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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주님밖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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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및 요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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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그래도 주님밖에 없습니다.
성경> 삿10:6-18
찬송> 338, 331장

●사사기
사사기는 사사들의 활동을 중심으로 그 시대의 하나님의 역사를 기록한 것입니다. 총 12명의 사사가 나오는데 1대 사사-갈렙의 아우 옷니엘, 2대-왼손잡이 에훗, 3대-소모는 막대기로 블레셋 600명을 죽인 삼갈, 4대-여자 사사 드보라, 5대-기드온입니다.
오늘 본문 바로 앞 10장 1절에서 4절에는 간략하게 기록된 2명의 사사 이야기가 나옵니다. 6대 돌라, 7대 야일입니다. 11장에는 8번째 사사인 입다라는 사람이 등장하는데 오늘 성경 본문은 그 사이 부분으로 사사 입다가 일어나게 된 배경을 말해주는 본문입니다.
입다라는 사람은 BC 1,200년경의 사람입니다. 그러니까 오늘의 이야기는 지금으로부터 약3,200년 전의 이야기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 3,200년 전 사사시대에 있었던 이야기를 통해 오늘까지 말씀하십니다.

그러면 사사시대의 이야기를 조금 해야겠습니다. 애굽에서 400년간 종살이하던 이스라엘 백성들이 민족 지도자 모세의 영도 하에 하나님이 그들에게 주신 땅을 찾기 위해 애굽 나라에서 나옵니다. 지난주의 말씀대로 하나님 주신 땅에 대한 불신으로 그들은 바로 가나안에 들어가지 못하고 광야에서 하나님을 의지하는 법을 40년간이나 배웁니다. 40년 뒤, 모세의 뒤를 이은 후계자 여호수아는 마침내 가나안을 정복하고 그 땅을 지파별로 분배합니다. 여호수아가 죽고 그 땅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각 지파별로 살아가는 시기가 사사시대입니다.
‘사사시대’라고 말한 것은 이 시대에는 뚜렷한 민족의 영도자가 이스라엘 전체를 대표해서 다스린 것이 아니고 각 지파별로 자신의 지역 땅에서 살면서 문제가 발생하면 하나님이 사사를 세워 다스리게 하였기 때문에 사사시대라고 말합니다. 사사라는 말은 재판관이라는 뜻입니다. 즉 지금의 중앙집권체제라기 보다는 권력이 지방자치단체에 주어진 형태였습니다.

●입다의 등장 이유
그런데 어떤 시기에 사사가 등장한다는 것은 그 시대에 문제가 생겼다는 의미입니다. 하나님은 그 시대가 범죄하면 고난을 주시고 백성이 회개하면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사사들을 세워주셨습니다. 그런데 그 문제가 무엇이냐하면 우상 숭배의 문제입니다. 이 우상 숭배의 문제는 그 근본 원인을 따지자면 이스라엘 백성이 가나안 족속을 정복할 때 하나님의 명령을 완전히 지키지 않은 것에 있습니다.
하나님은 가나안 족속에 대해 조금의 자비와 긍휼을 베풀지 말고 완전히 몰아내라고 말씀했지만 이스라엘 백성들은 갖가지 이유를 붙여 그들을 박멸하지 않았습니다. 결국 세월이 흐르고 난 뒤 바로 그것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는 가시가 되었고 올무가 되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세월이 지나자 가나안 백성과 이웃 주위 나라의 신들을 섬기기 시작했고 그것이 하나님의 진노를 발동하게 했습니다. 하나님은 그들에게 징벌을 내리셨는데 사사시대의 하나님의 징벌의 방법은 그들이 섬겼던 이방신의 나라로부터 침략을 당해 고통을 받게 하는 것이었습니다.

입다라는 사사가 등장하게 되는 배경도 똑 같습니다. 오늘 성경 본문 역시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들이 섬긴 이방신이 있는 나라, 암몬과 블레셋이라는 나라에 의해 고통을 당하게 됩니다.
그들은 분명 이방 나라에 있는 신들에게 매력을 느꼈기에 하나님을 멀리하고 이방신을 섬겼을 것입니다. 그러나 결과는 그게 아니었습니다. 그들은 더욱 비참해졌고 그 신의 나라에 의해 침략을 당하고 말았습니다.

