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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오전예배

"주일 - 천 날보다 나은 하루"
  • 날짜 : 2007.07.09
  • 본문 : 시편 84 : 1 - 12 (구약p 864)
  • 설교자 :
성경본문 및 요약
제목> 주일, 천 날보다 나은 하루

성경> 시84:1-12

찬송> 186, 27



이전에 섬기던 교회에서의 기억입니다. 교회에 한 성도가 등록을 하였습니다. 그는 이전에 신앙생활을 하다가 중단한 채 오랜 세월을 지냈던 사람입니다. 마음 한 구석에는 다시 교회를 나가야지 하는 마음이 있었지만 사는 것에 쫓기다보니 또 교회는 마음에만 있는 먼 곳이었습니다. 그러나 사는 것이 힘들 때마다 교회는 더욱 마음에 간절했습니다. 그러던 중, 어떤 사람이 계속해서 교회 함께 나가자고 권하는데 거절할 수 없어 교회를 나오게 되었습니다. 다시 교회에 나와 예배를 드리던 그 날 주체할 수 없는 눈물을 하염없이 흘렸습니다. 나중에 그 사람이 하는 말이 “옆에 있는 사람이 자신을 어떻게 생각했을까?”하면서 그 상황을 부끄럽게 생각했습니다.

예배를 드린 후 그는 자신이 있어야 할 곳이 어디인가를 알게 되었습니다. 교회는 그의 영혼의 고향이었고 예배시간은 어머니의 품과도 같았습니다. 그 후 그는 주일을 착실하게 꾸준히 지키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그의 삶도 거의 1년 안에 다시 회복되고 안정을 찾았습니다. 그리고 난 뒤 그는 “무엇이 더 중요한 일인지 모르고 살았는데 그 중요한 일을 지키고 나니까 다른 모든 것이 회복되기 시작하더라”고 고백하였습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는 주일의 중요성과 예배에 대한 중요성을 참 많이 들었습니다. 우리의 삶의 중심이 주일이어야 하고, 주일의 중심은 예배라고 했습니다. 오늘이 바로 주일이고 우리는 주일의 핵심이 예배의 시간에 있습니다. 우리는 한 주간의 삶이 바로 여기에서 결정된다고 믿으면서 이 시간을 드려야 할 것입니다.



오늘 이 시간에는 하나님은 이름이 정확하게 밝혀지지 않은 한 성도가 하나님의 성전으로 올라가면서 부른 신앙고백의 노래를 통하여 더욱 구체적으로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시편 84편은 순례자의 노래입니다. 즉 유대인들이 그들의 절기를 지키기 위해 예루살렘 성전을 향하면서 부른 노래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성인이면 의무적으로 3대 절기를 지켜야만 합니다.

하나님은 이 노래를 지은 성도의 간절한 마음으로 우리에게 도전하십니다.

우리가 이 시대에 이 성도의 마음으로 주의 전을 찾을 수 있다면 우리의 영혼은 물론 우리의 삶까지도 온전히 회복될 것입니다.



그러면 시편 84편에 나타난 이 성도는 어떤 모습으로 우리에게 도전을 하고 있습니까?



1. 주의 전을 향한 사모함이 있어야 합니다.(1-4)

이 성도의 성전을 사모하는 마음을 봅시다.

1)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주님의 전을 향합니다.(1)

2)뵙고 싶어 마음에 병이 들었습니다. 주 계신 성전을 얼마나 사모했던지, 온몸과 마음이 부르짖노라고 고백합니다.(2)

3)하나님의 전을 보금자리 삼고 늘 성전 안에서 살 수 있는 참새와 제비가 부럽기까지 합니다.(3)



여러분은 이 성도의 마음을 어떻게 보십니까? 사실, 하나님은 눈으로 보이지도 않는데 사모한다고 말할 수 있습니까? 더군다나 사모하여 병이 들 지경이라고 말한다는 것은 과장된 표현이 아닙니까? 이성을 향한 그리움과 사랑이라면 모를까, 어찌 보이지도 않는 신을 향하여 이런 표현을 하는 것입니까?

