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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함으로 드리는 헌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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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및 요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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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감사함으로 드리는 헌금
성경> 고후9:6-11
찬송> 219, 71장

● 헌금 설교하는 목사

어떤 성도님이 김덕신 목사님에게 "나는 목사님을 좋아해요"라고 말했습니다. 목사가 좋아한다는 말이 나쁘게 들릴 리가 만무합니다. 그러나 어떤 점에서 좋아하시는지 궁금해서 웃으면서 물어보았습니다.
"제가 어떤 점에서 좋습니까?"
그 사람이 말하기를 "목사님은 일년 내내 주일마다 설교하실 때 헌금에 대해서 별로 강조하시지 않으니 그것이 좋습니다." 그때 목사님은 정색을 하면서 "그런 이유라면 나는 형제는 좋아하는 목사가 될 지 모르지만 하나님은 좋아하시지 않는 목사가 되겠네요!"하고 말했다는 것입니다.

사실 성경은 물질 사용 문제에 대해 생각 외로 많은 부분 가르치고 있고 그것들은 자연히 헌금과 연관이 됩니다.

저는 이전에 오후 예배 시간이었는지 잘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만, 일 년에 상반기, 하반기 나누어서 두 번은 헌금에 대한 설교를 하겠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헌금 설교를 한다는 것은 항상 조심스런 면이 없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현대의 교회들과 목사님들이 헌금을 강요한다는 비판이 세상 가운데 있고 또 교회 가기를 결단하지 못하는 사람가운데는 역시 생돈을 교회에 날리는 것이 아깝다는 생각이 있기 때문입니다. 지난 주 전도 간증 비디오에서도 본 것처럼 김기동 집사도 교회가 헌금을 강요하여 정말 '원가 없는 장사를 하는 곳이다'는 부정적인 생각을 하게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또 우리 가운데는 생활이 넉넉지 못한 사람들이 많고, 오늘 이 시간에는 처음으로 우리 교회를 찾아 와서 예배 드리시는 분들도 있을 수 있다는 생각입니다. 꼭 그런 사람이 있습니다. 교회 잘 안나가다가 한 번 나갔는데 그 때 꼭 때를 맞춘 듯이 헌금 설교를 하는 날을 만나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러나 앞서 김덕신 목사님의 경우처럼 때로는 목사들은 하나님의 뜻이 분명함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마음이 불편하다고 해서 말씀을 전하지 않으면 그것을 직무 유기인 것입니다. 자신의 마음에 꺼려지는 부분이 있다고 해서 실제 하나님이 하시고자 하는 것들을 막아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목사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가감없이, 제대로 전하지 않아서 성도들의 풍성한 삶을 막아 버릴 때도 있습니다.

● 성도를 가난하게 하는 목사

이전 부흥강사로 많이 다녔던 이내용 목사님의 간증입니다.
그 목사님은 이웃 교회와 교세가 거의 똑 같은 교회에 시무하고 있었는데 그 이웃교회와 자신이 시무하는 교회 교인들의 사는 것을 보면 너무나 차이가 나는 것 때문에 항상 마음이 편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교인들의 믿음은 이웃 교회 교인들보다 훨씬 더 좋은 것 같은데 왜 저 교회 교인들보다는 못 살까?"하고 마음 쓰였던 것입니다.
그런데 그가 어느 기도원에 가서 일주일 기도를 간절히 하고 있는데 어느 나이든 목사님이 그의 기도 내용을 듣고서는 이목사님을 부르더랍니다. 그리고는 "당신의 기도를 들어보니 당신교회 교인들을 좀 더 잘 살게 해달라고 기도하고 있던데 당신 일년에 헌금 설교를 얼마나 하느냐"고 묻더랍니다. 그래서 못사는 사람들이 많아 헌금 설교하면 더욱 부담이 될 것 같아 거의 하지 않는다고 말씀드리니 그 노(老) 목사님 하시는 말씀이 "당신 교회 교인들이 못사는 이유는 다른 것에 있는 것이 아니라 목사를 잘못 만나서 그렇다"하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그러고는 목사가 왜 하나님 말씀대로 헌금 설교를 하지 않느냐고 꾸짖으시며, 헌금을 바치라고 설교해야 하는 이유를 성경적으로 조목조목 가르쳐 주시더랍니다. 그래서 이목사님이 크게 깨닫고 자신이 자기 교회 성도들 가난하게 살게 만든 죄를 철저히 회개하고 그 다음부터 헌금 설교를 믿음으로 결단하고 때마다 했다는 것입니다.
그 후 성도들은 어려운 가운데에서도 해야할 헌금을 착실하게 하게 되고, 교회 재정도 넉넉해지고 또 성도들이 하나님의 복을 받아 생활도 넉넉해지기 시작했습니다. 정말 그 때 깨닫지 못했다면 평생 이 세상에서 가난하게 살도록 만든 제 일차적인 책임을 지고 하나님 앞에 갈 뻔하였다고 하였습니다.

