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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오전예배

부부, 남자와 여자
  • 날짜 : 2005.05.29
  • 본문 : 마19:3-6
  • 설교자 :
성경본문 및 요약
●들어가면서

5월은 ‘가정의 달’이어서 사회에서나 교회 안에서 가정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들어왔습니다. 오늘은 5월 마지막 주일로 우리교회는 ‘가족주일’로 지킵니다.

가정, 가족이 소중한 것은 강조할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강조할 필요가 없는 것을 “중요하다 소중하다” 계속 강조하게 되는 것은 가정에 문제가 많다는 말입니다. 지난 3월 말에 통계청에서 2004년 사회통계를 발표했습니다. 아버지학교 강사를 하다보니 이런 통계 수치가 나오면 더 많은 관심을 가지고 보게 됩니다. 사회 전반의 여러 통계 중에 한 신문에서 ‘이혼 16년 만에 감소’라는 제목으로 기사를 실었습니다. 작년에는 하루 꼴로 849명이 결혼하고 381명이 이혼했다는 것입니다. 제가 프로테이지를 내 보니 결혼 당 이혼 비율이 45%입니다. 100명 결혼하면 45명이 이혼하는데 이것을 16년 만에 감소했다고 보도했습니다. 그 이유도 보니 경제가 어려워할 수 없이 같이 산다는 것으로 추정해 놓았습니다. 즉 이혼해도 살 것이 막막하니 그냥 산다는 것입니다. 법적 정식절차를 통한 실제 통계가 그렇다면 법적으로는 이혼을 하지 않았지만 사실상의 이혼관계 속에 있는 가정까지 감안을 해 본다면 50%를 넘을 것 같습니다. 실제로 요사이 tv의 드라마에서 가족관계 설정에서 이혼한 가정은 이제 자연스럽게 등장하고 있고 자녀들마저도 그 사실을 받아들여야 하는 것으로 유도하고 있습니다.



한 사회의 건강에 대한 척도는 가정에 있습니다. 가정이 건강하면 사회도 나라도 건강합니다. 영원할 것 같았던 로마제국이 무너진 이유를 이제까지 역사가들은 정치적인 이유에서 찾았지만 더 근원을 추적한 사회학자들이 가정의 붕괴에 있다고 말합니다.



가정에 관한 말씀을 전할 때에는 참 조심스런 부분이 많습니다. 가정에 대한 상처를 안고 사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입니다. 그렇다고 전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대로 놔 뒀다가는 교회마저 무너질 것이기 때문입니다. 교회는 세상이 답을 찾지 못할 때 그 답을 제시할 수 있는 곳이 되어야 합니다. 가정의 문제는 더욱 그렇습니다. 몇 번 말했듯이 최초의 가정을 하나님이 만드셨고 그 가정이 성경에 정확하게 나오기 때문입니다. 또한 최초의 교회가 가정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성경만큼, 교회만큼 가정문제의 정확한 해답을 줄 수 있는 곳은 없습니다.

또한 더 나아가, 교회가 가정의 문제에 더욱 관심을 가지고 구체적으로 다루어야 할 필요가 있는 것은 교인들의 가정마저도 심각하게 깨어져 가기 때문입니다.

이전보다 결혼주례를 해야 하는 일이 잦아지게 되었습니다. 이전에는 젊은 남녀가 결혼을 해서 가정을 이루니 정말 기뻐하며 축복해주는 것으로 할 일을 다 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요사이는 걱정부터 앞섭니다. “잘 살아야 할 텐데…” 교회에서 결혼식을 하고, 목사가 주례를 하고 하나님의 이름으로 축복하고 성혼을 선포합니다. 그래도 갈라서니 그냥 기뻐할 수만 없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가능한 할 수 있다면 이런 저런 모양으로 좀 더 준비를 하게하고 결혼을 하도록 하지만 아쉬운 것이 너무 많습니다. 앞으로 할 수 있으면 결혼을 할 때 결혼생활의 멘토가정을 세워 정식으로 연결시키고 공식발표를 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일종의 천주교의 대부 대모 제도와 같은 역할입니다. 결혼생활에 분명 문제가 생길 것인데 그때 그 멘토의 가정에 가서 상담을 하게하고, 멘토 가정은 연 2회 정도 정기적으로 자식가족과 식사시간을 갖도록하여 결혼생활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교제를 하도록 하는 것입니다. 결혼식을 하기 전에 이 멘토가정을 확보해 오지 않으면 주례를 안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결혼예비학교를 꼭 수료하도록 해야 합니다. 운전면허 따기 위해 그렇게 공부하고 시험도 치는데 인생의 가장 큰 일을 위해서 이렇게 준비없이 이루어지는 것은 말이 안됩니다.



