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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오전예배

"다윗 대 골리앗"
  • 날짜 : 2006.03_12
  • 본문 : 사무엘상 17장:31~50 (구약 436p)
  • 설교자 :
성경본문 및 요약
제목> 다윗 대(對) 골리앗

성경> 삼상17:31-50

찬송> 30, 392, 396



●들어가면서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 이야기는 어린 아이들의 동화책에도 등장하는 유명한 이야기입니다. 그래서 기독교신앙의 가지지 않은 사람도 다윗에 대하여 알고 있고 골리앗하면 거인을 생각합니다.

본문의 이야기를 간단하게 정리하면 이렇습니다. 블레셋이란 나라가 이스라엘을 쳐들어왔습니다. 블레셋에는 천하의 거인 골리앗이란 장수가 있었습니다. 17:4-7에 이 골리앗의 장수로서의 풍채에 대하여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키가 여섯 규빗 한 뼘 - 한 규빗은 팔꿈치에서부터 가운데 손가락 끝까지의 길이로서, 일반적으로 45cm쯤 되는 길이를 말합니다. 그러니까 골리앗의 신장은 280-290cm정도로 역사상 거의 최장신으로 추정됩니다. 갑옷의 무게가 놋 오천 세겔(5) - 1세겔은 약 11.5g으로, 골리앗이 입고 있던 갑옷은 60kg에 가깝습니다. 단창의 창날 무게만 7kg이었습니다. 머리에는 놋투구, 다리에는 놋으로 만든 각반으로 무장을 하고 있는 골리앗은 블레셋의 전투기계나 전투로봇 같은 느낌을 주는 괴물이었습니다.(터미네이트?)

이 골리앗 장수가 나와 이스라엘 진영을 향해 외쳐대기를 “너희들이 전쟁을 하러 온 사람이 맞냐? 너희 중에 나하고 싸울 대표 한 사람을 보내라. 싸워 진 쪽이 이긴 쪽의 종이 되어 섬기도록 하자.”라며 밤낮 할 것 없이 이스라엘 군대를 모욕하는 말을 40일이나 계속 퍼부었지만 이스라엘은 두려워 아무도 나서지 못했습니다.

이 광경을 아버지의 심부름으로 전장터에 있는 형들을 만나기 위해 갔던 다윗이 목격을 하게 됩니다. 형들과 만나 안부를 묻고 있는데 갑자기 군사들이 혼비백산이 되어 두려워 떠는 것입니다. 가만히 들리는 소리를 들어보니 어떤 사람이 쩌렁쩌렁한 목소리로 이스라엘 군사를 비웃고 모욕을 하기 시작합니다. 이 소리를 듣던 다윗은 분을 참지 못하고 자신이 이 골리앗과 대결하겠다고 나섭니다. 요사이 아이들의 말로 자신이 골리앗과 맞짱을 한 번 떠겠다고 자원하는 것입니다. 그 누구도 나서지 못하던 이 싸움에 자원자가 나타났다는 소식은 급하게 왕궁에도 전해집니다. 사울왕은 당장 그 사람은 자기에게로 데려오라고 명합니다. 오늘 본문은 바로 그 내용부터 시작하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의 하나님은 어디에 계십니까?

성도 여러분, 두 진영을 생각해 보십시오. 17:3에는 골짜기를 경계로 양쪽 산에 두 진영이 진지를 꾸려놓고 있습니다. 기가 살아있는 블레셋 군대의 진영과 숨죽일 듯 고요한 이스라엘의 진영. 지금 이 전장에는 그 어디에도 이스라엘이 믿는 여호와 하나님은 살아계신 것 같지 않습니다. 엘리사 선지자가 자기의 눈앞에서 불말이 이끄는 불수레를 타고 승천해 버린 엘리야의 사라짐을 보고 “엘리야의 하나님 여호와는 어디 계시니이까”(왕하2:14)하고 탄식한 것처럼 이 전장터에는 그 어디에도 하나님의 역사는 보이지 않습니다. 도리어 할례 받지 못한 블레셋에게 하나님은 모욕을 당하고 있습니다.



오늘날에도 이런 상황은 우리의 삶에서 너무나 자주 목격되고 있습니다. 우리의 입에서 “우리의 섬기는 여호와 하나님은 어디에 계십니까?”하고 외치고 싶을 때가 종종 있는 것입니다. 악인이 큰 소리를 치며, 하나님을 모독하고 신자들을 짓밟아 버려도 하나님은 침묵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소돔과 고모라를 불과 유황으로 멸하신 하나님은 어디에 계십니까? 바다를 가르고, 때로는 땅을 갈라 자신의 백성을 괴롭히는 불의한 자들을 심판하신 그 하나님은 어디에 계십니까? 오늘도 기죽은 하나님의 백성과 기가 산 사단의 자녀들의 현장은 우리에게 자주 나타나고 있습니다. 성도 여러분, 혹 여러분의 삶의 현장은 어떻습니까?



