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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사시대와 오늘(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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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및 요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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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사사시대와 오늘(1)
성경> 삿17:1-13
찬송> 423, 359장


●사사기의 주제
하나님께서 지난 2주에 걸쳐 여호수아서와 사사기서의 본문 말씀을 통하여 말씀하여 주셨습니다.
2주전 말씀 여호수아서에서는 ‘갈렙의 온전한 신앙’이라는 제목을 통하여 40년 전에 주신 하나님의 약속을 믿어 자신의 사명으로 삼고 흔들림 없이 살아온 믿음의 거장 갈렙을 보았습니다.
(주일날 그 설교를 하고 화요일에 다른 교회 어떤 집사님이 우리교회 인터넷 홈페이지에 들어와서 이 날 설교 말씀을 듣고 은혜를 많이 받았다고 감사 전화를 해 왔습니다. 앞으로 인터넷을 통한 교회 소개가 더욱 활발해져야하고 또 이것을 적극 활용할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지난주는 여호수아 다음 시대인 사사기를 통하여 사사 입다의 등장의 배경이 되는 본문 말씀으로 ‘그래도 주님밖에 없습니다’라는 제목이었는데, 아무리 잘못했을지라도 회개하고 우리의 행실을 접고 하나님께 긍휼을 구하고 나가면 하나님은 우리를 용납하고 구원을 베풀어주시는 분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지난 주 사사기의 말씀을 전하면서 이런 생각을 하였습니다. 우리 성도들 가운데는 ‘입다’라는 사사도 잘 모르는 사람들이 많이 있을 것인데 입다에 대해 말씀을 전하는 것도 아니고 입다의 등장 배경이 되는 말씀을 통해 교훈을 얻자니 조금은 마음이 편하지 않았습니다. 언젠가는 사사기를 처음부터 강해하면 12명의 사사 한 사람 한 사람을 살펴볼 기회가 있을 것이라 생각하고, 우선 ‘이 사사시대 전체를 한 마디로 말한다면 어떤 시대라고 말할 수 있는가?’를 아는 것이 더 필요하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왜냐하면 오늘 이 시대가 바로 사사시대의 전철을 밟는 시대일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성도 여러분, 사사시대는 어떤 시대입니까? 그 정답이 되는 핵심 구절이 오늘 본문에 나옵니다. 6절입니다. “그 때에는 이스라엘에 왕이 없으므로 사람마다 자기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였더라”

●두 예화 사건
그러나 이 성경 구절을 조금 더 명확하게 설명해 주는 예화가 있으면 더욱 쉽게 말씀을 이해하지 않겠습니까? 설교를 할 때도 이 설교 내용을 가장 절적하게 설명할 수 있는 예화가 있으면 더욱 효과적입니다. 그러면 가장 좋은 예화는 어떤 것이겠습니까? 설교란 2천년 전, 3천년 전에 있었던 이야기를 나열하는 것이 아니라 2천년 전, 3천년 전에 있었던 그 이야기 그 사건을 통하여 하나님이 오늘 나에게 말하는 것이 무엇이냐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화 중에서 가장 좋은 예화는 한 주간동안 이 세상 속에서 일어났던 사건, 사고, 수많은 사람들의 이야기입니다. 그래서 신학교에서 설교학을 배울 때 ‘한 손에는 성경을 한 손에는 신문을’이라는 말을 많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사사기 성경은 다른 예화가 필요 없이 그 성경 자체가 예화로서 그 시대를 설명해주며 마치고 있습니다. 실제 사사기에서 사사들의 이야기는 16장, 삼손의 이야기로 끝납니다. 17장부터 21장까지는 사사기의 부록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여기에는 두 가지 사건이 나옵니다. 하나는 17,18장에 나오는 ‘미가의 신상’ 사건이고 또 다른 하나는 19-21장에 나오는 ‘레위인 첩의 토막살인’ 사건입니다.
이 두 가지 이야기는 사사시대가 어떤 시대인가를 그 시대에 일어났던 사건을 가지고 구체적으로 설명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사사시대를 말하는 두 가지 실제 예화로서 그 시대를 이해하도록 도우고 있습니다.

우리는 먼저 이 두 가지 사건을 통하여 사사시대가 어떤 시대였는지를 살펴보고 또 그 사사시대를 통해 하나님은 오늘 이 시대를 향하여 무엇을 말씀하고 계신지 보아야 할 것입니다. 먼저 17, 18장에 나오는 ‘미가의 신상(神像)’사건을 통하여 사사시대를 봅니다.

