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산교회채널
 가정교회360
 예배생방송

사역의 지경이 넓혀지는 교회

주일오전예배

하물며 너희일까 보냐 - 설교1
  • 날짜 : 2006.11.19
  • 본문 : 마태 6:25-34
  • 설교자 :
성경본문 및 요약
제목> 하물며 너희일까 보냐

성경> 마6:25-34

찬송> 93, 309, 307



●들어가면서

오늘 우리는 추수감사주일 예배를 드리고 있습니다. 이 절기를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이유는 무엇이겠습니까? 매년 잊지 않고 현수막을 붙이고 헌금을 하고 특별행사를 하는 것에 있지는 않을 것입니다. 하나님이 진정으로 원하시는 것은 한 해를 거의 다 보내면서 정정한 감사를 할 수 있는지 돌아보라는 것일 겁니다. 즉, 하나님은 ‘너 진짜 감사하고 있니?’하고 물으시는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는 진정으로 감사하고 있습니까?

이 감사와 어울리는 단어는 평안, 기쁨, 만족 등입니다. 그러나 이 감사와 반대되는 단어는 불평이요, 불평과 어울리는 단어는 걱정, 근심, 불만, 불안 등입니다.



TV에 세계 각국을 여행하는 프로그램이 있는데 한번은 미얀마를 여행기를 취재하면서 PD가 설명을 덧붙이고 있었습니다. 가끔 서구라파의 아름답고 깨끗한 풍광과 사람들의 현대적인 멋진 면을 화면을 통해 봐온 터라, 동남아 국가들의 모습을 볼 때 한결같이 못살고 지저분하고 사람들의 몰골은 깡마른 모습이었습니다. 그런데 이들은 자신들의 삶에 만족하고 산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부족한 것도 모르고 그렇게 사는 것이 당연한 것으로 알고 산다는 것입니다.

저는 이들의 모습을 보면서 두 가지를 동시에 생각했습니다. 첫째는 이들이 참 불쌍하다는 것이었고, 둘째는 정반대의 개념으로 이들이 참 행복할 수 있다는 생각이었습니다. 불쌍하다는 것은 더 복되고 아름다운 삶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모르고 산다는 것이고, 행복할 수 있다는 것은 어차피 그렇게 살 바에야 자신의 처지를 비관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를 받아들이는 태도였습니다.

미얀마라는 나라보다는 우리나라가 훨씬 더 부국임에 틀림이 없지만 우리의 마음의 상태를 가지고 비교한다고 할 때에 누가 더 행복하냐고 질문을 한다면 그것에 대한 답에는 자신이 없는 것입니다. 적어도 그들은 우리보다는 걱정근심거리가 훨씬 적은 것 같았습니다.



노먼 빈센트 필 박사는 ‘쓸데없는 걱정’이란 글에서 한 연구기관의 조사를 인용하여 다음과 같이 밝히고 있습니다. 사람이 하는 걱정 중 절대로 발생하지 않을 사건에 대한 걱정이 40%, 이미 일어난 사건에 대한 걱정이 30%, 별로 신경 쓸 일이 아닌 작은 것에 대한 걱정이 22%, 우리가 어떻게 바꿀 수 없는 사건에 대한 걱정이 4%. 이렇게 정리해 나가다 보니 결국 우리들이 해결해야 할 진짜 사건에 대한 걱정이 4%였습니다. 결국 사람들은 96%의 쓸데없는 걱정 때문에 기쁨도, 웃음도, 마음의 평화도 잃어버린 채 살아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오늘 우리의 가장 큰 걱정, 근심거리인 현실적인 문제 의식주(衣食住)의 문제에서부터 하나님이 하신 말씀을 다시 한번 정리해 봅시다.

예수님은 산상보훈을 말씀하시면서 우리의 현실적인 문제를 터치하면서 교훈하셨습니다. 예수님 당시나 지금이나 사람들이 매일 수밖에 없는 문제가 곧 이 먹고 사는 문제인 것 같습니다. 아니 이 문제는 우리의 육신이 이 땅에 발을 붙이고 있는 이상 결코 무시할 수도, 무시될 수도 없는 문제일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아예 염려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오늘 본문에 가장 자주 강조되는 말이 ‘염려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계속해서 나오고 있습니다.



그러면 이제 우리가 걱정 근심 염려보다 감사 속에 살아갈 수 있어야 하는 근거가 무엇인지 성경 말씀을 통해 분명히 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



1.내 생명(영혼)의 존귀함부터 깨닫자.

