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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수감사절에 드리는 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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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및 요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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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추수감사절에 드리는 감사
성경> 신16:13-17


● 추수감사절의 성경적 근거

오늘은 대부분의 한국 교회가 지키는 추수감사절(주일)입니다.
오늘날 우리가 지키고 있는 추수감사절의 성경적 근거는 구약 성경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지키던 3대 절기 가운데 하나인 수장절에 있습니다.

구약에는 하나님께서 자신의 백성들이 지켜야 될 3대 절기를 명하셨는데(출23:14-17; 34:18-24; 레23:4-8, 15-21, 34-43), 유월절(무교절), 칠칠절(오순절, 맥추절, 초실절), 초막절(장막절, 수장절)이 그것입니다.
또한 성경은 이스라엘 백성 중 모든 성인은 1년에 세 차례씩 반드시 중앙 성소에 올라가 절기를 지켜야 할 것을 규정하고 있습니다.
"너희 중 모든 남자는 일 년 삼차 곧 무교절과 칠칠절과 초막절에 네 하나님 여호와의 택하신 곳에서 여호와께 보이되..."(신 16:16)

이를 통해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선민(選民)으로서 지녀야 할 참된 신앙과 행위를 요구하신 것입니다.

무교절은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에서 나온 날을 기념하는 것이며, 칠칠절(七七節)은 곡식의 추수에 맞추어서 말할 때는 맥추절로서 봄의 보리 농사를 통해서 얻은 수확과 풍작에 대하여 하나님께 감사하는 절기입니다. 그리고 초막절(草幕節)은 모든 가을 농작물의 수확과 과일의 수확을 끝마치고 거두어들이면서 드리는 절기이기 때문에 수장절입니다.

"맥추절을 지키라 이는 네가 수고하여 밭에 뿌린 것의 첫 열매를 거둠이니라 수장절을 지키라 이는 네가 수고하여 이룬 것을 연종에 밭에서부터 거두어 저장함이니라"(출23:16)
"칠칠절 곧 맥추의 초실절을 지키고 가을에는 수장절을 지키라"(출34:22)

●추수감사절의 역사적 유래

그러나 우리가 지키는 추수감사절은 단지 구약의 절기인 수장절을 지키려던 의도에서 생겨난 것은 아닙니다. 그것의 미국에서 일어난 역사적인 사건을 통해 생겨났습니다.

루터의 종교개혁으로 유럽이 들끓던 16세기 중반, 영국에서도 헨리 8세라는 강력한 군주가 자기 마음대로 교회를 이끌고 갈 목적으로 수장령을 발표하고 영국국교회를 창시하게 됩니다. 이 영국국교회가 성경적이지 않고 그들의 바른 신앙 생활에 위배된다고 생각한 영국의 청교도들은 반대하기 시작했고, 그러자 자연히 국가 권력을 동반한 영국국교회의 핍박이 시작되었습니다.
자신들의 신앙에 심각한 위협을 받게 된 일단의 청교도 무리들은 죽음을 각오하고 1620년 9월 13일 자신들의 신앙의 자유를 찾아 '메이플라워'라는 배를 타고 신앙의 자유의 땅, 신대륙으로 떠났습니다. 종교 박해를 피해 신대륙을 찾은 이 청교도들은 영양실조와 추위와 괴혈병등과 맞서 싸워야 했습니다. 자연과의 힘든 투쟁에서 신대륙을 밟은 숫자는 겨우 78명뿐이었습니다.
'청교도'(淸敎徒)라는 말의 의미는 깨끗한 마음과 몸으로 양심의 자유를 따라 하나님을 예배하는 무리들이라는 뜻입니다.
이들이 신대륙에 도착한 것은 추운 겨울이었습니다. 그 겨울을 지내는 동안 대륙의 혹독한 추위와 양식 결핍으로 인한 굶주림, 풍토병, 인디언들이 습격, 야수의 공격 등으로 26명이 생명을 잃고 겨우 52명만이 살아남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그 가운데서도 믿음만은 더욱 간절해 졌고 성숙되어 갔습니다. 박해를 피해 떠나온 만큼 신앙의 자유를 만끽했습니다.
비록 만족스럽지는 못하더라도 이듬해 가을 이들은 소산물을 얻게 되었고 하나님께 감사의 제단도 쌓게 되었습니다. 프리머스에서의 3일동안의 감사제가 추수감사절의 첫출발이 된 셈입니다.

