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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오전예배

목 마르다. 다 이루었다
  • 날짜 : 2005.11.27
  • 본문 : 요 19:28-30
  • 설교자 :
성경본문 및 요약
●들어가면서 - 목마른 인생들

-이건희 회장 딸 윤형씨 사고사 아닌 자살

-일제징용 조선인 유골 138위 유족확인

-혼자 사는 70대 할머니 숨진 지 20여 일만에 발견

-“이 세상이 싫다” 학교폭력 희생자들의 마지막 절규

-문 열고 현금 운반하다 털려

-애인 뒤따라 목숨 끊어

이상의 제목은 어제 일간신문의 사회면의 사건 사고란에 기록된 기사제목입니다.



우리나라 최고의 갑부 이건희 회장의 딸 윤형씨가 교통사고 사망이 아니라 자살했다는 것은 더욱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합니다. 대부분의 일반 시민들은 그 사람이 무엇이 부족해서 자살을 하냐고 말합니다.

사람들은 이 세상에 대해 말할 때 ‘돈으로 안 되는 것이 없는 세상’이라고 말합니다. 이 말은 세상의 신이 돈이라는 것을 말해줍니다. 이것은 부인하기 힘들 것 같습니다. 우리의 고민거리가 대부분이 돈과 관계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오해합니다. 돈만 있으면 된다고 말입니다. 하나님만 있으면 된다고 말해야 하는데 돈만 있으면 된다고 하니 돈이 하나님이라고 말하는 것이 지나친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우리나라 최고의 갑부인 이건희 회장의 딸이 자살을 했다는 것만으로도 우리의 생각이 얼마나 잘못된 것인가를 알 수 있는 것입니다. 그래도 우리는 죽어도 돈에 깔려 죽어보고 싶다고 말할지 모르겠습니다만 분명한 것은 인생은 분명 그 무엇으로 채울 수 없는 목마름을 가지고 산다는 것입니다.



이 목마름, 갈증은 어디에서 온 것입니까? 우리의 죄에서 옵니다. 인생의 모든 문제의 출발점은 죄입니다. 예레미야2:13에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죄를 지적하면서 이렇게 말합니다. “내 백성이 두 가지 악을 행하였나니 곧 생수의 근원되는 나를 버린 것과 스스로 웅덩이를 판 것인데 그것은 물을 저축지 못할 터진 웅덩이니라”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에게 자신을 생수의 근원이라고 소개하셨습니다. ‘생수’라는 말을 들을 때, 이스라엘 백성들이 느끼는 것과 우리가 느끼는 것은 큰 차이가 있습니다. 우리나라처럼 산과 계곡이 있어 어디를 가나 물을 볼 수 있는 나라는 생수의 고마움을 피부에 와 닿게 느낄 수 없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비가 잘 오지 않습니다. 성경에 말하는 이른비 늦은비 두 번이 끝나면 아예 비를 기대할 수 없습니다. 우리나라처럼 봄비, 여름에는 태풍을 동반한 폭우,, 가을비, 겨울 눈 이런 것이 없다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이들에게서는 생수라는 것은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모릅니다. 그래서 고대 이스라엘에서 우물을 가졌다는 것은 얼마나 큰 부자였는지 모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이스라엘이 행한 악 가운데 가장 큰 악이 곧 생수의 근원인 자신을 버린 것과 자기 스스로 웅덩이를 판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본래 인간은 하나님과 함께 사는 존재로 기쁨과 즐거움을 누렸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사는 것이 최대의 기쁨이었습니다. 바로 그런 에덴동산에서 인간은 아무 부족한 것이 없었습니다.(♬ “나는야 친구되신 하나님과 푸른초장 한 없이 거니네 손을 잡고 기쁨을 나누면서 단 둘이서 한없이 거니네 손을 잡고 기쁨을 나누면서 단 둘이서 한 없이 거니네)

사단이 인간에게 다가와 하나님의 말씀에 거역하도록 교묘하게 유혹하였습니다. 인간은 점점 더 미혹되어 갔습니다. 결국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야 할 인간은 사단의 말을 듣고 말았습니다. 이것이 바로 죄입니다. 인간은 사단의 종이 되었고 사단이 조장하는 죄를 따라 사는 자가 되었습니다.

그 후로 인간에게는 목마름이 시작되었습니다. 만족한 인생은 부족함으로 허덕이게 되었고 수고하고 땀을 흘려도 무엇인가 모르게 항상 부족하였습니다. 남자는 어떤 일을 해도 항상 채우지 못한 부족함을 느끼게 되었고, 여자는 남자가 옆에 있어도 불안하였습니다. 선에 대한 욕구는 있지만 한번 범한 죄는 항상 사람을 짓눌렀고 결국 죄의 노예가 되어있는 자신을 처량하게 보아야 했습니다.



