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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복의 가정과 저주의 가정"
  • 날짜 : 2006.01.29
  • 본문 : 사무엘상 2:18-26(구약411p)
  • 설교자 :
성경본문 및 요약
제목>축복의 가정과 저주의 가정

성경>삼상2:18-26

찬송>47, 233, 305



●들어가면서 - 설 명절에 생각해 볼 주제 ‘가정(가문)’

오늘은 주일을 설날 명절과 함께 맞이하였습니다. 우리 민족은 설날에 더욱 의미 있는 축복을 하였습니다. 그래서 가장 일반적인 설날 인사가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입니다. 요사이는 인사말이 점차 변해간다는 보도도 들었습니다. “건강하세요” “부자되세요” “로또 대박 터뜨리세요” 등.

그러나 복이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것이 분명한 것을 믿는다면 우리 성도들은 주일날 예배를 드리며 설을 맞이하는 것이 더욱 의미 있는 것 같습니다.

민속에서 설날은 객지에 있던 일가친척이 고향에 모여 어른들에게 세배를 하고 조상에게 차례를 지내는 날입니다. 오늘날에 있어 설날의 가장 중요한 의미는 평소에 잘 보지 못하던 가족, 친척들을 찾아 인사하며 안부를 묻는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어른들에게 하는 인사말 외에 손아래 사람이나 동서 간에 하는 안부 말도 조심해야 합니다. 오랜만에 만나 말 한마디에 상처받고 시험거리가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신문에 ‘말폭탄이 설 명절 망친다’라는 제하에 이런 말을 삼가라고 나왔습니다.

1. 처녀총각 아픈데 찌르기 - “장가가려면 직장은 잡아야지” “시집은 언제 가냐? 너도 많이 늙었다.”

2. 동서간 자기 과시하기- “설 보너스 얼마 받았어?” “월급은 제대로 나와?” “그 동네 아파트 값은 좀 올랐어?”

3. 며느리 면박주기-“좀 일찍 출발하지 그랬니?” “벌써 가게 네 남편 피곤하게 친정엔 뭣 하러 가냐?”

4. 부부간 트집 잡기 -“그래도 우리 어머니 시집살이에 비하면 당신은 아무 것도 아니야” “당신네 부모만 부모야”



사람 모인 곳에 문제가 있다고 명절에 일가친척들이 모인 곳에서 상처투성이의 모습으로 돌아올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 성도들은 세상의 일반적인 가치관으로 하는 말 때문에 속상하지 말고 예수님 때문에 행복한 사람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오늘 받을 말씀 제목은 ‘축복의 가정과 저주의 가정’입니다. 설날 주일을 맞이하여 가족, 가정을 생각할 수 있을 때 우리 자신의 가정을 한 번 돌아보는 기회가 되기를 바랍니다.

(사실 오늘 말씀의 배경은 삼상2:12-36절까지를 다 생각하는 것이 맞습니다.)



●비교되는 두 가정의 아들들

요즈음 새벽기도회의 말씀이 사무엘상인데, 오늘 이 본문의 말씀을 지나면서 대조되는 두 가정을 볼 수 있었습니다. 한 가정은 엘리 제사장의 가정이요, 다른 한 가정은 한나의 가정입니다.(물론 한나의 남편인 엘가나의 가정이라고 하는 것이 맞지만 한나가 우리에게 더 잘 알려진 인물이기에)

사무엘서의 저자는 의도적으로 이 두 가정을 비교하고 있습니다. 물론 그것은 엘리 제사장 가문이 왜 계속 이어지지 못하고 끝이 나게 되는가, 그리고 그 다음으로 제사장의 역할을 할 사람이 왜 사무엘이 되었는지 그 당위성을 말하려는 의도가 그 속에 깔려 있습니다.



오늘 먼저 생각할 것은 그들 각 가정의 자식들의 이야기입니다. 엘리의 아들들(4:17, 홉니와 비느하스)과 한나의 아들 사무엘의 이야기입니다.

시127:3에 『자식은 여호와의 주신 기업이요 태의 열매는 그의 상급이로다』, 시127:4 『젊은 자의 자식은 장사의 수중의 화살 같으니』라고 말씀합니다.

