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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오전예배

나의 이력에 무엇을 남기겠습니까?
  • 날짜 : 2006.10.15
  • 본문 : 성경> 수12:1-23
  • 설교자 :
성경본문 및 요약
●들어가면서 - 뛰어넘으려고 했던 본문.

지난 주일의 말씀은 여호수아가 가나안 정복 전쟁을 마치고 그 전쟁에 대한 요약, 정리한 내용이었습니다. 그 본문을 통하여 이 정복 전쟁이 의미하는 바가 무엇인지를 생각해 보았습니다.

오늘 성경 본문인 12장에서는 다시 한 번 더 이 전쟁을 요약, 정리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사실 이 본문을 뛰어넘으려고 했습니다. 그리고 사람 이름이나 지명이 계속 나오는 부분은 별로 재미가 없습니다. 이미 전쟁에 대한 요약은 남부 지역의 왕들을 쳐부수고 정리를 하였고, 북부 지역의 왕들을 쳐부수고 정리도 하였습니다. 그런데 여기에서 또 전체 정리를 하고 있습니다. 정리의 내용을 봐도 그렇게 다르지 않습니다.

남부지역의 정복 전쟁에 대한 요약이 10:40

“이와 같이 여호수아가 온 땅 곧 산지와 남방과 평지와 경사지와 그 모든 왕을 쳐서 하나도 남기지 아니하고 무릇 호흡이 있는 자는 진멸하였으니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의 명하신 것과 같았더라”(수 10:40)

북부지역의 정복에 대한 요약이 11:16

“여호수아가 이같이 그 온 땅 곧 산지와 온 남방과 고센 온 땅과 평지와 아라바와 이스라엘의 산지와 그 평지를 취하였으니”(수 11:16)

이 두 구절이 사실 비슷한 내용입니다. 그런데 전체 요약할 때 이 내용이 또 나옵니다.

“곧 산지와 평지와 아라바와 경사지와 광야와 남방 곧 헷 사람과 아모리 사람과 가나안 사람과 브리스 사람과 히위 사람과 여부스 사람의 땅이라)”(수 12:8)



그런데 사실 12장은 여호수아 시대의 전쟁만을 기록한 것이 아니라 모세 시대의 전쟁까지 포함하여 기록하고 있습니다. 지난주일에 본문으로 함께 포함시켰던 12:1-6까지의 내용은 모세시대에 있었던 전쟁에 대한 기록합니다. 심지어 12장에는 10장, 11장에는 한번도 기록되지 않는 지역과 성읍 이름까지 상세하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왜 이렇게 계속 반복해서 기록하고 더 상세하게 기록하고 있을까? 여호수아의 입장에서 한번 생각해 보았습니다. 여호수아가 앞에 쓴 내용을 잊어버리고 다시 쓰는 것이 아니라, 누구보다 여호수아는 이 내용이 반복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을 터인데 그가 이렇게 썼다면 이유가 분명히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는 분명 우리의 재미를 위해 이 글을 쓰고 있지 않습니다. 앞으로의 세대가 자신의 글을 재미있게 읽어야 한다는 생각은 그에게 없습니다. 하나님이 그에게 성령으로 감동하셨고 그는 하나님의 분명한 목적에 이끌려 이 글을 쓰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오늘 그가 무엇에 감동하고 있고 또 하나님은 무엇을 목적하고 이 정복 전쟁을 다시 한번 더 전체적인 요약을 하게 하시는지를 생각하면서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실 교훈을 취하려고 합니다.



1. 감동의 정복의 이력을 쓰게 하소서

먼저, 이 내용을 대할 때의 우리의 생각과 감정과 여호수아의 생각과 감정이 너무 다를 것이라는 사실입니다. 우리는 사람 이름이나 지명이 나열 될 때에 한 마디로 별 생각이 없습니다. 이런 본문이 우리의 눈앞에 나타나면 우리에게 떠오르는 제일 우선적인 생각은 빨리 지나가야 되겠다는 것입니다. 한편으로 이런 생각도 이해할 수 있는 것이 우리가 지금의 이스라엘 땅도 아직 가보지 못했는데 어찌 여호수아 때의 지명을 어떻게 알겠습니까? 사실 미국의 수도도 워싱턴 DC인지, 아니면 뉴욕인지 모르는데 말입니다. 앞으로 행정 수도를 옮기고 나면 우리나라의 수도도 서울인지 공주인지 어디인지 헷갈릴지 모릅니다. 또 지명 또한 여기에 요단 이편, 저편부터 헷갈리는데 산지는 어디고, 평지는 어디고, 또 경사지는 어디인지 알게 뭐겠습니까? 저도 이 설교 준비하면서 한 두 시간 정도 다시 지도를 옆에 두고 이해를 해야 했습니다.

