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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스바와 에벤에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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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및 요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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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미스바와 에벤에셀
성경> 삼상7:1-14
찬송> 495, 494

●사사시대 말기
오늘 말씀은 성경의 역사 중에서 사사시대의 말기 왕정시대가 열리기 바로 전 사무엘이 활동하던 시기의 이야기입니다. 우리는 이전 ‘사사시대와 오늘’이라는 말씀의 제목으로 말씀을 받을 때 사사시대의 특징을 한마디로 요약하는 성경 구절이 “그 때에는 이스라엘에 왕이 없으므로 사람마다 자기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였더라”(삿 17:6)라고 하였습니다.

사무엘은 이 사사시대를 마감해야하는 마지막 사사였습니다. 사무엘 바로 앞의 엘리 제사장 역시 사사였지만 그는 실패한 사사였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사무엘은 왕이 없어 사람들이 자기 소견에 옳은 대로 즉 마음대로 행하던 시대를 잘 마무리해서 진정한 왕이 세워지는 시대를 열어야 하는 역사적인 사명을 가진 사람이었습니다.

사람들이 자기 마음대로 행하던 시대를 마감한다는 것은 바꾸어 말하면 하나님께로 마음을 다시 돌리는 시대가 온다는 말입니다. 자기 마음대로 행한다는 것은 자기가 왕이라는 말입니다. 그러나 이제 그들 자신이 왕이 아니라 하나님이 그들의 왕으로 다시 회복되어야 했습니다.
바로 이 역사를 위해 사무엘은 부름을 받은 것입니다.

이스라엘에는 하나님 자신이 이스라엘과 함께 하며 다스리시는 왕임을 나타내는 상징물이 있었습니다. 무엇입니까? 성막이며 그 안에 있는 언약궤입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은 이 언약궤를 약 20년 전에 블레셋과 전쟁하다가 빼앗겨 버렸습니다. 전쟁에서 이긴 블레셋이 이스라엘 신의 상징물인 언약궤를 빼앗아 자기 나라에 두었더니 자기 나라에 끊임없이 재앙이 닥치기 시작합니다. 겁을 먹은 블레셋 사람들은 다시 이 언약궤를 이스라엘로 보내 버립니다. 이스라엘로 언약궤가 돌아오지만 이스라엘 사람들이 언약궤를 잘못 취급하는 바람에 이스라엘도 화를 당하게 됩니다.
하나님의 임재와 권위의 상징이었던 언약궤가 애물단지가 되어버립니다. 사람들은 더 이상 언약궤가 자기와 함께 있는 것을 귀하게 여기지 않을 뿐 아니라 오히려 피하게 되었습니다. 결국 언약궤는 기랏여아림이라는 곳으로 보내지고 그 곳에서 20년 동안 사람의 관심 밖에 있게 됩니다.

1. 은혜를 사모하는 때
7:2의 말씀을 보십시오. 약 20년의 세월 동안 하나님의 언약궤에 무관심하던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변화가 일어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 온 족속들이 여호와를 사모하니라”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을 기억하였다는 말입니다. 그들은 다시 하나님의 필요를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은혜를 구하고 있습니다.
물론 어느 날 갑자기 ‘하나님의 은혜가 사모 되더라’ 이런 경우는 드뭅니다. 물론 그럴 수 있습니다만 그럴 경우에도 자세히 따지고 보면 어떤 이유들이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도 세월이 지나다보니 ‘어느 날 하나님의 은혜를 사모하게 되었다’는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하나님 없이 지나는 세월은 사람들의 마음을 더욱 강퍅하게 만들 수 있습니다.

그러면 이스라엘 백성들은 왜 하나님께 마음을 돌리게 되었겠습니까?
먼저, 20년간 계속되어져 온 블레셋의 침략에 지쳤을 것이 틀림없습니다. 블레셋은 삼손이 사사로 활약하던 시대부터 기회만 있으면 이스라엘을 침략해 약탈하였습니다. 지금도 20년 간 계속 블레셋의 위세에 눌려 살고 있습니다.
그런데 20년 동안 이렇게 살아오다 어느 날 갑자기 하나님을 사모하게 되었겠습니까?
여기에는 사무엘의 역할이 분명 있었을 것입니다.
사무엘은 엘리 제사장의 시대에 어린 나이로 부름을 받아 한 시대의 영적인 흑암을 깨우기 위해 준비되었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엘리 제사장이 죽은 후 서서히 이스라엘의 영적인 지도자로 세워지기 시작하였습니다. 사람들은 그의 말에 하나님의 권위가 있음을 알았습니다. (삼상3:19-21)

사무엘은 엘리 제사장이 죽고 난 뒤 20년간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영적으로 회복되어야 할 것에 대해 외쳤습니다.
“당신들이 왜 이렇게 비참하게 살아야 합니까? 우리는 본래 이 땅에서 왕 노릇하기 위해 하나님의 부름을 받았고 우리의 조상들은 그 약속을 믿고 이 땅에 와서 정복하고 살았습니다. 그런데 이제 우리가 다스려 섬김을 받아야할 주위 백성들에게 이렇게 당하고 있는 것입니까?”

