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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이 받으시는 예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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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및 요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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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하나님이 받으시는 예배
성경> 창4:1-8
찬송> 533, 53장

● 예배적 존재인 인간

성도 여러분, 여러분은 인간이 인간으로서 해야하는 일 중에 어떤 일이 제일 중요하다고 생각하십니까?
우리는 "인간이 인간으로서"라는 말에서 벌써 인간이 다른 존재와는 구별된다는 것을 압니다. 우리는 동물로서 존재하는 것도 아니고, 식물로서 존재하는 것도 아닙니다. 그리고 곤충도 아니고 생명이 없는 화석으로 존재하는 것도 아닙니다. 불교나 힌두교에서는 인간 윤회를 주장합니다. 우리가 지금은 인간으로 태어났지만 다음 세상에는 짐승으로도, 곤충으로도 태어날 수 있다는 말입니다. 그러나 세상이 윤회되는 것이 아니라 세상은 단회적이며 역사의 종착점으로 가고 있습니다. 그 역사의 주체는 우리 하나님이십니다.

'인간이 해야하는 일 중에 가장 중요한 일이 무엇이냐'는 질문의 답은 인간이 다른 존재들과는 다르니 인간들만이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이냐를 찾아보면 쉽게 답이 나올 것입니다.
여러분, 짐승은 할 수 없는데 인간만이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입니까? 문화인류학을 연구하는 사람들은 그 답을 인간이 '문화를 만들어 사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인간이 문화를 발전시키며 사는 것을 가능하도록 한 두 가지 요소가 있는데 그것은 인간에게 손이 있다는 것과, 말 곧 언어가 있다는 것을 말합니다. 손은 인간이 도구를 만들어 쓸 수 있도록 했고, 언어는 의사를 전달하여 다른 어떤 존재보다 생각을 공유하고 정보를 공유하도록 하여 문화를 발달시켰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곰곰이 생각해 보면 이런 요소들은 인간이 짐승들보다 월등하다는 것이지 전적으로 인간들에게만 주어진 것은 아닙니다. 짐승들도 인간들처럼 다양하지는 못하지만 그들 나름대로 의사표현을 하고 있고, 또 그들 나름의 원초적인 문화를 형성하며 살고 있습니다.

그러면 정말 다른 존재들에게는 없는 인간들에게만 주어진 것은 무엇일까요? 그것은 예배입니다. 신에게 예배를 드리는 것입니다. 짐승들은 예배를 드릴 수 없습니다. 그러나 인간은 예배를 드립니다. 아무리 뛰어난 짐승이라고 해도 그들은 예배를 드리지 못합니다. 다시 말해 짐승에게는 신 의식(神意識)이 없습니다. 여러분, 혹시 해외 토픽이나 지구촌 소식 같은 TV프로에서 개들이 모여 예배를 드렸다는 소식을 들어보셨습니다. 아프리카 어디에서 원숭이들이 모여 예배를 드리더라는 소식을 들어보셨습니까?

예배는 인간에게 주어진 고유한 것입니다. 다른 어떤 존재도 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정말 예배를 잘 드려야 합니다.

그래서 이렇게 말할 수 있습니다. "예배를 드리지 못하는 사람은 정상적인 인간이 아니다."
반면에 "예배를 바로 드리는 사람은 정상적인 인간이다."

여러분, 여러분은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오늘 여러분은 예배드리기 위해서 이 자리에 모이게 된 것을 감사하십시오. 우리가 예배를 바로 드리게 될 때 우리에게는 놀라운 은혜와 복이 임하게 됩니다.

여러분, 이 세상의 많은 문제가 어디에서 시작되었습니까? 그것은 드려야할 예배를 드리지 않기 때문입니다. 혹 드린다고 하여도 잘못 드리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가 예배를 정상적으로 바로 드리게 된다면 우리의 많은 문제가 해결된다는 사실을 믿으십시오.

● 예배의 대상

우리가 예배를 드린다고 할 때에 가장 중요한 것은 예배의 대상을 바로 찾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는 예배를 드려야 하는 것은 알지만, 그 대상을 바로 찾지 못해 마지막 순간에 낭패를 당하는 사람들이 많을 것입니다.

