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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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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및 요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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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가자
성경> 히4:14-16
찬송> 490, 484장


●고구마 전도왕 김기동 집사의 간증에서
결혼하여 어린 두 딸을 둔 사람이 있었습니다. 이 사람은 예수 믿는 사람은 몰상식하고 이기적인 사람이라며 아주 싫어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교회는 힘없고 나약한, 어리석은 사람들이 의지할 곳이 없으니 나가는 곳이라 생각하였습니다. 그런데 언제부터인지 자기의 아내가 교회를 나가기 시작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는 아내를 핍박하면서 교회 못 나가게 하였습니다.
그러던 어느 주일날 아내와 교회 나가자는 약속을 어기고 스키장으로 향했습니다. 스키장에 가는 조건으로 아침 1부 예배를 드리기로 남편에게 약속을 받았던 아내는 약속이 틀리지 않느냐고 빨리 핸들을 돌려라고 말했습니다. 그때 남편은 아내의 등을 어루만지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너무 깊이 빠지면 못써, 솔직히 말해 하나님이 밥을 주냐 떡을 주냐, 나를 믿어"

그렇게 말하고 난 뒤 몇 시간 뒤에, 스키장으로 향하던 그의 차는 반대편에서 오던 승용차와 정면 충돌하였습니다. 뒷좌석에 앉아 있던 아이들은 운전석 앞 유리창을 뚫고 밖으로 튕겨 나갔고 운전석 옆자리의 아내는 앞 범퍼 밑으로 하반신이 깊숙히 들어갔습니다. 차는 불이 나고 연기가 올랐습니다.

그때 그는 하늘을 향해 이렇게 말했습니다. "하나님 솔직히 나는 하나님이 안 믿깁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살아있다면 나를 불쌍히 여겨주시고 우리 가족들 생명만 살려 주십시오."

성도 여러분, 어디선가 들어보신 이야기같죠? 누구이야기입니까? 예, 고구마 전도왕 김기동 집사의 간증에서 들은 이야기입니다.

그는 해군사관학교를 나와 제대를 하고, 그 당시에는 만도기계를 다니는 그런 대로 엘리트였습니다. 그리고 월급 중에서 상당 부분을 저축을 하며 알뜰하게 그리고 열심히 사는 사람이었습니다. 또 부자인 처가에 신세지지 않고 혼자 힘으로 당당하게 자수성가를 해 보겠다는 생각을 가진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그의 젊음, 패기가 그 위기 속에서는 아무 소용이 없었습니다. 도리어 그는 조금 전에 "하나님이 밥을 주냐 떡을 주냐"며 모욕적인 언사를 내뱉었던 바로 그 하나님께 도움을 구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는 삶을 열심히 사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그의 삶에 대한 진실함이 그와 그의 가족을 그 위기에서 구원할 수 없었습니다. 그는 단지 하늘을 바라보고 "하나님 도와주십시오."하고 외칠 수밖에 없었습니다.

● 긍휼을 구할 수밖에 없는 인생
성도 여러분, 열심히 살 필요가 없다고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젊은 패기가 필요 없다는 것도 아닙니다. 말하고자 하는 것은 우리의 젊음이, 패기가, 더 나아가 우리의 진실한 삶의 태도가 아무 도움이 되지 않는 상황이 우리에게는 얼마든지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때는 돈이 많이 있어도, 세상의 모든 권력을 손에 쥐어도 소용이 없습니다. 만약 그 당시에 김기동이라는 사람이 월급쟁이가 아니라 재벌이었으면 그 위기에서 그의 가족을 살릴 수 있었겠습니까? 그 당시에 김기동이라는 사람이 대통령이었다면 그의 가족의 생명을 구해낼 수 있었겠습니까?
그 당시에는 김기동이라는 사람의 그의 가족에 대한 뜨거운 사랑도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오히려 사랑하는 만큼 더욱 절망적일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때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하나님, 하나님 나를 불쌍히 여겨주십시오" 이것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성경의 예)
1)귀신들린 아들을 둔 아버지의 외침/ 막9:22 "귀신이 저를 죽이려고 불과 물에 자주 던졌나이다 그러나 무엇을 하실 수 있거든 우리를 불쌍히 여기사 도와주옵소서"
2)수로보니게 여인의 외침/ 마15:22 "소리질러 가로되 주 다윗의 자손이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내 딸이 흉악히 귀신들렸나이다"
3)소경 바디매오의 외침./ 막10:47-48 "다윗의 자손 예수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하거늘 많은 사람이 꾸짖어 잠잠하라 하되 그가 더욱 소리질러 가로되 다윗의 자손이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하는지라"