이렇게 외치며 가르치기를 20년, 이제야 이스라엘 백성들의 마음속에 하나님의 은혜를 사모하는 마음이 일어나기 시작한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의 심령 속에 하나님의 은혜가 사모 되어야 합니다.
저는 오늘 이 때가 바로 우리 속에 이런 영적 갈망이 나타나야 되는 때라고 믿습니다. 우리는 더 이상 세상의 악한 영들에게 사로 잡혀 우리의 생각을 내어주는 시대를 마감해야합니다. 우리는 진정 하나님의 백성입니까? 그러면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를 누리며 하나님의 말씀으로 살아야합니다.

여러분 속에 고통이 있고, 문제가 있고, 어려움이 있다면, 여러분이 하나님의 은혜를 사모해야하는 때입니다. 혹 그런 상황 속에서도 하나님의 은혜를 기대하지 않는 사람이 있다면 더욱 큰 문제입니다. 더 큰 자극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2주전에 ‘야곱의 영적 회복’이라는 말씀을 드렸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세겜 땅에서 빨리 나와 벧엘을 회복하시기 바랍니다. 그 은혜를 회복하지 않는다면 하나님은 그냥 계시지 않으실 것입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이런 현상들을 우리가 맞이하고 어떻게 대처해야하느냐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 때를 잘 보내지 않으면 우리는 더욱 어려워지게 됩니다. 야곱이 벧엘을 회복하고 더욱 복되게 된 사실을 기억하실 것입니다. 그러나 만약 야곱이 그 때를 그냥 지나쳤다면 그는 영적으로 더욱 무디어졌을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은혜를 받을 만한 때에 받으시기 바랍니다. 주님이 가까이 계신 것으로 여겨질 때에 그분의 이름을 부르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에게 이런 징조들이 나타나면 여러분에게 영적으로 특별한 때입니다.
․ 이전에 귀에 들어오지 않던 말씀이 들어오기 시작한다.
․ 기도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 이제까지 즐기던 것들이 무의미하게 여겨진다.
․ 말씀과 기도에 눈물이 난다.

그러나 사실 이런 현상들이 없는 사람이 더욱 심각하게 받아야하는 말씀입니다.

2. 미스바의 회개
사무엘은 하나님을 사모하는 백성들에게 진정 회복되는 길을 가르쳐 줍니다.

1)우상을 제거하는 것입니다.
3절 말씀입니다.
“사무엘이 이스라엘 온 족속에게 일러 가로되 너희가 전심으로 여호와께 돌아오려거든 이방 신들과 아스다롯을 너희 중에서 제하고 너희 마음을 여호와께로 향하여 그만 섬기라 너희를 블레셋 사람의 손에서 건져내시리라”(삼상7:3)

본절에 이스라엘이 블레셋에게 고통을 받는 이유가 너무 분명히 나타나 있습니다. 그것은 그들이 여호와 하나님께 향해야할 마음을 이방신들에게로 돌려 살았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사무엘의 촉구를 즉각 실행에 옮겼습니다. 4절.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에게 버려야할 우상은 무엇입니까?
성경에서 하나님이 가장 집요하게 말씀하시는 것이 무엇이냐면 바로 이 우상 숭배 문제입니다.
그런데 우상 숭배하지 말라고 하면 새긴 형상의 우상에 대해 절하지 않으면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진정한 우상 숭배의 문제는 그것보다 깊은 것입니다.
골3:5에 “탐심은 곧 우상 숭배”라고 말씀합니다. 이 말씀은 우리가 어떤 형상을 만들어 놓고 섬기는 것만 우상 숭배가 아니라 우리의 마음을 다른 것에 빼앗기는 것도 우상 숭배라는 말입니다. 곧 하나님은 자신에게 마음을 두지 않고 다른 것에 마음을 두는 것을 다 우상 숭배라고 보시는 것입니다. 우리의 마음 속에 하나님 외에 다른 것이 더 사모되기 시작하면 그것은 다 우상 숭배입니다.