여러분, 꼭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헌금은 인간관계로 생각해서는 안됩니다. 그러면 항상 시험이 되고 불평이 넘칩니다. 그런 사람은 헌금이라는 명목 아래 돈도 잃고 신앙도 잃습니다. 그러나 헌금은 하나님 앞에서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하는 것이라는 사실을 분명하게 명심하고 있어야 합니다. 그러면 헌금은 우리의 신앙 고백이 되어지고 또 그에 따른 하나님의 약속대로 복을 누리게 되는 것입니다.

오늘 이 시간에 여러분이 헌금에 대해 어떤 자세로 임해야 하는지 말씀을 통해 깨닫는 시간이 되시길 바랍니다.

● 헌금의 종류

헌금의 종류는 다양합니다. 기본적으로는 십일조와 감사헌금이 있습니다. 십일조 헌금은 더 이상 설명이 필요없는 헌금입니다. 말 그대로 소득의 1/10을 바치는 헌금입니다. 그것이 기본이기 때문에 그 이상을 드리면 드렸지 1/10 이하를 드리면 그것은 원리에 위배되는 것입니다.
감사헌금은 우리의 삶 속에 감사할 조건과 이유를 기억하고 하나님께 드리는 것입니다. 감사헌금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감사할 제목을 주실 때, 그 때만 하는 것이라고 생각해서는 안됩니다. 사실 우리는 감사할 것이 너무나 많습니다. 그 감사거리를 우리가 발견하고 드리는 것이어야 합니다. 십일조와 감사헌금에 대해서는 다음 기회에 한 번 더 나누도록 하겠습니다.
그 다음에 절기헌금이 있습니다. 이스라엘에는 3대 절기가 있었습니다. 유월절, 맥추절, 수장절입니다. 이 절기의 의미를 오늘날은 이렇게 적용시킬 수 있습니다. 신년감사주일, 맥추감사주일, 추수감사주일. 이런 절기 헌금은 소원을 담아 하나님께 감사로 드리는 의미가 있습니다. 그래서 그 기준을 십일조에 준해서 하는 것이 좋다고 하였습니다.
그 다음은 목적을 두고 하는 헌금입니다.
오늘 성경 말씀은 바울 사도가 예루살렘 교회를 도우는 일들에 관하여 말씀하면서 고린도 교회에게 쓴 글입니다. 즉 예루살렘 교회를 도울 구제라는 목적을 두고 하는 헌금인 것입니다. 여러분들 중에 지금하고 계시는 선교헌금, 장학헌금은 목적헌금입니다.

