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산교회채널
 가정교회360
 예배생방송

사역의 지경이 넓혀지는 교회

주일오전예배

내 시대가 주의 손에 있사오니
  • 날짜 :
  • 본문 :
  • 설교자 :
성경본문 및 요약



casttetle.jpg












 



 


 


 


 



 전체보기

제목> 내 시대가 주의 손에 있사오니
성경> 시31:14-24
찬송> 460, 463장


● 고난의 인생

본 시편은 다윗의 시입니다. 다윗은 성경 그 어떤 인물보다도 우리에게 잘 알려진 사람입니다. 그는 어린 시절 목동이었습니다. 그는 장성하여 위대한 장수가 되었고, 또 위대한 정치가가 되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그는 위대한 음악가였고 또 위대한 문학가였습니다. 우리가 다윗을 생각할 때 조금은 낭만적이고 목가적으로 생각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래서 그와 같은 삶을 산다면 얼마나 멋있을까하고 생각할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다윗이라는 사람의 일생을 조금만 더 곰곰이 생각해 보면, 그와 같은 삶을 산다는 것에 두려움이 생길 것입니다. 사실 성경은 다윗을 말할 때, 그의 위대한 업적 이상으로 그의 실패와 고난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성경 사무엘상, 하서에는 다윗의 일생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사무엘상에는 다윗이 왕이 되기 이전까지의 기록이며, 사무엘하에는 다윗이 왕이 된 이후의 기록입니다. 사무엘상에는 다윗이 사울 왕의 정치적 경쟁자가 되어 끊임없이 도망 다니는 모습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사울 왕이 죽자 사람들은 다윗을 왕으로 추대하였습니다. 드디어 다윗의 세상이 오는 듯 했습니다. 그는 왕이 되었고 모든 백성들이 성군으로 그를 존경하는 것 같았습니다. 그러나 그의 화려했던 생활은 그의 아들 압살롬의 반역으로 하루 아침에 무너지고 말았습니다. 그는 그의 아들을 피해 또 도망자의 신세가 되어집니다.
성경에서는 위엄과 권위를 가진 군주로서의 그의 삶을 기록한 것보다는 도망자의 신세로서의 삶을 더 많이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래도 왕이라도 해 보았으니 그의 인생이 그만하면 됐지 않느냐고 말한다면 할 말이 없습니다. 그러나 진정 다윗의 생애는 행복을 노래할 시간보다는 오히려 고난 가운데 울부짖어야 하는 세월이 더욱 많았습니다.

● 고난의 유익

그러나 바로 여기에 우리가 알고 있는 그 위대한 왕 다윗이 나오게 된 것입니다. 그의 음악적인 소양과 그의 많은 주옥같은 시들이 바로 고난의 질곡에서 산 체험으로 나온 것입니다. 그의 믿음은 더욱 깊이를 더해 갔습니다. 만약 다윗에게 이런 세월이 없었다면 다윗은 우리에게도 별 의미 없는 사람이 되었을 것입니다.
다윗은 믿음의 사람이었습니다. 허물없는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만은 그래도 다윗만큼 믿음의 사람은 드물 것입니다. 그런데 그렇게 믿음 좋은 사람이 사망의 험준한 계곡을 수도 없이 넘나들었다는 사실은 우리를 더욱 긴장하게 만듭니다.

우리 중에도 다윗과 같은 사람이 있음을 봅니다. 참 믿음 좋은 사람입니다. 누구보다도 기도를 열심히 하고 또 간절히 합니다. 또 교회에서 하는 봉사에도 솔선수범입니다. 그런데 그에게 고난은 그치지 않습니다. 시험은 종류대로 다 당하는 것 같습니다. 특히 목회자로서 그런 사람을 그냥 지켜보는 것은 참 견디기 힘듭니다. 주위의 사람들이 조롱합니다. 그 사람 스스로도 얼마나 위축되는지 모릅니다. "하나님이 과연 있다면 저를 저렇게 내버려 둘 수 있을까? 하나님이 살아 있다면 저렇게 할 수는 없을 거야!"