여러분, 여러분 각 자의 우상은 무엇인지 다시 한 번 살펴보시기 바랍니다.

저는 요사이 꽃을 보는 시간이 많아 졌습니다. 꽃이 언제부터인가 좋아졌습니다. 집에 몇몇 핀 꽃이 있었는데 다 져 버렸습니다. 그래서 아쉬워 어디 꽃대가 올라오는 것이 없는지 몇 날을 살펴보다가 지난 주간에는 석대에 나가서 특별해 보이는 꽃을 두 종류를 사다가 옮겨 심었습니다. 얼마나 좋은지!
그런데 저 자신을 한 번 생각해 보았습니다. 내가 왜 이렇게 이전에 그렇지 않았는데 꽃을 좋아할까? 그러면서 농담 반으로 ‘우리 집에서 아무도 나에게 관심을 안 주니 나도 마음 줄 곳이 없어 꽃에게 마음을 준다’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정말 꽃을 들여다보는 시간이 많아졌습니다. 집에 들어가면 베란다로 눈이 향하고 꽃은 먼저 보게 됩니다.(어떤 집사님이 외국에 출장 가서 전화를 했더랍니다. 평소에 집밖을 나가면 전화 한 번 안하는 사람이 그래도 외국에 갔다고 전화를 다하구나 생각하며 부인 집사님이 흐뭇하게 말을 받았는데 전화 수화기에서 나오는 말이 “난에 물 줬나?” “그래 그라면 됐다”하고 딸그락 전화가 끊어 졌답니다. 저도 그렇게 되는 것이 아닌가? 생각해 보았습니다)

그런데 좀 더 생각해 보니 ‘꽃도 우상이 될 수 있구나!’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러나 ‘어찌 꽃을 좋아하는 것이 잘못이겠는가? 그러면 나에게 꽃이 우상이 아니라는 기준은 어디에 있는가?’ 생각하다가 이런 답을 얻었습니다.
‘내가 꽃을 보고 하나님을 사랑하거나 찬양하지 않는다면 꽃도 우상이다’

여러분, 사라들이 돌에도 미치는데 꽃에 어찌 미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의 삶에 우상을 제거하시기 바랍니다.

2)회복되는 길은 기도해야 하는 것입니다.
사무엘은 이스라엘 백성이 우상을 제거하자 미스바라는 곳으로 다 모여라고 합니다.(미스바라는 곳은 파숫군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곳에서 기도회를 인도하겠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미스바에 모였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그곳에서 하나님께 “우리가 범죄하였습니다”라고 외쳤습니다. 회개한 것입니다.

3)오직 하나님만을 의지하겠다는 고백입니다.
성도 여러분, 이스라엘 백성들이 우상을 제거하고 미스바에 기도회로 모였다는 것은 외적으로 블레셋에게 어떤 모습으로 비쳤겠는가를 생각해 보아야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근 20년 정도 섬기던 자기네 나라의 신인 아스다롯을 버리기 시작합니다.

여러분, 일본이 한국의 기독교를 말살시키려 했을 때 어떤 정책을 썼습니까? 바로 동방요배나 신사참배를 강요하지 않았습니까? 기독교인들의 머리 속에 자리 잡고 있는 신(神) 대신에 자신들의 민족 신을 불어 넣어 민족의식을 말살시키려 한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자신들이 섬기던 신을 버리고 블레셋의 신을 섬기면 지배국에서는 많은 부분에서 근심을 덜게 됩니다. 그것은 자기들의 의식에 동화되었다 즉 민족의식이 희박해졌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그들 민족 고유의 신을 다시 찾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독립에 대한 의지가 살아난다는 말입니다.
또, 그들이 갑자기 한 곳에 모여 기도회를 가진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블레셋은 어떤 생각을 하였겠습니까? 이들이 모여 드디어 집단행동에 들어가는구나 하고 생각하지 않았겠습니까?

7절 말씀을 보십시오. 블레셋 사람들이 이제 가만있지 않습니다. 그들은 이렇게 모인 이스라엘을 한꺼번에 치기 위해 군사를 동원하여 올라옵니다.

그런데 성도 여러분, 이스라엘 백성의 편에서 보여준 우상 제거와 기도는 ‘우리가 다른 어떤 것도 의지하지 않고 하나님만을 의지 하겠습니다’라는 고백인 것입니다.
우상을 제거했다는 말은 블레셋에게 더 이상 예속되지 않고 블레셋 식의 삶을 살지 않겠다는 말입니다. 블레셋 사람들의 생각과 방식을 따르지 않겠다는 말입니다. 기도한다는 말은 하나님만을 의지한다는 말입니다.

