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산교회채널
 가정교회360
 예배생방송

사역의 지경이 넓혀지는 교회

주일오전예배

마리아의 헌신
  • 날짜 :
  • 본문 :
  • 설교자 :
성경본문 및 요약



casttetle.jpg












 



 


 


 


 



 전체보기

제목> 마리아의 헌신
성경> 막14:3-9
찬송> 352, 353장


● 들어가면서

이 자리에 계신 분들 중에는 신앙의 연륜이 다양한 분들이 앉아 있을 것입니다. 이제 막 교회에 나온 분들. 1년, 2년 된 분들. 어릴 때부터 교회에 나오기 시작하여 이제까지 신앙생활을 해 오신 분들.
그런데 우리의 믿음의 행위는 신앙 연차에 따라 구분되는 것은 아닙니다.
1년차- 주일 낮예배, 2년차 - 주일 저녁예배, 3년차- 수요예배, 4년차 새벽기도. 구역예배. 10년차 모두 다 20년 차 안수집사. 이런 것이 아닙니다. 어떤 사람은 모태신앙이라고 하면서도 주일 한 번 지키는 것을 그렇게 힘들어 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어떤 사람은 교회 나오자마자 새벽기도부터 시작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우리는 오늘 이 시간 말씀 앞에서 우리의 신앙 연조는 모두 다 버리고 내가 이 시점에 어떤 신앙 고백적 행위를 주님께 드릴 수 있을까 생각해 보시는 시간이 되기를 바랍니다.

● 본문은?

오늘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말씀의 본문은 예수님의 공생애 사역 중 거의 마지막 때에 일어난 일이었습니다. 내일이면 예루살렘 성으로 들어가실 것이고 수많은 사람들이 거리에 나와 "호산나 호산나"외칠 것입니다. 그리고는 예수님의 고난 주간이 시작될 것입니다.
예수님은 예루살렘에 입성하기 위해 먼저 예루살렘 바로 곁에 있는 베다니라는 마을에 들어가셨습니다. 베다니에는 예수님과 친하게 지냈던 나사로의 집이 있던 곳이었습니다. 베다니에 들어가니 시몬이라는 사람이 잔치를 준비해 놓고 있었습니다. 3절에 시몬을 '문둥이 시몬'이라고 말한 것을 보니 그는 이전에 문둥병자였다가 나은 사람인 것 같습니다. 요21:25에 『예수의 행하신 일이 이 외에도 많으니 만일 낱낱이 기록된다면 이 세상이라도 이 기록된 책을 두기에 부족할 줄 아노라』는 말씀을 보면 이 시몬의 문둥병을 예수님이 고쳐주셨는데 그 구체적인 기록을 성경에 남기지는 않은 듯 보였집니다. 그는 자신의 집으로 예수님을 영접하였습니다. 시몬의 집에서 예수님은 함께 한 사람들과 식사하였는데, 그 때 그 곳에 모인 사람들이 감짝 놀랄만한 한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어떤 한 여인이 예수님께 옥합을 가지고 나아와 깨뜨리더니 예수님의 머리에 붓는 것입니다. 요12:1-8은 이와 동일한 사건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여기에서 마가복음에서 알 수 없는 것들을 보충할 수 있습니다.
이 한 여인이 나사로의 누이 '마리아'라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요한복음에는 향유를 "발에 부었다"고 되어 있습니다. 그것은 머리에 부은 것이 흘러 내렸을 수도 있고 머리에도 붓고 발에도 부었을 수 있을 것입니다.
요한복음은 또 향유를 부었을 뿐 아니라 머리털로 발을 씻었다고 되어 있습니다.

우리는 여기서 마리아가 예수님께 부은 향유를 생각해 봅시다. 성경에는 "매우 값진 향유 곧 순전한 나드 한 옥합"이라고 말합니다.
*순전한- 다른 물질이 섞이지 않은. 당신 포도주에 섞어서 향유를 썼습니다.
*나드- 팔레스틴에서는 자라지 않고 히말라야 산맥이나 인도에서 자라는 특별한 향나무의 뿌리에서 추출한 점액성 액체
*당시의 값어치- 5절. 삼백 데나리온. 한 데나리온은 노동자 하루 품삯. 약 2,000만원
*옥합- 값어치 있는 향유를 담아두는 특별한 그릇.
보통 이런 값어치 있는 향유를 담은 옥합은 어머니가 딸에게 상속으로 전해주는 것으로 결혼을 위해 사용했다고 합니다.

마리아는 이렇게 귀한 것을 예수님의 머리에 부은 것입니다.

오늘 이 시간 하나님게서 이 마리아의 행위를 통해 우리에게 하시는 말씀은 무엇입니까?

