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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나안 시대를 향하여
  • 날짜 : 2006.07.30
  • 본문 : 여호수아 1:1~9 (구약319)
  • 설교자 :
성경본문 및 요약
제목> 가나안 시대를 향하여

성경> 수1:1-9

찬송> 12, 349, 382



●들어가면서

성도 여러분, 당분간 여호수아서를 중심으로 해서 말씀을 전하려고 합니다. 우리 교회의 영적인 상황을 생각해보면서 하나님이 여호수아서를 통하여 우리에게 말씀하시기를 원하신다는 느낌이 강력하게 다가 왔습니다. 여호수아서의 주제가 ‘정복과 분배’입니다. 우리에게도 정복해야 할 것들이 분명히 있습니다. 그리고 또 그것을 우리의 것으로 정확하게 나눔이 필요한 것입니다.



●가나안 시대가 왔다. 그런데 두렵다!

여호수아서는 신명기와 연결이 됩니다. 물론 신명기의 저자와 여호수아서의 저자가 같은 것은 아니지만 여호수아서는 분명 모세 오경을 아는 사람이 기록하였을 것이며 그것은 모세가 죽은 뒤에 이스라엘 백성은 어떻게 되었는지에 대해 기록하려는 의도로 썼을 것입니다.

그래서 원문에는 여호수아서의 제일 첫 단어가 ‘그리고’라는 말입니다. 그대로 직역하면 “그리고 그것은 모세가 죽은 후였다.”로 시작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여호수아서는 신명기서를 잇는 의미로 볼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 첫 번째 절에 모세가 죽었다는 말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모세 시대가 끝났음을 말합니다. 모세시대가 끝났다는 말은 광야시대가 끝났다는 말도 됩니다. 이스라엘은 지금 요단 강 바로 앞에 있습니다. 요단강을 건너면 이제 가나안 땅이 있는 것입니다. 이스라엘과 여호수아는 가나안 시대를 맞이하려고 하고 있습니다. 이제 그들은 광야의 40년 생활을 청산하려는 역사적인 시점에 와 있습니다. 아니 400년간의 애굽의 종살이를 청산하고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당당한 나라를 세우려는 시점에 와 있습니다.



그런데 그 가나안 시대가 여호수아에게는 그렇게 즐겁지 않습니다. 오늘 말씀에는 ‘마음을 강하게 하라’ ‘담대히 하라’(6) ‘두려워 말라’(9)는 말이 계속 나옵니다.

이스라엘이 그렇게 고대하던 가나안 시대가 왔는데 왜 기뻐 날뛰지 않고 분위기가 이렇습니까?

광야시대가 끝나고 가나안 시대가 왔는데 왜 분위기가 이렇습니까?



1)첫 번째 원인은 모세의 죽음에 있습니다.

그런데 신명기의 맨 마지막 장, 34장에 모세의 임종 기사가 나옵니다. 모세가 죽었을 때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어떻게 하였습니까? 이스라엘 백성들이 모압 광야에서 30일 동안 애곡하였습니다.(신34:8) 그리고 신34:7에 보면 모세가 죽을 때 나이 120세나 그 눈이 흐리지 않았고 기력도 쇠하지 아니하였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분명 백성들은 모세가 죽을 거라고 생각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들이 의지하고 있는 지도자 모세가 갑자기 죽은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적지 않게 충격을 받았을 것입니다. 그 중에 가장 큰 충격을 받은 사람은 여호수아였을 것입니다.



2)오히려 더 큰 원인이 있다고 하면 새롭게 주어진 새 시대에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모르는 것에 대한 불안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애굽시대도 알고 광야 시대도 아는 모세는 가나안 시대도 잘 대처해 갈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자신이 없는 것입니다.

변화는 누구에게든지 새로운 적응을 요구합니다. 갈수록 변화하는 게 두려운 것입니다.

그래서 아예 변하지 않기로 작정하는 것입니다.



3)가장 큰 불안이라고 하면 가나안 땅에 있는 가나안 7족속을 비롯한 여러 족속들과의 싸움이었을 것입니다. 가나안 땅에 들어가면 더 이상 전쟁이 없으면 좋을 텐데 가나안에 들어가서는 더욱 어려운 싸움이 전개될 것이 내다보이는 것입니다.



