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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오전예배

왜 전도해야 합니까?
  • 날짜 : 2006.03.26
  • 본문 : 로마서 1:16(구약 p239)
  • 설교자 :
성경본문 및 요약
제목> 왜 전도해야 합니까?

성경> 롬1:16

찬송> 57, 276, 270



●들어가면서 - 제일 귀중한 것?

성도 여러분, 여러분 집에서 가장 소중하게 여기는 물건은 무엇입니까? 제가 그게 무엇인지 알고 있습니다. 어떻게 아느냐고요? 너무 쉽기 때문입니다. 답을 말해볼까요? 그것은 값이 제일 비싼 것입니다. 물론 값으로 매길 수 없는 더 소중한 정신적인 가치가 있겠습니다만 여러분 집에서 값이 제일 비싼 것을 잃어버렸다면 금방 잊기는 쉽지 않을 것입니다.

어떤 것의 소중함은 그 값을 얼마냐 치렀느냐에 달려있습니다.



그러면 하나님께 가장 소중한 것은 무엇이겠습니까? 사람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그 답 역시 하나님이 가장 큰 값을 지불하셨기 때문입니다. 어떤 값을 지불 하셨습니까? 값으로 매길 수 없는 자신의 독생자(His one and only Son)를 주셨습니다.

그러면 이제 또 묻습니다. “하나님이 가장 가치있게 여기는 일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전도입니다. 전도는 자신의 아들을 내어 준 바로 사람을 살리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또 묻습니다. “하나님은 어떤 자를 가장 기뻐하시겠습니까?” “하나님은 어떤 자를 축복해 주시겠습니까?” ‘전도하는 자’입니다.



오늘 설교말씀 제목의 답이 이미 나왔습니다. ‘왜 전도해야 하는가?’에 대한 답은 이미 다 나온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는 왜 삽니까? 사람을 살리기 위해서입니다. 사람을 살리는 하나님의 방법이 무엇입니까? 바로 ‘전도’입니다. 

“하나님의 지혜에 있어서는 이 세상이 자기 지혜로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고로 하나님께서 전도의 미련한 것으로 믿는 자들을 구원하시기를 기뻐하셨도다”(고전1:21)

그래서 ‘사람을 살리기 위해 삽니다’라는 말에 그 살리는 방법을 가지고 바꾸어 말한 것이 ‘전도하기 위해 삽니다’입니다. 그렇다면 사람이 왜 사느냐에 대한 질문과 함께 우리가 해야 할 질문은 ‘왜 전도해야 합니까?’입니다.

그럼 좀 더 구체적으로 그 답을 해 봅시다.



1. 예수님을 사랑한다는 표현으로 전도를 해야 합니다.

예수님은 부활 후에 마지막으로 베드로에게 물으셨습니다.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고 세 번 물으셨습니다. 그 때 베드로는 “내가 주를 사랑하는 줄 주께서 아시나이다.”라고 대답하였습니다. 그때 주님은 “내 양을 먹이라, 내 양을 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말씀은 예수님이 베드로에게 남긴 최후의 말씀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이 말씀은 베드로의 마음 깊숙이 박혔을 것입니다. 그런데 베드로는 복음을 전하다가 순교하였습니다. 결국 예수님의 ‘내 양을 치라’ ‘내 양을 먹이라’는 말씀을 베드로는 전도하라는 말씀으로 이해한 것입니다.(물론 이 말에는 전도, 양육, 돌봄이 다 들어있습니다.)

예수님은 베드로에게 네가 나를 사랑한다면 전도하고 양육하고 돌보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주님을 사랑한다면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전도는 내가 주님을 사랑한다는 가장 뜨거운 표현입니다. 예수님은 이 땅에 오신 목적을 스스로 분명하게 밝히셨습니다.

(막 1:38) “이르시되 우리가 다른 가까운 마을들로 가자 거기서도 전도하리니 내가 이를 위하여 왔노라”

예수님의 이 사명은 마지막 십자가에서까지 분명하게 나타났습니다. 예수님은 그 고통의 십자가에서 조차 한편 강도를 전도하여서 그를 천국으로 이끄셨습니다.



