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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복과 저주의 대물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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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및 요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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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축복과 저주의 대물림
성경> 출20:4-6
찬송> 171, 305장


●부모와 자식 - 아버지와 아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한 주간 동안 주님의 은혜 가운데 평안하셨습니까?
저는 지난 한 주간 화요일부터 금요일 새벽까지 특별히 시간을 내어 기도원에 다녀왔습니다.
여러분의 기도 덕분에 하나님 앞에서 자신을 점검하고 더 깊이 기도하는 시간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기도원으로 떠나는 날과 또 마치고 내려오는 날을 결정하는데 마음에 약간의 시험거리가 있었습니다. 대단한 유혹은 아니었지만 떠나는 날 나의 마음속에 '너 오늘 저녁에 한국이 잉글랜드와 평가전 있는 것 모느냐? 그것 보고 내일 떠나라'하는 마음이 있었습니다. 물론 충분히 이길 수 있었습니다. 본선도 아닌 평가전 가지고 나를 떠보려고?
두 번째 유혹은 기도원을 가서입니다. 조금 더 빨리 내려오고 싶은 심정이었는데 둘째 날 저녁이 되니 불현듯 아이들이 보고 싶어지는 것입니다. 그러나 앞으로 수도 없이 볼 아이들. 이것도 잠시 나의 마음을 빼앗았습니다. 그런데 셋째 날 저녁에는 더 보고 싶은 겁니다.
그래서 목요일 밤에 철야기도를 하고 다음 날 새벽기도를 마치자 바로 산을 내려와 집으로 와서 제일 먼저 들어간 곳이 아이들 방이었습니다. 아내가 하는 말이 매일 같이 아이들이 '아빠 언제 와요?'하고 제가 오기를 기다렸다는 것입니다.

저의 어린 시절을 생각해 보았습니다. 아버지가 어디 출장이라도 가시면 제 역시 '아버지 언제 오시냐'고 물었던 기억이 났습니다. 아버지가 오신다고 한 날은 늦게까지 자지 않고 기다리다가 아버지가 들고 오시는 맛난 것들을 받아먹는 즐거움이 있었습니다.
'그 때 우리 아버지도 우리들이 보고 싶어 빨리 일을 끝내고 집에 오고 싶어셨겠지!'

●상처받는 자식들
그러나 우리가 가진 부모들에 대한 생각이 따뜻하고 포근한 엄마 품, 넓고 든든한 아빠 등, 이런 아름다운 생각들로만 우리에게 남아있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대부분의 사람들이 부모들에 대한 아름다운 생각으로 그들의 가슴을 채우는 것이 아니라 고통스러운 기억들을 간직하는 경우가 더 많다는 사실입니다.
실제 통계상으로 초등학교에서 중,고등학교로 대학으로 나중에 성인이 되어 갈수록 부모에 대한 존경심이 크게 떨어지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최근의 어느 앙케이트에 의하면 젊은이들 가운데 백 명 중 약 칠십 명이 자신의 부모를 사랑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보면, 많은 사람들이 어릴 때 그 몇몇 아름다운 추억보다 부모들과 함께 살아오면서 더 많은 상처를 경험한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정말 그렇습니다.
오늘날 부모들이 자녀들에게 상처받는 일이 많이 있지만 그것 이상으로 부모들로부터 상처를 받는 자녀들이 훨씬 많습니다.
물론 그 부모들이 의도적으로 상처 준 것은 아닐 수 있습니다. 그러나 직간접으로 자식들이 많은 상처를 받고 살아온 것은 틀림이 없습니다.

어떤 가정에는 아버지가 경제적으로 무능한 까닭에 상처를 받기도 하고, 자기의 향락을 좇아 방종한 무책임한 어머니의 가정 생활이 자녀들의 가슴을 멍들게 합니다.
남자들은 자신이 져야하는 경제적인 책임을 감당하지 못할 때 상실감을 느끼게 됩니다. 그러면서 자존감을 잃게 되고 세상에 대해 마음을 닫고 자학하게 됩니다. 자신의 초라함을 이길 수 없어 술을 의지해서 자신을 잊으려고 합니다. 그것으로 안되면 그래도 자신에게 가장 만만한 식구들을 학대하게 됩니다.