그러나 이건 거짓이 아니고 사실입니다. 이런 마음은 본 시편 저자의 마음뿐만 아니라 많은 성도들의 가슴 속에 이미 체험된 것입니다. 남녀의 사랑과는 다른, 또 다른 뜨거운 사랑과 열정이 우리의 가슴속에 있으니 그것이 바로 신을 향한 사랑입니다. 전3:11에는 사람에게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을 하나님이 주셨다고 하였습니다.

이 저자의 사랑 표현은 사실이며 이보다 더한 표현을 우리는 하나님께 충분히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주의 백성들의 이 고백을 즐거워하십니다. 이 시간은 하나님의 가장 행복한 시간이기 때문입니다.

성경에 하나님은 스스로를 ‘질투하는 하나님’이라고 표현하셨습니다.(출20:5)

(사 42:8) 『나는 여호와니 이는 내 이름이라 나는 내 영광을 다른 자에게, 내 찬송을 우상에게 주지 아니하리라』



다시 이 시편 저자의 마음을 봅시다. 오늘 이 시편 저자는 하나님을 만나기 전부터 하나님을 향한 불타는 마음이 있었습니다. 그의 마음은 하나님의 성전을 사모하는 마음으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항상 주님의 전에 있고 싶지만 그렇지 못한 것이 안타까웠습니다. 하나님의 집에 들어가기 전에 이미 이 성도의 가슴은 하나님으로 가득 채워져 있었던 것입니다.

그런 마음으로 성전을 들어가는데 어찌 은혜를 받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이미 이 성도는 주님의 전에 올라오는 길에서부터 예배가 시작되고 있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에게 이런 사모함이 있습니까?

우리 하나님은 우리가 이렇게 사모해도 좋을 충분한 분입니다. 아니 우리가 가장 사모해야 할 분입니다. 아니 오직 그 분만을 사모해야 할 분입니다.

♬찬84장 - 나 어느 날 꿈속을 헤매며

후렴 - “내가 영원히 사모할 주님 부드러운 그 음성을”

4절 후렴 - “오 내 친구여 주 사모하세”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가 매 주일마다 이 시편 성도처럼 주님을 사모하는 심령을 가지고 우리의 집을 나서서 교회로 향한다면 그 얼마나 복된 장면이겠습니까? 그 성도 역시 이미 그의 심령 속에서 예배가 시작되었고 예배 가운데 교회로 들어서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정말 안타깝게도 어떤 순례자들에게는 일 년에 몇 차례 성전에 가야하는 사실이 번거롭게 여겨졌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 순례자는 일 년에 불과 몇 차례 밖에 성전에 갈 기회가 없다는 사실이 너무 안타까웠습니다.

우리와 우리 하나님과의 사이가 이렇게 되면 그때부터 우리의 삶은 힘을 잃고 말 것입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세상을 살기 위해 태어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 하나님을 바라보며 즐거워하면서 살 존재로 지음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2. 어떤 어려움이 있어도 성전의 은혜를 포기할 수 없습니다.(5-8)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가 마음만 먹으면 거저 은혜 속으로 들어가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우리의 가는 길이 성전으로 직행하는 시온의 대로가 되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왜 우리는 은혜를 받는 일에 그렇게도 힘이 드는 것입니까? 오늘 이 순례자를 통하여 우리는 그 이유를 알 수 있습니다.



이 성전을 향한 순례자는 눈물 골짜기를 만납니다. 이스라엘 땅의 골짜기는 우리나라의 골짜기처럼 생각하면 안 됩니다. 우리나라의 골짜기는 그것을 오르기는 힘들지 모르나 주위에는 나무들이 있어 그들에서 쉬려고 하면 쉴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팔레스틴의 골짜기는 사막과 같습니다. 걷기조차 힘든데다 쉴 곳도 없습니다. 그래서 눈물 골짜기입니다. 눈물 없이는 갈 수 없는 험한 길입니다.

성전을 향하여 가는 순례의 길이 결코 순탄하지 않음을 말하는 것입니다. 성전의 은혜를 방해하는 여러 상황이 생긴다는 것입니다. 은혜를 사모하면서 그 길을 계속 가기에는 너무 힘든 길이 되어버린 것입니다. 그것은 골짜기일 뿐만 아니라 눈물을 흘리며 가야하는 골짜기입니다. 이렇게 힘들 바에야 포기하고 싶습니다. 이렇게 힘들 바에야 처음부터 길을 나서지 말아야 했다고 생각합니다. 이렇게 힘들 바에야 아예 이 길을 나설 이유가 없는 하나님의 백성이 아니었으면 좋았겠다고 생각합니다.