그 결과가 어떻습니까? 이스라엘의 대승입니다. 블레셋이 쳐들어온다는 소식을 듣던 이스라엘이 겁을 먹고 떨다가 하나님의 역사로 상황이 역전되어 버립니다. 하나님이 사무엘과 이스라엘 백성의 기도를 들으시고 블레셋 진영에 큰 우뢰를 발하시어 그들을 혼란하게 한 틈을 타서 이스라엘이 기습 공격을 한 것입니다. 이스라엘은 전혀 예상하지 않았던 승리를 얻습니다.

이스라엘은 20년 전에 이 블레셋과 싸워 참패를 당했습니다. 군사 3만 4천이 죽었고 엘리 제사장의 아들 홉니와 비느하스도 죽었습니다. 그런데 오히려 도무지 상대가 되지 않는 싸움에서는 극적으로 이긴 것입니다.
이들의 승리의 원인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바로 우상을 버린 것과 기도의 힘이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도 이제 하나님의 은혜를 사모하며 우리의 우상을 버립시다. “하나님 내가 하나님 외에 더 귀하게 여기고, 더 많이 생각하고, 더 많이 애썼고, 더 많이 시간을 투자했고, 더 많이 물질을 드렸던 그 모든 우상을 버립니다.” “이스라엘이 블레셋을 동경해 블레셋 식의 삶을 살다가 모든 것을 버리는 것처럼 세상 사람들의 방식과 사고로 살아 보려한 모든 것을 버리며, 오직 믿고 의지하고 따라야 할 분은 하나님 밖에 없음을 고백합니다.”
“그리고 이제 주님 앞에 나의 무릎을 꿇습니다.”

여러분, 또 이제 기도해야합니다. 새벽기도를 다시 시작하십시오. 금요심야기도회에 참여하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이 적어도 금요심야기도회 시간에 기도하는 것보다 더 생산적인 곳이나 생산적인 것으로 시간을 보낸다면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렇지 못하면 기도하러 나오시기 바랍니다. 고작 2시간 정도입니다. 여러분이 몇 시에 잠자리에 드는지 모르겠지만 제가 지난 금요기도회 마치고 집으로 들어가면서 아파트 건너편 동을 바라보면서 불이 켜진 집들을 대강 세어 보았습니다. 반은 불이 켜졌더라구요. 제가 기도회 마치고 인사하고 집에 들어가는 시간은 12시입니다.
여러분의 집에서 여러분이 생산적인 일로 시간을 12시까지 보내지 않는다면 기도회 오시기 바랍니다. 아니 더 생산적인 것으로 보낸다고 하더라도 이것만큼 가장 생산적인 일이 없다고 믿으시고 기도회에 오시기 바랍니다.

이제는 기도해야할 때입니다. 일 나고 자리 펴 울며 고쳐달라고 하지 말고, 일나기 전에 웃음으로 감사의 노래를 기도로 부르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심야기도회 나오지 못할 정도로 일찍 주무시는 분은 당연히 일찍 일어나시는 분들입니다. 그러면 새벽기도회에 나오시기 바랍니다.
이것도 저것도 안하는 분들은 도대체 어떤 사람입니까?

3. 에벤에셀 - 기념비를 세워라.
이스라엘 백성들이 블레셋을 추격하여 몰아낼 수 있는 데까지 몰아내고 그곳에 돌로 기념비를 세웠습니다. 바로 그곳이 ‘에벤에셀’인 것입니다. 말뜻은 ‘도움의 돌’이라는 뜻이고,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이 여기까지 자신들을 도우셨음을 뜻하는 의미의 경계석으로 이 돌을 세웠습니다. 그 이후 이곳의 지명은 에벤에셀이 되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에벤에셀을 만들어 세운 것을 통해 우리는 더욱 중요한 영적 원리를 깨닫게 됩니다.