모세도 죽었는데 이런 모든 일들을 감당하기에는 너무나 불안한 것입니다.



그러나 사실 이스라엘이 요단강 바로 앞까지 왔다는 것만으로도 기적입니다. 400년간 종살이 하던 이 백성들이 광야의 그 많은 환경적인 난관을 극복하고 온 것만으로도 대단한 것입니다. 그런데 왜 그들이 그렇게 오랫동안 고생하면 여기까지 왔느냐? 그것은 바로 가나안 들어가려고 그렇게 한 것입니다.

하나님이 그들의 오래전 조상 아브라함 때에 이미 약속하신 바로 그 약속이 성취될 바로 그 시점에 있는데 그들은 지금 두려워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들어가지 않으면 어떻게 하겠습니까? 광야에 계속 살겠습니까? 아니면 애굽으로 다시 돌아가겠습니까? 이미 돌아가기에는 너무 많은 세월이 지났고 광야에 살기에는 너무 지쳤습니다. 그들은 희망을 품고 여기까지 왔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또 다른 두려움이 그들의 앞을 막고 있는 것입니다.

분명 그들은 가나안이 그들의 소망이었습니다. 분명 이스라엘이 광야시대를 청산하고 가나안시대로 들어가는 것은 당연한 수순입니다. 그러나 겁이 나는 것입니다.

수많은 전투에서 승리를 해 본 여호수아도 두려운 것을 어찌할 수 없습니다. 앞으로 어떻게 감당할 수 있을까?



●요단강을 건널까 말까? - 가나안 시대를 여느냐 마느냐?

여호수아가 가나안시대를 향하여 가느냐 마느냐의 제일 첫 단계가 요단강이었습니다.

하나님이 여호수아에게 명하신 것을 좀 더 자세히 봅시다. 2절을 다시 봅니다.

“…일어나 이 요단을 건너 내가 그들 곧 이스라엘 자손에게 주는 땅으로 가라”

요단을 건넌다는 것을 가나안 시대를 열겠다는 말이며, 요단을 건너지 않겠다는 것은 가나안시대를 포기하겠다는 말입니다.



시대마다 하나님은 지도자에게 중요한 과제를 줍니다.

모세에게 주어진 것이 홍해라고 한다면 여호수아에게는 요단입니다. 모세는 홍해를 건넘으로 광야시대를 열었습니다. 여호수아는 요단을 건넘으로 가나안 시대를 열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요단을 건너는 것은 홍해를 건너는 것 못지않게 신앙의 결단을 요구합니다.

요단을 강이고 홍해를 바다였기 때문에 홍해를 건넌 것에 비해 요단을 별 것 아닐 것이라고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물론 요단은 강입니다. 아니 지금 성지여행을 한 분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강이라고 할 것도 없는 고랑이라고 말합니다. 사진을 봐도 요단강이라고 보여주는 그림이 우리나라 시내입니다. 온천천이나 수영천보다 더 규모가 작습니다. 그러나 이 요단은 계절에 따라 그 수위가 크게 달라지는 것입니다. 어느 시기에는 거의 물이 없기도 하고 어느 시기에는 차도 지날 수 없도록 통제하는 곳이 이 요단강입니다. 최근 우리나라에 집중 호우가 내렸을 때에 물을 건너는 일이 얼마나 위험한지를 생각하면 될 것입니다.

보리를 추수하는 시기에 요단강은 항상 범람했습니다. 그런데 바로 그때 하나님은 요단을 건너라고 하십니다. 홍수가 나고 강물이 불어나면 평소에 지나던 개울도 건널 수 없습니다.



요단을 건너는 것, 이것은 홍해를 건너는 것과는 조금 다릅니다. 홍해는 건너지 않으면 안 되는, 선택의 여지가 없는 것이었습니다. 뒤에는 이스라엘 백성을 죽이려고 바로의 군대가 쫓아오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요단은 그렇지 않습니다. 요단을 건너기 두려우니 싫으면 안 건너도 당장 죽을 일은 아닙니다. 그냥 세월을 보내든지 아니면 다시 돌아 광야생활 더 하면 됩니다. 누가 이제 그들을 죽이겠다고 쫓아오는 나라도 없습니다. 오히려 주변의 나라들이 이스라엘을 두려워할 때였습니다.

