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산교회채널
 가정교회360
 예배생방송

사역의 지경이 넓혀지는 교회

주일오전예배

마라에서 나오미의 인생으로
  • 날짜 :
  • 본문 :
  • 설교자 :
성경본문 및 요약



casttetle.jpg












 



 


 


 


 



 전체보기

제목> 마라에서 나오미의 인생으로
성경> 룻1:19-22
찬송> 180, 455장

●나오미라는 여인
오늘 말씀은 사사시대에 있었던 한 기구한 운명의 여인에 관한 이야기입니다.(1:1) 이 이야기의 주인공은 룻이라는 여인이지만, 오늘 우리의 우선적인 관심은 룻보다는 이 룻이라는 여인이 주인공이 되기까지 그런 환경과 여건을 조성한 나오미라는 사람에 대한 관심입니다. 나오미와 룻의 관계는 시어머니와 며느리의 관계입니다.

이들의 사연을 간략하게 이야기하면 이렇습니다.
나오미는 베들레헴에 살고 있는 엘리멜렉이라는 남자와 결혼하여 두 아들을 낳고 행복하게 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베들레헴에 흉년이 찾아와서 생활이 어렵게 되자 엘리멜렉과 나오미는 고향을 떠나 타국 땅 모압에 가서 살기로 결정하고 고향 베들레헴을 떠납니다.
그러나 더 잘 살아보겠다고 갔던 모압 땅에서 나오미의 남편 엘리멜렉이 죽어버립니다. 이방나라에서 과부와 어린 아이 둘만 남게 된 것입니다. 하늘이 무너졌을 것입니다. "이젠 어떻게 살아 가야하나!"

엄청난 일을 낸 이 이방 땅에서 더 이상 못살 것 같았지만, 어린 두 자식 입에 풀칠이라도 시켜야겠기에 한 맺힌 세월을 가슴에 묻고 정신없이 살았습니다. 다행스런 것은 아이들이 아버지 없이도 잘 자라준 것입니다. 세월은 흘러 아이들은 어느덧 다 컸습니다. 고생했던 지난 세월은 이렇게 잘 자라 준 아들을 보면서 위로가 되었습니다. 이제 자식들 혼인시킬 때가 되어 모압 땅에 좋은 규수와 결혼을 시켰습니다. 아마 그 때 먼저 간 남편을 생각하며 하늘을 보며 이렇게 말했을 것입니다.
"여보, 당신 없는 이 하늘 아래 그래도 이들이 이제 다 커서 장가가게 되었다오. 당신이 이 오늘 이 자리에 있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요?"

이제 이렇게 아들 둘을 차례로 장가보내고 아들들의 봉양을 받으며, 또 손주들 재롱을 보며 남은 한 세상 살아간다면 이전에 그렇게 고생했던 것도 억울하지 않을 것 같았습니다.

그런데 이제 왠 일입니까? 결혼한지 얼마 되지 않아 아들 둘이 차례로 죽어버렸습니다. 무슨 이런 저주스런 인생도 있단 말입니까? 인생이 억울해서 살 수 없었습니다.

이제 나오미의 집에는 과부 세 사람만 남게 되었습니다.
세상 사람들이 볼 때는 나오미라는 여자 하나가 엘리멜렉이라는 집안에 들어와서 집안을 완전히 말아먹어 버린 것처럼 보였습니다.
앞길이 창창한 며느리들 그냥 데리고 사는 것이 죄 된 것 같아 다시 친정으로 돌아가 새 삶을 찾으라고 말하고 자신은 이제 다시 약 10년만에 고향 땅 베들레헴으로 돌아갑니다.

한 자부는 친정으로 돌아갔는데 한 자부는 끝까지 어머니를 따라가겠다고 하여 할 수 없이 데리고 베들레헴으로 옵니다. 이 자부의 이름이 성경의 제목으로 된 '룻'입니다. 성경책의 제목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앞으로 이 자부는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해내게 됩니다.