우리는 여기 시편 31편의 다윗의 시에 나타난 다윗의 고백에서 정말 중요한 것을 발견합니다. 그가 고통의 터널을 통과하고 나서 무엇이라고 말합니까?
고통 때문에 손해 본 것이 없다고 합니다. 고통 때문에 자기가 불행해지지 않았다고 말합니다. 뿐만 아니라 고통만이 주는 특별한 보너스가 있다고 이야기합니다. 이러한 다윗의 희한한 고백을 생각해 보면서, 우리가 당한 고통, 우리가 현재 끌어안고 있는 이 고통을 보는 시각을 새롭게 바꾸는 것이 하나님의 원하시는 뜻입니다.
정말 고통이 우리를 불행하게 만들지 않았는지, 정말 고통으로 손해를 보지 않고 있는지, 정말 고통이 주는 특별한 보너스가 대단한 것인지 헤아려 보면서 하나님 앞에 영광 돌릴 수 있기를 바랍니다. 왜 그렇습니까? 우리들 대부분이 고통과 싸우며 살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끔찍할 정도로 무서운 일들이 얼마든지 우리를 기다리고 있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 상황에 관계없는 절대적인 믿음

오늘의 본문에서 하나님이 다윗을 통해 우리에게 주시는 교훈은 먼저, 다윗은 죽어도 하나님을 의지하려는 믿음으로 나아갔다는 사실입니다.
14절에 "그리하여도 나는…"

여기에서 '그리하여도'라는 말은 앞서 말한 상황을 말합니다. 11-13절의 상황을 한 번 보시기 바랍니다. 대적에게 욕을 당합니다. 이웃에게는 더욱 심한 욕을 당합니다. 친구들도 놀랄 정도입니다. 그의 모습이 얼마나 비참하게 되었는지 만나는 사람이 깜짝 놀라 피할 정도입니다. 사람들의 관심에서 멀어진 것이 꼭 파기, 곧 깨어진 그릇에 더 이상 미련을 두지 않는 것과 같다고 합니다.

성도 여러분, 이 정도면 인생 끝장난 것 아닙니까? 참으로 비참해진 인생입니다. 그 누가 알아주는 사람이 없고, 억울해서 화병이라도 나 죽을 정도 아닙니까?
그래서 다윗이 어떤 고백을 하고 있습니까? "그러니 인생은 돈이 없으면 안돼, 어떻게 해서라도 돈이 필요해, 돈은 곧 인격이요, 돈은 곧 품위다. 어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말고 돈을 손에 쥐어라" 이렇게 말하지 않습니다.
다윗을 고백을 들어보십시오. "그러하여도 나는 주께 의지하고"

