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산교회채널
 가정교회360
 예배생방송

사역의 지경이 넓혀지는 교회

주일오전예배

예배를 회복합시다
  • 날짜 :
  • 본문 :
  • 설교자 :
성경본문 및 요약



casttetle.jpg












 



 


 


 


 



 전체보기

제목> 예배를 회복합시다
성경> 요4:19-24
찬송> 356, 53장

●예배, 인내해야하는 종교적 의무?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이 주일 날, 교회로 나아오는 여러분의 마음은 어떤 상태였는지에 대해 묻고 싶습니다.
교회로 한 발자국씩 옮기는 여러분의 발걸음이 즐겁고 신이 나는 소망의 발걸음이었습니까? 아니면 오늘도 종교적인 의무만은 충실하게 이행해야한다고 생각하고 오셨습니까?
물론 때로는 종교적인 의무라도 있는 것은 얼마나 다행한지 모릅니다. 그 종교적인 의무를 수행하는 동안 은혜를 받을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예배를 의무라고 생각으로 임할 때 이런 생각을 하게 됩니다.
'예배를 받으시는 하나님은 좋으시겠지만 예배를 드려야하는 우리는 항상 부담이 되는걸'

성도여러분, 그렇다면 하나님이 우리에게 예배를 드려라고 명하셨을 때, 우리 예배자들에게 도움될 것이 없는, 하나님만 좋자고 명령하신 것일까요?

만약에 예배가 끝까지 종교적인 의무로만 우리에게 계속 머물러 있다면, 예배를 드릴 때 우리의 마음가짐이란 '오늘도 잘 견디자'는 수준에 머물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예배는 우리에게 득(得) 될 것이 없는 의무이니까요.
이런 사람은 예배 시간에 자주 지각을 하게 됩니다. 그것은 학교 가기 싫은 학생이 지각을 잘하는 것과 같습니다. 준비 없는 헌금을 드리게 됩니다. 그것은 거의 종교세를 내는 것과 비슷합니다. 그리고 그의 옷차림은 예배보다는 예배 이후의 세상 행사를 고려해서 입게 됩니다.

이런 사람에게서 예배란 항상 시작 시간보다는 마치는 시간이 더 기다려질 것입니다. 또한 예배를 드릴 때 우리의 모습은 우울해 보일 것이고 예배를 마치고 나면 정말 행복해 할 것입니다.
이런 행복을 우리가 예배를 드렸다고 해서 어찌 하늘로부터 온 것이라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문제가 어디에 있나?
어떤 사람은 이렇게 말합니다. "목사님, 일주일 내내 세상 속에서 주어진 현실과 부딪히며 살아온 저희와 목사님이 같습니까? 목사님이야 매일 말씀과 기도로 경건하게 사시지만 저희들이야 이 거친 세상에서 먹고사는 일에 메이다 보면 주일에도 온통 세상의 생각으로 가득 차게 되는 것을 어떻게 합니까? 목사님, 주일 한 번 지키는 것만으로도 후한 점수를 주셔야합니다"

먼저 말씀드릴 것은 저는 여러분과 다른 세상에 살고 있지 않습니다. 저도 나의 경건을 지키기에 힘이 들 때가 많이 있습니다.
더 나아가서, 저 역시 오늘 이 세대가 주일 한 번 지켜주는 것만으로도 얼마나 훌륭한 그리스도인의 위치를 차지 할 수 있는 것도 압니다.

