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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최초의 가정
성경> 창2:18-25
찬송> 137, 305장

●남자의 행복, 여자의 행복
"남자는 자신이 인정받고 있다는 느낌이 들 때 행복함을 느끼고, 여자는 자신이 사랑 받고 있다는 느낌이 들 때 행복함을 느낀다."
이 말에 동의하십니까?
이 느낌이 실현되어야할 가장 구체적인 장소가 바로 '가정'입니다.

남자는 직장에서 인정받을 때도 행복합니다. 그러나 그가 가정에서 아내나 자녀들에게 인정받지 못한다면 그는 모든 것을 다 잃은 비참한 남자입니다. 바꾸어 세상에서 인정받지 못하지만 가정에서 인정받는 남편, 가정에서 인정받는 아버지는 절대 비참해지지 않습니다.
저는 세상에서는 인정받고 성공한 사람이었지만 결국 방탕한 삶을 살다가 결국 실패자의 인생으로 마치는 사람을 본 적은 있어도 가정에서 인정받는 남자가 비참한 인생이 되는 것은 보지 못했습니다.

여자의 행복은 역시 가정에 있습니다. 본디 여자는 가정을 지키기 위한 역사적 사명을 가지고 태어난 사람입니다. 남자 역시 그렇지만 여자의 역할은 더욱 구체적입니다.
그래서 여자의 행복은 남자보다 더욱 가정에 있습니다.

여자를 '아내'라고 말합니다. 그것의 어원은 '안 해'(inner sun)에서 나왔다고 합니다. 즉 여자는 어두울 수 있는 가정의 구석구석을 밝히는 태양 같은 존재라고 해야할 것입니다. 그래서 여자는 밖의 일보다는 안의 일에 더욱 만족을 얻게 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안에서 사랑을 느낄 때 행복한 자입니다.
축복송 "당신은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은 모든 사람에게 해당되지만 특히 특성상 여자의 주제곡입니다.

오늘로써 6월 한 달 동안 계속되던 월드컵이 막을 내립니다. 어제 3,4위전에서 져 아쉬움이 있지만 정말 대단한 성적을 거두었습니다. 독일과 4강전을 마치고 월드컵 국가 대표 선수들에게 히딩크 감독이 1일 휴가를 주었습니다. 휴가를 받은 이들은 그 짧은 휴가 시간에 국민들의 영웅이 된 자신을 과시하거나 확인하기 위해 거리를 나서거나 언론 매체의 인터뷰에 응하는 일이 우선이지 않았습니다. 그들의 대부분은 가족과 함께 시간을 보냈습니다. 이것이 바로 가정입니다. 그들이 엄청난 부귀와 명예를 얻는다고 할지라도 결국 돌아가야 할 가정이 없다면 가장 불쌍한 자인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는 왜 일과를 마치면 가정으로 돌아가는 것일까요?
그렇게 학습되고 훈련받았기 때문입니까?
아닙니다. 그것은 우리의 본능입니다. 본능이라는 것은 태어날 때부터 가지고 태어난 것을 말합니다. 태어날 때부터 가지고 태어난 것, 즉 하나님이 사람에게 심어 놓으신 것입니다.
하나님이 심어 놓으신 것이니까 그것의 정확한 것을 말해 주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 외에는 없습니다.
즉, 가정이라는 것을 만드신 분이 하나님이시라는 것이고 가정이 무엇인지는 성경만이 정확하게 말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직접 만드신 제도가 두 가지 있습니다. 그것의 첫째는 가정이고 둘째는 교회입니다.
그래서 우리의 가정이 교회 같고, 우리의 교회가 가정 같으면 정말 행복한 삶을 살게 되는 것입니다.

●버티컬 같은 가정
그런데 오늘 우리의 가정의 현실을 보면 '행복'이라는 단어와는 거리가 먼 가정들이 많이 있습니다. 분명 가정은 우리의 행복의 보금자리이어야 하지만 도리어 불행의 근원지와 같이 여겨지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어느 목사님이 세미나에서 자신의 교회의 통계를 근거로 해서 "이미 깨어진 가정이 1/3, 버티컬 같은 가정이 1/3, 그나마 자리를 잡고 있는 가정이 1/3이다"는 말을 듣고 실제로 그러하다는 생각을 하였습니다.

