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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내로써 믿음의 경주를 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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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및 요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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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인내로써 믿음의 경주를 합시다.
성경> 히12:1-3
찬송> 441. 401장


●인생은 경주다
성도 여러분, 인생을 묘사한 많은 말들이 있습니다.
인생은 불확실한 항해이다.(세익스피어) 인생은 여름방학처럼 빠르다.(서양속담) 인생은 연극과 같다.(후쿠자와 유키치) 인생은 왕복차표를 발행하지 않는다. 일단 떠나면 다시는 돌아오지 못한다.(로맹 롤랑) 인생은 학교다 그리고 거기서의 실패는 성공보다도 훌륭한 교사다.(그라 나츠이) 인생은 한 권의 칙과 같다. 어리석은 사람은 아무렇게나 책장을 넘기지만 현명한 사람은 공들여 읽는다. 왜냐하면 그들은 단 한 번밖에 그것을 읽지 못함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장 파울)

그러나 오늘 말씀에 비추어보면 우리의 인생은 경주하는 것과도 같습니다.
오늘 본문 1절에 경주한다는 말씀이 나오는데 이 경주는 100m 달리기를 말하는 것이 아니고 42.195km를 달리는 마라톤 경주를 말하는 것입니다.
왜 인생을 마라톤 경주에 비유할 수 있을까요?
마라톤의 출발선에는 많은 사람들이 출발합니다. 그러나 시간이 가면서 차이가 나기 시작합니다. 아주 먼저 달리는 사람들. 또 조금 처진 사람들. 많이 처진 사람들.
그렇다고 정해진 대로 항상 그렇게만 달리는 것은 아닙니다. 어떤 사람들은 앞선 사람들을 치고 달려나와 또 다른 부류에 속하기도 합니다.
또 어떤 때는 아무도 없는 길을 혼자서 외로이 달려야 할 때도 있습니다.

우리의 인생은 누구나 처음에는 동일선상에서 출발을 합니다. 초등학교 시절에는 모두가 다 같은 것 같습니다. 누가 좀 잘하고 못하고 그렇게 차이가 나지 않습니다. 그러나 세월이 흐르고 시간이 갈수록 차이가 나기 시작합니다. 그러나 앞서 말한 것과 같이 순서가 항상 고정되어 있는 것은 아닙니다. 어떤 사람은 고등학교 시절에, 또 어떤 사람은 사회를 나와서 힘을 내어 달리기 시작하여 자기 앞에서 달리던 사람들을 추월하기도 합니다. 또 어떤 사람은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길을 혼자서 외롭게 가기도 합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자기의 눈앞에 있는 사람들을 이기기 위해 얼마나 힘을 내어 달여야하는지 모릅니다. 동료인 것 같으나 실은 적입니다. IMF 이후에 '살아남기'라는 말이 우리에게 아주 익숙해졌습니다. 내가 잡아먹지 않으면 잡아먹힌다. 그래서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다른 사람을 따돌리고 살아남기 위해 얼마나 애쓰는지 모릅니다.

이런 칠팔십 마라톤 인생을 살면서 그래도 인생의 낙오자의 부류에 속하지 않기 위해 얼마나 수고가 많습니까? 그렇게 살면서 얼마나 우여곡절이 많은지요. 고통 가운데 가슴을 앓으며 흘린 눈물은 얼마나 많은지요.

●믿음의 경주를 하고 있습니까?
그러나 성도 여러분, 우리의 경주는 단순한 인생의 경주가 아니라 믿음의 경주이어야 합니다.
우리도 가슴이 저미도록 아프고, 눈물을 하염없이 흘릴 일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 가슴앓이와 눈물은 세상의 허탄한 일들을 좇다가 생긴 것이 되어서는 안됩니다. 오히려 믿음으로 살기 위해 몸부림치면서 흘린 눈물이요 가슴앓이이어야 합니다.