예배의 대상은 누구입니까? 성경은 분명하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십계명 제 1, 2계명은 우리가 섬겨할 예배의 대상을 말하고, 또 예배하는 방법을 말해 줍니다.
"너는 나 외에는 다른 신들을 네게 있게 말지니라"
"너를 위하여 새긴 우상을 만들지 말고, 또 위로 하늘에 있는 것이나, 아래도 땅에 있는 것이나, 땅 아래 물 속에 있는 것의 아무 형상이든지 만들지 말며, 그것들에게 절하지 말며, 그것들을 섬기지 말라. 나 여호와 너의 하나님은 질투하는 하나님인즉 나를 미워하는 자의 죄를 갚되, 아비로부터 아들에게로 삼 사대까지 이르게 하거니와, 나를 사랑하고 내 계명을 지키는 자에게는, 천대까지 은혜를 베푸느니라"

성도 여러분, 하나님이 정말 양보하지 않으시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절대적인 하나님의 자리입니다.
(사 42:8)에 『나는 여호와니 이는 내 이름이라 나는 내 영광을 다른 자에게, 내 찬송을 우상에게 주지 아니하리라』

이 자리에 오늘 예배를 드리시는 여러분들, 여러분은 항상 여러분의 예배의 대상을 바로 알고 예배드리시는 분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 드렸는데도 받지 않았다면?

그러나 우리가 이 시간, 이 예배의 자리에 나온 것으로 모든 것이 다 끝난 것은 아닙니다. 내가 이 자리에 나왔다는 것만으로 하나님이 예배를 받으시는 것은 아니란 말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께 예배를 드렸다고 생각하는데 하나님은 받으시지 않았다고 한다면 그것은 참 어처구니없는 일입니다. 우리는 이 시간 조금 더 심각할 필요가 있습니다. 만약 우리의 이 오해, 즉 나는 예배를 드렸다고 생각하는데 하나님은 받으시지 않았고, 우리는 그 사실을 모른 채 그냥 지나친다면 우리도 정말 마지막에 낭패를 당하게 되는 인생이 될 것입니다.

우리가 죽어 주님 앞에 섰습니다. 그런데 주님이 우리를 "모른다"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말합니다. "주님, 농담도 심하시네요, 저를 모르시다뇨? 저는 장산교회에서 주일마다 앞에서 삼분단 다섯째 줄에 앉아 항상 예배를 드렸는데요. 모르시겠어요? 증인도 있습니다. 내 옆에는 매일 김집사가 앉아 예배드렸으니 주님이 한 번 확인해 보시지요?"
그런데 주님의 말씀이 "뭐 네가 나에게 매 주일 예배를 드렸어? 나는 한 번도 너의 예배를 받은 적이 없다"고 말씀하신다면요?

여러분, 예배가 그냥 앉아있다고 드려지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주일을 지키고 예배시간 교회당 의자에 앉아 있는 이상의 것을 항상 생각해야 합니다. 많은 사람이 예배를 드리는 것이 아니라 예배를 견디고 있습니다. 그 중에 30분 설교를 견디는 일이 가장 큰 일인 사람이 많습니다.

오늘 성경 말씀을 보십시오. 하나님께서 그 예배를 받으시는 인생이냐 그렇지 않고 거부하신 인생이냐에 따라 엄청난 결과를 낳습니다. 하나님이 그 드린 예배를 받으시지 않은 자로부터 인류의 최초의 살인자가 나옵니다. 그리고 그 뒤에 그의 인생은 쫓겨다니는 비참한 삶을 살게 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의 삶에서 '예배'가 여러분의 인생을 결정할 수 있음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그 예배에서 삶의 질이 결정됩니다. 개인뿐만 아니라 교회도, 나라도 그렇습니다. 예배가 살아 있는 교회, 비전이 있는 교회입니다. 그 나라의 교회가 아직 예배가 살아 있으면 그 나라는 비전이 있습니다.

요4:23의 말씀에 하나님은 진정한 예배자를 찾고 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아버지께 참으로 예배하는 자들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 때가 오나니 곧 이 때라 아버지께서는 이렇게 자기에게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시느니라"

● 최선의 것으로 드려라!

