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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기를 지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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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및 요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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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절기를 지키라
성경> 출34:18-24
찬송> 307, 489장


●맥추감사절의 근거(유래)
오늘은 교회의 절기 중에 '맥추감사주일'입니다.
교회를 나온지 오래되지 않는 사람은 교회에 어떤 절기가 있는지 잘 모릅니다. 술을 좋아하시는 새신자가 교회를 나갔는데 마침 맥추감사주일이었나 봅니다. 주보에 맥추(麥秋)감사주일이라 쓰여진 것을 보고 그 사람은 '어찌 교회에서 '맥주(麥酒)감사주일'이 다 있나' 생각했답니다.

3월 초에 우리교회에 제직세미나을 인도하셨던 정판술 목사님이 경남 어떤 지역에서 목회를 하고 계실 때 이야기입니다. 주보를 새 인쇄소에 맡겼는데 그 인쇄소에 일하시는 분이 교인이 아니었던 모양입니다. 맥추감사주일에 주보를 보니 '맥주감사주일'이라고 되어 있더랍니다. 그런데 그것만 잘못 되었으면 그래도 괜찮은데 설상가상으로 목사님의 이름도 정판술을 '정술판'으로 바꾸어 놓았더랍니다. 그래서 그 주일은 맥추감사주일이 아니라 술판 목사가 인도하는 맥주감사주일이 되었답니다.

구약 성경에 하나님이 지키라고 명하신 3대 절기가 있습니다. 유월절, 맥추절, 수장절입니다.
유월절은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에서 나올 때 생긴 절기입니다.
맥추절은 말 뜻 그대로는 보리를 추수한 절기라는 의미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3, 4월에 보리와 밀의 첫 열매를 거두면서 첫 곡식의 추수가 시작됩니다. 그 추수가 마치는 시기가 5, 6월경인데 이때 첫 수확을 감사하며 드리는 제사가 맥추절입니다.
수장절은 9, 10월경인데 이 절기는 한 해의 모든 곡식을 다 거두고 저장한다는 의미(거둘 수(收), 저장할 장(藏))에서 감사를 드리는 제사입니다.
유월절은 그 다음 한 주간 이어지는 절기가 무교절이기 때문에 무교절과 같은 뜻으로 사용될 때가 많이 있습니다.
맥추절은 유월절이 지나고 칠일을 일곱 번 지나고 온다는 의미에서 칠칠절, 그 날이 오십일 째 되는 날이라 '오순절'이라고 하기도 합니다.
수장절은 그 시기가 이스라엘의 초막절(장막절)과 같습니다.
오늘날에 유월절은 구원과의 관련성에서 부활절과 맥을 같이하고, 맥추절은 한 해의 상반기를 인도, 보호하신 것을 감사하는 뜻으로 맥추감사주일로 지키며, 수장절은 한 해의 모든 것을 감사하는 추수감사주일로 지킵니다.

오늘 성경 본문 전후에 이 3대 절기가 다 나옵니다.
23절에 "매년 세 번씩"이라고 하였는데 유월절과 맥추절, 수장절입니다.
(18절에 무교절, 곧 유월절을 지키라고 되어 있습니다. 22절에 맥추절과 수장절을 지키라고 되어 있습니다.)

오늘은 이 절기의 의미를 생각해 보면서 하나님은 어떤 의미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이 절기를 지키라고 하셨는지, 그리고 그 명령을 이행할 때에 하나님은 어떤 은혜와 복을 주실 것을 약속하셨는지 말씀을 받겠습니다.