 "이는 너희가 죽었고 너희 생명이 그리스도와 함께 하나님 안에 감취었음이니라"(골3:3)

몸을 위해 먹고 몸을 위해 입기도 하는데 먹을 것을 위해 몸이 사는 것처럼, 입을 것을 위해 몸이 있는 것처럼 살지 말라고 하십니다.

“목숨을 위하여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몸을 위하여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지 말라”(마6:25)

과연 무엇이 더 중요한 것입니까? 본말이 뒤바뀐 것이 아닙니까? 우리의 걱정 근심거리를 잘 생각해 보십시오. 과연 못 먹어서 걱정입니까? 과연 못 입어서 걱정입니까? 정말 정확하고 냉철하게 우리 자신을 살펴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 우리의 걱정은 좀 더 잘 입지 못한 것 때문입니다. 좀 더 잘 먹지 못한 것 때문입니다. 우리의 걱정은 거의 다 다른 사람과 비교해서 좀 더 낫지 못하다는 것에 있습니다.

이전에 말씀을 나눈 것처럼 우리에게 그래도 바꿔서 입을 옷이 있고(모임마다 바꿔 입어야 할 옷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오늘 밥을 거르지 않고 다 먹을 수 있고, 누우면 하늘이 보이지 않는 집에 사는 것만으로도 우린 전 세계 인구 중에서 25% 안에 드는 부자입니다.

(딤전 6:8) “우리가 먹을 것과 입을 것이 있은즉 족한 줄로 알 것이니라”



우리는 사실 이런 것에 얽매여 우리의 인생을 보내야 할 자들이 아닙니다. 그런데 이 세상의 영인 사단이 자주 우리의 삶의 목적과 방법에 왜곡시킵니다. 그래서 자주 우리는 전혀 엉뚱한 것에 매여 살게 됩니다.

예수님이 받으신 시험은 우리 인생이 이 땅에 살면서 연약해 질 수 있는 것들에 대한 시험이었고 예수님은 그 시험들을 이기시면서 우리가 무엇을 위해 어떻게 살아야 할지를 분명히 보여주셨습니다.

예수님의 제일 처음 시험이 돌이 떡덩이 되게 하라는 시험이었습니다.

이 시험을 받을 당시에 예수님은 40일을 금식하셔서 매우 주리셨습니다. 이것은 인생의 가장 기본적인 욕구에 대한 시험이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진정으로 소중하게 여겨야 할 것이 무엇인지를 정확하게 보여주셨습니다.

마4:4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니라”

우리는 영적인 존재입니다. 영적인 존재가 육신의 것만을 위해 사는 자처럼 오해하며 살아서는 안됩니다.

사람이 먹을 것을 위해 사는 것이 아니라고 했습니다. 몸이 옷을 위해 사는 것이 아니라고 했습니다.



여러분 자신의 영혼을 위해서 내가 하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를 정확하게 돌아보시기 바랍니다.

이전에 한 번 말씀드렸습니다. 새가족 중에 어떤 분이었는데 몇 번 교회에 나오다가 보이지 않았습니다. 헬스장에서 그 사람을 만났는데 벗을 몸을 보니 몸이 얼마나 단단하고 근육질인지요? 무슨 대회에 나가서 3등을 했답니다. 그때 저의 수준은 몇 가지 기구 들다가 한 20분 정도 러닝하고 땀이 나면 샤워하고 오는 정도 였는데 가고 오는 시간 합치면 1시간 조금 더 소요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제가 물었습니다. 이 정도의 몸을 만들고 또 유지하려면 얼마나 해야 하느냐고요. 적어도 하루에 3시간은 든다고 합니다. 본격적으로 운동해야 할 때는 5시간입니다. 제가 생각해 봤습니다. 이 사람 하루가 아니라도 주일에만 자신의 영혼을 위해 1시간 제대로 투자만 해도 이 사람의 삶이 이렇지 않을 터인데...(그 사람의 형편은 이혼 직전에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정말 우리는 속고 살고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예수님은 어리석은 부자에게 말씀하시면서

(눅 12:15) “저희에게 이르시되 삼가 모든 탐심을 물리치라 사람의 생명이 그 소유의 넉넉한 데 있지 아니하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래도 우리는 그게 아니라고 말합니다.



2.세상 사람들이 매여 있는 의식주 문제에서 탈피하라. - 생존을 위해 살지 말고 복음을 위하여 살라.