1. 하나님의 백성으로서의 분명한 의식
여러분, 여기에서 우리는 깨달아야 합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특별한 백성이라는 사실입니다. 그러기에 그들은 봐야할 것이 따로 있고, 걸어야 할 길이 따로 있는 사람입니다. 이들이 볼 것을 보지 않고 이방 사람 사는 것을 보다가 현혹되어 실족하는 것입니다.
분명 이들이 이방 나라를 보았을 때 이방 신들은 매력적이었을 것입니다. 그러니까 그 신들을 믿기 시작했지요. 그런데 이상하게 이방 나라 사람처럼 잘 되지 않고 고난만 오는 것입니다.

어디에서 잘못된 것입니까? 이스라엘 백성들은 자신들과 이방인들과 다르다는 것을 몰랐습니다. 자신들이 구별된 백성, 곧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사실에 대해 희미해진 것입니다. 그러니까 이방인들처럼 살아도 될 것으로 오해한 것입니다.
오늘날에도 우리는 구별된 의식과 행동이 필요합니다. 때로는 우리가 이단들에게도 배워야합니다. 그들의 교리, 진리는 배격해야하지만 그들의 분명한 행동은 배워야합니다.
또 주일성수에 대해 잠깐 이야기 해야하겠습니다.
이단 중에 안식교가 있습니다. 교회같은 건물에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회’라고 되어 있는 교회입니다. 이들은 아직도 토요일을 안식일이라하여 우리의 주일과 같이 지킵니다. 그런데 토요일이 공휴일이 아니니 얼마나 불편한 것이 많겠습니까?(주 5일 근무제가 전면 시행되면 나아질 듯) 그래도 이들은 이 불편함을 그대로 감수합니다. 아이들도 토요일에는 학교에 보내지 않습니다. 이런 고충을 해결하기 위해 그들 스스로 만든 학교재단이 있는데 ‘삼육재단’입니다. 삼육재단은 유치원부터 대학까지 다 있습니다. 우리가 먹는 삼육식품, 삼육두유는 안식교에서 나온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가 좀 더 그리스도인으로서 확실히 구별된 의식을 가지고 행동하며 살아야하지 않겠습니까? 물론 주일을 불가피한 형편에 따라 본교회에서 지킬 수는 없을지 모릅니다. 그러나 우리는 어디에서든지 교회를 찾아가 공적 예배를 드려야 하고 교회가 없는 곳이면 혼자서라도 예배를 드려야 할 것입니다.

오늘 본문의 이스라엘 백성들을 다시 봅시다.
여러분, 그런데 이상하지 않습니까?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방인들 하는 대로 따라 했는데 이방인들은 잘 되는데 자신들은 잘 안 되는 것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이방인이 이방인 식으로 사는 것은 당연하고 그렇게 살면서 인간적으로 잘되는 것도 당연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백성은 아니지요? 하나님의 백성이 안 되는 것은 하나님의 백성이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깨달아질 때 여러분은 감사해야합니다.

그러니까 여러분이 전도하실 때에도 모든 사람이 다 전도대상자이지만 일이 잘 안 되는 사람에게, 또 환난 가운데 있는 사람에게 전도하시고 하나님의 계획을 말씀해 주시기 바랍니다. 불신의 길을 가면서도 당당하고 잘되는 사람은 블레셋 족속이요, 암몬 족속입니다. 이들은 심판을 때를 위해 예비되어 가는 자일 뿐 실상은 잘되어 가는 자들이 아닙니다.

다시 한 번, 하나님의 백성은 하나님의 백성으로써의 삶이 따로 있습니다.
‘송충이는 솔잎을 먹고산다’
그러면 ‘하나님의 백성은 하나님의 말씀을 먹고산다.’ 즉 하나님의 백성이 살아야할 법과 걸어야할 길이 따로 있다는 말입니다. 현혹되지 맙시다. 우리는 주안에서만 형통해야 합니다.