● 장산비전헌금

우리 교회가 다음 주에 힘을 합쳐 하나님 앞에 작정하려고 하는 '장산비전헌금'도 목적을 두고 하는 헌금입니다. 구체적으로 어떤 목적인지는 '비전'이라는 말속에 그 의미가 들어 있습니다. 우리교회의 비전을 두고 헌금을 하자는 것입니다. 물론 그 속에는 일차적으로는 당면한 교회의 빚을 청산하자는 목적이 들어 있습니다. 그러나 단지 빚을 청산하자는 것만이 목적은 아닙니다.
빚을 왜 청산해야합니까? 하나님이 우리교회에게 주시는 비전을 위해 청산하자는 것입니다. 빚 청산보다 비전이 더 중요합니다. 작년 연말을 기해서 우리교회가 할 수 없이 졌던 빚은 사실 세월이 지나면 언젠가는 다 갚을 수 있을 것입니다. 단지 세월이 좀 더 길다는 것 뿐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렇게 해서는 우리교회가 비전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우리는 빚을 갚는 세월 동안 돈 드는 일은 아무 것도 하지 못할 것입니다.
우리 교회는 비전이 있는 교회, 즉 꿈이 있는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그 꿈은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꿈입니다. 하나님이 이 시대에 이 지역에 장산교회를 두신 것은 하나님의 꿈이 있기 때문입니다. 이제까지 우리는 그런 하나님의 꿈을 생각하지 못했는지 모릅니다. 그러나 이제 그 꿈을 다시 찾아야 합니다. 그리고 가장 소중한 복음의 꿈을 이 지역에 가장 효과적으로 전할 수 있기를 소원해야 합니다.

성도들에게는 영적인 돌봄이 필요합니다. 교역자들이 필요한 것입니다. 우리 교회가 최소한 좀 더 규모를 갖추기 위해서는 한 분 정도의 여전도사님이 더 필요합니다. 그것을 위해 기도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현대화되어 가는 이 시대에 교회가 신앙교육에 있어 세상 교육에 뒤떨어지면 안됩니다. 훨씬 더 좋은 수준으로 갖추지는 못할지라도 세상에서 교육하는 것만큼은 따라가야 합니다.
6, 70년대 이전에만 해도 세상 교육이 교회의 주일학교 교육을 많이 본받았습니다. 그러나 이제 상황이 달라졌습니다. 초등학교 교실에 한 번 가 보십시오. 시청각교육 시설이 얼마나 잘 되어 있는지 모릅니다. 방송시설, 컴퓨터, VTR 다 준비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우리교회를 한 번 보십시오. 어떻습니까? 아직도 교육관에는 OHP 시설에 스크린도 그냥 천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관심이 없어서 그런 것입니까 아니면 우리가 정말 돈이 없어서 그런 것입니까?
세상에 훨씬 효과적인 장비으로 어린 생명들을 유혹하는 것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과연 우리가 이런 상태로 아이들을 교회에 붙잡아 둘 수 있겠습니까?
물론 앞 선 교회들을 보면 최첨단의 시설을 교회당에 설치한 교회들이 많이 있습니다. 우리가 그들만큼은 할 수 없지만 기본적인 것들은 갖추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여러분, 여러분의 가정에서 어떤 비용이 제일 많이 지출되고 있습니까? 자녀들의 연령층에 따라 다를 수 있지만 아이들이 아직 공부하고 있는 자녀를 둔 가정은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거의 다 교육비의 지출이 제일 많을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아이들의 신앙이 중요하다고 말하고 있고, 또 신앙 교육이 제대로 되지 않아 나중에 겪는 자녀들의 방황을 봅니다. 그러나 그것은 우리의 자업자득(自業自得)일 수 있습니다.