이때부터 추수감사절은 신대륙 전역에서 하나의 관례처럼 지켜졌고 1789년 초대 대통령 조지 와싱턴 대통령이 11월 26일을 감사절로 공포한데 이어 1863년 링컨 대통령이 추수감사절을 국경일로 선포하기에 이르렀습니다. 그 후 루즈벨트 대통령이 11월 셋째 수요일을 감사절로 개정해 미국에서는 오늘에까지 이르고있다.

이 청교도 정신은 지금도 미국의 근본 정신으로 되어 있고, 이 청교도들의 후손들의 가계가 미국의 엘리트층을 형성하여 미국의 각계 각층에서 미국의 수뇌부로 일하고 있습니다.

미국 청교도들이 남겼던 신앙의 유산인 추수감사절은 선교사들에 의해 한국교회에도 전달되었습니다. 한국에서 공식적으로 나타난 것은 1904년 조선 장로교공의회 서경조 장로의 제안에서였습니다. 그 후 처음엔 장로교 단독으로 11월 10일을 추수감사절로 지켰습니다. 이 날 기독인들은 감사예배를 드리고 감사헌금을 총회 전도국에 보내어 전도사업에 사용했습니다. 그 후 수요일은 주일로 변경되어 추수감사절은 오늘에까지 이르고 있습니다.

●한 해의 인도를 감사

그러면 이제 추수감사절이 주는 그 성경적 교훈과 역사적 교훈을 아울러 생각해 보면서 감사절에 진정한 감사를 드리는 성도들이 되시길 기원합니다.

추수감사절이 우리에게 주는 교훈은,
먼저, 우리는 금년 한 해를 인도하시는 하나님께 감사해야 하는 것입니다. 추수감사절의 성경적 근거가 되는 수장절은 일년 한 해의 농사를 마치는 연말이었습니다.

"수장절을 지키라 이는 네가 수고하여 이룬 것을 연종에 밭에서부터 거두어 저장함이니라"(출23:16)

여기에서 '연종'이라는 말은 한 '해의 끝'라는 말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추수감사절은 한 해를 결산하면서 감사의 의미로 드리는 것입니다. 수장절은 한 해의 마지막 농사를 거두는 것입니다.
물론 우리는 이제 더 이상 농업에 종사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곡식의 열매로 거두어 드리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우리는 계속해서 이 의미를 살려 하나님께 추수감사절기를 지킵니다.

농부들에게 한 해 농사의 성패는 하늘에 달려있습니다. 오늘날과 같이 과학이 발달된 시대에도 하늘을 얼마나 의존하게 됩니까? 우리는 종종 가뭄으로 흉작이 되는 해를 맞이하기도 하고, 반대로 홍수 때문에 큰 피해를 보기도 합니다. 그 말은 하나님이 은혜를 베풀지 않으면 안 된다는 말입니다. 아무리 인간의 지혜를 의지해도 하나님이 은혜를 거두시면 망하는 것입니다.