오늘 말씀을 받으면서 위축되는 분이 없기를 바랍니다. 가끔 일반적인 이야기를 자신의 이야기로 받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또한 전혀 관계없는 듯이 말씀을 듣지도 마시기 바랍니다. 가정과 관계없는 사람은 없습니다. 우리 모두는 어떤 한 가정 속에서 태어났습니다. 젊은 자들은 가정을 가질 것이고 나이든 어른들은 건강한 가정을 가르치고 물려주어야 합니다.



성도 여러분, 가정이 어떻게 이루어집니까? 한 남자와 한 여자의 만남을 통하여 이루어집니다. 가정의 기본 구성원이 한 남자와 한 여자입니다. 그러므로 가정에서 일어나는 대부분의 문제는 한 남자와 한 여자, 바로 이들에게 있습니다. 자녀들의 문제로 인해 깨어지는 가정이 있습니다. 그러나 오해하지 맙시다. 문제 있는 자녀들이 있기 전에 문제 있는 부모들이 있는 것입니다.

오늘 말씀은 가정의 가장 기본 구성원인 한 남자와 한 여자, 곧 부부에 집중해서 말씀을 받으려 합니다.

본문 말씀은 바리새인의 이혼에 관한 질문에 예수님께서 결혼의 원리가 되는 창세기 말씀을 인용하여 설명해 주신 것입니다. 예수님의 말씀에서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무엇입니까?



1. 남자와 여자의 다르다는 것입니다.(4)

“사람을 지으신 이가 본래 저희를 남자와 여자로 만드시고”(4)

예수님은 하나님이 사람을 지으실 때에 처음부터 남자와 여자를 다르게 만드셨음을 말씀합니다. 사람이란 면에서는 같지만 그 부류가 완전히 다른 것을 말합니다. 그래서 분명 ‘남자와 여자’로 만드셨다고 구분해서 말씀하십니다. 창1:27에는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남자와 여자는 얼마나 다른가?’ 이 말씀으로 극단적으로 말하면 ‘남자와 여자는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은 것 외에는 모두 다르다’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성도 여러분, 한 남자와 한 여자가 다르다는 것을 생각하면 결혼해서 이혼하지 않고 산다는 것이 오히려 기적입니다. 어디 우리가 남자와 여자로서만 다른가요? 사람이란 사고방식도 다르고 삶의 방식도 다릅니다. 거기에다 본래 남자와 여자가 다르니 정말 같이 산다는 것이 기적이지요.

남자와 여자는 신체적인 구조가 다릅니다. 감정적인 매카니즘도 다릅니다. 남자는 우뇌가 발달해서 공간, 논리, 지각 능력이 뛰어나고 여자는 좌뇌가 발달해서 감정, 언어 능력이 뛰어납니다. 퍼즐을 맞추는 것은 보통 여자아이들은 남자아이들을 따라갈 수 없습니다. 그렇지만 말싸움을 붙여놓으면 항상 여자아이들이 이깁니다. 그러니 주로 남자는 침묵으로 피로를 풀고 여자는 수다로 피로를 풉니다. 하루에 여자는 6천 마디의 말을 하고 남자는 2천 마디의 말을 합니다. 남자는 결론을 얻을 때까지 말을 잘하지 않고 여자는 결론을 얻을 때까지 말을 해댑니다. 또한 남자는 말을 하면 그 말에만 집중해야 하지만 여자는 말을 하면서도 다른 것을 충분히 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남자는 용감하다는 말을 좋아하지만 여자에게 용감하다고 하면 그것은 욕이 될 수 있습니다. 여자는 예쁘다고 하면 좋아하지만 남자에게 예쁘다고 하면 욕이 됩니다. 

이렇게 남자와 여자는 다릅니다. 왜 다른가? 그 답은 하나님이 다르게 창조하셨기 때문입니다.

앞서 말씀드린 통계에서 이혼 사유에 대한 통계에서는 부부간 성격차이가 49.4%로 가장 많다고 합니다. 그러나 잘못 알고 있는 것이 있습니다. 이혼의 사유에는 성격차이에서 오늘 갈등보다 성별차이를 이해하는 못한 것에서 오는 이해부족입니다. 하나님께서 본래 남자와 여자를 다르게 창조하셨습니다.



