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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오전예배

부모와자식의 화책
  • 날짜 : 2006.05.14
  • 본문 : 말라기 4:5-6
  • 설교자 :
성경본문 및 요약
●들어가면서 - 영화 ‘맨발의 기봉이’

목사는 항상 예배를 생각하고, 그리고 예배 중에서도 목사가 해야 하는 설교를 생각합니다. 한 주일 설교가 마치면 곧 바로 다음 주일에 해야 할 설교에 대한 생각으로 머릿속은 가득합니다. 특별히 이번 주는 어버이주일이기 때문에 여기에 대한 생각은 항상 머리를 떠나지 않았습니다. “어떤 말씀을 주실까?”

그러던 중에, 수요일 성장반 성경공부에 ‘성령의 소욕과 육신의 소욕이 서로 싸운 결과’를 글로 써 오는 숙제를 냈는데, 한 집사님이 영화를 보고 감상문을 써 내었습니다. 그 제목은 ‘맨발의 기봉이’ 그리고 그날 수요기도회 말씀에 또 민강도사님이 목표 의식이란 내용을 적용하면서 ‘맨발의 기봉이’에 나온 내용을 소개하는 것입니다. 저는 주초에 이 영화가 KBS ‘인간극장’에 소개된 실화를 영화로 만든 것이라는 것을 인터넷을 통하여 알고 있었는데 계속해서 이 영화 이야기를 듣게 되는 것은 이유가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목요일 제자반 공부를 ‘맨발의 기봉이’를 관람하는 것으로 대신하였습니다. 어버이 주일을 맞으면서 이런 영화를 보는 것도 의미 있는 공부라고 생각했습니다. 영화는 저에게도 많은 감동을 주었습니다.

네살에 열병을 앓고 여덟살에 지능이 멈추어버린 엄기봉씨는 올해로 마흔세살이 되었습니다. 정신지체 1급 장애인인 그가 KBS <인간극장>의 주인공이 된 것은, 여든을 넘긴 노모를 지극정성으로 모시며 살기 때문입니다. 시골 마을에서 날품팔이를 해 번 돈을 들고, 어머니를 위한 음식을 들고 마을을 한걸음에 내달리는 기봉씨의 이야기는 <인간극장>으로 화제를 낳은 데 이어 책(<맨발의 기봉이>)으로도 나오고 이번엔 영화로 만들어졌습니다.

※인터넷에 나오는 이 영화의 예고편을 잠간 보겠습니다.

영화의 내용은 이렇습니다. 남해 근처 다랭이 마을에 사는 기봉(신현준)은 팔순의 노모(김수미)를 극진하게 모시는 효자입니다. 정신연령이 여덟살에 멈춘 그는 이제 마흔살로, 엄마에게 줄 음식을 들고 맨발로 마을을 뛰어다니곤 합니다. 엄마가 이가 약해져 음식을 잘 못 씹는다는 얘기를 들은 기봉은 우연히 틀니라는 것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지만 틀니를 하려면 돈이 많이 든다는 사실에 낙심을 합니다.

마을 이장 재선을 노리는 백 이장(임하룡)은 마을의 스타를 만들겠다는 일념으로, 기봉이를 하프 마라톤 대회에 내보내기로 합니다. 기봉의 코치를 자청한 그는 기봉에게 대회 우승을 하면 상금으로 엄마 틀니를 해드릴 수 있다고 설득하면서 기봉이를 훈련시킵니다.

이 백 이장에게는 아들(탁재훈)이 하나 있는데, 시골마을의 백수건달에 아버지의 속만 썩이는 골치덩이였습니다. 백이장의 아들은 자신이 바보인 기봉이보다 못하다는 말을 가장 듣기 싫어합니다. 그래서 기봉이를 더욱 괴롭힙니다. 그리고는 더욱 비틀어집니다.

