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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오전예배

로마교회안의 사람들
  • 날짜 : 2005.12.11
  • 본문 : 로마서 16:1-16 (신약262p)
  • 설교자 :
성경본문 및 요약
제목> 로마교회 사람들

성경> 롬16:1-16

찬송> 245, 249장



지난 주일에 우리는 ‘교회의 영광’이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받았습니다. 교회는 이 세상에서 가장 영광스러운 기관입니다. 그 이유는 하나님께서 교회를 통하여 하나님의 구원의 계획을 이루어가시기 때문입니다. 교회를 통하여 하나님 자신을 선포합니다.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의 피를 값으로 지불하고 세워진 하나님의 가장 소중한 공동체입니다. 교회를 통하여 이 세상과, 국가와, 사회와 가정과 개인이 축복을 받습니다. 그러기에 교회는 이 세상에서 가장 영광스런 곳입니다.



오늘은 그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에 대해서 생각해 보겠습니다. 교회란 기구와 체계만 세워진 조직이 아니라 결국 사람들이 모여야 이루어집니다. 그러나 그 사람들은 세상에서 말하는 일반적인 사람들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영접한 자들입니다. 그들은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거룩하게 된 자들입니다. 그래서 그들을 ‘성도’라 부릅니다. 바로 이들이 모여 이룬 신앙공동체가 교회입니다. 쉽게 말해서 나와 너, 우리들에 대해서 생각해봅니다.



로마서는 바울이 로마교회에 쓴 편지입니다. 로마교회는 바울이 개척한 교회가 아닙니다. 그렇다고 바나바가 개척한 곳도 아니고 다른 사도들이 개척한 곳도 아닙니다. 많은 학자들이 로마교회가 세워진 것은 오순절 날 예루살렘에 올라왔던 사람들 중에는 로마에서 온 사람들도 있었는데 이들이 성령의 역사를 직접 체험하고 하나님의 큰 역사를 보고 회개하고 돌아가서 교회가 설립되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예루살렘에 가까이 있어 사도들의 지도를 받을 수 있는 교회도 아니었고, 그렇다고 바울과 같은 탁월한 신학자가 있었던 교회도 아니었습니다. 오순절 날에 큰 은혜를 받고 로마로 돌아갔고 점점 더 성도들은 늘어났지만 이들을 지속적으로 하나님의 말씀으로 가르칠 수 있는 사람이 없었던 것입니다. 이들이 교회를 이루었다고는 하지만 성경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이상, 유대인이 계속해서 강조해 왔던 율법의 범위를 벗어나기는 힘들었을 것입니다. 특히, 로마교회는 다른 교회들보다 이방인들이 많았던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완전한 복음을 이해하지 못한 자들은 이방인들에게 너희들도 진정한 구원을 받고 싶거든 구약의 율법을 지켜야 한다고 강조했을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의 로마서가 다른 어떤 서신보다 복음에 대한, 구원에 대한 체계적인 내용으로 더욱 구체적으로 가르치는 서신이 된 것입니다. 그러나 오늘 우리가 살펴보려고 하는 것은 구원에 관한 교리가 아닙니다. 우리는 이미 그 구원의 문제를 끝낸 자들이 모여 이룬 교회의 구성원인 성도랄 일컫는 사람들에 대한 관심입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 각자가 얼마나 대단하고 소중한 자인지 아십니까?

바울이 예수님을 믿지 않았던 때, 사울이라는 이름으로 살고 있을 때였습니다. 그는 예수님을 정말 싫어했습니다. 그러니 예수를 믿는 사람 또한 얼마나 싫었겠습니까? 예수를 핍박하고 싶어도 그는 눈에 안 보이고 예수쟁이들은 자신의 눈에 보이니 그들을 가만 둘 리가 없었습니다. 그는 정말 유대인 중의 유대인이요 바리새인으로서 율법에 철저했던 자였습니다. 율법은 자신과 민족의 소망이었습니다.

그는 예수 믿는 사람들을 잡아 죽이는 것이 하나님과 자신의 나라를 위하는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이 일에 자신의 목숨을 걸 생각이었습니다.