1. 절기를 지켜라(18, 22)
먼저, 하나님이 절기를 지키라고 한 의미입니다. 성경을 보면 하나님은 이 절기를 집요하게 지키라고 말씀하십니다. 왜 그렇게 강조하시는가? 절기를 지킨다는 것은

1)하나님 백성으로서의 고백입니다. 절기를 지킴으로 절기를 지키지 않는 다른 사람과 구별되게 하시는 것입니다.(23)
세상의 모든 나라는 그 나라 고유의 명절이 있습니다. 그 명절은 그 나라의 문화와 밀접한 관련이 있고 그 명절을 지킴으로 그 사람은 그 나라의 백성인 것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한국에는 설날과 추석이 큰 명절입니다.
이 명절이 되면 민족대이동이 시작됩니다. 모두가 이 명절을 지키기 위해 고향으로 향합니다. 해외에 있는 교포들까지도 날짜를 기억해 두었다가 이 명절을 지킵니다. 이들이 타국에서도 한국의 명절을 지킴으로 그 나라 사람들은 대한민국의 백성임을 알게 됩니다. 며칠 전 미국의 명절인 독립기념일이 있었습니다. 그 날이 미국은 국경일이고 휴일이었고 또 우리나라의 미국 대사관까지 공휴일이었지만 우리에게는 별 의미 없는 날이었습니다. 그러나 미국 국민들에게는 테러의 가능성에 긴장하면서도 축제의 날이었습니다. 민족마다 각각 자기의 명절이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에게도 지켜야할 절기가 있습니다. 우리는 그것을 지킴으로 우리 자신이 누구인지를 고백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도 세상 사람들과는 다른 사람입니다. 우리는 대한민국의 백성이지만 영적으로는 하나님의 백성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자기 백성을 삼으시려고 자신의 아들의 피 값을 지불하였습니다.
예수님이 빌라도에게 심문을 받으시면서 "내 나라는 이 세상에 속한 것이 아니다"라는 말을 하셨습니다. 우리는 대한민국의 백성으로 살면서도 우리에게 더 중요한 영적인 신분이 있음을 고백해야합니다. 입으로도 고백해야하지만 우리의 행동으로도 고백해야합니다. 그 고백 중에 중요한 것이 절기를 지키는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우리에게 자신들이 지키지 않는 절기가 있음을 보고 우리에게 물을 것입니다. 왜 그런 절기를 지키느냐고? 그때 우리는 분명히 대답해야합니다. 우리는 이 세상의 백성이지만 그 근본적으로 하나님의 백성이라고 말입니다. 우리는 이 세상의 백성으로서 그 책임을 다하겠지만 우리에게는 더 귀중한 책임이 있고 더 귀중한 소망이 있다는 것을 말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이 땅에 살지만 우리의 삶의 목적과 신분을 정확하게 정립하고 살아야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백성으로서의 신분을 나타내야할 그 시기에는 분명하게 그것을 나타내야 합니다.

예화)1997년 발생했던 金正日의 처 성혜림씨의 조카인 귀순자 李韓永씨 피격 사망사건을 기억하십니까? 이 사건을 수사하는 과정에서 밝혀진 더욱 큰 충격적인 사실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서울대 교수였던 고영복 교수가 고정간첩으로 활동한 사실이었습니다. 고영복 교수는 그 동안 보수우익 교수로 행세하면서 한국사회학회장, 현대사회연구소장, 한국문화정책개발원장 등 각종 사회활동을 해왔습니다. 그의 글은 학생들의 교과서에까지 실렸습니다.
그는 26년간 대한민국 사람으로서 누구보다 충실한 학자처럼 보였습니다. 그러나 그 스스로 더 중요하게 여긴 자신의 신분이 있었는데 그것은 북한의 지령을 받고 그 지령대로 행동하는 간첩이라는 신분이었습니다. 그는 북한의 지령이 떨어지면 남한에서의 자신의 중요한 모든 것을 포기하고 북한의 지령을 수행하였습니다.

성도 여러분, 이렇듯 헛된 이데올로기에도 자신의 목숨을 바쳐 충성을 나타내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남한에 살면서도 그들의 이상은 사회주의 나라 건설이었습니다.
우리는 대한민국 백성이지만 또 하나님 나라의 백성입니다. 이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없습니다. 이제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이 세상에서 정말 구별된 의식과 삶을 살고 있는지 생각해 보아야할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을 행동으로 고백해야 할 것입니다.

