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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도원 품꾼의 비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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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및 요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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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포도원 품꾼의 비유
성경> 마20:1-16
찬송> 215, 392장

● 천국은?
성도 여러분, 지난주에는 '본향을 찾는 사람들'이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전했습니다. 간단하게 요약하자면 우리가 명절에 우리의 고향에 있는 부모 친지를 찾아가듯 우리의 영혼의 본향인 천국을 대망하며 살아가자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오늘 성경 본문의 첫 단어에 또 "천국은"하고 말씀하며 시작합니다.
그러나 오늘 성경 본문의 천국은 지난주에 우리가 생각했던 천국과는 그 성격이 다릅니다. 지난주의 말씀드린 천국을 '천당'이라고 말하면 이해가 더 잘 될 것 같습니다. 이 천당은 우리의 목숨이 이 땅에서 끊어지면 가게 되는 곳입니다. 예수님은 승천하시기 전에 제자들에게 분명히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러 간다고 말씀하셨고 그 처소가 완전히 다 예비 되면 다시 오시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분명히 우리가 가서 거할 공간에 대해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러나 오늘 말씀의 천국은 특정한 지역에 공간적으로 한정되어 있는 천국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 믿을 때 신자들에게 임하는 천국을 말하는 것입니다. 곧 미래에 갈 천당을 말하는 것이라기보다는 현재에도 경험할 수 있는 천국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바로 그 천국의 다양한 성격 가운데 하나를 예수님이 비유로 설명하고 있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천국은 대지가 얼마이고 건평이 얼마이며 어떤 형식과 양식으로 지은 것이며, 또 어떻게 꾸며져 있고 등등 이런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천국은 이런 이런 성격이 있으므로 하나님의 백성들, 즉 천국 백성이라면 누구든지 천국의 이런 성격을 이해하고 이 천국의 성격에 합당한 모습으로 삶을 살아라'하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 비유의 설명
그러면 오늘 성경에서 천국을 어떻게 말하고 있습니까? 1절 말씀입니다.
"천국은 마치 품꾼을 얻어 포도원에 들여보내려고 이른 아침에 나간 집주인과 같으니"
포도원 품꾼의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포도원을 가지고 있는 어떤 사람이 포도원의 품꾼을 구하기 위해 장터로 나갔습니다. 우리나라에서 모내기철이나 추수철에 일손을 구하는 것을 생각하면 될 것입니다. 또 매일 새벽같이 일용직을 찾는 사람을 위해 인력시장에 나가 대기하고 있는 사람들을 생각하면 더욱 이해가 잘 될 것입니다.
포도원의 주인이 이른 아침에 장터에 나가 하루 일당으로 한 데나리온을 계약하고 사람을 자기 포도원으로 보냅니다. 이 주인은 거기에서 마치지 않고 3시에도 나가고 6시, 9시에도 나가서 놀고 있는 사람들을 포도원으로 들여보냅니다. 유대인의 시간 표시는 해뜰 때를 1시로 정하고 해질 때를 12시로 정합니다. 우리 시간으로 환산할 때 보통 6시간을 더합니다. 그러니 이른 아침이라고 하면 새벽 6시를 말할 것입니다. 그러면 3시는 오전 9시, 6시는 12시, 9시는 오후 3시를 말합니다.
그런데 주인은 11시 즉 오후 5시가 되어서 또 장터로 나갑니다. 이제 일할 수 있는 시간은 한 시간밖에 남지 않은 시각입니다. 나가보니 또 놀고 섰는 사람들이 있더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빨리 포도원으로 들어가서 일하라고 말합니다.
12시 곧 오후 여섯 시가 다되었습니다. 이제 하루 일을 마치는 시각이 되었습니다. 주인은 그날 하루를 일한 모든 품꾼들을 모아서 품삯을 줍니다. 맨 나중에 온 사람에게 품삯을 먼저 줍니다. 그런데 한 데나리온을 주는 것입니다. 한 데나리온은 그 당시 노동자들의 일반적인 하루 품삯이었습니다. 오늘날로 치면 한 5만원정도 될 것입니다.
이것을 본 다른 품꾼들은 "오후 5시에 와서 한 시간만 일한 사람에게 한 데나리온을 주는 것을 보니 우리에게는 더 많이 주겠지"하는 마음으로 부풀었습니다. 그런데 처음 온 사람부터 맨 나중에 온 사람까지 모두 동일하게 한 데나리온을 주는 것입니다.
모두가 다 불만이 가득해졌습니다. 그리고는 따집니다. "왜 우리를 한 시간 일한 사람과 동일하게 주는 겁니까? 우리는 종일 더위에 수고를 했습니다."
그때 주인이 말했습니다. "내가 네게 잘못한 것이 무엇이냐 너는 처음부터 나와 한 데나리온에 약속을 하지 않았느냐? 나중에 온 사람에게 너와 똑같이 주는 것이 너와 무슨 상관이냐. 그것은 내 맘대로다"라고 말했다는 것입니다.

