 

   나는 명절이 그렇게 반갑지 않습니다. 그 이유는 먼저 명절이라고 해서 한 주간의 삶의 패턴이 별로 달라지는 것이 없기 때문입니다. 해야 할 일은 여전히 해야 하고 특히 주일 가까이 명절이 걸치면 그 부담은 가중됩니다.
   또 한 가지는 형들을 만나는 것에 약간의 부담도 있습니다. 다 그런 것은 아니지만 남자 형제들과 여자 형제들과의 관계는 많이 다른 것 같습니다. 남자 형제들의 유대관계는 가문이라는 의무감이 많이 작용하는 것 같고 여형제들은 인정(人情)이 더 많이 작용하는 것 같습니다. 특히 결혼 이후의 형제들의 만남은 순수한 형제애로만 결속하기 힘든 다른 집 가문의 사람들이 하나 더 붙어서 만나게 되고, 그 만남의 현장에는 복잡한 이해타산의 현실문제가 엮여 있습니다. 이를테면 부자 부모라면 유산에 대한 기대 의식도 있을 수 있고 가난한 부모라면 부모 봉양이라는 문제도 있게 됩니다. 하지만 유산을 기대할 수 있는 사람이 과연 얼마나 될까 생각해 보면 대부분 부모 봉양에 대한 문제일 것이고, 부모님 사후라면 생전에 부모님께 어떻게 했는지에 대한 남아있는 앙금이 문제가 될 수 있을 것입니다.
   또 다른 부담 하나는 목사로서의 부담입니다. 나의 형들은 모친이 계시는 인천 주위 수도권에 살고 있습니다. 나는 사역지를 부산 경남을 떠난 적이 없어 교역자가 된 이후에는 항상 홀로 떨어져 살았습니다. 그러니 막내라는 서열과 목사라는 신분 때문이기도 했겠지만 집안일은 형들이 먼저 개입하게 되었고 급박한 형편이 되면 나에게 연락이 왔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부턴가 형들에게서 나의 처신에 대해 불편한 심기를 조금씩 느낄 수 있었습니다. 떨어져서 있다는 이유로 부모님을 자주 뵙지 못한 죄스러움이 있었던 저로서는 슬쩍 스치는 말도 오래 가슴에 남아 있음을 알았습니다. 후에 형들의 그 말에는 단순히 부모에게 무관심한 막내에 대한 꾸중보다는 목사로서 할 수 있는 역할에 대한 아쉬움의 표현도 있음을 느꼈습니다. 그래서 지금은 이전보다는 훨씬 더 적극적으로 개입하고 할 도리도 해야 하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지만 그런 생각을 가질수록 더 많은 부담이 생기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이미 답을 가지고 있습니다. 모든 인간관계는 누군가의 잘잘못을 논리적으로 합리적으로 따지는 것에 있지 않습니다. 그것은 사회일이나 교회일이나 집안까지도 다 마찬가지입니다. 진정한 해답은 누군가가 좀 더 희생하고 품어주고 안아주고 섬겨주는 것에 있습니다. 상황의 바람직한 진전은 오직 그런 사람이 출현 할 때만 나타날 수 있습니다.
 

   전혀 상관이 없는(어쩌면 상관 지을 필요도 없는) 사람들까지도 영혼구원을 위해 품고 기도하고 섬기기로 작정하는 우리들이 혈육으로 이미 연결되어 있는 사람들도 품지 못한다면 영혼구원의 열정이란 한낱 헛된 구호에 불과할지 모릅니다.
누구든지 하나님을 사랑하노라 하고 그 형제를 미워하면 이는 거짓말하는 자니 보는 바 그 형제를 사랑치 아니하는 자가 보지 못하는 바 하나님을 사랑할 수 없느니라”(요일 4:20)
 

   그래서 이 명절, 평소에 못하는 아들에게 주어진 소중한 섬김의 기회라고 생각하고 인천행 버스에 몸을 싣습니다. 그러니 한결 마음이 가벼워집니다.(2014.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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