많은 사람이 세상의 욕심으로 인해 근심을 만듭니다. 그것 때문에 속을 썩고, 분내고, 억울해하며 가슴 쓸어 내리며 눈물을 흘립니다. 그러나 믿음의 경주는 이것이 아닙니다. 이 세상 속에서 믿음으로 살아야겠기에 말씀 붙잡고 살다가 흘린 눈물이어야 하는 것입니다.
성경은 말합니다. 세상이 주는 근심이 있고 하나님이 하게 하신 근심이 있다고요. 그러나 각각의 결과는 너무나 다릅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은 후회할 것이 없는 구원에 이르게 하는 회개를 이루는 것이요 세상 근심은 사망을 이루는 것이니라"(고후 7:10)

성도 여러분, 여러분은 인생의 경주 중에 눈물을 뿌릴지라도 그 눈물로 하여금 믿음의 밭에 뿌려진 양분이 되게 할지언정 믿음의 밭은 황폐하게 만들어 버리는 독이 되게 하지 마십시오.

성도 여러분, 여러분의 현재의 경주는 믿음의 경주가 맞습니까?
많은 성도들이 쓸데없는 세상일의 경주자가 되어 있습니다. 우리가 뛰어야할 코스가 아닌 곳에서 뛰어갑니다. 그리고는 그 경주에서 이겼다고 뻐기고 으쓱됩니다. 그런데 다른 많은 성도들은 그것을 보고 또 부러워합니다. 모두가 다 미혹되었습니다.
세상 사람들이 사는 인생을 똑 같이 살고, 세상 사람들이 걱정하는 것으로 함께 걱정하고 세상 사람들이 추구하는 것을 함께 추구하고 세상 사람들이 자랑하는 것으로 함께 자랑해 놓고 우리의 경주가 믿음의 경주라고 우겨서는 안됩니다.
*주일날 교회에 나오는 것 외에 믿음의 경주꺼리를 찾을 수 없는 사람들.

오늘 성경 본문은 신앙의 박해를 직면한 성도들에게 쓰여진 것입니다. 그들은 목숨이 위태로운 심각한 박해의 위협 앞에 신앙을 포기해야하는 심각한 상황에까지 이른 사람들입니다. 살기 위해서는 당장 믿음을 포기해야할 것 같은 위기에 처한 사람들에게 상황입니다. 히브리서 저자는 이들에게 믿음의 경주를 말하고 있습니다.

●믿음으로 산다는 것은 고통을 동반합니다.
우리가 처한 상황은 물론 신약시대와는 다릅니다. 우리의 현재의 상황은 예수를 믿는다고 하여 목숨의 위협을 받는 상황은 아닙니다. (그러나 북한은 초대 교회의 상황보다 더 악화되어 있습니다. 저들을 위해 기도해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아직도 믿음으로 살기에 손해보아야 하고, 믿음으로 살기에 배척을 당해야하고, 믿음으로 살기에 포기해야하는 것들이 많이 있습니다.

사탄은 세상 속에서 더 교묘한 방법으로 우리의 신앙을 위협하고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역사상 기독교는 드러나는 박해 앞에서는 항상 강했지만 은밀한 박해 앞에서는 당하고 말았습니다.
오늘날 우리의 신앙의 위기는 예수님 외에 생각할 것이 너무 많다는데 있습니다.(♬ "주님만 생각할래 딴 생각은 안 할래)

하지만 오늘날에도 믿음을 지키려고 하면 당하는 고통은 많습니다. 반면에 믿음을 포기하고 나면 너무 편하게 됩니다. 우리는 이것을 경계해야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예수를 제대로 믿으려면 십자가가 있을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아무든지 나를 따라 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을 것이니라"(마 16:24)
바울 사도는 선교 여행 중에 그가 전도하여 세운 교회의 성도들에게 "우리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려면 많은 환난을 겪어야 할 것이라"(행14:22)고 말하였습니다.

여러분, 세상 살아가는데 아무 문제가 없습니까? 고통도 고민도 여러분을 괴롭히는 대적도 없습니까? 그러면 여러분이 제대로 신앙 생활을 하지 않고 있을 확률이 높습니다.


