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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오전예배

결실하는 자
  • 날짜 : 2006-12-03
  • 본문 : 눅8:9-15
  • 설교자 :
성경본문 및 요약
●들어가면서

성도 여러분, 우리 교회에서 최근에 가장 많이 사용하는 단어는(키 워드) ‘부흥, 결실, 간증’과 같은 말입니다. 이 단어를 가지고 구호를 외치기도 했습니다.

“우리 교회는 부흥한다. 우리 가정은 결실한다. 나는 기도한다. 나는 간증한다. 할렐루야 아멘”

이 말들은 상호 유기적인 관계를 가지고 있습니다. 교회의 부흥과 가정의 결실, 우리의 간증은 다 하나의 라인입니다.

2006년 금년은 이제 한 달이 남았습니다. 어떻게 살아왔으며 어떻게 달려왔습니까? 금년 연초에 가진 하나님 앞에서 가진 우리의 소원은 응답을 받았습니까?

저는 오늘 주신 말씀을 통해 바로 이 응답의 열매, 결실에 대해서 말씀을 나누려고 합니다.



먼저, 우리의 응답은 그리스도 안에서 이루어져야 합니다. 쉽게 말하면 그것이 신앙적인 응답이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결과만 두고 보면 이미 응답을 받았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주님께로부터 온 것이 아니라면 아직 그건 응답이 아니라고 보아야 합니다.

어느 기독교 인터넷 사이트에 실린 간증입니다. 컴퓨터 프로그램을 개발하던 어떤 집사님이 금년에 사업이 잘 되게 해 달라고 기도했습니다. 기도의 응답이 즉각적인 것 같았습니다. 생각지 않았던 사람에게서 전화가 와서 프로그램 개발을 부탁받았습니다. 사실 말이 개발이지 다른 제품을 거의 복제하는 것입니다. 다름이 아니라 바로 사행성게임기 ‘바다이야기’입니다. 얼마나 주문이 많이 오는지 수요를 보니 이건 대박이 틀림없었습니다. 빚을 내어 시골의 허름한 창고를 빌려 조그만 공장도 만들었습니다. 돈이 좀 모여지자 대출도 좀 받고 해서 도심지에 홀을 빌려 다른 사람에게 운영을 맡기고 직접 바다이야기 오락기를 설치하고 운영을 했습니다. 이리 저리 봉투를 줘야하는 곳이 많았지만 그래도 남는 것이 많은 사업이었습니다. 이제 투자한 것도 거의 뽑을 만하게 되었습니다. 금년만 잘 넘기면 정말 큰 대박을 터뜨릴 것으로 확신하고 사업을 확장해 갔습니다. 결과는 여러분이 잘 아실 것입니다.



응답은 그리스도안에서 이루어져야 하는 것입니다.

응답이 그리스도안에서 이루어져야 한다고 할 때, 그리스도는 말씀이기에 말씀에서 시작해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자신의 뜻을 우리에게 보여주시는 가장 보편적인 방법이 말씀을 통해서입니다. 예수님은 본래 말씀이셨고 말씀이 육신으로 우리 가운데 오신 분입니다. 그래서 그 분의 말씀을 들을 때에 우리는 그 분의 뜻을 깨닫게 됩니다.

그 다음에 기도해야 합니다. 말씀을 받은 사람은 기도하기가 쉽습니다. 분명한 기도제목이 생기기 때문입니다. 말씀을 받고 기도하는 것은 힘이 있습니다. 무엇을 기도해야 할까, 무엇이 하나님의 뜻인가 이런 것으로 갈팡질팡하지 않습니다. 방향이 세워지기 때문입니다.

이 정도가 되면, 거의 다 이루어진 것이나 다름이 없는 것 같습니다.



우리 교회는 지난 3주 동안 ‘여호와의 행적 찾기 세 이레 특별새벽기도회’를 가졌습니다. 그 중에 부흥집회도 있었습니다. 말씀이 집중적으로 내려졌습니다. 마치 폭탄을 실은 전투기가 목표지점에 융단폭격을 하듯,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의 강퍅한 심령을 초토와 시키기에 충분하였습니다. 때로는 강력하게 때로는 잔잔하게 다가오시는 하나님의 말씀의 힘을 느낄 수 있었을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그러면서 우리는 기도했습니다. 여러분 가운데는 분명히 이미 기도의 응답을 받은 분들도 있을 것입니다. 기도의 응답을 이미 받으신 분들은 서로에게 간증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찬양하시기 바랍니다.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이곳저곳에서 받은 은혜와 응답의 이야기가 들려옵니다. 참 감사합니다.

