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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며 삽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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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및 요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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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주며 삽시다.
찬송> 362, 373장
성경> 눅6:38
"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줄 것이니 곧 후히 되어 누르고 흔들어 넘치도록 하여 너희에게 안겨 주리라"


●역설적인 말
성경에는 세상의 이치와 논리로는 말이 안 되는 말이 많이 있습니다. 역설적인 논리의 말들이 있다는 말입니다. 예를 들면, 예수님의 말씀 중에 "누구든지 자기를 높이는 자는 낮아지고 누구든지 자기를 낮추는 자는 높아지리라"(마23:12)는 말씀이 있고, 바울 사도의 말씀 중에 "내가 약할 그 때에 곧 강함이니라"(고후12:10)는 말씀이 있습니다.
그런데 또 하나 역설적인 말씀이 오늘 본문의 말씀입니다.
"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줄 것이니 곧 후히 되어 누르고 흔들어 넘치도록 하여 너희에게 안겨 주리라"

주면 내 것이 없어지는데 어찌 후히 될 수 있습니까? 오늘 말씀은 '후히 되는 것'으로만 끝나는 것이 아니라 '후히 되어 흔들어 넘치도록 하여 안겨 주리라'고 말씀합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법칙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백성입니다. 이 땅을 살아가지만 이 땅에서 또 하나의 다른 법을 존중하며 그것을 따르려하는 사람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법입니다. 이 세상의 법칙은 주면 자신의 것이 없어지는 것이지만 하나님의 법칙은 주면 더욱 풍성해지는 법입니다.

성도 여러분, 오늘 우리는 '주며 삽시다'라는 제목의 말씀을 받습니다. 그것이 우선적으로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이지만 따지고 보면 우리가 잘 되자는 말씀입니다.
"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줄 것이니 곧 후히 되어 누르고 흔들어 넘치도록 하여 너희에게 안겨 주리라"

●주어야할 이유
그러면 우리가 왜 주어야하겠습니까?
먼저, 구원의 은혜를 거저 받았기 때문입니다. 마10:8에 예수님은 제자들을 복음의 현장으로 보내면서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제자들이 대가를 바라지 말고 주어야할 이유가 그들이 대가를 지불하지도 않고 받았기 때문입니다.
사실 우리 모두는 복음에 빚을 진 자들입니다. 얼마의 빚을 졌겠습니까?

마태복음 18장에보면 예수님이 용서에 대한 교훈을 말씀하시면서 하나의 예를 듭니다.
어떤 한 사람이 주인에게 일만 달란트의 빚을 졌습니다. 갚을 기한이 찼기 때문에 주인이 당장 갚으라고 말합니다. 갚을 것이 없으면 처자식과 재산 모두를 다 팔아 갚으라고 말합니다. 종이 통사정을 합니다. 그 모습을 보는 주인의 마음에 불쌍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당장 빚을 없는 것으로 탕감을 시켜줍니다. 얼마나 기뻤겠습니까?
이 탕감 받은 사람에게 백 데나리온 빚을 진 사람이 있었습니다. 길을 가다가 이 사람을 만났습니다. 멱살을 잡으며 당장 갚으라고 말합니다. 백 데나리온 빚진 사람 역시 통사정을 합니다. 그런데 이 사람은 조금 전에 자신의 빚을 탕감 받은 사실을 아는지 모르는지 백 데나리온 빚진 사람을 옥에 가두어 버립니다.
결국 일만 달란트 탕감해준 사람이 이 사실을 알고 노발대발하여 다시 저를 불러다가 당장 옥에 넣어버렸다는 비유의 말씀입니다.

일만 달란트를 데나리온으로 환산을 하면 약 육천만 데나리온에 달합니다. 이 사람은 육천만 데나리온의 빚을 탕감받고도 자신에게 백 데나리온 빚진 사람에게 긍휼을 베풀지 못했습니다.