그러나 하나님의 침묵의 대부분의 원인 제공자는 그의 백성들입니다. 그의 백성의 범죄 때문이요, 그의 백성의 불신 때문입니다. 이스라엘의 역사에서 하나님이 침묵하실 때는 그의 백성의 타락의 시기였습니다. 오늘 본문에도 이스라엘 백성들은 믿음이 전혀 없고 자신들이 업신여김을 당하고 하나님의 이름이 모독을 당하고 있는데도 기가 죽어 잠잠할 뿐입니다.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는 과연 어디에 계신다는 말입니까?

바로 이때 그 누구도 생각하지 못했던 사실이 다윗의 입을 통해 선포되고 있습니다.

36절. “주의 종이 사자와 곰도 쳤은즉 사시는 하나님의 군대를 모욕한 이 할례 없는 블레셋 사람이리이까 그가 그 짐승의 하나와 같이 되리이다”(삼상17:36)

이어 다윗이 골리앗과 맞짱을 떠는 바로 그 현장에서 골리앗을 향해 했던 다윗의 선포는 이렇습니다.

46절. “오늘 여호와께서 너를 내 손에 붙이시리니 내가 너를 쳐서 네 머리를 베고 블레셋 군대의 시체로 오늘날 공중의 새와 땅의 들짐승에게 주어 온 땅으로 이스라엘에 하나님이 계신줄 알게 하겠고”(삼상17:46)



하나님은 오늘도 이와 같은 사람을 찾으십니다. 그 어느 누구도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말하지 않는 바로 그 현장에서, 아니 그 어느 누구도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느끼지 못하는 그 현장에서, 아니 그 어느 누구도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믿지 않는 그 현장에서 “하나님은 살아계신다!”라고 분명하게 외칠 하나님의 사람을 찾고 있습니다.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믿는다고 하는 사람들조차 세상의 권세 잡은 자의 세력 앞에 기를 펴지 못하고 말도 못하고 숨을 죽이는 현장에서 당당히 나타나 “하나님은 살아계신다”라고 외칠 사람을 찾고 있습니다. 다윗은 바로 이런 면에서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사람이었습니다.



●상대가 되지 않는 싸움

그러나 이 싸움이 상대가 되지 않는 싸움이라는 것은 누구나 다 알 수 있는 것이었습니다.

장수들도 겁이 나서 숨는 판인데 어찌 군사훈련을 전혀 받아본 적이 없는 다윗이 싸울 수 있겠습니까? 본문에도 다윗이 자원하였을 때 군사로 징집되어 있었던 그의 큰 형 엘리압이 다윗에게 “이 건방지고 고집 센 녀석아, 네가 전쟁을 구경하러 왔구나”(17:28)하며 그를 말렸습니다. 이어 사울왕도 처음에는 자원자가 있다고 해서 좋아했지만 자기 앞에 선 다윗을 보니 아직 소년티가 벗어나지 않는 아이였습니다. 33절에는 “네가 가서 저 블레셋 사람과 싸우기에 능치 못하리니 너는 소년이요 그는 어려서부터 용사임이니라” 성경학자들은 다윗의 이 때의 나이를 17-8세 정도로 봅니다. 사울이 결국 다윗을 보낸 것은 아무도 골리앗을 상대하여 싸우려하지 않으니 다윗이라도 보내는 것입니다.

이어 다윗을 본 골리앗의 말에서 우리는 더욱 안타깝게 합니다. 골리앗이 본 다윗의 모습은 아직 애송이였습니다.(42. “그 블레셋 사람은 다윗을 쳐다보고 나서, 그가 다만 잘생긴 홍안 소년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는, 그를 우습게 여겼다.”-표준번역)

황산벌 싸움에서 백제의 계백장군이 신라의 화랑 관창을 보았을 때보다 훨씬 더 무시무시한 상황인 것입니다. 계백장군이야 그래도 의식 있는 장군이었고 관창 역시 신랑의 화랑출신이었지만, 무지막지한 골리앗 장군과 전혀 군사훈련을 받아 본 적이 없는 소년이 마주치게 된 것입니다.



그러나 오늘 본문의 마지막에는 이 나약하리라 생각된 이 소년 다윗이 거인 골리앗을 물리치고 그의 목을 베고 이 전쟁을 승리로 이끄는 일등공신이 됩니다. 도대체 이 어린 소년이 어떻게 골리앗을 대항할 수 있었고 이스라엘을 승리로 이끌 수 있었겠습니까?



