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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오전예배

가나안에 들어가기 전에 해야 할 것
  • 날짜 : 2006.08.06
  • 본문 : 여호수아 1:10~18 (구약320)
  • 설교자 :
성경본문 및 요약
●들어가면서

성도 여러분, 지난 한 주간 여러분은 광야를 사셨습니까? 아니면 가나안을 사셨습니까?

무슨 말을 하는 지 의미를 모르겠습니까?

우리는 지난 주일에 ‘가나안 시대를 향하여’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받았습니다.

광야는 훈련 받는 곳이라 했습니다. 그런데 그 훈련이란 말이 좋은 의미로 훈련이지 사실은 징계였습니다. 더 정확하게 말하면 그들은 징계를 통하여 훈련을 받았던 것입니다. 그러니 광야는 훈련의 장소이기도 하지만 더 엄밀해 말해 징계의 장소입니다. 이스라엘은 광야 40년을 통해 많은 고통 속에서 하나님의 백성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배운 것입니다.



이제는 그들은 바로 그 지긋지긋한 광야생활을 끝내기 위하여 가나안으로 들어가기 직전 요단강을 앞에 두고 있습니다. 요단강을 건너면 가나안이요 건너지 않으면 여전히 광야입니다.

이스라엘이 애굽 땅을 나온 것은 광야를 살기 위해서가 아니라 가나안을 살기 위해서입니다. 그럼에도 이스라엘은 광야에서만 40년이라는 세월을 보냈습니다. 이젠 가나안을 들어가야 합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도 더 이상 광야를 살지 맙시다. 이스라엘은 광야에서 이곳저곳으로 옮겨 다녔습니다. 그러나 옮겨봤자 결국 광야였습니다. 고통과 좌절과 회개와 번민 속에 계속 발버둥을 치지만 결국은 여전히 광야를 벗어나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하나님의 뜻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은 가나안을 살기를 원하셨습니다. 그곳에 하나님이 우리를 향하여 진짜로 예비해 놓으신 곳입니다.



여호수아는 하나님으로부터 모세 뒤를 이을 지도자로 세움을 입습니다. 하나님은 모세가 이루지 못한 가나안 땅으로 들어가는 과업을 여호수아에게 주셨습니다. 항상 모세가 시키는 일을 하면 되었던 여호수아는 두렵고 떨리는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두려워 말고 말씀만 믿고 행하면 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함께 해 주시겠다고 말씀합니다.



오늘 말씀은 여호수아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난 뒤에 이스라엘 백성에게 어떻게 조치를 내리는지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 기록을 통해 가나안 시대를 열기 위해서 사전에 어떤 것이 갖추어져야할지를 보게 됩니다.



1. 즉각적으로 순종하라.

10절. “이에”

여호수아는 하나님의 명령을 받고 주저하지 않았습니다. 곧 바로 백성들의 유사들을 불러 명합니다. 모든 백성에게 요단을 건널 준비를 하라고 말입니다.

11절. “삼 일 안에 너희가 이 요단을 건너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주사 얻게 하시는 땅을 얻기 위하여 들어갈 것임이니라”(수 1:11)



조금 전만 해도 요단을 건너 가나안으로 들어가는 것을 두려워하며 주저했던 사람이었습니다. 자신이 이스라엘의 영도자가 된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기 어려워했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이렇게 곧 바로 그리고 자신 있게 말하는 것입니까?

그것은 그가 하나님의 말씀을 들었고 그것을 그대로 믿었기 때문입니다.

저는 이 말이 여호수아가 이젠 전혀 두려워하지 않았다는 것을 의미하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는 여전히 두렵고 과연 자신이 이 일을 할 수 있는지에 대해서도 완벽한 확신이 없습니다. 그러나 여호수아에게 무엇보다 가장 확실한 변화는 하나님이 그에게 해 주신 말씀을 믿고 그 말씀대로 일어섰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에’라는 말씀이 중요한 것입니다.

‘하나님이 그렇게 말씀하셨기에.’ 