●“내가 목마르다.”

그런데 성경에는 이 모든 인생의 목마름을 대변하는 목마름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예수님의 십자가에서의 목마름입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 달려 ‘내가 목이 마르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분은 이런 목마름을 느껴야할 이유가 없는 분이었습니다. 예수님은 ‘하늘은 나의 보좌요 땅은 나의 발등상이라’고 하였습니다. 그 분은 천지를 창조하신 창조주였습니다. 그 분은 풍랑 이는 바다를 말씀으로 잔잔케 하신 분입니다. 그분은 죽은 사람을 살려내셨습니다. 그분은 하나님과 동일한 분이셨습니다. 그분 안에는 하나님의 신성의 모든 충만이 육체로 거하시는 분이었습니다.(골2:9) 그분은 하나님이셨습니다.

이런 분이 목마를 이유가 없습니다. 그러나 그는 이 세상의 모든 사람의 목마름을 대신하기 위하여 십자가에 달려 “내가 목마르다”라고 외쳤습니다.

고후8:9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너희가 알거니와 부요하신 자로서 너희를 위하여 가난하게 되심은 그의 가난함을 인하여 너희로 부요케 하려 하심이니라”

이미 예수님 탄생 600년 전에 이사야 선지자는 예수님을 가리켜 말하기를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라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도다”(사53:5)라고 말했습니다.

예수님의 목마름은 실로 죄인으로 목마른 우리들을 위한 것이었습니다.



●“다 이루었다.”

십자가에서 예수님이 숨을 거두시기 전 마지막으로 한 말이 바로 “다 이루었다”였습니다. 이 말은 예수님의 생애와 십자가의 고난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보여주는 핵심적인 말입니다.

‘다 이루었다’라는 말은 헬라어 원어로는 ‘테텔레스타이’입니다. 그 뜻은 ‘값을 다 치렀다’입니다.

‘값을 다 치렀다?’ 이 말의 의미는 무엇이겠습니까? 이 말은 그 당시에 널리 쓰이던 말입니다. 시장에서 쉽게 듣던 말이며, 일상생활에서도 흔히 쓰던 말이었습니다. 물건을 살 때 값을 지불하면, 상인은 “테텔레스타이”라고 말합니다. 즉 “당신은 값을 다 치렀습니다. 이 물건은 당신의 것입니다.”라는 의미입니다. 채권자에게 빌린 돈을 갚았을 때에도 “테텔레스타이”라고 말합니다. 이제 빚을 다 갚았다는 뜻입니다. 이제 차용증서는 찢겨집니다. 돈을 빌린 사람은 더 이상 빚을 준 사람에게 주눅 들지 않아도 됩니다. 빚을 다 갚았기 때문입니다.

노예가 자유인이 되고 싶지만 스스로의 힘으로는 불가능합니다. 몸값을 지불할 돈을 모아도 안 됩니다. 노예에게는 소유가 허락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노예가 무엇을 가지면 모든 것은 주인의 것이 됩니다. 그러나 누군가가 몸값을 내어주면 자유를 얻을 수 있습니다. 누군가가 몸값을 지불하면 주인은 그 돈을 받고 “테텔레스타이”라고 말합니다. 몸값이 치러졌다는 것입니다. 노비 문서는 찢깁니다. 그리고 그에게는 자유가 선포되고 이제 그는 전직 노예가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테텔레스타이”라고 마지막 말하고 숨을 거둔 것은 예수님의 십자가가 우리의 모든 것을 다시 회복하게 했음을 말해주는 것입니다.

죄의 노예가 되어 있는, 사단의 노예가 되어 있는 우리를 자기 소유로 삼으시기 위해서, 가장 고귀한 자신의 생명으로 몸값을 지불하신 것입니다.



●내게로 와서 마셔라!