우리는 여기서 바울이 고후6:9-10에 고백한 것처럼 어떻게 하면 ‘무명한 자 같으나 유명한 자가 되고, 죽는 자 같으나 살아 있는 자이며, 근심하는 자 같으나 항상 기뻐하고, 가난한 자 같으나 많은 사람을 부요하게 하고, 아무 것도 없는 자 같으나 모든 것을 가진 자’가 될 수 있는지 그 법을 깨달을 수 있기를 소원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다윗의 이 능력은 어디에서 나온 것입니까?



1. 삶의 현장에서 이루어진 체험신앙에서 시작되었습니다.(삼상17:34-37)

다윗이 사울 왕 앞에 이르자 사울은 실망했습니다. 골리앗과의 싸움을 지원한 사람이라면 골리앗 정도는 되지 않을지언정 골리앗 버금은 되어야할 것인데 자신 앞에 인도된 사람은 소년이었기 때문입니다. 사울은 한 마디로 상대가 되지 않는 싸움이라고 말렸습니다. 그때 다윗이 사울에게 했던 말을 보십시오. 그것은 그의 신앙 간증이었습니다.

삼상17:34-37. 『[34] 다윗이 사울에게 고하되 주의 종이 아비의 양을 지킬 때에 사자나 곰이 와서 양떼에서 새끼를 움키면 [35] 내가 따라가서 그것을 치고 그 입에서 새끼를 건져 내었고 그것이 일어나 나를 해하고자 하면 내가 그 수염을 잡고 그것을 쳐 죽였었나이다 [36] 주의 종이 사자와 곰도 쳤은즉 사시는 하나님의 군대를 모욕한 이 할례 없는 블레셋 사람이리이까 그가 그 짐승의 하나와 같이 되리이다 [37] 또 가로되 여호와께서 나를 사자의 발톱과 곰의 발톱에서 건져 내셨은즉 나를 이 블레셋 사람의 손에서도 건져 내시리이다』



다윗은 양을 치는 목동입니다. 그의 지금 자신의 목동으로서의 생활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는 양을 지킬 때에 있었던 간증을 하고 있습니다. 양을 구하기 위해 사나운 맹수들과 싸웠던 그 위험한 상황에서 하나님이 자기와 함께 하셨던 그 체험을 간증하고 있습니다. 바로 그 생활 속에서 가졌던 체험적 신앙이 지금 이 골리앗과의 싸움에 당당히 도전할 수 있었던 힘이 되었던 것입니다. 다윗은 분명하게 말합니다. “나를 사자의 발톱과 곰의 발톱에서 건져 내셨은즉 나를 이 블레셋 사람의 손에서도 건져 내시리이다.”



성도 여러분, 우리 자신의 진짜 믿음은 우리가 가장 많이 보내는 삶의 현장 믿음이라는 사실입니다. 교회서 신앙이 다르고 집에서 신앙이 다릅니다. 교회서 신앙이 다르고 직장에서 신앙이 다릅니다.

이중적인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어떤 사람은 교회의 중직자임에도 직장에서 기독교인인지 모르는 사람이 있습니다. 어떤 사람이 교회 결혼식에 참석을 했는데 그 사람이 그 교회에 안수집사이더랍니다. 한 직장에서 10년 이상을 같이 직장생활을 했는데 어떻게 모를 수 있느냐는 말입니다. 어떤 안수집사는 교회에서는 천사인데 집에서는 아내에게 상습적으로 폭력을 행사하는 사람입니다.

성도 여러분, 나의 삶의 현장에서 삶이 바로 나의 신앙수준입니다. 그곳에서 신앙의 체험이 있어야 합니다. 그곳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붙들어야 합니다. 그곳에서 하나님의 말씀의 능력을 맛보아야 합니다.



2. 하나님의 영광 제일주의로 살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그 사실을 다윗이 가장 분노하는 장면이 무엇인지를 보면서 알 수 있습니다. 오늘 말씀에서 다윗이 참을 수 없는 분노를 나타내는 장면은 하나님의 이름이 모욕을 당하는 순간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처음 그가 골리앗과 대결하기로 결심할 때의 이유는 골리앗이 하나님의 군대를 모욕하고 있다는 것이었습니다.(26) 사울 왕에게 자신의 출정 의지를 밝힌 그의 간증에서도 그는 ‘살아계신 하나님의 군대를 모욕한 이 할례 받지 않은 블레셋 사람’(36)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골리앗과 일대일 맞짱을 뜰 때에 그가 한 말을 보십시오. 그가 싸우는 목적이 뚜렷합니다. “…온 땅으로 이스라엘에 하나님이 계신 줄 알게 하겠고”(46b)

다윗, 그에게 있어 가장 화나게 하는 일은 하나님의 이름이 모독을 당하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영광스런 이름이 확인되어야 할 자리에서 그것을 보지 못하면 안타까워 답답해지는 사람이 바로 다윗이었습니다. 그것은 그가 그만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사는 사람이라는 증거입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사는 사람은 자연히 자신의 일에는 관대하게 됩니다. 그의 관심이 자신의 것에 집중되어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다른 사람의 일에 여유도 있고 관대합니다. 어떤 극단적인 일이 생기더라도 충분히 발생할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그 일의 당사자에게도 왜 침착하지 못하고 그렇게 난리를 치느냐고 말합니다. 그러나 자신의 이익과 관계된 일에는 조금의 양보도 하지 못합니다. 자신의 자존심, 감정을 건드리면 참지 못합니다.