저는 지난 주중에 어떤 성도를 통해 참으로 가슴 아픈 말을 들었습니다. 어떤 부부가 신앙생활할 교회를 찾다가 우리 교회에서 예배를 드렸나 봅니다. 서너 번 우리교회에 왔다합니다. 그런데 결국 다른 교회에 등록을 하였습니다. 그 교회에 등록을 한 이유를 물었더니 다른 이유보다는 체계적으로 신앙 훈련을 받고 싶어서였다고 합니다. 집이 그 교회 근처에 있는 것도 아니고 우리 교회 가까이에 있습니다. 안타깝게도 저는 그 부부가 서너 주일을 우리교회에 예배드리는 동안에 알지 못했고 축도 후 광고시간에 나갔기 때문에 인사도 나누지 못했습니다. 물론 그 분이 어디에서나 신앙 생활해도 신앙 생활만 잘 하면 관계없는 일입니다. 그러나 한 지역의 목사가 자신이 시무하는 교회에 새가족들이 왔는데 그 교회가 어떤 이유에서든지 마음에 들지 않아 다른 교회로 갔다면 그것은 참 가슴이 아픈 일 아니겠습니까?
그래서 당장 여전도사님 한 분과, 빠른 시일 안에 신앙 양육체계를 정착시켜야겠다는 마음이 생겼습니다.

우리는 우리교회에 대한 비전을 새롭게 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 교회에 기존 신자든지, 초신자든지 한 번 오면 다음에 또 오고 싶고 신앙 생활에 정착을 이룰 수 있는 교회가 될 수 있어야 합니다. 자녀들의 신앙 환경도 우리의 힘이 닿는 대로 개선해 주어야 할 것입니다.

장산 교회의 이런 비전을 두고 우리는 하나님 앞에 한 번 결단하고 헌금하려는 것입니다. 교회 빚에 얽매여 교역자 한 명 보강하는 것도 고민해야 하고, 그것이 안되니 아이들의 신앙 환경 문제는 손도 댈 수 없는 환경을 두고, 계속 세월만 가기를 바라며 그냥 방치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제 헌금을 작정하여 드리는 우리의 자세를 성경에서 말씀하고 있는 대로 생각해 보겠습니다.

● "그 마음에 정한 대로"

첫째, "그 마음에 정한 대로"하는 것입니다. 7절 "각각 그 마음에 정한 대로 할 것이요"
여기 그 마음에 정한 대로라는 것은 성령이 주시는 마음으로 정하라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헌금을 작정하실 때 어느 정도 하면 될까? 고민이 되실 것입니다. 말씀을 듣고 감동이 될 때, 이 문제를 가지고 기도할 때, 그 때 떠오르는 금액이 성령이 주시는 정한 마음입니다.
그리고 그 금액을 작정하고 기도할 때 항상 기쁨이 있어야 합니다. 작정하고 난 뒤 걱정이 되기 시작하고 불안하면 잘 못 작정한 것입니다. 금번 한 주 기도하면서 하나님이 주신 정한 마음으로 하시기 바랍니다.
그러나 사탄이 우리의 헌신의 마음을 방해할 수 있다는 것도 기억하십시오. 그러므로 여러분의 마음이 하나님의 뜻을 추구하고 기도함에도 불구하고 한 번 결정한 마음이 편치 않고 불안하면 다시 조정하여 작정하시기 바랍니다.

또 믿음의 가정인 경우 부부가 함께 상의해서 결정하시기 바랍니다. 합의된 금액이 좋습니다. 그런데 서로 금액을 말할 때 너무 차이가 나면 금액이 적은 쪽이 믿음이 없는 것 같아 좀 부끄러울 때가 있지 않습니까?
저의 집의 경우도 그럴 수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기본적으로 금액이 많은 쪽을 택합니다. 그것이 하나님이 주신 정한 마음이라는 생각입니다. 왜냐하면 부부는 하나이기 때문에 한 쪽의 분량이 큰 만큼 채워진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한쪽만 믿으시는 경우는 더욱 지혜롭게 작정하시기 바랍니다. 남편이 신앙 생활을 이해하지 못하는 가운데 있으면 상의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분들은 남편이 알아도 관계없는 상식적인 금액 수준이나 자신의 재량으로 할 수 있는 선에서 결정하시면 좋을 듯합니다.

