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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유 향기 가득한 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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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및 요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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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향유 향기 가득한 집
성경> 요12:1-8
찬송> 40, 53장

●지난주 설교 말씀
지난주에 하나님은 우리에게 예배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말씀해 주셨습니다. 예배는 일주일에 한 번씩 돌아오는 종교 행위가 아니라 우리의 삶의 중심이 되어야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즉 예배는 우리의 삶의 주변에 있는 여러 가지 일 중의 하나가 아니라 우리의 삶의 중심이 되어야 할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그래야 우리의 삶도 회복된다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예배의 회복은 우리 삶의 회복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의 삶이 왜 그렇게 안 풀리는가 했더니 다른 것이 문제가 아니라 우리의 예배에 문제가 있더라는 것입니다.
많은 경우 우리에게 있어서 예배는 우리의 삶의 중심이 되지 못하고 항상 우리 주변의 잡다한 많은 일들 중의 하나로 취급되었습니다. 그래서 다른 일이 생기면 쉽게 포기할 수 있는 것이 예배였습니다.
우리의 예배를 대하는 태도가 이래서는 복된 인생을 살아갈 수 없습니다. 복을 주시는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예배란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제일 첫 번째 일인데, 예배를 소홀히 하고서 복된 인생으로 살아갈 수는 없는 것입니다.

예배를 소홀히 하면서도 인생이 부요해지기를 소원하는 것을 예를 들어 설명하면, 화초가 잘 자라 꽃이 피고 열매 맺기를 원하면서도 물을 주지 않는 것과 같습니다. 그러면서도 날마다 화초 잎은 깨끗이 닦아줍니다.
귀한 난을 키우는 사람들이 정성스레 잎을 닦아주는 것을 보았습니다. 당장 보기 좋게 잎을 닦아주지만 그 난이 정말 잘 자라도록 하려면 뿌리가 튼튼해지도록 해 주어야합니다.
예배는 우리의 삶의 근원이 되는 영혼에 물을 주는 것과도 같습니다. 이 영혼이 주님을 만나 안식을 누려야 인생의 잎도 푸르고 열매도 맺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항상 우리가 드리는 예배에 기대를 가지고 계셨습니다. 하나님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신다고 하였습니다.

오늘도 하나님은 우리가 드리는 예배를 기대하고 계십니다.

●아름다운 예배의 향기
우리가 하나님이 원하시는 예배를 드렸을 때, 그때 우리의 예배는 향기로운 제물이 되어 하나님께 올라갑니다. 하나님은 그 받으시는 제사를 자주 '향기'로 말씀하셨습니다.

구약 성경에 나타나는 성막 제사는 오늘날의 예배를 보여주는 것입니다.
출30:34-38은 예배에 대한 생생한 예를 제공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성막 안에서 예배가 드려지는 방법에 관해 명령하셨습니다. 성소 안에는 분향단이 있는데 그 분향단에 태워질 향을 만드는 제조법에 대해 말씀하고 있는 부분입니다.
"[34]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너는 소합향과 나감향과 풍자향의 향품을 취하고 그 향품을 유향에 섞되 각기 동일한 중수로 하고 [35] 그것으로 향을 만들되 향 만드는 법대로 만들고 그것에 소금을 쳐서 성결하게 하고 [36] 그 향 얼마를 곱게 찧어 내가 너와 만날 회막 안 증거궤 앞에 두라 이 향은 너희에게 지극히 거룩하니라 [37] 네가 만들 향은 여호와를 위하여 거룩한 것이니 그 방법대로 너희를 위하여 만들지 말라 [38] 무릇 맡으려고 이같은 것을 만드는 자는 그 백성 중에서 끊쳐지리라』"

여러분, 성경에 향 처방법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까? 그것은 아마 인간이 상상할 수 없는 가장 완벽한 아름다운 향기였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여기에 그 재료들을 알려주고 있습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이 향은 하나님만을 위해 고안된 향이라는 것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코에 닿았을 때, 독특한 것이었습니다. 이것을 인간이 자신을 위해 만들게 될 때는 죽게될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네가 만들 향은 여호와를 위하여 거룩한 것이니 그 방법대로 너희를 위하여 만들지 말라 무릇 맡으려고 이같은 것을 만드는 자는 그 백성 중에서 끊쳐지리라"(37-38)

이 말씀은 예배는 하나님만이 받으시는 것이고 우리는 하나님을 만족시킬 아름다운 예배로 향기를 올려야 한다는 것을 말해 줍니다.