이런 남편을 둔 아내의 고통은 또 이루 말할 수 없습니다. 견디다가 남편에 대한 반발로 아내까지 자신을 포기해 버리는 경우도 많습니다. 방종한 생활로, 아니면 더욱 염세적인 자세로 삶을 삽니다. 이런 부모들의 상처는 그대로 또 그들의 자녀에게로 돌아갑니다.

이런 부모의 모습은 세월에 흘러가도 자녀들의 가슴속에 흑백 사진처럼 그 영상이 남아 지워지지 않게 됩니다. 이 세상에는 몹쓸 자식도 많지만, 짐승 같은 어미 아비도 많습니다.

●5계명에 대한 이율배반적 순종
그래서 이 세상에는 부모들이 준 아픔 때문에 도무지 가슴속에서 부모와 더불어 화해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장성하여서도 그 마음을 그대로 간직한 채 그냥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그 어느 말씀보다 더 순종하고 지켜야할 계명이 제 5계명 "네 부모를 공경하라"는 계명임을 압니다. 그러나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이미 그들 부모에게 받은 많은 상처로 이 계명을 지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의 효도라는 것이 부모님의 생신이나 어버이날에 생색내는 정도에 그치지, 정말 마음의 중심으로 그들을 사랑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우리 가운데는 '네 부모를 공경하라'는 말씀에 대해서는 참으로 부담스런 성도들이 많이 있습니다.

이들의 생각에 이 괴로운 문제가 완전히 해결되는 때는 부모가 죽는 때라고 생각합니다. 그들은 그들의 부모가 죽으면 더 이상 이 문제로 괴로울 일이 없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이들이 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은 부모가 살아 있을 때 그런 사실에 대해 모르는 척하며 덮어두고 사는 것입니다.
그러나 불쑥 불쑥 올라오는 이런 피해받은 상처의 생각은 여전히 있음을 압니다.
(가정에 부모와의 문제로 어떤 문제가 터지면 부모는 "내가 너를 어떻게 키웠는데"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자식은 "어머니, 아버지는 모릅니다. 내가 얼마나 고통받고 살았는지요?"라고 말하게 됩니다.)

그러나 성도 여러분, 문제는 부모가 죽는다고 해결될 수 없다는 것입니다.
문제는 그 다음에 있습니다.
어머니를 늘 폭행하는 아버지가 정말 미워서 '나는 정말 그렇게 하지 않으리라' 다짐하며 자란 사람이 결혼하여 아내에게 손찌검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성적으로 방종한 어머니 때문에 괴로워하며 피눈물 나는 세월을 보낸 딸이 어머니를 증오하면서도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그 방종한 패역을 본받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을 심리학에서는 '보복적인 모방 심리'라고 부릅니다.
부모들로부터 받은 상처는 어느 샌가 쓴 뿌리가 되어 나의 영혼의 깊은 상처로 자리잡고 있었던 것입니다.

오늘 성경 말씀은 하나님께서 한 사람의 죄를 갚으시는데 그 당대로만 끝내지 않고 아비의 죄를 삼 사대까지 이르게 하겠다고 말씀하십니다. 즉 그리하여 저주가 대물림을 하면서 이어진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6절의 말씀은 우리에게 새로운 희망을 줍니다. 하나님은 축복도 대물림이 된다고 말씀하십니다.
"나를 사랑하고 내 계명을 지키는 자에게는 천대까지 은혜를 베푸느니라"