우리도 어느새 2001년 한 해의 말미에 와 있습니다. 우리가 여기까지 오게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임을 고백합시다. 우리의 가정이 여기까지 온 것을 하나님께 감사합시다. 우리의 교회가 여기까지 오게 된 것을 감사합시다. 모두가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저는 금년 한 해가 다 끝난 것이 아니지만 여기까지 인도하신 하나님께 감사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정말 눈물겹도록 감사합니다. 좋은 교회, 좋은 성도, 좋은 교역자 만나게 해 주셨고, 또 하나님의 은혜 속에 있음을 너무도 감사합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은혜라는 것을 깨달으니 남은 길에도 하나님의 은혜를 더욱 간구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저는 이전부터 가장 많이 드리는 기도가 이것입니다. "하나님, 나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하나님은 은혜요 긍휼입니다."
여러분, 제가 가끔 자주 여러분에게 들려드린 찬송 기억하시지요?
"주 떠나 가시면 내 생명 헛되네 즐겁고 슬플 때 늘 계시옵소서"

우리는 금년 여기까지 인도하신 하나님께 감사를 드림으로 우리의 전 생애를 또 한 번 부탁하는 것입니다.

● 땀의 소중함을 고백

둘째, 땀의 소중함을 인정하고 고백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수장절을 지키라고 말씀하실 때는 이스라엘이 광야 생활하고 있을 때입니다. 이스라엘이 광야 생활을 하고 있을 때 그들이 먹은 것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이 주시는 만나와 메추라기였습니다. 그들은 농사를 짓지 않았습니다. 하늘에서 떨어지는 것을 거저 주워 먹었던 것입니다.

언제 장막을 거두고 떠날지 모르는 사람들이 씨뿌리고 열매를 기다릴 수 없습니다. 그러니 당연히 거두어 저장할 것도 없었습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그들에게 수장절을 지키라고 말씀합니다.
그러면 이 말씀은 어떤 의미입니까? 앞으로 그렇게 하라는 것입니다. 이제 곧 가나안 땅에 들어가면 너희가 농사를 지어 살 것인데 그 때 그렇게 하라는 것입니다.
그들은 수장절을 진정으로 지킬 수 있는 때는 가나안에 들어가고 난 뒤입니다. 그들은 가나안에 들어가서야 씨를 뿌리고 물을 주고 또 거름을 대고 잡초를 뽑았을 것입니다. 그리고 난 뒤 그들은 한 해를 보내고 드디어 열매를 거두게 된 것입니다.
그 때 그들은 노동의 소중함을 알았을 것입니다. 열심히 일한 것의 대가를 받게 되었을 것입니다.
다시 출23:16을 봅니다.
"수장절을 지키라 이는 네가 수고하여 이룬 것을 연종에 밭에서부터 거두어 저장함이니라"

열심히 일하지 않는 사람은 진정한 감사를 할 수 없는 사람입니다.
여러분, 돈의 소중함을 아는 사람은 그 돈을 노력해서 번 사람입니다. 돈을 흥청망청 쓰는 사람은 분명 쉽게 돈을 번 사람입니다. 그래서 진짜 부자들은 대체로 구두쇠라고 합니다. 그렇다고 쓸 데 안 쓰는 것이 아니라 의미있는 일에는 돈을 과감히 내 놓습니다.
예)달란트 비유에서 한 달란트 받은 자는 왜 그렇게 진노를 받게 되었습니까? 그는 하나님을 제대로 모랐습니다. 그는 하나님을 오해했는데 "심지 않은 데서 거두고 헤치지 않은 데서 모으시는 분"으로 보았습니다.
하나님은 분명 그렇게 하실 수 있는 분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하나님의 그런 능력을 헛된 곳에 사용하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의 원리는 열심히 노력하여 그 대가를 얻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의 감사가 '얼마나 진정한 감사냐'하는 것은 우리가 얼마나 열심히 살았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신앙생활 역시 그렇습니다. 하나님 말씀대로 열심히 산 사람이 더욱 크게 감사하게 되어 있습니다.
더욱 열심히 사는 우리가 됩시다.

