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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오전예배

주님과 함께 죽읍시다
  • 날짜 : 2006. 04. 9
  • 본문 : 요한복음 11:11-16
  • 설교자 :
성경본문 및 요약
●종려주일~부활주일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은 종려주일입니다. 종려주일이란 말은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기 위해 예루살렘 성으로 어린 나귀를 타고 들어오실 때에 백성들이 길거리에 나와 종려나무가지를 흔들며 “호산나 호산나”하고 외친 것에서 이름이 붙여졌습니다. 오늘 이 날부터 시작해서 다음 주일인 부활절까지는 일 년 중 기독교인들에게는 가장 중요한 한 주간입니다. 바로 이 기간에 우리가 믿고 고백하는 내용이 역사적으로 다 이루어졌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믿는 예수님은 이번 주간에 우리의 죄를 대신 지시기 위한 고난의 구체적인 길을 걷게 되며, 결국 금요일에는 십자가에 못 박혀 죽게 됩니다. 그리고 삼 일 후에 부활하십니다. 이번 주간에 예수님의 행적을 특별주보에 날짜별로 구체적으로 기록해 놓았습니다. 여러분이 요일마다 해당 구절을 읽고 구체적으로 묵상하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더욱 큰 유익이 있을 것입니다.



●죽어야 산다!

이 시간에 우리가 받을 말씀의 제목은 ‘주와 함께 죽읍시다.’입니다. 이 말씀을 제목으로 잡은 것은 예수님의 제자 중, 도마라는 제자가 했던 말 때문입니다. 16절 말씀에는 도마가 다른 제자들에게 “우리도 주와 함께 죽으러 가자”라고 말합니다.

도마가 이런 말을 하게 된 경위는 이렇습니다. 베다니라는 동네에 예수님과 아주 가까이 지내는 나사로의 가정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나사로의 집에서 사람을 보내어 예수님께 기별하기를 나사로가 병이 들었는데 그 상태가 심각하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의 병도 불쌍히 여기고 고쳐주신 예수님이기에 제자들은 예수님이 당장 베다니로 갈 줄 알았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 기별을 받고 이틀이나 더 머물고 난 뒤에 갑자기 베다니가 있는 유대로 가겠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바로 가지 않았을 때 제자들은 의아해 하면서도 내심으로 기뻤습니다. 왜냐하면 예수님과 제자들 일행은 유대에서 유대인들이 돌로 치려한 것을 피해 지금 여기로 왔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갑자기 또 그리로 가시겠다고 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유대로 다시 가자”

제자들이 놀라며 “유대인들이 조금 전만 해도 돌로 치려하였는데 또 그리고 가십니까?”라고 말합니다.

예수님이 말씀합니다. “우리 친구 나사로가 잠들었다 그러나 내가 깨우러 간다.”

제자들이 “주여 잠들었으면 나을 것입니다.”라고 말합니다.

예수님은 다시 “나사로가 죽었느니라”고 말합니다.

그때 도마가 다른 제자들에게 “우리도 주와 함께 죽으러 가자”라고 말한 것입니다.

도마는 참으로 엄청난 말을 하였습니다. 보통 각오를 가지고 이렇게 말할 수 없는 말이기 때문입니다. 베드로가 눅22:33에 “주님, 나는 감옥에도, 죽는 자리에도, 주님과 함께 갈 각오가 되어 있습니다.”라고 말했는데 도마의 이 말은 베드로가 말한 것보다 훨씬 더 비장함이 느껴지는 말입니다. 도마는 ‘죽는 자리에까지 갈 각오 정도’가 아니라 아예 ‘죽으러 가자’고 말한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받으려는 말씀은 도마가 한 말의 뜻이 무엇이냐에 있지 않습니다. 도마는 이 말을 깊이 생각하지 않고 한 것일 수 있습니다. 정황을 볼 때, 그리고 그의 성격을 볼 때 이 말의 뜻은 우리가 생각하듯 그렇게 비장한 각오를 가지고 한 것이 아닐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민수기에서 하나님은 거짓 선지자 발람을 꾸짖으실 때 나귀의 입도 이용하셨습니다.

고난 주간을 맞이하는 성도들이 도마의 이 말을 선입견 없이 받을 때 이 말은 아주 큰 호소력을 가지고 도전하고 있는 말이 틀림없습니다.



우리는 이 주간을 지나면 부활절을 맞이하게 될 것입니다. 주님이 죽지 않았다면 부활하는 일도 없었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도들에게서 죽는 것은 단지 죽는 것 자체가 목적이 아닙니다. 그것은 살기 위함입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도마처럼 용감하게 말할 필요가 있습니다. “주와 함께 죽으러 가자!”