●향유 향기 가득한 집
하나님이 기뻐하실 이와 유사한 향기가 오늘 성경 말씀에도 나옵니다.
"향유 냄새가 집에 가득하더라"(3하)

저는 이 집에 있는 향기도 하나님이 분명 그 어떤 예배보다 더 받으시고 싶으셨던 예배라고 생각합니다. 성도 여러분, 이 향유 향기 가득한 집은 어떤 것들이 있었기에 하나님 앞에 아름다운 예배가 되었겠습니까?

●예수님을 위한 잔치
첫 번째로 그 집의 모임이 예수님을 위한 잔치를 위해 모였다는데 있습니다.
마태복음과 마가복음을 참고하면 이 집은 문둥이 시몬의 집임을 알 수 있습니다. 이 문둥이 시몬의 집에 예수님의 열 두 제자와 나사로의 가족들, 또 집주인 시몬까지 적어도 17명 이상이 있습니다.
이들은 아마 조금 앞에 있었던 죽은 나사로가 살아나는 이 놀라운 기적으로 인해 그 일을 축하하기 위해 모였을 것입니다. 그래서 2절에 보면 이들은 예수님을 위해 잔치를 열고 있습니다.

축하받을 사람은 나사로인 것 같지만 이 자리의 주인공은 예수님입니다. 예수님을 위한 잔치라고 하였으니 예수님을 찬양하고 칭송하는 자리인 것입니다.

오늘도 우리는 이와 같은 잔치 자리에 와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의 찬양 대상도 동일하게 예수님입니다. 그리고 그 내용도 죽은 나사로가 살아났던 것처럼 우리의 죽을 영혼이 예수님으로 인해 새생명으로 탄생한 것에 대한 찬양입니다.
우리는 오늘도 죄로 인해 저주받아 지옥 갈 인생을 십자가와 부활로 구원하여 영생을 주신 주님을 찬양하는 것입니다.
♬ - "영 죽을 나를 살리려 그 영광 버리고 쓰리고 아픈 십자가 날 위해 지셨네 날 위해 지셨네"

약 2,000년 전에 시몬의 집에서 있었던 이 잔치를 오늘도 우리는 계속하고 있습니다. 그때의 찬양을 우리는 지금도 계속합니다. 그리고 이그 찬송과 경배는 앞으로 천국에 가서도 계속될 것입니다.

"이 일 후에 내가 보니 각 나라와 족속과 백성과 방언에서 아무라도 능히 셀 수 없는 큰 무리가 흰 옷을 입고 손에 종려 가지를 들고 보좌 앞과 어린 양 앞에 서서 [10] 큰 소리로 외쳐 가로되 구원하심이 보좌에 앉으신 우리 하나님과 어린양에게 있도다 하니 [11] 모든 천사가 보좌와 장로들과 네 생물의 주위에 섰다가 보좌 앞에 엎드려 얼굴을 대고 하나님께 경배하여 [12] 가로되 아멘 찬송과 영광과 지혜와 감사와 존귀와 능력과 힘이 우리 하나님께 세세토록 있을지로다 아멘 하더라" (계7:9-12)

♬ - "우리 보좌 앞에 모였네 함께 주를 찬양하면 하나님의 사랑 그 아들 주셨네 그의 피로 우린 구원받았네 구원하심이 보좌에 앉으신 우리 하나님과 어린양께 있도다 구원하심이 보좌에 앉으신 우리 하나님과 어린양께 있도다."

우리가 모인 이 자리, 오늘 이 시간도 예수 그리스도의 이 십자가와 부활을 진정으로 찬양하는 주님을 위한 잔치 자리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성숙한 봉사
둘째로, 이 집안에는 마르다의 봉사가 있었습니다.
잔치 집에는 항상 풍성한 음식이 있습니다. 음식이 없는 잔치란 있을 수 없습니다.

우리 교회도 지난 목요일 '한마음 축제'라는 잔치를 하였습니다. 여기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바로 음식입니다. 그런데 이 음식이 마련되기에는 꼭 누군가의 봉사를 필요로 합니다. 그리고 이 봉사에는 수고가 따릅니다.
그런데 수고스런 일에는 많은 불평이 나오기 쉽습니다.
"누구는 일을 하고 누구는 놀고, 어디 날 때부터 놀고먹자고 태어난 사람 있나?" 이런 말 저런 말로 불평이 나오기 십상입니다.