우리가 읽은 본문은 이 나오미가 고향 땅으로 돌아올 때의 이야기입니다.
나오미가 돌아올 때 베들레헴 사람들은 어디서 본 듯한 이 여자가 이전에 자신들과 함께 살다가 남편과 아들을 데리고 모압 땅으로 떠난 나오미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행색이 너무나 초라하게 변한 나오미를 보고 온 동네 사람들이 말합니다.
19절 "이가 나오미냐"

●나오미냐 마라냐
성도 여러분, 우리는 이 19절에서 동네 사람들이 나오미를 보면서 하는 말을 또 다른 의미로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이가 나오미냐?"

이 말 속에는 "저 여자가 바로 더 큰 행복을 위해 10년 전에 모든 것을 정리하고 떠난 사람이냐?"라는 의미가 있습니다.
나오미라는 이름 뜻에는 '희락', 곧 기쁨, 즐거움이라는 뜻이 있습니다. 모든 부모가 그렇듯 나오미의 부모도 그런 소원을 두고 딸의 이름을 지었을 것입니다.
"너의 인생이 기쁨이기를 원한다. 즐거움이 가득한 삶을 살거라"

그런데 지금 사람들이 나오미를 향해 "이가 나오미냐?"하고 묻고 있는 것입니다. "이가 바로 희락이냐, 이가 바로 즐거움이냐?" "네가 바로 네 이름대로 희락이냐?"하고 말합니다.

이 말을 들은 나오미는 정말 부끄러웠을 것입니다. 그는 차라리 자신의 이름이 나오미가 아니었다면 하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는 너무나 부끄러웠던 나머지 사람들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20절 "나를 나오미라 칭하지 말고 마라라 칭하라"
'마라'의 뜻은 고통, 괴로움입니다. 그녀는 자신의 모습을 솔직하게 말합니다.
"나는 희락, 즐거움, 기쁨일 수 없습니다. 나는 고통이요 괴로움입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 가운데 어느 누가 행복한 인생을 원치 않는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어느 누가 기쁨의 생애를 살고 싶지 않겠습니까? 누가 말뜻대로의 나오미의 인생으로 살고 싶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우리는 왜 마라의 인생을 살고 있는 것입니까?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의 삶 속에서 마라의 인생은 사라지고 진정한 나오미의 인생이 되시길 축원합니다.

그러면 우리는 오늘 나오미의 인생이 왜 마라의 인생이 되었는지 그 이유를 몇 가지 생각해 보겠습니다.

●첫째, 베들레헴을 떠났기 때문입니다.
있어야할 곳을 떠났기 때문입니다.
나오미는 베들레헴에서 살아야할 사람입니다. 베들레헴은 하나님이 그들에게 약속해주신 땅입니다. 어떤 경우를 만나든 이 땅은 떠나면 안 되는 곳입니다.
베들레헴이라는 이름의 듯은 '떡 집'입니다. 이 곳이 생명의 떡을 먹을 수 있는 곳이라는 뜻입니다. 예수님은 세상 속에서 각 종 맛난 것으로 유혹을 받는 성도들을 향해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마4:4)

어떤 사람들은 이렇게 생각할 것입니다.
"아무리 우리가 베들레헴에 산다고 하지만 어찌 다른 곳을 다니지 않을 수 있습니까? 우리는 교회에서 기도만 하고 살수는 없지 않습니까? 우리 주위의 대부분의 사람들은 모압 사람입니다. 이들과 함께 생활하고 이들과 함께 살아 가야합니다."
예, 그렇습니다. 우리의 원함과는 달리 우리의 삶의 현주소는 항상 세상입니다. 그러나 분명히 해야하는 것은 여러분의 주민등록지가 어디냐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모압을 다닐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 곳은 다니는 곳이어야지 사는 곳이 되면 안됩니다. 여러분의 주민등록지가 베들레헴인지 아니면 모압인지를 살펴보십시오.
저는 지난 주 이사를 하고 전입신고를 하였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실제 여러분의 현 주소가 어디인지를 살펴보시기 바랍니다. 베들레헴입니까 아니면 모압입니까?
보시고 잘못되어 있으면 이사하시고 전입신고를 다시 하시기 바랍니다.

