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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
  • 날짜 : 2006.08.13
  • 본문 : 여호수아 2:1~14 (구약321)
  • 설교자 :
성경본문 및 요약
제목>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

성경> 수2:1-14

찬송> 31, 79, 344



우리는 2주 전부터 여호수아서를 통하여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하시는 말씀을 듣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광야시대를 청산하고 가나안시대를 열 것을 말씀하십니다. 광야시대는 징계를 통한 훈련의 시대였습니다. 우리의 일생이 훈련만 받다가 끝나는 인생은 별 의미가 없습니다. 훈련은 실전을 위한 것입니다. 이스라엘은 광야를 살기 위해 출애굽한 백성이 아니었습니다. 그들의 목표는 가나안이었습니다. 그들은 가나안 땅을 정복하고 다스리고 누리기 위해 출애굽하였습니다.



현재 이스라엘은 요단강을 바로 앞에 두고 있습니다. 요단을 건너면 가나안입니다. 그러나 문제는 하나 더 있었습니다. 요단강을 건넌다 해도 첫 성 여리고를 어떻게 하느냐 하는 것이었습니다. 요단강을 건넜다 해도 여리고 성을 지나지 않으면 전진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여리고 성은 견고하기로 유명한 성이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과 약속으로 믿음으로 일어난 여호수아는 먼저 여리고 성에 2명의 정탐꾼을 보냅니다. 두 명의 정탐꾼은 여리고 성의 한 주막에서 정보 수집을 위해 숙박하게 되었습니다.

그 주막은 다른 사람의 집이 아니라 우리가 잘 아는 바로 ‘라합’의 집이었습니다.



1. 일생에 있어 가장 큰 축복

두 정탐꾼들은 어떻게 라합의 집으로 오게 되었을까요? 물론 라합은 기생이었고 그녀는 기생집을 운영하고 있었는지 모릅니다. 많은 사람이 오가며 잠을 자는 곳이기도 하며 오고가는 여행객들에게서 정보를 수집할 수 있는 좋은 장소이기도 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여리고에 여관이 여기에만 있었겠습니까?



정탐꾼이 여리고의 많은 사람 가운데 라합의 집으로 온 것은 하나님의 인도입니다. 하나님이 라합을 구원코자 하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이미 라합의 마음에 여호와 하나님에 대한 새 마음을 주셨습니다. 오늘 말씀을 보면 라합은 이미 이스라엘의 정탐꾼들이 자기 집을 찾아오기 전에 이미 여호와라는 신이 이스라엘을 어떻게 인도하였는지를 듣고 있었고 그 소식으로 여호와 하나님을 경외하고 있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소문, 그것은 그녀에게 복음입니다. 곧 멸망당할 성에서 구원받을 수 있게 한 복음입니다. 뿐만 아니라 그녀의 삶을 변화시킬 복음입니다. 우리는 이후 이 여호와에 대한 소문이 라합의 인생을 어떻게 변화시키는지를 보게 될 것입니다.



그녀는 여리고 성에 사는 이방여인입니다. 그리고 천하디 천한 기생입니다. 신약 성경에 라합을 언급할 때 쓴 ‘기생’이라는 단어는 ‘포르네’라는 단어입니다. 여기에서 ‘포르노’라는 말이 나왔습니다. 이런 여인에게 하나님의 소문이 들어간 것입니다. 이 여인은 이 소문을 듣고 하나님을 경외하고 있었습니다. 그는 하나님을 믿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습니다. 그러나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습니다.

이런 그녀에게 이스라엘의 정탐꾼이 찾아 온 것입니다. 라합에게 이스라엘의 정탐꾼은 하나님의 사자(使者)나 다름이 없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하여 찾아오신 사건만큼 나에게 위대한 사건은 없습니다. 그것이 어떤 방식으로 이루어지든지 상관없습니다. 하나님이 그를 직접 찾으시든지, 꿈으로 그를 부르시든지, 환난을 통하여 하나님께 나오게 하시든지, 친구를 통하여 부르시든지, 질병을 통하여 나오게 되든지. 중요한 것은 하나님이 나를 찾아오셨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아무나 찾아가시지 않습니다. 엘리야 시대에 하늘이 세 해 여섯 달을 닫히어 온 땅에 큰 흉년이 들었을 때에 이스라엘에 많은 과부가 있었지만 하나님은 엘리야를 그 중 한 사람에게도 보내시지 않고 오직 시돈 땅에 있는 사렙다의 한 과부에게 보내셨습니다. 또 선지자 엘리사 때에 이스라엘에 많은 문둥이가 있었으되 그 중에 한 사람도 깨끗함을 얻지 못하고 오직 수리아 사람 나아만만 나았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눅4:25-27)