●아버지학교의 간증
제가 가끔 아버지학교 이야기를 한 적이 있습니다. 그 아버지학교가 곳곳에서 개설되어 전국적으로 번져가고 있습니다. 전주대학교에서는 아예 공식적으로 전주대학교 부설 아버지학교가 개설되었습니다.
그런데 이 아버지학교의 과정의 강의 중에 제일 첫 번째 강의의 제목이 '아버지의 영향력'이라는 강의입니다. 이 강의의 주 내용은 아버지라는 존재는 그 당대를 살다가 끝나는 존재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악하던 선하던 한 아버지의 영향력은 대를 이어 내려간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숙제를 내어줍니다. 아버지에게 편지를 쓰는 것입니다. 그리고 또 그 아버지의 아들로서 자신의 자녀에게 편지를 쓰는 것입니다. 그 다음주에 모였을 때에 서로 나눔의 시간을 가집니다.
그런데 써 온 그 편지를 서로 읽고 나누는데 그 중에는 얼마나 아버지에 대한 상처가 많은지 모릅니다. 생각 외로 아버지에 대한 증오감이 많았고 또 용서되지 않는 아버지들이 많았습니다.(그러나 그들의 아버지는 자신의 자식들에게 그런 상처를 입혔는지 모르고 있습니다. 안다고 하여도 그렇게까지 상처가 되었으리라고 생각을 하지 못합니다.)

그런데 더욱 놀랍고 두려운 사실은 그들이 그렇게 증오했던 일로 이제 그들이 그들의 자녀들에게 또 용서를 빌게 되었다는 것이었습니다. 부전자전(父傳子傳)이라는 말 그대로입니다.
여성도 여러분, 그러면 모전여전은 없을까요? 여자의 인품은 그 어머니를 보라고 했습니다.

성도 여러분, 가만히 여러분 자신을 돌아보십시오. 우리는 무서울 정도로 우리의 아버지와 어머니를 닮지 않았습니까?
우리의 자녀들은 끊임없이 우리들의 영향력 속에서 배우며 익히며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됩니다.

엡6:4에는 아비들에게 '너희 자녀들을 노엽게 하지 말라'고 말합니다. '노엽게 하지 말라'는 말은 아버지의 권위를 오용하거나 남용하여 자녀들을 부당하게 취급하지 말라는 말씀입니다.

●하나님 아버지!
우리의 부모에 대한 체험과 인식은 우리의 신앙에도 크게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을 알아야합니다.
아버지에 대한 체험은 하나님에 대한 우리의 믿음과 연관이 있습니다.(상언이에 대한 나의 생각)
어머니에 대한 체험은 성령에 대한 우리의 믿음과 연관이 있을 수 있습니다. 성령은 우리를 보호하시고 중보하시는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가계(家系)에 흐르는 축복과 저주
미국에서 최초로 부흥 운동을 일으킨 조나단 에드워즈에게는 그와 살던 동네에 맥스 주크라는 친구가 있었습니다. 그는 전과자인데다가 질이 안 좋은 사람이었습니다.
한 사회학자가 이 두 사람의 가계도를 조사했습니다.
그 사회학자가 조사할 당시의 조나단 에드워즈의 후손은 873명이었습니다.
그 중 대학 총장이 12명 나왔고 목사가 100명 나왔습니다. 군대 장교가 75명, 베스트 셀러 작가가 80명, 변호사가 100명, 판사가 30명, 고급 공무원이 80명, 하원의원이 3명, 상원의원이 1명 그리고 미국 부통령이 1명 배출되었습니다. 대단한 명문가입니다. 지금도 조나단 에드워즈 가(家)는 미국 내에서 전통있는 명문가로 통합니다.

반면, 조나단 에드워즈의 친구였던 맥스 주크의 가계도는 이렇습니다. 그의 후손은 1,292명이었습니다. 조나단 에즈워즈의 자손보다 419명이 더 많은 셈입니다. 자손이 많다고 좋은 건 결코 아닙니다. 잘 기르는 것이 훨씬 더 중요합니다. 망나니 같은 자식 많이 낳아서 뭣에 씁니까?
주크의 후손 중 만 4세가 되기 전에 죽은 사람이 309명, 직업 거지가 310명, 일하다가 한 눈 팔아 불구된 사람이 440명, 매춘부가 50명, 투옥된 도둑이 60명, 살인자가 70명 그리고 실업자가 50명입니다.