그러면 이제 어떻게 드리는 예배가 하나님이 받으시는 예배인지 말씀을 받겠습니다.

먼저, 예배는 최선의 것, 가장 귀한 것으로 드려야 합니다.
본문에 나타나는 인류의 시조 아담의 두 아들, 가인과 아벨의 제사를 다시 한 번 생각해 보십시다. 이 둘은 모두 다 각각 하나님께 제사를 드렸습니다. 하나님은 아벨의 제사를 받으셨지만 가인의 제사는 거부하였습니다. 그 이유는 무엇입니까?

먼저, 이들이 드린 제물을 살펴봅시다. 2절에 두 사람의 직업이 나옵니다. 아벨은 양치는 자, 가인은 농사하는 자입니다. 각각 자신의 소산으로 제물을 삼아 하나님께 드렸습니다. 아벨은 양을 제물로 드렸고, 가인은 땅의 소산, 즉 곡식으로 제물 삼아 드렸습니다.
각자 '자기의 소산으로 드렸다.' 거기까지는 두 사람이 다를 바 없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제사에는 분명 다른 것이 하나 있습니다.
3-4절을 유심히 보시기 바랍니다. 아벨은 양의 '첫 새끼'를 드렸지만 가인은 땅의 '첫 소산'이란 말이 없습니다. 성경은 유독 아벨의 제물에만 '첫' 자(字)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가인도 첫 수확을 드렸다면 분명 '첫' 자를 기록하였을 것입니다.

그러면 첫 것이라는 말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구별했다는 것입니다. 정성이 들어있다는 말입니다. 그러나 가인은 그런 정성이 없습니다. 그냥 닥치는 대로 가져와 드린 것입니다. 하나님이 제사 드리는 그 정성, 그 마음을 아시는 것입니다.
여러분, 양의 첫 새끼를 가져오는 것이 쉽겠습니까? 거기에는 주의가 필요합니다. 특별한 관리가 필요합니다. 그리고 더 많은 보살핌이 필요합니다.

여러분, 우리는 예배를 드린다고 할 때, 첫 새끼를 드리듯 드리고 있습니까? 아니면 그냥 닥치는 대로 드립니까? 여러분의 예배는 아벨의 제사입니까 아니면 가인의 제사입니까? 여러분이 예배를 위해 드리는 정성은 어느 정도입니까?

여러분은 바른 예배를 위해 얼마나 준비하고 있습니까? 주일의 예배를 위해 얼마나 준비하십니까?
우리는 예배를 정성껏 준비하여 드려야합니다. 목사는 목사로서 정성을 다해 준비해야 합니다. 예배를 인도하는데 일주일 내내 기도로 준비하고 말씀으로 준비하는 것 보다 중요한 일이 없습니다. 그런데 이 사역을 도외시하고 중요하지 않은 일에 시간을 다 보냅니다. 말씀은 연구하지 않고 정치하는데 가담하거나 개인적인 명예와 야심을 채우기에 급급합니다. 목사가 예배를 버리고 다른 곳에 관심을 가질 때 하나님의 영광은 죽고 그 교회는 망하고 자신도 죽는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예배를 섬기는 찬양대나 기도순서를 맡은 분들이라든지, 안내를 맡은 예배위원들도 다 마찬가지입니다. 그들이 맡은 것은 목사들이 맡은 것과 같이 중요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 짓는 범죄 중에 가장 큰 범죄는 특별한 이유 없이 예배 순서에 있는 자신의 사명을 망각하고 빠지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러한 행동이 하나님 앞에 드리는 예배를 망치기 때문입니다.

우리나라에서 꽤 유명한 교회인데 이 교회에서는 예배에 기도를 맡은 사람은 무조건 일주일에 이틀은 금식 기도를 해야 합니다. 금식을 통해서 인간의 모든 욕심을 다 죽인 모습으로, 온전히 하나님께 바쳐진 제물이 된 모습으로 하나님께 나와서 기도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설교하는 것만큼 중요한 일이 기도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대수롭지 않게 연락도 없이 나오지 않는 것은 하나님 앞에 큰 범죄입니다.(내년에는 연락없이 또 별 사유없이 기도를 인도하지 않는 경우에는 제직 임명에서 제외하는 것을 신중하게 검토할 것입니다. 공예배 기도는 기도문을 써서 하면 된다고 하였습니다.)