그런데 하나님이 그 많고 많은 사람 중에 나를 찾아오셨다는 말입니다!



신약의 여리고 성에도 이런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도 역시 예수님의 소문을 듣고 예수님을 기다린 사람입니다. 그 역시 사람들에게는 손가락질을 받는 사람이었습니다. 누구입니까? 삭개오닙니다. 그가 사람들에게서 배척을 당하는 이유는 그의 직업이 같은 동족에게서 세금을 거두어 로마에 바치는 세리였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는 예수님의 소문으로 마음에 새 소망이 생긴 사람입니다. 그는 예수님이 자기의 마을을 방문하신다는 소식을 듣고 너무 보고 싶어 거리에 나갔습니다. 그러나 이미 많은 사람이 모여 있었고 그는 키가 작아서 제대로 예수님을 볼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뽕나무 위에 올라갔습니다. 예수님은 길을 가시다가 삭개오가 올라간 뽕나무를 지날 때 그 가던 길을 멈추어 서서 뽕나무 위에 앉은 삭개오를 쳐다보셨습니다. 그리고는 “삭개오야 내려오느라 오늘 내가 네 집에 유하여야 하겠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알고 보니 예수님이 여리고 성을 들어오신 것은 바로 삭개오를 만나기 위해서였습니다.

삭개오에게 있어서는 이 날이 일생일대의 최고의 날이었습니다. 그는 구원을 받았고 하나님의 자녀가 된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하나님이 나를 찾아오셔서 내가 예수 믿고 하나님의 자녀가 된 사실만큼 나에게 위대한 일은 없습니다. 우리의 인생에 가장 큰 대박은 바로 하나님이 나를 찾아오신 것입니다. 할렐루야!



2. 신(神)을 바꿔라.

여리고 성 안의 백성들은 이스라엘이 쳐 들어온다는 소식을 듣고 만반의 준비를 합니다. 이미 이스라엘에 대한 정보를 다 입수한 것입니다. 이스라엘이 당대 최고 막강한 힘을 가지고 있었던 아모리 왕 시혼과 바산 왕 옥을 물리친 사실도 알고 있었습니다.(10) 그들을 더욱 긴장하게 만드는 것은 정탐꾼이 성내에 들어왔다는 사실이었습니다. 그래서 여리고 왕은 정탐꾼을 색출하는 일에 총력을 기울이게 됩니다.



라합과 정탐꾼의 대화에서 우리는 당시 여리고 성 안의 백성들이 이스라엘을 어느 정도로 생각하고 있는지를 알게 됩니다. 9-11절.

“말하되 여호와께서 이 땅을 너희에게 주신 줄을 내가 아노라 우리가 너희를 심히 두려워하고 이 땅 백성이 다 너희 앞에 간담이 녹나니 이는 너희가 애굽에서 나올 때에 여호와께서 너희 앞에서 홍해 물을 마르게 하신 일과 너희가 요단 저편에 있는 아모리 사람의 두 왕 시혼과 옥에게 행한 일 곧 그들을 전멸시킨 일을 우리가 들었음이라 우리가 듣자 곧 마음이 녹았고 너희의 연고로 사람이 정신을 잃었나니 너희 하나님 여호와는 상천하지에 하나님이시니라”(수 2:9-11)



그러나 우리는 이 말에서 여리고 성의 백성들과 라합의 근본적인 차이를 알게 됩니다. 이것은 여리고의 모든 백성이 멸망을 당할 때 어떻게 라합만 구원을 받을 수 있었는지를 알게 해 주는 내용입니다.