● 환란의 시기를 위해 저장

셋째, 영적 저장을 의미합니다. 수장절은 저장하는 절기라는 것입니다.
"밭에서 거두어 저장함이니라"
여러분, 저장을 왜 합니까? 저장은 곡식을 생산하지 못하는 때를 대비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솝 우화의 '개미와 베짱이' 이야기를 잘 압니다. 개미는 열심히 일하여 추운 때를 대비하였지만 베짱이는 놀고 어려운 시기를 대비하지 못하였습니다.

인생을 살다보면 우리도 어려운 때를 당합니다. 참으로 어려운 때를 당합니다. 그러나 먹을 것을 저장해 둔 사람은 삽니다. 영적으로 저장된 것이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은혜를 주시는 때에는 그 은혜를 저장해야 합니다. 항상 풍년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때로는 흉년이 들 수 있는 것입니다. 애굽의 7년 대 풍년은 흥청망청 즐기라고 있었던 것이 아닙니다. 7년 대 흉년을 예배하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흉년을 대비하지 못한 나라는 모두가 다 애굽에게 무릎을 꿇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흉년을 대비한 애굽 나라만 항상 더욱 풍족해졌습니다.

예수님 재림하기 직전에도 많은 환란이 있을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마 10:22) 『또 너희가 내 이름을 인하여 모든 사람에게 미움을 받을 것이나 나중까지 견디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
우리의 믿음이 저축된 것이 없으면 우리도 마구 흔들릴 것입니다.

마25:29에 달란트 비유 끝에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무릇 있는 자는 받아 풍족하게 되고 없는 자는 그 있는 것까지 빼앗기리라"
영적 빈익빈 부익부 현상을 말하고 있습니다.

여러분의 인생에서 굴곡 없는 삶을 살아가시려면 은혜받을 시기를 놓치지 말고, 또 받은 은혜를 잘 간수하시는 여러분이 되시길 바랍니다. 많은 사람이 받은 은혜를 저장하지 못합니다. 간수하지 못합니다. 여러분의 환란의 때에도 넉넉하게 감당할 수 있도록 그 은혜가 여전히 여러분에게 남아 있어야 합니다.
믿음이 정말 필요할 때에 보일 믿음이 없으면 안됩니다. 잘될 때 믿음있는 척하는 것은 누구나 할 수 있습니다. 문제는 어려울 때, 환란의 때입니다.
그래서 고후6:1에 "하나님의 은혜를 헛되이 받지 말라"고 하였습니다.

● 진정한 감사는 어려울 때 하는 감사

넷째, 어려울 때 감사하라는 것입니다.
이미 추수감사절의 유래를 살펴보았지만 추수감사절의 더 깊은 유래는 이렇습니다.

청교도들이 메이플라워호를 타고 미국 신대륙에 도착하여 얼마 지나지 않아 그들 중 반 이상이 굶거나 병들어 죽었습니다. 게다가 해마다 겹치는 흉년으로 고통을 당했습니다. 도무지 밝은 전망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이들은 금식기도를 선포하고 하나님께 매달리기 시작하였습니다.
"하나님, 이 상황을 돌보아 주십시오. 우리를 도와 주시옵소서."
그때 어떤 농부가 이렇게 제의를 했습니다.
"지금까지 우리는 금식하면서 하나님께서 도와주시기를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그러나 비록 흉년이 들고 병으로 쓰러지는 어려움을 겪지만 감사할 것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신앙과 정치적인 자유가 있고 경작할 수 있는 넓은 땅이 있습니다. 금식대신에 감사기간을 정하고 하나님께 감사 드리는 것이 어떻습니까?"
농부의 말은 모두에게 깊은 감화를 주었습니다. 그래서 금식주간 대신 감사주간을 선포하고 하나님 앞에 감사하기 시작하였습니다. 이것이 감사주일의 발단이었습니다.