그러나 성도 여러분, 그 주님의 사명이 주님만으로 끝난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은 죽은 후 사흘 만에 부활하셔서 이 사명을 제자들에게 부여하였습니다. 이는 그들을 통해 주님이 이 땅에 오신 목적을 완성시킬 계획이셨던 것입니다.

 “또 가라사대 너희는 온 천하에 다니며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 (막 16:15)

그러나 예수님의 복음 사역은 제자들에게서 완성되지 않았습니다. 그 복음전파, 즉 전도의 사역은 그 제자들의 뒤를 잇는 모든 성도들의 예수님께 대한 사랑의 고백 차원에서 계속 이어져야만 하는 것이었습니다.

(요 14:15) 『너희가 나를 사랑하면 나의 계명을 지키리라』



일본에서 선교 사역하시는 우리 교단 선교사 가운데 나달식 선교사님이 계십니다. 이 선교사님은 대구 근처에서 목회를 성공적으로 하셨던 분입니다. 그 분이 시무하시는 교회에서 여름성경학교 때였습니다. 특별활동으로 비전교실이란 것이 있었습니다. 유초등부 주일학생들이 장래에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지 자신의 비전을 따라 그 분야에서 일하시는 분들을 모시고 특강을 듣는 시간이었습니다. 의사가 되고 싶은 사람은 의사 집사님을 초청해서 첫 번째 교실에 모였고, 교사가 되고 싶은 사람은 교장선생님 장로님을 모시고 둘째 교실에 모였습니다. 이렇게 분야별로 각각 장소를 정하고 모였는데 목사가 되고 싶은 사람은 목사님의 서재에 모이기로 했습니다. 그런데 나 목사님이 이 교실 저 교실은 아이들이 제법 있는데 슬쩍 서재를 바라보니 아무도 안 보이는 것입니다. 그래서 한편 섭섭한 마음이 들었다고 합니다. 그 교회에서 힘들게 목회를 했으니 교인들 집에서는 자식들에게 아무도 목사되라고 하는 사람이 없는가보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이 교실 저 교실을 둘러보고 다시 서재에 갔더니 서재 탁자에 앉아있는 어떤 한 녀석의 뒤통수가 보이더랍니다. 너무 반가워서 들어가 그 녀석 머리에 기도를 해 주려고 보았더니 그 녀석이 자기 아들이더랍니다. 목사님이 물었습니다. “너 왜 여기 왔니?” “아빠, 나 목사님 되려구” 이 녀석이 아무래도 이곳저곳 돌아다니다가 자기 아버지에게는 아무도 안 가니까 자기라도 가야겠다고 생각하고 온 것 같아서 물었습니다. “왜 목사님이 되려는데” “아빠가 하는 일은 항상 좋은 일이니까!” 그런데 그 순간 목사님 눈에서 눈물이 벌컥 쏟아졌습니다. 아직 철부지 아이가 한 말이지만 아버지 하는 일이 귀중한 일인 줄 알고 그 일을 하겠다는 아들을 보고서 그렇게 고마울 수가 없었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우리가 다음과 같이 고백할 수 있다면 이것만큼 확실한 주님께 대한 사랑 고백은 또 다시 없을 것입니다.

“예수님, 주님이 하신 일은 최고로 가치 있는 일이었습니다. 이제 내가 이어 그 일을 계속하겠습니다.”

성도 여러분, 여러분의 직업이 무엇입니까? 지금 여러분이 직업이라고 생각하는 그것은 여러분의 부업이라는 사실을 아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의 주업, 본업은 전도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전도를 더욱 효과적으로 하기 위해 부업을 하고 있는 분입니다. 만약 여러분이 하고 있는 사업이 여러분이 잘 먹고 잘 사는 일에 국한 되어 있다면 그것은 정말 은혜를 헛되게 하는 일입니다. 우리는 살아도 주님의 복음을 위해 살아야 하고 죽어도 그것을 위해 죽어야 합니다. 그렇게 살 때 우리의 삶은 더욱 힘이 있고 하나님의 특별한 도우심 속에 살게 될 것입니다.