그런데 기봉이가 훈련 도중에 쓰러지는 사건이 발생하고 이는 기봉이가 선천적으로 심장에 문제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백 이장은 기봉이에게 할 수 없이 마라톤을 그만 둘 것을 말하지만 이젠 기봉이가 말을 듣지 않습니다. 기봉이는 결국 마을 사람들의 염려와 배려 속에 마라톤에 참가하게 되고 반환점까지는 일등으로 달리지만 돌아오면서 쓰러지고 맙니다. 겨우 다시 일어나 출발점으로 돌아왔지만 완주한 것으로 만족해야 했습니다. 꿈자리가 이상해 기봉이가 염려가 된 어머니는 무작정 서울의 마라톤 행사장을 찾아 갑니다. 버스정류장에서 기봉이의 어머니를 발견한 백이장의 아들은 거기가 어디라고 가냐면 안 된다고 만류하지만 억지를 부리는 노인을 이길 수 없어 자신이 직접 기봉이의 어머니를 모시고 행사장까지 올라옵니다. 아들의 무사함을 확인한 어머니는 아들의 완주메달을 1등 메달인 줄 알고 기뻐하면서 영화는 끝납니다.



영화의 내용은 엄기봉 씨의 효심에 맞춰져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저는 또 다른 메시지를 보았습니다. 백이장의 아들입니다. 자신이 기봉이보다 못하다는 아버지의 질책과 자신이 좋아하는 여자마저 기봉 아저씨를 닮으라는 소리에 그는 더욱 빗나가게 됩니다.

그렇지만 마지막 장면에는 마라톤 완주를 마친 기봉이가 어머니를 만나는 것과 동시에 백이장이 자신의 아들이 기봉이의 어머니를 모시고 왔다고 자랑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기봉씨가 어머니에게 기쁨이 된 것 뿐만 아니라 백 이장도 아들과 화해가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구약 성경 성경 마지막 권, 마지막 장, 마지막 절의 메시지

오늘 성경 본문은 구약 성경의 마지막권의 마지막 장, 마지막 구절입니다. 구약 성경을 마치면서 많고 많은 내용 가운데 하나님은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의 회복을 말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물론 이것은 신약시대에 하나님과 이스라엘의 회복을 기대하게 하는 내용일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이것이 상징이나 비유를 말하기 전에 실제 아비와 아들의 관계의 회복이 그리스도인의 삶에서 이루어져야 함을 알아야 할 것입니다.

그래야 하나님과 우리와의 관계도 올바른 관계가 될 것입니다.

성경은 “보는 바 그 형제를 사랑치 아니하는 자가 보지 못하는 바 하나님을 사랑할 수 없느니라”(요일4:20)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1. 자녀들에게

1)부모를 공경합시다.(출20:12)

하나님은 인간이 지켜야할 기본 계명 10가지를 주시면서 인간에 대한 계명으로 제일 우선적으로 “네 부모를 공경하라”는 계명을 주셨습니다.

성도 여러분, 이 계명은 그 부모가 어떤 부모인가를 전제하지 않습니다. 그 부모가 나에게 무엇을 해 주었는지를 따져보고 공경하라고 하지 않습니다. 부모가 나에게 얼마나 잘 해주었는지, 공부를 얼마나 시켜주었는지, 나에게 재산을 얼마나 물려주었는지 이런 것을 따져가며, 계산해 보고 공경하라고 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은 그 분이 나를 나아주신 부모이기 때문에 공경하라고 하는 것입니다. 나의 부모님이 부모로서 나에게 해야 할 의무를 다하지 못했다 할지라도, 그것이 자녀로서 내가 부모에게 해야 하는 의무를 면제해 주지는 않는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자주 외국에 입양이 된 한국아이가 장성해서 자신을 낳아준 부모를 찾는 기사와 인터뷰를 접합니다. 대부분의 그들은 사실상 부모에 의해 버려진 아이들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자신을 낳아 준 부모를 찾습니다. 그들이 그들의 부모를 찾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왜 어린 핏덩이를 버렸느냐”고 따지기 위해서가 아닙니다. 그냥 자신의 뿌리를 알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그들은 행복하게 생각하고 찾는 것입니다. 사람을 가장 힘들게 하는 것은 자신의 존재 근원을 알 수 없을 때입니다. 우리의 뿌리가 있다는 것, 그것이 바로 나의 부모로 말미암았다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감사하며 부모를 공경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부모 공경의 계명을 사람의 첫 계명으로 주셨습니다. 첫 계명이란 말은 순서상 첫 번째를 의미하는 것보다 그 중요성에 있어 기본이 된다는 의미로 보는 것이 옳습니다. 즉 효(孝)는 모든 계명의 기본이라는 말입니다. 하나님이 효를 첫 계명으로 주신 것은 이 계명이 하나님을 믿는 것과 관련이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효는 인간에게 있어 인간이 인간됨을 드러내는 가장 중요한 계명입니다. 그러기에 부모를 공경하지 않는 자는 다른 어떤 것을 잘 한다 해도 인정할 수 없습니다.