●둘째, 신앙우선주의를 포기하였기 때문입니다.
나오미와 그의 남편 엘리멜렉은 이 흉년의 때만 잘 피하자고 하였을 것입니다. 영원히 이 땅을 떠나는 것도 아니고 이 어려운 시기만 좀 피하자고 생각하였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 같은 그들의 생각에는 이런 것도 포함하고 있습니다.
'믿음도 잠시 손해보자' '신앙 생활도 잠시 포기하자'

이들이 베들레헴을 떠난다는 말은 무슨 뜻입니까? 신앙생활도 잠시 접겠다는 말입니다. 모압 땅에 성전(성막)이 있습니까, 선지자(사사)가 있습니까? 오늘날로 말하면 말씀도, 기도도, 주일성수도 잠시 접겠다는 말입니다.

여러분, 손해볼 것을 손해봐야지요, 포기할 것을 포기해야지요!

여러분, 믿음을 잠시 손해보겠다는 것이, 신앙생활을 잠시 포기하겠다는 것이 남은 인생을 '마라의 인생'으로 만들 수 있다는 것을 아십시오.

많은 사람이 잠시 어려운 때에 환경이 주는 두려움만 생각하지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환경보다 먼저 하나님을 바라볼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예화)어떤 목사의 집에 강도가 침입하였습니다.
목사는 벌벌 떨면서 말했습니다.
"우리는 보시다시피 가진게 별로 없습니다."
"그래도 얼마는 있을 것 아니오?"
"저기…"
"저기라니 어디?"
"제발 목숨만 살려주시오."
"돈이나 귀중품만 내어놓으면 살려주겠소!"
목사는 일어나 장롱 서랍을 열고 돈이며 귀중품을 깡그리 내주었습니다.
"이것 뿐이오?"
"예!"
"이것 얼마 되지 않는데…"
"목사가 무슨 돈이 있고, 귀중품이 있겠습니까?"
"무슨 소리하는 게요? 요사이는 목사들이 더 돈이 많다던데…"
"그렇지 않습니다. 내가 지금 가진 건 이게 전부입니다."
"돈 좀 모아 두시오."
"예!"
강도는 몽땅 털어 달아나 버렸습니다. 강도가 떠난 후 목사는 엉겹결에 당한 일이라 얼얼하였습니다.
다음 주일 낮 예배 시간에 목사는 설교를 하면서 강도 만난 일을 다 이야기하였습니다. 그러면서 목사는 이렇게 덧붙였습니다.
"내 평생 그렇게 겁나기는 처음입니다. 강도 앞에서 벌벌 떨며 시키는 대로 돈이며 귀중품을 다 내어놓았습니다. 한심한 일이지요. 순간 나는 깨달았습니다. 내가 하나님 앞에 그만큼 떨며 살았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렇게 살지 못한 것을 회개하였습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는 환경을 하나님보다 더 두려워하고 있는 것은 아닙니까?

그러나 더 큰 위협은 오늘날에는 환난 때문이 아니라 오락 때문에 정상적인 신앙생활을 못하는 사람이 많다는 것입니다. "오늘만 주일이냐 일년에 주일은 쉰 두 번이나 있는데 오늘 하루쯤은 어떠리"라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렇게 지난 한 주는 곧 두 주로 세 주로, 결국은 주일과 관련이 없는 사람이 되어 버립니다.

주일 성수는 신앙 생활의 기본입니다.!!! 기본은 기초라는 말입니다. 기초가 흔들리면 모든 것이 다 무너집니다. 그러나 기초가 든든하면 그 위에 무엇이든 쌓을 수 있습니다.
신앙이 그렇게 좋지 않은 것 같아 보이더라도 주일을 지키는 사람은 언제든지 믿음이 성장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많이 헌신하고 봉사하는 것 같더라도 주일을 잘 지키지 않는 사람은 한 순간에 흔들려 버립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다른 것은 혹 손해보고 어려움이 있을지라도 믿음만은 손해보지 않으리라 다짐하시는 여러분이 되기를 바랍니다.