그러나 이 시간은 제가 후한 점수를 주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우리가 예배를 드리려고 하는 바로 그 하나님이 우리를 어떻게 보시고 어떻게 판단하시느냐 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의 생각을 이 시간에 한 번 바꾸어 봅시다. 우리는 이제까지 예배다운 예배를 드리지 못하는 이유를 인간사에 우리 주위를 둘러싼 많은 일들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생각을 바꾸어 세상의 여러 복잡한 일들이 오히려 내가 예배를 잘 못 드려서 생긴 것은 아닌지 생각해 보는 것입니다.
즉, 우리가 가진 예배에 대한 문제가 세상의 복잡한 일 때문에 생긴 것이 아니라, 반대로 예배를 잘못 드리는 것 때문에 세상의 문제가 생겨 나를 괴롭히는 것은 아니냐는 것입니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인간사의 문제는 다른 것이 있지 않고 예배에 있다는 것입니다. 물론 예배의 목적이 우리의 인간사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있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가 우리의 각종 인생 문제를 해결 받기 위해 예배를 드리는 것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그렇게 되면 무당을 불러 굿하는 것과 예배의 행위나 다를 바가 없습니다.
그러나 또한 분명한 것은 우리의 인생에서 질서가 잡히지 않고 만족은 없고 혼란이 여전한 이 모든 이유는 바른 예배를 회복하지 못해서 그럴 수 있습니다.

●수가성 여인
오늘 성경 본문 말씀은 2000년 전 이스라엘의 사마리아 땅의 수가라는 성의 한 문제 많았던 여인 이야기입니다. 이 여인에 대한 이야기는 성경의 이야기 중에 많이 알려진 이야기입니다. 이 여인은 비참한 삶을 사는 여인입니다. 성적으로 문란한 여인입니다. 남편을 다섯이나 갈아치웠다는 사실에서 이 여인이 얼마나 찢겨진 인생, 상처 많은 인생을 살았는지 알 수 있습니다.

이 여인에게 당면한 가장 시급한 문제는 무엇입니까? 다른 모든 사람들이 다 더위 피해 쉬거나 낮잠을 자고 있는 시간을 이용해 물을 뜨러 나와야 하는 것입니다. 사람들의 시선을 피하기 위해서 입니다.
이런 그녀에게 예수님은 영원히 목마르지 않을 물을 말씀하셨습니다. 눈을 확 뜨게 하는 말씀입니다. 그러면서 예수님은 그 여인이 그렇게 목마른 인생을 살아갈 수밖에 없었던 가장 큰 요인인 남편 이야기를 꺼내셨습니다.
그러다가 20절부터 주제는 예배로 바뀌어 버립니다.

성도 여러분, 여기에서 우리가 깨달아야 하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의 목마른 인생과 예배가 깊은 관련이 있다는 말씀입니다.
즉, 어떤 예배를 드리느냐, 예배에 성공하는냐 그렇지 않느냐가 우리의 삶을 질을 결정하는 가장 큰 요인이 된다는 말씀입니다.

성도 여러분, 주일 예배가 일주일마다 있는 종교의식이라는 차원에서 생각해서는 안됩니다. 그것은 우리의 한 주간의 삶을 결정짓는 우리 삶의 핵심입니다.

여러분 그렇게 생각 안 해보셨죠?
왜 지난 한 주 나의 삶이 그렇게 힘들었는지! 그것이 바로 지난 주일에 예배를 제대로 드리지 못했기 때문일 수 있습니다.
여러분, 지난 한 달, 왜 내가 그렇게도 일이 안 풀렸는지 생각해 보셨습니까? 그것은 바로 지난 한 달 동안 나의 예배 생활이 무너졌기 때문입니다. 왜 지난 한 해 나는 그렇게 실패를 거듭했는지! 그것은 작년에 내가 가장 소중하게 생각했어야 했던 예배에서부터 실패했기 때문일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면 이제까지의 나의 인생이 왜 그토록 만족함이 없는 삶을 살아 왔는지도 생각해 보아야합니다. 그것은 나의 인생 관심사에 예배가 잡동사니 취급을 받아왔기 때문입니다.