우리의 구주이신 예수님은 이 사실을 너무나 잘 보여 주셨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셨습니다. 그분 역시 하나님이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생각할 때는 그분이 육신의 어머니 마리아를 염두에 둘 필요가 없는 것 같습니다. 사실은 마리아조차 예수님께 경배해야 하는 존재였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의 육신의 어머니를 마지막 그의 숨이 끊어지는 순간까지 생각했습니다. 그 고통스러운 십자가 위에서 하셨던 일곱 말씀 중에는 그의 어머니 마리아에 대한 말이 들어 있습니다. “여자여 보소서 아들이니이다.” 제자 요한에게는 “보라 네 어머니라”

예수님은 성부 하나님과의 관계가 너무나 중요한 관계였지만 그의 육신의 어머니에게 마지막으로 할 수 있는 최선의 효를 다하신 것입니다. 이것을 통해 우리는 부모에게 해야 하는 효가 우리의 신앙과 밀접한 관련이 있음을 알 수 있는 것입니다.



최근 보건복지부는 2038건의 노인 학대 사례를 발표했습니다. 노인을 학대한 이들을 보면 아들(50.8%) 며느리(19.7%) 딸(11.5%) 배우자(6.5%) 순으로 나타났습니다. 아들 낳았다고 좋아할 일이 아닌 것 같습니다.

효에 관한 고사성어 중에 ‘반포지효’(反哺之孝)란 말이 있습니다. 명나라 박물학자 이시진은 까마귀가 부화한 지 60일 동안은 어미가 새끼에게 먹이를 물어다 주지만 이후 새끼가 다 자라면 먹이 사냥에 힘이 부친 어미를 먹여 살린다며 까마귀를 자오(慈烏:인자한 까마귀) 또는 반포조(反哺鳥-되레 먹이는 새)라 했습니다.

성경 시편49:20에는 “존귀에 처하나 깨닫지 못하는 사람은 멸망하는 짐승 같도다”라고 했습니다. 짐승보다 못한 사람의 기준은 다름 아니라 ‘효도하느냐’에서부터입니다.



2) 부모님을 이해하고 용서합시다.

아버지학교에 가서 이 시대를 사는 아버지들과 마음을 터고 이야기를 나누다보면 그들의 부모로부터 받은 상처가 참으로 많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그들은 아직도 자신의 부모(특히 아버지)를 용서하지 못하고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부모가 완전하거나, 최소한 자신보다는 나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그분들 역시 우리처럼, 때로는 우리보다 더 허물 많고 연약한 존재일 수 있음을 받아들일 수 있어야 합니다. 어릴 때에는 부모의 그런 모습들이 실망스럽고 상처 될 수도 있겠지만, 이제는 부모도 한 사람의 불완전한 인간일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이해하고 오히려 긍휼히 여기는 성숙한 태도가 필요합니다.