죄의 노예 된 우리를, 사단의 노예 된 우리를 십자가에서 자신의 생명으로 우리 대신 값을 지불하신, 즉 ‘테텔레스타이’하신 예수님은 자신을 우리에게 다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 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리라”(요7:37-38)

예수님은 우리의 조상 아담이 잃었던, 그리고 택한 백성 이스라엘 백성이 범죄함으로 잃었던 바로 그 생수로 자신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그리고는 ‘목마른 자는 자신에게 와서 마셔라’고 초청합니다. 특별한 자격을 말하지 않습니다. ‘누구든지’ 와서 마셔라고 합니다. 그러나 한 가지 조건이 있습니다. “나를 믿는 자는”입니다. 여기서 믿는 것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그렇게 목말라하신 것은 바로 나 때문에, 나를 위해서 하셨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내가 너를 위해 이미 십자가에서 다 목이 말랐으니 너는 더 이상 목마를 필요없다’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만나 주신 사마리아 수가성 여인을 생각해 봅시다. 이 여인의 고달픈 인생은 그가 다섯 남자를 갈아 치웠지만 지금의 남자도 자신의 남편이라고 말할 수 없다는 것에서 알 수 있습니다. 이 여인의 인생이 얼마나 목마르냐는 것은 그녀가 다른 사람들이 너무 더워 밖을 나오진 않는 팔레스틴의 정오 시각에 우물가에 물을 떠온 사실로 상징화됩니다. 그러나 이 여인이 물 뜨기 위해 나온 그 우물에서 예수님을 만나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하였습니다. 인생의 갈증이 해소되는 순간이었습니다. 그는 자신의 물동이를 버려두고 마을로 들어가 “내가 메시야를 만났다”고 외칩니다. 그녀는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기 시작했던 것입니다.



오늘 여러분이 성찬을 대할 때 주님의 살을 기념하는 떡을 뗄 때, 피를 기념하는 잔을 마실 때, 여러분은 다시 예수님을 여러분의 가장 소중한 분으로 모셔들이시기 바랍니다. 그곳에서 다시 생수의 강이 흐르기를 소원하십시오.



●마치면서 - 그 분으로 채우라!

어거스틴은 헬라 철학과 로마 문물을 한 몸에 익힌 사람이었는데 그의 고백은 이러하였습니다. "당신의 영광을 위하여 인간을 창조했나이다. 그런 고로 당신 안에서 쉴 때까지 내게는 평안이 없었습니다."



파스칼도 그것과 비슷한 고백을 했는데 "내 마음에 빈 공백이 있는데, 하나님이 그리스도를 통해서 메워 주실 때까지 그 공백은 아무 것으로도 메워질 수 없었다."라고 했습니다.



이제 우리는 다시 이스라엘 백성들이 범한 죄를 범하지 맙시다. 그들은 스스로 웅덩이를 팠다고 했습니다. 그것은 자기 나름대로의 우물을 팠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그 웅덩이는 물을 저장할 수 없는 터진 웅덩이가 된다고 합니다.

우리는 주님이 생수 되시는 삶을 사는 사람입니다. 그 우물에서 그냥 믿음으로 퍼 마시면 되는 사람들입니다. 이 세상에 자기 스스로 판 우물로 갈증을 해결할 수 있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것은 바닷물을 마시는 것과 같습니다. 더욱 갈증이 나게 되어 있습니다.

요사이 우리들에 비해 너무 많을 것을 가진 자들이 스스로 목숨을 끊는 것을 많이 보지 않습니까? 집에서 스스로 목을 매기도 하고, 자신의 건물 사무실에서 떨어지기도 하고, 한강에서 시신으로 나타나기도 합니다. 그들은 우리보다 훨씬 더 많이 배운 사람들이고, 훨씬 더 많이 가진 사람들이고, 훨씬 더 큰 권세를 가진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많은 것을 가졌지만 불행히도 진짜 가져야할 생수를 가지지 못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제 우리는 주님으로만 채우시기를 바랍니다. 다른 것으로 채우거나 빈 채로도 그냥 두지 마십시오. 예수님은 비유로 말씀해 주셨습니다.

어떤 사람에게서 귀신이 나갔는데 물없는 곳으로 다니며 쉬기를 원했지만 있을 곳이 없어 다시 이전에 있던 곳으로 와 보았더니 깨끗이 소제되고 수리되었는데 빈 채로 그대로 남아 있어 자기보다 더 악한 귀신 일곱을 데리고 그 안으로 들어갔다고 했습니다.(마12:43-45)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제 예수 그리스도로만 채우시기 바랍니다.



이사야는 이렇게 노래합니다.

“보라 하나님은 나의 구원이시라 내가 의뢰하고 두려움이 없으리니 주 여호와는 나의 힘이시며 나의 노래시며 나의 구원이심이라 그러므로 너희가 기쁨으로 구원의 우물들에서 물을 길으리로다”(사12:2-3)



이제 우리의 삶이 구체적으로 구원의 우물에서 마음껏 물을 긷는 삶을 사시는 성도들이 되기를 축원합니다. - 아  멘 - (주후2005-1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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