●가인과 아벨 - 예배의 질이 곧 삶의 질이다.
여러분, 구약 성경에서 예배의 문제로 극과 극의 상반된 판단을 받았던 사람이 있습니다. 인간이 에덴 동산에서 쫓겨난 이후로 최초의 예배자였던 두 사람, 가인과 아벨입니다.
왜 아벨은 의인이 되었고 가인은 악인이 되어 최초의 살인자가 되었습니까? 그것의 시발은 그들이 드린 제사, 즉 예배에 있었습니다. 예배에 성공한 한 사람은 하나님께 인정을 받았고 예배에 실패한 한 사람은 악인의 대명사가 되었습니다.

우리는 이들에게서 예배의 질이 곧 삶의 질이 된다는 사실을 깨닫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의 인생에 있어서 우리가 처한 형편을 따지기 전에 항상 우리의 예배를 먼저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통하여 예배를 받으시려고 우리를 창조하셨습니다.

성도 여러분, 바른 예배는 우리의 삶을 바르게 만들 것입니다. 감격적인 예배는 우리의 삶을 감격적인 삶으로 만들 것입니다. 예배 시간에 만나 주신 하나님은 우리의 생활 속에서도 항상 만나 주실 것입니다. 예배 시간에 누린 행복은 우리의 삶을 행복한 삶으로 만들어 줄 것입니다.

●예배의 대상은 하나님. - "하나님은"
오늘 본문 24절은 예배를 회복해야할 우리들에게 예배에 관한 아주 중요한 내용을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24절에 나타난 몇 가지를 생각해 보겠습니다.

먼저, 우리의 예배의 대상은 하나님이시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예배할지니라"

우리가 예배할 분은 오직 한 분 하나님뿐입니다. 구약에서 가장 많이 사용한 하나님의 이름이 '여호와'입니다. 여호와 하나님! 그 분만이 우리의 경배의 대상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여호와 하나님 외에 다른 신을 섬길 수 없습니다.
사42:8에 "나는 여호와니 이는 내 이름이라 나는 내 영광을 다른 자에게, 내 찬송을 우상에게 주지 아니하리라"

여러분, 단호히 여호와 하나님만을 여러분의 신으로 섬기십시오.
왜 제가 이런 말로써 강조하느냐 하면 은연중에 하나님 외에 다른 신에게 의지하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이런 사람들의 예배를 받지 않으십니다. 두 마음을 품어 정함이 없는 자이기 때문입니다.
어떤 사람은 예수 믿으면서도 겸하여 우상을 섬깁니다. 물론 그 사람도 자신의 신상명세서 종교란에는 '기독교'라고 분명하게 써넣는 사람입니다. 그러나 생각지 않았는 불길한 일이 생기거나 가끔 기도했음에도 문제가 해결되지 않을 때 다른 신에게 눈을 돌립니다.
하나님은 바로 이것 자체를 용납하지 않으십니다. 우리는 다시 십계명의 제 일 계명을 분명히 해야 합니다.
"너는 나 외에 다른 신들을 네게 있게 말지니라"

사람들의 관심이 세상으로 향할 때, 하나님 외에 다른 신(神)을 같이 섬기는 마음은 하나님의 백성에게도 항상 있어 왔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의 고질적인 문제가 바로 이것이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섬기기를 포기한 백성이 아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문제가 생기면 이방신에게 기웃거리면서 항상 하나님을 실망시켰습니다.
기웃거리면 곧 미혹되고, 미혹되고 나면 본래의 신앙을 다 잃어버리게 됩니다.

이스라엘에는 하나님 외에 다른 신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엘리야 선지자 시대에 북이스라엘에는 아합이라는 왕이 부인을 이방여인 이세벨을 맞이하면서 바알 신이 들어왔습니다. 처음에는 그렇지 않았지만 세월이 지나자 백성들은 어느 신이 참 신인지 차츰 헷갈리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다가 결국 그들이 믿는 하나님은 바알보다 못한 신이 되어버렸습니다.
엘리야는 갈멜산에서 백성들의 불신을 애통해 하면 하나님을 향해 이렇게 외칩니다.
"주 여호와는 하나님이신 것과 주는 저희의 마음을 돌이키게 하시는 것을 알게 하옵소서"(왕상18:37)
그때 하늘로서 불이 내려와 엘리야가 세워둔 제단의 제물을 다 태워버립니다.
그리고 난 뒤 이스라엘 백성들의 말을 들어보십시오.
"모든 백성이 보고 엎드려 말하되 여호와 그는 하나님이시로다 여호와 그는 하나님이시로다"(왕상18:39)

헷갈리는 정도를 넘어서 그들의 하나님은 여호와가 아니라 바알이 되어버렸던 것입니다.