바로 이때 하나님은 판단하실 것입니다. '내가 저를 불쌍히 여겨 도와줄까 말까?'
사실 하나님은 안 도와주셔도 인생은 아무 할 말이 없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다 자신이 저질러 놓은 결과를 얻는 것이니까요.

그러나 하나님이 이를 불쌍히 여기고 도우실 때 우리는 구원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우리를 도우시는 인생이 되어야합니다. 그래야 우리의 삶이 비참해지지 않습니다. 그래야 우리의 삶에 활력이 넘칩니다. 그래야 살만한 인생이 되는 것입니다.

구원은 두 가지 면에서 생각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영혼의 구원과 생활 속에서의 구원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불쌍히 여기시면 우리에게 구원의 길이 열리는 것입니다. 이미 우리는 하나님이 우리의 영혼을 불쌍히 여기심으로 영혼을 구원을 받았습니다.
이제 또 우리를 불쌍히 여기셔서 삶 속에서 구원을 체험하는 여러분들이 되시길 바랍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불쌍히 여기시는 것, 그것을 가리켜 우리는 '긍휼'이라고 말합니다.

● 우리는 하나님의 긍휼하심이 필요하다.
16절 말씀에 "우리가 긍휼하심을 받고"라고 되어 있습니다. 우리에게 하나님의 긍휼하심이 필요하다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아무에게나 긍휼을 베푸시는 것은 아닙니다.
(롬 9:15)에 "모세에게 이르시되 내가 긍휼히 여길 자를 긍휼히 여기고 불쌍히 여길 자를 불쌍히 여기리라"
형편과 처지가 비슷하다고 하여 똑 같이 긍휼의 대상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야곱과 에서는 한 어머니의 배속에서 나왔스니다. 그렇지만 야곱은 하나님의 긍휼을 입었는가하면 에서는 그렇지 못했습니다.

성도 여러분, 행색이 초라하다고 무조건 불쌍히 여김을 받는 것은 아니지 않습니까? 똑같은 거지가 길거리에 앉아 있어도 불쌍한 마음이 드는 거지가 있는가 하면, 초라한 것이 더 미운 사람도 있습니다. 똑 같이 누더기를 입고 있어도 누더기 입은 것이 불쌍하게 보이는 사람이 있는가하면 오히려 더 밉게 보이는 사람도 있는 것입니다.
얼굴이 못 생겨 불쌍히 여겨지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도리어 더 미움을 받는 사람도 있습니다.
"사는 게 어려우니 단장을 못해서 그렇게 보이는 거야"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는가하면 "행색도 그런데 생긴 것도 어찌 그리 못났느냐"고 말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성도 여러분, 하나님이 우리를, 나를 보실 때 긍휼히 여기심이 필요합니다. 하나님의 긍휼이 필요하지 않는 인생은 아무도 없습니다. 돈이 있어도 필요합니다. 삭개오는 돈 많은 부자였습니다. 그러나 그는 주님의 긍휼이 필요했습니다.
권세가 있어도 필요합니다. 아람 나라의 군대장관 나아만은 권세있는 세도가(勢道家)였습니다. 그러나 그도 역시 하나님의 긍휼이 필요한 사람이었습니다.
성도 여러분, 지금 여러분에게 혹 아쉬운 것이 없어 하나님의 긍휼이 피부에 와닿지 않는 사람이 있습니까? 언젠가 여러분에게 타는 목마름으로 하나님의 은혜를 갈구하는 때가 올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하는 일이 잘못 될 때만 아니라 모든 일이 잘 되어 갈 때도 하나님의 긍휼이 필요합니다. 왜냐하면 잘 된다고 하는 일도 하루아침에 무너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의 생애 전체가 하나님의 돌아보심으로 붙잡혀야 온전한 생애를 살 수 있습니다. 다윗이 고백하였습니다. "내 시대가 주의 손에 있사오니"(시 31:15)
우리의 일생이 주님의 손에 붙들린 바 되어야만 온전한 삶을 살 수 있는 것입니다.