경제적으로 넉넉하지 못한 성도들의 경우, "내가 헌금을 한들 얼마나 도움이 되겠는가? 돈 있는 사람 한 번만 하면 나 같은 사람 수십 명을 보태도 못 따라 갈 텐데"하며 포기하시는 분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얼마나 비신앙적인 생각인지를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지금 사람들에게 돈을 보태주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 드린다는 사실을 기억하십시오. 우리는 우리의 형편대로 믿음으로 금액에 관계없이 드려야 합니다.
우리는 성경에 나오는 어떤 한 과부의 헌금 이야기를 알고 있습니다. 그 가난한 과부가 연보궤에 넣었던 보잘 것 없는 두 렙돈에 대해 예수님께서 어떻게 말씀하셨습니까? "이 가난한 과부는 연보 궤에 넣는 모든 사람보다 많이 넣었도다"(막12:43)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의 중심을 보시는 하나님을 기억해야합니다.

사실 헌금은 돈이 있다고 하는 것이 아닙니다. 헌금은 말 그대로 헌신된 마음이 있으면 하게 되는 것입니다.
고후 8:2에는 마게도냐 교회의 헌금에 대한 헌신을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환난의 많은 시련 가운데서 저희 넘치는 기쁨과 극한 가난이 저희로 풍성한 연보를 넘치도록 하게 하였느니라"

저는 이 번 헌금에 중등부 이상은 모두 다 참여하라고 하였습니다. 한 달에 몇 천 원이라도 헌금에 동참해야 합니다. 그것이 관심입니다. 그것이 한 몸에 붙어있는 지체라는 고백입니다.

● 인색함이나 억지로 하지 말라

다음으로 중요한 것은 '인색함이나 억지로' 하지 않아야 한다는 것입니다.(7절 중)
성도 여러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장산교회는 재정적으로 부족할 수 있지만 하나님은 무엇이 부족하여 우리에게 손 벌리는 분이 아닙니다. 다시 말해, 하나님이 우리에게 무엇을 구걸하시는 분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하나님이 하시고자 하면 어떤 방편을 통해서라도 하십니다.

저는 전도사 시절에 섬기던 교회에서 이런 경우를 보았습니다. 모 교회 A장로님이 자신이 섬기던 그 교회에 조금 문제가 생겨 잠시 제가 봉사하던 그 교회를 나왔습니다. 그런데 교회에서 목돈이 들어갈 공사가 생겼습니다. 목사님과 장로님들이 고민하고 있는데 이 A장로님이 이 사실을 알고 자신이 가지고 있던 건물 하나를 매각하면서 남긴 이익을 고스란히 교회에 드린 것입니다. 공사는 순조롭게 잘 끝났고, 문제가 해결되자 그 장로님은 본 교회로 돌아갔습니다. 그후에 그 장로님은 목사님께 감사전화를 했습니다. 목사님이 감사를 해도 내가 해야되는데 왜 장로님이 하시느냐고 하니까? 그 후에 하나님이 자기에게 연이어 붙여주신 사업 건에 대해 이야기하더랍니다.

성도 여러분, 하나님은 자신의 일에 손해보지 않습니다. 그리고 부족한 것이 없으신 분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인색하면 하나님은 다른 사람을 사용하든지, 아니면 다른 교회를 사용하시면 됩니다. 이 지역에 교회가 어디 장산교회 뿐입니까?
그러나 여러분, 우리가 왜 하나님이 주실 복을 우리 스스로 걷어찬다는 말입니까?

여러분, 하나님이 이렇게 하시는 것은 우리에게 복 주시려고 하심을 알아야 합니다.
오늘 본문에 헌금을 '연보'라는 말을 썼습니다. 이 연보라는 말은 원어상 '축복'이라는 뜻입니다. 헌금은 곧 축복이라는 말입니다. 헌금은 축복의 첫 단계입니다. 앞서 말씀드렸듯이 왜 같은 지역에서 함께 신앙 생활하면서, 한 교회는 물질의 복을 받고 다른 한 교회를 그렇지 못합니까? 물질의 고백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물질 세계에 살면서 물질의 고백이 없으니 정말 믿음이 있는지, 그 고백이 분명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러니 하나님은 믿음은 좀 덜 했는지는 모르지만 물질적인 고백이 있는 성도들에게 더욱 많은 것으로 맡기셨던 것입니다.

