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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울의 생애와 다윗의 생애
  • 날짜 : 06.02.19
  • 본문 : 사무엘상15:17~29
  • 설교자 :
성경본문 및 요약
설교일자 : 2006.02.9

말씀 : 사무엘상 15:17~29 (구약433)

제목 : 사울의 생애와 다윗의 생애





●들어가면서

1월 달 새벽기도회 말씀은 사무엘상 본문으로 매일매일 조금씩 진행되다가 15장까지에서 마쳤습니다.  2월은 본문이 에베소서인데 마지막 본문이 바뀌면서 2.1일 수요기도회 시에 제가 말씀을 전하면서 그때까지 묵상했던 삼상15장까지를 총정리하는 의미로 말씀을 전했습니다.

그때 말씀을 전하면서 이 말씀을 모든 성도들과 함께 나누자는 생각을 했었습니다. 그렇다고 그때 말씀과 오늘 말씀이 동일하지는 않습니다. 오늘은 그때 나눈 말씀 중에서 사울과 다윗이라는 사람의 생애에 집중해서 더 구체적으로 생각하려고 합니다.



오늘 성경 사무엘상하서의 주인공은 다윗입니다. 사무엘상은 다윗이 왕이 되기 전까지의 이야기입니다. 사무엘하는 다윗이 왕이 된 후에 있었던 이야기입니다. 사무엘상에는 주인공 다윗 외에 중요한 두 사람이 나옵니다. 한 사람은 다윗에 앞서 이스라엘의 제 1대 왕이었던 사울이고, 또 한 사람은 사울과 다윗이 왕이 될 때 그들을 왕으로 기름 부었던 사무엘입니다.



오늘 말씀의 제목처럼 ‘사울의 생애와 다윗의 생애’를 모두 다 생각하려 한다면 사무엘상하서 전체가 그 배경이 되어야 하겠지만 오늘의 본문을 중심으로 해서 사울과 다윗의 전체 생애를 통하여 하나님이 우리에게 보여주시는 뜻을 살피려고 합니다.

사무엘1장에서 8장까지는 이스라엘에 어떻게 해서 왕이 생기게 되는지에 대한 기록입니다. 9장에서 15장까지는 그래서 생기게 된 1대 왕 사울의 이야기인데 사울이 왕으로 등극하여 퇴락하는 과정의 첫 부분입니다. 16장부터는 다윗이 등장합니다. 오늘 성경 본문은 사울 왕은 점점 하나님에게서 멀어져 가는 과정이고 그래서 16장에는 다음 왕으로 예비 되는 다윗을 보게 됩니다.



1. 성령으로 시작했다가 육체로 마치는 사람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바울이 갈라디아서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갈 3:3) 『너희가 이같이 어리석으냐 성령으로 시작하였다가 이제는 육체로 마치겠느냐』

여기서 ‘성령’이라함은 하나님의 뜻이라고 말할 수 있겠고, 육체라고 하면 하나님을 떠난 모든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우리는 이 교훈을 사울에게서 구체적으로 얻게 됩니다.

사무엘상에 나타나는 사울의 처음 모습은 사울이 그의 아버지의 잃어버린 나귀를 찾으러 다니는 모습입니다. 그러다가 그는 사무엘을 만나게 되고 왕으로 기름부음을 받게 됩니다.

왕으로 기름부음을 받았다고 해서 바로 왕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은 은밀한 곳에서 행한 것을 모든 사람에게 인정받게 하십니다. 10장에는 사무엘이 하나님이 선택하신 왕이 누구인지 이스라엘 백성들을 모아놓고 제비를 뽑습니다. 그 제비뽑기에서 베냐민 지파가 뽑히고 베냐민 지파에서 또 제비를 뽑으니 사울이 뽑혔습니다. 그때 사울은 그 자리에 있었지만 자신이 뽑힌 것에 환호하며 기뻐하지 않고 도리어 행구 뒤에 자신의 몸을 숨겼습니다. 이것이 바로 초기의 사울의 모습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그가 전혀 왕이 될 재목이 못되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11장에는 사울은 암몬 족속이 자신의 동족을 모독하는 것을 듣고는 이스라엘의 모든 지파를 다 규합하여 전쟁에 나가서 대승을 거두는 애국심이 투철한 자였고 용맹한 자였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가 왕이 되고 난 뒤부터입니다. 왕이 되자 그는 하나 둘 큰 실수를 저지릅니다. 그런데 그 실수가 어찌하다보니 할 수 없어 저지른 실수가 아니라 그의 교만에서부터 시작된 것이라는데 있습니다. 