저의 서재에 ‘죽도록 하면 사는 길이 열린다.’라는 책이 있습니다. 이 책은 계산중앙감리교회에서 30년 목회를 하신 최세웅 목사님이란 분이 자신의 목회를 정리하면서 쓴 책입니다. 이 책의 부제는 ‘홍해를 가르고 나가는 목회’라고 붙여져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홍해는 사실 죽는 길입니다. 그것이 애굽의 바로 군사들에게서 증명이 되지 않았습니까?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들은 홍해에서 살았습니다. 사실 그것은 그냥 산 것이 아니라 부활한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홍해를 건너면서 애굽에서 종살이 하던 자신은 죽고 하나님의 백성으로 다시 산 것입니다. 어떻게 살았습니까? 죽기를 각오하고 건넜기 때문입니다. 언제 닫힐지 모르는 바닷물 속에 들어가는 것은 죽기를 각오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죽기를 각오할 때 이스라엘은 새로운 모습으로 살아났습니다.

여기에서 우리 성도들의 신앙생활의 법칙이 나옵니다. “그래, 살기 위해서라도 죽자!”

그래서 바울은 “내게 사는 것이 그리스도니 죽는 것도 유익함이라”(빌1:21)고 말했습니다.



●‘주와 함께’ 죽어야 한다.

그러나 죽는 것도 제대로 죽어야 합니다. 아무 때나 무작정 죽는다고 다 사는 게 아닙니다. 우리의 죽음이 다시 사는 죽음이 되려고 한다면 그 죽음에는 동반자가 있어야 합니다. 바로 우리 예수님입니다. 도마는 분명 “주와 함께 죽으러 가자”고 말했습니다. 나 혼자 죽으면 안 됩니다. 죽을 땐 주와 함께 죽어야 합니다. 그래야 다시 살 수 있습니다.



어떻게 주와 함께 죽을 수 있습니까? 우리가 예수님의 십자가를 믿을 때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가 나를 위한 십자가라는 사실을 믿을 때 그 자리에는 우리 주님과 함께 내가 있습니다. 

롬6:3에 “무릇 그리스도 예수와 합하여 세례를 받은 우리는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 받을 줄을 알지 못하느뇨”

여기서 세례를 받는 것은 예수를 믿을 때 성령으로 세례를 받는 것을 말합니다. 우리가 예수믿을 때 예수님의 죽으심, 십자가는 바로 나의 죽음, 나의 십자가가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갈 2:20)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라고 말했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가 나의 십자가가 된다는 의미는 무엇입니까?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당한 모든 것은 내가 당해야 하는 것인데 예수님이 대신 해 주셨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십자가는 죄인들이 받게 되는 고통의 생생한 현장입니다. 하나님은 그 당시 이 세상에 있는 형벌 가운데 가장 치욕적이고 견디기 힘든 형벌을 통하여 우리의 죄가 얼마나 큰 값을 치러야 하는지를 보여주셨습니다. 십자가가 얼마나 치욕적이고 감당하기 힘든 것인지는 당시의 로마 시민권이 있는 자들에게는 어떤 죄를 지었던지 이 형을 면하게 해 주었다는 사실만 봐도 알 수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십자가에 있는 그의 아들에게는 전혀 긍휼을 베풀지 않았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무자비하게 그냥 내버려 두셨습니다. 주위의 많은 사람이 조롱하는 것을 그대로 두셨습니다. 모욕하고 때리고 수치를 드러낸 것을 그대로 두셨습니다.

하나님은 왜 그렇게 해야만 했습니까? 그것은 바로 나의 죄가 얼마나 무서운 것인가를 말해 주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내가 죄로 인해 당해야 하는 그 모든 값을 십자가에서 다 치르시고 이제 우리는 예수를 믿음으로 그 값을 그저 받게 된 것입니다. 왜? 예수님만 죽은 것이 아니고 내가 함께 죽었기 때문입니다.

이제부터 우리는 예수님의 십자가를 바라볼 때 예수님만 보지 말고 그 자리에 있는 나를 바라 보아야합니다. 그래야 예수님이 기뻐하십니다. 그것 때문에 죽으셨기 때문입니다.



●죽으러 가자!

성도 여러분, 도마는 이제 예수님과 함께 죽으러 가자고 말했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이 이미 역사적으로 완성되고 성취된 시대를 사는 우리에게 이 말이 의미가 있을까요?

그러나 바울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고전 15:31) 『형제들아 내가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서 가진 바 너희에게 대한 나의 자랑을 두고 단언하노니 나는 날마다 죽노라』

바울은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이 끝난 후에도 “날마다 죽노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그것이 자랑이라고 말합니다.