바보 멍청이가 아니고서는 이럴 수 없는 것 아닙니까? 이것저것 다 빼앗기고 빈털틀이가 다 되어서 하늘을 향해 욕이나 실컷 하고 죽어도 시원치 않을 판에 "그래도 나는 주께 의지하고…"라도 말합니다. 주께 의지할 것이 무엇이 남아 있다는 말입니까? 이제까지 주님을 의지해서 남은 게 고작 이런 것이란 말입니까? 다윗은 정말 미련한 자인 것 같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이 바보가 되려면 다윗처럼 되시기 바랍니다. 약삭빠르지 못해도 좋습니다. 좀 미련스럽게 하나님을 끝까지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러나 실제로 우리가 시험의 한 가운데 있을 때 다윗처럼 주님께 의지하기란 쉬운 일이 아닙니다. 세례 요한의 경우는 한 분 예수님만을 기다리며 그분만을 위한 생애를 살아 왔습니다. 그런데 그에게 고난이 닥치자 그의 믿음에 위기가 왔습니다. 마태복음 11장에 보면 세례요한이 헤롯왕이 동생의 아내를 취한 것을 지적하자 헤롯이 그를 감옥에 쳐 넣어버렸습니다.
사람이 믿음으로 행했지만 그 형편이 나아지는 것은 없고 고난만 더욱 가중되면 처음 가졌던 믿음이 위협받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그래서인지 세례요한은 자신의 제자들을 예수님께 보내어 물어봅니다. "오실 그이가 당신입니까?"
그 때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누구든지 나를 인하여 실족하지 아니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마 11:6) 주님께 대한 믿음을 포기하지 않고 지키는 사람이 복 있다는 말씀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다니엘의 세 친구의 고백은 너무나도 귀하고 위대합니다.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히브리식 이름으로 하나냐, 미사엘, 아사랴) 이 세 사람의 출세에 배가 아팠던 사람들이 억지로 함정을 만들어 이 세 사람을 제거하려 하였습니다. 털어 먼지 나지 않는 사람이 없는데 이들은 흠잡을 데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던 끝에 한 가지 좋은 방법이 생각이 났습니다. 그들은 유일신, 즉 다른 신을 인정하지 않는 여호와 신앙이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들은 비역하게 이것을 이용하였습니다. 바벨론 느부갓네살 왕의 신상에 모두가 다 절을 하는데 그들은 그들의 신앙에 따라 절을 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안 것입니다. 절호의 기회가 그들에게 찾아 왔습니다. 대적들은 신하로서 왕의 권위에 도전하였다고 하며 왕이 반포한 대로 이들 세 사람을 풀무 불에 던져 넣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왕은 크게 진노하여 이들을 불러다가 문초를 하고 다시 한번 기회를 줍니다. "이제라도 너희가 절을 하면 없던 일로 해 주겠다"는 것입니다. 그 때 이들의 고백입니다.
"느부갓네살이여 우리가 이 일에 대하여 왕에게 대답할 필요가 없나이다 만일 그럴 것이면 왕이여 우리가 섬기는 우리 하나님이 우리를 극렬히 타는 풀무 가운데서 능히 건져내시겠고 왕의 손에서도 건져 내시리이다 그리 아니하실지라도 왕이여 우리가 왕의 신들을 섬기지도 아니하고 왕의 세우신 금 신상에게 절하지도 아니할 줄을 아옵소서"(단3:16-18)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것이 우리 믿음의 선배의 신앙 고백이었습니다. 우리 교단의 믿음의 선배들이 다 이런 믿음으로 하나님 앞에서 살았습니다. 신사참배를 거부해 옥에서 비명에 죽을 지라도 그들은 하나님에 대한 그들의 신앙은 버리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옥사(獄死)를 당할지라도 하나님은 역시 그들의 하나님이었음을 죽음으로써 고백하였던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저는 요사이 미국과 아프칸의 텔레반 정권과의 싸움을 보면서 참 회개할 것이 많아졌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이 믿는 그릇된 신앙을 위해 자신의 목숨을 초개같이 버릴 자세가 되어 있습니다. 그들의 신은 그들을 그렇게 고생하도록 만들고 있는데 말입니다. 그들은 자신의 신앙을 위해 그 혹독한 테러 훈련을 받아냅니다. 제대로 먹지 못하고 자지도 못합니다. 숨쉬기조차 힘든 황량한 벌판의 모래바람을 수도없이 마시면서도 그들에 대한 신의 충성을 버리지 않는 것입니다. 미국의 특수부대 텔타포스나 영국의 SAS 요원들은 그래도 그들에게 상당한 보상이라고 주어진다고 하지만 이들은 아무런 대가없이 그 혹독한 고통을 감내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신앙이 회교도보다 못해서 되겠습니까?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자기가 하는 일이 좀 잘 되면 하나님의 복을 혼자 받는 양 들뜨고 반대로 일이 좀 잘 안되고 어려워지기 시작하면 세상을 다 잃은 것처럼 낙심하더니 곧 믿음까지 등져버리는 사람이 있습니다.
※내촌감산의 작시, 주숙일 작곡 - "예수를 생각하고 나는 나는 "
1. 예수를 생각하고 나는 나는
나의 가난함도 슬프지 않고 슬프지 않고
남의 부유함도 부럽지 않나니
예수를 생각하고 나는 나는
오직 감사한 마음이 넘칠 따름이라
2. 예수를 생각하고 나는 나는
몸의 환란도 괴롭지 않고 괴롭지 않고
그 행복도 사모하지 않나니
예수를 생각하고 나는 나는
오직 평강과 만족만 있을 따름이라
3. 예수를 생각하고 나는 나는
일의 실패에 실망치 않고 실망치 않고
그 성공에 뛰--며 기뻐하지 않나니
예수를 생각하고 나는 나는
오직 영원한 승리자이기 때문이라

성도 여러분, 우리가 당한 고통은 분명 고통이지만 그러나 한 번 작정하고 주님께 드린 우리의 생애라고 생각하면서 다윗처럼 고백하시는 여러분이 되시길 바랍니다.
다함께 따라 해 봅시다.
"그러하여도…주는 내 하나님이시라"

● 고난은 주님께 더욱 나아가게 한다

둘째로, '고난은 더욱 주님을 의지하게 만듭니다'는 것입니다.
14절의 말씀을 통해 우리는 그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렇게 많은 고통으로 괴롭힘을 당하면 사람의 본능적인 반응이 어떻게 나오는 줄 아십니까? 믿음 있던 사람도 '믿어도 소용없다. 하나님이 어디 있냐?'라며 오히려 하나님을 멀리하고 도망가고 싶어지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사랑하는 사람은 그 반응이 반대로 나옵니다. 견딜 수 없는 고통 때문에 오히려 하나님을 향해 달려가는 것입니다. '그러하여도, 이런 고통이 나를 괴롭히지만 여호와여 나는 주께 의지하였나이다. 여호와여 나는 주님을 향하여 하나님만이 나를 도우실 분이라고 고백하였나이다.' 이렇게 고백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주께 피하는 자의 자세입니다.