성도 여러분, 교만이 무엇입니까? 교만이 다른 사람보다 내가 좀 더 낫다고 으스대는 것일까요? 교만이라는 것의 껍질을 양파 껍질 벗기듯이 벗기면 그 안에 들어있는 것은 바로 하나님 없이도 살 수 있다는 마음입니다. 하나님이 나를 도와주시지 않으면 나는 도무지 살 수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교만할 수 없습니다. 자연히 겸손해지는 것입니다.

사울이 저지른 과오가 무엇입니까? 첫 번째 과오가 13장에 나옵니다. 그것은 블레셋과의 전투에서 제사장이 드려야 하는 제사를 자신이 드린 것입니다. 제사장이 드려야 한다는 것은 곧 하나님의 신적권위를 말하는 것입니다. 이 행위에 대해 사무엘은 13:13절에 “왕이 망령되이 행하였도다 왕이 왕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왕엑 명하신 명령을 지키지 아니하였도다”라고 말합니다. 두 번째 과오는 아말렉과의 전투에서 하나님이 승리를 보장해주시면서 아말렉의 모든 소유를 진멸하라는 명령에 아말렉 왕 아각을 죽이지 않고 사로잡아 온 것과 또 기름진 양과 소를 남겨 가지고 온 것입니다.



이 모든 것은 하나님의 명령을 우습게 여긴 것입니다. 그의 말은 전혀 그렇지 않게 들릴지 모릅니다. 그러나 그는 하나님의 말씀을 이전처럼 신중하게 생각하지 않은 것입니다. 자기 스스로 무엇을 할 수 있을 사람처럼 생각한 것입니다. 교만입니다.

15:17절에, 사무엘은 사울 왕을 버리신 하나님의 뜻을 전하면서 “왕이 스스로 작게 여길 그때에 이스라엘 지파의 머리가 되지 아니하셨나이까”라고 말합니다.



사울은 너무 멋있게 시작했습니다. 왕이 될 때에도 극적이었습니다. 암몬 족속과의 전쟁에서 모든 백성들을 감동시켰습니다. 심지어 제비를 뽑아 사울이 왕으로서 지목이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그의 왕의 자질을 도무지 믿을 수 없다고 생각했던 사람들까지 감싸면서 하나 되게 했던 왕이었습니다.

그러나 점점 그는 퇴락해갔습니다. 결국 사울은 사무엘상 31장에서 블레셋과의 전투에서 자살하고 죽습니다. 그는 성령으로 시작하였다가 정말 육체로 끝난 사람입니다. 거룩한 하나님을 뜻으로 시작했다가 극히 인간적인 것으로 점철된 인생을 살다가 비참하게 죽은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인생은 마라톤입니다. 42.195Km를 뛰어야 하는 마라톤입니다. 100m를 달리기는 초반에 승부가 결정이 나지만 끝까지 잘 마라톤에서는 첫 순위가 마지막 순위가 아닙니다.

지금 토리노 동계올림픽 기간입니다. 우리나라 선수들의 숏트랙을 보면 여실히 증명이 됩니다. 우리나라 선수들은 단거리에는 약하고 중장거리에는 강하다고 합니다. 처음에는 뒤에 쳐져 있더라고 나중에는 치구 나가 결국 금메달을 목에 겁니다.