오늘 이 잔치 집에도 이 일에 봉사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누구입니까? 바로 마르다입니다.
2절에 "마르다는 일을 보고"
마르다는 본래부터 이런 일은 좋아하였습니다. 누가복음 10장에도 보면 마르다는 예수님이 자신의 집을 방문해 주셨을 때에 예수님을 접대하는 일에 참으로 분주합니다. 그러나 그때와 지금의 마르다는 달라진 것이 있습니다. 무엇입니까?
그때의 마르다는 일을 하면서도 불평과 불만이 가득하였습니다. 눅 10장에 그는 예수님을 위해 음식을 만들면서도 동생 마리아가 자신을 도와주지 않고 예수님께만 붙어있는다 하여 불평을 늘어놓았습니다.

여러분, 봉사하면서도 불평이 있는 것은 그 봉사가 감사 없이 억지로 하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 봉사 의도에는 자기의 의(義)가 깔려 있습니다.
감사가 넘치고 은혜가 충만한 사람은 봉사하면서 많은 말을 하지 않습니다. 그가 할 수 있는 말이라고는 "아멘" 뿐입니다.
이런 사람은 봉사의 의도가 자기를 드러내는 자기 만족이 아니라 자신의 섬김으로 다른 사람이 기뻐하는 것입니다. 그 일을 하고서 주님께 잘 보였다고 생각하면 만족이고 그것도 나중에는 주님이 자신에게 주신 은혜를 생각할 때 부끄럽게 여겨지는 것입니다.
예)주님의 교회의 한 성도 - 매일 화장실 수건을 바꾸어 놓는 일을 하였다. 목사님이 그 시간에는 절대 그 화장실에 가지 말라고. 혼자서 하나님께 하는 봉사의 기쁨을 빼앗지 말라고.

오늘 성경 본문의 마르다는 이전의 마르다가 아니었습니다.
지금 마르다는 일을 하고 있고 그의 동생 마리아는 여전히 그의 일을 도와주지 않고 있습니다만 그녀는 불평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그녀가 은혜를 크게 받았다는 증거입니다.
그녀는 오라비 나사로의 소생 사건으로 큰 은혜를 체험했던 것 같습니다. 그녀는 본디 일을 잘 해내는 달란트가 있었습니다. 여자라고 해서 부엌일을 모두 잘하는 것은 아닙니다. 똑 같이 설거지를 해도 그릇에 밥풀이 그대로 남아있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러나 일을 하면 빨리 할뿐만 아니라 깨끗이 말끔히 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러나 어떤 여자는 청소도 하고 정리도 했다고는 하는데 한 것이나 안 한 것이나 별반 다를 게 없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런데 이 마르다는 일은 끝내주게 잘 하는 사람입니다. 그러나 이전에는 수고는 수고대로 하고서 많은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는 것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일을 못해서가 아니라 은혜가 없어서입니다.
그러나 이 마르다가 이제 은혜를 받았습니다. 그녀는 말없이 그저 감사해서 봉사하는 것입니다. 누가 보든 안 보든 상관이 없습니다. 누가 칭찬을 하든 안 하든 상관이 없습니다. 오직 자신에게 이런 봉사의 기회가 있다는 것이 한량없이 감사한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교회에도 마르다처럼 은혜 받아 봉사하는 사람이 많아지기를 축원합니다.
이런 사람이 많은 곳은 항상 감사도 넘치게 되어 있습니다.
은혜받은 사람이 많은 교회의 예배는 항상 감격스럽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은혜는 받지 못해서가 아니가 깨닫지 못해서 누리지 못할 때가 많습니다. 그런 사람은 은혜로 받은 것을 다 빼앗긴 후에야 그것을 깨닫게 됩니다. 빼앗기고 깨닫는 자가 되지 말고 누리면서 깨닫고 더 풍성하게 되는 여러분이 되시길 축원합니다.)

●헌신
셋째는 마리아의 아름다운 헌신입니다.
당시에 집에 온 손님을 예우해 주는 것 가운데 하나가 종을 시켜 손님의 발을 씻어주는 것이었습니다. 먼지가 많은 지역이기에 우선적으로 발을 씻어 주었습니다.

예수님이 오늘 이 잔치의 주인공이기에 집주인은 예수님의 발을 씻겨 주는 것이 예를 다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아직 아무도 예수님의 발을 씻겨드리지 않았습니다.
그때 한 여인이 항아리를 들고 나타났습니다. 자세히 보니 그것은 물을 담은 항아리가 아니라 귀한 향유를 담은 옥합이었습니다. 그 여인은 나사로의 둘째 누이 마리아였습니다.