●성공적인 경주를 위해 인내가 필요합니다.
성도 여러분, 이런 고난이 우리에게 있을지라도 우리는 믿음의 승리를 해야만 합니다. 이 믿음의 경주를 승리로 장식해야합니다. 그리하여 마라톤 경주자가 우승하여 월계관을 쓰듯 생명의 면류관을 꼭 써야할 것입니다.

금년 한 해도 믿음으로 살아보려고 하는 우리에게 환난이 있을 것입니다. 믿음으로 말씀을 붙잡으려하는데도 방해하는 일이 있을 것입니다. 그래도 우리는 이 믿음의 경주에서 승리해야합니다.

그러면 이 믿음의 경주에 승리하기 위해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무엇입니까?
1절 하반절에 경주를 경주하되 '인내로써'하라고 합니다.
마라톤 경주자에게 가장 필요한 것이 있다면 인내일 것입니다.

장거리를 달리는 육상 선수들이 경주를 하면서 공통적으로 경험하는 것이 있다고 합니다. 그것은 포기하고픈 유혹이 온다는 것입니다. 자기의 몸에서 일정한 밸런스가 이루지기 전까지 신체적인 고통이 따르는데 어느 정도냐하면 "이젠 더 이상 못 뛰겠다"하는 생각이 드는 순간이 온다는 것입니다. 그것을 사점(死點)이라고 합니다. 이 사점은 없어졌다가 또 다가오고 없어졌다가 또 다가오고 몇 번 반복된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 순간을 이기지 못하고 포기하는 사람은 결코 승리자가 될 수 없습니다.

우리에게 순간순간 우리의 믿음을 포기하고픈 시기가 다가올 것입니다. 받은 말씀을 포기하고픈 유혹이 다가올 것입니다. 이제 더 이상 믿음을 지킬 수 없을 것만 같은 때가 다가올 것입니다. 그 때를 포기하지 말고 이겨야합니다. 그것을 이기지 못하면 믿음의 승리를 볼 수 없습니다.
히10:36에 "너희에게 인내가 필요함은 너희가 하나님의 뜻을 행한 후에 약속을 받기 위함이라"
이어지는 10:38에 "오직 나의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또한 뒤로 물러가면 내 마음이 저를 기뻐하지 아니하리라 하셨느니라"

예화) 어느 집에 3대 과부가 살고 있었다. 며느리와 시어머니와 시할머니가 함께 사는 데 남자들은 어찌된 셈인지 모두 일찍 죽고 여자들만 남아 살게된 것이다. 그런데 그 집안이 어찌나 평안해 보이고 큰 소리 한번 나는 일이 없는지 이웃 사람이 와서 그 비결을 물었다. "어쩌면 그렇게 조용히 사십니까? 서로 속상하고 힘든 일이 많으실텐데요." 그러자 시어머니 되는 사람이 그 사람을 데리고 뒷 뜰로 가더니 큰 항아 리 세 개가 묻혀 있는 것을 보여 주었다. "이걸 한번 열어 보시지요. 그러면 우리가 어떻게 소리없이 평안하게 살고 있는지 그 비밀을 아시게 될 겁니다." 그 사람이 항아리 뚜껑을 열어 보았더니 종이 조각이 가득차 있었다. 종이마다 참을 인(忍) 자가 쓰여 있었다. "우리는 참지 못할 상태가 되면 곧 종이 위에 이렇게 참을 인(忍) 자를 써서 여기 이 항아리 속에 갖다 넣곤 했지요. 그러면 그 순간을 모면하고 다시 마 음이 잠잠해지곤 한답니다." 얼마나 견딜 수 없을 만큼 어려운 순간들이 많았던지 종이 조각이 세 항아리 모두 가득 차 있었던 것이다.


●무엇에, 어디에, 어떻게 인내해야 하나?
그러면 구체적으로 우리는 어떻게 인내를 해야하겠습니까? 인내의 방법입니다.