● '나중 된 자'가 먼저 되고 '먼저 된 자'가 나중 된다?
이 비유가 말하려고 하는 것이 무엇이겠습니까? 그것을 오늘 우리가 나누려고 합니다만 이 비유의 결론은 이미 나타나 있습니다. 예수님이 그 결론을 말씀하셨습니다. 무엇입니까? 16절입니다.
"이와 같이 나중 된 자로서 먼저 되고 먼저 된 자로서 나중 되리라"는 것입니다.
사실 이 말씀은 앞장인 19장 20절에 이미 말씀되어 있습니다. 예수님은 이 말씀을 더욱 잘 이해하라고 또 본 장에 포도원의 품꾼 비유를 들어 말씀하셨고 또 그 결론을 16절에 다시 말씀하고 계신 것입니다.

그러면 이 결론의 말씀이 의미하는 바가 무엇입니까?
앞 뒤 순서가 필요 없다는 말입니다. 즉 천국은 앞에 온 사람, 뒤에 온 사람, 믿음이 좋은 사람, 믿음이 연약한 사람, 중요한 직분을 가진 사람, 그렇지 않는 사람, 부자인 사람, 가난한 사람, 잘난 사람, 못난 사람, 이런 것이 중요하지 않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 말씀을 잘 이해하셔야합니다. 어떤 말씀은 이해되는 것도 있고 어떤 말씀은 이해가 되지 않을 것입니다. 천국은 믿음 좋은 사람도 필요 없나? 예, 믿음이 좋아야합니다. 그러나 그것이 근본적으로 천국에 들어가는데는 기여하는 것이 없다는 것이 오늘 말씀입니다.

그러면 어떤 것이 중요하다는 말씀입니까?
우리는 그것을 오늘의 말씀 속에서 발견하고 진정 천국에 합당한 천국 시민으로서의 삶을 살아가고자 하는 것입니다.

● 쓰임을 감사
먼저, 첫 번째로 쓰임을 받았다는 사실에 감사하라는 것입니다.
하루 일을 다 마치고 품삯을 줄 때가 되었습니다. 주인이 모든 품꾼들을 다 불러놓고 품삯을 주는데 맨 나중에 온 사람 즉 다섯 시에 온 사람에게 한 데나리온을 줍니다. 이것을 본 다른 품꾼들이 어떻게 생각했겠습니까? 그때까지만 해도 다섯 시에 온 사람이 한 데나리온을 받는 것이 불만이 아니라 소망입니다. 자신들은 더 많이 받을 수 있다는 기대감이 넘치는 소망입니다. 그런데 이른 아침에 온 사람부터 모두에게 다 한 데나리온을 줍니다. 이 때 문제가 생기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사람이 이렇습니다. 얼마나 이기적인지 모릅니다. 조금이라도 자기에게 유익이 돌아올 일에 대해서는 침묵을 지키고 속으로 빠르게 셈을 합니다. 그러나 그것이 자기에게는 조금의 유익도 되지 못할 것으로 드러나면 참지 못합니다. 그냥 두면 다른 사람이라도 잘 될텐데 그것을 그냥 지켜보고 있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사실 이들에 대해서 주인이 잘못한 것은 없습니다. 주인의 말대로 주인은 약속을 어기지 않았고 계약대로 지불한 것입니다. 그러나 품꾼들은 자기에게 주어진 계약이 이행된 것에 관심이 있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이 자신보다 더 좋은 대우를 받는다는 사실에 뼈골이 쑤시는 것입니다.