●대통령의 아들들
요사이 대통령의 아들 홍삼트리오(홍일, 홍업, 홍걸)가 수난을 당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 나라의 역사를 보면 대통령의 아들들 중에 문제가 없는 사람이 없습니다.
박정희 대통령의 아들, 박지만씨.(마약혐의 5번째 수감), 김영삼 전대통령의 차남 현철씨. 전두
환 전 대통령의 장남 재국씨.(95년 부친의 비자금 조성 의혹으로 검찰 조사) 노태우 전 대통령의 딸 소영(90년 초 미국 수사당국으로부터 미화 밀반입으로 적발 조사)

우리는 그들이 나라와 사회에 대해 정말 해서는 안될 나쁜 일을 저지른 가해자로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들은 가해자이기 이전에 피해자들이라는 사실을 생각해야 합니다.
이들의 아버지들 대부분이 민족의 격동기에서 사회적인 역할에 얽매여 그들의 가정을 제대로 돌아볼 수 있었을까요?
그들이 혁명이니, 민주화투쟁이니 하는 동안 그들의 자녀들은 하나 둘 마음의 상처들이 생겨나고 그것은 치유되지 않은 채, 쓴 뿌리가 되었다고 볼 수 있지 않겠습니까?
그런 생각을 하고 보니 이 사람들을 정죄할 마음보다는 모두 불쌍하게 보였습니다.

●내적 치유 - 우리의 마음속에 있는 쓴 뿌리들은 치유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드러나지 않았다고 없는 것이 아닙니다. 저 밑바닥에 가라앉아 있는 오물들은 평상시에는 가라앉아 있지만 어떤 사건이 터져 자극을 시키면 표면 위로 다 떠오르는 것입니다.
우리 마음속의 그 아픈 상처들이 치유되지 않는다면 그것이 쓴 뿌리가 되어 계속해서 우리 자신과 우리의 자녀들과 우리의 집안을 괴롭히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이 쓴 뿌리들을 제거해야합니다. 떠오른 그 좋지 않은 쓰레기들을 모두 걷어내어 버려야만 합니다.

그러면 어떻게 하면 우리의 심령의 깊숙한 상처들을 치유할 수 있겠습니까? 어떻게 하면 우리의 마음속에 있는 쓴 뿌리들을 제거할 수 있겠습니까?
어떻게 하면 저주의 대물림은 끝나고 축복의 대물림을 이어갈 수 있겠습니까?

그것은 용서입니다. 우리는 우리의 부모님을 용서해야합니다.
우리는 항상 용서를 하는 주체는 부모들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아닙니다. 이제 우리가 우리의 부모가 우리에게 행했던, 알면서 혹 모르면서 주었던 그 모든 상처에 대해 용서해야합니다.

●용서합시다.
우리가 우리의 부모님을 용서해야할 이유는 무엇입니까?

첫째, 우리의 부모 역시 피해자이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그들의 부모로부터 그러한 영향을 받았을 가능성이 참으로 많습니다. 그분들 역시 우리와 동일하게 그들의 부모로부터 받게되는 상처로 우리보다 더 가슴아파했을 것입니다. 더 큰 눈물 흘리며 괴로워했을지 모릅니다.
우리가 그분들에게 받을 상처가 크다면 그 분들이 받은 상처는 더욱 깊었을 것입니다.