백성들은 이스라엘 때문에 심히 두렵고 간담이 녹고 정신을 잃을 정도였습니다.(9, 11) 이것은 이스라엘 백성이 두려운 것이 아니라 이스라엘을 지키시는 신, 이스라엘 백성이 믿는 신이 역사하기 때문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스라엘 백성이 두려운 것이 아니라  여호와라는 신이 두려운 것입니다. 여리고 백성들은 여호와를 두려워했고, 두려워했기 때문에 그들이 한 것은 경비를 세우고 성문을 굳게 걸어 잠그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라합은 달랐습니다. 그는 자신이 사는 여리고 성을 여호와께서 이미 이스라엘에게 주었다고 믿었습니다.

“여호와께서 이 땅을 너희에게 주신 줄을 내가 아노라”(8)

여기에서 ‘우리’는 여리고 성의 백성입니다. ‘우리’는 두려워했습니다. 그런데 이 여리고 성이 이스라엘에 멸망을 당할 것이라는 사실을 아는 것은 ‘내’가 안다는 것입니다. 라합 자신입니다.

그녀는 다른 모든 여리고 성의 백성들이 가지지 않는 신앙을 가지고 있었던 것입니다. 여리고의 성민들이 이스라엘의 존재를 그냥 두려워하고 있을 때 라합은 여리고가 여호와 하나님의 능력에 힘없이 무너질 것을 알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는 이미 여호와 하나님의 능력을 믿었고 그 하나님께 마음이 빼앗겼습니다.



성도 여러분, 어떤 사람이 우리가 믿는 하나님에 대하여 듣습니다. 똑 같은 이야기를 들어도 반응은 다릅니다. 어떤 사람은 그냥 두려워합니다. 어떤 사람은 무시합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의 마음에는 그 하나님을 믿고 싶다는 생각이 듭니다. 라합은 바로 이 세 번째 사람입니다.



그녀에게는 일생일대에 너무나 귀한 찬스가 온 것입니다. 마음에 여호와라는 신이 진짜 신이고 그가 최고의 신이구나 이제까지 내가 믿었던 신은 정말 보잘 것 없는 신이구나. 이스라엘 백성이 너무 부럽다. 이런 생각을 가지고 있는데 어느 한 날, 이상한 사람 두 사람이 자기의 집으로 들어와 방이 있느냐고 묻는 것입니다. 느낌이 이상했던 라합은 그들의 신분이 무엇인지 알기 위해 노력했을 것이고 결국 이들이 이스라엘로부터 온 정탐꾼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때 라합의 마음은 흥분을 감출 수 없었을 것입니다. 마음이 떨렸을 것입니다. 잘만하면 멸망 가운데 살아남을 수 있는 기회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 것입니다. 라합의 마음에는 이미 이 여리고 성은 여호와가 인도하는 이스라엘을 이길 수 없다는 결론이 나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 정탐꾼들을 영접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라합은 이스라엘 백성이 좋아서가 아니라 그 민족을 인도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에 마음이 빼앗겨서 자신이 믿는 신을 버리고 여호와 하나님을 믿기고 한 것입니다.

이것은 다른 결정이 아니라 자신이 믿는 신(神)을 바꾸는 결정인 것입니다.



그러면 과연 이런 결정은 쉬운 것입니까?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여리고 성이 어떤 성입니까? 난공불락의 성입니다. 성문만 꼭 걸어 잠그면 적들이 제풀에 지쳐 패하고 도망갈 수밖에 없는 성이었습니다. 아무리 이스라엘이라고 하더라고 이 성을 어떻게 할 수 있을까? 충분히 그런 생각할 수 있습니다. 다른 데서 소문이 들린다고 다 소문 따라 갈 수 없습니다. 마음은 떨리지만 ‘소문이란 과장되어 전해지기도 하는 거야!’ 이렇게 생각하기도 하고, 그게 정말이라고 하더라도 이제까지 견뎌온 성의 역사를 믿고 싶은 것입니다.

그리고 어느 한 사람 나서는 사람이 없는데 나는 이스라엘 신을 믿겠다고 하는 것이 더 어리석은 짓일 수 있는 일입니다.



그러나 라합은 진정한 믿음의 소유하였습니다.