여기서 주님이 의도하신 것이 무엇입니까?
모두가 부름을 받아 포도원에서 일하고 있다는 사실을 감사해야한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품삯의 문제가 아닙니다. 일하게 된 것 자체에 감사해야하는 것입니다. 지금 이 시간에 내가 장터에 있는 것이 아니라 포도원 안에 있다는 사실 그 자체를 감사해야하는 것입니다.
만약에 이 사람들을 써 주지 않았다면 어떻게 되었겠습니까? 그들은 그 날 하루를 공쳤을 것입니다. 이 사람들은 품삯에 대해 연연할 수 없는 사람입니다. 연연하면 안 되는 것입니다. 그저 오늘 하루 일할 수 있다는 사실 하나로 감사해야하는 사람들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부름을 받은 사실 자체가 은혜입니다. 아직도 다른 많은 곳에는 하루 종일 자기를 써 줄 사람을 기다리다 맥이 빠진 채 돌아가는 사람들이 많이 있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이 우리를 불러 주신 것 자체가 진정 은혜가 아닙니까? 감사해야합니다. 왜 내가 이 시간 이 자리에 포도원에 앉아있게 된 것인지!
인생의 환난 속에서도 믿음을 져버리고 "하나님 안녕, 교회여 안녕, 성도들이여 안녕"하며 떠난 사람도 많은데 나는 왜 이 자리에 그래도 앉아 있는지.
불러 주신 것부터 시작해서 여기까지 인도해 주신 것, 모두가 다 하나님의 은혜인 것입니다.
♬ 찬 410장 - "아 하나님의 은혜로 이 쓸 데 없는 자 왜 구속하여 주는지 난 알 수 없도다"

우리가 우리 자신을 잘 알지 않습니까? 어느 한 구석, 구원받을 조건을 갖춘 것이 없는 자입니다. 그런데 우리를 불러 주신 것입니다.

저는 이럴 때 자주 세리장 삭개오를 생각하게 됩니다. 삭개오는 자기 자신이 구원과는 거리가 먼 사람인 것을 알았습니다. 그러나 그는 구원을 받고 싶었습니다. 돈은 있지만 구겨져버린 인생살이에 만족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예수가 오신다는 말을 듣고는 그를 보러 길가로 갔습니다. 키 작은 그가 인산인해를 이룬 인파 가운데서 예수님을 본다는 것이 불가능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뽕나무에 올라간 것입니다.
그의 시선이 예수님을 향해 고정되어 있었을 것입니다. 예수님이 잘 가던 길을 뽕나무 앞에서 멈추고는 뽕나무 위에 매달려 있는 삭개오를 보았을 때 삭개오의 마음이 어떠했겠습니까?
"삭개오야 내려오너라 내가 오늘 네 집에 유하여야 하겠다"
삭개오는 자신을 잘 알았습니다. 세리의 집에는 누구도 찾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오히려 사람들은 자신의 집 앞을 지날 때는 나라와 동족을 팔아먹고 사는 놈이라고 침을 뱉고 지나갔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자신의 집으로 들어오시겠다는 것입니다. 그는 도무지 감당치 못할 은혜를 입었다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그리고는 그가 선언합니다.
"주여 보시옵소서 내 소유의 절반을 가난한 자들에게 주겠사오며 만일 뉘 것을 토색한 일이 있으면 사 배나 갚겠나이다"

● 은혜로 섬김
둘째는 은혜로 섬겨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가장 많이 쓰는 말 중에 하나가 '은혜'입니다. 은혜로 섬긴다는 말은 보상을 바라지 않고 섬기는 것을 말합니다. 본래 은혜라는 말이 그런 말입니다. 어떤 일을 했던 한 사람이 그 일의 대가를 받을 때 그것은 당연한 권리가 되는 것이지 은혜일 수 없습니다. 우리가 구원을 은혜라고 말하는 것은 내가 한 것이 하나도 없다는 사실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품꾼 중에는 "이른 아침부터 와서 더위 먹어가면서 열심히 일했는데 왜 대우가 이러하냐"고 따지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이 사람에게 주인은 14절에 "네 것이나 가지고 가라"고 매섭게 말했습니다.
하나님 나라는 이런 식의 대가를 바라는 사고를 가지고 살 수 없는 곳이라는 말씀입니다.