2. 다르기에 이해하고 존중해야 합니다.

(엡2:18) 『이는 저로 말미암아 우리 둘이 한 성령 안에서 아버지께 나아감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다르다는 것은 적이 될 수 있는 조건인 것 같지만 조금만 생각을 달리하면 멋진 조화를 이룰 수 있는 아군이 되는 것입니다. 전쟁을 하면 육,해,공군은 다 다르지만 육군이 진격을 할 때 공군에서는 전투기로 먼저 폭격을 해 줍니다. 전쟁의 승리는 육해공군의 조화로운 역할분담으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오케스트라의 악기 소리는 모두 다 제각각입니다. 그러나 그 다른 소리가 조화를 이룰 때 사람의 심금을 울리는 감동의 선율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왜 남자와 여자를 다르게 만드셨는가? 그것은 서로 조화를 위한 것으로 주셨음을 믿어야 합니다. 창2:20에는 하나님께서 아담에게 하와를 주셨을 때 돕는 배필이 없어 주셨다고 말씀합니다. 그것은 아담에게 부족한 것이 있었다는 것이고 그 부족한 것을 채워 조화를 이루도록 하셨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면 부족한 것이 남자에게만 있을까요? 벧전3:7에서 베드로사도는 남편들을 권면하면서 “남편된 자들아 이와 같이 지식을 따라 너희 아내와 동거하고 저는 더 연약한 그릇이요 또 생명의 은혜를 유업으로 함께 받을 자로 알아 귀히 여기라”고 하였습니다. 여자 역시 남편의 도움이 필요한 존재라는 말입니다. 여자들이 얼마나 연약한지 그것은 여자들이 얼마나 상처를 쉽게 받고 또 오래 가는지를 보면 압니다.

가끔 부부싸움을 하면 남자가 여자를 이기는 것이 드뭅니다. 왜냐하면 남자는 시시콜콜한 것을 다 기억하지 못하는데 여자들은 이전에 지나간 남자의 실수와 과오를 날짜까지 기억해 가면 줄줄 쏟아내 놓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남자들은 여자도 분명 잘못한 것이 많이 있는데 기억은 나지 않고 더 억울하고 씩씩거립니다. 그러나 여자가 도가 지나치면 그때 남자가 쓸 수 있는 무기는 힘밖에 없습니다. 지혜있는 아내들은 남자가 여기까지 가지 않도록 하는 여자입니다. 그래서 남자가 말을 한참 듣고 있다가 소리를 버럭 지르면 그때부터는 잠잠해지는 것이 지혜롭습니다.



우리는 이렇게 남녀의 다름을 이해해야 합니다.

이해하는 것은 영어로 ‘understand’ - 아래에 서는 것을 말합니다. 곧 자신의 입장에서 보는 것이 아니라 상대방의 입장에 서서 보는 것입니다. 상대의 입장에서 보면 모든 것이 다 이해가 됩니다. 그래서 어떤 목사님이 결혼은 하면 남자는 남편자격증을 여자는 마누라자격증을 획득했는지 점검해 보라고 하였습니다. 남편자격증이란 남의 편에 서는 것입니다. 아내의 입장에 서는 것입니다. 그러면 마누라자격증은 무엇입니다. 그것은 어떤 일이 있어도 돌아서 눕지 않고 ‘마주보고 누워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이해를 바탕으로 서로 존중해 주어야 합니다.(벧전3:7 - “…알아 귀히 여기라”)

서로 존중한다는 것은 무엇입니까? 바로 남자의 부족한 것을 세워주는 것이고 여자의 연약함을 돌보아 주는 것입니다.

남자는 곧 죽어도 남자입니다. 집에서 권위를 잃는 것을 가장 싫어합니다. 그래서 참다가도 소리 한 번 “꽥” 지를 때에 집안이 잠잠해지면 그것으로 자신의 위치를 확인하는 것입니다. 이것도 모르고 여자들이 ‘제가 잘난 것이 뭐 있다고 소리를 지르냐’며 더 달라 들면 그 집안은 사단이 나는 것입니다.