성도 여러분, 지금도 잘돼야 하지만 나중이 더욱 잘 되는 인생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그러기에 혹 지금 좀 잘 나간다고 으스대지 마십시오. 반면 지금이 어렵다고 기죽을 필요도 없습니다. 중요한 것은 나의 체력이 바닥 나 있지만 않으면 됩니다. 하나님이 공급해 주시는 힘으로 내적으로 비축된 힘이 있으면 역전의 인생이 될 수 있습니다.



2. 위기의 순간에 더욱 말씀을 붙들어야 합니다.

사울이 점점 하나님의 은혜의 자리에서 멀어져간 이유는 어디에 있습니까? 그것은 위기의 순간에 말씀을 붙들지 못해서입니다. 반면에 다윗은 위기의 순간에 하나님의 말씀을 붙들었습니다. 이 사실은 우리가 어디에서부터 무너질 수 있는지를 알려주는 것입니다.



사울의 첫 번째 범죄에서 그는 블레셋이 곧 쳐들어 올 긴박한 상황에서 부득이하여 자신이 제사를 드렸다고 말합니다.(13:12) 그 상황을 보면 충분히 그럴만한 상황인 것처럼 보입니다. 적은 곧 쳐들어올 기세이고, 그 기세에 겁먹은 이스라엘 군사들을 도망가기 시작하고 제사를 드려야 언제든 전투를 시작할 수 있는데 제사를 드려줘야 할 사무엘은 오지 않고... 정말 부득이한 사정입니다.

그러나 이에 대해 사무엘이 한 말은 단호합니다.

“왕이 망령되이 행하였도다. 왕이 왕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왕에게 명하신 명령을 지키지 아니하였도다”(13:13)

아말렉과의 전투에서 전리품을 가지고 온 것에도 그는 그럴싸한 이유를 말했습니다.

“백성이 당신의 하나님 여호와께 제사하려 하여 양과 소의 가장 좋은 것을 남김이요 그 이외의 것은 우리가 진멸하였나이다”(15:15)



우리는 여기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지 못할 만한 부득이한 상황은 없음을 알아야합니다. 또한 그 어떤 이유도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지 못한 것에 대한 구실이 될 수 없음을 말하고 있습니다.

(고전 10:13)에는 『사람이 감당할 시험 밖에는 너희에게 당한 것이 없나니 오직 하나님은 미쁘사 너희가 감당치 못할 시험 당함을 허락지 아니하시고 시험 당할 즈음에 또한 피할 길을 내사 너희로 능히 감당하게 하시느니라』고 하였습니다.



아브라함이 만약 그의 아들 이삭을 모리아 산에서 죽이지 않고 살렸다면 그것은 사울이 처한 상황보다 훨씬 더 부득이한 일일 것입니다. 어느 누가 아들을 죽이는 사람이 있다는 말입니까? 또한 합리적인 구실을 댈 수 있을 이유가 충분합니다. 하나님이 100세에 주신 아들을 이렇게 죽이라고 하시다니 이건 하나님 자신의 모순이다. 이런 것에서부터 시작해서.

그러나 하나님은 결국 윈(win)-윈(win)하게 해 주셨습니다. 아브라함도 승리하고 하나님도 영광을 받으시고.

그러기에 위급한 때에도 하나님의 말씀을 나의 생각으로 더하거나 빼지 말고 그대로 믿으면 하나님의 영광이 그 자리에 나타날 것입니다. 바로 이 부분에서 사울은 실패한 것입니다. 이런 것에서 자기를 복종하여 승리했다면 그의 나라는 더욱 견고해졌을 것입니다.



그러나 다윗은 위기의 순간마다 하나님을 의지하였습니다. 세상 사람들이 그를 비난하고 조롱하고 심지어 회유하기까지 했지만 그때도 그는 하나님을 의지하였습니다. 시편 곳곳에 이런 다윗을 고백을 얼마나 많이 볼 수 있는지 모릅니다. 대표적으로 한 곳을 보겠습니다.