이런 식의 사고가 어울리는 곳이 있습니다. 그곳은 바로 절입니다. 불교라는 종교는 공덕의 종교입니다. 그래서 이 땅에 있을 때 많은 공을 쌓는 것이 필요합니다. 또 많은 절제와 금욕을 통해 고통을 감내하는 것은 다음 세상에서 더 좋은 대우를 받을 수 있는 조건이 됩니다.
그러나 천국은 그런 곳이 아닙니다. 천국은 천국 백성이 된 것만으로도 감격의 눈물을 뿌리며 섬길 수 있는 사람들을 원하고 있습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의 이런 감격의 눈물은 이제 모두 다 어디로 사라졌습니까? 이전에는 다들 그렇게 감사하며 섬겼지 않습니까? 이에 대한 회복이 있어야 교회가 교회다워집니다.
이제 교회도 천국의 법칙보다 세상의 법칙이 통하는 곳이 되어 가고 있습니다. 모두들 하나님 말씀에서 배우지 않고 세상에서 학습하여 교회에서 그대로 적용시킵니다.

직장을 구하기가 어려울 때, 어떤 일이든 시켜만 주면 열심히 하겠습니다하고 말합니다. 그 말 믿고 썼다간 낭패를 당하기 일쑤입니다. 처음에야 열심히 일합니다. 그러나 어느 정도 자리가 잡히고 나면 조그만 손해도 당하지 않으려 머리에 띠 띠고 구호를 외쳐됩니다. 어려울 때 자신을 써 준 주인에 대한 고마움이 온데 간데 없습니다.

처음 교회를 봉사할 때는 하나님의 은혜라고 고백하며 섬깁니다. 그러다가 시간이 지나고 은혜는 없어지고 자신의 위치가 의식되기 시작하면 불평 불만거리가 자연히 쌓이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다시 눈물을 구합시다. 설움의 눈물이 아닙니다. 기쁨과 감사, 감격의 눈물을 구합시다.
♬찬353장 - "내 주 예수 주신 은혜 한없건만, 내 주 앞에 이 적은 것 다 드리니, 주 예수여 내 정성을 받으소서"

● 과거 불문
셋째는 과거를 묻지 않겠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또 한 가지 생각할 수 있는 것은 일할 시간이 한 시간밖에 남지 않은 5시에도 주인은 사람을 들여보내려고 장터에 나갔다는 사실입니다. 한 시간 남았다는 말은 일을 제대로 해보지도 못하고 끝날 수 있음을 의미합니다. 여러분, 일을 한다고 바로 시작이 됩니까? 저도 설교를 준비하려고 책상에 앉으면 설교의 마인드를 형성시키는 데만 몇 시간씩을 보내야합니다. 5시에 포도원에 들어간 사람은 마음 잡고 연장을 손에 쥐자 마치는 종이 울릴 것이 뻔합니다.

그럼에도 불고하고 주인이 5시에도 장터에 나갔다는 것은 분명 일손이 부족한 것 때문이 아닙니다. 이것은 아직도 장터에 남아 있을 수 있는 사람들에 대한 주인의 배려입니다. 오늘 본문의 정황을 주의 깊게 살펴보면 주인은 "혹시 지금도 장터에 사람이 있지는 않을까"생각하고 또 나가 본 것 같습니다. 그런데 아니나 다를까 정말 놀고 있는 사람이 있는 것입니다.
주인은 이들에게도 일할 기회를 주었습니다. 5시까지 기다리고 있었던 사람은 거의 포기하지 않았겠습니까? 이 사람들은 처음부터 나와 있었던 사람들이 아니었습니다. 처음부터 나와 있었다면 벌써 포도원에 들어가 있었을 것입니다. 무엇을 하다가 지금에야 나와 있는지 모를 일입니다. 아홉 시에도, 열 두 시에도, 오후 세 시에도 보이지 않았던 사람입니다. 그러나 주인은 이들에게도 기회를 주었습니다. "한 시간이라도 좋으니 빨리 들어가서 일하라"는 것입니다.

과거를 묻지 않습니다. 이미 잃어버린 시간, 잃어버린 세월에 대해서는 묻지 않습니다. 다만 말씀을 들은 그 시간에서부터 해질 때까지, 즉 더 이상 일할 수 없게되는 시간까지가 문제인 것입니다.