그러나 여호수아에게는 그렇지 않다는 사실입니다. 여호수아가 이 모든 전쟁을 다 끝내고 이 전쟁을 회고할 때는 생각할 때마다, 생각할수록 감격이 되었을 것입니다.

그는 우리처럼 먼 옛날 전쟁이야기책을 읽고 있는 사람이 아니라 실제로 그 전투를 수행한 장수였습니다. 그는 아직 전장터의 치열했던 전투 소리가 귀전에 들리는 듯 했을 것입니다.



예)로스와 이야기를 나누다가 가고 싶은 곳 다섯 곳을 말해보라고 하길래 그 중에 터어키를 말했습니다. 왜 터어키를 가보고 싶냐고 묻길래 이전에 바울의 선교여행지코스를 가봤는데 한 번 더 가보고 싶다고 말했습니다. 그때의 느낌을 묻길래 말을 하다가 제가 영어가 잘 안되니까 답답해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다가 제가 ‘잠간만, 기다려라(wait wait, just a moment)’라고 말하고 서재에 있는 성지여행사진 책자를 가지고 왔습니다. 그 책의 사진에는 제가 가 본 곳, 그리고 제도 직접 사진을 찍어 가지고 있는 것들이 많이 나왔습니다. 그 사진을 보니 여행했을 때가 다시 기억에 생생합니다. 이 사진 옆에는 뭐가 있고, 또 이 길을 쭉 따라가면 해변이 나올 것이고… 생각이 다 나는 것입니다. 에베소에 있는 원형극장 사진을 볼 때에는 그 원형극장 한 가운데 서서 다른 나라의 관광객들이 보는 가운데 한국말로 찬송가 40장 ‘주 하나님 지으신 모든 세계’ 찬양하고 박수를 받았던 기억도 났습니다.

분명 다른 사람이 보는 그 사진과 제가 보는 사진의 의미는 달랐습니다.



여호수아는 가나안 땅을 관광한 것도 아니고 직접 목숨을 건 전투를 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모든 성읍들을 일일이 다 기록하였습니다. 그것은 모두 다 그의 기억에 지울 수 없는 생생한 역사였고 감동거리였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그는 각 성읍마다 각각의 기막힌 사건들을 다 기록하지 않고 그냥 넘어가야 하는 것이 더 안타까웠을 것입니다. 그는 이제 이 모든 전쟁을 다 끝내고 이 일을 회고하면서 이 글을 적고 있다는 사실에 감격이 되었을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남의 이야기를 재미가 없습니다. 재미가 있어도 그것은 한계가 있습니다. 그러나 자기의 이야기면 달라집니다. 그것이 자신의 간증이면 달라지는 것입니다. 그 속에 하나님의 생생한 역사를 체험하고 그것이 자신의 신앙고백이 된 것은 단순한 이야기, 단순한 화제꺼리가 아니라 그것은 그의 간증, 그의 찬양이 되는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도 여호수아 같이 감동의 이력을 간직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것은 많을수록 좋습니다. 다른 사람에겐 의미가 없어도 좋습니다. 나에게 지울 수 없는 잊을 수 없는 감동이면 되는 것입니다.

성경이 남의 이야기가 아니라 나의 이야기가 되어야 합니다. 가나안 땅이 남의 땅이 아니라 나의 땅이어야 합니다. 가나안 정복이야기가 이스라엘의 정복이야기가 아니라 나의 정복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나의 삶의 한 가운데서 이루어진 하나님의 기막힌 역사가 되면 나도 여호수아처럼 하나님이 아시고 내가 아는 둘 만의 비밀 감동의 이력을 써 가게 되는 것입니다.



2. 나의 이력이 아니라 하나님의 이력을 써 나갑시다.

12장은 가나안 땅의 정복을 다시 한번 더 정리하면서 여호수아가 기록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모세시대의 정복이야기부터 시작하고 있습니다. 1절에서 6절까지는 모세가 살아있을 때 있었던 정복이야기입니다. 이어 7절에서 24절까지는 여호수아 시대의 정복이야기입니다.

그런데 12장에 이 요약을 할 때 첫 머리에 기록한 내용을 살펴보면 아주 중요한 영적 교훈이 들어 있습니다.

12:1 “이스라엘 자손이 …그 땅에서 쳐 죽인 왕들은 이러하니라”

12:6 “여호와의 종 모세와 이스라엘 자손이 그들을 치고 여호와의 종 모세가 그 땅을 르우벤 사람과 갓 사람과 므낫세 반 지파에게 기업으로 주었더라”

12:7 “여호수아와 이스라엘 자손이 요단 이편 곧 서편 레바논 골짜기의 바알갓에서부터 세일로 올라가는 곳 할락 산까지에서 쳐서 멸한 왕들은 이러하니 (그 땅을 여호수아가 이스라엘의 구별을 따라 그 지파에게 기업으로 주었으니”



시대마다 지도자는 바뀌지만 하나님의 역사는 계속 이어져간다는 것입니다.