● 첫째, 사랑하는 자가 헌신할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즉, 아무나 향유 옥합을 깰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진정으로 사랑하는 자가 향유를 깰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마리아의 이 행위는 많은 사람을 놀라게 했습니다. 마리아의 행위를 보고 4절에 어떤 사람들은 분을 내어 말하기를 "무슨 의사로 이 향유를 허비하였는가?"하고 물었습니다. 다른 복음서를 보면 이 어떤 사람들이란 제자들을 말하는 것이고 그 중심에는 가룟 유다가 들어 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가 그 당시 바로 그 시몬의 집에 있었다면 우리는 무엇이라고 말하며, 어떤 반응이었겠습니까?

정말, 예수님의 발을 씻을 양이면 물 한 대야면 족합니다. 예수님 발 한 번 씻는데 2,000만원을 날려 버린다는 것은 말이 안됩니다. 아무리 예수님이라도 말입니다. 그것은 신앙이라기 보다는 맹신일 수 있을 것입니다. 소위 우리가 말하는 무턱대고 신앙하는 광신자일 수 있습니다.
우리도 그 자리에 있었다면 다른 제자들처럼 분을 내면 말하기를 "차라리 가난한 사람들을 구제하는 것이 더 낫다"라고 말하지 않겠습니까?

우리는 이 마리아의 행위를 제자들이 비난한 것처럼 정말 '허비한 것'인지 아니면 의미 있는 것인지 구별해야 할 것입니다.

우리는 이 마리아에 대해 조금 압니다. 그는 예수님이' 나의 사랑하는 친구'라고까지 말했던 나사로의 누이입니다. 예수님은 이 가족들과 아주 친하게 지냈던 것으로 성경에 나타납니다.
그리고 누가복은 10장에 보니, 마리아는 말씀은 사모하는 여인이었고, 요한복음 11장에 나사로의 부활 사건을 다룬 내용을 보면 그의 언니 마르다와는 달리 말을 아끼는 신중한 여인이었습니다.
우리는 이 마리아의 행위를 비난하기 전에 이 여자가 비상식적인 여자가 아니라면 이 여인이 보여준 행동이 분명 무슨 이유가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접근해야 할 것입니다.
더 나아가서 다른 사람이 예수님께 감히 생각하지 못하는 행위를 이 마리아가 하였을 때 '마리아에게 있어서 예수님은 어떤 존재인가?'를 생각해 보아야 할 것입니다.

그러면, 마리아에게 '예수님은 어떤 분'이라는 말입니까?
- 너무나 사랑하는 또 너무나 사랑하고픈 분 예수님.
너무나 귀하신 분.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이 있다면 그 모든 것을 다하여 그 존귀함을 보존해드리고 싶은 분. 털끝만큼도 고귀하심에 손상이 가서는 안 되는 분.

여러분, 마리아가 보여준 행위를 잘 살펴봅시다.
*발을 씻는다 - 당시, 종들은 주인이 밖을 나갔다 돌아오면 발을 씻겨 주었다고 합니다.
*물 대신 향유를 썼다 - 예수님이 그만큼 존귀하신 분이란 고백입니다.
*머리털로 씻었다 - 머리카락이 여자에게 주는 의미를 생각해 보십시오.
고전11:15에는 "만일 여자가 긴 머리가 있으면 자기에게 영광이 되나니"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손으로 씻지 않고 머리털로 씻었다는 것은 그 행위 속에 '나는 누구이며, 예수님은 누구이시냐'는 마리아 개인적인 신앙고백이 들어 있는 것입니다.
*순전한 나드 한 옥합 - 결혼을 위한 예물이라는 면에서 볼 때, 나 자신을 주님께 드린다는 표시입니다.

이 모든 것을 종합해 보면, "나는 예수님의 종이어도 좋습니다. 그리나 내가 예수님의 종이라고 해서 예수님은 세상의 모든 종들이 주인을 대할 때와 같이 그렇게 해도 되는 분은 아닙니다. 그만큼 예수님은 더 귀한 대우를 받으셔야하는 주인이십니다. 그래서 나는 나의 전부로 주인이신 주님의 발을 씻습니다. 나의 가장 귀한 것을 드려 주님의 발을 씻습니다. 손으로 씻는 것조차 불경한 행동인 것 같아 나의 머리카락으로 주님을 씻습니다."라는 고백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 얼마나 숭고한 사랑의 고백입니까? 신(神)을 향한 숭고한 사랑의 고백입니다.

그래서, 마리아의 이 행위는 비난받을 행위가 아니라 사랑의 숭고한 고백입니다. 그는 주님을 남달리 사랑하였습니다. 그녀의 사랑의 표현입니다. 마리아의 헌신은 주님 사랑 때문에 이루어진 것입니다.

사랑하는 사람이 헌신하게 되는 것입니다.