오늘날은 남자의 위기가 오고 있습니다. 우리나라는 아직도 가부장적인 남성중심의 사회라 여성들이 불이익을 당하는 경우가 많습니다만 여성들의 인권신장이 다른 어떤 나라보다 급속하게 이루어져 가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남성들이 느끼는 위기의식이 더 큽니다. 이제 호주제가 폐지되었습니다. 여성들의 보호를 위하 법안이 계속해서 만들어집니다. 그리고 이전에 남성의 전유물로 생각되던 직위를 여성들이 차지합니다. 남자들보다 여자들만 뽑는 직종이 많아졌습니다. 작년에 국가고시 8개 부분에 여성들이 모두 수석을 차지했습니다.

특히 40대의 남자에게 위기가 오고 있습니다. 119구조 구급대가 가장 많이 출동할 정도로 격렬한 부부싸움을 하는 세대는 40대인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서울시 소방방재본부가 지난해 부부싸움으로 인한 출동현황을 분석해 17일 발표한 자료(2002년)에 따르면 전체 1353건 중 40대 부부싸움이 503건으로 가장 많았으며 이로 인해 502명이 부상하고 1명이 사망한 것으로 집계됐습니다. 왜 이렇게 40대에서 격렬한 부부싸움이 일어나는가? 그것은 40대가 가장 혼란의 시기이기 때문입니다. ‘사오정’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그런데다 가정에서까지 위치가 흔들리면 남자가 사용할 것은 폭력밖에 없습니다.

심리적으로도 40대가 되면 남성으로서 변화가 일어납니다. 왜소해진 자신을 발견하기 때문입니다. 자신은 점점 연약해져가는 것 같고 아내는 점점 더 강해져가는 것을 느낍니다. 그것은 이 시기를 전후해서 남성에게서는 남성호르몬이 줄어들고 여성호르몬이 증가하는 반면 여성에게서는 역으로 남성호르몬이 증가하고 여성호르몬이 줄어든다는 것입니다. 이런 현상에 상처가 큰 쪽은 남편입니다. 더욱 왜소해져가는 것 같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아내를 남편의 남성의 이런 부족한 것을 알고 아내는 배려해 줄 수 있어야 합니다.



아내 된 여자는 어떻습니까? 성경이 ‘더 연약한 그릇’이라고 했으니 특별한 보호가 필요한 것입니다.

어떤 가정사역자 목사님이 이렇게 설명하였습니다. 여성과 남성은 재질부터 다르다는 것입니다. 아담은 흙으로 지어졌지만 하와는 갈비뼈로 지어졌습니다. 이 둘의 차이는 매우 중요합니다. 흙은 무기물질이었고 갈비뼈는 엄연한 유기물질입니다. 여자의 재질은 ‘1차 가공’을 거친 더 고급소재인 셈입니다. 더구나 신제품은 항상 뒤에 나온다는 사실입니다. 첨단 재료일수록 취급에 주의가 더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한 자매가 결혼했습니다. 부부싸움 끝에 친정으로 도망을 쳐버렸습니다. 화가 난 남편은 이번 기회에 버릇을 고쳐놓겠다고 별렀습니다. 친정에 온 딸을 보는 부모 마음도 편치 않았습니다. 며칠 쉬게 한 다음 딸을 돌려보내며 친정아버지가 편지 한 장을 건넸습니다. 두말하지 말고 집에 들어가는 즉시 사위한테 전달하라는 것이었습니다. 집에 돌아온 아내가 편지부터 내밀었다. 신랑이 편지를 받아들자마자 기겁을 했다. 거기 이렇게 적혀 있었다. “취급주의, 깨지기 쉬움”

아내는 마치 깨지기 쉬운 그릇과 같습니다. 한번 깨지고 나면 다시 붙여 쓸 수 없습니다. 그래서 베드로는 이어서 “귀히 여기라”고 하는 것입니다. 왜? “생명의 은혜를 유업으로 함께 받을 자”이기 때문입니다. 아내를 함부로 대하는 것은 취급주의를 어기는 것입니다.

어떤 남편이 아내가 허리가 아파 수술을 하게 되었을 때 농담으로 이렇게 말했습니다. 수술비가 적지 않을 것이란 짐작을 하고 “왜 신부는 친정에서 애프터서비스를 안 해주지?” 이 말이 장인어른에게 곧 전달되었고 장인어른에게서 돌아온 답은 너무 간단하고 단호했답니다. “사용자 부주의는 보상안됨”

특히 여자는 감정적으로, 심리적으로 너무나 복잡해서 한번 무너지면 스스로도 정리가 잘 안되는 존재입니다. 그래서 감정적인 상처를 잊어버리지 않고 날짜까지 기억하며 간직하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여성의 이런 모든 연약함을 한 남자의 사랑으로 치유될 수 있도록 하셨습니다. 탈무드에는 이런 말이 있습니다.

