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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오전예배

정복과 정착
  • 날짜 : 2006.10.08
  • 본문 : 수11:16-12:6
  • 설교자 :
성경본문 및 요약
●들어가면서

지난 주일에 ‘하나님께 항복합니다.’란 제목으로 말씀을 나눴습니다. 그 전 주일의 말씀이 ‘속이고도 살아남은 기브온 거민’이었는데 이 두 주일 말씀이 모두 다 기브온 거민과 관계가 있었습니다. 기브온 거민(족속)은 가나안의 한 족속이었습니다. 그렇지만 이스라엘의 공격 앞에 살아남기 위해 거짓말을 하여 생명을 보장받습니다. 그런데 이 일은 가나안 남부지역의 다른 왕들에게는 혼자만 살아남으려는 괘심죄에 걸려 도리어 이들의 침략을 받아 목숨이 위험하게 됩니다. 이에 기브온 족속들은 급히 여호수아와 이스라엘 백성에게 구조 요청하게 되고 이렇게 하여 이스라엘과 가나안 남부지역의 왕들과 전쟁이 이루어지게 되었습니다. 그 결과는 이스라엘의 대승이었습니다. 그리하여 가나안 중부(6-8장), 남부(9-10장)의 정복이 마쳤습니다.

이어 여호수아 11장은 북부지역의 왕들과의 전쟁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사실 이 북부지방에는 남부지방보다 훨씬 더 강력한 도성과 왕들이 있었지만 이스라엘은 남부지역의 승세를 몰아 북부지역도 파죽지세로 승리하게 됩니다. 이 북부 지역의 왕들과의 전쟁 기록이 오늘 본문 바로 앞까지의 내용입니다.

오늘 성경 본문의 말씀은 이제 중부와 남부와 북부지역, 즉 이스라엘 전 지역을 점령하고 난 뒤, 이 정복전쟁에 대한 결산에 해당되는 말씀입니다. 그리고 13장부터는 이제 정복한 땅에 대한 분배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 본문에서 이스라엘의 가나안 정복전쟁의 의미를 다시 한번 분명하게 정리하는 기회가 되기를 바랍니다.



1. 이길 수밖에 없는 전쟁이다.(11:20)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길 수밖에 없는 전쟁을 했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왜 가나안을 정복할 수 있었는가? 정답은? 그것은 ‘이길 수밖에 없는 전쟁이었기 때문에’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이길 수밖에 없다는 사실은 역으로 가나안이 왜 질 수밖에 없는가와 같은 말입니다. 오늘 성경은 이 사실에 대해 말하고 있습니다. 20절 말씀.

“그들의 마음이 강퍅하여 이스라엘을 대적하여 싸우러 온 것은 여호와께서 그리하게 하신 것이라 그들로 저주받은 자 되게 하여 은혜를 입지 못하게 하시고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명하신 대로 진멸하려 하심이었더라”(수 11:20)

그들은 은혜를 입지 못할 자들이 되었습니다. 저주 받을 자들이 되었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그들의 마음이 강퍅해지는 것을 그대로 두셨기 때문입니다. “여호와께서 그리하게 하신 것이라” “그들로 저주받은 자 되게 하여” “진멸하려 하심이었더라”



혹 어떤 사람은 하나님의 이런 처사를 보면서 하나님을 의롭지 못하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여기에서 우리가 알아야 하는 것은 하나님이 가나안 거민들에게 저주를 내리시려고 원래는 가나안 거민들의 마음이 강퍅하지 않았는데 하나님이 그들의 마음을 일부러 강퍅하게 만든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들이 강퍅케 되는 것을 그냥 내버려둔 것뿐입니다. 이것을 신학적인 용어로 ‘유기’(遺棄)라고 합니다. 바울은 이것을 택한 자와 그렇지 못한 자를 설명할 때 사용하였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저희를 마음의 정욕대로 더러움에 내어 버려두사 저희 몸을 서로 욕되게 하셨으니”(롬 1:24)