오늘 성경 본문에 또 "억지로" 하지 말라고 하였습니다. 오늘 제가 여러분에게 전하는 말씀이 헌금 강요하는 것 같고 마음에 영 불편하신 분은 헌금에 동참하지 않는 것이 좋습니다. 그런 사람이 헌금을 하면 하나님이 받지 않습니다. 그 사람은 돈도 잃고 신앙도 잃을 수 있습니다. 어느 한 가지는 건져야하지 않겠습니까?

그래서 우리의 헌금하는 마음은 어떻게 해야 한다고 말씀합니까? 즐겨내야 한다고 말씀합니다. 기쁨으로 낸다는 것입니다. 복을 받을 일이니 즐겨내야 하지 않겠습니까?

● 심는 대로 거두는 법칙

셋째로 '심는 대로 거두는 법칙'입니다. 6절입니다.
"이것이 곧 적게 심는 자는 적게 거두고 많이 심는 자는 많이 거둔다 하는 말이로다"
먼저 성경은 우리의 헌금 드리는 것을 곡식을 뿌려 심고 추수하는 것에 비유하여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헌금하는 것은 무엇이라는 말입니까? 씨앗을 뿌리는 것과도 같은 것입니다. 씨앗을 뿌린다는 것은 곧 결실의 때를 예약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여러분의 헌금은 하나님의 축복의 밭에 씨를 뿌리는 것과도 같습니다. 이 믿음이 있어야 합니다. 이 믿음으로 여러분이 헌금을 하면 적게 뿌리려 하지 않을 것입니다. 뿌리는 만큼 거두기 때문입니다. 투자를 하려고 하면 불확실한 주식 같은 것에 투자를 하지 말고 가장 확실한 하나님의 밭에 투자하시기 바랍니다.
예화) 백화점 왕, 와나메커
존와나메커 이야기를 하겠습니다. 어린 시절 다른 친구들은 다 학교에 다니는데 가난하여 학교 대신 벽돌 공장에 다녔습니다. 그러면서 교회만은 빠지지 않고 열심히 다녔습니다. 하루는 목사님께서 우리 교회가 낡아서 다시 개축을 해야겠으니 모두들 정성껏 연보해 주십시오 하고 광고했습니다.
와나메커는 곰곰이 생각했습니다. 나도 교회를 위해서 무언가 바치고 싶은데 돈이 없으니 어떻게 하면 좋을까? 생각하다가 "옳지 돈은 당장 없으니까 벽돌 공장에 다니니 벽돌이라도 한 수레 바쳐야겠다" 마음먹고 아버지에게 의논했습니다. 아버지가 찬동하자 와나메커는 벽돌 한 수레를 가득 싣고 목사님 사택에 찾아왔습니다. 목사님은 너무나 감격하여 기쁨으로 맞아주며 뜨거운 기도를 해 주었습니다.
훗날 와나메커는 하나님의 축복하심 속에 100만 불을 들여서 교회를 지을 수 있는 은혜를 허락 받았습니다. 헌당식을 하면서 어렸을 때 그 어려운 중에 정성껏 헌금을 하였더니 나에게 이런 축복을 주셨다고 감격적으로 인사를 했습니다.
또한 그가 바친 선교비가 어떻게 쓰이고 있나 시찰하려고 중국을 방문하였는데 그 고을에 아름다운 성전이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때마침 한 노인이 소 한 마리와 청년 한 사람이 같은 멍에를 메게 하고 밭을 가는 것을 보았습니다. 와나메커는 이상히 생각하여 왜 이렇게 하느냐고 그 뜻을 노인에게 물었습니다. 노인이 대답하기를 "우리가 저 예배당을 건축하려고 하는데 내 아들과 나는 헌금할 돈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나의 아들은 소 한 마리를 바치자고 하여 우리는 결단하고 바쳤습니다. 그리고는 그 한 마리 소의 빈 자리에 아들이 대신 메우고 있는 것입니다."
와나메커는 그 자리에서 다음과 같이 기도를 드렸습니다. "주님이시여 나로 하여금 멍에를 메게 하사 저렇듯 희생적인 헌신의 즐거움을 알게 하옵소서."