1)일을 마친 후 기도는 더욱 중요합니다.
일을 시작하기 전에 사람들은 기도합니다. 그러나 일을 마친 후에 기도를 잘 하지 않습니다. 이런 우리의 모습을 통해 우리가 얼마나 이기적인지 알 수 있습니다. 일을 시작하기 전에는 어떻게 될지 알 수가 없으니 하나님께 매어 달립니다. 그러나 일을 이루고 난 뒤에는 모든 것이 끝났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요사이는 기업체들 마다 물건을 하나 팔고 나면 얼마나 a/s를 잘 해 주는지 모릅니다. 심지어 물건을 반품하더라도 전액 환불을 해주고 귀하의 취향에 맞는 물건을 생산하지 못해 죄송하다고 말합니다. 기업의 이런 전략은 지금 당장에만 장사하는 것이 아니라는 계산이 깔려 있는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진정한 믿음은 일을 마치고 난 뒤에 나타나는 우리의 행위로 결정된다는 사실을 기억 하십시오. 여러분 역시 한 번 기도하고 말 것이 아니지 않습니까?
예)눅 17장에 예수님이 10명의 문둥병자를 고쳐 주셨는데 사마리아인 한 사람만 와서 감사하다고 했을 때 예수님은 나머지 아홉은 어디 있느냐고 물으셨습니다. 결과 후에 감사를 강조하셨습니다.
뿐만 아니라 나은 문둥병자에게는 모세의 정한 예물을 드려라고 말씀하시며 그의 감사를 분명히 나타낼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마지막 나타내는 행동이 그의 믿음인 것입니다.

2)에벤에셀의 기념비는 자신의 세대에 또 그와 같은 실수를 범하지 않기 위한 조치입니다.
그들은 자신의 대에 나타난 하나님의 역사를 보며 다시는 실수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실제로 그랬습니다. 그들은 사무엘 시대와 더불어 더 이상 블레셋에게 욕을 당하지 않았습니다.

3)뿐만 아니라 다음 세대를 위한 교훈입니다.
오고 오는 세대에 하나님의 역사를 기억하게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더 이상 다음 세대들이 이런 오류를 범하지 않도록 하는 것입니다. 우리 교회는 10년 후, 20년 후에 더욱 좋은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 지금 우리가 더 좋은 신앙의 기념비를 남겨야 하는 것입니다.
세상의 어떤 단체든지 그 단체에 흐르는 정신적인 맥이 있습니다. 그것은 그 단체의 구성원들의 성향이 만들어내는 것입니다. 소위 우리가 말할 때 “질이 좋다, 질이 안 좋다”로 말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교회도 그 질이 있습니다.(박목사 이야기) 그 질이 안 좋은 것은 결단하고 바꾸어야 합니다. 대수술을 하고서라도 바꾸어야 합니다. 우리 가운데도 나도 모르게 베여진 고질적인 영적 악습이 있을 수 있습니다. 이것을 고쳐야 합니다. 좋은 전통을 세워 후대에게 전해야 합니다.
제가 처음 와서 느낀 것은 장산교회는 순수하고 아름다운 면이 많은 교회입니다. 그러나 고칠 것도 있는 교회입니다. 우리 자녀들의 신앙생활의 모습은 곧 우리의 모습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우리가 처음 약속했던 책임은 우리의 감정이나 형편에 관계없이 지켜나가야 합니다.

제가 와서 우리 학생들의 예배 태도가 잘못 되었다고 말했습니다. 그것은 교역자들의 책임이며 교사들의 책임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의 일차적인 책임은 우리 모두에게 있습니다. 그들의 모습이 곧 우리의 모습입니다.
여름 수련회를 하기 전에 제가 강도사님에게 말씀을 드렸습니다. 아이들을 좀 강하게 훈련시켜라고 말입니다. 이제까지 너무 자기네 마음대로였던 것 같아 좀 더 잡아야할 필요가 있는 것으로 파악되었습니다. 그러나 이제까지 있는 습성들이 하루아침에 고쳐지지 않습니다. 우리가 인내하면서 이들을 지도해야하고 또 우리 먼저 모범을 보여야 합니다.
(시간이 되면 지난 목요일 ‘대중음악 세미나’ 언급 - 기장의 은성교회 아이들 너무 훈련이 잘 되어 있어)
우선 우리가 잘 해야 합니다. 그것을 기념비로 남겨 주어야 합니다.

●미스바와 에벤에셀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스라엘 백성들은 미스바에서 회개하여 영적 회복을 이루고, 에벤에셀에서 하나님의 역사의 기념비를 세웠습니다. 우리에게도 영적인 회복을 기대합니다. 그리고 우리의 당대와 후대를 위해 남길 아름다운 믿음의 기념비를 세웁시다.
우리 교회와 각 성도의 가정에 미스바의 움직임이 일어나고 에벤에셀의 은혜를 받으시는 여러분이 되시길 축원합니다. - 아 멘 - (주후 2002. 9.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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