2. 예수님의 명령이기 때문에 전도해야 합니다.

명령은 이해를 요구하지 않고 순종만을 요구합니다. 이해되는 명령이면 더욱 좋겠으나 이해가 되지 않더라도 명령은 순종해야하는 것입니다. 지난주일의 말씀에서 신앙의 세계는 알아서 믿는 것이 아니라 믿고 알게 된다고 말씀드렸습니다. 그래서 주님의 명령은 그냥 믿고 순종해야 합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역사는 우리를 통하여 이루어집니다.

갈릴리 가나 혼인잔치에 포도주가 떨어졌습니다. 유대인의 혼인잔치에 포도주가 떨어진 것은 한 마디로 잔치를 완전히 망치게 되는 것입니다. 딱한 상황을 알게 된 예수님의 어머니 마리아가 예수님께 “포도주가 떨어졌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 자신과는 상관이 없는 일이라며 관여하려 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마리아는 하인들에게 예수님이 무슨 말씀을 하시든지 그대로 행하라고 말했습니다. 예수님은 하인들에게 항아리에 물을 채우라고 말씀하시고는 그것을 떠서 연회장에게 갖다 주어라고 말씀하십니다. 하인들이 예수님의 말만 믿고 물을 떠서 연회장에게 갖다 주었다가 어떤 곤욕을 치를지 모릅니다. 그러나 그들은 예수님의 명령에 순종하였습니다. 전혀 말도 안 되는 예수님의 명령에 순종한 것입니다. 그러나 이 갈릴리 가나 혼인 잔치에서 가장 감격스런 순간의 현장을 경험한 사람은 다른 사람이 아니라 그 명령에 순종한 하인들이었습니다.



예수님은 “너희는 온 천하에 다니면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막16:15)고 명령하셨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전도하지 않을 많은 핑계거리를 가집니다.



1)전도하는 것을 부끄럽게 여깁니다. 오늘 말씀에서 바울은 말합니다. “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 디모데는 딤후1:8에 바울과 함께 복음을 전하다가 바울이 감옥에 갇히자 그 사실을 부끄러워했습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가 왜 전도하는 것을 부끄럽게 여깁니까? 내가 믿는 것이 그렇게 가치 없는 것입니까? 그렇다면 우리는 왜 이렇게 이 자리에 나와 있는 것입니까? 우리는 왜 그렇게 봉사합니까? 우리는 왜 그렇게 헌신합니까? 이 모든 것이 진실함에도 불구하고 유독 우리는 전도하는 일은 부끄럽게 생각합니다. 전도하는 것을 부끄러워하는 것은 사단의 역사입니다.

주님은 우리가 사람들 앞에서 주님을 시인하면 우리 주님도 우리를 시인할 것이라고 하셨고 주님을 부인하면 마지막 때에 나도 너를 모르겠다고 말한다고 했습니다.(마10:33)

자식 자랑, 부모 자랑, 남편 자랑, 아내 자랑, 학교 자랑하지 않습니까?

내 구주 예수님을 자랑합시다.

2)사람들의 마음속에는, 특히 장로교인들 중에는 은연중에 칼빈의 예정교리를 전도를 하지 않아도 될 핑계로 간직합니다. 믿기로 예정된 자들은 결국 믿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 말은 틀린 말은 아니지만 적용이 아주 잘못 되었습니다. 물론 예정된 자들은 결국 구원을 받게 됩니다.  그러나 그 구원이 어떻게 이루어지느냐? 그것은 결국 전도를 통하여 그 예정된 사람이 구원을 받는다는 사실입니다. 예정은 하나님이 하시는 것이지 내가 하지 않습니다. 나는 어떤 사람이 하나님의 예정 속에 택함을 받았는지 알 수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딤전2:4의 말씀대로 하나님께서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아 진리에 이르기를 원하신다는 것을 알고 모든 사람에게 전도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나의 천도를 통해 믿기로 작정된 자들을 부르시는 것입니다.