저는 이번 특새를 통해서 모든 면에서 우리교회의 실력이 한 단계 더 높아졌다고 확신하게 되었습니다. 주일저녁(혹은 오후)에 교회에 출석하는 숫자만큼 지속적으로 새벽에 나오는 교회가 흔치 않습니다. 어제 새벽, 토요관제축제로 드려진 새벽기도회에는 근 240명이 출석하였습니다.



그러나 아직도 우리는 다 이룬 것이 아닙니다. 응답을 받은 분들도 더욱 완전한 모습으로 서야 합니다.

특새 기간 중에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말씀 중에 ‘감사자를 찾아서’라는 제목의 말씀이 있었습니다. 10명의 문둥병자가 예수님에게 와서 고쳐달라고 했을 때, 예수님이 제사장에게 가서 네 몸을 보여라고 말씀했습니다. 가다가 모두 자신의 몸이 깨끗해졌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러나 한 사람만 예수님께 와서 감사했습니다.

그래서 결론은 한 사람만 완벽하게 치유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왜냐? 다시 돌아와서 예수님께 감사했던 사람만 “일어나 가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 하였느니라”라는 예수님의 선언을 들었기 때문입니다. 예, 물론 병 나은 것만으로는 모두가 다 응답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진정한 응답은 예수님의 선언을 받을 때 진짜입니다. 병은 다시 재발할 수 있습니다. 완전하게 나아야 하는 것입니다.

귀신이 떠나가는 응답을 받았을지라도 완전한 회복으로 나아가지 않은 사람은 그 사람의 나중 형편이 전보다 더 심하게 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요한복은 5장에 베데스다 못 가에 있던 38년 된 병자를 낫게 하신 후에 이렇게 말씀하신 것입니다.  “더 심한 것이 생기지 않게 다시는 죄를 범치 말라”(요5:14)



우리 모두는 이젠 결실해야 합니다. 완전히 결실하는 자들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응답을 받은 사람은 그 응답이 완전한 열매, 결실이 되어야 하고, 말씀을 받고 그 열매를 기다리는 자들은 이제 곧 결실해야 하는 것입니다.



오늘 말씀은 누가복음에 나오는 씨뿌리는 비유입니다. 이 비유에는 씨가 뿌려지는 네 가지 종류의 밭이 나옵니다. 길 가에 떨어진 씨, 바위 위에 떨어진 씨, 가시떨기에 떨어진 씨, 좋은 땅에 떨어진 씨입니다. 이 네 종류의 밭 가운데 결실하는 밭은 오직 하나 ‘좋은 땅’(15) 밖에 없습니다. 우리 가운데 여러 종류의 사람들이 있지만 그 심령에 말씀이 들어가고 열매 맺어 결실하는 밭은 오직 하나입니다. 오늘 우리는 바로 그 밭의 특성을 보면서 우리도 결실할 수 있기를 소원하는 것입니다.



15절 말씀을 모두 다시 한번 봉독하겠습니다.

 "좋은 땅에 있다는 것은 착하고 좋은 마음으로 말씀을 듣고 지키어 인내로 결실하는 자니라"



좋은 땅의 특징은 무엇입니까? 세 가지입니다. ‘듣고, 지키어, 인내하는 것’입니다.



1. 들어야 합니다.

(롬 10:17) “그러므로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

듣는 것이 제대로 되지 않을 때는 믿음이 생길 수 없습니다. 여기에 계신 성도들 가운데 하나님의 말씀이 들리는 분들은 그래도 소망이 있습니다. 예수님이 자신을 말씀이라고 하였고 요한은 예수님을 가리켜 태초에 있는 말씀이라고 표현하였습니다.

그러므로 들을 수조차 없는 사람에게 믿음이 생기기란 정말 어렵습니다.

그러기 위해 우리는 들을 기회를 자주 가져야 합니다. 그리고 그런 기회가 제공되었을 때에 놓치지 않으려 해야 합니다. 이번 부흥집회에 사적인 일을 제쳐두고, 직장의 시간을 조정하고, 휴가를 내어 참석하신 분들이 있었습니다. 분명 이들은 다른 사람들보다 믿음이 자랄 수 있는 가능성이 훨씬 더 높습니다.



