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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오전예배

성탄을 기다리는 사람
  • 날짜 : 2006.12.10
  • 본문 : 눅2:21-39
  • 설교자 :
성경본문 및 요약
●들어가면서 - 우리에게 희망은 있습니까?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12월 둘째 주일이 되었습니다. 오늘이 10일이니 2006년의 마지막 달 1/3이 지나갑니다. 곧 한 해는 또 저물게 될 것입니다. 구세군의 자선냄비와 함께 울리는 종소리는 이미 시작되었습니다. 시내를 나가면 캐럴이 울려 퍼지고 거리 곳곳에 장식된 크리스마스 트리를 보게 됩니다.

제 개인적으로 가슴속에 남아 있는 12월은 괜스레 마음이 들뜬 낭만적이고 푸근한 달입니다. 그러나 가만히 생각해 보면 교역자라는 이름을 달면서 이런 감정으로 보낸 12월은 한 번도 없었던 것 같습니다. 12월의 교회 일정, 그리고 새해에 대한 계획 등으로 가장 분주하고 부담도 많은 달이었습니다.

저 개인적으로만 아니라 우리의 사회 현실이 연말을 그렇게 푸근하게 느낄 수 없게 하기에 충분합니다.

우리나라의 최고 고질병인 정치문제, 정치선진화를 그렇게 고대했지만 여전히 가장 낙후된 분야는 정치인 것 같습니다. 그 다음에 교육문제입니다. 이젠 학생들의 외국 유학은 자연스러운 말이 되었고, 우리나라가 아이들의 공부 때문에 지출하는 외화만 해도 엄청납니다. 대안학교는 우후죽순처럼 생겨나고, 스스로 자퇴하여 아예 검정고시를 준비하는 아이들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고 있습니다. 낼 세금 다 내 놓고 이게 무슨 꼴인지요?

그렇다고 경제는 잘 돌아가는지요?

사회가 얼마나 불안한지는 하루도 끊일 날이 없는 데모를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이젠 전투경찰의 부모들이 자신들의 아들을 위해 ‘데모를 하지 말라’는 데모를 합니다. 이 사회의 양극화 현상-정치적 양극화, 빈부의 양극화, 진보와 보수의 이념의 양극화- 은 국민통합이 아니라 점점 더 분열과 분리를 향해 나가고 있습니다. 아이는 낳지 않고 할 일이 없는 노인들의 숫자는 점점 더 늘어나고. 다른 어떤 나라보다 가장 빠른 속도로 노령사회가 되어 가는데도 준비는 가장 안 되어 있는 나라라고 합니다.

아끼고 절약하고 정직하게 살아도 잘 살 수 없다는 생각이 점점 더 팽배해져가고 있습니다.

소망을 가지고 살고 싶은데 소망을 찾을 수가 없습니다.



이제 잠시 눈을 돌려 2000년 전 이스라엘의 사회상을 생각해 봅니다.

정치적으로는 로마의 식민지 통치를 받고 있었고 나라의 독립을 원하는 사람들이 지하조직을 만들어 로마에 항거하고 있었습니다. 빈부의 차는 얼마나 컸던지 헤롯가의 사람들과 그를 추종하는 사람들, 그리고 대제사장들과 그와 관련된 사람들은 엄청난 부를 누리고 있었고 대다수의 서민들은 노예처럼 살고 있었습니다.

성경에 등장하는 여러 부류의 사람들을 보면 알 수 있듯이, 창기가 있었고 고아와 과부들이 있었는가 하면, 세리들은 부정한 방법으로 돈을 축적하고, 헤롯당들은 권력을 이용해서, 대제사장들은 종교적 지위를 이용해서 돈을 축적하였습니다.

한 쪽에서는 나라를 구하겠다고 독립 운동을 전개하고 다른 한 쪽에서는 나라와 민족을 팔아먹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우리나라 일제시대와 다름이 없습니다. 한쪽에서는 독립운동을 하고 한 쪽에서는 일본에 붙어 자신의 안일만을 구하는 사람들입니다.

이 나라, 이 사회도 소망이 없는 것 같습니다.