열심히 예수쟁이들을 잡아 넘기는 일을 하고 있는데 하루는 또 다메섹에도 예수쟁이들이 있다는 소식을 듣고 그들을 잡아 넘기기 위한 공문을 받아 들고 다메섹 길을 가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그 길에서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게 됩니다. 갑자기 그에게 환한 빛이 그를 비추는데 너무 눈이 부셔 실명이 된 것 같은 상태가 되었습니다. 그는 말합니다. “주여 뉘시나이까?” 바로 그때 그 하얀 빛에서 소리가 나기를 “나는 네가 핍박하는 예수라”는 말을 듣습니다.

우리는 여기서 아주 중요한 사실을 알게 됩니다. 바울은 직접 예수님을 한번도 핍박한 적이 없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지금 네가 나를 핍박하였다고 말합니다. “네가 핍박하는 예수”라고 말하였습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은 예수 믿는 성도들을 자신과 동일시 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성도들이 핍박을 받으실 때 자신의 핍박으로 받으셨습니다. 성도들이 고난을 받고 고통 속에서 신음할 때 자신도 함께 신음하였습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가 바로 그런 자들입니다. 얼마나 대단한 자들인지요, 얼마나 소중한 자들인지요!



우리는 로마서 16장에서 많은 이름을 대하게 됩니다. 바울은 이름을 거론하여 이들에게 문안인사를 부탁합니다. 이 이름들은 편지를 마무리하기 위해 형식적으로 거론된 사람들이 아닙니다. 오히려 이 사람들은 15장까지 장구하게 쓴 편지의 주제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즉 왜 바울이 이렇게 긴 편지를 써 로마교회에게 보내느냐? 그것은 이 교회 안에 있는 바로 이 사람들 때문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바울에게 이 사람들은 얼마나 귀하고 소중한 사람들이냐 하는 것이 구절마다 잘 나타나 있습니다.

여기에 나타난 사람들을 통하여 우리 교회와 우리 자신을 돌아봅시다.



●평신도 여자 집사 뵈뵈

먼저, 바울은 한 사람을 로마교회에 소개합니다. 자신이 직접 로마를 방문하고 싶은 생각이 간절하지만(15:13) 그럴 형편이 되지 못해 자신의 편지를 전달해 줄 신실한 사람을 소개한다고 말합니다. 그 사람은 ‘뵈뵈’라는 사람입니다.

이 사람은 겐그레아 교회의 여집사입니다. 바울은 지금 고린도에서 이 서신을 쓰고 있는데 겐그레아는 고린도 바로 옆에 있는 조그만 항구입니다. 고린도에서 배를 타려면 이 겐그레아 항구를 이용해야 했습니다. 고린도에 복음이 들어가자 이웃에 있는 이 항구마을에도 복음이 전해졌고 겐그레아 교회도 설립되었습니다. 그런데 이 교회는 그렇게 많은 성도들이 모인 교회는 아닌가 봅니다. 고린도에 비해 적은 마을이었습니다. 그러나 이 교회에는 신실한 여집사가 있었습니다. 그 사람이 바로 뵈뵈입니다.

여기에 ‘일꾼’이라는 말은 ‘집사’라는 말과 같습니다. 그리고 자매라고 되어 있으니 여자 집사입니다. 또 바울은 로마교회가 이 여 집사를 잘 영접하고 그의 편의를 봐 줄 것을 부탁하면서 이 여집사가 “여러 사람과 나의 보호자가 되었다”고 말합니다.

여기 ‘보호자’라는 말은 물질로써 든든한 후원자 역할을 하였다는 의미입니다. 그녀가 어떻게 복음을 받고 예수를 믿게 되었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그녀는 분명 예수 믿고 변화되어 은혜를 받고 교회의 중추적인 일꾼이 되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그녀는 바울뿐만 아니라 복음을 위한 사역자들에게 물질로써 후원하였습니다. 그들이 물질의 걱정이 없도록 만들어 주었습니다.