1. 배금주의(拜金主義)입니다. -황금만능(黃金萬能)입니다. 즉 돈으로 모든 것을 해결하려는 생각입니다.

1)이 사건은 미가라는 사람의 집안에서 일어난 이야기입니다.
미가의 어머니가 참 부자였나 봅니다. 그런데 어떻게 하다가 그랬는지는 모르지만 은 일천일백을 잃어버렸습니다. 은 일천일백이 어느 정도의 금액이냐면, 10절에 미가가 제사장을 그의 집에 고용하면서 제사장에게 주는 일년 연봉을 은 열과 의복 한 벌과 식물을 주겠다고 합니다. 제사장의 연봉으로 1,000만원만 잡는다고 생각하면 은 일천 일백은 120억원이 되는 돈입니다. 이 많은 돈을 잃었으니 얼마나 분통이 터졌겠습니까? 이 돈을 잃은 어머니는 저주를 퍼붓습니다. 입에 담지 못할 저주를 퍼부은 듯합니다.
이것을 통해 대충 이 미가의 어머니가 어떤 인물일거라는 생각을 해 볼 수 있습니다. 돈을 위해 살아왔고 돈을 악착같이 모았던 여인이었을 것입니다. 돈 되는 일이라고 하면 험한 일 마다하지 않고 했을 것이고, 그 와중에 거친 입을 마구 놀렸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 돈을 훔친 사람은 다름이 아니라 그의 아들 미가였습니다.

돈이라면 어머니의 것도 훔칠 수 있는 세상이라는 말입니다.

또, 10절에 보면, 미가는 자기 집에 만들어진 산당을 규모 있게 만들기 위해 떠돌이 레위인을 돈으로 사서 고용해 버립니다.
돈이면 안되는 게 없다는 생각으로 세상을 사는 사람입니다.

여러분, 오늘의 이 시대도 사사시대보다 더 했으면 더 했지 못할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남편이, 아내가 서로의 배우자를 보험금을 타먹기 위해 죽입니다. 심지어 아버지가 보험금 때문에 아들의 손가락을 자른 일도 있지 않았습니까?
이미 돈 앞에서는 인간임을 거부해버린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2)성도 여러분, 우리가 돈에 매여 살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산다는 것의 고백을 구체적으로 어떻게 할 수 있겠습니까? 그것은 말씀대로의 돈 사용입니다.

먼저, 정상적인 헌금을 하고 있는 지 돌아보아야 합니다. 헌금을 바로 드림으로 우리는 우리가 이 세상의 물질과 하나님을 혼동하고 있지 않음을 보여야합니다.
둘째는 구제하는 것입니다. 특히 신약성경에서 강조되는 것은 구제를 위한 연보입니다. 초대교회들은 교회끼리 연보를 모아 구제헌금으로 보내었습니다. 그리고 성도들 간에 구제하였습니다.
셋째는 헌금하고 구제하는 것 못지않게 돈을 정당한 방법으로 버는 것입니다. 정당한 방법으로 돈을 번 것이 아니면 아무리 많은 헌금을 하고 구제를 한다고 하더라도 하나님을 속이려 드는 일과 다름이 없습니다.
우리는 이렇게 함으로써 물질은 하나님이 주신 것이고 우리는 청지기라는 사실을 하나님께 고백하는 것입니다.

2. 혼합주의적 미신 신앙입니다. 즉 명확하게 하나님을 섬기는 것도 아니고 이것저것 의지하는 것이 많은 것을 말합니다.

1)본문 2절에 보면, 어머니의 입에서 거침없이 내뱉어진 저주를 듣고 있던 미가가 도저히 견딜 수 없었는지 아니면 뉘우치는 마음이 생겼는지 어머니에게 가서 자기의 죄를 이실직고(以實直告)하고 훔친 돈을 어머니에게 돌려줍니다.
이것을 들은 어머니는 얼마나 어이가 없었겠습니까? 이제까지 자기가 퍼부은 저주가 다 아들에게 돌아갈 판입니다. 이래서는 안 되겠다고 생각했는지 어머니는 아들에게서 받은 것 중에 은 이백으로 한 신상을 만듭니다.(4) 현재 시가로 2억짜리 신상을 하나 만든 것입니다.
쉽게 말하면 자기 나름대로 하나님께 잘 봐 달라고 뇌물을 쓰는 겁니다.
“하나님, 내가 모르고 막 저주를 퍼 부었는데 없던 걸로 해 주십시오. 대신 제가 하나님 신상을 하나 만들어 바치겠습니다. 한 2억 정도면 마음 푸실 수 있으시겠죠?”