● 우리는 때를 따라 돕는 은혜가 필요하다.
긍휼하심을 얻은 사람은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을 수 있습니다. 여기서 때를 따라 돕는 은혜란 시의 적절한 은혜를 말합니다. 필요할 때 그 타이밍을 놓치지 않고 역사 해주시는 은혜를 말합니다.

전도서 3장에는 사람이 살아가는데 모든 것이 다 때가 있다고 말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바로 그 때마다 하나님의 적절한 은혜를 입으며 살아가는 인생이 되시기 바랍니다.

제가 잘 아는 사람 중에 북한과 관련하여 사업을 하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이 사람은 북한의 함경도에 있는 수성천의 모래를 들여와 국내에 팔기도 하였습니다. 이 북한 모래가 들어왔을 때 수성천 근처에 살았던 실향민들이 소식을 듣고 고향 모래라도 만져보기 위해 동해항에 모였던 것이 화제가 된 적도 있었습니다. 모래 무역으로 재미를 본 이 사람이 곧 북한의 생수를 남한에 들여올 계획을 세웠습니다. 6개월 동안 중국을 오가면 중국을 통해 북한과 무역할 수 있는 길을 텄습니다. 이제 모든 절차가 다 마치고 곧 북한에서 생수를 들여오면 됩니다. 그런데 그 일이 성사되기 전 하루 전에 북한 잠수함의 동해 침투 사건이 발생하였습니다. 이제까지 애써 왔던 것이 한 순간에 올스톱이 되었습니다. 그간 손해 본 것은 이루 말할 수 없습니다. 다시 시간을 보내고 남북의 여건이 개선되기를 기다렸습니다. 조금 화해의 무드가 조성되자 이전에 계획했던 사업도 진척이 되어갔습니다. 이제 또 북한의 생수를 들어 올 날짜가 거의 잡혔습니다. 일이 성사될 막바지에 이르렀을 때 또 황장엽씨 망명사건이 터졌습니다. 다시 모든 것이 원점으로 돌아가 버렸습니다. 더 이상 견디지 못하고 좌절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막대한 손해를 보았고 이 사업은 자금력이 있는 대기업이 손을 대기 시작하였습니다.

우리는 한치 앞을 볼 수 없는 약한 자들입니다. 때를 하나님이 도우시지 않으면 안되는 것입니다.

로마서 9장은 구원에 관한 하나님의 절대주권을 우리에게 가르치는 성경입니다. 구원은 하나님의 긍휼히 여기심과 은혜로 이루어지는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그러나 앞서 말씀한 대로 우리의 영혼의 구원에만 하나님의 긍휼과 은혜가 필요한 것은 아닙니다. 우리의 삶 속에서도 우리는 하나님의 긍휼히 여기심을 따라 오는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어 삶의 구원을 체험할 수 있는 것입니다.
롬9:16에 "그런즉 원하는 자로 말미암음도 아니요 달음박질하는 자로 말미암음도 아니요 오직 긍휼히 여기시는 하나님으로 말미암음이니라"