그런 사회의 배경을 잘 아는 누가는 전혀 새로운 소망에 관심을 집중하고 있습니다. 그는 이런 마음 둘 곳 없는, 소망이라고는 전혀 찾아 볼 수 없는 사회에, 세상에 나타난 새 소망에 대해 말하고 있습니다. 이 새 소망을 누가 자신은 이미 발견했고 그것을 가지고 누리고 있습니다. 그는 자신이 가지고 있는 이 새 소망을 혼자 가지고 있을 수 없어 데오빌로라는 사람에게 이 사실을 소개합니다. 장장 24장이나 되는 이 분량의 글을 편지로 보냅니다.

그 새 소망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였습니다. 그가 유대인이 아닌 로마인 데오빌로에게 예수 그리스도에 생애에 관한 글을 써 보내는 것은 바로 그 예수의 탄생은 이스라엘 사람뿐만 아니라 모든 인류에게 소망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이 글을 쓰는 누가 자신에게 소망이 된 것처럼 말입니다.



오늘은 그 당시의 암울한 시대를 살면서 정말 새 희망, 소망을 가지기를 원했던 사람이 또 있었습니다. 그는 나이가 많은 할아버지였습니다. 그는 자신의 조국 이스라엘의 앞날을 걱정하면 하나님께 기도한 사람입니다. 자신은 이미 죽을 날이 다 되었고, 또한 그에게 죽는 것은 그렇게 큰 일이 아니었습니다. 다만 조국의 앞날을 생각하면 잠이 오지 않는 것입니다.

그가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기도밖에 없었습니다. 그는 하늘을 향하여 하나님의 긍휼을 구했습니다.

“하나님, 조국을 불쌍히 여겨주옵소서, 이스라엘에 긍휼을 베풀어 주옵소서”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그리고 눈물로 기도했을 것입니다. 때로는 금식하였을 것입니다.



간절하게 구하는 이 노인에게 하나님은 그가 생각지 못한 너무나 큰 응답을 주셨습니다.

“주의 그리스도를 보기 전에는 네가 죽지 않을 것이다”라는 응답이었습니다.

응답받은 이 노인이 누구입니까? 바로 시므온입니다.

이 시므온이 구한 것은 결과적으로 성탄을 구한 것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또한 결과적으로 그가 기다리고 기다린 것은 성탄이 되었습니다.

이제 곧 성탄을 맞이해야 할 우리들이 이 성탄을 어떤 마음과 자세로 기다리고 맞이해야 할지 12월을 보내면서 영적인 점검이 있기를 바랍니다.



1. 시므온이 구한 것은 영적인 것이었습니다.

정치의 혼란 속에 헤롯을 갈아 치워야 새 세상이 오겠다고 생각하고 새로운 정치 지도자를 구하지 않았습니다. 빈부의 격차가 점점 더 심해지니 경제정의를 실천하기 위해 사회구조변혁을 시도하지 않았습니다.

시므온의 간절한 기도에 하나님의 응답은 ‘그리스도를 보기 전에 너는 죽지 않는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면 그가 구체적으로 구한 것은 무엇입니다.

25절에 그는 ‘이스라엘의 위로’를 구하는 자라고 하였습니다. ‘이스라엘의 위로’가 무엇입니까? 이스라엘의 위로는 사40장을 보면 메시야 시대에 하나님의 백성이 누리는 위로를 말합니다.

물론 그때는 정치적으로 혼란이 없으며 경제적으로 부족함이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궁극적으로 메시야 때문입니다. 우리의 주님이 다스리기 때문에 경제정의도, 정치 정의도 실현이 되는 것입니다.

그가 하나님께 “하나님 우리는 하나님의 위로가 필요합니다.”라고 구했더니 하나님은 그에게 “알았다 내가 그리스도를 보낼 것인데 그를 보기 전에 네가 죽지 않도록 해주마. 너는 그 성취를 보는 기쁨을 누릴 것이다.”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시므온이 본 것은 돈 문제도 정치적인 것도 아니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의 문제는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위로를 구하지 않는 것이 문제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진정한 위로는 결국 메시야가 와야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는 그것을 진정으로 원했고 그것을 구했습니다. 나를 사랑하는 자가 나의 사랑을 입으며 나를 간절히 찾는 자가 나를 만나리라고 했고(잠8:17) “너희가 전심으로 나를 찾고 찾으면 나를 만나리라”(렘 29:13)고 한 것처럼 하나님은 그의 전심의 기도에 응답하셨습니다.