“아담의 신체 중 왜 하필이면 갈비뼈로 하와를 만들었을까? 만약 머리로 만들었다면 여성들은 남자들의 머리꼭대기 위에 올라갈 것이다. 반대로 발뼈로 만들었다면 발에 밟혔을 것이다. 갈비뼈로 만들어 여자가 남편의 가슴에 안겼을 때 평안을 누리도록 한 것이다.”



3. 다르면서도 하나라는 것입니다.(5-6) 

“한 몸이 될지니라”고 말씀하십니다. 이 말씀의 의미는 가장 어울리는, 가장 적합한 사람을 주셨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짝을 지어주셨음을 믿는 것입니다. 사람이 한 것이 아닙니다. 그러기에 그것은 가장 멋진 커플인 것을 믿어야합니다. 옆집 여자를 보면 훨씬 더 나은 것 같고 건너 집 남자와 살면 훨씬 더 좋을 것 같지만 다 속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짝지어 주신 것을 믿으십시오. 여러분의 가장 좋은 짝입니다.

우리의 죄성은 자신이 모자라는 것은 생각하지 않고 꼭 상대의 모자라는 것을 생각합니다.

이런 재미있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담에게 하와를 만들어 주시자 아담이 너무 마음에 들어 끔찍이 사랑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 감사하면서 물었습니다. “하나님, 어떻게 제 아내를 저렇게 아름답게 만드셨어요?” 그러자 하나님께서 “그래야 네가 사랑할 거 아니냐?” 그러시더랍니다. 계속 대화가 진행됩니다. “어떻게 저렇게 착하게 만드셨어요?” “그래야 네가 아껴줄 거 아니냐?” “그런데 하나님, 가만히 보면 쟤가 좀 ‘맹한’ 데가 있어요. 그건 왜죠?” 그러자 하나님께서 “그래야 쟤가 너 같은 것을 사랑할 거 아니냐?” 그러시더랍니다.

상대 배우자보다 내가 더 문제임을 알아야 합니다.



한 몸은 연합을 통하여 이루어집니다. “…아내에게 합하여 그 둘이 한 몸이 될지니라”

여기 ‘합한다’는 말은 아교풀로 붙인다는 말입니다. 붙인 것을 떼면 모두에게 상처가 남게 되고 못쓰게 될 가능성이 많습니다. 서로 다르지만 다르기 때문에 상대에게 비어 없는 공간을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완벽하게 채우도록 하셔서 하나가 되게 하신 것입니다.



(4. 현실에 따르지 말고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야 합니다.

바리새인들이 현실을 말하였지만 예수님은 창조의 원리를 가지고 말씀하신다.)



●맺으면서

마당을 깨끗이 다 쓴 후에 빗자루를 들고 서 있는 여자를 무엇이라고 하겠습니까? ‘쓸데없는 여자’입니다. 하루도 빠짐없이 정확하게 퇴근해서 일찍 들어오는 남자를 뭐라고 하겠습니까? ‘별 볼 일 없는 남자’입니다. 그러나 쓸데없는 여자는 부지런한 여자가 일 수 있고 별 볼 일 없는 남자는 성실한 남자일 수 있습니다. 우리의 이기적인 죄성은 남편과 아내의 장점을 보게 하지 못하고 단점을 더욱 크게 보도록 합니다.

전9:9에는 이 세상에서 인생이 가질 수 있는 가장 즐거움이 부부가 즐겁게 사는 것임을 말합니다. 이 세상의 다른 모든 것은 헛될 것이지만 부부의 행복한 삶만은 가장 큰 즐거움이요 복이라고 말합니다.

유대인 랍비의 교훈 중에  “남자는 그의 옆구리로부터 나온 갈비뼈를 갖지 못하는 동안은 휴식할 수 없고 여자는 그녀가 나온 남자의 팔 밑에 있지 않으면 휴식하지 못한다”는 말이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부, 이제 우리는 하나님이 세우신 행복의 동산에서 부부가 서로 이해하고 존중하며 하나님의 뜻을 붙들고 사십시다. 그리하여 가정이 무너지는 시대에도 행복하고 건강한 가정의 모델로서 세상의 소금과 빛의 역할을 감당하시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 아 멘 - (주후2005-05-29※가족주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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