더 나아가서 도대체 아직 가보지도 않는 그 곳에 뭐 그렇게 좋은 것이 있겠느냐는 회의가 들기 시작합니다. 내가 이렇게 고생하면서 간 보람이 과연 있을까 생각합니다. 이 순례길을 가는 것보다 더 시급한 것이 현재의 내 코가 석자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러나 성도 여러분, 이 순례길은 혼자 내버려진 길이 아님을 알아야 합니다. 이 길을 나설 때 이미 하나님은 그의 신으로 그와 동행을 시작하셨습니다. 그러므로 그는 눈물 골짜기에서도 곳곳에서 샘을 만나게 됩니다. 또 필요할 때는 이른 비가 내려 메마른 땅을 적셔 먼지가 나지 않게 하고 날씨도 서늘하게 만듭니다.

하나님을 만나기 위해 고난도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하는 자들에게 하나님은 모른 채 하지 않으십니다. 왜 그렇습니까? 그가 하나님을 뵙기를 원하는 만큼, 하나님도 그가 보고 싶으시기 때문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어떤 일이 있어도 하나님을 만나기를 포기하지 않는 자들에게 눈물골짜기에 때로는 위로의 샘물을, 눈물골짜기에 때로는 축복의 단비를 내려주십니다.(6)



이런 하나님의 은혜를 체험하게 될 때 순례자는 어떻게 될까요? 7절입니다.

“그들은 힘을 얻고 더 얻어 나아가 시온에서 하나님 앞에 각기 나타나리이다”

지쳐 쓰러져 가던 순례자는 하나님의 은혜로 힘을 얻고 더 얻어, 마침내 하나님 앞에 설 수 있게 됩니다.(7)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가 주님을 만나려고 하면 어려움이 따를 수 있습니다. 눈물골짜기가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을 극복하여야 합니다. 그 황량한 골짜기에 나 혼자만 있다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눈물을 흘릴지라도 눈물이 여러분의 봐야할 것을 가리지 않기를 바랍니다.

그 곳에 하나님은 임마누엘로 함께 계심을 믿으십시오. 눈물이 날 때야 어떻게 하겠습니까? 울어야 한다면 우십시오. 그러나 절대로 포기하면 안 됩니다. 이 골짜기를 넘으면 시온의 대로가 있을 것입니다. 그땐 눈물을 흘린 만큼 기쁨은 클 것입니다.

성경은 단을 거둘 때에도 눈물을 흘리며 씨를 뿌린 자가 기쁨으로 단을 거둔다고 하였습니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무엇 때문에 길을 가느냐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만나 그곳에서 예배드리기 위함이라는 사실입니다. 이 사실에 목숨을 내 건 사람은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분명히 얻게 될 것입니다. 주께서 눈물골짜기에서 흘린 눈물을 닦아 주실 것입니다.



오늘도 주일을 지키기 위해 여러분 나름의 눈물골짜기의 사연을 가진 분들이 이 자리에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여러분은 승리하셨습니다. 여러분이 사모한 만큼 주님이 여러분을 사모하고 기다리셨습니다. 믿으시기 바랍니다. 바로 그 심령들 위해 주님의 특별한 위로가 넘치기를 축원합니다.



우리의 주님을 사모하는 일에는 그 어떤 방해물도 소용이 없어야 합니다. 사단이 장애물을 놓고 우리를 조롱하려고 하지만 우리가 그 어떤 장애물도 소용이 없었음을 증명하면서 사단을 조롱해야 합니다.



3. 주일이 삶의 원천이어야 합니다.(9-12)

하나님을 만나기 위한 그 어떤 눈물골짜기도 이겨낸 이 순례자는 마침내 예루살렘 성전에 들어가게 됩니다. 그는 멀리 시온산 언덕 위에 세워진 성전이 눈에 들어왔을 때부터 감격하였을 것입니다. 발걸음을 재촉하여 그는 성전을 향하는 언덕을 올라갔습니다. 이윽고 그는 성전의 문을 들어섭니다.

9절을 봅시다.

