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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오전예배

머리 잘린 삼손
  • 날짜 : 2005.06.12
  • 본문 : 사사기 16:15-21
  • 설교자 :
성경본문 및 요약
●들어가면서 - 머리 깎인 삼손

요즘 새벽기도회에서 계속 나누는 말씀이 구약 성경 사사기입니다. 사사기를 다시 묵상할 기회를 가지면서 새롭게 깨닫게 되는 은혜들이 있습니다. 차례대로 사사기를 보아 온 것이 여러 번이며 언젠가 특별새벽기도회 기간에 사사기를 또 특별히 본 적이 있습니다. 그때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말씀이 다르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그것은 우리의 삶의 환경이 그때와는 다르기 때문일 것입니다.

오늘은 사사기 본문 중에서 마지막 사사인 삼손에 관한 말씀을 통해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뜻을 생각해 보려고 합니다. 교회를 다니는 사람들뿐만 아니라 교회를 다니지 않는 사람들도 성경에 나오는 인물을 몇 명은 알고 있는데 그 중의 한 사람이 삼손입니다. 삼손을 생각하면 사람들이 가장 먼저 떠올릴 수 있는 단어가 ‘힘’입니다. 삼손은 힘이 천하장사였습니다. 그리고 그 다음에 삼손을 조금 더 아는 사람이라면 ‘머리카락’을 떠올립니다. 그래서 힘이 센 사람이나 긴 머리카락이 야성미를 더욱 돋보이게 하는 사람이 있으면 ‘삼손’이라는 별명을 붙입니다. 이전에는 축구 선수 중에 80년 대 후반에 활약한 김주성 선수가 삼손이라는 별명을 얻었고, 최근에는 프로야구에서 LG트윈스의 이상훈 투수가 삼손이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알고 있는 수준 역시 ‘머리카락이 길고 힘이 센 사람’정도라면 안됩니다. 사사기는 사사들에 관해 기록한 책이라는 뜻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사사기에 총 12명의 사사들이 등장합니다. 이 12명의 사사들 중에 삼손만큼 많은 분량을 기록한 사사가 없습니다. 다른 사사와 달리 출생하기 전의 이야기부터 시작해서 그의 사사로서의 이야기를 자세하게 기록해 주고 있습니다.



오늘은 삼손이라는 사람을 좀 더 정확하게 알기 위한 시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는 왜 천하장사로 태어났는가? 그의 힘은 어디에서 나오는가? 그의 힘으로 무엇을 하였는가?’하는 것들입니다. 오늘 우리의 관심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특별한 사람은 그의 출생의 이야기부터 특별한 것이 있습니다. 천하장사 삼손 역시 그렇습니다. 삼손의 어머니는 불임여인이었습니다. 그런데 하루는 하나님의 사자가 이 여인에게 나타나서 아이를 잉태할 것이라고 말하면서 아기가 나면 다음의 것들을 꼭 지켜야 한다고 말해 줍니다.

첫째, 포도주와 독주를 마시지 말 것. 둘째, 죽은 시체를 가까이 하지 말 것. 셋째, 머리카락을 깍지 말 것. 이것은 곧 나실인의 규칙이었습니다. 나실인이란 하나님께 바쳐진 자라는 뜻으로 특별한 목적을 두고 하나님이 사용하실 자였던 것입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 중에는 하나님께로부터 은혜를 받아 하나님께 자신 스스로 나실인으로서의 서약을 하고 나실인의 규칙을 지키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삼손은 태어날 때부터 하나님에 의해 나실인으로 선택된 자였고 그의 임무는 이스라엘 백성을 적들의 손에서 구원시키는 일이었습니다. 그 당시에 이런 임무를 맡은 자를 가리켜 ‘사사’라고 불렀습니다. 즉, 힘센 장사 삼손은 사사들이 활동하던 시기에 이스라엘을 구원하기 위한 마지막 사사였습니다.

아이는 그렇게 태어났고 건강하게 잘 자랐습니다. 이제는 이스라엘 나라를 위해 일할 수 있을 만큼 성장하였습니다. 하나님은 그에게 특별한 은혜를 주셨고 그는 하나님의 신에 감동되었습니다.(13:25)

이젠 본격적으로 하나님 백성을 위해 그가 사사로 봉사할 때가 된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의 삼손의 모습은 어떻습니까? 머리는 깎이고 눈은 뽑힌 채 옥에 갇혀 맷돌을 돌리고 있습니다. 이게 이스라엘을 구원할 사사의 모습이란 말입니까?