가끔 우리의 중요한 신분을 잊고 하나님이 지키라고 말씀하시는 것들을 너무 가볍게 여기는 사람들을 볼 때는 참으로 가슴이 아픕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들의 신앙이 침체되었다가 다시 회복되는 시기에 꼭 행했던 것이 절기를 회복하는 것이었습니다. 요시야 왕의 종교 개혁이 성공적으로 이루어지자 곧 바로 행하였던 것이 유월절의 회복이었습니다.(왕하23:21-22) 에스라 느헤미야 시대에 이스라엘이 수문앞 광장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회복하자 그들은 장막절(초막절, 수장절)을 지키기 시작하였습니다.(느8:14)

21절에는 안식일을 지키는 것이 3대 절기 사이에 들어 있습니다. 주일을 지키는 것에서부터 우리는 다시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우리가 주일을 지키는 것으로 우리의 정체를 분명하게 드러내는 것에서 실패한다면 곧 기독교는 아무 영향력이 없는 종교가 될 것이고, 이제 곧 주일날 문 닫힌 교회를 보는 것은 어렵지 않을 것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우리는 오늘도 맥추감사주일을 절기로 지키면서 우리는 하나님의 구별하신 백성인 것을 고백하는 것입니다.

2)감사하는 백성이 되라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언급된 유대인의 3대 절기는 모두가 감사의 외적 표현입니다.
유월절은 이스라엘이 애굽에서 종살이하던 것에서 해방시켜 준 것에 대한 감사였습니다. 맥추절은 이스라엘이 가나안에 들어간 후 첫 곡식을 수확케 하셔서 감사한 것이었고, 수장절은 한해를 먹이신 것과 남은 날에도 은혜로 지키실 것에 대한 감사였습니다.

하나님은 절기를 맞이하면서 우리 자신을 돌아보게 해 주십니다. 우리 자신이 감사하며 살아가고 있는지 말입니다. 하나님의 백성의 특징 중에 중요한 요소는 '감사'입니다. 우리 속에 감사가 있으면 우리는 하나님의 백성으로 표를 가진 사람입니다. 그러나 우리에게 불평, 불만이 넘치면 아직 우리는 하나님의 인식표가 없는 사람입니다.
군인들이 항상 지니고 다녀야하는 목걸이가 있습니다. 그것을 인식표라고 합니다. 거기에는 군번과 이름이 적혀있습니다. 혹 전쟁에 나가 죽더라도 그 인식표를 보면 누구인지 확인이 되는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이 우리 그리스도인들 볼 때 우리가 무엇으로 그리스도인이라는 표식을 나타내느냐? 그것은 바로 '감사'라는 것입니다.
독일의 실존주의 철학자 니체가 의미 있는 말을 남겼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이 과연 구원받은 사람들처럼 보인다면 나도 그들의 하나님을 믿겠노라" 무슨 말입니까? 그리스도인들이 구원을 받았다면 분명 매력적인 표시가 있을 것인데 그것이 무엇이냐고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어떤 환경, 상황 속에서도 감사할 수 있다면 그것은 분명 그리스도인들이 가진 매력이 될 것입니다.

많은 불신자들이 신자들의 이런 긍정적인 감사 태도 때문에 신앙의 길로 인도되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그들은 도무지 감사할 수 없는 상황인데도 감사하며 사는 그리스도인들을 보며 감동을 받습니다.