이 말씀은 어떤 한 사람의 인생에 있어 성공과 실패는 그의 다음 대(代)를 보면 알 수 있다고 말하는 것 같습니다. 아무리 성공한 사람이라고 하더라도 자식이 변변하지 못하면 무언가 떳떳하지 못하고, 실패한 사람도 자식 농사에 성공한 사람이면 당당한 것을 봅니다.



그런데 엘리의 아들들의 모습은 어떻습니까?

12절 말씀은 한 마디로 그들을 ‘불량자’(불량배)라고 하였습니다. 이 아이들이 무엇을 하는 아이들입니까? 제사장입니다. 그의 아버지는 대제사장이었고 아들들은 그 제사를 돕는 제사장인 것입니다. 그런데 불량배라니 말이 되는 말입니까?

이들은 제사장으로서는 차마 생각할 수 없는 죄를 범합니다. 여호와께 드리는 제물을 강탈하였습니다. 뿐만 아니라 성소에서 하나님께 봉사하는 여인들을 겁탈하였습니다. 아마 이들은 당시에 이방국가에서 제사를 드릴 때 행해졌던 음란한 성행위에 영향을 받았던 것 같습니다.

가문으로 말하면 당시에 최고의 가문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모든 사람들이 우러러 볼 가문입니다. 아론 반열의 대 제사장의 집안이 아닙니까? 그런 가문이 어떻게 하나 이렇게 되었습니까?



이들이 이렇게까지 된 원인과 결과를 요약적으로 나타내 주는 말씀이 있습니다.

12절 “엘리의 아들들은 불량자라 여호와를 알지 아니하더라”

17절. “이 소년들의 죄가 여호와 앞에 심히 큼은 그들이 여호와의 제사를 멸시함이었더라”



제사장의 아들들이 여호와를 모른다는 말은 상식선에서 말이 안 됩니다. 이 말은 여호와가 누구인지 모른다는 말이 아니라 여호와를 진정으로 경험하지 못하였다는 말입니다. 이들에게 여호와에 대한 지식은 단지 직업적인 지식이었지 진정한 신앙이 아니었다는 말입니다.

그러니 제사에 대한 진실함이 있겠습니까? 당연히 제사를 멸시하는 것입니다. 단순히 제사의 형식만 치르고 있는 것입니다. 그것도 제사를 드리면서 어떻게 제물을 빼돌릴까 하는 생각을 가지고서 말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의 자녀들이 잘 되려고 한다면, 우리의 자녀들이 축복의 자녀가 되려고 한다면 여기에 나타난 큰 두 원리만을 붙잡게 해도 된다고 믿습니다.

첫째, 여호와를 제대로 알게 하라!

둘째, 제사를 경건하게 드려라. 즉 예배에 목숨을 걸게 하라!



하나님을 아는 것은 머리로만 아는 것이 아닙니다. 그렇다고 가슴으로만 알아도 안 됩니다. 머리와 가슴이 함께 알아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지식으로 하나님을 알고, 더 나아가 우리의 가슴이 그 하나님 때문에 뛰어야합니다. 그리고는 하나님께 바로 경배하는 것입니다.



엘리의 아들과는 대조적으로 본문은 사무엘의 모습을 부각시키고 있습니다. 그는 어릴 적부터 성소봉사를 통해 거룩한 것들을 접하며 겸손과 섬김의 도를 배웠습니다.(11, 18) 또 사무엘은 성장해 가면서 더욱 하나님과 사람에게 은총을 입었습니다.(26) 즉 하나님도 그를 예쁘게 보셨고 사람들 또한 그를 예쁘게 보았다는 의미입니다.



●그들의 부모

그런데 대조되는 이 사무엘과 엘리의 두 아들에게 있어서, 간과해서는 안 되는 것은 이 아들 뒤에는 그들이 그토록 달리 성장하게끔 영향을 끼친 부모들이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엘리의 두 아들이 신앙을 잃어버리고 이후 도덕적로도 타락했던 것에는 그의 아버지 엘리 제사장의 잘못이 크다는 것입니다. 엘리 제사장이 그 아들들의 실상을 알고 난 뒤 그 아들을 책망하는 것이 23-25절에 나옵니다.