우리는 여기에 나타난 삼손의 모습이 오늘날 우리 교회의 모습은 아닌지 또 우리 자신의 모습은 아닌지 살펴보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이 세상을 정복하라며 우리에게 권세와 권능을 허락하셨지만 우리는 세상에 희롱과 농락을 당하며, 세상의 놀림거리로 전락해 버린 모습이 아닌지 돌아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능력 있게 세상을 정복하고 구원해야할 삼손이 왜 이렇게 되었습니까? 우리가 삼손에게서 발견할 수 있는 삼손의 잘못은 무엇입니까?



1. 선민의식이 희박해진 것입니다.

우리가 삼손을 생각할 때 자연스럽게 떠올릴 수 있는 것은 여자입니다. 삼손의 여자 편력은 도가 지나쳤습니다. 오늘 본문에는 드릴라라는 여인이 등장합니다. 이 드릴라 때문에 삼손은 비참한 최후를 맞이하게 됩니다. 그런데 삼손이 여자 때문에 험한 꼴을 당한 일이 이번뿐만이 아닙니다. 드릴라를 만나기 전에 삼손은 이미 두 여자를 거칩니다. 첫 번째는 14장에 나오는 딤나의 여인입니다. 이 여자에게 홀딱 빠져서 부모의 반대를 무릅쓰고 결혼을 합니다. 그러나 그는 결혼 피로연에서 낸 수수께끼로 인해 큰 곤욕을 치릅니다. 아무도 못 맞출 것이라 생각했던 것이 그의 아내가 알려줌으로 내기에서 져 옷 30벌을 물어줍니다. 그후 딤나의 이 아내는 자기 동네 사람들에 의해 불에 타서 죽게 됩니다. 16장 1-3절을 보면 삼손이 두 번째로 여인을 찾아가는 내용이 나옵니다. 이 여자는 기생입니다. 이 사랑도 실패합니다.

이 정도 되면 깨달아야 하는 것 아닙니까? ‘여자는 내 일생에 정말 가까이 해서는 안 될 존재이구나! ’하고 말입니다. 그러나 결국 또 여자에게 걸려 그의 일생을 비참하게 마칩니다.

그런데 이것보다 더 심각한 문제가 있습니다. 그것은 그가 만난 모든 여인이 다 이방여인이라는 사실입니다. 유대인이 이방인과 결혼하는 것을 율법이 금하고 있습니다. 14장에 나오는 딤나의 여인을 사랑하여 결혼하겠다고 부모를 조를 때 그의 부모가 이렇게 말합니다. 14:3에 “네 형제들의 딸 중에나 내 백성 중에 어찌 여자가 없어서 네가 할례 받지 아니한 블레셋 사람에게 가서 아내를 취하려 하느냐”

또한 삼손이 마음을 빼앗긴 모든 여인의 국적이 다 블레셋이라는 사실입니다. 블레셋 때문에 지금 이스라엘은 40년 동안이나 신음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바로 이 블레셋에게서 그의 나라를 구하라고 그에게 특별한 힘을 주셨고 그래서 그는 사사가 된 것입니다. 그런데도 그는 정복해야 할 블레셋 나라의 여인에게 빠졌습니다.

전혀 선민의식이 없습니다. 선민의식이 없으니 누구와 무슨 짓을 해도 관계없는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사랑에는 국경도 없습니까? 혹 그럴지 몰라도 신앙에는 국경이 있습니다. 사랑할 수 있는 사람과 사랑할 수 없는 사람을 구분하시기 바랍니다.

청년 여러분, 예수 믿는 사람들이면 일단 신앙의 깊이의 정도에 관계없이 모든 가능성을 다 열어놓으시기 바랍니다. 그러나 불신자면 그의 사회적 갖춤에 관계없이 모든 가능성을 다 닫으시기 바랍니다.



사람이 자신이 누구라는 것을 정확하게 알면 해야 할 일과 해서는 안 될 일이 분명해집니다.

아버지학교에 가면 항상 힘차게 세 번 외치고 모임을 시작합니다. “주님, 제가 아버지입니다.”라는 말입니다. 아버지가 아버지임을 모르니 그때부터 문제가 시작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사실을 잊기 시작하면 세상 사람들과 다를 바 없는 삶을 살게 되어 있습니다. 아침에 세수를 하면서 거울을 보면 이렇게 혼자 외쳐보시기 바랍니다.

“야, 넌 누구니?” “난 하나님의 아들 ***.(하나님의 딸 ***) 하나님은 오늘도 너를 기대하신다!”