다윗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그의 생애 가운데 억울한 일이 참 많았습니다. 선한 일을 악으로 갚는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그러나 그는 악을 악으로 갚지 않았습니다. 대표적인 사례가 바로 여기에 나타난 사울 왕과의 관계가 아닙니까? 곧 18장에 넘어가면 다윗이 골리앗을 죽인 일로 인해 인기가 올라가자 사울 왕은 다윗을 시기하게 되고 다윗을 죽이려 합니다. 마침내 다윗은 쫓기는 신세가 되고 사울은 다윗을 죽이는데 그의 후반기 생애를 다 쏘다 붓습니다. 사울을 죽일 기회도 두 번이나 있었지만 그는 그를 죽이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사울왕을 세우셨다는 것 때문입니다. 오직 하나님 영광이었습니다. 그는 자비와 양선과 온유와 절제의 열매를 가진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이름이 모독을 당하는 것에는 참을 수 없어 자신의 목숨을 걸고 일어났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은 무엇 때문에 분노가 일게 됩니까?

성도 여러분, 어느 날 여러분에게서 하나님의 영광이 있어야할 자리에 사람의 이름이 있거나, 인간의 냄새가 가득한 것을 보는 순간 여러분의 가슴 속에서 거룩한 분노가 치밀어 오르고 그것이 안타깝고 분해서 구체적인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기도하게 된다면 여러분 속에 다윗의 마음이 들어오고 있는 증거입니다.



3. 전쟁의 승패는 하나님께 달려있음을 믿기 때문입니다.(47)

싸움의 결과가 하나님께 달려있지 인간의 능력에 달려있지 않다는 것을 믿는 것입니다.

47절. “또 여호와의 구원하심이 칼과 창에 있지 아니함을 이 무리로 알게 하리라 전쟁은 여호와께 속한 것인즉 그가 너희를 우리 손에 붙이시리라”



다윗은 자신의 힘과 자신의 무기를 의지하는 자를 무서워하지 않았습니다. 그가 무서워하는 것은 그 속에 하나님이 역사하느냐 그렇지 않느냐는 것이었습니다. 골리앗은 천하의 장수였지만 그 속에 가장 중요한 하나님이 계시지 않았습니다. 그는 자신의 힘만 의지하는 자였습니다.

이 말을 오해하면 안 됩니다. 사람이 힘을 기르기 위해 노력할 필요도 없다는 말이 아닙니다. 다윗은 결국 자신이 가진 물매실력으로 골리앗을 무너뜨립니다. 그것은 물론 골리앗의 칼과 창과 단창과는 비교가 되지 않는 무기였지만 그는 엄청난 물매던지기 선수였을 것입니다. 그것은 짐승을 지키기 위한 피나는 노력의 결과였을 것을 의심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의 물매실력만으로 골리앗을 죽인다는 것은 어불성설입니다. 하나님이 그 속에 역사하지 않으면 자신은 골리앗의 단 한번의 칼에 죽게 될 것입니다.

여기서 다윗이 고백하는 것은, 사람의 노력이 필요하지만 그 위에 하나님의 보장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인간의 그 어떤 노력보다도 비교할 수 없이 훨씬 더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오히려 최선을 다해 자신을 준비하고 노력한 사람이 고백하는 말이 ‘정말 나의 힘만으로는 안 되구나!’입니다. 그리고 그 사람의 최후의 고백은 바울의 고백처럼 “능력의 심히 큰 것이 하나님께 있고 우리에게 있지 않다!”(고후4:7)입니다.

그러므로 그 사람은 자신이 약하다는 것을 알 때 더욱 강해지는 것을 알게 됩니다.



●맺으면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 세상은 거대한 골리앗처럼 우리 앞에 떡 버티고 서 있습니다. 그는 하나님을 모독하며 우리의 기를 죽이려 할지 모릅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 어디에서도 하나님의 영광을 보기 힘든 이 세대를 살고 있는지 모릅니다.

그러나 바알에게 무릎을 꿇지 않은 칠천의 사람은 있습니다. 하나님은 바로 그들을 통해 영광을 받으려 하십니다. 바로 다윗과 같은 사람입니다. 우리의 삶 속에서 골리앗을 물리칠 수 있는 힘을 소유합시다. 하나님은 바로 나를 기대하고 계십니다. - 아 멘 - (주후 2006-0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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