우리의 가정은 어떻습니까? 혹 여러분의 가정은 버티컬 같은 가정은 아닙니까? 여기서 버티컬 같은 가정이라는 말은 멀리서 보면 붙어 있지만 가까이 다가가서 자세히 보면 하나하나 떨어져 있는 것을 말합니다. 즉, 가정이라는 이름 하에 모여 있지만 세밀하게 살피면 이미 깨어진 것이나 다름이 없는 가정이 많다는 말입니다.

가정이 행복의 처소가 되지 못하고 불행의 처소라면 굳이 결혼이라는 힘든 과정을 통해 이런 저주의 굴레를 만들 필요가 없을 것입니다.

●행복한 가정 찾기
성도 여러분, 우리의 가정을 회복합시다. 여러분의 가정이 진정 행복의 처소가 되기를 축원합니다.
그러나 우리의 가정이 행복한 가정이 되기 위해서는 먼저 가정이 무엇인지 공부부터 해야합니다. 교과서는 성경입니다. 하나님이 가정을 만드셨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오늘 성경에서 최초의 가정이 탄생하는 것을 보게 됩니다. 그 가정을 보면서 우리의 가정이 행복한 가정이 되기 위해 회복되어야 할 것이 무엇인지를 다시 한 번 생각해 봅시다.

저는 아직 결단을 내리지는 못했습니다만, 기회가 되면 일정한 기간 매월 특정한 주에는 가정에 대해 말씀을 전할까 생각해보고 있습니다. 가정 안에는 먼저 부부관계가 있고, 자식과 부모와의 관계가 있습니다. 시부모님과의 관계가 있고 또 처부모님과의 관계가 있습니다. 자연히 남편 형제들로 인한 동서 관계가 있고, 또 아내 형제들을 중심으로 형성된 동서지간도 있습니다.
우리가 가장 많이 상처입고 괴로워하게 되는 대부분 것은 이들과의 관계에서 생기게 됩니다. 이런 관계들만 하나님이 가르쳐 주시는 원리로 행할 수 있다면 우리는 이 땅에서도 천국을 고백하면 살게 될 것입니다.

●가정의 근본 부부 관계의 파괴
우리는 인간의 불행이 어디서 시작되었는지를 말할 때 그것은 곧 사단 유혹에서 시작되었다고 말합니다. 사단은 뱀의 모습으로 다가와 선악과를 따먹도록 하와에게 유혹하기 시작했습니다. 결국 하와는 따먹고 말았고 그것을 남편인 아담에게도 주어 먹게 했습니다.
그래서 나타난 범죄의 결과가 무엇입니까? 인간관계의 파괴입니다. 그 중에서도 부부, 즉 남편과 아내의 관계가 파괴된 것입니다.

범죄하기 전의 아담은 하와를 보면서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내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이라"
그러나 범죄 후 하나님이 아담에게 범죄를 추궁하실 때 이렇게 말합니다.
하나님이 주셔서 나와 함께 하게 하신 여자 그가 그 나무 실과를 내게 주므로 내가 먹었나이다"(3:13)

어떤 여성도가 성경공부를 하다가 이 말씀을 보고는 "이제야 알겠다!"라고 말했습니다. "무엇을 알았다는 말입니까?"하고 물으니 자기 남편이 결혼하기 전과 결혼 한 후 어떻게 그렇게 달라질 수가 있는지 분노가 치밀었는데 그 답이 여기에 있더라는 것입니다.

하와의 후손인 여자들은 남자의 이와 같은 책임감 없는 말을 제일 싫어합니다. 그들은 남자에 의해 보호받기를 원하고 위기의 순간에 남자가 대신해 주기를 원합니다. 그것으로 남자에게서 '당신은 나에게 가장 귀한 존재'라는 고백을 받고 싶어합니다. 그것을 확인할 때 가장 행복한 것입니다.
그 순간 하와가 원했던 답은 이런 것이었을 겁니다.
"하나님, 다 제 잘못입니다. 하나님 하와에게 먹지 말라고 하신 것이 아니라 저에게 말씀하셨지 않습니까? 제 아내의 연약함이 다 제가 제자리를 지키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아내에게 내릴 벌이 있다면 저에게 내려 주십시오."