그의 마음속에는 메시야를 향한 소망으로 가득 차 있었던 것입니다. 그는 죽고 싶어도 이 소망 때문에 죽지 못한 사람처럼 살았습니다.



시므온, 그는 죽을 때가 되었는데, 아니 성경의 의미상으로는 죽을 때가 이미 지났음에도 죽지 못하는 사람이었습니다. 어제도 제 아내가 자신의 집안 이야기를 하면서 외할머니 임종 때의 이야기를 하였습니다. 뇌졸중으로 사경을 헤매는데 숨을 못 끊더라는 것입니다. 눈도 못 뜨고 그냥 식물인간으로 있는 것입니다. 외할머니의 사랑을 많이 받은 제 아내가 할머니를 가까이서 지켜보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다른 모든 아들딸들이 할머니를 뵈었는데 한 아들이 아직 어머니를 보지 못한 것입니다. 아들이 못 본 것이 아니라 어머니가 아직 아들을 못 본 것이 맞습니다.  그 아들은 육군사관학교를 나와 나에게서 국비로 독일에 유학을 간 아들입니다. 그런데 바로 그 아들이 돌아오자 할머니가 감았던 눈을 한 번 뜨더니 곧 숨을 거두더라는 것입니다.



시므온의 가슴에는 진정한 하나님의 위로가 이 땅에 이 조국에 나타나야 한다는 사실을 깊이 깨달은 것입니다. 그것이 너무나 간절했기에 그는 이것이 그의 기도가 되었고 하나님은 그의 기도에 응답을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내가 이제 곧 구원자를 보낼 것이다. 그 구원자를 보기 전에 너는 죽지 않는다.’라고 응답하신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에게 진정한 위로는 예수 그리스도이심을 믿습니까? 이 세상에 소망을 두지 맙시다. 우리에게도 예수님이 필요하다는 사실이 가슴 깊이 느껴져야 합니다. 그래야 그 분을 사모하게 됩니다. 우리의 가슴 가장 소중한 곳에 그 분을 모실 수 있습니다.



이전에 한국 CCC 총재로 계셨던 김준곤 목사님의 그 유명한 ‘백문일답’이라는 주장을 말씀드린 적이 있습니다. 백가지 질문을 해도 답은 한 가지라는 뜻입니다. 그 답은 무엇입니까? ‘오직 예수’입니다. 김준곤 목사님은 젊은이들이 공산주의 사상으로 의식화되고 세뇌되어가는 것을 대학캠퍼스 현장에서 본 분입니다. 그래서 그는 마음먹었습니다. 오히려 자신이 그리스도의 사상, 예수 그리스도로 대학생들을 의식화하고 세뇌를 시켜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70-80년대, 더 넓게는 90년대까지의 CCC의 여름수련회는 정말 대단했습니다. CCC의 여름 수련회는 보통 금식수련회였습니다. 이들이 그 수련회를 마치고 곧 바로 또 일주일씩 열흘씩 거지전도여행을 떠났습니다. 거지 전도여행이란 다름이 아닌 성경에 예수님이 제자들을 보냈던 대로 두 벌 옷도 없이, 전대(錢臺)도 없이 마을로 들어가 복음을 전하는 것입니다. 자신들을 영접하는 사람이 있으면 그곳에 머물러 밥을 얻어 먹고, 자신들을 대적하면 성경대로 옷에 먼저를 떨며 그 마을을 나오는 것입니다.

그때 김목사님이 대학생들을 향해 던진 백문일답은 너무나 단순한 것이지만 그들의 삶의 고백이 되었습니다. 이것은 이 시대에 우리도 동일하게 고백해야 할 핵심내용인 것입니다.