세상 사람들과 진실한 신자의 다른 점이 바로 이것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고난 끝에 낙심이며 마지막에 가서는 패망니다. 그러나 진실한 성도는 이상하게 더욱 주님을 의지합니다. 물론 교인들 가운데는 아브라함을 따라 살아가는 롯과 같은 사람이 있습니다. 믿음의 결단을 할 줄 모르고 극히 인간적인 결단을 하며 살다가 믿음도 저버리는 사람입니다. 고난이 닥치면 그 사람의 믿음이 드러난다는 말은 이런 의미에서 하는 것입니다.

C.S. 루이스는 고통은 '하나님이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사용하시는 확성기다'라고 말하였습니다. 확성기는 사람들이 들어야 할 것을 잘 듣지 못할 때 사용하는 기구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음성을 들어야하는데 그것을 잘 듣지 못하면 하나님은 고통이라는 확성기를 이용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세상의 여러 잡음에 맞추었던 주파수를 다 끄게 하시고 하나님의 말씀의 주파수에 채널을 맞추게 하시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가운데 이미 이것을 경험하신 분들이 많을 줄 압니다. 여러분 가운데 이전에는 믿음을 그렇게 성숙하지 못했는데 이런 고난의 확성기로 주님의 음성을 듣고 난 뒤 신앙의 제 자리로 돌아온 분들이 많을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고난을 적절히 사용하여 다시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만드십니다.
시119:71에 "고난 당한 것이 내게 유익이라 이로 인하여 내가 주의 율례를 배우게 되었나이다"

그래서 결국 우리는 이렇게 고백하게 됩니다.
찬503장- 2절 "큰 물결 일어나 나 쉬지 못하나 이 풍랑 인연하여 더 빨리 갑니다."

● 쌓아두신 은혜

셋째로, 이것은 다윗이 고백한 너무나 귀한 믿음의 보배와 같은 말씀입니다. 그것은 '주께서 쌓아두신 은혜를 체험하게 된다'는 것입니다.(19)
그냥 은혜가 아니고 '쌓아두신 은혜'라고 합니다. 쌓아두었다는 말은 때를 기다리고 있었다는 말입니다. 어느 때 말입니까? 이 때가 시험 환란 다 지나가고 하나님이 은혜 주실 때인 것입니다.
어떤 자에게 이런 은혜를 주신다고 말씀하고 있습니까? 19절에 "인생 앞에서 주께 피하는 자들을 위하여 베푸신 은혜"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인생 앞에서는 인생을 의지해야함에도 불구하고 주께 피하였다는 것입니다. 시11:1에 말씀처럼 사람들은 새처럼 산으로 도망하라고 말하지만 여호와께 자신을 피하는 사람을 말합니다. 이런 사람에게는 하나님이 고난의 세월 중에 그 은혜를 쌓아두셨다가 그의 귀를 하나님께로 향하기 시작하고 하나님의 기대하던 수준에 합격하기만 하면 몽땅 다 풀어 쏟아 부어 주시는 것입니다.
요셉 시대에 애굽에 7년동안 흉년이 들었습니다. 그러나 애굽의 곳간에는 사람들이 풍성히 먹고 남을 곡식이 가득 채워져 있었습니다. 없어서 못 준 것이 아닙니다. 풀 때가 되지 않아 못 준 것입니다. 우리에게 얼마의 기간이 남아있는지는 알 수 없으나 우리가 끝까지 믿음으로 주님을 바라 볼 때에는 주께서 쌓아두신 은혜의 보따리를 푸시겠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시40편은 역시 다윗의 찬송시입니다. 여기에서 다윗은 비슷한 고백을 하고 있습니다.
"내가 여호와를 기다리고 기다렸더니 귀를 기울이사 나의 부르짖음을 들어셨도다 그가 나를 기가 막힐 웅덩이와 수렁에서 끌어올리시고 내 발을 반석 위에 두사 내 걸음을 견고케 하셨도다 … 여호와 나의 하나님이여 주의 행하신 기적이 많고 우리를 향하신 주의 생각도 많도소이다. 내가 들어 말하고자 하나 주의 앞에 베풀 수도 없고 그 수를 셀 수도 없나이다"