와나메커는 훗날 세계의 백화점 왕이 되었고 미국의 체신부 장관까지 하였습니다. 그러면서도 시골에 있는 유년 주일학교 교사는 하였다고 합니다. 그는 어려운 중에서 하나님의 밭에 씨를 뿌려 거둔 믿음의 사람이었습니다.

● 감사함으로 드리는 헌금

마지막으로 우리의 헌금은 감사함으로 바치는 것이 되어야 합니다. 15절입니다.
"말할 수 없는 그의 은사를 인하여 하나님께 감사하노라"

감사해야할 것을 곰곰이 생각해 보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가장 우선한 감사는 하나님이 우리를 위해 예수 그리스도를 주신 것입니다. 이 은혜 위에 우리가 지금 여기까지 이른 것 모두가 감사입니다. 오늘 교회에 여러분이 여러 방면으로 왔을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에게 공통적인 것이 하나 있다면 하나님의 은총 속에 모두 여기에 이르렀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평소 무슨 일이 생기면 감사하려하지 말고 아무 일이 없을 때 감사하여야 합니다. 우리가 아무 일이 없다는 말은 하나님의 도우심 속에 평안하다는 말이 아닙니까? 그런데 우리는 무슨 일이 생겨야만 감사하다고 말합니다.
어떤 대를 이어 목사인 가족이 있었습니다. 주일날 부자간에 섬기는 교회가 다르기 때문에 각각 섬기는 교회에서 설교를 마치고 먼저 아버지 목사님이 돌아 왔습니다. 평소에 비슷한 시간에 같이 들어오는데 이날 따라 아들 목사가 늦습니다. 아버지 목사님이 조금 걱정이 되기 시작하여 아들을 위해 기도하고 있는데 아들이 돌아옵니다. 그러고는 하는 말이 "아버지 정말 오늘 하나님께 감사해요" 아버지가 "왜 그러는데?"하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오늘 설교를 마치고 돌아오는데 교통사고가 났거든요 차는 거의 다 망가졌는데 몸은 이렇게 기적적으로 아무 이상이 없어요. 정말 하나님께 감사해요"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이 말을 받은 아버지 목사님이 "그래 정말 감사하구나, 그런데 나는 너보다 더 하나님께 감사한단다"라고 말하니 아들이 "아버지는 어떤 일을 당하셨길래요?"하고 물었습니다.
그 때 아버지의 말이 "나는 아무 일 없이 무사히 돌아 왔으니 너보다 더 감사하지!"라고 말씀하였답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의 삶 속에 우리가 여기까지 오게 된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가 아닙니까?

여러분, 교통사고 한 번 나면 여러분이 헌금하려고 한 몇 십배의 돈이 날아가 버릴지 모릅니다. 우리는 이제까지 우리의 삶에 주신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며 하나님께 드려야 할 것입니다. 답답하고 안타까운 것 중의 하나가 돈있고 여유있을 때 하나님께 충성하지 못하고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난 뒤에 후회하면 말하기를 "왜 내가 그 때 그렇게 하지 못했든가"하며 애통해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은 별일 없을 때, 더욱 감사하시고 더욱 많이 섬기시는 여러분이 되시길 바랍니다. 감사함으로 헌금하시고 인색하거나 억지로 하지 마십시오. 믿음으로 씨뿌리고 결실의 때에 거두시기 바랍니다. 물질로 여러분의 신앙 고백이 이루어지기 바라며 더욱 큰 축복 속에 사시는 여러분이 되시길 축원합니다. - 아 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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