우리는 여기에서 진정한 하나님의 은혜를 입는 자와 그렇지 않는 자의 차이가 무엇에 있는지를 알게 됩니다. 그것은 강퍅한 마음이 우리 마음속에 생길 때 은혜를 입을 자는 하나님이 어떤 방법을 통하여서든지 그 마음을 돌이키게 하신다는 것이고, 저주를 받을 자는 그냥 내버려두신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은혜를 입은 나라이고 축복의 나라인 것은 하나님이 그 나라, 그 백성을 끊임없이 간섭하셨다는 것입니다. 가야할 길로 가지 않을 때에는 징계라는 방법을 통하여 그들을 가르치고 또 교훈하셨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지금 여기 가나안을 정복하는 민족이 된 것입니다.

따지고 보면 이스라엘이 가나안에 비하여 나은 것이 별로 없습니다. 이스라엘이 지난날에 행한 전과를 보면 가나안의 족속들보다 더욱 못한 것도 많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저주하지 않으시고 그들을 가르치시며 교훈하여 다시 깨닫게 하시고 회개하여 돌아와 다시 서게 하셨습니다.

그리고는 결국 약속하신 땅을 주신 것입니다. 이스라엘은 지난날의 역사 속에서 볼 때 위기가 많았습니다. 그들은 애굽으로 돌아가려고 불평을 내뱉었던 백성이고 하나님 외에 우상까지 만들어 섬겼던 자들입니다. 다른 어떤 민족보다 많은 하나님의 기적을 체험하고서도 머리가 나쁜 바보처럼 곧 바로 잊어버리기를 자주했던 자들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들을 그대로 내버려두지 않으셨습니다. 유기하지 않으셨습니다. 다시 깨우쳐 가르치시고 회개하도록 하여 세우시더니 결국 가나안의 주인으로 만드셨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이길 수밖에 없는 전쟁을 한 사람들이라는 말입니다. 이길 수밖에 없는 자들이 있으니 그를 상대하는 자들은 질 수밖에 없는 자들입니다.

간혹, 질 수밖에 없는 자들이 이길 자들로 오해할 수 있는 상황이 있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그때는 항상 이겨야 할 자들이 이겨야할 길로 가지 않기 때문에 하나님으로부터 징계를 받을 때였습니다. 그들은 사실 결코 이길 자들이 아니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믿어야합니다. 우리는 이길 자들이라는 사실입니다.



2. 승리를 누리는 것은 여호와의 말씀대로 순종하는 것에 있다.(11:23)

이스라엘이 이긴 것은 이길 전쟁이었기 때문이라는 사실을 믿을수록 우리에게는 안타까운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다름 아닌 이길 것을 꼭 질 것처럼 사는 것 때문입니다. 그래서 너무 쉽게 갈 수 있는 길을 어렵게 어렵게 가는 것입니다. 당연히 이길 이 전쟁을 도대체 무엇이 그렇게 어렵게 만드는가? 그것은 바로 우리의 불순종 때문입니다. 23절 말씀입니다.

“이와 같이 여호수아가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신 말씀대로 그 온 땅을 취하여 이스라엘 지파의 구별을 따라 기업으로 주었더라 그 땅에 전쟁이 그쳤더라”(수 11:23)



이 전쟁에서 이스라엘 백성이 승리하기 위한 의무 조항은 여호와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입니다. 여호수아서를 처음 시작할 때 하나님은 여호수아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모세에게 말한 바와 같이 무릇 너희 발바닥으로 밟는 곳을 내가 다 너희에게 주었노니”(수 1:3)

그리고 그것을 얻는 방법으로 이렇게 말씀해주셨습니다.