목사님은 이렇게 물었습니다. “우리나라는 누구의 나라입니까?” 오직 예수! “이 나라는 누구 때문에 잘 살게 됩니까?” 오직 예수! “이 나라의 대통령은 누구여야 합니까?” 오직 예수! “이 나라는 누가 통일시킵니까?” 오직 예수!

또 묻습니다. “나는 누구 때문에 살아야 합니까?” “나는 누구 때문에 결혼해야 합니까?” “나는 누구와 결혼해야 합니까? 나의 사랑은 누구입니까?” “나의 취미는 누구입니까?” “나는 오늘밤 누구와 잠을 잡니까? ”

그 모든 질문의 답은 단 한 하나 “오직 예수!”였습니다. 한 여름에 금식을 하면서 때로는 장대비를 맞으면서 그 말씀을 듣는 수많은 학생들의 입에서 “오직 예수 오직 예수”가 외쳐질 때 그들은 그 단수한 말을 믿고 기도했고 그 말씀을 의지하면 살기를 고백한 것입니다.



이 고백이 다시 이 시대에 우리에게 살아나야 합니다. 우리의 주님이 우리 가운데 오셔야 우리는 소망이 있습니다. 시므온의 고백은 바로 이 고백인 것입니다.



2. 의롭고 경건하게 살아야 합니다.(25)

의롭다는 것은 이웃과의 관계를 말하고 경건하다는 것은 하나님과의 관계를 말하는 것입니다.

의롭고 경건함은 하나님의 위로를 기다릴 수 있는 조건입니다. 의롭고 경건하지 않는 사람이 하나님의 위로에 관심이 있을 수 없습니다. 그런 사람은 반드시 세상에 소망을 두게 되어 있습니다. 세상의 모든 관심거리에 자신을 투자해 버립니다. 그래서 주님이 오시는 것을 알지도 못하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탄생할 때 베들레헴은 황제가 내린 호적갱신 명령으로 모든 사람이 정신이 없이 바빴습니다. 그들은 세상의 일에 파묻혀 이 땅에 하나님의 진정한 위로자, 그들이 진정 맞이해야 할 메시야가 누울 방 하나도 내 주지 못했습니다.

그리하여 우리의 주님은 마굿간의 짐승의 구유에 누울 수밖에 없었습니다.



경건하게 살지 않으면 오늘날도 동일합니다.



3. 성령의 사람으로 살아갑시다.(25c, 26, 27)

어떤 사람이 성령의 사람입니까? 우리는 이미 지난번의 집회를 통하여 이 사실에 대해서 너무나 명확하고 집중적으로 받았습니다.

말씀의 사람이어야 합니다.

기도의 사람이어야 합니다.



불신자들과 같이 사는 것 너무 쉽다고 했습니다.

여러분이 자문하고 자답해 보시기 바랍니다. 한 주일 세상적인 일로 주일을 빼먹고 난 뒤, 그 다음 주일에 교회에 나왔는데 여러분의 마음이 어떻습디까? 누구보다 여러분 자신이 더 잘 알 것입니다. 그런데 한 달만 교회에 안 나왔다. 그러면 우리의 마음은 이미 불신자의 심령과 그의 다를 바가 없는 것은 자명합니다.



●맺으면서

마지막으로 시므온이 아기 예수님을 품에 안고 하나님을 찬양하는 내용을 보십시오.

“주재여 이제 종을 평안이 놓아 주시는도다…”

그가 예수님을 안았다는 것은 무엇을 말합니까? 자신이 이제 예수님을 보았으니 곧 죽을 것이지만 자신의 죽음은 멸망하는 것이 아니라 해방으로서의 죽음을 맞이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예수님이 없는 자들은 평안이 놓임을 얻지 못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영접하고 죽는 자는 이 한 많고 험악한 세상에서 오히려 자유를 얻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12월은 성탄의 달입니다. 이미 주님은 2000년 전에 이 땅에 오셨지만 우리가 12월을 맞이할 때마다 내 속에 주님을 새롭게 탄생시키듯 이 달을 보내야 합니다. 주님을 사모하시고 주님을 대망하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 아 멘 - (주후 2006-1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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