찬양대도 마찬가지입니다. 예배 때 찬양대가 찬양을 드리는 것은 요한 계시록 4장에 묘사된 하나님의 보좌를 둘러싸고 있는 네 생물의 사역이며, 24 장로의 사역이며, 천군 천사의 사역과 동일 한 것입니다. 자신들만의 찬양이 아니라 그 찬양을 온 성도l 함께 '아멘'한다는 사실을 기억해야합니다.
안내위원, 헌금위원도 마찬가지입니다. 목사와 같이 바른 예배를 위해 섬기는 자임을 기억하십시오. 그러나 섬기는 일 때문에 예배에 집중하지 못하면 안됩니다. 본인의 예배도 중요한 것입니다.
또 유아실의 자모들도 잘 생각해야 합니다. 아이들이 함께 모여 있으니 조용한 가운데 예배에 집중하기가 힘듭니다. 그렇다고 예배를 포기해서는 안됩니다. 모두가 다 신경 써야 합니다. 어떤 분들은 유아실에서 예배가 잘 드려지지 않으니 아기를 엎고 아래층으로 내려옵니다. 각자의 아기를 지혜롭게 잘 돌아보며 다른 사람의 예배를 방해해서는 안됩니다.
앞으로 방송 시스템을 보완하면 유아실에 많은 배려를 하겠습니다.

예배는 최선을 다해 최고의 것으로 하나님 앞에 드려져야 합니다. 하나님이 그 중심을 보십니다. 우리는 마귀가 이 주일의 정상적인 예배를 파괴시키려는데 주력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예배에 실패하면 삶에서 실패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찬양대는 찬양대대로 무력화시키고 목사는 목사대로 무력화시키고 기도와 안내를 맡은 분들까지 무력화시켜 예배를 엉망으로 만들어 버립니다. 결국 주일 예배를 드리러 왔던 사람들은 만나야할 하나님을 만나지 못하고 떠나가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역사를 살펴보면 예배가 약화되었을 때 교회도 약화되었고 예배를 우습게 여길 때 그 나라의 전성기도 함께 사라져 갔습니다. 그러므로 이 나라를 살리고 애국하는 길이 무엇입니까? 하나님 앞에 예배를 잘 드리는 것입니다. 우리 가정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 앞에 생명을 걸고 예배드리는 일, 이것이 바로 우리 가정이 살고 나라가 살고 교회가 사는 길입니다. 우리 삶의 최우선 순위에 예배를 두고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예배를 가볍게 여기는 사람은 진정한 헌신도 할 수 없습니다. - 마르다와 마리아, 결국 말씀을 귀하게 여기고 예수님의 발아래 무릎을 꿇었던 마리아가 잠시 접대하는 것에 마친 마르다와는 달리 다른 어떤 사람도 할 수 없는 예수님의 장사를 준비하는 귀한 헌신을 하지 않았습니까?

여러분, 예배에서 인생의 질이 달라진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철저하게 예배 중심의 삶을 사시는 여러분이 되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지금 고구마 전도 왕, 김기동 집사의 간증 비디오를 시청하고 있습니다. 그가 어떻게 전도에 그렇게 헌신할 수 있습니까? 그는 3개의 사업체를 가진 사장입니다. 그러나 그에게는 분명한 확신이 있습니다. 그의 1, 3편의 간증의 제목입니다.
"나는 하나님의 일하고 주님은 내 일 하고!"
그는 거의 매일 빠지지 않고 간증을 나갑니다. 그러나 그에게 한 가지 철칙이 있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공예배에는 절대 빠지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는 주일 낮 밤 예배, 수요예배 그리고 금요기도회와 구역예배까지 절대 놓치지 않는 철칙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러면서 얼마나 풍요로운 삶을 살아가고 있습니까? 주님이 그의 일을 다 해주고 있었습니다.