성도 여러분, 불행한 상황 속에서 불평을 늘어놓으면 무엇합니까? 빨리 감사로 그 상황을 전환시키십시오. 그러면 우리의 마음을 훨씬 더 가벼워지고 또 감사할 때 하나님이 주시는 은혜를 받게 됩니다. 그러므로 성도 여러분, 불평, 불만이 나올수록 더욱 감사하는 훈련을 합시다.
예화) 만원 버스에 어떤 부인이 아이들 넷이나 데리고 타더랍니다. 그런데 그 아이와 부인의 몸에서 얼마나 냄새가 나는지. 찌는 듯한 더위에 냄새까지. 이 사람이 '내가 이 상황에서 감사할 수 있다면 무엇이 있겠는가?'하고 생각을 해 보았답니다. 그리고 그가 곧 감사하였습니다. 무엇이겠습니까?
"하나님 저 여자가 내 마누라가 안된 것을 감사합니다"
여러분, 그 버스 속에서 불평하며 가는 것보다는 이런 감사 제목이라도 생각해내어 감사하는 것이 낫지 않습니까?

불평, 불만을 할 수 있는 상황 속에서도 항상 감사의 조건을 찾는 여러분이 되시기 바랍니다.

3)감사의 구체적인 표시를 물질로 하라는 것입니다.
20절 끝에 "빈손으로 내 얼굴을 보지 말지니라"
가끔 어떤 축하행사에 참석하고 나면 기념품이나 답례품을 줍니다. 괜찮다고 그냥 가겠다고 하면 "그래도 어떻게 빈손으로 가십니까?"하며 기어코 선물을 줍니다.
심방을 하고 돌아올 때, 다른 바쁜 일로 그냥 일어서면 가끔 이런 말을 듣게 됩니다.
"그래도 어떻게 맨입으로 가십니까?"

여러분이 하나님께 나올 때에도 이런 마음을 가지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부모님 생신을 맞이해도 그냥 가지 않습니다. 아이들의 생일이 되어도 그냥 지나치지 않습니다. 또 명절에 부모님을 뵐 때 선물 꾸러미를 챙깁니다.
하나님 앞에 절기를 지키면서 마땅히 우리의 감사를 물질로 표해야 할 것입니다. 그것은 우리가 물질 세상에 살기 때문입니다.
어떤 목사님이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리스도인의 거듭남의 증거는 제일 먼저 지갑에서부터 나타나야 한다."

초신자들의 경우 오해하지 말고 말씀을 들으시기 바랍니다. 여러분들은 헌금을 안하셔도 됩니다. 그러나 헌금이 이해가 되고 '그것은 할만한 것이다. 충분히 할 만한 가치가 있다. 더 나아가서 당연히 해야되는 것이구나' 생각이 되고 믿음이 생기면 하십시오.
그러나 지금은 기존 신자들에게 말씀드립니다. 이전에 제가 말씀드린 것처럼 저는 나중에 나 때문에 하나님이 주실 복을 못받았다는 사람은 없도록 해야한다는 생각입니다. 제가 성경적으로 가르쳐야할 영적 원리를 가르치지 않았기에 여러분이 나중에 하나님께 저 핑계를 대지 않도록 해야겠다는 생각입니다.

영국의 성경 주석가, 메튜 헨리(Mattew Henny ; 1662∼1714) 목사님은 "감사는 산수에서 더하기(+)와 같아서 모든 것에 감사하면 거기에 하나님의 복이 더해진다. 어떤 일이든지, 어디서든지 감사하면 플러스의 복이 주어진다. 그러나 반대로 원망과 불평은 빼기(-)와 같아서 있는 것까지 빼앗기고 없어진다."라고 말했습니다.

여러분이 감사를 분명하게 물질로 표현할 수 있다면 여러분은 물질로 더 큰 감사할 제목을 얻게 될 것입니다. 말로만 감사하면 말로만 감사할 것이 더 많아질 것입니다.
하나님은 인격적인 분이십니다. 갈6:7에 "스스로 속이지 말라 하나님은 만홀히 여김을 받지 아니하시나니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고 하였습니다.
만홀이 여긴다는 것은 '업신여긴다'는 의미입니다. 하나님을 물질로 업신여기지 마십시오.