믿음이 잘 자라지 않는 사람들, 가만히 보면 말씀을 들을 기회가 항상 부족합니다. 그러면 그런 사람들이 개인적으로 성경을 읽고 연구하는가? 그렇지도 않는 것입니다. 그러니 믿음이 자랄 수가 없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가 예수 믿지 않는 사람들과 똑 같이 살아가는 것, 그것 너무나 쉽습니다. 여러분이 한 달만 교회 나오지 않으면 내가 신자인가 아닌가? 구분이 잘 안 가게 됩니다. 교회 나오지 않는 사람이 성경을 읽을 리가 없고 설교 말씀을 스스로 묵상할 리가 없습니다. 한 달만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막아버리면 우리의 심령이 세상의 사람들과 같이 되는 것은 시간문제입니다. 매주 교회를 나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살아도 말씀을 붙잡으려는 노력이 없으면 순간순간 나의 마음이 세상에 다 빼앗기를 느낌을 갖는 것이 흔한데.  한 달만 교회와 멀어지면 이미 나의 마음은 황폐하게 된 것을 내가 잘 알게 됩니다.

말씀을 들을 기회가 곧 내가 살 수 있는 기회입니다.

그러므로 말씀을 들을 수 있는 기회를 좀 더 늘이시기 바랍니다. 어떤 사람은 돈 벌이는 문제 때문에 말씀의 자리를 포기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정말 잘 생각하셔야 합니다. 그것으로 돈을 좀 더 벌 수 있을지 모르지만 결과적으로는 돈도 신앙도 함께 잃을 수 있습니다.

어떤 집사님, 보수나 여러 가지 면에서 너무 좋은 조건의 직장을 소개 받았습니다. 단지 한 가지 흠이 있는데 주일을 못 지키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딱 3개월만 직장 생활하기로 작정했습니다. 그러면 당장에 아쉬운 돈도 좀 해결하고 이제까지 십일조도 자기 돈으로 못 해 봤는데 자기가 번 돈으로 십일조도 해 볼 수 있다는 아쉬운 구실도 생각해 냈습니다. 정말 고생하며 열심히 3개월 벌었습니다. 3개월 월급 받아 나오는 날 교통사고 나고 차는 뺑소니치고, 그 월급 받은 돈으로 치료비하고 나니 거의 맞더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때로는 지혜롭게 행동한다고 생각하지만 하나님이 생각하실 때 얼마나 어리석은 것인지를 알아야 합니다.

말씀을 들어야 결실할 수 있습니다.



2. 말씀을 지키는 것입니다.

결실하는 데 있어 말씀을 듣는 것만으로 되지 않습니다.

본문에 나오는 네 가지 밭에는 모두 씨가 떨어졌습니다. 씨가 떨어졌다는 것은 말씀이 임했다는 것입니다. “길가에 있다는 것은 말씀을 들은 자니”(12) “바위 위에 있다는 것은 말씀을 들을 때에”(13) “가시떨기에 떨어졌다는 것은 말씀을 들은 자니”(14) 말씀을 들은 것에 있어는 모두가 다 같았습니다. 그런데 이 세 가지 밭은 한결같이 뭐가 좀 될 듯하다가 결국은 결시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니 말씀을 듣는 것만으로는 결실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그 말씀을 지키는 것입니다.



함께 말씀을 받아도 어떤 사람은 그 말씀에 눈물이 줄줄 흐르며 반응을 보이지만 어떤 사람은 마음은 딴 곳에 가 있는 사람도 있습니다. 말씀은 들려서 그 마음속에 남을 때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신약성경이 쓰여진 헬라어에 말씀에 대한 단어가 두 종류입니다. ‘로고스’와 ‘케리그마’ 인데 로고스는 말씀 자체를 가리키고, 그 로고스가 선포되고 역사할 때 ‘케리그마’라고 합니다. 우리의 심령에 ‘케리그마’로서의 말씀이 역사해야 합니다. 그때 로고스의 능력이 나타나는 것입니다.

말씀이 선포되지만 그 마음에 전혀 역사되지 않는 말씀. 그와 같은 사람을 일컬어 길가와 같은 마음 밭입니다. 그는 말씀을 받지만 말씀을 받는 쪽쪽 그 말씀을 사단에게 다 빼앗기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 이러한 상태를 정말 무섭게 표현하고 있다는 것을 새삼 느껴야 합니다. 그런 상태, 즉 말씀을 들어도 말씀이 귀에 들어오지 않는 상태에 대해서 어떻게 말하고 있습니까?

12. “이에 마귀가 와서 그들로 믿어 구원을 얻지 못하게 하려고 말씀을 그 마음에서 빼앗는 것이요”

참으로 놀라야 합니다. 마귀의 역사라는 것과 함께 더욱 놀랍고 무서운 것은 ‘믿어 구원을 얻지 못하게 하려고’그렇게 한다는 것입니다.

말씀을 듣는 것만 아니라 말씀이 심령에 남아 있어야 합니다. 말씀이 지켜져야 하는 것입니다.