이것은 너무 중요한 사실입니다. 하나님이 그렇게 말씀하셨기에 내가 그렇게 한다는 것. 이 사실은 결국 나 자신의 삶을 나의 뜻이나 감정에 걸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에 건다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이 말은 쉽게 말해서 ‘나를 믿는가 아니면 하나님을 믿는가?’라는 말입니다.

‘하나님이 말씀하셨으니 그래 나는 한다!’ 이 사실이 가장 중요합니다.



우리는 신앙생활을 한다고 하면서 너무 관념적인 신앙, 머리로서만 믿는 신앙을 가질 때가 많습니다. 자주 하는 이야기이지만 생각으로는 무엇이든 못할 것이 없습니다. 내 마음으로는 받을 은혜 다 받고, 해야 할 헌신 다 합니다. 마음으로는 내 재산 주님을 위해 다 드리고, 내 인생 주님을 위해 다 드릴 수 있습니다. 그러나 실제로 그렇게 하는 것은 정말 다른 이야기입니다.

사도행전 5장에 아나니아 삽비라 부부가 마음으로는 자신의 소유 전부를 다 하나님께 드렸습니다. 그러나 실제로 드리는 것은 어렵더라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21장에 예수님이 한 비유를 말씀하시면서 어떤 집에 두 아들이 있었는데 이들에게 아버지가 포도원에 가서 일하라고 하니까 맏아들은 “예, 알겠습니다.”하고 대답을 하고 가서는 일하러 가지 않고, 둘째 아들은 “싫어요.”하고는 집을 나갔지만 돌이켜 아버지의 말대로 포도원에 가서 일했다고 했습니다. 그리고는 그 둘 중에 누가 아버지의 뜻대로 한 아들이냐고 물으셨습니다.(마21:28-31)

말과 생각으로는 무엇이든 다 할 수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실제 행동으로 옮기는 것입니다. 믿음이 있다고 하고 마음은 한 없이 평안하다고 하면서도 하나님의 뜻을 행하지 않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런 사람보다 믿음이 좀 부족하고 마음에는 그것을 행하기에 두려움이 있을지라도 결국 그것을 행하는 사람이 훨씬 더 하나님의 사람이요, 하나님의 능력을 맛보고 체험할 수 있는 사람입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말씀이면 모든 이론을 접고, 모든 논쟁을 다 종결하고 그 말씀대로 행하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이전에 교회에서 하는 게임들 중에 ‘가라사대’게임이 있었습니다. ‘가라사대’라는 말이 들어가는 명령만 실제로 행하고 ‘가라사대’가 앞에 붙지 않으면 명령대로 하면 안 되는 게임이었습니다.(잠시 한 번 해 볼까요?) 그 게임처럼 ‘하나님이 가라사대’ 우리에게 이렇게 말씀하시면 다른 모든 이론과 논쟁과 나의 생각을 내려놓고 그 말씀에 순종하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사극에서 “어명이요”하면 모든 사람이 땅에 엎드려 왕의 명령에 귀기울입니다. “하나님이 말씀하셨습니다”라고 우리 앞에 선포되면 그 말씀대로 하는 우리들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난 뒤 그 말씀을 미루지 말고 즉각적으로 순종하는 것입니다. 기도해야 되겠다는 생각이 들면 바로 기도하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봉사해야겠다는 생각이 들면 바로 봉사하는 것입니다. 구제해야겠다는 생각이 들면 바로 구제하는 것입니다. 무엇이든 식어서 맛있는 것은 거의 없습니다. 하나님이 하시는 말씀을 받고 그 말씀의 열기가 남아 있을 때 순종하는 것입니다. 그래야 순종이 제대로 되고 순종하기도 쉽습니다.



이 즉각적인 순종이 있을 때 가나안 시대는 활짝 열리게 될 것이며 이 순종의 삶이 자연스러운 자들이 가나안 시대의 사람들입니다.