2. 신앙생활에 결단이 없었습니다. (- 믿음으로 산다는 것은 결단과 위탁이다!)

잠언23:7에는 ‘대저 그 마음의 생각이 어떠하면 그 위인도 그러하다’고 말합니다. 우리의 생각이 우리의 행동을 결정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에게 꼭 있어야 할 선민의식이 희박해지면 세상의식이 그 자리를 메우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전에 그렇게 소중하고 의미 있었던 것들이 귀하다고 여겨지지 않게 됩니다.

삼손을 보십시오. 그는 14장에 여인 때문에 딤나를 왔다 갔다 하면서 하루는 사자를 만납니다. 그는 사자를 염소를 죽이듯 죽여 버립니다. 그리고 난 뒤 며칠 후 그 길을 가다가 자기가 죽인 사자의 시체에서 벌떼가 모여 있고 그 안에 꿀이 있는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그는 그 꿀을 취하여 먹고 부모에게도 줍니다.

우리는 여기에서 삼손이 아주 중요한 사실을 범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것은 바로 나실인의 규례입니다. 나실인이 지켜야 할 규칙 중에는 시체를 가까이 하지 말라는 것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삼손의 부모가 어릴 때부터 삼손에게 가르쳐 온 것입니다. 그런데 그는 너무 쉽게 그것을 범해 버립니다.

그것뿐만이 아닙니다. 그는 딤나 여인과 결혼 한 후에 결혼 피로연 잔치를 벌입니다.(14:10 - 잔치를 배설) 여기의 잔치는 다른 잔치가 아니라 술잔치입니다. 또 나실인의 법칙 중에 소주나 독주를 마시지 말라는 규칙을 어긴 것입니다.



왜 이렇게 되었습니까? 그렇게 철저하게 지켜왔던 나실인의 법칙이 왜 이렇게도 쉽게 어기게 되는 것일까요? 그것은 바로 은혜를 잃은 자에게 나타나는 자연스런 현상입니다.

여러분, 여러분이 은혜를 받고 하나님의 말씀에 붙들려 있으면 이전에 보지 못했던 것이 보이기 시작하고, 이전에는 들리지 않았던 것이 들리기 시작합니다. 이전에는 무감각했던 것에도 예민하게 반응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은혜를 잃어버리면 지켜야할 당연한 것도 모르고 지나갑니다.

삼손이 시체라는 것을 모르는 것이 이상하지 않습니까? 이전에는 보기만 해도 “앗, 시체!” 이랬는데 이제는 시체라는 눈에 보이지 않고 그 속에 꿀만 보이는 것입니다. 술을 마시면 안되는 것 너무 뻔하지 않습니까? 그런데 나중에는 잔치에 술이 없으면 그게 무슨 잔치냐 이렇게 되는 것입니다.

지금 이스라엘이 블레셋에 의해 고통을 받은 세월이 40년입니다. 다른 어떤 나라에 의해 압제를 당할 때보다 그 세월이 깁니다. 그런데 이스라엘은 40년이나 고통을 당하고 있으면서도 하나님께 부르짖지 않습니다. 사사기의 기본 구조가 ‘범죄-징계(다른 민족들의 침략)-이스라엘의 회개(부르짖음)-하나님의 구원(사사를 통해)-평안의 세월’입니다. 그런데 삼손이 사사로 부름을 받을 때는 이스라엘이 하나님께 부르짖었다는 말이 없습니다. 그것은 그렇게 사는 것이 모두인줄 알고 살았다는 의미입니다.

우리 역시 지금을 믿는다고 이런 저런 말을 하지만 우리의 지켜야할 신앙생활의 법칙을 지키지 못하면 이와같게 된다는 말입니다. 왜 서구에서 이전에 그렇게 큰 교회당이 이제는 관광지로 밖에 남아있지 않고, 또 많은 교회가 심지어 술집으로 변해가고 있다는 말입니까?

영국의 이중환 목사의 이야기 - 토마스 선교사를 보낸 교단의 실상. 한국 목사를 보내달라.



성도 여러분, 주일을 지키는 일이 여러분에게 어떻습니까? 이전에도 말씀드렸습니만 주일을 지키는 것은 우리가 예수믿는 사람으로서 나타내는 고백 중에 가장 기본적인 고백입니다. 혹 우리가 성경을 좀 읽지 않고 기도를 혹 하지 않아도(이것이 옳다는 것이 아닙니다.) 주일을 지켜 가면 가장 밑바닥이지만 그래도 신앙의 기본을 지켜간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주일 예배에 참석한다는 것은 내가 누구라는 사실을 먼저 하나님께 고백하는 것이고, 다음에는 나 스스로에게 확인시키는 행위입니다. 그런데 이게 허물어지면 다른 것도 거의 다 허물어져 버립니다. 여러분, 주일 교회에 출석하지도 않는데 성경 읽는 사람을 보셨습니까? 주일 성수하지도 않는데 기도하는 사람 보셨습니까?