●셋째, 연단의 기회를 회피하기 때문입니다.
베들레헴에 임한 기근은 하나님이 자신의 백성들의 연단을 위해 주신 것입니다. 그런데 나오미와 그의 남편 엘리멜렉은 그것을 피하고자 이방 나라로 갔습니다. 즉 연단받지 않겠다는 말입니다. 그 말은 하나님의 훈련 프로그램을 이수하지 않겠다는 것입니다.

훈련은 힘듭니다. 힘들지 않는 것은 훈련이 아닙니다. 연단받는다는 말은 말을 바꾸면 단련한다는 것입니다. 단련은 힘든 과정을 반복하는 것입니다.
연단의 과정이 힘들고 기간이 길수록 고급과정입니다. 여러분에게 당한 환난이 힘들다면 이렇게 생각하십시오. "하나님, 나를 얼마나 크게 만드시려고 이렇게 훈련시키십니까?"

우리나라 군대는 일반병과 하사관, 그리고 장교들을 훈련시키는 장소가 다릅니다. 그리고 그 기간에도 차이가 납니다. 일반병은 기본 군사훈련은 4-5주만 하면 끝납니다. 그러나 하사관과 장교는 다릅니다.
훈련은 기간이 지나야 끝납니다. 연단도 때가 지나야 끝이 납니다. 그 때까지 견디어야 합니다.

※구원받은 하나님의 백성에게도 인내는 필요하다
구원받은 노아 일가가 새 땅을 밟고 새로 얻은 생명의 풍요로움을 누리기까지는 수많은 인내의 세월이 필요했습니다.
노아가 육백세 되던 해 2월 17일에 홍수가 쏟아지기 시작했고(7:11), 그 해 7월 17일에 방주가 아라랏 산에 머물렀으니(8:4), 근 150여일 간(다섯 달)이나 땅에 홍수가 창일해 있었던 셈입니다(7:24). 그러나 기다림의 시간은 그것만이 아니었습니다. 10월 1일 곧 그로부터 두 달 반이 더 지나서야 겨우 산봉우리가 보였고, 다음해 1월 1일에야 지면에 물이 걷혔으며, 2월 27일이 되어서야 그들은 마른 땅을 밟을 수 있었습니다. 장장 1년하고도 10일을 더한 기간 동안 노아 일가는 꼼짝없이 방주에 머물러 있어야만 했던 것입니다.
세상에 물이 쏟아질 때 방주에 몸을 들일 수 있었던 것 자체가 은혜를 받은 것이지만, 새롭게 창조된 새 땅을 밟고 새로운 생명을 만끽하기까지 그들은 수많은 인고의 세월을 보냈던 것입니다. 우리는 때로 우리가 믿음을 갖고 구원을 얻었는데, 왜 아직 우리의 인생이 이처럼 힘겨운 것인가 회의를 느낄 때가 있습니다. 그러다가 인내하기에 지쳐서 죄라도 짓게 되면 절망감을 극복하기 어려운 지경에 빠지기도 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노아 일가의 인내를 기억해야 합니다. 우리가 모든 성도들의 방주 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이미 구원을 얻었지만 최종적인 구원을 확보하기까지는 아직 견뎌내야 할 시험과 고난이 많이 남아 있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합니다.

노아 일가가 방주에 머물러 있는 동안 어떻게 은혜로운 시간을 보냈는가를 상상해 보십시오. 늘 찬송하고 기도하면서 서로를 사랑과 위로로써 대하는 모습이 보입니다. 그리고 산봉우리가 보이고 비둘기가 새 잎을 물고 오는 등 하나님의 구원이 조금씩 실현되어 가는 모습을 보고 그 때마다 즐거워하고 감사하는 장면이 보입니다. 이처럼 우리도 이 고난의 때에 우리의 방주 되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사랑과 평안을 누리며 주님이 좋은 일들을 경험하게 해 주실 때마다 기뻐하고 감사해야 할 것입니다.
감사하는 마음으로 살아가다 보면 결국 우리의 방주는 우리를 천국으로 인도해 들일 것입니다.