결국 여기서 사단이 아담과 하와를 유혹하였을 때, 사단의 공격 목표가 가정에 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부부에게 있었던 사랑과 신뢰의 관계를 서로 "너 때문이다"라고 말하며 책임을 전가시키도록 하여 가정을 풍지박산시키는 것이었습니다.

●가정은 고독을 느끼는 곳이 되면 안 된다.(18)
그러면 처음 가정을 만들면서 하나님이 의도하신 것은 무엇입니까?
고독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18절 "독처하는 것이 좋지 못하니"

하나님은 아담이 혼자 있는 것을 좋지 않게 보셨습니다. 이것은 사람의 혼자 있는 것 자체가 위험하다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하와를 보냅니다. 그와 똑 같은 성(性)을 가진 사람을 보내시는 것이 아니라 다른 성, 이성(異性)을 보냅니다.
그것으로 우리는 다른 이성이 함께 있을 때에 우리의 고독은 해결된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아담의 고독을 치유하기 위해 10명의 동성 친구를 보내신 것이 아니라, 한 사람의 여성을 보내셨다는 사실을 주목해야합니다.

그래서 청년들이 많은 친구를 가지고 있어도 무엇인가 외로움에 사무치는 것입니다. 한 남자가 아무리 마음을 터놓고 이야기할 친구가 있다고 하더라도 고독한 것입니다. 한 여성이 수다를 떨 친구를 아무리 많이 두어도 고독한 것입니다. 그것은 한 명의 이성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고독하지 않기 위해 결혼을 합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이상하게 결혼하고 난 뒤 더 깊은 고독을 느끼게 됩니다. 문제가 무엇입니까? 결혼을 하고 가정을 이루었는데 그 가정에서 고독을 느끼게 된다면, 결혼하기 전에 혼자 있을 때 고독을 느끼는 것보다 훨씬 더 심각한 상태가 됩니다.
그것은 약을 먹었는데도 치유가 되지 않고 병이 더욱 중해지는 것과 같습니다.

가정 내에서 일어나는 고독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사람들은 다른 것에 눈을 돌립니다.
남자들의 경우 일에 매여버립니다. 거기에서 성취감을 맛보고 고독을 해결하려고 하는 것입니다.(일 중독) 어떤 사람은 친구들과의 사교적인 모임으로 그 문제를 해결하려고 합니다.(남편이 친구를 좋아해서 진절머리가 난 아내들) 어떤 사람은 이전에 하지 못했던 공부에 자신을 던져버립니다.(한국 유학생들의 경우 혼자 유학오는 것을 외국 사람들은 이해하지 못한다. 그들은 말한다. "당신 가족보다 공부가 더 중요하다는 말입니까?"하면 놀란다.)
안 좋은 경우는 술에 마약에 빠집니다. 이 문제를 노골적으로 해결해 보려는 사람은 다른 여자를 생각하게 됩니다.
여자의 경우 쇼핑을 합니다. 취미 생활을 시작합니다. 자식들에게 더욱 큰 관심을 갖고 애정을 쏟게 됩니다. 불건전한 사교 모임에 매력을 느끼게 됩니다. 그러다가 역시 다른 남성에게서 자신의 고독을 해결하려고 합니다.

그러나 본문 성경 20절은 우리에게 있는 고독이 다른 것으로는 대체할 수 없다는 사실을 알려줍니다.
20절에 보면 아담은 하나님이 자신에게 주신 고유한 일을 하고 있습니다. 그것을 훌륭하게 잘 해냅니다. 그러나 그는 역시 한 사람의 돕는 배필을 필요로 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정해놓으신 법대로 살지 않고는 다른 어떤 것으로도 우리의 인생의 문제를 해결할 수 없는 것을 알아야합니다. 다른 것으로 채우려 할 때에 결국 행복은 더 멀리 달아나 버리고 삶은 더욱 비참해지는 것입니다.

●가정을 모른다
정말 무엇이 문제입니까?
먼저, 그 원인은 우리가 하나님이 세우신 가정이 무엇인지 너무나 모르는데 있습니다.