2. 공동체의 의식을 가져라.(12-)

모세가 없이 백성을 인도해야 하는 여호수아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리더십이었습니다.

현재 여호수아에게 부여된 임무는 백성들을 데리고 가나안으로 들어가서 가나안의 원주민들을 정복하고 그 땅을 이스라엘의 영토로 만드는 것이었습니다. 이런 여호수아의 리더십과 사명에 가장 부담이 되는 지파가 있었습니다. 그 지파는 르우벤 지파와 갓 지파와 므낫세 반 지파였습니다. 이제 곧 이스라엘 모든 백성들은 요단을 건너고 정복전쟁을 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이스라엘 모든 지파, 모든 백성들의 힘을 하나로 결집시켜야 하는데 이 3지파가 그렇게 하기에는 조금 문제가 있었습니다. 그것은 이 3지파는 목숨을 걸고 함께 싸울 이유가 없어진 지파였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지금 요단강 앞에까지 오기 전에 이들은 이미 모세의 영도 하에 많은 전쟁을 치르며 왔습니다. 그 전쟁 중에 요단강을 상류 지역에서 그 당시에 강력한 나라였던 아모리 왕 시혼과 바산 왕 옥을 쳐부숩니다. 그 땅은 아주 비옥한 땅이었습니다. 이 땅을 보고 이 3지파가 욕심이 난 것입니다. 자신들은 요단강을 건너편 가나안 땅을 분배해 주지 않아도 좋으니 이 땅을 달라고 요청하게 됩니다. 모세가 이것을 허락해 줍니다. 그래서 이들은 이미 점령한 땅, 보장된 땅이 있었던 것입니다. 그들은 굳이 요단을 건너지 않아도 되었고 또 전쟁을 하지 않아도 되는 지파처럼 생각하기 쉬웠습니다. 그리고 그 허락을 받을 때 리더였던 모세는 이미 하나님의 부름을 받고 없으니 누구도 자신들을 억지로 가나안 본토로 가기를 강요할 사람은 없었습니다.



바로 이들 지파에게 여호수아는 명합니다. 12-15절.

이 내용은 한 마디로 끝까지 함께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요단도 함께 건너고 전쟁에도 함께 참여하고 모든 전쟁이 종결되어 이스라엘이 진정한 안식을 얻게 되는 날에 너희는 너희가 분배 받은 땅으로 돌아가라는 것입니다.

만약 이 시점에 이들이 이 명령에 거부한다면 이스라엘 공동체는 깨어지는 것이며 여호수아의 지도력에도 치명타를 입게 됩니다. 그러나 이 3지파는 여호수아의 명령을 정당한 것으로 받고 모두가 다 수용합니다. 이로써 여호수아는 가장 중요한 시점에 자신의 지도력이 인정받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이 이와 같은 여호수아의 명령을 통해 가나안에 들어가기 전 이스라엘에게 요구하셨던 것은 무엇입니까? 공동체의식입니다. 하나가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너희는 진정 하나이냐 그러면 하나임을 구체적으로 고백하라는 것입니다.

15절 말씀. “여호와께서 너희로 안식하게 하신 것 같이 너희 형제도 안식하게 되며 그들도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서 주시는 땅을 얻게 되거든 너희는 너희 소유지 곧 여호와의 종 모세가 너희에게 준 요단 이편 해 돋는 편으로 돌아와서 그것을 차지할지니라”(수 1:15)

여호수아가 왜 이스라엘 모든 지파가 끝까지 정복 전쟁에 함께 참여해야 한다고 합니까? 그것은 모든 지파가 다 약속의 땅을 얻기까지는 그 어떤 사람도 얻은 것이 아니라는 의식입니다.