그는 예배를 최대 비중을 두고 사는 사람입니다. 여러분, 예배에 대한 우리의 생각과 행위를 바꾸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복된 인생으로 삶을 살 수 없습니다. 우리가 예배 중심의 삶을 산다고 말할 때 그것은 하나님 중심의 삶이 되는 것입니다.

● 삶이 동반된 예배를 드려라

둘째로, 하나님이 받으시는 예배는 삶이 동반된 예배입니다.
4-5절의 말씀을 보십시다. 하나님이 가인의 제사를 받으실 때는 그 제물만 받으신 것이 아닙니다. 4절은 "여호와께서 아벨과 그 제물은 열납하셨으나"
제물만 열납하신 것이 아니라 아벨도 열납하신 것입니다. 그러면 가인의 제사의 경우를 봅시다. 5절입니다.
"가인과 그 제물은 열납하지 아니하신지라"
가인의 제사 역시, 가인의 제물만 받지 않으신 것이 아니라 가인도 받지 않으신 것입니다. 이 말씀을 통해서 우리는 제물이 아니라 더 근본적인 문제는 사람인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말하자면 가인이 드린 제물은 어쩌다 그렇게 된 것이 아니라 가인이라는 사람 자체가 문제가 있는 것입니다. 7절에서 하나님께서 가인을 꾸짖고 계시는 것을 보십시오.
"네가 선을 행하면 어찌 낯을 들지 못하겠느냐"
가인의 삶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는 선한 일을 행하는 자가 아니라 악한 일을 일삼는 사람입니다. 그런 사람이 제사 때가 되니 안 드릴 수는 없고, 형식은 갖추었지만 그 드리는 제물에서부터 표시가 난 것입니다.
반대로 아벨의 경우는 그의 생활과 제물이 일치하였습니다.
(요일 3:12)에 가인과 아벨을 비교하여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가인 같이 하지 말라 저는 악한 자에게 속하여 그 아우를 죽였으니 어찐 연고로 죽였느뇨 자기의 행위는 악하고 그 아우의 행위는 의로움이니라"

문제는 삶입니다. 하나님은 단지 제물에 눈이 어두운 신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그 제물만을 절대 받으시지 않습니다. 그 사람을 받으시는 것입니다.

지난 주 우리는 '장산비전헌금'을 작정하였습니다. 하나님은 그 헌금만을 절대 받으시지 않습니다. 그 사람을 함께 받으십니다. 모두가 다 정성을 다하여 작정하였습니다. 그 중에 특히 감동적인 작정이 있었습니다. "그렇다! 하나님이 그 사람을 받으신다"는 생각을 하였습니다. 어떤 분의 경우 "어디에서 이런 믿음이 생겼을까?" 저도 도무지 상상이 되지 않았습니다. 그것은 그 사람이 은혜 받았다는 증거이고 믿음이 생겼다는 증거이지요! 가만히 보니 그 사람의 삶이 달라졌습니다. 이전과는 신앙생활이 달라졌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의 삶이 우리의 예배에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치는지 아시겠습니까? 아무리 우리가 경건하게 예배드리는 척해도 우리의 한 주간의 삶이 악을 도모하며 살았다면 그 예배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도 없고 열납되지도 않는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러나 생활 속에서 하나님을 말씀을 붙잡고 산 사람은 그 삶이 이미 하나님 앞에 향기나는 제물로 올려지는 것입니다.

삶이 향기 나는 제물이 된다는 말뜻을 아시겠습니까?
여러분, 이 세상에 하나님 말씀대로 사는 것이 얼마나 어렵습니까? 그러나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믿음으로 사는 것입니다. 어렵고 힘들 때마다 무릎을 꿇게 되고 믿음으로 승리하게 해 달라고 간절히 기도하게 됩니다. 이런 기도를 하나님이 외면하시겠습니까? 그는 생활 속에서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체험하게 됩니다. 이런 체험 속에 한 주간을 산 사람이 오늘 이 예배에 참석을 해 보십시오. 그 사람은 예배당에 들어오면서 은혜를 다 받습니다. 예배는 감격의 눈물로 드려지게 될 것입니다. 선포되어지는 말씀은 지난 한 주에 그가 결단하고 보여 드렸던 그의 신앙을 확인하는 시간이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찬양대의 찬양은 곧 그의 고백이 됩니다.
그는 예배를 마치고 교회당을 나서면서 또 한 주를 기대하게 될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이 받으시는 예배는 삶에서 이어지는 예배입니다.