가끔 절기감사 헌금을, 그것도 절기가 매주 있는 것도 아니고, 매월 있는 것도 아닌데 헌금을 아이들 용돈 주는 것처럼 내는 사람이 있습니다. 헌금의 액수는 여러분이 스스로 결정하셔야하지만 결코 하나님을 만홀히 여기는 일은 없어야합니다.

여러분이 물질로 하나님을 인정할 수 있을 때, 하나님 또한 여러분에게 물질의 복으로 인정해 주실 것입니다.
절기 헌금을 할 때, 십일조 수준을 생각하고 하라고 했습니다. 지금 그만한 결단이 없는 분들은 점점 더 그렇게 해 나가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분명 여러분이 복을 받게 될 것입니다.

2. 열방을 쫓아내고 네 지경을 넓히리니(24상) - 번성, 창대의 복

24절부터는 이런 정신으로 절기를 지키는 사람에게 하나님이 복을 주신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어떤 복입니까?

1)열방을 쫓아내고 네 지경을 넓히리니 - 대적을 이기게 하시고 창대의 복을 주신다.
24절에는 '열방을 쫓아내고 지경을 넓혀주신다'고 말씀합니다.
열방을 쫓아낸다는 말은 대적들을 이기게 해 주신다는 말씀입니다. 네 지경을 넓힌다는 말은 창대하게 되는 복을 주신다는 말씀입니다.

이 말씀의 성취는 다윗과 솔로몬 왕 때 이루어집니다. 하나님이 처음 아브라함에게 주겠다고 약속하신 땅의 경계가 창15:18에 나옵니다. 그 경계는 '애굽 강부터 큰 강 유브라데까지'라고 말씀합니다.
왜 다윗과 솔로몬 왕 때에 이루어집니까? 다윗과 솔로몬 때에 하나님의 율법이 정직하게 지켜졌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절기를 충실하게 지키는 이 왕들 때에 약속하신 말씀처럼 열방을 쫓아내 주셨고 그 지경을 넓혀 주신 것입니다.

우리는 이 말씀을 절기를 지키는 고백에서 생각해 보아야합니다. 하나님은 이 세상 가운데서 영적인 신분을 적당하게 덮고 살아가려는 사람에게는 자신을 나타내지 않습니다. 이미 그 사람은 세상 속에서 하나님을 부끄러워하는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분명한 자신의 영적인 칼러를 나타내는 사람에게는 그냥 지날 수 없는 것입니다. 이미 그가 하나님을 인정하기 어려운 세상 속에서 하나님을 인정하고 고백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를 지켜주실 수밖에 없습니다. 이미 그 성도는 '하나님 외에 나는 아무도 없습니다'라고 고백하였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아이들이 자기 아버지 믿고 큰 아이들에게 달라들면 아버지가 도와 줘야 안됩니까?

성도 여러분, 우리는 이 세상이 우리의 영원한 처소는 아니지만 이 세상을 영적으로 정복하며 살아야합니다. 분명 우리의 믿음이 옳았고 그것이 승리한다는 사실을 만인에게 드러내야 합니다. 그런데 그 능력, 힘은 우리에게 있지 않습니다. 우리는 모든 것을 할 수 있지만 능력주시는 자 안에서 그것을 할 수 있는 것입니다.

다니엘과 그의 세 친구는 바벨론의 조정에서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것을 분명히 나타냈습니다. 그 결과 그들은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그들의 대적을 다 쫓아내었고 그들은 다른 사람들로부터 더욱 큰 인정을 받았습니다.