(잠 17:3) 『도가니는 은을, 풀무는 금을 연단하거니와 여호와는 마음을 연단하시느니라』

●넷째, 빨리 깨닫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나오미에게 1차 싸인을 주셨습니다. 그것은 그의 남편이 이방에서 객사했을 때입니다. 나오미는 그것이 무엇을 말하는지 알아야 했습니다. 그러나 그녀는 여전히 모압에서 돌아갈 생각을 하지 못했습니다.
그녀가 빨리 깨달았다면 그녀의 삶이 그렇게까지 망가지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우리가 잘못했을 때 하나님은 여러 가지로 경고하십니다. 우리는 그때 빨리 깨달아야합니다. 깨닫지 못하면 그 강도가 점점 더 심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그것은 우리의 병이 심해지면 더욱 독한 약을 써야하는 것과 같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이 여러분에게 경고의 메시지를 줄 때 빨리 깨닫는 여러분이 되시길 바랍니다.

●돌아오십시오
그러면 어떻게 하면 마라의 인생이 나오미의 인생으로 바뀔 수 있겠습니까?

제일 첫 번째 조건은 돌아오는 것입니다. 돌아오지 않으면 나오미가 될 수 없습니다.
그런데 돌아오기 위해서는 자신의 자존심을 버려야합니다.
나오미가 다시 돌아온다는 것은 얼마나 자존심 상하는 일인지 모릅니다. 그러나 그것을 버려야합니다.
그리고 솔직하게 자신의 현재 상황을 인정하십시오.

나오미는 자신을 이렇게 인정하였습니다. "내가 풍족하게 나갔더니 여호와께서 나로 비어 돌아오게 하셨느니라 여호와께서 나를 징벌하셨고 전능자가 나를 괴롭게 하셨거늘"

신약성경 누가복음 15장에 나오는 탕자의 이야기도 탕자가 다시 그의 사랑하는 아버지의 아들의 자리로 돌아오게 된 것은 자신이 현실을 인정하고 자존심을 모두 다 버리고 돌아왔기 때문입니다.
"내가 일어나 아버지께 가서 이르기를 아버지여 내가 하늘과 아버지께 죄를 얻었사오니 지금부터는 아버지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감당치 못하겠나이다 나를 품꾼의 하나로 보소서 하리라 하고 이에 일어나서 아버지께 돌아 가니라"(눅15:19-20)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모압 생활을 청산하십시오. 그리고 속히 돌아오십시오. 지금도 하나님은 여러분을 성문 어귀에서 기다리고 계십니다. 그때 여러분의 삶은 마라에서 진정한 나오미의 인생으로 바뀌는 것입니다. - 아 멘 - (주후2002. 5. 19)
주일오전예배 목록
번호 설교제목 설교자 설교본문 설교일자 조회
1132 본향 찾는 사람들 1052
1131 목 마르다. 다 이루었다 요 19:28-30 2005.11.27 1044
1130 베들레헴 에브라다야! 댓글2 누가복음 2:1~7 (P신약 89) 2006.12.25 1036
1129 가나안 여인의 믿음 1035
열람중 마라에서 나오미의 인생으로 1028
1127 "보내는 선교사가 해야 할 것" 로마서 15:22-33(신약261p) 2005.01.22 1025
1126 바람날개로 다스리스는 하나님 [시104:1-9] 1022
1125 야곱의 인생에서 이스라엘의 인생으로 1019
1124 여리고 전투 명령 여호수아 5:13~6:14 2006.09.03 1015
1123 아골 골짜기 여호수아 7:16-26 2006.9.10 1015
1122 정직하게 삽시다 1013
1121 "다윗 대 골리앗" 사무엘상 17장:31~50 (구약 436p) 2006.03_12 1013
1120 부활신앙으로 사는 삶 1008
1119 소망의 임마누엘 성취의 예수 akxo 1:18-23 2005.12.25 1001
1118 "지속적인 부흥,끈질긴기도 -이병수목사- 1000
게시물 검색

장산교회채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