사실, 그 분들은 우리보다 훨씬 더 어려운 시절을 사셨고, 더 많은 상처를 안고 사신 분들입니다. 우리가 혹 부모로부터 받은 상처보다 더 많은 상처를 우리의 할아버지 할머니로부터 받으며 사셨습니다. 우리가 그 분들을 이해하고 용서해야 합니다.

세상에서 가장 힘든 일은 용서하는 일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용서하는 일보다 더 힘든 일은 용서하지 않은 채 살아가는 일입니다. 한번 뿐인 당신의 삶을 슬픔, 분노, 냉소적이고 비판적인 태도, 적대감, 복수심, 자기연민 등과 같은 부정적인 감정 아래 묶어두지 마십시오.

그 쓴 뿌리를 뽑아내지 못하면, 여러분은 여러분에게 고통을 준 여러분의 부모와 같은 부모가 될 수 있고, 여러분이 받은 고통이 아무 잘못도 없는 여러분의 자녀들에게까지 대물림될 수도 있습니다. 용서는 감정이 아닌, 의지의 문제입니다. 용서하기로 결단하고, 주께서 당신을 용서하셨듯이 용서할 수 있게 해달라고 간구하십시오.



3)우리는 우리 부모의 자녀이기 이전에 하나님의 자녀라는 사실을 압시다.

부모는 하나님께 나가는 구체적인 방편일 뿐입니다. 하나님을 바로 알면 모든 것을 아는 것입니다. 사람은 자신의 존재의 근원을 알기를 원한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어릴 때 외국에 입양된 자녀들이 고국을 찾고 또 그들의 생부모를 찾는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사실 우리의 근원은 우리의 부모가 아닙니다. 우리의 부모는 그냥 하나의 통로인 것입니다. 우리의 부모는 단지 우리를 맡아 키운 청지기일 뿐입니다. 우리의 근원은 오직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야곱을 부르시면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사 43:1) 『야곱아 너를 창조하신 여호와께서 이제 말씀하시느니라 이스라엘아 너를 조성하신 자가 이제 말씀하시느니라 너는 두려워 말라 내가 너를 구속하였고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나니 너는 내 것이라』

천국에서 어떤 관계가 중요한 관계이겠습니까? 예수님은 누구를 가족이며 누구를 형제이며, 누구를 부모라고 하셨습니까?

“[32] 무리가 예수를 둘러 앉았다가 여짜오되 보소서 당신의 모친과 동생들과 누이들이 밖에서 찾나이다 [33] 대답하시되 누가 내 모친이며 동생들이냐 하시고 [34] 둘러 앉은 자들을 둘러 보시며 가라사대 내 모친과 내 동생들을 보라 [35] 누구든지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자는 내 형제요 자매요 모친이니라”(막3:32-35)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은 친히 당신의 영적인 부모가 되어주셔서, 당신이 육신의 부모로부터 기대했으나 받지 못한 모든 것들을 더욱 완벽하고 완전하게 채워주실 것입니다.

“내 부모는 나를 버렸으나 여호와는 나를 영접하시리이다”(시 27:10)

“여인이 어찌 그 젖먹는 자식을 잊겠으며 자기 태에서 난 아들을 긍휼히 여기지 않겠느냐 그들은 혹시 잊을지라도 나는 너를 잊지 아니할 것이라”(사49:15)



3. 어버이들에게 - 자녀를 품에서 떠나 보냅시다!

(골 3:21) 『아비들아 너희 자녀를 격노케 말지니 낙심할까 함이라』

어버이 여러분, 자녀들을 믿지 맙시다. 자녀에 대한 기대를 버립시다.

물론 자녀들을 믿어야 하고 자녀들에 대한 기대도 있어야 합니다. 그러나 자녀들이 자라서 효자, 효녀가 될 것이라고 믿지 말자는 것입니다. 그런 기대를 하지 말자는 것입니다.