한 데나리온이 당시에 노동자들의 하루 품삯이었으니 일당을 5만원으로 잡으면, 여기 일만 달란트는 30조원입니다. 무슨 말인가하면 도무지 갚을 수 없는 은혜를 받았다는 말입니다. 우리가 받은 구원의 은혜가 이러하다는 말씀입니다. 복음은 이 세상의 어떤 값을 치고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자신의 아들을 그 대가로 치신 것입니다.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말입니다.
우리는 바로 그런 은혜를 입은 자입니다. 도무지 값을 칠 수 없는 것이기에 하나님이 아시고 '거저' 주셨습니다. 우리는 '거저' 받았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주님이 원하시는 일에는 거저 드려야하는 자들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주가 쓰시겠다' 할 때에 우리가 왜 그냥 드려야 하는지 아시겠습니까?

둘째로, 주는 자가 복되기 때문입니다.
행20:35에는 복음서에 기록되어 있지 않는 예수님의 말씀이 있는데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복이 있다"는 말씀입니다.
성도 여러분, 이 말씀을 그대로 믿으십니까?
받는 것도 복된 것은 사실입니다. 아무나 받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주는 사람이 더 복됩니다.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상을 주는 사람이 나은 사람입니까 상은 받는 사람이 나은 사람입니까? 돈을 주는 사람이 형편이 나은 사람입니까 아니면 돈을 받으러 다니는 사람이 나은 사람입니까?
성도 여러분, 받는 인생이 되기보다는 주는 인생으로 사시기 바랍니다.

그런데 세상을 사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면, 있는데도 인색하게 사는 사람이 있는가하면 없어도 있는 것처럼 넉넉한 사람이 있습니다. 저는 우리 성도들이 있으면서도 넉넉한 분들이 되기를 바라지만 혹 없더라도 궁색한 삶을 살지 마시기 바랍니다. 더 나아가 있으면서 인색한 사람은 더더욱 되지 마십시오. 이런 사람이 가장 불쌍하고 비참한 사람입니다. 있으면 있는 데로 베풀면서 넉넉하게 사십시오.

제가 아는 한 목사님은 공부도 잘하고 하여 대학을 다니면서 장학금을 받고 입학하였습니다. 학적인 소양도 있어 성경을 해석하고 말씀을 전하는데는 동기생들이 말씀을 들어도 깨닫는 것들이 많았습니다. 그런데 이 분은 평상시에 만나기만 하면 항상 궁색한 소리를 합니다. 자기네 교회가 이렇게 어렵고, 무슨 일이 나서 또 어렵고…
그래서 제가 저희 집에 있는 것들이나, 제게 그렇게 필요없는 것들은 더러 주었습니다. 그러나 값으로 치면 값나가는 것들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나중에 보니 할 것은 다 하는 것입니다. 교회가 어렵다고 하면서 중국도 가고, 인도도 가고... 물론 선교지도 둘러보아야 선교도 하고 견문을 넓혀야 말씀도 더 잘 전하겠지요. 그러나 나는 한 번도 하지 못하는데 생각하니 괘심한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나중에 알 수 있었던 것은 그 목사님의 삶이 항상 그런 것이었습니다. 그 목사님은 있어도 항상 궁색한 듯이 살아가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니 그 목사님의 목회 형편과 가정 생활 또한 항상 그런 것 같았습니다.
몸이 아파 몇 달 고생. 교회에 문제가 생겨 몇 달 고생. 사고가 나서 수습하느라 분주한 모습.
저는 이 목사님의 삶에 문제는 다른 것이 아니라, 감사가 없고 또 베푸는 삶이 없어서 그렇다고 결론을 내렸습니다.

성도 여러분, 여러분에게 베풀 기회가 오면 놓치지 마십시오. 그것을 복 받을 기회라 생각하고 적극적으로, 또 우선적으로 하시기 바랍니다. 다른 사람에게 궁색한 티를 내지 마십시오. 이런 사람은 받고 살 인생이지 주며 살 인생이 될 수 없습니다.
어떤 모임에 가서 돈 내야하는 때가 되면 항상 늦장 부리는 사람이 있습니다. 없는데도 있는 척하여 일부러 허세를 부리라는 말이 아니라 언젠가 한 번 돌아가면서 내야하는 것이면 제일 먼저 내십시오. 그리고 어떤 일을 할 때 그것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선한 일이면 여러분이 먼저 부담하시기 바랍니다.

●누구에게 주어야 합니까?
그러면 우리가 베풀어야 할 사람은 누구입니까?
우리가 빚을 진 분에게 해야할 것입니다. 누구입니까? 하나님입니다. 예수님입니다. 우리의 일만 달란트 빚을 탕감해 준 분은 바로 하나님입니다. 그 탕감의 대가는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였습니다.