25절에, “이는 여호와께서 그들을 죽이기로 뜻하셨음이었더라”  - 엘리의 경책이 너무 늦었음을 말합니다. 이 말 속에 하나님은 그들이 속히 회개하기를 기다리셨다는 의미가 들어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심판을 결정할 때까지 계속 범죄하였다는 것입니다.

엘리는 그의 아들들을 효과적으로 책망하고 교훈하지 못한 책임이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우리가 엘리 제사장을 정말 형편없는 제사장으로 알면 안됩니다. 물론 그가 제사장의 직분을 제대로 수행했다고 볼 수는 없지만 그가 정말 부도덕한 사람이었고 비윤리적인 사람은 아니었습니다. 그는 제사장으로서 축복을 할 줄 알았고, 또 3장에 사무엘이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엘리 제사장이 부르는 줄 생각하고 엘리에게 가서 “나를 불렀습니까?”하고 묻기를 세 번째, 엘리는 사무엘에게 이렇게 가르쳐 줍니다. “여호와여 말씀하옵소서 주의 종이 듣겠나이다”

이 말은 엘리 제사장이 전혀 막힌 자가 아니라는 말입니다. 그리고 또 하나님이 자신을 부르지 않고 사무엘을 부른 것에도 시기하지 않았습니다.



엘리 제사장의 결정적인 실수는 그의 아들들을 하나님의 교훈과 말씀으로 가르쳐야 할 때 제대로 가르치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반면 사무엘 뒤에는 신앙적, 인격적으로 감화를 끼쳤던 경건한 부모들이 있습니다. 사무엘의 아버지 엘가나와 어머니 한나는 한 해를 마무리하면서 매년제를 하나님께 드렸습니다.(혹, 송구영신예배) 그리고 그때마다 사무엘에게 제사장이 입는 에봇에 받쳐 입을 겉옷을 지어주었습니다. 이것은 사무엘 부모의 신앙심과 애정을 동시에 볼 수 있는 장면입니다. 어린 아이를 성전에 두고 와야 하는 부모의 입장은 어떻겠습니까? 과연 마음이 편할 수 있었을까요?

우리교회 OBP로 한 달 떨어져있는 데도 아이들 전화 받고 울었다고 합니다.

한나가 사무엘을 쉽게 잊을 수 있을까요? 떨어져 있을수록 아이에 대한 애정은 더욱 강렬해지는 것입니다. 아직 한나는 다른 자식도 없을 때였습니다.

그러나 그의 부모들은 하나님께 드려진 아이에 대하여 그 선을 분명하게 그을 수 있었습니다.



한국 사람이 약한 부분이 정(情)이지 않습니까? 특히 자식에 대한 부모의 정은 맹목적이게 됩니다. 한국 부모의 자식에 대한 애정이 아이를 세우기도 하지만 아이를 망치게도 합니다. 사단은 우리의 약한 부분을 너무 잘 압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너무 과도한 아이에 대한 집착과 관심이 아이들 더욱 유약하게 만든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미국의 석유 왕 ‘록펠러’ 이야기

마지막으로 훌륭한 어머니 밑에서 신앙의 유산을 받을 유명한 한 사람의 이야기를 나누고 마치고자 합니다. 미국의 석유 왕 록펠러(Rockefeller, John Davison, 1839.7.8~1937.5.23) 이야기입니다.

록펠러 어머니의 신앙은 그녀가 아들에게 남긴 유언을 통해 짐작할 수 있습니다.

석유왕 록펠러의 어머니가 이런 10가지의 유언을 남겼다고 합니다.

첫째, 하나님을 친아버지로 섬겨라.

둘째, 목사님을 하나님 다음으로 섬겨라.

셋째, 오른 쪽 주머니에는 십일조를 준비해 두어라.

넷째, 원수를 만들지 말라.

다섯째, 항상 앞자리에 앉아서 예배를 드려라.

여섯째, 아침에는 그 날의 목표를 세우고 하나님께 기도하라.