내가 전도를 하지 않더라도 하나님께서 한 번 예정하신 자는 어떻게 하시든 구원을 하시고야 만다는 것이 확실하다면, 성경에서 반드시 삭제되어져야 할 성구가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에스겔 33장 1-9절까지의 말씀입니다.

“[1] 여호와의 말씀이 내게 임하여 가라사대 [2] 인자야 너는 네 민족에게 고하여 이르라…네가 그 악인에게 말로 경고하여 그 길에서 떠나게 아니하면 그 악인은 자기 죄악 중에서 죽으려니와 내가 그 피를 네 손에서 찾으리라 [9] 그러나 너는 악인에게 경고하여 돌이켜 그 길에서 떠나라고 하되 그가 돌이켜 그 길에서 떠나지 아니하면 그는 자기 죄악 중에서 죽으려니와 너는 네 생명을 보전하리라”

하나님은 전도의 방편을 통하여 택하신 하나님의 백성을 구원해 나가시는 것입니다.

(고전 1:21) 『하나님의 지혜에 있어서는 이 세상이 자기 지혜로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고로 하나님께서 전도의 미련한 것으로 믿는 자들을 구원하시기를 기뻐하셨도다』



3)또 어떤 사람은 전도의 은사를 받지 못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성경 그 어느 곳에서도 전도를 은사로 말하지 않습니다. 만약 전도가 은사라며 막16:15절 말씀은 다음과 같이 기록이 되어야 옳을 것입니다. “너희는 먼저 전도의 은사를 받아 온 천하에 다니며…”

물론, 오늘날 교회 안에는 전도의 능력이 있는 것처럼 보이는 성도들이 분명 있습니다. 그러나 그들을 전도의 헌신자로 봐야지 특별한 전도의 은사를 받은 사람으로 봐서는 안 됩니다. 그들은 전도의 은사를 받아 전도하는 것이 아니라 전도에 헌신하기 위해 몸부림을 치다가 성령 충만을 받아 전도에 헌신하게 된 것입니다. 이들이 전도의 도사가 아닙니다. 이들이 전도할 때에 여전히 핍박이 있고, 힘들기도 하고 합니다. 그러나 이제 분명한 것은 그런 것이 전도의 사명을 무너뜨리게 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제가 본 전도 간증집의 어떤 전도왕은 교회에서 20년간 중직이란 중직은 모두 맡아 본 분이었습니다. 그러나 20년간 단 한 명도 전도하지 못했습니다. 하루는 그 교회에 새로운 집사 한 분이 출석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그 집사는 매주 많은 영혼들을 전도해서 교회로 인도해 오는 것이었습니다. 20년간 단 한명의 영혼도 교회로 인도해 보지 못한 그분은 그러한 광경을 매주 성가대석에서 바라만 보는 자신이 비참하게 여겨졌습니다. 마침내 그는 견디다 못해 3일 동안  철야 기도를 시작했습니다. 그리고는 그 교회에 새로 나온, 전도를 잘하는 집사와 한 팀을 이루어 쫓아다니며 전도를 배우기 시작했습니다. 그로부터 6개월 후, 20년간 단 한 명의 영혼도 전도하지 못하던 그 분이 그 교회에서 상반기 동안 200여명이 넘는 수를 전도한 전도 왕이 되어 지금은 미국까지 간증을 다니고 있습니다.



3. 상급을 받기 위해 전도해야 합니다.(단12:3)

역대하15:7에는 우리의 행위에는 분명한 상급이 있다고 말씀합니다.

그런데 오늘날 교회에서 봉사는 열심히 하면서도 하나님이 주시는 상급을 기대하지 않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런 사람은 믿음으로 봉사를 하는 것이 아니라 그냥 열심이 있기에 봉사를 하거나 아니면 그 상을 즉시 교회 안에서 받으려 하는 사람일 것입니다. 바리새인처럼 말입니다. 그들이 바라는 상은 하늘의 상이 아니라 사람들의 인정입니다.

(요 5:44) 『너희가 서로 영광을 취하고 유일하신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영광은 구하지 아니하니 어찌 나를 믿을 수 있느냐』



일꾼이 삯을 받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주시는 상을 기대하며 맡은 일에 대하여 충성하는 자들을 하나님께서는 분명 기뻐하십니다. 하나님은 상을 주시기를 즐기는 분입니다.