● 믿음으로 예배를 드려라

하나님이 받으시는 예배는 믿음으로 드리는 예배입니다.
(히11:4)에는 아벨의 제사가 가인과는 달랐던 것이 믿음으로 드린 것에 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믿음으로 아벨은 가인보다 더 나은 제사를 하나님께 드림으로 의로운 자라 하시는 증거를 얻었으니"

우리가 믿음을 이야기할 때 그것은 두 가지 면에서 생각해야합니다. 첫째는 구원에 관계된 믿음입니다. 둘째는 생활 속에 관계된 믿음입니다. 우리는 예배를 드릴 때 이 두 가지가 모두 다 필요한 믿음입니다. 우리가 이 시간 예배 드릴 수 있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대속의 보혈을 믿기 때문입니다. 이미 우리는 예수를 믿고 그 예배에 참예한 자가 되었습니다.
(히 10:19) 『그러므로 형제들아 우리가 예수의 피를 힘입어 성소에 들어갈 담력을 얻었나니』

그러나 또 우리는 예배를 드릴 때마다 그리스도 보혈의 피를 의지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의지할 때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피가 우리를 깨끗게 하시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우리가 죄 사함을 못 받아서 그런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셨습니다. 이미 목욕한 자도 손과 발은 씻는 것입니다.

우리는 매 시간 예배 때마다 주님의 보혈을 의지하고 주님 앞에 나와야 합니다. 그럴 때 우리는 온전한 예배를 드릴 수 있습니다.

우리가 '믿음으로'라는 말을 사용할 때 그것은 의미는 나를 포기한다는 말입니다. "나로서는 아무 것도 할 수 없으니 주님의 것을 전적으로 받아들입니다."라고 고백하는 의미가 바로 '믿음으로'의 의미입니다.

여러분, 예배 순서 순서마다 믿음으로 드리시고 받으시기 바랍니다.
기도를 할 때, 믿음으로 하시기 바랍니다. 믿음으로 기도하지 않으니 기도가 인간의 사설이 됩니다.
찬송을 하실 때, 믿음으로 하시기 바랍니다. 믿음으로 찬송하지 않으니 노래가 되어버립니다.
말씀을 받으실 때, 믿음으로 말씀을 받으시기 바랍니다. 믿음으로 받지 않으니 인간적인 상처와 낙심만 남습니다.
헌금하실 때, 믿음으로 헌금하시기 바랍니다. 믿음으로 하지 않으니 헌금하고도 유익은 없고 시험이 듭니다.


● 예배를 회복합시다

근자에 우리 교회에 예배의 회복이 일어나는 것을 감사합니다.
요사이 우리 교회의 성도들의 예배의 태도가 많이 달라졌습니다. 예배 참석 수에서도 많이 달라지고 있습니다. 주일 낮에는 40명 정도가 더 나오고 있고, 주일 밤에도 오후 예배에서 밤 예배로 전환하고 난 뒤에 30-40명이 더 나오고 있습니다. 새벽기도, 수요일 예배, 그리고 금요 기도회도 확연하게 그 숫자가 달라지고 있습니다. 예배 시간에 모이는 수(數)가 늘어난다는 것은 예배가 의미있게 변하고 있다는 말이고 회복되고 있다는 말입니다.
기회가 주어졌을 때에 함께 회복하시기 바랍니다. 나중에 혼자 회복하려고 하면 더욱 힘들고 어렵습니다.
여러분, 불가피한 경우가 아니면 예배에 빠져서는 안됩니다. 하나님이 어느 집회의 예배를 통하여 여러분을 회복케 하려고 작정했는지 모르지 않습니까? 여러분을 회복케 하는 말씀이 어떤 집회에 선포될지 모르지 않습니까?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예배를 회복하시고 복된 인생으로 사시는 여러분이 되시길 축원합니다. -아 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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