원한다는 말은 마음으로, 머리로 궁리한다는 말입니다.
달음박질한다는 말은 열심히 최선을 다해 노력한다는 말입니다.
우리는 세상에서 간절히 원하고, 그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열심히 노력만 하면 모든 것이 성취되는 세상에 살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우리는 성실한 사람이, 그리고 정직한 사람이 또 노력하는 사람이 그만한 대가를 얻는 세상을 원합니다. 그러나 세상은 정당한 보상으로 우리에게 나타나지 않습니다. 그래서 더욱 절망 속에 빠지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그렇다고 성실하게 사는 것을 포기하시면 안됩니다. 정직하게 사는 것을 포기하시면 안됩니다. 노력하며 사는 것을 포기하면 안됩니다. 이 모든 삶의 자세는 이 세상을 살아가는 그리스도인의 기본적인 자세입니다.
그러나 이렇게 살아가는 우리에게 또 하나 빠져서는 안되는 것이 있는데 그것이 바로 우리를 '긍휼히 여기시고 때를 따라 도우시는 하나님의 은혜'라는 것입니다.

이런 은혜를 받는 사람은 환난이 축복을 바뀝니다. 사람의 저주가 축복으로 변합니다. 도무지 일어설 수 없는 상황에서도 거뜬히 일어섭니다. 역전의 인생을 살게 되는 것입니다.

요셉의 경우를 생각해 보십시오. 그는 인생의 절망적인 상황 속에서 오히려 더 잘 풀린 사람입니다. 그가 형들의 미움을 받았지만 하나님은 애굽에서 그는 총리로 세우셨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요셉에게 은혜를 입혀주셨기 때문이라고 성경이 말하고 있습니다.
7년 대 흉년은 다른 사람들에게는 불행이었으나 하나님의 은혜를 입은 요셉에게는 그것이 오히려 더욱 복 받는 기회가 되었습니다.
다니엘은 그의 정적들이 모함으로 사자 굴에 던져졌으나 하나님의 돕는 은혜가 그와 함께 하니 그는 사자굴 속에서도 살아 나왔고, 그가 살자 그를 모함한 정적들은 한 순간에 제거되고 말았습니다.

IMF가 왔을 때 많은 기업이 부도가 나고 도산하게 되었으나 오히려 어떤 기업은 살아났습니다. 예)서울 동안교회를 시무했고 많은 젊은이들에게 도전을 주었던 김동호 목사님의 설교를 듣는 중에서 부산의 모 교회 이야기가 나와 관심있게 들었습니다. 집회 인도를 갔던 그 교회가 동안교회와 같은 규모의 예배당을 지어서 감짝 놀랐다고 합니다. 성도수는 동안교회의 1/10밖에 안되는데 어떻게 이런 교회를 지었느냐고 물어보니 한 장로님이 공사비의 2/3를 부담하였다는 것입니다. "참 귀하다! 돈이 있다고 다 헌신하는 것은 아닌데…" 자기 교회는 왜 그런 사람이 없는지 심술이 나더랍니다.
집회를 마치면 그 장로님이 항상 숙소까지 대려다 주곤 하는데 그 장로님이 차에서 자기의 간증을 하는 것을 듣고 그 정도 헌신할 믿음과 체험이 있는 장로님인 것을 알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 장로님은 IMF가 오기 바로 전이 가장 어려웠다고 합니다. 외국과 무역을 하였는데 자금 회전이 잘 되지 않고 어려움을 겪는데 IMF가 터진 것입니다. 그런데 오히려 그는 전화위복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외국 회사에서 결제는 달러로 해 주는데 환율이 오르니 자연히 자금 사정이 회복되고 덩달아 사업이 일어나기 시작하는데 감당하지 못할 정도로 하나님이 부어주셨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때를 따라, 시의 적절하게 나타나서 위기의 순간은 변하여 복이 되는 역사를 경험하는 여러분이 되시길 축원합니다.