그는 들었고, 그 소문을 들었을 때에 마음에 감동이 왔고(마음이 녹았고- 라합의 가슴에는 여리고성의 백성과는 다른 방식으로 마음이 녹았을 것입니다. ‘여호와가 그렇게 위대한 신이신가!’ 하는…), 결국 여호와를 가장 높으신 신으로 인정하고 고백한 것입니다.

11절, “너희 하나님 여호와는 상천하지에 하나님이시라”는 말씀을 현대인의 성경에서는 “정말 당신들의 하나님 여호와야말로 천하에서 제일 가는 신이십니다.”라고 번역하였습니다.



그녀는 결단하고 여호와를 받아들이고 이스라엘 백성의 한 사람이 되기로 한 것입니다. 그가 여호와를 받아들였기 때문에 감수해야 하는 일이 보통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자신의 목숨을 걸고 정탐꾼을 숨겨줍니다. 이보다 더 큰 행동의 고백이 없는 것입니다. 그는 당신들이 이 성을 점령할 때 자신과 자신의 가족을 꼭 기억하라고 말합니다. 정탐꾼은 이 약속을 지키겠다고 말하면서 떠납니다.(12-14)



신약성경에 로마의 장교로서 하나님의 백성이 된 사람이 있습니다. 로마의 백부장 고넬료입니다. 언제부터인가 그의 마음에 유대인들이 섬기는 여호와 하나님이 마음에 들어왔습니다. 그가 받아들이려는 신은 제우스와 같은 자기의 조국이자 당대의 최고의 나라 로마의 신이 아니라 식민지 백성이 섬기는 신 ‘여호와’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택한 자는 하나님이 그를 찾아가시기에 하나님께 끌릴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는 결국 베드로를 초청하여 설교를 듣다가 성령을 체험하게 됩니다. 그리고는 그의 가족과 일가친척까지 모두 세례를 받습니다. 어깨 힘주고 다니는 지배국의 군대장교가 자신의 신을 버리고 식민지의 신 앞에 무릎을 꿇고 세례를 받고 하나님의 자녀가 된 것입니다.



※라합의 행위는 거짓말 & 매국적인 행위?

애국심이 많은 사람은, 특히 민족의식이 강한 사람은 더욱 그렇게 생각을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이 라합의 사건을 한번도 윤리적으로 다루지 않았습니다. 나라를 배신하는 문제와 믿음의 문제는 다른 문제입니다. 만약 성경이 애국지사의 삶을 다루는 내용이었다면 라합은 분명 만인의 지탄을 받을 매국노라고 낙인이 찍혔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녀가 구원을 받기 위해 사용한 방법도 거짓말이라고 말합니다. 물론 그녀는 분명 거짓말을 하였습니다. 성경은 그녀의 거짓말을 정당한 것으로 인정하지 않습니다. 오직 위험을 무릅쓴 그녀의 믿음에 관심을 두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 사건을 성경에 기록하면서 하나님을 바라는 믿음의 방식으로 보기를 원하셨습니다. 그래서 히브리서 11장 믿음 장(章)에 그 많은 믿음의 위인들을 소개할 때 바로 이 사람, 라합도 함께 소개하고 있는 것입니다.

“믿음으로 기생 라합은 정탐꾼을 평안히 영접하였으므로 순종치 아니한 자와 함께 멸망치 아니하였도다”(히 11:31)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왜 라합이 이런 결단을 할 수 있었겠습니까? 그것이 바로 믿음입니다. 믿음에는 결단이 따르는 것입니다. 라합은 소문을 통해 믿음을 가졌고 그 믿음에 자신의 일생을 걸었습니다. 그녀는 여호와 하나님을 믿는 것이 사는 길이라고 믿었습니다.

라합은 민족을 배반해야 했습니다. 또 그가 이스라엘의 백성으로 받아들여진다고 해도 이방인으로서 당해야 하는 고충도 분명 알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 어떤 것도 하나님의 백성이 되는 영광과 비교할 수 없었습니다.



3.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입니다.

믿음으로 산다는 것은 현실을 넘어 하나님 나라를 바라보며 나아가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래서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며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입니다.