“[9 여호와여 내 고통을 인하여 나를 긍휼히 여기소서 내가 근심으로 눈과 혼과 몸이 쇠하였나이다 [10] 내 생명은 슬픔으로 보내며 나의 해는 탄식으로 보냄이여 내 기력이 나의 죄악으로 약하며 나의 뼈가 쇠하도소이다 [11] 내가 모든 대적으로 말미암아 욕을 당하고 내 이웃에게서는 심히 당하니 내 친구가 놀라고 길에서 보는 자가 나를 피하였나이다 [12] 내가 잊어버린바 됨이 사망한 자를 마음에 두지 아니함 같고 파기와 같으니이다 [13] 내가 무리의 비방을 들으오며 사방에 두려움이 있나이다 저희가 나를 치려 의논할 때에 내 생명을 빼앗기로 꾀하였나이다 [14] 여호와여 그러하여도 나는 주께 의지하고 말하기를 주는 내 하나님이시라 하였나이다”(시31:9-14)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위기의 순간은 기회의 순간이라고 하였습니다. 위기라는 말이 위험과 기회라는 두 단어의 조합으로 볼 수 있습니다. 이것은 어떻게 접근하느냐에 따라 정말 위기가 될 수 있고 또 기회가 되기도 하는 것입니다. 사울이 만약 그 위기를 “그러하여도 주는 내 하나님이시라”하고 고백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따랐다면 사울에게는 그의 나라가 견고해지는 기회가 되었을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하나님을 감동시키는 여러분이 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 눈도장을 받으시기 바랍니다.



자녀들을 통해 별 것 아닌 것으로 감동을 먹는 사람이 우리 부모들입니다. 어떤 집사님 학교에서 아이들이 부모님께 적어 보낸 편지에도 감동 먹습디다. 그것도 어버이날에 적어 보낸 것 말입니다. 무슨 의미인지 아시죠? 쓰고 싶어 쓴 것이 아니라 모두 다 시간을 줘서 쓰게 한 거라는 말입니다. 그래도 그게 감동이 되어 눈시울이 붉어지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감동시키시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그러나 사울은 하나님께 계속 실망을 하게 했습니다. 삼상15:11과 15:35에 하나님이 사울을 왕으로 세우신 것을 “후회하셨더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은 후회할 일을 하는 분이 아니지만 우리가 이해하기 쉬운 표현으로 사용하신 것입니다. 사울이 하나님을 계속 실망시켰다는 말입니다.



더욱 구체적인 감동거리로 하나님께 나아가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3. 되는 인생을 사는 사람이 됩시다.

그 비결은 사람의 뜻에 따라 살지 않고 하나님의 뜻에 따라 사는 것입니다.



사울은 점점 더 하나님에게서 멀어져 가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런데 사울의 퇴락의 근원은 처음 시작부터 잘못된 것이었습니다. 사울이 왕이 된 것은 백성들의 세속적인 마음에서부터 시작되었기 때문입니다.



삼상8:19-20에 “열방과 같이 되어 우리 왕이 우리를 다스리며…”

삼상12:12-15에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서는 너희의 왕이 되실지라도 너희가 내게 이르기를 아니라 우리를 다스릴 왕이 있어야 하겠다 하였도다 이제 너희의 구한 왕, 너희의 택한 왕을 보라…”



사울은 백성들이 여호와 하나님께 대한 신앙을 잃었을 때에 세속적인 욕심으로 세워진 왕이었습니다. 그러니 사실 그가 어떤 길을 걷게 될 자인지 예상이 된 것입니다. 물론 이것은 운명론을 말하는 것은 아닙니다. 즉, 사울에게 잘못이 없다는 말이 아닙니다. 사울은 앞서 말씀을 들은 대로 그는 자신의 범죄로 자신의 생애를 더욱 어둡게 만들었습니다.

하지만 그의 시작은 하나님의 기뻐하시는 과정 속에서 시작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자신이 직접 이스라엘의 통치하시는 왕이셨습니다. 그리고 후에 이스라엘에 왕이 세워져도 철저히 하나님을 의지하여 하나님의 마음으로 나라를 다스릴 대리인을 왕으로 세우실 작정이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사울의 범죄의 과정에서 사무엘을 통하여 자주 자신의 계획을 말씀하십니다.