바울은 본래 자비량 선교를 시작한 사람이었습니다. 즉, 다른 사람의 재정 후원없이 자신의 직업으로 일을 해서 자신의 생활비를 해결하면서 복음을 전한 사람입니다. 그의 직업은 텐트를 만들어 치는 것이었습니다. 여기에서 자비량선교를 ‘텐트 메이커’(tent-maker)라고 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바울의 사역이 점점 더 많아지자 자비량 선교를 하면서 모든 사역을 다 할 수 없었습니다. 하루 꼬박 복음을 전하고 개종한 사람을 가르치고 하는 일만으로도 시간이 모자랄 판이었습니다. 그리고 사역을 하는데도 자연히 돈이 들었습니다. 바울이 복음에 전념하기 위해서는 이런 걱정에서 해방되도록 그에게 든든한 후원자가 필요했습니다. 이 일을 도왔던 사람, 바로 그가 바로 겐그레아 교회의 여집사 뵈뵈였던 것입니다.

모든 사역에는 물질이 따릅니다. 그런데 그 물질은 복음에 함께 헌신한 자들을 통하여 제공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복음을 전할 때에도 물질은 역시 필요했습니다. 예수님이 오병이어의 기적을 일으키고 칠병이어의 기적을 일으키니 예수님에게는 돈이 필요없는 줄 아십니까? 아닙니다. 예수님은 12명의 제자 가운데 한 명은 회계를 맡게 할 정도로 돈이 필요했습니다. 어떤 목사님이 예수님의 사역비를 계산을 해 보았더라고요. 예수님과 12제자가 한 끼 먹는 데 3천원씩 13명이면 모두 3만 6천원. 세 끼를 먹어야 하니까 하루에만 십만 8천원이 듭니다. 한 달이면 예수님과 제자들이 먹는 데만 300만원이 넘는 돈이 듭니다. 1년이면 3천 6백만원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과 제자들은 쉽게 말하면 실업자들이었습니다.

그러면 예수님의 사역에서 돈은 어디에서 나왔습니까? 예수님이 물도 포도주가 되게 하는 능력이 있으시니 돌을 금으로 변하게 해서 팔아 이 돈을 댄 것입니까?

누가복음 8:3에 보니 예수님과 제자들의 사역비를 대준 스폰서가 있었습니다. “또 헤롯의 청지기 구사의 아내 요안나와 또 수산나와 다른 여러 여자가 함께 하여 자기들의 소유로 저희를 섬기더라”

우리 교회에도 복음을 위해 사람을 살리기 위해 물질의 복을 많이 받으시고 그것으로 복음과 그 일을 위한 사역자를 위해 즐겁게 스폰서하는 성도들이 많이 일어나시기를 축원합니다.



그런데 더 대단한 일은 그 다음입니다. 이 뵈뵈라는 여집사가 바울의 편지를 로마에까지 전달하는 역할을 합니다. 이 여집사가 정말 대단한 여집사인 것 같습니다. 당시에 편지라는 것은 두루마리에 쓴 편지입니다. 로마서가 16장까지니까 분명 큰 짐이 두 개 정도는 되었을 것입니다. 남자들도 하기 힘든 항해 길을 이 큰 짐을 가지고 로마에 전달해 주는 역할을 바로 이 여집사 뵈뵈가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바울은 다른 사람들이 있을 것임에도 이 일에 더욱 든든한 적임자로 평신도 여집사 뵈뵈를 천거하여 보냈다는 사실입니다.

교회가 더욱 든든해지고 힘이 있으려면 바울 같은 사역자도 필요하지만 뵈뵈 같은 평신도 여집사들이 많이 필요합니다. 이와 같이 신신한 하나님의 종들이 되기를 사모하시고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3절부터 16절까지는 로마교회 성도들이 나옵니다. 바울은 이들 한 사람 한 사람을 거명하며 그들에 대한 너무나 좋은 추억담을 이야기하며 문안인사를 부탁합니다.

이들을 한 사람씩 살펴보는 것은 어려울 듯합니다. 다음 기회에 살펴보기로 하고 여기에 나타난 사람들의 공통점과 로마교회의 특징을 통하여 하나님이 우리교회에 주시는 교훈을 보겠습니다.



1)한결같이 충성된 성도들이 많은 교회입니다.