누구에게든지 하나님 나라의 백성으로서 하나님 나라에 가담하기 이전의 과거는 전혀 묻지를 않으십니다. 다만 말씀을 들고 깨달아 하나님 앞에 헌신하는 그 시간부터, 말씀에 응답한 바로 그 시간부터 묻겠다는 것입니다.
여기에 하나님께서 허락하시는 기회의 공평성이 있습니다. "누구나 일하라. 한 시간 남았더라고 일하라. 지난날을 후회하지 말고 일하라" 이 얼마나 중요한 말씀입니까? "너도 일하라. 지난날에 많이 놀았구나 그러나 과거는 묻지 않겠다. 이제부터 너의 남은 생을 내 포도원에 가서 일하라"
이것이 천국 백성입니다.

지난날의 못한 것을 후회할 필요가 없고 누구를 원망할 것도 없습니다. 이제부터 남은 생이 중요합니다. 분명히 끝은 다가오고 있는데 앞으로의 남은 생, 이 시간을 어떻게 보내느냐에 달렸습니다. "내가 앞으로 일을 해봐야 얼마밖에 못하는데 그 정도 일해서 어디에나 쓰겠나" 이런 생각할 필요가 없습니다. 주인이 듣고 싶은 말은 포도원에 가서 일하라고 말할 때 "예, 감사합니다"하는 말입니다. 주인은 이미 몇 번씩이나 장터에 나와 보았습니다. 그땐 무얼하고 지금 나왔느냐고 따질 것 같으면 아예 포도원에 들어가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이미 다 알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다른 변명도 핑계도 필요 없습니다. "예, 감사합니다"하고 가서 일하는 것입니다. 그런 게 자꾸 마음에 걸리면 이제 얼마의 시간이 남아있을지 모르지만 손발이 닳도록 충성해야지 하는 생각으로 들어가면 되는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천국은 이런 사람도 부름을 받는 곳입니다.
(오늘 밤 예배 시간에는 새가족 성경 공부 수료식이 있습니다. 평소에 주일 밤에 나오지 않는 분들도 오늘은 우리 교회 새롭게 등록해서 새가족 성경 공부를 마치고 믿음의 뿌리를 내리는 분들을 축복하는 자리이니 많이 나와서 축복해 주시기 바랍니다.)
오늘밤에 수료하시는 분들 중에 헛된 세월 다 보내고 이제야 교회에 나오게 된 것을 후회하시는 분들이 있는 줄 압니다. 예수님이 천국은 여러분과 같은 자들도 넉넉하게 함께 할 수 있는 곳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지난 세월에 지은 죄를 생각하니 부끄러운 분들도 있는 줄 압니다. 그러나 믿음이라는 것은 다르게 표현하면 '뻔뻔해지는 것'입니다. 무엇으로요? 말씀을 믿고 뻔뻔해지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말씀을 그렇게 하셨으니 나 같은 자도 다 용납하시고 받아 주심을 믿는 것입니다.

● 하나님과 나만의 관계
마지막 넷째, 하나님과 일대일의 관계 속에 살아야할 것을 말합니다.
이른 아침부터 온 사람이 주인에게 왜 그렇게 매서운 질타를 듣게 된 것입니까? 그는 주인과 자신과의 관계를 생각하지 않고 다른 사람과 비교를 하였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신앙 생활하면서 범하는 실수 중에 하나는 절대적인 가치를 놓치고 상대적 가치에 마음을 쓰는 것입니다. 기독교 신앙은 항상 절대적인 가치를 추구합니다.
'누구는 누구보다 낫다. 누구는 누구보다 더 많은 일을 했다. 누구는 누구보다 더 많이 헌금한다. 누구는 누구보다 더 잘 산다.' 이런 것들이 우리를 다 실족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우리는 다른 사람과의 비교를 통해 상 받거나 벌 받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다 우리 자신의 일로 직고하고 하나님 앞에서 판단 받게 될 것입니다.