그래서 모세의 후계자 여호수아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14] 그러므로 이제는 여호와를 경외하며 성실과 진정으로 그를 섬길 것이라 너희의 열조가 강 저편과 애굽에서 섬기던 신들을 제하여 버리고 여호와만 섬기라 [15] 만일 여호와를 섬기는 것이 너희에게 좋지 않게 보이거든 너희 열조가 강 저편에서 섬기던 신이든지 혹 너희의 거하는 땅 아모리 사람의 신이든지 너희 섬길 자를 오늘날 택하라 오직 나와 내 집은 여호와를 섬기겠노라"(수24:14-15)

성도 여러분, 여러분 마음에 그리고 주위에 하나님 외에 의지할 만한 모든 것들을 철저하게 제거하시기 바랍니다.
어떤 사람은 내 마음만 그곳에 가지 않으면 되지 않느냐하고 말할지 모릅니다. 그러나 우리 속에 얼마나 왜곡된 종교성이 발동하는지 여러분도 잘 아실 것입니다. 하나님을 의지하다가도 또 다른 한 편으로는 하나님이 힘이 모자라면 부처님이라도 나를 도와주시겠지 생각하는 연약한 우리의 믿음입니다.
예)일본의 성도들은 정말 확실하게 믿으면 변하지 않는데 그렇게 될 까지 이런 양다리 걸친 신앙이 많다고 합니다. - 한 선교사님의 말.

예2) 한 교도관 성도의 간증

●드러나지 않는 마음속의 우상들
그러나 우리가 경계해야할 다른 신은 눈에 보이는 신(神)만이 아닙니다. 오히려 눈에 보이는 것보다 눈에 보이지 않는 신이 더 무서운 것을 알아야합니다.
그것은 바로 우리의 마음속 깊은 곳에서 이미 숭배하고 있는 물질신입니다.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천지만물의 주인이십니다. 그러나 우리는 오늘날 돈이 하나님보다 더 큰 능력을 가지고 있다고 믿습니다. 돈으로 되지 않는 것이 없습니다.
예수님은 먼저 하나님의 나라와 그 나라의 의를 위해 살아가면 먹고사는 문제는 내가 책임을 지겠다고 말씀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굶어죽고 난 뒤에는 하나님이 뭐 필요 있나'고 말합니다. 그래서 돈 되는 일에는 주일예배 드리지 못하는 것에 상관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이미 돈이 더 큰 하나님이 되어 있음을 고백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의 진정한 신앙은 자라지 않습니다. 이 문제를 극복하지 못하는 한 우리는 진정한 예배를 드릴 수 없습니다.

세 번째로 우리의 눈에 또 드러나지 않는 신은 인간관계입니다.
하나님과의 관계보다도 인간관계가 더욱 소중하게 여겨지는 것입니다.
하나님과의 관계를 분명히 하는 시간이 예배 시간입니다. 그런데 인간관계 유지하느라 하나님과의 관계를 무시하게 되면 하나님을 바로 경험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인격적이신 분이기 때문입니다.
요사이 주일날 결혼식이나 인간관계의 모임 때문에 주일을 지키지 못하고 예배를 빠지는 분들이 많습니다. 물론 받아먹을 때는 받아먹고 줘야할 때는 나 모른다 하는 것은 사람의 도리가 아닙니다. 그러나 여러분, 여러분의 믿음이 자라면 이런 것도 결단할 수 있어야합니다.
사도들은 2000년 전에 사람보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기로 결단하였습니다.(살전2:4)