사실 가나안 정복의 역사에서 모세도, 여호수아도 주인공이 아니었습니다. 이 정복 역사는 모세의 역사도 여호수아의 역사도 아닙니다. 주인공은 오직 하나님이시고 그 역사를 이루신 분도 역시 여호와 하나님이십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역사에 한 부분을 감당하다가 이 땅을 떠나가는 것입니다. 억울합니까? 고생은 내가 다 한 것 같은데 주인공은 하나님이시라고 하니까 억울합니까? 그러나 진짜 고생을 제대로 한 사람은 절대 억울하지 않고 ‘정말 하나님이 주인이십니다.’라고 고백합니다.

우리의 진정한 행복이 무엇이냐면 그것은 하나님이 쓰시는 역사에 한 부분을 순기능으로 감당하고 가는 것입니다. 얼마나 오래 살았느냐 그 기간은 별로 중요하지 않습니다. 중요한 것은 내가 어떤 모습으로 그 기간을 지냈느냐 하는 것입니다. 궁극적으로 우리의 생은 이 땅에 맞춰져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사실은 때로는 고생을 바가지로 하고 이 생을 마쳐도 별 관계없습니다. 반대로 부귀영화를 한 몸에 다 누리고 산다고 해서 꼭 복 받은 인생이 아닙니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역사에 어떤 흔적을 남기고 떠나느냐는 것입니다. 아간과 같은 기록을 남길 것인가 아니면 모세와 여호수아와 같은 기록을 남길 것인가? 나의 이력은 얼마나 영적이며 하나님이 보시기에 얼마나 인정받을 만한 것인가 아니면 나의 이력은 극히 인간적인 것인가 하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서의 행, 불행을 따져 축복받은 인생인가 아닌가를 따진다면 초대교회 핍박받은 성도들은 다 저주의 인생을 살다간 사람들이 됩니다. 마지막 죽음으로 판단한다면 예수님의 열 두 제자와 바울은 저주 중의 저주의 인생을 산 사람입니다. 우리의 최종 판단은 주님 앞에서입니다. 그래서 지금 조금 잘 된다고 그게 다 잘된 것이 아니고, 더 나아가 이 세상에서 잘 된다고 잘 된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물질세상에서 항상 이것에 메여있기를 잘 하니 물질로만 한번 생각해 봅시다. 지금 아이들이 한창 공부해야 될 시기에 있는 분들은 아이들 공부 때문에 고민이 많을 겁니다. 저도 그 중의 한 사람입니다만 그래도 저는 자주 자주 ‘이것만은 아니야’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왜 몇 주 전에 중학교 시절의 죽고 못 사는 친구들을 만났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사실 당시에 이 녀석들 나보다 공부 잘 하는 녀석이 한 명도 없었습니다. 그런데 30여년이 지난 지금 보니 돈은 제가 가장 못 법니다. 사업에 실패하고 이혼까지 했다고 하는 녀석이 지금도 매월 꼬박꼬박 월 180만원을 자녀 교육비로 보낸답니다. 이건 우리 형제들을 봐도 그렇습니다. 남자 4형제 중에 공부는 제가 두 번째는 되는 것 같은데 지금 돈 버는 것을 생각해 보면 공부를 제일 못하고 사고뭉치였던 형이 돈은 제일 잘 법니다. 오늘 이 말씀에 너무 감동받는 학생들이 없기를 바랍니다.

말하고자 하는 것은 단지 현재 잘 된다고 나중까지 잘되는 것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중요한 것은 현재 나는 하나님 앞에서 어떤 길을 걷고 있느냐는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 남길 만한, 의미 있는 삶을 살고 있느냐, 하나님 나라를 위한 정복의 역사에 어떤 역할을 하다가 세상을 마치게 되는지를 잘 돌아봐야 합니다.

역사는 내가 쓰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이 쓰고 계십니다. 그것을 느끼든지 느끼지 못하든지 그것은 별로 관계없습니다. 오직 우리의 믿음의 고백 속에 이 사실이 분명해야 합니다. 지구가 돌아가는 것을 느끼지 못하지만 지구는 하나님의 역사 속에 돌고 있습니다. 그 어느 누구가 자신의 힘으로 지구가 도는 것을 멈추게 하거나 반대로 돌릴 수 없습니다. 가장 강력한 미국이란 나라도 그렇게 할 수 없습니다.

그와 같이 결국 하나님이 목적하신 바는 이루어질 것입니다. 그때 나는 어떤 역할을 했는냐가 중요합니다. 우리는 우리의 생애를 통하여 오직 하나님만이 영광을 받으시도록 해야 합니다.