● 은혜의 보좌 앞에 나아가야 한다.
이제까지 우리는 우리의 생애 가운데 하나님의 긍휼하심과 때를 따라 돕는 은혜가 얼마나 필요한지를 생각해 보았습니다. 그러면 이제 그토록 필요한 하나님의 긍휼과 은혜를 어떻게 얻을 수 있는지를 보십시다.
다시 16절 말씀을 같이 봉독해 보겠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긍휼하심을 받고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하여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갈 것이니라"

"'은혜의 보좌'로 나아가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1)'은혜의 보좌'는 어떤 곳입니까?
하나님은 우리에게 긍휼하심과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해 예비되어 있는 한 자리로 가기를 원하십니다. 그 자리가 '은혜의 보좌'라고 합니다.
사실 우리에게는 심판의 보좌가 더 어울리는 자리입니다. 우리는 다 육체의 욕심을 따라 정욕을 좇아 살던 본질상 진노의 자녀들이었습니다. 그런데 우리에게 진노의 보좌 대신에 은혜의 보좌로 나아가라고 말씀하십니다.

이 은혜의 보좌는 하나님이 계시는 곳을 말합니다. 구약의 성전이나 성막에서 지성소를 의미하는 곳입니다. 성막의 지성소는 지극히 거룩한 장소라는 의미입니다. 그곳이 지극히 거룩한 이유는 하나님이 그곳에 임재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지성소에는 아무나 들어갈 수 없었습니다. 이곳은 대제사장이 일년에 한 번씩 희생제물의 피를 들고 들어가는 곳이었습니다. 들어갈 때 대제사장은 몸에 끈을 묶고 들어간다고 합니다. 그것은 혹 대제사장이 하나님 앞에 합당한 모습이 아닐 때 하나님의 진노를 받아 죽을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지성소는 거룩한 장소일 뿐만 아니라 거룩하지 못한 사람들에게는 진노의 장소이기도 합니다.
진노의 자리가 되느냐 아니면 은혜의 자리가 되느냐는 무엇에 달렸습니까? 바로 정결한 대제사장이 깨끗한 어린양의 피를 가지고 들어가는 것에 달려있습니다.

이 대제사장이 누구입니까? 14절을 보십시오. 바로 우리 예수님입니다.
피로 바쳐진 어린양은 누구입니까? 역시 예수님입니다. 세례 요한은 예수님을 보자 바로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이로다"(요 1:29)라고 말하였습니다.

예수님 때문에 진노의 장소가 은혜의 장소가 된 것입니다. 우리가 그 보좌로 나갑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이 자리는 아무나 올 수 있는 자리가 아니다"
그때 예수님이 말씀하십니다. "제가 이 자리로 인도했습니다." 대제사장 되신 예수님의 말씀입니다.
하나님이 말씀하십니다. "그런데 이 자는 추악한 죄인이지 않느냐?"
예수님이 다시 말씀하십니다. "하나님, 제가 이 사람을 위해 피를 흘렸습니다" 어린양 되신 예수님의 말씀입니다.

그럼으로 해서 우리는 그 자리에 용납이 되고 하나님의 그 은혜의 보좌에 더불어 앉게 됩니다. 하나님의 은혜의 보좌에 앉는다는 것은 하나님의 것을 곧 나의 것으로 누리게 된다는 말입니다. 그곳에서 세상살이에 찌들고 상한 심령이 무한한 하나님의 사랑을 누리고, 위로를 얻으며 치유를 경험하는 것입니다.
막 시집간 딸이 시집살이 하다가 친정에 온 것처럼 말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또 그 자리에서 만나게 되는 하나님은 전능하신 하나님입니다.(창17:1)
우리의 하나님은 전능하신 하나님이기에 우리의 모든 때와 상황에 적절하게 역사 하시는 분입니다. 우리 하나님은 전능하시기에 우리의 노력, 사랑으로도 할 수 없는 것을 능히 하시는 것입니다.