(잠 8:17) 『나를 사랑하는 자들이 나의 사랑을 입으며 나를 간절히 찾는 자가 나를 만날 것이니라』
(요 14:21) 『나의 계명을 가지고 지키는 자라야 나를 사랑하는 자니 나를 사랑하는 자는 내 아버지께 사랑을 받을 것이요 나도 그를 사랑하여 그에게 나를 나타내리라』

● 둘째로, 헌신의 때를 아는 사람이 헌신합니다.

헌신의 때를 아는 사람이 향유 옥합을 깨뜨린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마리아가 왜 다른 사람이 하지 못하는 이런 행동을 할 수 있었는지 한 번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그것은 그녀가 예수님을 그렇게 사랑하기에 이른 것은 예수님을 알아가는 과정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누가복음 10장에 보면, 예수님이 나사로의 집을 방문하셨습니다. 나사로와 그의 누이들은 반갑게 예수님을 맞이하였을 것입니다. 그런데 언니 마르다는 예수님을 영접하였지만 예수님을 접대하는 일에 그의 모든 정신을 다 쏟았습니다. 그러나 마리아는 언니와는 달리 예수님의 발 아래서 예수님의 말씀을 경청하는 여인이었습니다. 그것이 의미하는 바는 예수님의 말씀을 한 말씀도 놓치지 않으려는 영적인 욕심을 가진 여인이었다는 말입니다.

여러분, 아십니까? 예수님이 그렇게 제자들에게 자신의 고난과 부활을 말씀하셔도 제자들이 깨닫지 못한 사실을 말입니다. 성경에 나타나 것으로 세 번이나 예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제자들은 깨닫지 못하였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발아래 무릎을 꿇은 이 여인은 예수님의 고난을 이해한 듯합니다. 분명한 증거를 성경이 말하는 것은 아니지만 저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마리아가 이렇게까지 행동을 나타내었을 때에는 분명 '때를 직감하였기 때문일 것이다'라는 사실입니다.
마리아는 예수님의 고난의 때가 얼마 남지 않았음을 그의 동네 베다니에 예수님이 이르렀을 때에 직감하였던 것입니다. 베다니는 예루살렘 건너편 마을이었습니다. 사실 그녀의 예상대로 예수님은 곧 고난주간을 시작하시게 되었습니다.

더 이상 헌신의 기회가 없을지 모를 일이었습니다. 그녀는 지금이 그녀가 드릴 수 있는 헌신의 때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리하여 더 이상 미룰 수가 없었습니다. 그리고 다른 사람의 눈과 귀를 의식할 필요도 없었습니다. 그런 것을 따지다간 더 이상 기회가 주어지지 않을 것 같았기 때문입니다.

성도 여러분, 값진 헌신을 하는 사람은 헌신의 때를 압니다. 때를 놓치지 않습니다. 값지고 아름다운 헌신을 하시는 여럽분이 되시길 바랍니다.

● 셋째, 자기도 생각하지 못한 놀라운 헌신으로 드려집니다.

즉, 우리가 깨뜨린 옥합은 삼 십배, 육 십배, 백 배의 결실로 하나님 앞에 영광 돌려진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마리아의 헌신이 사랑의 고백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이해될 듯하면서도 이해되지 않는 부분이 있을 것입니다. 우리의 생각에는 그래도 순전한 나드 한 근을 예수님의 발에 다 쏟아 붓는 것은 너무한 것이 아니냐라는 인간적인 계산이 들기 때문입니다. 가룟유다가 그런 생각을 한 것처럼 말입니다. 예수님에게 따듯한 물을 가져와 씻었다고 해도 그 정도면 정성이 긷든 것 같고, 또 그 정도로 만족할 수 없더면 물에다 향수를 뿌려 냄새를 제거하도록 하면 그 정도라도 정말 잘 한 것 같지 않은데.
아무리 예수님을 사랑했다고 해도 한 순간 2,000만원을 날려버렸다는 생각은 너무한 것 같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이 마리아의 행위를 칭찬하면 받으셨습니다. 우리가 이 마리아가 잘못한 것이라고 한다면 예수님의 판단도 잘못된 것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말씀 중에 우리가 유의해 보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8절 말씀입니다. "저가 힘을 다하여 내 몸에 향유를 부어 내 장사를 준비하였느니라"

저는 마리아가 예수님의 장사를 의도적으로 준비했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그녀는 단지 그가 드릴 수 있는 기회가 더 이상 오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였을 것입니다. 그래서 더 미룰 수 없이 그의 행동의 고백을 드린 것입니다. 그런데 그 사랑의 헌신은 생각지도 못한 결과를 가져왔습니다. 마리아도 자신이 행한 행위가 이런 의미가 될 지는 잘 알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너무 위대한 사건으로 이 행위를 받으셨습니다.