3. 아무 사람도 네 땅을 탐내어 엿보지 못하리라(24하) - 보호, 지켜주심의 복
그 다음의 하나님의 약속은 "아무 사람도 네 땅을 탐내어 엿보지 못하리라"는 것입니다.
이 말씀의 의미는 이런 것입니다.
이스라엘의 남자들이 일년에 세 차례 하나님의 명령에 따라 감사의 절기를 지키기 위해 하나님 앞으로 즉, 성전이 세워지기 전에는 성막이 있는 곳으로, 성전이 세워지고 난 뒤에는 성전이 있는 예루살렘으로 가야했습니다. 남자들이 다 올라가면 집에는 여자들과 아이들만 남게 되었습니다. 그때를 노려 대적들이 그들의 집을 약탈하고 짓밟게 될 가능성이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네가 나의 명령을 지키기 위해 즉, 절기를 지키기 위해 집을 비울 때는 내가 네 집을 지켜 줄께'하고 말씀하는 것입니다. 위기의 때 일 수 있지만 그때에 하나님을 향한 신앙고백을 할 수 있다면 하나님이 그것을 지키시겠다고 약속하는 것입니다.

삼상7장에 보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범죄하고 타락하여 블레셋의 침략을 받게 됩니다. 그러다 사무엘의 충고와 제안으로 미스바에 모여 회개 집회를 가집니다. 그런데 블레셋 족속이 오히려 '기회는 이제다'고 하며 미스바에 무방비로 모여있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치기 위해 옵니다. 그때 하나님은 하늘에서 우박과 우뢰를 보내어 블레셋을 쳐주십니다. 이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힘을 얻어 블레셋을 쳐서 대승을 거둡니다. 그리고는 그들이 돌을 세워 하나님의 역사를 기념하였는데 그것이 바로 '에벤에셀'입니다.

위기의 때처럼 보일지라도 그때가 하나님을 철저하게 의지하는 고백의 때라면 위기는 성공의 기회가 됩니다. 환난의 때에도 하나님의 영광을 보게됩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백성임을 분명하게 나타내는 자들에 대한 하나님의 보호의 약속입니다.
시50:14-15에 "감사로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며 지극히 높으신 자에게 네 서원을 갚으며 환난 날에 나를 부르라 내가 너를 건지리니 네가 나를 영화롭게 하리로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하나님의 절대적인 보호가 필요한 존재들입니다. 내 집에 있다고 하여도 하나도 내 것이 아닙니다. 자식들이 나의 자식이라지만 우리가 보호해 줄 수 없습니다. 은행에 많은 돈을 저금해 두었을지라도 나의 것이 아닙니다. 값진 보석과 패물을 장롱 깊숙히 넣어두어도 그것이 우리의 것이 아닙니다.
"여호와께서 집을 세우지 아니하시면 세우는 자의 수고가 헛되며 여호와께서 성을 지키지 아니하시면 파수꾼의 경성함이 허사로다"(시127:1)

종교개혁자 칼빈(John Calvin ; 1509∼1564)은 "하나님을 보호자로 삼는 사람은 하나님의 그늘 아래서 안식을 누린다."라고 말했습니다.

●맺으면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은 맥추감사주일입니다. 하나님이 금년의 상반기도 우리를 여기까지 인도해 주셨습니다. 하나님께 드릴 수 있는 가장 아름다운 제사는 감사입니다. 그 감사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 더 큰 감사를 맞이하게 합니다.
"감사로 제사를 드리는 자가 나를 영화롭게 하나니 그 행위를 옳게 하는 자에게 내가 하나님의 구원을 보이리라"(시 50:23)

절기를 맞이할 때마다 구체적인 감사로 새로운 신앙고백을 하는 여러분이 되십시오. 그것은 마땅히 우리가 드려야하는 고백이며, 하나님은 그것을 통해 우리에게 또 다른 복과 은혜를 내리시기 원하십니다.
금번 맥추감사절을 맞이하여 더욱 큰 은혜와 복을 찬양하고 감사하게 되는 여러 성도들이 되시길 축원합니다. - 아 멘 -(주후 2002. 7.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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