2. 적이 강한 것이 아니라 내가 약한 것이다.
그런데 인생은 미련하게도 그런 상태에 빠지지 않으면 하나님을 향해 눈을 잘 돌리지 않습니다. 그래서 할 수 없이 하나님은 자신의 자녀들을 위해서라도 이런 상황을 그냥 두고 보실 때가 많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알아야 하는 것이 이것입니다. 우리의 대적이 우리를 괴롭히면 대적들이 강해서 그런 것이 아니라 우리 자신이 약해서 그렇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므로 먼저 나 자신을 돌아보아야 합니다. 진정한 문제의 해결은 바로 그곳에 있기 때문입니다.
6-9절 말씀을 봅시다.

분명 이스라엘의 범죄가 주위의 적들, 즉 블레셋과 암몬의 세력이 강하게 되는 결과를 낳았습니다.
이 법칙을 볼 수 있으면 우리는 우리가 가진 여러 가지 문제를 쉽게 해결할 수 있습니다.
여기에서 분명한 것을 두 가지입니다.
첫째는 역사의 주관자는 하나님이시라는 것이고, 둘째는 하나님의 관심은 오직 그의 백성들이라는 사실입니다. 그의 백성, 그의 자녀들 외에는 단지 도구일 뿐입니다. 아무리 이방 백성들이 세력을 얻고 잘되어 나가도 그들은 하나님의 관심의 대상이 아니라 잠시 사용하는 도구일 뿐이라는 말씀입니다.
여러분, 여러분이 역사의 주인공이라는 사실을 믿으십시오. 세상에 예수 믿지 않는 사람들은 다 엑스트라입니다. 하나님은 우리 때문에 주위의 상황을 이렇게도 하시고 저렇게도 하십니다.
문제는 우리 자신이며 우리가 하나님 앞에 바로 서면 되는 것입니다. 우리의 바로 서는 것이 하나님의 기쁨이고 하나님이 기뻐하시면 우리는 곧 회복되는 것입니다.

이제부터 ‘나의 적은 너무 세다’라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적이 강한 것이 아니라 내가 힘이 약한 것뿐입니다. 내가 영적으로 강건해지면 적은 힘을 못쓰게 되어 있습니다.
우리 몸이 감기가 듭니다. 그것은 병균이 강해진 것이 아니라 내 몸이 약해져서 저항력이 떨어진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영적으로 강건하면 그 어떤 것도 문제가 되지 않는 것을 믿으십시오.

3. 상하신 주님의 마음
오늘 성경 본문에서 우리는 한 편으로 이스라엘 백성들 잘 이해하지 못할지 모릅니다. 정말 해도 너무한 것처럼 보입니다. 왜냐하면 이스라엘 백성은 너무 철면피가 아닌가 생각됩니다. 그들은 금방 회개했다가 곧 범죄하고 또 회개했다가 범죄하고 하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여러분, 잘 보면 그렇지 않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자신의 당대에 그런 것이 아닙니다. 한 사람의 사사가 일어나고 다음 사사가 또 일어날 때까지는 몇 십 년이 지납니다. 그러니 그들 자신의 대(代)에서는 범죄, 회개의 연속이 아닙니다.

단지 그들에게 부족한 것은 그들 선조의 대에서 나타낸 하나님의 법을 아는 지혜가 없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것이 답답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가르쳐주어도 항상 똑 같기 때문입니다.
왜 가르쳐줘도 모릅니까? 하나님의 마음이 없기 때문입니다. 더 쉽게 말하지요. 철이 없어 그렇습니다.

여러분, 자녀들 키울 때 답답한 것 많으시죠? 그래서 자연히 잔소리 아닌 잔소리가 시작되지 않습니까? 그런데 그건 자식 잘 돼라고 하는 소리이고, 이 자식들이 조금만 귀기울여 부모의 말 들으면 될 텐데 그것을 못합니다. 그러니 또 잔소리 또 잔소립니다. 그러다 안돼면 잔소리 그만 둘 때가 옵니다. 언제입니까? 포기할 때입니다.
그런데 아이가 그것을 깨닫고 행동을 고치는 때가 있습니다. 언제지요? 철들 때입니다. 철들기 전에는 정말 ‘쇠귀에 경 읽기’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철들 때가 언제냐는 것입니다. 그래도 일찍 철들면 괜찮습니다만 이게 세월 다 보내고 철들기 시작하면 남는 것은 후회뿐입니다.
어떤 친구는 중고등학생 때 부모로부터 그렇게 공부하라는 말을 듣습니다. 그런데 철이 안드니 공부가 됩니까? 좋은 세월 다보내고 고3이 되어서야 철이 들었습니다. 공부를 왜 해야하는지 알기 시작하고 공부를 하는데 얼마나 열심히 하는지 모릅니다. 그런데 암기과목을 되는데 기초가 필요한 국영수가 안 되는 것입니다. 그건 갑자기 열심 낸다고 되는 것 아니지 않습니까?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도 철들 때 빨리 철들어야 합니다.
‘나 주를 멀리 떠났다 이제 옵니다’ ‘그 귀한 세월 보내고 이제 옵니다’하면 안 됩니다. 빨리 신앙의 철이 나서 주님 주시는 싸인을 그때 그때 깨닫는 자들이 되어야 우리의 삶이 행복합니다.