그녀는 자신이 가져온 옥합을 깨뜨리더니 불순물이 전혀 섞이지 않은 향유 나드 한 근을 예수님의 발에 쏟아 부었습니다. 그리고 더 충격적인 것은 자신의 머리털을 풀어 예수님의 발을 씻기는 것이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예상치 않은 마리아의 행동에 깜짝 놀랐습니다.
비난하는 사람도 생겼습니다. 가룟 유다였습니다. 그는 이 값비싼 향유를 허비한다고 하여 마리아의 행위를 비난하였습니다. 분명 다른 사람도 적극적으로 비난하지 않았을지라도 쉽게 이해해 줄 만한 행위는 아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녀의 이 행위를 인정해 주었습니다. 인정할 뿐만 아니라 칭찬해 주셨습니다.

왜 이 마리아의 행위는 허비가 아니고 인정받을 만한 헌신이겠습니까?

먼저, 1절 말씀에 나타난 "유월절 엿새 전에"라는 말씀을 유념하여 보십시다.
'유월절 엿새 전'이라는 말은 무엇을 의미하는 말입니까? 이 말은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시기 엿새 전이라는 의미입니다. 이 집에 모인 그 어떤 사람도 '유월절 엿새 전'이라는 의미를 몰랐을 것입니다. 예수님의 제자들도 몰랐습니다. 그런데 마리아는 알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실 고난의 날이 다가 왔음을 말입니다.

예수님은 11장의 나사로의 무덤 앞에서 사람들이 울고 있는 것을 보시고 통분히 여기셨습니다. 그리고 인생이 이 죽음의 문제를 극복하지 못하고 슬픈 인생이 된 것을 안타깝게 여기시며 예수님도 우셨습니다.(요11:35)
그런데 이제 예수님이 무덤 앞에 모인 사람들을 보셨던 바로 그 눈빛으로 마리아가 예수님을 바라보는 것입니다. 마리아는 예수님의 말씀을 경청하는 여인이었습니다. 예수님의 말씀 한 마디 한 마디를 놓치지 않으려고 언니의 비난도 무릅쓰고 예수님의 발 앞에 무릎을 꿇어 말씀을 듣는 여인이었습니다.(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도 마리아처럼 되시기 바랍니다.)
말씀을 사모하는 그녀의 심령 가운데 하나님께서는 그녀에게 예수님의 마음을 주셨습니다. 성령께서는 예수님의 심령 속의 생각을 마리아에게도 불어넣어 주셨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과 성령의 역사를 사모하면 그리고 한 영혼을 뜨겁게 사랑하면 하나님은 그 사람의 마음을 내 마음에 넣어 주십니다. 그때는 내가 그 사람 못지 않게 홍역을 치릅니다.
바로 이 현상이 마리아에게 온 것입니다. 아무도 예수님의 고난을 모르고 영광만을 생각하고 있던 바로 그때, 마리아의 마음속에는 예수님이 당하실 고난으로 가슴이 쓰렸습니다.

분명 마리아는 눈물로써 기도하였을 것입니다. 자신의 오라비를 살려 달라고 예수님께 애원하던 그 이상으로 하나님께 나의 사랑하는 예수님을 살려주시면 안 되느냐고 울부짖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녀는 예수님의 십자가가 없으면 죄사함도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마침내 하나님의 뜻에 모든 것을 맡길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리고는 '내가 주님을 위해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를 생각하다가 자신이 가진 것 중에 제일 귀한 향유 옥합을 깨뜨리기로 작정하였습니다. 그것은 그녀가 주님을 위해 표현할 수 있었던 최고의 것이었습니다.
많은 사람이 그 비싼 것을 허비하느냐고 비난할 것이 뻔하지만 자신의 뜨거운 사랑을 나타내기에는 오히려 이 향유 옥합을 깨트리는 것만으로는 부족하였습니다.