둘째, 그러므로 해서 그들은 그들의 죄 값을 벌써 다 치렀습니다.
그 분들은 고통의 세월을 보내면서 이 땅에서 치러야했던 죄 값을 치렀습니다. 그 분들의 고통이 우리에게는 더 큰 고통으로 다가왔을지라도 어찌할 수 없는 자신의 굴레에서 괴로워해야 했었던 그 분들을 이해하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셋째, 그분들이 우리에게 주었던 상처가 우리를 은혜의 자리로 나갈 수 있도록 해 주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다윗을 생각하면 유대나라의 최고의 왕으로서 부족한 것이 하나도 없는 인생을 살았던 사람처럼 생각이 될 것입니다. 그러나 그도 결핍한 것으로 가득했던 고단한 인생 길을 지났던 사람입니다. 그도 상처로 가득 찬 불행한 일생을 살았던 사람입니다.
어린 시절에 그는 부모의 사랑으로부터 소외된 가운데 자랐습니다. 아버지는 그를 형들만큼 귀하게 여기지 않았습니다. 선지자 사무엘이 왕재(王才)를 보기 위해 다윗의 아버지 이새에게 아들들을 다 불러모으라고 했을 때 그의 아버지는 다윗을 부르지도 않았습니다. 그의 형들도 동생을 사랑하기 이전에 동생을 무시하기 일쑤였습니다.
왕이 된 후에는 그는 아들 압살롬에게 쿠테타를 당하여 도망다녀야 했습니다.
시27:9-10에서 다윗은 이렇게 말합니다. "주의 얼굴을 내게서 숨기지 마시고 주의 종을 노하여 버리지 마소서 주는 나의 도움이 되셨나이다 나의 구원의 하나님이시여 나를 버리지 말고 떠나지 마옵소서 내 부모는 나를 버렸으나 여호와는 나를 영접하시리이다"
그러나 말년에 그는 시23:1에서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가 부족함이 없으리로다"고 고백합니다.

분명히 부모와 형제로부터의 다윗이 받았던 그 많은 상처는 더욱 하나님의 은혜를 구하고 믿음을 견고하게 하는 역할을 하였습니다.

●용서의 주님때문에
마지막 네 번째로, 결국 우리는 주님 앞에서 더 큰 죄를 용서받은 죄인들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우리의 부모를 용서하지 못한다면 우리는 일만 달란트 빚을 탕감 받고도 일백 데나리온의 빚을 진 사람을 용서하지 못하는 자와 다를 바가 없습니다.
우리의 부모는 우리에게 몇 가지의 상처를 남겼을지 모르나, 우리는 더 많은 죄목을 가지고 하나님 앞에서 살아가는 자들입니다.

우리는 이렇게 호소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 제가 어린 시절부터 이제까지 저의 부모로 인하여 어떻게 고통받고 철저히 소외된 삶을 살았는지, 하나님은 제 마음의 상처와 아픔을 아시지요"
그러나 우리가 이렇게 고백한다면 하나님은 이렇게 말씀하실 것입니다. "너는 너의 허물 많은 아버지와 부족한 어머니를 통하여 많은 상처와 고통을 당했지만, 그 때마다 나는 너의 아버지로서 너와 함께 하였다. 너도 한때는 너에게 아픔과 고통을 준 네 부모처럼 내게 대하여 허물과 죄악으로 그리하였단다. 그러나 나는 네게 내 아들을 주어 십자가에 못박지 않았느냐?"

●맺으면서 - 용서의 사람 요셉
용서함으로 더욱 성숙된 한 사람을 소개하면서 말씀을 맺습니다. 그 사람은 애굽의 총리를 지낸 야곱의 열 한번째 아들 요셉입니다. 야곱의 집도 요셉만을 편애하는 아버지 야곱 때문에 자녀들이 상처를 많이 받았을 것입니다. 그 상처의 결과는 동생을 노예로 팔아버리고 아버지에게 거짓말을 하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그 후에 요셉이 받은 상처는 또 얼마나 컷겠습니까?
세월은 흘러 요셉은 애굽의 총리가 되었고 형들은 아무 것도 모르고 양식을 구하러 애굽에 왔습니다. 마침내 형들은 자기 앞에 선 애굽의 총리가 요셉이라는 사실을 알고 벌벌 떱니다.
그때 요셉은 하나님의 섭리였다고 말하면서 이미 모든 것을 용서했다고 울면서 말합니다.
(창 45:5) 『당신들이 나를 이곳에 팔았으므로 근심하지 마소서 한탄하지 마소서 하나님이 생명을 구원하시려고 나를 당신들 앞서 보내셨나이다』
예2) 시어머니 나오미를 용납한 룻.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이제 우리의 쓴 뿌리인 마음의 깊은 상처를 용서하고 고백하므로 그리스도의 복음으로 다 치유하고 저주의 대물림이 아니라 축복을 대대로 이어줄 수 있는 하나님의 백성들이 될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 아 멘 -(주후2002. 5.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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