‘나는 이미 얻었으니 나머지 지파야 어떻게 되든 나는 상관없다?’ 이런 의식으로는 가나안에 들어갈 수 없다는 것입니다. 들어가도 정복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이런 의식으로 가나안에 혹 들어갔다고 하더라고 그곳은 가나안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가나안 시대를 열어야 합니다. 교회적으로 가나안 시대를 맞이해야 하고, 또 개인 성도들 한 사람 한 사람도 가나안 시대를 맞이해야 합니다. 더 이상 광야 시대를 맴돌다 허송세월해서는 안 됩니다. 내가 광야시대를 살지 않는 것과 공동체 의식이 무슨 상관입니까? 그런데 오늘 말씀은 그게 아니라 너무 중요한 사안이라는 겁니다.

다른 사람은 몰라. 나는 넉넉해. 나는 부족함이 없어. 이렇게 해서는 가나안 시대는 없습니다.

여호수아는 말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이 다 잘 되어야 각 지파가 잘 되는 것이다. 너희 3지파 잘 된다고 그게 잘 되는 것인 줄 아느냐?



제가 자주 말씀을 드립니다. 교회가 잘 되어야 한다는 말씀 말입니다.

이전에는 한 사람 한 사람 성도가 잘 되면 되는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더라고요. 하나님은 교회를 통해 일하시고 교회를 축복의 통로로 세워 놓으셨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성경을 좀 종합적으로 볼 수 있는 눈이 생기면 이 사실을 인정하게 됩니다.

예수님의 공생애 기간에는 개인의 구원에 관심을 기울인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교회가 세워질 것을 염두에 두고 사역하셨습니다. 그래서 베드로에게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 내가 천국 열쇠를 네게 주리니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리라”(마 16:18-19)고 말씀하셨던 것입니다.

예수님이 부활 승천하시고 난 뒤에 제자들의 행적을 기록한 것이 사도행전입니다. 사도행전은 복음서의 연장입니다. 즉,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위임한 것을 제자들이 어떻게 수행해 나가는가를 기록한 것입니다. 그런데 사도행전 이야기는 결국 다 교회설립이야기입니다. 결국 예수님은 교회를 세우기 위하여 이 땅에 오신 것이며 교회를 위하여 십자가에 죽으신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사도행전20:28에 ‘하나님이 자기 피로 교회를 사셨다’(행 20:28)고 한 것입니다.

그 이후 서신서에는 모두 교회를 향하여 쓴 글들입니다. 하나님이 교회를 어떻게 보고 계신가를 알 수 있습니다. 교회는 하나님이 이 땅에서 자신의 사역을 이루는 기관입니다. 그래서 교회가 잘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이며 만물을 완성하시는 분의 계획이 그 안에서 완전히 이루어집니다.”(엡 1:23)-공동번역



성도 여러분, 나 혼자 잘 되는 것이 아니라 교회가 잘 되어야 합니다. 르우벤, 갓, 므낫세 반 지파만 잘 되면 되는 것이 아니라 모두가 잘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만약 이 3지파가 기름진 땅을 분배받았으니 나 모르겠다고 했습니다. 그리고는 나머지 지파가 가나안 정복에 실패했습니다. 그러면 이 3지파는 온전하겠습니까? 이 3지파는 곧 주위의 나라에게 정복을 당하고 말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나는 모르겠다고 뒷전에 나 앉지 마십시오. 교회를 통한 하나님의 복을 누리시기 바랍니다. 혹 여러분 가운데 나는 넉넉하니 부족한 것이 없다고 생각한다면 큰 잘못입니다. 이미 받은 사람은 더 크게 교회를 위해 헌신해야 합니다. 충성해야 합니다.

내 주의 나라와 주 계신 성전과 피 흘려 사신 교회를 늘 사랑하시기 바랍니다.

이 교회 위하여 눈물과 기도로 내 생명 다하기까지 늘 봉사하시기 바랍니다.



여호수아의 명령을 받은 이 3지파가 하는 답을 보십시오.