요사이 주일을 지키는 문제에 있어 너무 쉽게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조그만 사정만 생기면 당연한 듯 빼먹습니다. 처음에는 안 그랬습니다. 주일을 성수할 수 없는 것에 너무 속도 상하고 안타까웠습니다. 그러나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어떤 결단을 하지 못하고 계속 방치하니 나중에는 자연스럽고 더 나아가서는 당연하게 됩니다. 만약 여러분이 예배가 지루하기 시작하면 초장에 잡아야 합니다. 그냥 놔두면 나중에는 예배는 본래 지루한 거라는 생각을 합니다.



삼손이 처음부터 자신의 힘의 비밀을 드릴라에게 말한 것 아닙니다. 어쩌면 그는 이미 다른 나실인의 규칙을 다 어겼지만 머리를 깎는 일만큼은 어기지 않고 지키고 싶었는지 모릅니다. 돈에 미혹된 드릴라는 삼손의 힘의 원천을 알기 사랑을 미끼로 계속해서 말해 달라고 합니다. 당신이 그것도 말해주지 않으면서 나를 사랑한다고 하는 것은 나를 사랑하지 않기 때문이다라고 말합니다. 16:16에는 드릴라가 날마다 삼손을 재촉하여 조르기 때문에 삼손의 마음이 번뇌하여 죽을 지경이 되었다고 말합니다. 삼손이 고민하지 않은 것 아닙니다. 그러나 결국 말해 버리고 만 것입니다. 결국 그는 마지막 남은 나실인의 규칙마저 다 어기고 만 것입니다. 그러자 그의 능력은 갑자기 소멸되고 말았습니다.



믿음을 지키지 못할 이유는 이 땅에 얼마든지 있습니다. 살자니 할 수 없는 일이 얼마나 많은지요.

그러나 여러분, 속지 마십시오. 삶 때문에 신앙을 잃는다면 그 사람은 분명 신앙과 삶을 함께 잃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신앙 때문에 삶을 결단할 수 있는 사람은 신앙과 삶을 다 건지게 될 것입니다.

히브리서12:4에는 죄와 대항하여 싸우되 피흘리기까지 하지 않을 것을 안타깝게 말합니다. 죽으면 죽으리라 결단하면 살길이 열리는 것입니다. 한 알의 밀이 죽기로 결단하지 않으면 살 수가 없습니다. 본래 예수 믿는 사람들은 죽을 것을 생각하며 살아야 합니다. 어떻게 내가 잘 죽을 것인가? 죽을 때 주와 함께 죽기 때문에 주와 함께 사는 역사가 있는 것입니다.

예)생명 걸고 주일성수한 사람들 - 배추달,



●맺으면서

본문 22절에는 한 가지 희망을 우리에게 보여줍니다. 눈도 뽑히고 머리도 깎여 맷돌을 돌리고 있는 이 비참한 삼손에게 또 머리카락이 또 자라고 있더라는 사실입니다. 이것은 회개를 통한 회복을 말하는 것입니다.

현재 우리의 모습이 머리 깎인 삼손의 모습일 수 있습니다. 특별한 은총을 입었고 하나님의 사람으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도록 부름을 받았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에게 예수님께서 나를 위해 십자가에 피흘려 죽어주셨다는 것보다 더 특별한 것을 있을 수 없음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는 특별한 존재입니다. 이미 큰 사랑을 입었습니다.

우리는 나 자신을 이기고 세상을 이기고 사단을 이겨야 할 자입니다. 우리의 삶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야 할 자입니다.

이제 일어서시기 바랍니다. 6월부흥의 달에 우리의 영혼의 부흥을 먼저 맞이하시기 바랍니다. 가장 기본적인 것에서부터 우리 자신을 지킵시다. 예수님이 자신의 생명까지 주시면서 우리에게 허락해 놓은 것을 세상의 달콤한 꿀의 유혹에 빠져 잃어버리지 맙시다.



하나님께서 이 시대에 세상이 감당할 수 없는 힘을 가진 하나님의 사람의 출현을 기대하고 계십니다. 회복된 삼손으로 다시 하나님 앞에 서시는 우리 성도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 아 멘 - (주후2005-0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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