2)어떤 자세로 나가야 합니까?
16절 말씀에는 "담대히" 나아가라고 말씀합니다. 이 말씀은 확신을 가지고 자신 있게 나아가라는 말씀입니다. 예수님의 대제사장 되심과 어린양 되심을 확신을 가지고 나아가라는 말씀입니다. 그러면 분명히 은혜의 보좌에 이르게 될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 은혜의 보좌가 될 수문앞광장 특별새벽기도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내일부터 두 주간, 부활주일까지 수문앞광장 특별새벽기도회를 가집니다.
1)수문앞 광장의 의미
2)은혜의 보좌가 될 것입니다.
저는 우리 교회 모든 성도들이 이번 기도회를 통하여 은혜의 보좌에 앉으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리하여 전능하신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긍휼히 여기심을 받고,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으시기 바랍니다. 그리하여 여러분의 가정과 생업 터, 사업 터에서 역사 하신 하나님의 은혜로 갖가지 간증이 넘쳐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담대히 나아가시기 바랍니다. 해보지도 않고 미리 포기하지 마십시오. 어떤 사람은 '하다가 말 것인데 시작부터 말자'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면서 옛 시조를 말합니다. "잘가노라 닿지말며 못가노라 쉬지마라/ 부디 걷지 말며 촌음을 아껴쓰라/ 가다가 중지 곧 하면 아니 감만 못하니라" 그런데 요사이 이 시조가 바뀌었습니다. "가다가 중기 곧 하면 간만큼 이익이다."

여러분, 2주간 다 못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여러분이 몇 일을 하였던 했던 날 수만큼 분명 유익할 것입니다. 그리고 담대히 믿음을 가지고 나아가다 보면 능히 2주간을 다 해 낼 수 있을 것입니다.

또 시작하면서 감사헌금 하시기 바랍니다. 기도의 응답을 받아야 감사하는 것 아닙니다. 기도할 새마음을 갖는 것부터 감사할 이유입니다.
'하나님이 내 마음을 아시니 마음이 중요한 거지.' 그러나 마음만 중요한 것 아닙니다. 물질 세계에서 물질을 드려 그 마음에 있는 것을 나타내야 합니다. 그래야 그 마음이 진정이랄 수 있습니다. 초신자들은 이 말씀에 부담을 갖지 않기를 바랍니다. 그러나 초신자들중에서도 이 말씀에 믿음이 생기는 분들은 참여하시기 바랍니다. 결코 손해 볼 일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어떤 목사님들은 매일 새벽마다 하라고 가르칩니다. 그렇게 해야겠다는 생각이 드는 사람은 그렇게 하십시오. 그러나 저는 여러분들이 두 주간 매 월요일마다 한 번씩은 헌금을 드려 한 주간 받을 은혜에 대한 감사와 기대를 표현하면 좋겠습니다.(헌금함을 이용하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이 헌금을 바쳤다고 하여 제가 따로 헌금 기도를 따로 하지는 않겠습니다. 여러분이 하나님 앞에 각 자 나가시면서 하나님께 잘 보이시라는 말씀입니다.

● 맺으면서 - 수리형의 인생이 되지 말고 정비형의 인생이 되어라.
그리스도인 중에 인생을 살아가는 두 종류의 사람이 있다고 이전에 한 번 말씀드린 적이 있습니다. 그것은 수리형의 인생과 정비형의 인생입니다.
수리형의 인생은 사고가 나서야 고치는 그리스도인의 인생을 말합니다. 어떤 일이 터지면 그때서야 새벽기도다 철야기도다 금식기도다 울며불며 난리를 피웁니다.
그러나 정비형의 인생은 그때그때 기도로 자신의 삶을 잘 정비하여 살아가는 사람의 인생을 말합니다.
정비가 잘 된 차와 그렇지 않는 차의 차이는 험한 길을 만났을 때 나타납니다. 평지를 갈 때는 잘 모르지만 험한 비탈길을 덜컹거리며 오를 때 분명하게 나타나게 됩니다.

우리의 주어진 한 생애를 살아가는 동안 우리는 인생의 비탈길을 맞이합니다. 우리는 기도로써 우리의 삶에 영적 정비를 잘해 두어 필요할 때마다 하나님의 긍휼과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어 살아가는 성도들이 되시길 축원합니다. - 아 멘 - (주후 2002.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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