● "내 시대가 주의 손에 있사오니"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가 이 사실을 깨닫게 될 때 우리의 입에서 역시 15절에 있는 다윗의 고백을 하게 될 것입니다.
"내 시대가 주의 손에 있사오니"
이 고백의 의미는 "하나님, 내가 살아있다고 나의 인생이 아닙니다. 내가 살아간다고 하여 나의 시대가 아닙니다. 나의 인생, 나의 시대는 주님의 손에 있습니다. 주님이 엎으시면 형편없는 저주의 인생이 되고, 주님이 세우시면 더 없는 행복한 인생이 됩니다."라는 것입니다.
즉, 내 스스로 나의 인생을 주장하는 것이 아니라 나의 인생은 주의 손에 붙잡혔을 때 가장 훌륭한 인생, 행복한 인생이라는 고백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주님의 손에 붙잡힌 복된 인생이기를 소원하면서 주님께 잘 보이는 삶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현재 우리가 꼴찌로 달리는 인생이라도 주님의 복된 손에 우리의 시대가 주어지기만 한다면 꼴지 일등되는 것은 시간문제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멈춰' 말씀하시고 '뒤로 돌아' 하시면 꼴찌가 일등이 되는 인생의 역전이 가능함을 믿는 것입니다.

다시 김기동 집사의 이야기를 좀 하겠습니다. 그가 왜 아무 관계없는 실내인테리어 회사를 만들었습니까? 그는 기계 계통의 사업을 하고 있었고 그것이 조금은 사양의 길로 접어들었습니다. 그 때 하나님은 전혀 관계없는 인테리어 사업을 하게 하셨습니다. 그 때는 IMF가 시작되어 다른 업체들도 문을 닫을 시기였고 그가 인수한 회사도 부도로 넘어가는 회사였습니다. 그러나 그는 곧 외국인 회사에 인재를 소개하는 헤더 헌터회사의 책임자를 전도하다가 알게 되었고 그의 소개로 국내에 사무실을 새로 내는 외국인 업체 사무실에 실내 인테리어를 해 주게 되었습니다. 일을 마치면 결제도 달러로 해주니 그 당시 환률이 가장 높을 때 그의 기업이 크게 성장하게 된 것입니다.

요사이 미국의 테러 사건으로 울고 웃는 사업체가 생겼습니다. 문을 닫는 여행사가 한 둘이 아닙니다. 그러나 경비업체와 방독면을 만드는 업체는 호황을 누리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받지 못하는 사람은 좋은 일은 비켜만 갑니다. 그러나 그 사람의 시대가 주의 손에 있게 되면 그의 시대가 바뀌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의 시대가 주님의 손에 붙잡힌 바 되어 하나님의 쌓아두신 은혜를 체험하며 사는 여러분이 되시길 축원합니다. -아 멘-
주일오전예배 목록
번호 설교제목 설교자 설교본문 설교일자 조회
243 "주일 - 천 날보다 나은 하루" 시편 84 : 1 - 12 (구약p 864) 2007.07.09 732
242 보리 추수 때 돌아온 여인(※맥추감사주일) 룻1:19-22 2006.07.02 1205
241 "영적 성장의 필요성" 히브리서 5 : 11 - 6 : 2 (신약 p357) 06.06.26 526
240 수가성 여인의 전도 요한복음 4:27~30, 39~42 (신약P148) 2006.06.18 1100
239 눈을 들어 밭을 보라 요4:27-38 2006.06.11 856
238 어떻게 전도해야 합니까? 단 12:3 (구약1254) 2006.06.04 883
237 하나님이 세우신 가정 창세기 2 :18~25 (구약2) 2006.05.28 1056
236 어게인(Again) 1907년 예레미야애가5:21 2006.05.21 733
235 부모와자식의 화책 말라기 4:5-6 2006.05.14 815
234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아이 사무엘상 3:19~20 (구약413) 06.05.07 480
233 난관을 이기는 성공적 인생 창세기 41:37-45 2006. 4. 30 691
232 "내가 너를 세웠노라" 예레미야 1: 1 - 10(구약 p 1050) 2006.04.23 1211
231 부활에 관한 천사의 세가지 메세지 마28:1-10 2006. 04. 9 765
230 버림받은 아들 예수 마27:45~46 06.04.14 503
229 주님과 함께 죽읍시다 요한복음 11:11-16 2006. 04. 9 791
게시물 검색

장산교회채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