사실 하나님의 싸인, 즉 교훈은 역사 속에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모든 생활 속에서 하나님은 계속해서 말씀하고 계십니다. 주일 설교 말씀을 통하여, 새벽기도회를 통하여, 그리고 주위에 일어나는 현상들을 통하여 하나님은 계속해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사실은 여러분이 조금만 영적으로 감각이 있다면 9시 뉴스를 통하여서도 하나님의 메시지를 들을 수 있습니다.

13절의 말씀을 보십시오. “…다시는 너희를 구원치 아니하리라”
이것이 하나님의 본심이겠습니까? 하나님이 답답하시다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버릴 수 없는 분입니다. 그런데도 이렇게까지 말씀한 이유가 무엇이겠습니까? 그것은 더욱 강력한 결단과 회개를 기다린다는 것입니다.

가끔 부모들이 자녀들의 실망스런 행동으로 “다시는 안 해준다”고 말합니다. 그것은 ‘내가 정말 실망했다’는 표시입니다. 다른 말로는 ‘빨리 고쳐라’는 경고입니다.

4. 그래도 회개하라 그래도 매달리라.
이 말을 들은 이스라엘 백성이 어떻게 합니까? 15절입니다.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께 여짜오되 우리가 범죄하였사오니 주의 보시기에 좋은 대로 우리에게 행하시려니와 오직 주께 구하옵나니 오늘날 우리를 건져내옵소서 하고”

이 말씀은 “내가 하나님께 무든 낯짝으로 용서를 구하겠습니까? 어떤 처벌을 하시든지 제가 다 받아야지요. 그러나 한번만 더 용서를 구할 수 없습니까? 한 번 더 기회를 주시면 안됩니까?”라는 말입니다.

그 다음에 보여준 이스라엘 백성들의 행동을 보십시오. 16절
“자기 가운데서 이방 신들을 제하여 버리고 여호와를 섬기매”
그 결과 하나님이 어떻게 하셨다고요?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의 곤고를 인하여 마음에 근심하시니라”
결국 하나님을 마음을 돌이키시고 입다라는 사사를 세워주십니다.