“[7] 오직 너는 마음을 강하게 하고 극히 담대히 하여 나의 종 모세가 네게 명한 율법을 다 지켜 행하고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말라 그리하면 어디로 가든지 형통하리니 [8] 이 율법책을 네 입에서 떠나지 말게 하며 주야로 그것을 묵상하여 그 가운데 기록한대로 다 지켜 행하라 그리하면 네 길이 평탄하게 될 것이라 네가 형통하리라”(수 1:7-8)



하나님은 사실 계속해서 이것을 강조해 오셨습니다. 때로 하나님은 이스라엘에게 전혀 상식적이지 않는 방법으로 전쟁을 치르도록 했는데 그것은 바로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순종을 정확하게 지키는지 그렇지 않는지에 대한 테스트였습니다. 이것은 여리고와의 전투에서도 아이와의 전투에서도 분명히 나타났습니다. 하나님이 왜 여리고 성을 돌라고 했습니까? 그리고 마지막 날에는 왜 7바퀴를 돌아야 하는 것입니까? 거기에 무슨 신비한 능력이 있습니까? 다른 이유를 찾을 생각을 할 필요가 없습니다. 답은 ‘하라는 대로 할거냐 말거냐?’를 물으시는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가 다 이길 전쟁에서 죽을 사람처럼 살지 맙시다. 하나님께 철저하게 순종합시다. 하나님께서 광야에서만 순종을 가르치신 것이 아니라 마지막까지 순종을 가르치셨습니다. 결국 아이 성과의 첫 번째 전투에서의 패배는 단 한 사람의 불순종 때문이었습니다. 이스라엘의 싸움에 징집할 수 있는 사람을 60만 명이라고 할 때에 그것은 수치상 ‘1/60만’이었습니다. 사실 거의 제로에 가까운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하나님께는 전부였습니다.

우리말에 ‘다 된 밥에 코 빠트린다.’는 말이 있습니다. 끝까지 순종하고 완벽하게 순종하시기 바랍니다. 사람에게 예를 다하지만 하나님께 나타내야 할 예를 다하지 못하는 사람이 있고, 사람에게 해야 할 예는 좀 부족하지만 하나님께는 철두철미하려는 사람이 있습니다. 모두 다 잘 하면 좋겠습니다. 그러나 둘 중에 우선이 있다고 한다면 승리에 있어서만큼은 하나님의 말씀에 더욱 철두철미하시기 바랍니다.



3. 처음은 미약하나 나중은 창대

우리가 전쟁에서 승리할 자라는 사실을 말하면 현실적으로 “아멘”하면서 그것을 받아들이기 힘든 사람이 있을 것입니다. 그것은 승리의 노래를 부르기에는 경험적으로나 결과적으로 자신의 형편과 처지가 너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아직 우리의 전쟁은 다 끝나지 않았다는 사실을 주목하시기 바랍니다. 나는 아직 가나안을 향해 진군하고 있는 백성중의 한 사람일지 모릅니다. 또한 중요한 것은 이기기 위해 가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지금 이스라엘 백성들은 가나안에 들어와서 모든 정복을 마쳤고 땅을 기업으로 분배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들에게 이 땅에 대한 첫 약속은 아브라함에게 한 것입니다. 그 당시 아브라함은 가나안 땅에서 정말 이방인 취급을 받으면서 살았고 나중에 겨우 자신의 아내 사라를 장사할 매장지만 얻었을 뿐입니다. 행7:5에 스데반의 순교 직전에 행해진 설교에서 “그러나 여기서 발 붙일 만큼도 유업을 주지 아니하시고 다만 이 땅을 아직 자식도 없는 저와 저의 씨에게 소유로 주신다고 약속하셨으며”(행7:5)라고 말했습니다. 아브라함은 단지 하나님의 약속만 붙들고 있었을 뿐이었습니다. 그것은 그의 아들 이삭과 그의 손자 야곱의 때에도 별 다른 바가 없었습니다.