바울이 로마교회 성도들에게 안부인사를 전해주길 부탁하면서 ‘동역자’(3-브리스가와 아굴라, 9-우르바노와 스다구)라고 언급한 사람들과 ‘수고’라는 단어를 붙여 언급한 사람들이 많다는 것입니다.(6-마리아, 12-드루배나와 드루보사, 버시)

바울이 그렇게 많을 일을 효과적으로 수행할 수 있었던 것은 이들과 같은 사람들이 교회를 함께 섬겼기 때문입니다. 바울이 이들의 이름을 거명하면서 그냥 이름만 쓸 수 없는 자들이었습니다. 이들 앞에는 동역자, 그리고 수고라는 단어를 함께 붙여야 했던 자들이었습니다.

교회에는 충성된 교역자도 필요하지만 신실한 평신도도 많이 있어야 합니다. 오늘날 교회의 특징은 평신도들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이들은 교회를 봉사하는데 교역자들 못지않게 역할을 해 냅니다. 그러면 이들이 무작정 열심을 가지고 봉사를 하였는가? 그건 아닙니다. 이들은 훈련된 평신도들이었습니다.

바울이 첫 번째 동역자라고 말한 브리스가와 아굴라 부부를 생각해 보십시다.

이들이 바울을 첫 번째 만난 것을 고린도에서였습니다. 이들 부부는 본래 로마에 살았습니다. 그런데 글라우디오 황제의 유대인 추방령이 내려지자 로마를 떠나 고린도로 온 것입니다. 그때 그들은 고린도에서 생각지 않게 바울을 만났고 바울과 직업이 같아 함께 일하면서 바울의 동역자가 되었습니다. 이들이 얼마나 충성된 자들이었냐면 바울은 4절에 “내 목숨을 위하여 자기의 목이라도 내어놓았나니”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들이 훈련된 자들이었다는 것은 바울이 떠난 뒤 이들은 에베소에 머물렀는데 에베소 교회에 아볼로라는 사람이 와서 말씀을 전하게 되었습니다. 아볼로는 구약성경에 능통하고 학문도 깊은 자였습니다. 이 부부가 아볼로의 설교를 들으면서 아볼로가 탁월한 설교자가 되기 위해서 그에게 부족한 성령님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조용히 아볼로를 불러 성령의 역사에 대해 가르쳐주게 됩니다. 그후 아볼로는 더욱 능력있는 설교자가 되어 후에 고린도교회에 막강한 영향을 미치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지혜롭고 충성된 종들이 되기 위해 훈련을 많이 받으시기를 바랍니다.

훈련받는 일이 중단되면 여러분의 신앙은 퇴보된다고 생각하셔야 합니다. 요사이 어떤 일을 해도 재교육을 받고, 기회가 될 때마다 새로운 것에 대한 연수를 하게 됩니다. 목사님들 세미나를 가도 이전하고 얼마나 다른지 모릅니다. 아침부터 저녁 늦게까지 훈련합니다. 좀 쉴 수 있을까 생각하고 갔다가는 실망하고 돌아옵니다. 아무렇게나 해서 충성된 종이 될 수는 없습니다.

우리 교회에도 이렇게 잘 훈련되어 충성된 종들이 많이 나올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2)가정교회가 활성화된 교회였습니다.

5절에 ‘저희 교회’라는 말이 나오는데 그것은 로마교회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브리스가와 아굴라의 집에서 모인 가정교회를 말합니다. 또 14절에 “저희와 함께 있는 형제들에게”라는 말과 15절에 “저희와 함께 있는 모든 성도들에게”라는 말이 나옵니다. 이것은 모두 가정에서 함께 모여 예배를 드리는 공동체가 있었다는 것을 말해줍니다. 즉 가정교회입니다. 가정교회라고 해서 자신의 가족들끼리 모인 교회가 아니라 자신의 가정을 예배의 처소로 해서 모인 교회라는 말입니다.

당시에는 회당에 모여 드리는 예배가 아니면 큰 예배의 처소가 없었습니다. 그러니 자연히 어떤 한 가정을 중심으로 해서 모이는 교회가 많았고 그들 스스로 연락을 취하면서 서로 교류를 하였던 것입니다. 오늘날 중국의 지하교회가 그렇습니다.

이를 오늘날 우리의 현실에서 적용을 시키면 구역예배와 같은 것입니다.