성도 여러분, 풍족할 때 하는 감사는 누구든지 할 수 있습니다. 믿지 않는 사람도 일이 잘 될 때는 선심을 쓰고 베풉니다. 그러나 우리가 그들과 달라야하는 것은 도무지 감사할 수 없는 상황에서 감사하는 것입니다.
"하나님 내 처지를 보십시오. 감사할 수 있는지!" 정말 어려운 처지에 놓이신 분들이 있을 것입니다.

오늘날 미국은 이 청교도 정신을 나라의 이념으로 삼고 있습니다. 우리가 이제와서 미국에 대해 패권주의니 경제독제를 하니, 또 역사상 그 어떤 나라도 이런 막강한 힘을 가지고 전 세계를 지배한 나라가 없었다고 말하지만, 이 시간 그 나라가 왜 그렇게 부국이 되었는지를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그들의 조상은 그 어려운 때에 낙심과 좌절로 푸념이나 저주를 뱉는 것이 아니라 감사를 할 수 있었던 사람들이었다는 사실입니다.

진정한 복을 소유할 수 있는 사람은 극한 어려움의 때에도 감사의 조건을 발견하고 감사할 수 있는 사람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바울 사도가 권면한 대로 범사에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이 '범사'란 모든 일입니다. 좋은 일에도 나쁜 일에도 항상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어떤 잘 믿는 할아버지 한 분이 있었는데 언제나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하고 다니니 '감사 할아버지'라는 별명을 듣게 되었습니다. 이 할아버지가 한번은 거리에 나가서 고기 한 근을 사가지고 돌아오다가 돌에 걸려 넘어져서 고기를 손에서 놓쳐버렸습니다. 때마침 개 한 마리가 곁을 지나다가 고기를 물고 달아나 버렸습니다. 할아버지는 물끄러미 보기만 하고 있습니다. 개는 사라졌습니다. 이때 할아버지는 "감사합니다"하는 것이었습니다. 때마침 어떤 젊은이가 지나가다가 묻기를 무엇이 감사한 일이 있느냐고 했습니다. 그때 할아버지 하는 말이 "아 이 사람아, 고기는 잃어버렸으나 내 입의 입맛은 그냥 있네"하는 것이었습니다. 사실 고기가 아무리 많아도 입맛이 없으면 별로 감사한 일이 못됩니다.

저는 노숙희 성도를 심방하면서 제 나름대로는 하나님 앞에서 많은 것을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더욱 사소한 것에도 감사를 드려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 사람의 병명은 장폐쇄증입니다. 대장의 운동이 되지 않으니 최종단계에서 배설이 안됩니다. 자연히 가스가 차고 답답합니다. 그러니 억지로 장을 비우는 관장을 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그것도 할 때 단번에 잘 되면 되는데 그게 잘 안 되는 모양입니다. 제가 심방 했을 때는 관장이 잘 되었다고 얼마나 기뻐하는지요. 여러분, 현재 최대의 기도제목은 "변을 보는 것입니다." 여러분, 변을 보고서 감사해 보셨습니까?

우리가 깨닫지 못해 그렇지 감사할 거리가 얼마나 많겠습니까? 그래서 저는 무조건 감사헌금을 드립니다. 그것이 형식적이라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감사헌금으로 감사의 표시를 하는 것입니다. 왜요? 내가 모르는 가운데 얼마나 많은 감사거리가 있었겠습니까? 그래서 하나님께 "하나님, 내가 모르는 감사 제목, 나의 입술로 감사하지 못하고 지나는 것 죄송합니다. 용서해주세요. 내가 진정 감사하고 싶은데 그것을 깨닫지 못하는 것뿐입니다. 그래서 그 고백으로 내가 헌금을 드립니다. 내가 입술로 감사하지 않는다고 그것들을 절대 거두지 마세요."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이 추수감사주일 날, 진정으로 우러나는 감사를 하나님께 드려야 할 것입니다. 그러면서 감사를 회복하고 여러분의 복된 인생을 여시는 여러분이 되시길 축원합니다. - 아 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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