우리가 구원을 받으려면, 다른 사람들보다 더 의로우면 되는 것입니까? 하나님이 우리를 천국에 입학하는 조건으로 '선한 점수 ,상위 30%안에 들면 합격이다'라고 말씀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은 상대적인 평가를 하지 않습니다. 꼭 점수로 천국에 가고 싶습니까? 선함의 점수 100점을 받으시기 바랍니다. 즉 절대적인 선함이 우리에게 있지 않으면 구원을 받을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는" 것입니다.
천국 시민은 다른 사람과의 비교를 통해 우월감 혹은 열등감을 가지는 사람이 아닙니다. 중요한 것은 단지 하나님과의 관계인 것입니다.
포도원 주인은 한 사람 한 사람을 상대하여 계산하였습니다. 한 사람 한 사람을 대할 때마다 첫 사람을 대하는 것처럼 대우해 주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신앙 생활하면서 주님만을 의식하시기 바랍니다. 자꾸 다른 사람들을 바라보거나 다른 사람을 의식하다가 실족하게 됩니다. 주님만을 보십시오. 다른 사람과 비교하지 마십시오. 우리 눈앞에 주님이 항상 먼저 계셔야합니다. 그래서 뒤에 있는 세상의 잡다한 것은 주님께 가려 보이지 않아야 합니다.
그런데 성도들이 세상을 주님보다 앞에 둡니다. 그러니 주님이 계신 것 같기는 한데 세상에 가려 주님이 보이지 않습니다. 이것 다 사단의 술수입니다.

예수님은 가이사랴 빌립보 지방에서 베드로가 예수님께 대한 신앙고백을 너무나 훌륭하게 잘해 놓고 주님의 십자가를 가로막는 실수를 했을 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사단아 내 뒤로 물러가라 너는 나를 넘어지게 하는 자로다. 네가 하나님의 일을 생각하지 않고 도리어 사람의 일을 생각하게 하는도다"
이게 무슨 말인가 하면 사단이 예수님 앞에 서 있어 하나님의 일을 생각하지 않고 사람의 일을 생각하게 만든다는 말입니다.

요21장에 부활하신 예수님이 갈릴리 바다의 어부로 다시 돌아간 제자들을 찾아가셔서 이들을 다시 회복시켜 주시고 베드로에게는 순교의 사명을 주십니다.
"젊어서는 네가 스스로 띠 띠고 원하는 곳으로 다녔거니와 늙어서는 네 팔을 벌리리니 남이 네게 띠 띠우고 원치 아니하는 곳으로 데려가리라"(요21:18)
자신의 미래를 듣게된 베드로는 요한의 마지막은 과연 어떻게 될까 궁금하였습니다. 그래서 묻기를 "주여 이 사람은 어떻게 되겠삽나이까"하고 물었습니다.
그 때 예수님의 답이 무엇이었습니까?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올 때까지 그를 머물게 하고자 할지라도 네게 무슨 상관이냐 너는 나를 따르라"였습니다.

베드로는 주님이 자신에게 주신 사명을 붙잡고 가야할 길을 걸으면 되었습니다. 그가 요한의 미래에 대한 관심을 갖기 시작하면 그때부터 그의 사명을 잘 감당할 수 없는 것입니다.
요한은 그렇게 오래 사는데 나는 왜 일찍, 그것도 처참하게 죽어야한다는 말인가! 받은 은혜는 귀하지만 날마다 돌아보면 이것이 시험거리가 되었을지 모릅니다. 하나님이 걸어가게 하시는 길이 다른데, 자꾸 다른 사람의 길을 보고 비교하며 기웃거리다가는 크게 실족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똑바로 보고 싶어요 주님 곁눈질 하긴 싫어요!"라는 노래를 아시죠?
육신의 장애를 가진 자들의 찬송입니다만 우리의 찬송이어야 합니다. 정말 다른 사람보지 않고 세상보지 않고 주님만 보고 우리의 믿음의 길을 가야할 것입니다.
주님은 이 포도원 품꾼의 비유를 통해서 천국에 합당한 삶은 바로 이런 삶이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제 주신 말씀의 결론을 내리면, 천국은 어떤 곳이냐, 천국은 어떤 원리가 통하는 곳이냐, 그것은 과거가 어찌됐던 상관하지 않고, 부름의 은혜를 받아 감격하고 그 은혜가 동기가 되어 충성스럽게 섬기는 자들에게 합당한 곳입니다.
천국 백성인 성도 여러분, 우리의 삶을 다시 돌아보아 천국 백성에 합당한 모습으로 사는 여러분이 되시길 축원합니다. - 아 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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