●미쳤어도 하나님을 위하여
은혜를 체험하고 나면 가끔 상식적으로는 이해되지 않는 행동과 결단이 우리에게 나타납니다. 그때 사람들은 우리의 행동을 비난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사람들이 비난하던 마리아의 행위를 받으셨듯이 하나님은 우리를 받으십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주님에 대한 뜨거운 사랑 때문에 헌신하고픈 주체할 수 없는 우리의 고백이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이 '너 미쳤냐'고 말합니다. 그러나 여러분, 은혜 받아 한 번씩 돌아버리는 것도 괜찮습니다. 사람들은 축구에도 미쳐 버리는데요!
그것뿐입니까? 요사이 선거 철이 되니 명예에 미친 사람도 많습니다. 돈에 여자에, 남자에, 정욕에 권력에 미친 사람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오히려 주님께 미치는 것을 훨씬 더 건전하고 안전합니다.

행26장에 바울이 죄수의 몸으로서 베스도 총독에게 복음을 전하니 베스도가 "바울아 네가 미쳤도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베스도는 그가 미쳤다고 말한 이 죄수의 말에 귀를 기울여 듣게 됩니다. 심지어 예수님도 하나님의 아들로서 공적 생애를 시작하자 친족들에게 미쳤다는 소리를 들었습니다.(막3:21)
고후5:13에 "우리가 만일 미쳤어도 하나님을 위한 것이요" 라고 말씀하였습니다. 미쳐도 미쳐야 할 것에 제대로 미치면 일을 이루게 됩니다.

옥합을 깨뜨린 것은 마리아의 주님께 대한 고백인 것입니다.
예수님의 발을 씻되 물로써 씻는 것이 아니라 향유로써 씻음으로 예수님의 존귀하심을 고백하였습니다. 또 예수님의 발을 손으로 씻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머리털로써 씻음으로 자신의 비천함을 고백하였습니다.(여자에게 있어서 머리카락은 남자와 다른 것입니다. 고전11:15에 『만일 여자가 긴 머리가 있으면 자기에게 영광이 되나니)

"주님, 나 주님을 사랑해요. 정말 주님을 사랑하는데 표현할 길이 없어요! 내가 나타내는 표현이 혹 이상하고 어색할지라도 주님 아시죠 나의 전부를 다 드리고 싶은 것을요!"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하나님은 우리에게 이 마리아의 헌신만큼 훌륭한, 그리고 아름다운 제사는 없다고 가르쳐 주고 있는 것입니다. 이 마리아의 헌신의 향기는 온 집을 가득 차게 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이 예배를 기쁘게 받으셨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런 사랑의 고백으로 이 시간 예배를 드린다면 성령의 충만한 임재가 우리 가운데 있게 될 것입니다.
향유 향기 가득한 집이 우리 교회가 되기를 바랍니다.

●우리 교회의 예배를 향한 기대
저는 우리의 예배에 항상 기대를 가지고 임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의 예배를 너무나 기쁘게 받으신 증거를 나타내시는 날에 대한 기대감을 말하는 것입니다.
물론 하나님은 이전에도 우리의 예배를 받으셨고 이후에도 받으실 것입니다. 그러나 제가 기대감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현재 우리의 드리는 예배가 최상의 것이고 이것으로 우리의 예배는 보완할 것이 없다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더 아름다운 향기로 하나님께 드리고 하나님은 그 받으신 향기로 너무나 만족하여 성령으로 충만하게 임하신 예배를 기대하는 것입니다.
이 기대감이 없어지는 날은 나의 목회에서 심각한 위기를 맞은 날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예배 시간에 하나님의 은혜를 감당할 수 없어 여기 저기에서 흑흑 거리는 눈물 소리를 듣고 싶습니다. 찬양대가 찬양하다가 찬양이 중단되는 모습도 생각해 봅니다.
여러분, 이상합니까? 뭐가 이상합니까? 대중가요 가수가 노래 한 곡을 불러도 좋아서 눈물을 흘리고 따라 부르고 하다가 기절하는 것을 보지 않습니까?
크래식 음악 틀어놓고 그것을 감상하다가 눈물을 흘리는 사람을 보았습니다. 열린 음악회에서 조수미씨가 가곡을 부르는데 한 여학생이 감동하여 어찌할 줄을 모르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존전에서 하나님이 기뻐하실 때, 우리에게 놀라운 일이 일어날 것입니다.

마르다와 같이 은혜 받은 성도들과 마리아와 같은 헌신의 사람들이 모여 주님을 위해 잔치하는 기쁨과 감격의 예배는, 예배 때마다 향유 향기 가득한 예배가 되어 하나님께 올려질 것입니다.

바로 그 예배 속에서 우리의 삶도 회복되어 질 것입니다.

이 은혜와 복을 누리시는 여러분이 되시길 축원합니다. -아 멘- (주후2002. 6.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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