(단 12:3) 『지혜 있는 자는 궁창의 빛과 같이 빛날 것이요 많은 사람을 옳은 데로 돌아오게 한 자는 별과 같이 영원토록 비취리라』

별은 누구나 볼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전도를 하면 성도들을 유명하게 만들어 주시겠다고 약속을 하신 것입니다. 사람들은 돈을 많이 벌어야만 유명하게 될 줄 알고 살아갑니다. 그러나 그것은 세상적인 가치관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의 가치관은 달라야 합니다. 부자가 예수 믿기는 대단히 어려운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를 믿는 사람들이 부자가 되는 것은 참으로 비일비재한 일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자신이 전도를 하게 되면 현재 자신의 하는 일에 장애를 받을 줄 알고 있습니다. 즉, 전도를 함으로 말미암아 어떠한 불이익을 당하게 될지도 모른다는 막연한 두려움을 가지는 것입니다. 그러나 전도는 그러한 것이 아닙니다. 전도는 사람을 피곤하게 만드는 것이 아닙니다. 전도를 하면 오히려 매사에 의욕이 솟고 기쁨이 넘치게 됩니다. 그리고 실질적으로 전도를 하면 하나님께서는 전도를 하는 자들의 사업까지 책임을 지심과 동시에 유명하게까지 만들어 주십니다.

전도는 나를 살리고, 나의 가정을 살리고, 교회를 살리는 일입니다.



●맺으면서

하나님은 이번에 우리 교회에 전도부흥성회를 허락해 주셨습니다.

이번 집회는 하나님이 전도하는 성도들과 전도하는 교회에 특별한 복을 주시기 위해 계획한 것이라 믿습니다. 이번 집회를 통하여 전도자의 축복된 삶으로 들어가시는 여러분이 되시기 바랍니다.

그러나 저는 이번 집회가 단지 전도를 위한 집회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전도란 부담만으로 되는 것은 아닙니다. 전도는 우리의 영혼이 살아야 가능한 것입니다. 성령충만해야 합니다.

그래서 이번 집회도 은혜를 많이 받으면 좋겠습니다. 이번 집회를 전도 훈련하는 시간이라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그건 둘째이고 먼저 은혜 받는 시간이며 성령충만 받는 시간이라고 생각하시기 바랍니다. 나를 향한, 우리 교회를 향한 하나님의 소원을 아는 시간이라고 생각하시 바랍니다. 오늘 밤 집회는 그냥 간증집회입니다.



성도 여러분, 내가 예수 믿은 것, 우리 민족이 복음을 받은 것, 그것은 보통 일이 아닙니다.

선교사님이 태국항공기에 탑승했습니다. 승무원들에게 전도하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스튜어디스에게 물었습니다. “Do you know Jesus Christ(당신은 예수 그리스도를 아십니까)?”

그러자 스튜어디스는 잠깐만 기다리라고 하더니 어디론가 가버렸습니다. 한참을 기다려도 오질 않았습니다. 그래서 급한 일이 있나 보다 생각했습니다. 한참 후에 그 스튜어디스가 오더니 말했습니다. “승객중 그런 분은 탑승하지 않았습니다.”



우리가 예수를 알게 된 것은 기적입니다. 생각할수록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여러분은 이미 그 누구를 통해서든지 이 복음의, 전도의 빚을 진 자들입니다.

어떤 사람이 길을 잘못 들어 낭떠러지를 만나 구사일생으로 살아났습니다. 그러면 이제 그 길을 지켜 섰다가 그 길로 가는 사람에게 죽을 길이라고 말해주어야 도리입니다. 그렇게 하지 못한다면 최소한 이 길은 위험한 길이라고 표시판 하나는 세워놓고 가야합니다.



성도 여러분, 나는 전도에 어떤 역할을 감당하고 있습니까? 나는 전도와 어떤 관련된 삶을 살고 있습니까? 성도 여러분, 전도하며 삽시다. - 아 멘 - (주후 2006-03-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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