단지 우리가 지닌 가정에 대한 지식이란 우리의 부모를 통해 경험한 것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대부분 (그렇지 않는 사람도 있지만) 가정의 모범 사례를 보고 공부한 것이 아니라 부정적인 사례를 보고 그것에 익숙해져 있습니다. 많은 경우에 우리의 경험은 우리의 어린 시절, 내가 몸담고 있었던 가정이 행복했다는 기억이 많지 않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결혼이 무엇인지 가정이 무엇인지를 어렴풋이나마 감잡게 되는 때는 이미 많은 시행착오를 겪고, 고통의 많은 세월을 보내고 난 뒤입니다. 또 이미 잃을 것을 너무 많이 잃어버린 때입니다. 그때 우리는 우리의 자녀들에게 해 주는 말이 "너는 이렇게 이렇게 살아라"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 "너는 이렇게는 살지 말아라"하고 말하게 됩니다.
그런데 불행하게도 이 부정적인 사례를 보면서 자란 사람들이 그것을 답습한다는 사실입니다. 저는 5월 달에 '축복과 저주의 대물림'이라는 말씀으로 이 부분에 대해 약간 언급한 적이 있었습니다.

이제 달라져야 합니다. 이제라도 새롭게 배워야 합니다.
미혼인 우리 청년들, 절대 준비 없이 결혼하지 마십시오. 배우십시오.
여러분, 우리가 얼마나 어리석은지 아십니까?
행복하기를 바라고 결혼이라는 관문을 통과해 가정을 이루지만 사실 가정에 대해 깊이 생각해 보지도 않고 배우지도 않고 공부도 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운전하기 위해 면허증 하나 따려고 해도 예상 문제집 한 권은 떼야 하고, 실제 주행에 앞서서는 얼마나 조심스럽게 자동차의 기능을 하나 둘 익히는지 모릅니다. 그런데 우리의 인생의 운명을 결정지을 가정을 이루는 결혼 앞에서 너무나 준비 없이 결혼하지 않습니까? 고작 준비한다는 것이 혼수감이나 신경쓰다가 또 이것 때문에 마음만 상하고... 그것뿐입니다.

정말 이건 아닙니다. 이래서는 우리가 행복할 수 없습니다.
앞으로 우리 교회 청년들은 꼭 '결혼예비학교'를 이수하도록 할 것입니다. 본 교회 청년들의 경우 이 과정을 이수하지 않으면 결혼 주례를 안 해 줄 것입니다.
(앞으로 남편사랑교실, 아내사랑교실, 부부사랑교실, 자녀사랑교실, 고부화목학교등 장기적인 안목에서 해야할 것이다.)

●남여의 차이부터
우리는 가정의 창조자이신 주님으로부터 가정을 배워야합니다. 곧 성경으로부터 가정을 배워야합니다. 많은 부분을 언급할 수 있겠지만 오늘은 그 문제성을 인식하고, 가장 기본적인 것만 우리가 다시 짚고 마쳐야하겠습니다.

그것은 먼저, 하나님이 사람을 만드실 때 분명 남자와 여자로 만드셨다는 사실부터 시작해야합니다. 창1:27에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으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

우리는 하나님이 사람을 같은 성(性)으로 만들지 않고 다른 이성(異性)으로 만드신 사실을 깊이 생각해야합니다. 하나님이 남자와 여자로 만드셨다는 말은 남자와 여자가 다르다는 말입니다. 같은 하나님의 형상을 가지고 있지만 남자와 여자는 다릅니다.

우리는 먼저 남자와 여자의 차이를 인정하고 배우고 받아들이고 배려해야 합니다.

남자와 여자가 다른 점은 이루 말할 수 없습니다. 어쩌면 사람이라는 것 외에 모든 것이 다르다고 해야할지 모릅니다. 그 중에 '말'이라는 것을 가지고 생각해 봅니다.
사람 관계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말입니다. 사람은 말로써 의사 소통을 합니다. 그런데 남자와 여자는 말을 쓰는 것에서부터 많은 차이가 있습니다.

7월호 주부편지에 나온 글입니다.
여자는 하루에 6천 마디의 말을 하고, 남자는 2천 마디의 말을 한다는 통계가 있습니다. 그렇다면 여자는 남자보다 3배가 더 많은 말을 하는 셈입니다. 그런데 하루 일과 시간을 기준으로 따져 보면, 남자나 여자나 똑 같이 2천 마디 정도의 말을 한다고 합니다. 결국 남녀의 말수가 3배의 차이를 보인 것은 일과 시간 이후의 상황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남자는 이미 하루치의 말을 일과 중에 다 해 버렸기 때문에 더 이상 말하기를 귀찮아하지만, 여자는 일과 후에도 여전히 말을 하고 싶어합니다.