물론 우리는 인간관계 속에서 살아갑니다.
딤전5:8에도 "누구든지 자기 친족 특히 자기 가족을 돌아보지 아니하면 믿음을 배반한 자요 불신자보다 더 악한 자니라"
그러나 하나님은 마10:3에 "아비나 어미를 나보다 더 사랑하는 자는 내게 합당치 아니하고 아들이나 딸을 나보다 더 사랑하는 자도 내게 합당치 아니하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가 미혹되는 것은 우리의 마음을 단호하게 하지 못하고 자리를 내어주기 때문에 미혹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도무지 양보하지 못할 것이라고 선언을 하면 더 이상 우리를 미혹할 수 없습니다. 그리고 그것이 진정 위기의 상황이면 하나님이 피할 길을 주셔서 능히 감당하게 하실 것입니다. 주께 구하면 '비둘기 같은 순결을 겸한 뱀 같은 지혜'를 주실 것입니다.

저는 한 장로님의 이야기를 통해 결혼식 같은 것에 우리가 조금만 더 기도하고 생각하면 지혜롭게 대처할 수 있을 것을 생각했습니다.
꼭 얼굴이라도 보아야할 사람 같으면 토요일에 다녀오시고, 그렇게도 안되면 축의금을 평소에 하던 것보다 배로 하십시오.

저는 여러분의 상황을 이해합니다. 그래서 조금은 안타까울 뿐이지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예배의 대상은 제가 아니라 우리 하나님이십니다. 바로 그 하나님이 우리의 형편과 처지를 다 아시면서 그래도 나는 너에게 제일 존귀한 자이고 싶다고 말씀하시고 있다는 것을 기억하셔야 합니다.

●하나님은 영이시니 - 거짓된 마음으로 드릴 수 없는 예배
하나님이 영이시라는 말은 시공을 초월해서 존재하시기에 그리고 사람의 심령을 다 꿰뚫고 계시기에 거짓된 마음으로는 예배를 드릴 수 없음을 말합니다.
예배 시간만은 가장 진실한 마음으로 하나님만을 추구해야 합니다.
세상과 나는 간 곳 없고 구속한 주만 보이는 시간이 되어야합니다.

예배는 우리가 하나님을 만나는 시간입니다. 우리의 마음을 다 아시는 하나님 앞에 우리의 차디찬 마음을 그대로 가지고 있다면 그것만으로 이미 우리는 영적 예배실에서 쫓겨나 있을 것입니다.
예배는 주님이 말씀하시고 우리가 응답하는 시간이어야 하고, 우리의 찬양과 경배 속에서 주님이 기뻐하시는 시간이 되어야합니다.

그러나 성도들의 마음속에 하나님을 향한 진정한 사랑의 열정이 식어질 때 차가운 형식으로 예배를 떼워 만족해 버리려는 시도들이 생기기 시작합니다. 예배는 갖출 요소는 다 갖추었지만 주님을 향하지 못합니다. 성가대의 찬양은 사람들은 혹 만족시킬지 모르지만 하나님을 만족시킬 수는 없고, 대표 기도자의 기도는 사람에게는 들리지만 하나님께는 들려지지 않는 기도가 됩니다.

예배시간의 우리의 모습은 옷이 벗겨진 줄도 모르고 여호와의 법궤가 돌아온 것으로 기뻐 춤추는 다윗과 같이 되기를 소원해야할 것입니다. 그 시간에는 오직 예배를 받으시는 주님과 그 예배를 드리는 그의 백성과의 방해받을 수 없는 둘 만의 시간이 되어야합니다.
영이신 하나님이 나를 다 아시니 위선과 과장이 필요 없고, 오직 주님 한 분으로 만족하다는 고백의 시간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될 때 우리의 예배는 신령과 진정의 예배가 될 것입니다.