그러나 이 요단을 이렇게 안일하게 생각한다면 그것은 큰일입니다. 하나님이 보리 추수하는 때를 택하신 이유가 있는 것입니다. 강물이 범람하는 때를 택한 이유가 있습니다.



앞서 홍해를 이스라엘 백성이 건널 때는 건너지 않으면 안 될 상황이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그들이 스스로 건넌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바닷물 갈라놓고 건너가라고 하신 것입니다. 이것은 구원입니다. 우리가 예수 믿고 구원 받는 것은 하나님이 하십니다. 그것은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하나님이 다 해 놓으시고 그 길로 몰아넣으십니다. 어떤 사람은 가문을 통해 밀어 넣으셨고, 어떤 사람은 직장을 통해, 어떤 사람은 물질을 통해, 어떤 사람은 병을 통해, 어떤 사람은 자녀를 통해, 어떤 사람은 남편, 아내를 통해 밀어 넣으신 것입니다.



그러나 이제 요단을 건너는 것은 우리의 결단이 필요합니다. 내가 건너가겠다는 결단이 필요한 것입니다. 건너기로 작정하고 믿음으로 행할 때 하나님의 약속은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요단강은 결코 하나님이 갈라놓고 건너라고 하지 않습니다. 건널 때 갈라놓아 주십니다. 실제 수3:15-16절에 보면 제사장을 앞세운 이스라엘 백성들이 강물에 들어가서 발이 물에 잠겼을 때에 흐르던 물은 그쳤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것은 구원 믿음이 아니라 생활 믿음입니다.



우리의 인생사에 요단이 있습니다. 여러분 스스로를 두렵게 만드는 것들, 그것이 바로 요단입니다. 그러나 그 요단을 건너버려야만 합니다. 그래야 가나안 시대가 열리는 것입니다. 그래야 하나님이 그토록 주시기 원했던 약속의 성취를 이루게 되는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에게 여호수아처럼 두려울 일들이 있을 것입니다. 의지할 사람도 없어지고 갑자기 혼자가 된 느낌을 가지고 있는 분들도 있을 것입니다. 왜 그렇게 싸워야 할 적은 그렇게도 많은지 이젠 좀 쉬고 싶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아직은 아니라고 합니다. 아직 가나안을 들어가지도 않고서 쉬고 싶다니 그게 말이 됩니까? 광야는 훈련하는 곳이지 쉬는 곳이 아닙니다. 안식은 가나안에 있는 것이지 광야에는 없습니다.

분명한 것은 요단을 건너지 않는다면 여전히 광야생활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요단을 건너기만 하면 우리는 또 한번의 하나님의 구원을 노래하게 될 것입니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여호수아는 이 ‘요단을 건너’라는 말을 들었을 때 분명 홍해를 건넜을 때가 생각났을 것입니다.

백성들은 말로만 들었지 실제 경험이 없습니다. 그러나 여호수아는 직접 홍해를 건너 본 장본인입니다. 그는 다시 한번 하나님 앞에서 결단할 수 있었습니다. 내가 이 요단을 건넌 후에는 홍해를 건너고 불렀던 바로 그 노래를 부르리라!!! 아멘. 아멘.

한번이라도 건너 본 경험이 있는 사람이 담대합니다. 일부러 건널 필요는 없지만 건너지 않으면 안 될 때에는 그 사람의 역할은 참 중요합니다. 하나님은 여호수아에게 너만 건너라고 말하지 않고 ‘이 모든 백성으로 더불어’ 건너라고 말씀하십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함께 요단을 건너 가나안 시대를 엽시다!

그곳에서 우리는 하나님이 나를 향해, 우리 교회를 향해 가지고 계셨던 분명한 꿈과 약속을 확인합시다.



●하나님의 약속 - 되리라. 주리라.

하나님이 두려움에 싸여 있는 여호수아에게 주신 약속이 무엇입니까?