라합은 현재의 모습을 본 것이 아니라 잠시 후에 당할 여리고를 생각해 보았습니다. 더 나아가 하나님의 백성으로서의 이스라엘의 영광을 생각했습니다. 그녀는 이스라엘의 최종 목표가 가나안이라는 것을 알았을 것이고, 그 가나안 땅에서 자신도 함께 영광스런 백성이 된다는 사실에 가슴 벅찼을 것입니다.

그래서 그녀는 마음속에 일어나고 있는 이 소원을 이루지 못할 공상으로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괴로운 현실을 잠간이나마 잊어버릴 수 있는 행복한 느낌으로만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라합은 그것을 자신의 실제의 삶으로 만들어 버린 것입니다. 무엇을 통해서? 믿음을 통해서 말입니다.

그녀는 분명 가나안 정복을 보지 못했습니다. 볼 수도 없었습니다. 그러나 보지 못한 것들도 믿음 속에서는 다 증거가 되었습니다.

성도 여러분, 이런 믿음이 가나안 시대를 여는 것입니다.



여러분, 라합 집안에, 라합 가문에, 이 라합은 기생이라서 그런지 남편 이름도 나오지 않습니다. 뭇 남성들이 그녀의 품을 지나갔을지 모르지만 그 중에 자신의 남편은 없었습니다. 이런 라합이 어떻게 되는지 아십니까?

라합은 드디어 진정한 남편을 만나게 됩니다. 그 사람은 다른 사람이 아니라 모압여인이었던 룻과 결혼하게 되는 보아스의 아버지 살몬입니다.

마1:5-6에는 “살몬은 라합에게서 보아스를 낳고 보아스는 룻에게서 오벳을 낳고 오벳은 이새를 낳고 이새는 다윗 왕을 낳으니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다윗의 족보에 라합이 있다는 사실입니다. 다르게 말하면 ‘라합이 없었다면 다윗도 없었다.’라고 말할 수 있는 것입니다. 더 나아가서 예수 그리스도의 족보에 중요한 역할을 한 사람이 됩니다. 순간의 선택이 평생을 좌우한다고 하더니 믿음의 결단과 선택이 라합의 일생을 이 땅에서 가장 위대한 일생으로 바꾸어 놓은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습니까? 천한 기생이었습니다.

믿음은 이런 역사를 이루게 하는 것입니다. 믿음은 바라는 것들을 실상(the substance of things,실물)이 되게 합니다. 보지 못했지만 그것들은 이루어져 증거가 되게 합니다. 아니 믿음이란 내가 생각하지 못했던 것까지 이루어냅니다.

예)라합을 뒤를 이은 믿음의 여인이 바로 모압 여인 룻이지 않습니까? 룻 역시 이방민족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녀는 자신의 백성을 버렸습니다. 그의 시어머니 나오미를 따랐습니다. 그녀는 어버니의 백성이 나의 백성이 되고 어머니의 하나님이 자신의 하나님이 된다고 선언하였습니다.(룻1:16)

룻은 조금도 소망이 없는 가문을 영광의 가문으로 만들었습니다. 그는 결국 보아스와 결혼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다윗의 가문을 이루게 한 것입니다.



하나님은 연이어 이렇게 이방 여인 두 사람을 통하여 다윗의 족보가 탄생하게 하셨습니다.

그것은 다윗의 나라, 곧 메시야의 시대에 이루어질 예수 그리스도의 나라의 특성이 말하는 것입니다. 그 나라는 신분의 귀천과 지위의 고하를 막론하고 믿음으로 주께 자신을 드린 모든 사람들이 모여서 이루게 될 영광의 나라임을 만천하에 공포한 것입니다.



우리가 누리기를 원하는 가나안 시대도 믿음으로 결단한 자들이 사는 시대입니다.

말씀에 자신을 드리고 그 말씀대로 살기로 작정하는 자들이 누리는 시대입니다. 그 가나안은 말씀대로 사는 자들에게 천국이지 말씀을 저버리고 사는 자들에겐 여전히 징계의 땅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말씀에 우리의 일생을 걸고 말씀대로 살기로 작정하고 나 자신을 드려 라합처럼 새로운 인생을 사시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 아 멘 - (2006-08-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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