※남자vs여자 차이점
1. 남자는 결론을 얻을 때까지 말을 하지 않고 여자는 결론을 얻을 때까지 말을 한다.
2. 남자의 말은 사실적이지만 여자의 말은 함축적이다.
3. 남자는 문제해결을 위해서 말을 하고 여자는 마음의 답답함을 해결하기 위해서 말을 한다.
즉, 남자는 침묵으로 피곤을 풀지만, 여자는 말을 함으로써 피곤을 푼다.
4. 남성은 세상을 변화시키고 싶어하고 여성은 남성을 변화시키고 싶어한다.
5. 남자들은 자신을 알아주는 사람을 위해 목숨을 바치고 여자들은 자신을 사랑해주는 사람을 위해 목숨을 바친다.
6. 남자는 한번에 한 가지 일에 열중하고 여자는 한 번에 두 가지 이상의 일을 할 수 있다.
7. 남자는 그녀의 옷이 너무 많다고 생각하고 여자는 그의 술값이 너무 많다고 생각한다.

설문을 통해 조사한 바에 의하면 여자들이 제일 싫어하는 것은 남자는 무뚝뚝함이며, 남자들이 제일 싫어하는 것은 여자의 잔소리입니다.
예)경상도 사람끼리 결혼한 부부 중에 아내의 잔소리에 진절머리가 난 남편이 아들이 결혼할 때 충청도 여자와 결혼하라고 말했다. 충청도 여자와 결혼하면 아무래도 말이 느리니까 들을 잔소리가 적을 거라는 생각으로.
그러나 아들은 결혼을 하자마자 아버지를 원망했다.
그 느릿느릿한 말투로 할말을 다 하니 성질 급한 경상도 남자는 더 죽을 맛이었던 것이다.

●다른 목적으로 지으심
오늘 본문에도 남녀의 다른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남자와 여자의 지으신 목적이 각각 다르다는 것입니다.
유치원에서 남자아이와 여자아이의 노는 것이 다릅니다. 남자아이는 총을 가지고 전쟁놀이를 하고 여자아이는 인형을 가지고 빗질을 해주고 옷을 입혀줍니다. 그리고 소꿉놀이를 합니다. 우리는 참 신기해 하면서도 남자와 여자가 다르다는 것을 어릴 때부터 인정합니다. 그러나 성인이 되어서 정작 인정해야할 때는 그것을 다 잊은 듯이 생활합니다.

19-20절에서 하나님은 아담에게 일을 주셔서 시킵니다. 이 일이 아담에게 사명입니다. 그런데 여자인 하와에게는 돕는 배필로서의 사명을 주셨습니다.
여기에 '돕는 배필'의 의미를 잘못 이해해서는 안됩니다. 돕는 자이기 때문에 남자보다 덜 중요하다는 뜻이 아닙니다. 이미 하나님은 남자와 여자를 지으실 때 동일하게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하셨다고 했습니다.(창1:27) 그러므로 모두 다 하나님의 형상인 인격체입니다.

어떤 사람은 여자는 남자의 갈빗대를 가지고 만들었으니 남자의 부속품이 아니냐고 말하면서 남성우월론을 말합니다. 그러나 굳이 그렇게 말한다면 여자는 남자의 가장 핵심부품입니다. 그러기에 이 부품 없이는 남자라는 기계는 돌아가지 않습니다.
이 갈빗대가 제자리를 찾을 때 남자는 제기능을 다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돕는 배필의 의미인 것입니다.
이전에 우리 어른들이 배우자 중에 한 사람이 먼저 세상을 떠나면 '옆구리가 허전하다'는 말을 썼는데 그 말이 얼마나 성경적인지 모릅니다.

그러나 이것으로 인해 여자가 더 우월한 것도 아닙니다. 요사이는 여성의 권리가 강조되다 보니 남성들이 더 많은 충격을 받습니다. 우리나라만큼 급속히 여성의 인권이 회복되는 곳은 없습니다. 그만큼 여자들이 비참하게 살았다는 말이 되기도 하겠지만 그러기에 충격을 받는 쪽은 준비되지 않는 남성입니다. 남성들에게 여성상은 그들의 어머니입니다. 그러나 남자들은 그들의 어머니와 너무나 다른 여성들을 보고 어떻게 해야할 지를 모릅니다.
요사이 정신병 환자들은 여자가 많은 것 같지만 중증은 여자보다 남자가 더 많습니다. 그만큼 남성이 약해졌다는 말이고 또 남자들이 혼란을 겪는다는 말입니다. 수용되어 있는 시설을 가 보십시오. 남자가 여자보다 3배가 많습니다.