왜 또 죽어야 합니까? 이미 예수 십자가에 나도 죽었다고 말하면서 왜 또 죽어야 합니까?

이것은 거듭나지 못한 나를 죽이는 것이 아니라 이미 죽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살아있는 것처럼 사는 나의 모습을 죽이는 것입니다. 영적으로 거듭났음에도 육신적인 것으로만 살려고 하는 나의 행실을 죽이는 것입니다.

(롬8:12-13) 『그러므로 형제들아 우리가 빚진 자로되 육신에게 져서 육신대로 살 것이 아니니라 너희가 육신대로 살면 반드시 죽을 것이로되 영으로써 몸의 행실을 죽이면 살리니』





못 박혔다? - 그런데 우리는 죽여야 하나? 이미 죽었는데? 이것은 죽은 자가 마땅히 죽은 자로서의 특징적인 삶을 살 것을 또한 요구한다.

두렵고 떨림으로 너희 구원을 이루라(빌2:12)

영생을 취하라(딤전6:12)



그러면 우리는 구체적으로 어떤 것에서 죽어야 합니까?



1. 죄에 대하여 죽읍시다.

(롬 6:11) 『이와 같이 너희도 너희 자신을 죄에 대하여는 죽은 자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을 대하여는 산 자로 여길지어다』

죄에 대하여 죽는다는 것은 죄에 대하여 반응을 보이지 않는 것입니다. 왜요? 죽었기 때문입니다.

중국 귀신 영화에서 귀신(강시)들이 날뛰다가도 이마에 대해 부적을 하나씩 붙이니 꼼짝을 못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우리가 지을 수 있는 모든 연약한 죄에다가 모두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붙입시다. 그 의미는 ‘죽었음’입니다. 더 이상 움직일 수 없음. 그 어떤 것에도 반응하지 않음.



2. 나 자신의 육신적인 생각에 대하여 죽어야 합니다.

(갈 5:24) 『그리스도 예수의 사람들은 육체와 함께 그 정과 욕심을 십자가에 못 박았느니라』

“『[1] 그러므로 너희가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리심을 받았으면 위엣 것을 찾으라 거기는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느니라 [2] 위엣 것을 생각하고 땅엣 것을 생각지 말라 [3] 이는 너희가 죽었고 너희 생명이 그리스도와 함께 하나님 안에 감취었음이니라”(골3:1-3)

(요일 2:16) 『이는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니 다 아버지께로 좇아 온 것이 아니요 세상으로 좇아 온 것이라』



3. 믿음으로 살기로 할 때 다가오는 두려움에 대하여 죽읍시다.

딤후1:7에는 두려워하는 마음은 하나님이 주신 마음이 아니라고 하였습니다.

도마와 제자들은 유대에서 돌로 치려하는데도 들어가려 하였습니다. 도마는 아예 죽으러 가자고 하였습니다. 믿음으로 살기로 할 때 우리를 위협하는 것들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모든 것들을 이겨야 합니다. 두려움을 죽여 버리고 믿음으로 행할 때에 우리는 더 큰 승리를 맛볼 수 있을 것입니다.



●맺으면서 - 죽는 것이 자랑, 잘 죽어야 한다.

신학교 동기생들이 모여 수련회를 계획할 때였습니다. 이번 수련회에 주제를 무엇으로 하면 좋겠느냐고 의논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때 제가 오늘 말씀의 제목인 “주와 함께 죽으러 가자”로 하자고 제안했습니다. 목회자로서 이와 같은 정신이 필요하다는 의미에서였습니다. 이 주제로 수련회를 했을까요? 하지 못했습니다. 주제가 너무 무겁다는 것입니다. 저는 그 의미를 주제가 너무 부담스럽다는 뜻으로 받았습니다.

그렇습니다. 모두 다 살고 싶지 죽기를 좋아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죽음은 살기 위한 죽음인 것을 다시 한번 새겨야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도 주와 함께 죽으러 가자”라고 말한 도마는 결국 주님과 함께 죽었습니다. 의심이 많아 예수님이 부활하셨다는 사실을 전해 듣고서도 믿지 않았던 도마입니다. 그러나 그가 가장 먼 곳, 인도까지 가서 복음을 전하다가 순교했습니다.



이제 고난 주간입니다. 주님과 함께 죽는다는 것의 의미가 무엇인지를 다시 한번 더 새기면서 주와 함께 못 박히고 주와 함께 다시 사는, 깊은 영적 진리를 깨닫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 아 멘 -(주후 2006-04-09/ 종려주일, 고난주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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