고난의 길을 앞 두고 예수님은 외로워셨을 것입니다. 물론 그 길을 묵묵히 가시지만 말입니다.
성도 여러분, 예수님의 고난을 앞두고, 예수님의 죽음을 앞두고, 예수님의 장사를 준비한 사람이 어디 있습니까? 제자들은 예수님이 죽는다는 사실 그 자체를 부인했고, 니고데모와 아리마대 사람 요셉과 같은 사람은 예수님이 죽고 난 뒤에 장사하는 일에 나서기 시작했습니다.
아무도 알지 못하는 이 고난의 길을 외롭게 홀로 걸어가고 있는 예수님. 그런데 한 여인이 너무나 아름다운 헌신을 하는 것입니다. 그것을 주님은 자신의 장사 준비로 받으셨습니다.

그리하여 말씀하시기를 "온 천하에 어디서든지 복음이 전파되는 곳에는 이 여자의 행한 일도 말하여 저를 기념하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마산에서 교역할 때 조금숙 집사라는 분이 있었습니다. 이 분의 헌신이 항상 나의 마음에 남아 있었습니다. 부산으로 섬기는 교회를 이동해서 새가족 성경공부를 가르치다가 헌신에 관한 내용이 나와 이 조 집사님의 이야기를 하였더니 마침 그 새가족 중에 이 조 집사님의의 시누이가 전도를 받고 새가족공부를 하고 있었습니다. 이 분이 그 조 집사님께 전화를 해 "이 목사님이 언니 이야기를 하던데"하며 말하였나 봅니다. 당장 이 조 집사님으로부터 전화가 걸려 왔습니다. "목사님 제가 뭐 한게 있다고 목사님의 예화 거리가 된다는 말입니까? 부끄럽습니다."하고 말하였습니다.
그러나 그 집사님은 적은 헌신이었는지 모르지만 저에게는 너무나 인상깊은 헌신이었습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가 행한 주님의 헌신의 행위가 우리도 생각하지 못한 너무나 큰 일을 이루게 된다는 사실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정말 주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주의 교회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복음 사업을 위한 마음으로 한 번 결단하고 헌신하면, 그것이 다른 사람이 볼 때는 별 것 아닐 수 있지만, 그 결과는 우리도 예측할 수 없는 엄청난 영광으로 하나님께 드려질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 오병이어를 드리는 정신으로

사람을 의식하지 않고 주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드린 헌신은 그것이 크든 작든 간에, 많든 적든 간에 그것을 받으신 우리 주님은 크게 영광을 받으시고 그것을 통하여 오병이어의 기적을 일으키실 것입니다.
'오병이어' 사실 그것 자체는 별 것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한 소년이 자기의 배고픔을 감수하면서 주님께 드린 헌신이 있었던 것입니다. 제자들조차 그것을 받아놓고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이 많은 사람에게 얼마나 되겠삽나이까"(요6:9)
그러나 우리 주님은 그것을 기쁘게 받으시고 축사하시고 나누어주라고 하셨습니다. 그 결과 오 천명을 먹고도 남음이 있었던 것입니다.

주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헌신하시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 아멘 -

주일오전예배 목록
번호 설교제목 설교자 설교본문 설교일자 조회
225 "다윗 대 골리앗" 사무엘상 17장:31~50 (구약 436p) 2006.03_12 1004
224 신령과 진정(진리)의 예배 요한복음 4:21-24 2006.03.5 940
223 사울의 생애와 다윗의 생애 사무엘상15:17~29 06.02.19 882
222 사울의 생애와 다윗의 생애 사무엘상15:17~29 06.02.19 1684
221 영적성장의 목표 에베소서 4:11~16 (신약314) 06.02.12 606
220 "법궤 실은 벧세매스 암소처럼" 사무엘상 6:10-21(구약416p) 2006.02.05 956
219 "축복의 가정과 저주의 가정" 사무엘상 2:18-26(구약411p) 2006.01.29 1099
218 "보내는 선교사가 해야 할 것" 로마서 15:22-33(신약261p) 2005.01.22 1010
217 진정한 예배자입니까? 요한복음 4:19-26(신약149) 2006.01.15 840
216 "새사람" 에베소서 4:17-32(신약314p) 2006.01.01 768
215 소망의 임마누엘 성취의 예수 akxo 1:18-23 2005.12.25 994
214 버리고 갑시다 창35:1-5 2005.12.18 725
213 로마교회안의 사람들 로마서 16:1-16 (신약262p) 2005.12.11 782
212 "교회의 영광" 에베소서 1:20 - 23(신약311p) 2005.12.4 561
211 목 마르다. 다 이루었다 요 19:28-30 2005.11.27 1035
게시물 검색

장산교회채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