제가 한창 자녀들에 대한 기대를 가지고 공부시키고 양육하시는 부모들에 대해, 다른 것을 예언 못해도 자신 있게 예언할 수 있는 것이 있습니다. 그건 다른 게 아니라 여러분이 앞으로 자식들에게 더 많이 실망하게 될 것이라는 사실입니다.

하나님은 우리 부모들에게 양육의 대가를 바라고 자식을 맡기지 않았습니다. “내가 너를 어떻게 키웠는데…” 생각하면 서운함과 함께 괘심해집니다. 그러면서 우리는 더욱 비참해질 뿐입니다. 그냥 자식들이 하나님과 사람 앞에서 제 구실 하면서 살면 그것으로 만족해야 합니다.

사랑은 내리 사랑입니다. 내가 사랑하고 희생한 것으로 만족합시다. 그것이 우리의 사명이었습니다. 이것에 대한 보상을 바라면 나는 처량해집니다. 자녀들이 가장 힘들어하는 것 중의 하나는 부모가 자기만 보고 사는 것입니다.



자식의 입장에서 보면 현실적으로 효도를 하고 싶어도 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저의 경우에 있어서도 충분히 그럴 것 같다는 생각을 자주 하게 됩니다. 사십이 되기 전까지는 그래도 나는 효자 축에 속할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왜 그렇게 생각했는지 나도 분명하지 않는데 굳이 그 이유를 생각해 보자면 그래도 부모님이 다른 자식들보다는 나를 더 좋아하신다는 생각 때문이었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그런 확신이 없어졌을 뿐 아니라 오히려 나 때문에도 자주 실망하실 것 같다는 생각을 할 때가 많이 있습니다. 부모님의 연세가 많아지시니까 보살피고 신경을 써 드려야 할 일도 점점 더 많아지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제가 목사랍시고 가장 무관심한 것 같습니다. 다른 형제들은 부모님 가까이에 있는데 나는 혼자 멀리 떨어져 있습니다. 명절 때도 교회를 돌아본다는 이유로 못 올라갈 때가 많습니다. 아버님 생신은 음력으로 지내니까 항상 고난주간에 걸립니다. 이번에 팔순을 지내셨는데 저 때문에 3주를 연기해서 토요일에 지냈습니다. 토요일이니까 저는 또 얼마나 부담이 됩니까? 그러나 부모님의 입장은 나를 항상 이해하시고 교회를 우선해야 한다고 말씀하시지만 섭섭함이 있으실 것이라 생각이 됩니다.



●맺으면서 - 부모와 자식의 화해

성도 여러분, 시작하면서 맨발의 기봉이 영화이야기를 했습니다. 영화는 사실 극적인 것도 별로 없습니다. 그래도 인기입니다. 그것은 그 영화가 사람의 가장 기본적인 것을 건드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엄기봉씨 모자와 백 이장 부자의 이야기는 오늘날 우리가 회복해야 할 인간의 가장 기본적인 도리가 무엇인지를 깨우쳐주고 있는 것입니다.   

기봉씨의 모친은 한글도 깨우치지 못한 무식한 어머니입니다. 다른 사람처럼 자식을 위해 해 준 것도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믿는 기봉 씨는 어머니라는 존재를 하나님을 섬기고 대하듯 살고 있는 것입니다. 그와 같은 마음으로 부모를 공경하면 섬깁시다.

자식에게 효를 가르치되 기대하지 맙시다.

오늘 말씀에서 하나님은 다가올 시대에는 아비의 마음을 아들에게로, 아들의 마음을 아비에게로 돌이키게 하겠다고 하셨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저주로 그 땅을 치겠다고 하였습니다. 이제 그 시대는 예수님이 오심으로 시작되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이 시대에 부모와 온전한 화해를 이루며 고백합시다.

그리하여 이 시대에도 기봉씨의 모자처럼, 백 이장의 부자처럼 회복된 부모와 자식의 관계로 사시는 축복이 성도들에게 있기를 축원합니다. - 아 멘 - (주후 2006-05-14 / 어버이주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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