바울은 “살아도 주를 위하여, 죽어도 주를 위하여.”라는 삶의 뚜렷한 목적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러면 현실적인 먹고 사는 문제는 어떻게 하라는 말입니까?

예수님은 우리의 삶의 우선순위가 분명하면 먹고 사는 문제는 하나님이 책임져 주신다고 말씀하십니다.



오늘 본문에는 뚜렷한 두 가지의 삶을 말하고 있습니다. 성도들의 삶과 이방인의 삶입니다.

이방인들이 추구하는 삶의 목적은 이 세상의 관심입니다. 그들은 먹고, 마시고, 입고, 하는 것에 관심이 있습니다. 이방인의 삶을 가리켜 말하기를

(마 6:31-32) “그러므로 염려하여 이르기를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하지 말라  이는 다 이방인들이 구하는 것이라”

이것은 생존을 위한 삶입니다. 생존 그 자체를 위해 살아가는 것은 사람이 아니라 짐승들도 다 그렇게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어 예수님은 그리스도인의 삶을 말씀하십니다.

(마 6:33)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복음을 위한 삶입니다. 하나님 나라에 그 목표가 맞추어져 있습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가 어떻게 하다보니 우연히 이 땅에 태어난 것입니까? 만약 그렇다면 우리는 별 것 아닙니다. 우연히 생긴 것 그것이 뭐 그리 대단하며 소중하겠습니까? 그리고 그렇다면 한 생명이 죽는 것도 별 것 아닙니다. 우연히 이 땅에 생긴 것인데... 그렇게 되면 우리의 존재 가치는 무너집니다. 그렇게 되면 사실 사람 하나 죽이는 것 그렇게 큰 일이 아닙니다. 우연히 생긴 건데요 뭐!

그러나 우리의 생명이 그렇게 생긴 것이 아닙니다. 이 한 생명은 치밀한 하나님의 계획 속에서 생긴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우리를 이 땅에 두실 때는 하나님의 뚜렷한 계획이 있음을 믿어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는 바로 그것을 위해 살아야 합니다. 그럴 때 우리는 가치 있는 존재가 되는 것입니다.

요사이 ‘목적이 이끄는 삶’이란 책이 베스트 셀러입니다. 그 책이 말하는 것이 바로 이것입니다.

‘우리는 이 땅에 사는 목적이 있다. 그것을 위해 살아야 한다.’ 바로 그것입니다.



●맺으면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추수감사절을 맞이해서 우리가 무엇 때문에 살고 무엇 때문에 감사해야 하는지를 더욱 분명하게 알고 고백하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절대로 영혼이 없는 짐승처럼 육신만을 위해 사는 존재로써 살지 말고 존재의 소중함을 깨닫고 하나님이 원하시는 더욱 소중하고 고귀한 삶을 위해 - 즉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사시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 아 멘 - (2006-11-19/ 추수감사주일 특찬예배- 첫 번째 설교)
주일오전예배 목록
번호 설교제목 설교자 설교본문 설교일자 조회
276 새 삶의 능력을 주시는 하나님 이사야 40:27-31 2006.2.11 631
275 평양대부흥운동과 100주년과 우리교회 행 2:1-13 2007.2.4 611
274 하나님의 임재 창세기 28:10-19(신약 40) 2007.01.28 516
273 시돈의 과부와 수리아의 나아만 누가복음 4:14~30 (신약 94) 2007.01.21 582
272 백부장의 믿음 마태복음 8:5~13 (신약 11) 2007.01.14 570
271 평안하여 든든히 서가는 교회 사도행전 9:31 (신약P134) 2007.01.07 655
270 .. .. 2006.12.31 520
269 베들레헴 에브라다야! 댓글2 누가복음 2:1~7 (P신약 89) 2006.12.25 1033
268 동방박사들의 경배 마태복음 2:1~12 (P신약1) 2004.12.24 533
267 성탄을 위해 쓰임 받은 사람들 누가복음 1:26~38 (26~56) (P신약) 2006.12.17 585
266 성탄을 기다리는 사람 눅2:21-39 2006.12.10 883
265 결실하는 자 눅8:9-15 2006-12-03 778
264 직분을 취할 사람 행1:12-26 2006.11.26 788
263 여기까지 인도하신 하나님- 설교2 신명기 8:1-4 2006.11.19 909
열람중 하물며 너희일까 보냐 - 설교1 마태 6:25-34 2006.11.19 866
게시물 검색

장산교회채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