이 시험, 환난이 나의 믿음을 더욱 성숙케 될 기회라는 믿음으로 의연하게 받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즉 시험, 환난 때에 '왜 나에게만 이런 것이 생기느냐' 불평하지 말고 올 것이 왔다는 생각으로 정공법으로 맞으라는 것입니다.
벧전4:12에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를 시련하려고 오는 불시험을 이상한 일 당하는 것 같이 이상히 여기지 말라"고 말씀합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에게 오는 시험, 환난은 분명한 목적을 가지고 옵니다. 둘 중의 하나인데 파괴의 목적이든지 성숙의 목적입니다. 사탄은 우리의 믿음을 파괴하고 믿음의 자리에서 떨어뜨리려고 합니다. 그러나 우리 주님은 이 시험을 통하여 더욱 성숙하기를 원하고 계십니다.

구약 성경 욥기서의 욥이 당한 시험을 봅시다. 사탄은 욥을 완전히 파괴시켜 하나님도 저주하고 죽도록 만들어버리려 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에게 닥친 환난으로 그의 믿음을 더욱 성숙케 만드셨습니다. 욥의 고백입니다.
"나의 가는 길을 오직 그가 아시나니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정금 같이 나오리라"(욥23:10)


●정말 힘들 때는 예수님을 바라봅시다.
인내를 한다고 하지만 정말 힘들 때가 있습니다. 사점(死點)이 오는 것입니다. 이 때를 인내하지 못하면 넘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그 때는 어떻게 해야겠습니까?

먼저, 예수님을 깊이 묵상하십시오.
(살후 3:5)에 "주께서 너희 마음을 인도하여 하나님의 사랑과 그리스도의 인내에 들어가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억울한 일로 마음이 답답하신 분이 있습니까? 예수님을 바라보십시오. 그 분만큼 억울한 분이 없었습니다. 아무 죄도 없이 억울한 수모를 당하신 분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저들을 사하여 주십시오. 저들이 저렇게 하는 것은 자신들이 하는 짓이 어떤 짓인지 몰라서 그렇게 합니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사람에게 배신(사기)을 당하신 분이 있습니까? 그렇게 믿었는데 믿는 도끼에 발등이 찍혀 분이 잘 삭지 않는 사람이 있습니까? 예수님도 가르친 제자들에게 배반을 당했습니다.
형제 친척들에게 실망하신 분이 있습니까? 예수님은 그의 동생들에게 미치광이 취급을 당하셨습니다. 아무도 그의 사역을 이해해주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은 우리가 당할 수 있는 모든 연약함을 함께 체험하신 분입니다. 참기 어려운 시험 환난 때 예수님께 가서 그 분을 깊이 묵상해 보시기 바랍니다.

두 번째로 환난 뒤에 있는 영광과 즐거움을 바라봅시다.
예수님이 그렇게 하여 이기셨습니다. 2절에 예수님은 십자가의 수치를 다가올 즐거움을 생각하고 이기셨다고 하였습니다.

모세도 (히 11:26) 『그리스도를 위하여 받는 능욕을 애굽의 모든 보화보다 더 큰 재물로 여겼으니 이는 상 주심을 바라봄이라』
바울, (롬 8:18) 『생각건대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족히 비교할 수 없도다』
"우리가 그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아야 될 것이니라"(롬8:17)

●허다한 증인들이 응원하고 있습니다.
왜 우리는 1월 마지막 주에 이 말씀을 받습니까?
금년을 믿음으로 살아서 믿음의 복된 열매를 기대하는 우리 앞에도 시험과 환난이 기다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제 마지막으로 우리는 이미 인내로써 믿음의 경주를 싸운 믿음의 선배들의 응원을 들으며 남은 우리의 경주를 성공적으로 마칠 수 있기를 바랍니다.