그는 성전 안에서 하나님과 얼굴을 마주 대합니다.

성전에 들어간 이 순례자의 첫 고백은 지금까지의 순례 여정에서 숱한 고비가 있었지만, 그 고비마다 적들의 방패가 되어주신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그는 분명 눈물골짜기에서 샘을 주시고, 힘들 때 이른비의 은택을 주신 하나님을 기억하였을 것입니다. 그리고 자신은 그 과정 가운데 주의 기름 부으신 자였음을 고백합니다.  이 순례자는 단순한 성전 투어 하는 관광객이 아님이 여기에 있습니다. 그에게 성전은 너무나 아늑한 고향이며 어머니의 품입니다. 하나님과의 진한 교제가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그 당시 성전은 제사가 행해지는 곳이었습니다.

순례길의 그 고통은 꿈에 본 듯 다 잊어버리고 오직 구속한 주님만 보이는 시간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 순례자의 행복을 여러분은 알 수 있습니까?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 모두 사모해야 합니다.

10절을 봅시다.

그곳에서 순례자는 다른 어떤 곳에서의 천 날보다 더 나은, 꿈만 같은 하루를 보냅니다. 세상의 여러  호화로운 집에 가보았지만 여호와의 집이면 가장 미천한 문지기일지라도 더욱 행복할 것 같습니다. 온갖 부와 명예와 권력과 쾌락이 있는 악인의 장막에서 대접받는 것보다, 가장 비천한 문지기가 되어 섬길지언정 성전에 있는 것이 더 좋습니다.

그는 여기가 자신이 있어야 할 곳임을 확인한 것입니다. 물론 그는 이 곳을 떠나 자신의 삶의 터로 다시 돌아갈 것입니다. 그러나 그의 마음에는 이 성전이 항상 자리 잡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하루가 남은 그의 삶을 지탱해주는 힘이 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순례자가 성전을 순례하듯이 주일이라는 사이클을 통하여 주님의 존전에 나와 예배드립니다. 여러분에게 있어 주일이 여러분의 삶의 중심에 있습니까? 그리고 주일은 여러분의 남은 삶을 유지하는 원천이 됩니까?

한 주간의 싸이클이 ‘월-화-수-목-금-토-일’이 아닙니다. ‘주일-월-화-수-목-금-토’입니다.



오늘 새벽에 안식이라는 주제를 가지고 말씀을 받았습니다. 안식은 하나님이 가장 중요하게 여기시는 하나님의 창조법칙입니다. 하나님이 안식법을 만드시고 지키셨습니다. 안식일이 있고, 안식년이 있고, 안식년이 7번째 돌아오는 희년이라는 법도 있습니다. 하나님이 안식법을 얼마나 중요하게 여기셨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그러면 하나님은 언제 어디서 안식하실까요? 하나님을 예배하는 성전은 주님의 그의 백성들 가운데 편안히 거하시는 장소로 묘사되어 있습니다.(시132:8, 14)

그러면 사람에게 가장 중요한 날은 무슨 날입니까? 사람은 창조함을 받자마자 바로 그 다음날 안식일을 맞이하였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통하여 경배를 받으시기를 원하시고 사람을 지은 다음 날을 안식일로 주셨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경배할 때 진정한 안식을 누리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11-12절은 어쩌면 그가 성전을 떠나면서 고백하는 내용일 것입니다.



●마치면서 - 주일을 회복합시다.

여러분의 오늘 이 주일은 어떤 날입니까?

이 주일은 순례자가 고백했던 바로 그 날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에게 이 날은 다른 어떤 날보다 소중한 날이어야 합니다. 이 날은 다른 많은 날 중의 하나도 아니며 다 못한 세상일을 보충하는 날도 아닙니다. 이 날은 나 자신의 레저를 위한 날도 아니며 이 날은 세상의 큰일을 치르기 위한 날도 아닙니다.



천 날보다 나은 하루로서 고백되어지기를 원합닏. 이 하루를 가지고 천 날을 넉넉히 살아낼 수 있는 삶의 근원이 되기를 소원합니다.

이 날은 하나님을 위한 날이며 이 날은 바로 나 자신의 삶의 근원이 되는 날이어야 합니다.

- 아 멘 - (주후2006-07-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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