사실 인간적으로만 생각하면 그들에게서 이 땅은 영원히 잊혀질 땅이 될 뻔하였습니다. 그들은 애굽의 고센에서 400년간 살았기 때문입니다. 그들이 이 땅에 대한 약속을 다시 기억할 때는 바로의 학대를 도무지 견딜 수 없을 때였습니다. 그리고 나서도 그들은 바로 곧 이 가나안으로 들어가지 못하고 광야에서 40년을 더 보내야 했습니다.

때가 이르자 하나님의 역사는 순식간에 이루어졌습니다. 여호수아가 모세의 뒤를 이어 가나안을 정복하는 일은 5년 정도밖에 걸리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정말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약속이 결국 이루어졌다는 것입니다. 아브라함 때에 아브라함이 사람들에게 이 땅은 하나님이 나에게 주신 땅이라고 말하고 다녔다면 미친 사람 취급을 당했을 것입니다. 아브라함이 한 것이라고는 고작 자기의 아내를 넣어둘 매장지인 막벨라 굴을 소유한 것뿐이었습니다. 그때 헷 사람들이 아브라함에게 그냥 주겠다고 하는 것을 아브라함은 돈을 치르고 그 땅을 샀습니다. 그 당시의 사람들은 이 땅이 아브라함 후손의 땅이 될 것이라고 생각지도 못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이 매장지를 살 때에 다른 사람들이 알 수 없는 기쁨이 있었을 것입니다.

“드디어 내가 이 땅의 한 부분을 가지게 되었구나! 이 땅은 결국 나와 내 후손에게 하나님이 주신 땅이야!”

"네 시작은 미약하였으나 네 나중은 심히 창대하리라"(욥 8:7)는 말씀처럼 된 것입니다.

엘리야가 갈멜산 꼭대기에서 3년 6개월 동안 가뭄에 시달린 땅을 위해 기도할 때에 그의 사환 게하시에게 물었습니다. 바다편을 바라보라 어떤 징조가 있느냐고요. 일곱 번째 가보니 사람 손만한 작은 구름이 일어나는 것을 보고는 바로 그 자리를 떨고 일어났습니다. 비록 손만한 작은 것을 보았지만 그것을 곧 큰 비를 몰고 올 구름으로 믿은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는 하나님의 역사의 어느 부분에 있는지 모릅니다. 분명한 것은 승리한다는 사실입니다. 우리의 대적 사단 마귀를 다 정복하고 그가 차지했던 모든 영역에서 하나님의 나라를 선포할 자들이라는 사실입니다.



●맺으면서 - 승리를 확신하며

성도 여러분, 11:23절의 말씀을 다시 한번 읽어보겠습니다.

이 말씀이 이스라엘 백성에게 얼마나 감격적이었겠는가를 생각해 봅시다.

5년 동안의 정복 전쟁만 생각해도 전쟁이 완전한 승리로 끝나고 더 이상 전쟁이 없다는 것은 감격입니다. 그러나 이들은 이 땅을 위해 40년 광야 생활을 한 사람들이고 그 앞서 400년을 애굽의 종살이를 했던 사람들입니다.

그들의 선조의 역사와 함께 생각할 때, 전쟁이 끝났다는 선언은 이들에게는 감격이라는 단어로는 표현이 부족한 감정이었을 것입니다.



오늘날의 우리 성도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통하여 이 정복전쟁의 승리의 보장을 받았습니다. 문제는 기간입니다. 그 기간은 이제 우리에게 달렸습니다.

사실 우리는 싸워 이길 전쟁을 할 수 있는 사람이라는 것만으로도 행복한 자들입니다. 혹 우리 자신의 대(代)에서 이 전쟁을 마무리하지 못할지라도 우리의 다음 세대가 이 정복전쟁을 이어갈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의 불순종이 성취를 늦게 했듯이 우리의 불순종은 이 승리가 요원하게 보이게 할지 모릅니다. 집요하게 여호수아서의 전투에서 요구하는 것은 순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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