바위와 같은 마음은 어떻습니까? 이 마음의 밭을 가진 사람은 말씀을 듣기는 잘 합니다. 그리고 감동도 받습니다. 눈물도 흘립니다. “들을 때에 기쁨으로 받기”(13)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 감동이 오래가지 못합니다. 뿌리를 내리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말씀을 지키지 않기 때문입니다. 말씀을 간직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말씀을 듣고 감동을 받으면 그 사람은 충분히 결실할 수 있는 사람입니다. 열매 맺고 풍성한 삶을 살 수 있습니다. 우리의 삶에 간증거리가 넘칠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그렇게 되지 않는 것은 그 받은 말씀을 간수하지, 즉 지키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 좋은 말씀을 깊이 간직하려고 하는 노력이 부족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받은 말씀을 계속 묵상해야 합니다. 우리의 현실이 우리의 받은 말씀의 감동을 오래 가지 못하게 합니다. 아니 말씀 받고 눈물 흘리며 감격했을지라도 집에만 돌아가면 그냥 끝입니다.

간직하는 제일 좋은 방법이 기도입니다. 기도는 받은 말씀의 감격을 지속시켜 줍니다. 오히려 제대로 기도하면 처음 말씀을 받을 때보다 더욱 큰 힘을 얻습니다. 그래서 말씀을 받았으면 기도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계속 기도해야 합니다. 기도할 때 받을 말씀을 주장하면서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 이런 이런 말씀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이런 말씀으로 역사해 주옵소서”

또한 환경 속에서 나의 감격을 잃지 않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때로는 환경이 나의 은혜를 다 빼앗아 가 버립니다. 이번 부흥집회 기간에 강사 목사님이 강조한 것 중의 하나가 TV 보지 말라는 것이었습니다. 연속극 보며 마음을 빼앗긴 사람이 깊은 기도하는 것은 불가능한 것입니다. 연속극에서 은혜를 받은 사람이 말씀 속에서 금방 은혜를 받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입니다.

예)거실을 도서실로 꾸미기 운동



(요 14:21) "나의 계명을 가지고 지키는 자라야 나를 사랑하는 자니 나를 사랑하는 자는 내 아버지께 사랑을 받을 것이요 나도 그를 사랑하여 그에게 나를 나타내리라"



3. 말씀으로 인내해야 합니다.

어떤 사람에게 있어 응답은 너무 빨리 쉽게 이루어지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또 어떤 사람에겐 응답이 너무나 더딥니다. 아니 응답되지 않을 것 같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확신해야 할 것은 하나님이 나에게 말씀으로 다가 오셔서 역사하신 것이라면 분명히 응답은 있습니다. 사실 이미 응답은 말씀으로 온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을 이루기까지는 시간이 필요합니다.

오늘 본문의 비유는 우리에게 너무나 적절합니다. 말씀을 씨로 비유했기 때문입니다. 뿌려지자 곧 결실하는 씨는 없습니다. 

(약 5:7)에는 말씀으로 뿌려진 씨가 어떻게 결실하는 지를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형제들아 주의 강림하시기까지 길이 참으라 보라 농부가 땅에서 나는 귀한 열매를 바라고 길이 참아 이른 비와 늦은 비를 기다리나니”



농부가 씨를 뿌렸다면 참고 기다려야 합니다. 기다림이 없으면 아무 좋은 씨(종자)를 뿌렸어도 좋은 열매를 거둘 수 없습니다. 아무리 유명한 강사를 통해 좋은 말씀을 받고, 심지어 능력을 체험했어도 인내하지 못하면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야고보 선생은 ‘이른 비와 늦은 비’를 기다린다고 하였습니다. 비는 하늘에서 내리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역사를 바라보고 때를 기다려야 하는 것들이 있습니다.

어쩌면 오래 기다리는 것일수록 능력은 더욱 좋고 아름다운 열매를 거두게 될 것입니다. 자주 피지 않는 곳이 한 번 피면 너무나 향기롭습니다. 오래 기다려 맺은 열매는 더욱 진귀한 맛을 냅니다.

산이 높으려면 분명히 골짜기도 깊습니다.

중요한 것은 내가 말씀을 지키고 있으며 그 말씀으로 인내하고 있느냐는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하나님은 우리를 통해 열매를 보고 싶어 하십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자주 우리에게 자신의 안타까움을 말씀해 주십니다. 성경의 그 많은 메시지가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시기에 우리를 향한 간절한 안타까움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사5:4에 “내가 내 포도원을 위하여 행한 것 외에 무엇을 더할 것이 있었으랴 내가 좋은 포도 맺기를 기다렸거늘 들 포도를 맺힘은 어찜인고”

주님의 뜻은 열매 맺는 풍성한 삶입니다.

요10:10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



말씀을 듣고 지키고 인내하여 결실하는 성도들이 되기기를 축원합니다. - 아 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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