“곧 광야와 이 레바논에서부터 큰 하수 유브라데에 이르는 헷 족속의 온 땅과 또 해 지는 편 대해까지 너희 지경이 되리라”(수 1:4)

“마음을 강하게 하라 담대히 하라 너는 이 백성으로 내가 그 조상에게 맹세하여 주리라 한 땅을 얻게 하리라”(수 1:6)



이 말씀은 분명히 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분명히 그렇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사실 모세도 누리지 못했던 영광을 여호수아에게 허락하시겠다는 것 아닙니까? 모세는 가나안을 목표로 산 사람이지만 끝내 가나안 땅을 밟지 못하고 죽었습니다. 그러나 이제 여호수아에게 그 약속의 성취를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여호수아는 광야시대도 살았고 가나안시대도 살 사람이 된 것입니다. 광야시대를 아니까 가나안시대가 얼마나 기대가 되겠습니까? 바로 그 영광을 여호수아에게 주시겠다는 것 아닙니까?



성도 여러분, 우리가 나선 믿음의 길은 이미 될 길임을 믿읍시다!



●나에게 필요한 것(3-5, 9) - 임재의식, 말씀중심

우리가 가나안 시대를 열기 위해, 하나님의 약속을 이룰 장본인으로 나타나기 위해 꼭 필요한 것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그것을 이미 여호수아에게 명령하시면서 함께 말씀해 주셨습니다.

하나는 하나님 편에서 우리에게 해 주실 것에 대한 확신이고, 다른 하나는 내가 하나님 앞에서 지켜야 할 것입니다.

첫째는, 하나님이 함께 하신다는 임재의식입니다.

5절. “너희 평생에 너를 능히 당할 자가 없으리니 내가 모세와 함께 있던 것 같이 너와 함께 있을 것임이라 내가 너를 떠나지 아니하며 버리지 아니하리라”

하나님이 나의 가는 길에 함께 하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사단이 우리의 길을 방해하고 포기하게 하는 방편이 두려움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함께 하신다는 임재의식은 이 두려움을 물리치게 됩니다.

힘들고 두려울 때마다 “하나님 나와 함께 하시죠?”하고 자주 자주 물으시기 바랍니다. 내가 믿음으로 약속을 붙잡고 걸어가는 길이 분명하면 그때마다 하나님이 증거를 나타내 보여주실 것입니다. 우리를 당할 자는 없습니다. 그 분은 우리를 떠나지 않고 버리지 않습니다.



둘째, 내가 하나님 앞에 꼭 지켜야할 것입니다.

7-8절. “[7] 오직 너는 마음을 강하게 하고 극히 담대히 하여 나의 종 모세가 네게 명한 율법을 다 지켜 행하고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말라 그리하면 어디로 가든지 형통하리니 [8] 이 율법책을 네 입에서 떠나지 말게 하며 주야로 그것을 묵상하여 그 가운데 기록한대로 다 지켜 행하라 그리하면 네 길이 평탄하게 될 것이라 네가 형통하리라”(수 1:7-8)

하나님이 하신 말씀대로 하면 되게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철저하게 말씀대로 살면 가는 길이 평탄하게 될 것이고 하는 일이 형통하게 될 것이라는 것입니다. 7절에 “율법을 다 지켜 행하고 좌로나 우로나 취우치지 말라”이 내용을 공동번역 성경에는 “한눈 팔지 말고 성심껏 지켜라.”

정말 우리가 한 눈 팔지 말고 하나님의 말씀만을 붙들고 말씀대로 살면 좋겠습니다. 그러면 형통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면 형통하라라는 말은 이미 우리가 본 대로 하나님은 약속은 성취되게 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은 손해보지 않으십니다. 문제는 그 성취가 어떻게 이루어지느냐 하는 것입니다.

말씀대로 하면 순적하게 평탄하게 형통하게 될 것이고 말씀대로 하지 않으면 어렵고 힘들게 되어질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내가 아니라 다른 사람이 그 일을 성취하게 될 지도 모릅니다. 모세가 하나님을 절대적을 신뢰하지 않는 결과 그 영광을 여호수아에게 넘겨주었듯이 말입니다.



●맺으면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이제 광야 시대를 청산하고 새 시대, 가나안 시대를 열고 살아야합니다. 그 가나안 시대는 하나님의 약속의 성취의 현장 속에 사는 시대입니다.

그러기 위해 우리 앞에 있는 믿음의 경주를 담대하게 감당합시다.

하나님이 주신 믿음의 길을 바로 달립시다.

- 아 멘 - (주후2006-0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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