3. 눈앞의 이익 때문에 실패한 이력을 남기지 않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1-6절은 모세시대의 이야기라고 했습니다. 그 땅은 요단 동편(요단 저편; 트랜스요르단)입니다. 요단 동편에는 강력한 왕 두 사람이 있었습니다. 아모리 왕 시혼과 바산 왕 옥입니다.

본래 모세는 이들과의 전쟁을 원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길만 내주면 전쟁 없이 이 길을 통과하겠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이 왕들은 그것을 허락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전쟁을 하게 된 것입니다. 전쟁의 결과는 이스라엘의 대승이었습니다. 전쟁이 끝나자 세 지파가 나섰습니다. 장자인 르우벤 지파와 갓 지파와 므낫세 반 지파입니다. 이들은 전쟁에서 승리한 이 땅은 버리고 가기에는 너무 아까운 땅이라고 생각한 것입니다. 그래서 이들은 이 땅을 자기들 지파에게 분배해 달라고 요구합니다. 결국 6절에는 이들의 요구를 들어줍니다. 물론 정복 전쟁에는 끝까지 참여해야 한다는 전제조건 하에 말입니다.

사실 그 땅은 전통적인 옥토였습니다. 그래서 주위의 나라들과 전쟁이 끊이지 않는 땅이었습니다. 아모리 왕 시혼과 바산 왕 옥의 60 성읍은 보기에도 좋았고, 살기에도 너무 좋은 땅이었습니다. 목축에도 적당한 땅입니다.

하지만 중요한 사실은 이 땅은 본래 하나님께서 주신 기업의 땅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아무리 좋아도 하나님의 약속이 있는 곳이 아니면 그건 내 것이 아닙니다. 

결국 이 땅이 어떻게 됩니까? 이 땅은 또 다시 다 빼앗겨버립니다. 르우벤, 갓, 므낫세 반 지파가 요구한 그 기가 막힌 땅이 빼앗기는 땅이 됐습니다.



성도 여러분, 현실의 눈 앞의 이익 때문에 우리의 이력에 큰 오점을 남길 수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멋지고 화려하게 적은 것 같지만 그 역사는 나중에 크게 후회해야 하는 이력이 될 수 있습니다.

아브라함과 조카 롯 사이에 문제가 있었던 적이 있습니다. 물 때문에 종들 사이에 싸움이 나서 서로 헤어지기로 했는데 이 때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기업을 알기 때문에 롯에게 먼저 비옥한 땅을 선택하라고 했습니다. 아브라함에게 우선권이 없는 게 아니었지만 롯에게 양보했습니다. 롯 역시 동쪽을 택하여 자꾸 이동해 갔습니다. 약속의 땅을 그는 육신적인 눈으로만 보고 미혹되어 약속의 땅에서 떠나는 결정적인 실수를 범한 것입니다. 그 땅은 분명 애굽의 비옥한 땅에 손색이 없는 땅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곳은 결국 타락의 땅이 되었습니다.



●맺으면서 - 구체적인 감사와 감격의 이력을 남기자!

7절부터 여호수아가 싸워 이긴 가나안 성읍의 왕들의 이름이 낱낱이 거명됩니다. 24절 마지막에 ‘도합 삼십 일 왕’이라고 되어 있습니다. 생각나지 않는 사람이 한 사람도 없었습니다. 그만큼 그는 실제로 전투했기 때문입니다. 그의 삶이 구체적이었기 때문입니다.



여리고 왕, 호르마 왕, 립나 왕… 여호수아가 물리친 왕 이름이 다 나왔습니다.

우리의 신앙생활이 구체적이고 또한 우리의 삶이 구체적이어야 합니다.

우리의 삶은 구체적일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니 우리의 간증, 감사도 구체적이어야 합니다.

"이러므로 우리 각인이 자기 일을 하나님께 직고하리라"(롬 14:12)

우리의 신앙생활이 구체적이어야 하고 감사도, 기도도 구체적이어야 합니다.

우리는 감사도 대충하고 기도도 공식적으로 합니다. 기도만 하면 외워서 '생사화복을 주관하시는 하나님, 죽을 수 밖에 없는 죄인을 구원하신 하나님, 날마다 모든 일에 축복을 주시는 하나님' 이렇게 무의미한 똑같은 말을 반복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내가 적용할 것은 나에게 왕으로 있는 것을 쳐 죽인 왕이 얼마나 되는 가입니다. 돈도 왕으로 있고, 명예도 왕으로 있고, 자식도 왕으로 있었는데 쳐죽인 왕이 몇 명이나 되는가, 여러분은 서른 한 가지 쓸 수 있습니까.

이제 주님의 군사로 또 남은 세월을 싸워야 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의 생애 가운데 이제는 새로운 역사를 써 나가시기 바랍니다. - 아 멘 -(주후 2006-1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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