여러분 믿음이 있다는 것은 때론 ‘얼굴에 철판을 까는 것’입니다. 사유하심을 믿고 또 주님께 매달리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약점이 이것입니다. “주님, 그래도 우리 주님 밖에 없습니다!”하고 나오는 사람을 하나님은 거절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때 하나님은 “그래 또 한 번 속아보자”하시고 우리를 용납하십니다.
예화) 이성경 선생의 딸 이한나
저와 함께 신학교에서 공부하신 분 중에 이성경 선생이란 분이 있었습니다. 제 생각에 지금 나이는 60세가 넘었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혹 여러분 중에 8, 90년대에 브니엘 고등학교를 다닌 분이 있다면 이 선생님을 알 것이라 생각됩니다. 이분은 늦게 신학대학원에 입학하였습니다. 서로 어떤 동기에 의해 신대원을 입학하게 되었는지 서로 나누는 기회가 있었는데 이 분의 경우는 좀 독특하였습니다.
이 분은 브니엘 고등학교 선생님이었는데 그에게 한나라는 외동딸이 있었습니다. 아이가 얼마나 영특하고 공부도 잘하는지 아버지가 좋아 어찌할 줄 모르는 딸이었습니다. 이 선생님이 자신이 취미로 즐기던 테니스를 어린 한나에게 조금 가르쳤더니 운동도 그렇게 잘 하더랍니다.
운동과 공부 속에 갈등이 있었지만 결국 운동을 시켰답니다. 시작한 테니스의 기량이 하루가 다르게 늘더니 각종 대회에서 금메달을 휩쓸고 고등학생이 되자 청소년 국가 대표선수를 뽑혔습니다.
얼마나 자랑스런 딸이었겠습니까? 그런데 이 딸이 인도네시아에 전지훈련을 갔다가 수영하다가 그만 죽었다는 소식이 온 것입니다. 그렇게 좋아했던 딸이기에 쉽게 잊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리고 난 뒤에 정신적으로 큰 홍역을 치른 뒤에 이 선생님이 고아원에서 초등학교 나이가 된 딸아이 하나를 양녀로 데려다가 키웁니다. 한나에게 한 그대로 테니스를 배워주고 또 함께 테니스도 장난스레 치기도 했답니다. 그만큼 이 양딸을 천국에 간 친딸처럼 생각하고 애정을 많이 쏟은 것입니다.
그런데 이 딸에게는 고아원에서 익힌 도벽이 있었습니다. 한 번 두 번 지갑에서 돈이 없어지기 시작하는데 몇 번 다그쳐서 다시는 안 하겠다는 다짐을 받은 뒤에 몇 번 용서를 해 주었는데도 잘 안되더랍니다. 아이에게 점점 실망되고 또 양딸을 키우는데 한계가 느껴졌습니다.
그런데 또 결정적으로 지갑에서 돈을 또 슬쩍하여 감춘 일이 생겼습니다. 얼마나 분이 나든지 이제는 더 이상 못 키우겠다고 생각하고 다시 고아원으로 데려줄 참으로 콜택시를 불렀습니다.
그런데 이 아이가 고아원으로 돌아갈 생각을 하니 끔찍해졌습니다. 분명 고아원보다는 이 집에서의 생활이 천국같은 생활인데... 아빠에게 손이 발이 되도록 빌고 또 빕니다. 그리고 아빠 이번 한 번만 더 용서해 주면 정말 다시는 안하겠다고 눈물 콧물을 흘리면서 애원을 합니다.
그러나 이미 몇 번이고 속았던 이 선생님으로서는 더 이상 용서할 마음이 생기지 않았습니다. 밖에서 차가 왔는지 경적 소리가 “빵빵”하며 울립니다.
안 나가려는 아이의 손을 잡아끌고 밖으로 나갑니다. 아이가 울면서 “아빠 아빠 용서해주세요” 애원합니다. 화가 어디까지 쏟은 이 선생님이 “내가 어떻게 네 아빠냐 너는 나하고 피 한방울 안섞였다. 다시는 아빠라고 부르지 마”하고 말합니다.
그런데 이 어린 것이 양아버지의 그 말을 듣고 더욱 슬피 울며 바지 가랭이를 잡고 이렇게 말합니다.
“아니야 아니야 우리 아빠야, 나에게는 처음 아빠야. 다른 어디에도 우리 아빠는 없어”하고 외치며 울더랍니다. 이 말에 이 선생님이 가슴이 저려 오더니 고아원에 데려다주려는 것을 포기하고 아이를 데리고 울면서 들어왔답니다.

그리고 난 뒤 이 선생님이 하나님과 자신과의 관계를 다시 생각하는 기회가 되었답니다. 그리고는 신대원에 시험을 치고 입학하였습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 큰 잘못을 범하였을지라도 그래도 “주님 밖에 없습니다”하고 고백하면 주님은 우리를 용납하시는 것입니다. (♬ “주 나를 박대하시면 나 어디 가리까”)

성도 여러분, 이제까지 어떻게 했던지 간에 이제 다시 우리는 우리 주변에 하나님을 떠나 행한 모든 것을 다 던져 버리고 오직 주님 밖에 없다는 고백을 가지고 하나님께로 나가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 주님이 상한 마음 고치시고 우리를 주님의 품에 다시 안아 그 풍성한 긍휼을 내려 주시는 것입니다.

이제 회복하여 이 주님의 은혜를 받는 여러분이 되시길 축원합니다. - 아 멘 -(주후 2002. 7.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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