23절 말씀에는 하나님이 이런 예배자를 찾고 계신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말씀은 그만큼 진정한 예배자가 드물다는 의미일 것입니다.
천국 가서 주님 앞에 섰을 때, 주님이 이렇게 말하신다면 황당할 것입니다. "네가 누구냐?"
하나님 나는 장산교회 주일에 예배를 거의 빠져 본 적이 없습니다. 일분단 다섯 번째 자리가 제 지정석입니다. 어찌 저를 모르시다요?
그 때 우리가 아무리 우겨도 하나님은 너의 예배를 한 번도 받아 본 적이 없다고 말하실지 모릅니다.

<참된 신앙을 가진 사람은 헛된 예배에서 한없는 허기를 느끼고, 거짓 신앙심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은 헛된 예배에서 대단한 만족함을 느낍니다.
더 심각한 것은 거짓 신앙의 사람들이 참된 예배에 참석할 때 불편해 질 수도 있습니다.>

●주일 예배를 중심한 삶
성도 여러분, 우리가 하나님이 기뻐 받으시는 예배를 드리면, 즉 우리의 예배가 회복되어지면 그때부터 우리는 예배가 우리 삶에 중심이 됩니다. 예배라는 축으로 우리의 삶을 조정하게 된다는 말입니다.

우리가 오늘 예배 큰 은혜를 체험하고 감격에 빠졌습니다. 그렇게 되면 그런 사람은 그 예배를 통해 얻은 힘을 가지고 한 주간을 살게 됩니다. 그의 삶은 주일 주신 말씀을 의지하고 삽니다. 그 결과 체험과 역사로 간증이 넘칩니다. 구역예배는 간증의 장소가 되어질 것입니다. 그는 다음 주일 예배를 또 기다립니다. 왜요? 그에게 삶의 열매가 많이 있고 그것이 이제 찬미의 제사가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주중에 풀지 못한 인생의 문제에 대해서는 주일 하나님이 어떤 답을 주실 것인지에 대한 기대감으로 마음이 설렙니다. 그런 사람은 예배를 준비하게 됩니다. 사모하게 됩니다. 그런 심령에 하나님은 또 은혜의 폭포수를 부어주십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주일이 우리의 삶의 중심이 되게 해야 합니다. 그리하면 하나님이 여러분의 삶에 중심이 되실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진정한 예배를 회복합시다. 예배의 회복은 곧 우리의 삶의 회복이 되어질 것입니다. 그리하여 주일 예배가 항상 감격과 기쁨으로 드려지는 예배가 되도록 합시다. 그 예배에서 우리의 삶의 힘을 얻게 될 것입니다.
진정, 회복된 예배로 하나님께 영광 돌리고 우리의 삶도 회복되어지는 여러분의 생애가 되시길 축원합니다. - 아 멘 -(주후2002. 6. 2)
주일오전예배 목록
번호 설교제목 설교자 설교본문 설교일자 조회
1072 사사시대와 오늘(1) 842
1071 모세-제사장나라의 꿈 하만기선교사 출19:5-6,히11:23-26 2012.02.12 842
1070 은혜 받는 자의 특징 839
1069 말세에 성도가 해야할 일 - 봉사 832
1068 내게 있는 것으로 네게 주노니 826
열람중 예배를 회복합시다 823
1066 가나안에 들어가기 전에 해야 할 것 여호수아 1:10~18 (구약320) 2006.08.06 822
1065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하나님 820
1064 감사로 드리는 제사 요나 2:1-9 2005. 7. 10 820
1063 부모와자식의 화책 말라기 4:5-6 2006.05.14 820
1062 "그리스도의 좋은군사" 818
1061 하나님이 받으시는 예배 817
1060 신앙의 초보를 벗어납시다 815
1059 그래도 주님밖에 .. 810
1058 가인 자손과 셋 자손 810
게시물 검색

장산교회채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