일곱째, 잠자리에 들기 전에 하루를 반성하고 기도를 드려라.

여덟째, 남을 도울 수 있으면 힘껏 도와라.

아홉째, 주일예배는 꼭 자기 교회에서 드려라.

열째, 아침에는 먼저 말씀을 읽어라.



록펠러는 가난한 집에서 태어났지만 믿음이 좋았던 어머니를 만나 어렸을 때부터 제대로 신앙훈련을 받고 자랍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신앙생활에 한번 이상 위기를 맞이합니다. 그것이 겉으로 드러나기도 하고 그렇지 않기도 할 뿐입니다.

록펠러는 그의 나이 44세 때에, 그는 미국 석유산업의 90%를 차지하는 스탠더드 석유연맹의 총수로 부상할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이 그에게 엄청난 복을 주신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으로 그는 결코 만족하지 않았습니다. 세계 제일의 부자가 되기 위해 불철주야로 매달립니다. 휴일도 없고 친구도 없고 이웃도 없습니다. 그는 오직 일에만 몰두합니다. 그래서 그야말로 세계 제일의 부자가 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의 인생에 또 한 차례 어두운 그림자가 찾아옵니다. 53세 때부터 그의 몸이 점차 쇠약해지기 시작합니다. 담당 의사는 앞으로 5년을 넘기기 어려울지도 모른다고 말합니다. 그는 주님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돈 버는 데 혈안이 되어서 점점 주님으로부터 멀어져 갔고 그래서 마침내 그토록 탈진하고 만 것입니다. 록펠러는 다시 주님에게로 가까이 나아갑니다. 그리고 주님 곁에서 겸손하게 배웁니다.

드디어 그는 결심합니다. "지금까지 나는 나자신을 위해서 살아왔다. 그러나 이제부터는 하나님을 위해서 살고 이웃을 위해서 살겠다." 그는 그 위대한 사랑의 계명(마22:37-39)을 직접 실천하기로 마음먹은 것입니다. 그는 6,000만 달러가 넘는 돈을 투자해서 시카고대학교를 설립합니다. 그는 리버사이드교회도 세웁니다. 록펠러의학연구소도 세우고 록펠러재단을 세웁니다. 그는 불쌍한 사람들을 위해서 많은 돈을 내놓습니다.

그는 총재산의 절반이 넘는 5억3천만 달러나 되는 돈을 자선사업에 쏟아 부었던 것입니다. 물론 그는 계속해서 십일조 생활을 했습니다. 나중에는 십이조, 십삼조를 하다가 결국에는 십구조까지 했다는 것입니다.

그의 십일조만을 따로 계산하는 회사도 있었다고 합니다. 그는 참으로 많이 벌었고 또 많이 내놓았습니다.

나누어주는 자는 당대뿐만 아니라 후대에도 계속 복을 받게 됩니다. 록펠러는 후대에도 계속 복을 받았습니다. 그의 사업을 이어받은 록펠러 2세는 명문 브라운대학교를 졸업한 수재였고 아버지의 사업을 더 한층 빛낸 인물이 되었습니다. 록펠러의 자손들도 하나 같이 미국 동부의 명문 아이비리그를 졸업한 수재들이었습니다. 그들은 부통령, 재무장관, 대통령 특보, 뉴욕주지사, 아칸소 주지사, 은행가, 자선사업가가 되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중요한 것은 우리에게서 다음 대가 결정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유대인 탈무드에 “어리석은 부모는 물질을 남기고, 양식있는 부모는 지혜를 남기고, 지혜있는 부모는 신앙을 남긴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성경에 중요 사상 가운데 하나가 언약의 사상입니다. 그것은 그 언약이 당대에만 적용이 되는 것이 아니라 주님이 재림하는 날까지입니다. 언약은 당대에만 그치는 것이 아닙니다. 그 언약의 효력은 천국에까지입니다.

예)아브라함의 할례 - 유아세례의 경우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주님 오실 때까지 축복의 가정으로 경건한 믿음의 대를 잇는 복된 가정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 아 멘 -(2006-01-29, 설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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