성경이 줄곧 이야기하는 것은 남자와 여자의 질서문제입니다. 23절 말씀은 여자가 남자를 보는 시각이 어떠해야하는지를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남자에게서 취하였은즉 여자라 칭하리라"
남자는 히브리어로 '이쉬'입니다. 여자는 남자라는 단어의 끝에 여성어미를 붙여 '이수ㅑ'입니다. 이 말은 여자라는 말 자체가 항상 남자에게서 나온 것을 기억하게 하는 말입니다. 그래서 항상 남자는 대표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남자는 이 대표성을 목숨처럼 여깁니다. 이것이 무시되기 시작할 때 남자는 남자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여자는 '곧 죽어도 남자'라는 부분을 세워주어야 합니다. 그것은 남자에게 생명과도 같은 부분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여자의 생명은 사랑입니다. 여자는 자신이 나온 그 갈빗대의 사랑을 간절히 사모합니다. 이것이 없는 여자는 가장 불행한 여자입니다.
그래서 바울 사도는 이렇게 가르쳤습니다.
"아내들이여 자기 남편에게 복종하기를 주께 하듯 하라 이는 남편이 아내의 머리 됨이 그리스도께서 교회의 머리 됨과 같음이니 그가 친히 몸의 구주시니라…남편들아 아내 사랑하기를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시고 위하여 자신을 주심 같이 하라 …이와 같이 남편들도 자기 아내 사랑하기를 제 몸 같이 할지니 자기 아내를 사랑하는 자는 자기를 사랑하는 것이라"(엡5:22-28)

●하나님과의 관계부터 회복
인간이 범죄 후 아담과 하와의 서로의 관계가 끊어지기 전에 먼저 파괴된 관계가 있었습니다. 하나님과의 관계입니다.
범죄한 후 아담은 하나님이 무서워졌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부르는 음성을 듣고서 그는 이렇게 말합니다.
"내가 벗었으므로 두려워하여 숨었나이다"
모든 것이 다 노출되어도 편했던 하나님과의 관계에 이상이 온 것입니다.

우리가 가정을 회복하고 남편과 아내의 관계를 회복한다고 할 때 우선적으로 회복해야하는 것이 바로 하나님과의 관계입니다. 결국 가정이란 하나님이 만드신 것이고 그 만드신 분 앞에서 회복하지 않으면 진정한 가정의 회복도 불가능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의 가정을 회복하시되 하나님의 관계부터 회복을 시도하십니다. 그래야 하나님이 가지신 가정에 대한 간절한 소원을 알 수 있고 우리는 그 계명을 기꺼이 따를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맺으면서 -부부 무촌
부부는 '무촌'(無寸)이라는 말을 합니다. 이 말은 쓰기에 따라 아주 성경적인 말이 되기도 합니다만 부정적인 말도 됩니다. 부부는 마주보면 하나 돌아서면 남남이라고 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무촌은 가장 가까운 관계를 의미할 수도 있고, 아무 관계없음을 의미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적인 관계는 뗄 수 없는 하나라는 것입니다. 갈빗대가 제자리를 찾아가면 그것은 한 몸이 되는 것입니다.(24)
한 몸은 자신이 하는 어떤 행동이든지 부끄러워하지 않습니다.(25)
가정에서 부끄러워지고 눈치가 보여지는 사람은 진정한 하나가 아닙니다. 부부의 관계는 나의 몸처럼 편해야합니다.

어떤 목사님이 남편과 아내의 속어인 마누라라는 말을 이렇게 풀이했습니다.
남편은 '남의 편에서 생각해 주라.' 마누라는 '마주보고 누워라'

최초의 가정에서 서로의 차이를 인정하고 하나님이 지으신 목적에 따라 자신의 자리를 충실하게 지키며 가정을 통해 이루시려는 하나님의 뜻을 온전히 좇아가는 여러분의 삶이 되시길 축원합니다. - 아 멘 -(주후2002. 6. 30/ 부부함께 출석주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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