요사이 교회를 말할 때 교회에는 두 날개가 필요하다고들 말합니다. 그 첫 번째 날개는 전체회중이 모이는 예배입니다. 또 다른 한 날개는 소그룹 모임입니다. 이는 초대 예루살렘교회에서도 잘 나타났습니다. 예루살렘 교회는 솔로몬 행각에 많은 사람들이 모여 야외집회를 했습니다.(행5:12) 그리고 성전집회도 병행했습니다. 오늘날 우리 교회로 말하면 주일을 기해 모이는 회중예배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예루살렘 교회의 또 하나의 특징은 집에서 모이는 모임이었습니다. 그들은 사도들의 가르침을 받고서는 곧 집에 모여 이 가르침을 실천하였습니다. 그 모임은 애틋한 교제가 동반한 소그룹모임이었습니다. 그후 교회의 역사는 집에서 모이는 가정 교회의 형태를 주로 하여 복음이 확장되어 갔습니다. 그래서 신약 성경에 **의 집에 있는 교회라는 말을 자주 접하게 되는 것입니다.(고전16:19; 골4:15; 몬1:2)

행2:46에는 이 두 모임을 정확하게 말하고 있습니다.

“날마다 마음을 같이하여 성전에 모이기를 힘쓰고 집에서 떡을 떼며 기븜과 순전한 마음으로 음식을 먹고”



우리교회에도 이 두 날개는 함께 비상해야 합니다. 모든 성도는 주일날 교회의 예배뿐만이 아니라 주중에 가정에서 드리는 구역예배를 통하여 성도의 교제를 나누고 주일 예배에서 취할 수 없는 영적인 유익을 취할 수 있어야 합니다.

구역예배에 참석하시기 바랍니다.



3)그리스도 안에 진정 하나된 공동체

바울이 거명한 이름은 26명입니다. 그런데 이 사람들을 분석하면 다양한 부류의 사람들이 들어있음을 알게 됩니다.

먼저, 이 이름에는 로마인이 있습니다. 헬라식의 이름을 가진 자도 있습니다. 노예의 주인도 있고 노예도 있습니다. 아리스도불로의 ‘권속’(10), 나깃수의 ‘권속’(11)이라는 말은 그 집안에 노예를 말합니다. 스다구(9)는 황제가문으로 보여지는 이름입니다.

그 명단에는 남자도 있고 여자도 있습니다. 이 이름 중에서 7명이 여자입니다. 여자들의 이름이 이렇게 중요하게 기록되었다는 것은 그 당시로는 파격적입니다. 당시에는 여자들의 한 마디로 사람 취급을 하지 않고 남자의 부속품과도 같았습니다. 당시에 활동했던 세네카라는 철학자의 토론에서 “여자에게도 영혼이 있는가?”라는 주제의 토론이 되었습니다.

율리아(15)는 귀족의 여자노예의 이름으로 보여집니다.

그러나 기독교는 성경의 말씀을 토대로 성별을 초월하여 사람의 소중함을 인정하였습니다.

자매라는 말과 어머니라는 말도 나옵니다.

종합해보면, 로마교회는 인종을 초월하고, 민족을 초월하고, 신분을 초월하고, 성별을 초월하고, 귀천을 노소를 초월하여 모인 교회였고 이들을 교회는 다 인정하였습니다.

여기에서 가장 중요한 말은 ‘주 안에서’(8,12,13) ‘그리스도 안에서’(3,7,9,10)입니다.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이든지 일단 주 안에 들어오면, 그리스도 안에 들어오면 그들은 교회의 한 일원이 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교회를 돌아봅시다. 우리의 구역과 지회를 돌아봅시다. 우리의 교제공동체를 돌아봅시다. 우리가 속한 공동체는 사람을 살리는 공동체입니까 아니면 죽이는 공동체입니까? 그리스도의 진정한 생명이 없으면 그리스도의 이름을 모일지라도 사람을 죽이게 됩니다.



이제 진정 그리스도의 사람들로 하나님의 교회에 진정한 일꾼으로 세워지고 하나님의 교회를 더욱 교회답게 세워가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 아 멘 - (주후2005-1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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