이는 마치 불교 신자들이 불상을 세우거나 암자나 절을 세워 자신의 공덕을 하나 더 쌓아 잘 보이려는 것이나 귀신에게 제사를 하면서 귀신의 노여움을 풀려고 하는 것과 다를 바 없습니다.

미신(무속종교)과 기독교의 차이가 무엇이라고 했습니까? 미신은 자기를 위해 신을 이용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기독교는 신의 뜻을 위해 나 자신이 이용되는 것입니다. 즉 신의 뜻에 나 자신을 복종시키는 것입니다. 그래서 돈을 갖다 바치되 자신의 목적을 이루기 위해 바치는 것입니다. 그러나 기독교인이 헌금하는 것은 그것을 통해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기를 바라며 드리는 것입니다. 결국 그렇게 하는 것이 자신의 유익이라는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2)그리고 그 아들 미가를 또 보십시오. 미가는 어머니가 주문 제작한 신상 하나 가지고는 산당에 구색이 맞지 않는다고 생각하였던지 에봇과 드라빔도 갖다 두었습니다.
산당은 이방신을 모시는 곳입니다. 여호와 하나님 대신에 신상을 만들어 두었습니다. 그리고 그곳에 제사장의 겉옷인 에봇을 갖다 두고 또 이방인들이 가정에서 섬기는 드라빔도 두었습니다.

도대체 무엇을 하자는 것인지 알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자신을 형상으로 만들지 말라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신상을 만들어 섬깁니다. 혹 신상은 그래도 하나님을 섬기는 잘못된 방편이라고 치고 드라빔은 왜 갖다 놓습니까?

하나님을 섬기는 것인지 아니면 미신을 행하고 있는 것인지 알 수 없습니다. 그렇습니다. 이것이 바로 그들의 신앙 수준입니다. 여호와도 섬기고 또 이방인들이 섬기는 것들도 갖다 놔 보고. 의지할만한 것은 모두 다 갖다 둬 보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면서 하나님은 하나님대로 대우해주고, 필요할 때는 다른 신들의 도움도 받고. 그러나 이것은 하나님을 대우해주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모독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이 출애굽 할 때 이 민족의 가장 기본 되는 법인 십계명을 주실 때 제 1계명에 이스라엘 백성이 섬겨야할 대상이 누구인지부터 말씀해 주셨습니다.
“너는 나 외에는 다른 신을 네게 있게 말지니라”
이 말씀은 ‘세상에 신이라고 하는 많은 존재들에 아예 기웃거릴 생각 조차하지 마라.’뜻입니다.

이어지는 제 2계명에서는 하나님을 섬기는 구체적인 방법을 말씀해 주셨습니다.
“너를 위하여 새긴 우상을 만들지 말고…”

이 2계명은 단지 다른 이방신의 형상을 섬기지 말라는 것뿐만 아니라, 여호와 하나님을 섬긴다고 하면서 하나님을 우상으로 만들지 말라는 의미까지 포함됩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에게 신이 많을수록 좋은 것입니까? 일본에는 700-800만이나 되는 신이 있다고 합니다. 그래서 한 집에서 섬기는 신도 한 둘이 아닙니다. 그래서 더 좋은 것입니까?
그리스와 로마에는 많은 인간적인 신들이 나옵니다. 가만히 보면 그들은 인간인 것 같기도 하고 또 신인 것 같기도 합니다. 그 많은 신들이 등장하게 된 것은 인간이 그만큼 요소요소에 필요한 신들이 많다는 것입니다. 사랑을 하는 데도 신이 필요하고, 전쟁을 하는 데도 필요합니다. 그러나 그 어떤 신도 인간의 궁극적인 문제를 해결하지 못했습니다.