“[16] 그들이 여호수아에게 대답하여 가로되 당신이 우리에게 명하신 것은 우리가 다 행할 것이요 당신이 우리를 보내시는 곳에는 우리가 가리이다 [17] 우리는 범사에 모세를 청종한 것 같이 당신을 청종하려니와 오직 당신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모세와 함께 계시던 것 같이 당신과 함께 계시기를 원하나이다 [18] 누구든지 당신의 명령을 거역하며 무릇 당신의 시키는 말씀을 청종치 아니하는 자 그는 죽임을 당하리니 오직 당신은 마음을 강하게 하시며 담대히 하소서”(수 1:16-18)

그들은 오히려 솔선수범하겠다고 하는 것입니다. 여호수아에게 걱정하지 말라고 하면서 당신의 리더십은 오히려 우리가 세워주겠다고 말하고 나서는 것입니다.



부족한 것을 아는 것!

우리교회를 보면서 실제로 감사한 것 중에 하나는 아예 나는 넉넉하다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 별로 없다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뒷전에 나앉으면 안된다라는 말할 필요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문제는 분명 부족하니까 함께 힘을 모아 가나안 정복에 힘을 다해야 하는데 자신의 부족한 것조차 모른다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엘리야처럼 “여호와여 넉넉하오니 지금 내 생명을 취하옵소서”(왕상19:3)라고 말합니다. 세상 다 산 사람처럼 말입니다. 인생 거의 포기한 것처럼 삽니다. 성도 여러분, 엘리야가 이 말을 했을 때가 언제인 줄 아십니까? 그가 가장 영적으로 형편없을 때였습니다.

라오디게아 교회에게 주님이 요한을 통해 말씀하실 때에 “[17] 네가 말하기를 나는 부자라 부요하여 부족한 것이 없다 하나 네 곤고한 것과 가련한 것과 가난한 것과 눈 먼 것과 벌거벗은 것을 알지 못하도다”라고 하셨습니다.(계3:17)

배가 고픈 것을 알아야 먹을 것을 찾습니다. 그런데 배고픈 것을 참다보니까 배고픈 것도 모르고 살다가 건강을 다 잃는 것입니다. 아이러니하게도 동물의 왕, 사자는 보기와는 달리 늘 굶주리며 산다고 합니다. 그렇게 배가 고프니 자연스럽게 먹을 것을 찾고 그러니 그 눈빛에는 빛이 일어나고 성질이 사납다고 합니다. 한국축구 영웅이 된 히딩크 감독은 월드컵 기간 내내 “나는 아직 배가 고프다”라는 말로 승리에 대한 결의를 나타냈다고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저는 성도 여러분이 사슴의 목을 가지면 좋겠습니다. 하나님을 찾는 그리움으로 영적인 목을 드리운 사람처럼 말입니다. 그 분은 사모하는 영혼을 만족케 하시며 주린 영혼에게 좋은 것으로 채워주시기 때문입니다.(시 107:9)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중요한 것은 모두가 다 하나가 되어 가나안 시대를 열망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 교회를 통하여 나타내실 영광을 생각하면서 하나가 되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사실 누가 봐도 오합지졸이었습니다. 종살이 400년에 이들에게 남아있는 것은 뿌리 깊은 노예근성입니다. 어디 누구를 지배할 만한 민족이 못되었습니다. 그렇게 해 본 적도 없습니다. 자신의 땅도 없고 광야에서 방랑하는 집시와도 같은 민족이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바로 그런 민족을 통하여 위대한 하나님의 역사를 이루어가십니다. 그 어떤 민족도 업신여기지 못할 나라를 만드시는 것입니다. 이제 그 나라의 영토를 차지할 바로 직전에 있습니다.



나와 같은 자들을 통하여 영광을 받으실 하나님을 찬미하시기 바랍니다.



가나안 시대를 살아야 할 우리에게 하나님은 오늘 말씀에 대한 즉각적인 순종과 교회적인 하나됨을 원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여호수아에게 “너는 이제 모든 백성으로 더불어 일어나 이 요단을 건너 내가 그들 곧 이스라엘 자손에게 주는 땅으로 가라”고 하셨습니다.

더불어 가나안 시대를 열고 그 시대를 살 수 있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 아 멘 - (주후 2006-08-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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