1절에 "구름 같이 둘러싼 허다한 증인들이 있으니"라고 되어 있습니다. 이 증인들은 히브리서 11장에 나타난 믿음의 사람들을 말합니다. 그들은 응원단이 되어 하늘 나라에서 인내로써 믿음을 경주를 하고 있는 우리를 지켜보며 응원의 함성을 보내고 있습니다.

그 속에는 아벨이 있습니다. 그는 우리에게 "나는 믿음으로 예배를 드리려다 목숨을 바쳤다"라고 말합니다.
그 응원단 속에서는 에녹의 얼굴을 볼 수 있습니다. "나는 악한 시대에 살았습니다. 그러나 삼백년을 하나님과 동행하였습니다. 여러분도 하나님과 동행하며 사십시오" 우리를 성원하는 에녹의 말입니다.
또 그 가운데는 노아의 얼굴이 있습니다. "여러분 나는 고독했습니다. 아무도 내 믿음에 동의하는 사람이 없었으나, 나는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방주를 짓고 그 시대를 향하여 하나님의 거룩한 구원을 선포하였습니다. 고독할지라도 이 말씀을 믿고 달려갈 길을 달려가십시오"
그 응원단 속에는 "나는 하나님이 떠나라고 하셨을 대에 갈 바를 알지 못하였으나 하나님의 말씀에 생을 걸고 나아갔습니다"라고 말하는 아브라함이 있습니다.
거기에는 또 야곱의 모습이 있습니다. 그는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여러분, 여러분은 나의 삶을 알고 있지요. 나는 젊었을 때 상당히 방탕했어요, 나는 약삭빠른 인간의 속임수와 잔꾀를 사용하였지요. 나는 많이 넘어지고 실패하였었지요. 그러나 내 인생의 석양에 마침내 나는 자신을 이기는데 성공하였답니다. 그리하여 하나님의 도우심과 주님의 은혜로 나는 달려갈 길을 다 마치고 지팡이 머리에 의지하여 하나님을 경배하며 거룩한 경주를 마쳤지요. 여러분도 승리할 수 있답니다."
또한 모세의 얼굴도 볼 수 있습니다. 그는 말합니다.
"나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이끌고 광야를 지날 때 백성들의 원망을 듣고, 고난과 역경을 감수하면서도 그들을 거룩한 복지로 인도하는데 성공하였습니다. 이 광야 길은 쉽지만은 않았습니다. 나도 울고 자주 절망도 하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도우심을 통해서 마침내 달려갈 길을 마쳤습니다. 여러분도 힘을 내기 바랍니다."
그곳에서 우리는 요셉의 얼굴과도 만날 수 있습니다. 요셉은 애굽 땅에 홀로 갔습니다. 그는 말합니다.
"나는 애굽 땅에서 하나님을 섬겼고 하나님은 나를 멸시하지 않으셨으며, 마침내 나는 애굽 땅에서 존경을 받게 되었고 하나님의 영광스런 복음과 은혜의 역사를 선포하였습니다."
우리는 그 속에서 기생 라합도 봅니다.
"여러분 나는 연약한 아녀자입니다. 또 나는 험악하고 부도덕한 어두움 속의 삶을 살다 하나님을 만났습니다. 그러나 나도 여리고성에서 단신으로 하나님을 신뢰함으로 달려갈 길을 마쳤습니다. 내가 승리할 수 있다면 여러분도 승리할 수 있습니다. 아니 여러분은 훨씬 용기있게 삶을 정복해 나갈 수 있고, 여러분의 갈 길을 완주 할 수가 있습니다. 힘을 내십시오."

이 외에 기독교 역사상 이름을 알 수 없는 많은 믿음의 선배들이 우리를 격려하고 있음을 보시기 바랍니다. 그들의 응원을 영적이 눈과 귀를 들어 볼 수 있는 여러분이 되시길 바랍니다.

그리하여 금년 한 해도 우리에게 있을 수 있는 시험 환난을 인내하면서 믿음의 경주를 성공적으로 마치는 여러분들이 되시길 축원합니다. - 아 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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