사도행전 17장에 보면, 바울이 2차 전도여행 시에 그리스 신화의 발생지 그리스에 간 것을 알 수 있습니다.(‘아덴’이라고 되어 있습니다. 곧 지금의 그리스의 수도 아테네를 말합니다.) 아테네에 갔는데 아니나 다를까 온통 거리에 우상들로 가득 찼습니다. 각종 신상을 만들어 놓고 이름을 새겨 놓았는데 어떤 신상 하나를 보니 ‘알지 못하는 신’이라고 써져 있었습니다. 바울은 이것이 바로 아덴 사람들의 그릇된 신관(神觀)임을 알았습니다. 이것이 그리스 로마 신의 불완전함을 말해주는 것입니다. 그들은 신은 전능한 신이 아닙니다. 그러니 혹 그들이 정말 도움이 필요할 때는 그들을 적절하게 도울 다양한 신들이 필요한 것입니다. 그러니 ‘알지 못하는 신’도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바울은 이 세상의 신은 천지 만물을 만드신 창조주 하나님 한 분밖에 없다고 말하였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다른 것에 하나님이 만들어 놓은 피조물에 신의 이름을 갖다 붙여 기웃거리지 말고 여호와 하나님만 꼭 붙드시기 바랍니다.

고전10:21에 “너희가 주의 잔과 귀신의 잔을 겸하여 마시지 못하고 주의 상과 귀신의 상에 겸하여 참예치 못하리라”

3. 하나님을 섬기는 법을 인위적으로 시행하는 것입니다.

즉 자기 마음대로 신앙 생활하는 것입니다. 신앙생활의 법을 자신이 만듭니다.

미가는 자기의 소유의 산당에 신상을 만들고 이것저것 구색을 갖추어 놓고 보니 본격적으로 산당을 운영할 마음이 생겼습니다. 먼저 제사장이 필요한데 급한 대로 자기 아들을 제사장으로 세웠습니다. 제사장은 레위 사람만이 할 수 있는데 자기의 아들을 세웠던 것입니다. 아무래도 무자격 제사장으로 세워 놓고 마음이 편치 않았는데, 레위인 한 사람이 호구지책을 위해 정처 없이 떠돌다가 미가의 집에 이르게 됩니다. 미가는 그 사람이 레위인인 것을 알고 자기 집의 제사장으로 적은 돈을 주고 고용합니다.
또 레위인은 먹고 살 길이 막막했는데 돈이 적은 것이 문제될 리 없었습니다. 레위인은 미가의 제안을 고맙다는 듯 흔쾌히 받아들입니다.
그러고는 한결 마음이 가벼워진 미가의 말을 보십시오. 13절
“레위인이 내 제사장이 되었으니 이제 여호와께서 내게 복 주실 줄을 아노라”

이렇게 해서 복이 오면 그것은 복이 아니라 무엇입니까? ‘저주’입니다. 왜요? 그 사람을 더욱 영적 어두움으로 몰아넣으니까요. 결국 사단의 노예가 됩니다.

그러나 본인들에게 물어보면 나름대로 얼마나 열심히 노력한다고 하는지 모릅니다.
미가의 경우 이렇습니다. “나, 산당을 지었지요, 제사장이 옷인 에봇도 갖다 두었습니다. 엉터리 제사장을 세워두었다가 마음이 편하지 않았는데 이제 자격있는 제사장까지 들어왔습니다. 나는 하는 데까지 했습니다.”
그러나 이들의 열심은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과 전혀 관계가 없고 오히려 열심을 내는 만큼 하나님을 견디기 힘들게 하는 것입니다.

한 마디로 자기 마음대로 하나님을 섬기는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는 내 마음대로 하나님을 섬기지 않습니까? 나의 이기주의 편의주의가 하나님의 뜻과는 전혀 관계없는 새로운 법을 만들어 내는 것은 아닙니까?
하나님을 제대로 섬기면 복 받습니다. 그러나 내 마음대로 섬기면 섬길수록 혼란스럽습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하나님을 섬깁시다. 그러면 분명 즐거움과 기쁨이 옵니다.

<오늘 이 시대에 무자격 신학생들의 양산, 또 교회를 인위적으로 개인의 생각으로 운영하려는 사람들, 목사라는 직분에 대한 무시함, 돈에 의해 좌우되는 교계 목사의 모습 등. 사사시대와 다를 바가 없습니다.>

●‘자기 소견에 옳은 데로’
이 모든 것을 종합하면 한 마디로 “하나님, 하나님” 하지만 ‘자기 마음대로’ 사는 시대를 말하는 것입니다.(6)

우리도 사사시대와 같이 자기 마음대로 신앙생활하면 안됩니다. 자기 마음대로가 아닌 하나님의 말씀대로 신앙 생활해야 합니다. 각자 자신의 위치에서 지킬 것을 지키며 하나님 앞에 신실하게 살아가야 합니다.
이것이 사사시대를 통하여 오늘날 우리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메시지입니다. - 아 멘 -(주후 2002. 8.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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