삼상13:13-14 “…왕의 나라가 길지 못할 것이라…여호와께서 그 마음에 맞는 사람을 구하여 그 백성의 지도자를 삼으셨느니라”

(삼상 15:28) 『사무엘이 그에게 이르되 여호와께서 오늘 이스라엘 나라를 왕에게서 떼어서 왕보다 나은 왕의 이웃에게 주셨나이다』



여호와의 그 마음에 맞는 사람은 누구입니까? '왕보다 나은 왕의 이웃‘은 누구입니까?

(행 13:21-22) 『[21] (그 후에) 저희가 왕을 구하거늘 하나님이 베냐민 지파 사람 기스의 아들 사울을 사십 년간 주셨다가 [22] 폐하시고 다윗을 왕으로 세우시고 증거하여 가라사대 내가 이새의 아들 다윗을 만나니 내 마음에 합한 사람이라 내 뜻을 다 이루게 하리라 하시더니』



사울은 단지 사람들의 마음에 맞는 왕이었습니다. 그 사람들이란 신앙을 다 잃은 상태로서 세속에 물든 사람입니다. 그러나 다윗은 하나님의 마음에 맞는 왕이었습니다. 그러니 그 둘의 생애가 다를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이것 참 중요한 내용입니다. 무엇을 말하느냐면 사람은 자기가 노력해도 안 되는 부분이 있다는 말입니다. 다른 말로 하면 자기가 노력 안 해도 되는 것도 있다는 말입니다. 이 말이 우리의 노력이 필요 없다는 말이 아닙니다. 단지 하나님의 은혜의 위대성을 말하려고 하는 것입니다.



사울은 왕이 되었다고 정말 출세했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건 줄을 잘못 잡은 출세였습니다. 사람들 때문에 출세의 길을 나갔으니까요. 그러나 다윗은 그게 아닙니다. 그 누구도 알아주지 않을 때 하나님의 마음에 들어 하나님이 ‘찜’해 놓은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사람의 뜻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에 따라 출세하게 된 사람인 것입니다. 줄을 제대로 잡은 것이지요. 물론 더 정확한 표현은 하나님에 의해 줄이 잡혀진 사람입니다.

두 사람의 인생을 말하자면 사울이나 다윗이나 그렇게 다를 바가 없는 인생입니다. 우리는 다윗의 유명세 때문에 다윗이 훨씬 나은 인생을 산 사람처럼 볼지 모르겠지만 다윗의 일생도 하나님 앞에 험 잡힐 일이 많은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남의 여자를 취한 강간범이었고 그 죄를 감추기 위해 충신 우리야를 죽인 비열한 지도자였습니다. 그의 가정은 왕자들의 간의 알력과 살인으로 피로 물든 가정이었고 그는 자신의 아들의 반란으로 망명생활을 했어야 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다윗은 잘 되는 사람이고 사울은 안 되는 사람입니까? 왜 한 사람은 성공한 왕이고 다른 한 사람은 실패한 왕입니까? 왜 한 사람은 성공적인 인생이라고 인정을 받고 다른 한 사람은 실패한 인생이 되어버린 것입니까?



성도 여러분, 다윗과 같은 생애를 사는 복을 누리시길 축원합니다.

인생이라는 것이 별 수 있겠습니까? 성공했다고 해서 실수 없는 인생을 살았다는 것도 아니고, 이 세상의 모든 고통과는 담 쌓고 사는 사람이 되는 것도 의미하지는 않습니다. 다윗도 그러했습니다. 그러나 다윗의 생애가 성공적인 복 받은 인생이라고 말하는 것은 하나님이 그를 인정하고 도우시는 인생을 살았기 때문입니다.



우리 모든 성도들도 하나님이 인정하시고 붙드시는 인생을 살아야합니다. 그래야 마지막이 더욱 좋은 인생이 되며 더 나아가 천국 인생이 되는 것입니다. - 아 멘 -(주후 2006-0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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