그런데 이제 우리는 어떻게 보답해야 합니까? 우리가 보답해야할 오늘날의 예수님은 어디에 계십니까?
마25:40에 "여기 내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또 마25:45에는 "이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하지 아니한 것이 곧 내게 하지 아니한 것이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작은 자 하나에게 하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그 작은 자는 누구입니까?

먼저 우리 주위의 불쌍한 사람입니다. 우리는 주님을 생각하고 소외 받는 이들을 도와야합니다. 그런데 성경은 먼저 우리 성도들을 우선적으로 도와야한다고 말씀합니다.
갈6:10에 "그러므로 우리는 기회 있는 대로 모든 이에게 착한 일을 하되 더욱 믿음의 가정들에게 할지니라"
우리 교회에 구제 위원회가 활동을 시작하였습니다. 여러 성도들은 구역 내에 어려운 가정들을 잘 살펴서 돌봄이 필요한 가정을 구제 위원회로 말씀해 주시기 바랍니다. 또한 같은 믿음을 길을 걷는 성도가 아닐지라도 누군가의 절대적인 도움이 필요한 곳이 있으면 구제 위원회에 말씀해 주시기 바랍니다.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찾아가게 될 것입니다.

두 번째로, 복음의 원리에 따라 생각해보면 작은 자는 복음에 소외된 지역에 사는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아직 일만 달란트 빚을 탕감 받을 길을 알지 못한 채 사는 사람들입니다.
우리는 이를 위해 그 지역에 선교사를 보냅니다. 우리가 직접 가지 못하지만 우리는 그들에게 선교사를 보내는 자로서의 역할을 하는 것입니다. '가든지 보내든지'해야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가지 못하면 보내야 합니다.
이제까지 우리 교회는 선교사를 후원하는 일을 해 왔습니다. 그러나 그 후원이 돈을 보내는 것에 그쳤습니다. 실제로 우리가 후원하고 있는 선교사님의 얼굴도 모르고 어디서 어떤 사역을 하고 있는지도 모르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이제 그렇게 해서는 안됩니다. 돈을 보내되 기도를 실은 돈을 보내야합니다. 그리고 그 선교사님을 위해 구체적으로 기도해야합니다.

예를 들면, 우리가 후원하고 있는 선교사 중에 안경갑 선교사님이 있습니다. 그의 사역지는 몽골입니다. 우리가 그를 위해 몽골 사역지를 생각하고 간절히 기도합니다. 그런데 그 선교사님은 지금 안식년을 맞아 선교공부를 위해 카나다에 가 있습니다. 그럴 때 우리의 기도의 방향이 틀리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지금 카나다에서 그 선교사님이 겪고 있는 상황을 두고 기도해야할 것입니다. 안식년을 효과적으로 보낼 수 있도록. 또 사모님이 아르바이트 자리를 구하는데 잘 구해지기를. 아이들이 국제적 미아처럼 헤메이지 않도록. 등 등. 서로 연락이 있고 교류가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선교사들의 실제적 후원교회가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이전에 안경갑 선교사님이 귀국을 해서 교제를 하면서 아이들과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었습니다. 제가 물어 보았습니다. "한국이 좋으니 몽골이 좋으니?" 그러니 바로 한국이라고 말합니다. "왜 한국이 좋아?"하고 물으니 답이 "초코파이 많이 먹을 수 있잖아요"하고 말했습니다. 그 때 생각했던 것이 다른 것은 못해도 일년에 한 번씩 이 아이들에게 초코파이 한 박스씩은 보낼 수 있지 않겠나 생각했는데 실천을 못했습니다.

그래서 이런 일을 체계적으로 하기 위해 선교위원회에 그 임무를 위임하는 것입니다. 앞으로 선교위원회는 각 선교사님과 직간접으로 연락을 취하고 교류하여 우리 성도들에게 선교사들의 정보를 주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그들을 위해 구체적으로 기도하게 될 것입니다. 선교사들은 절박하게 기도 편지를 보내지만 관심있게 우리가 기도해 주지 못하면 그들은 보급품을 받지 못한 병사와 같게 될 것입니다.
앞으로 선교 위원회에서 구역별로 지회별로 후원선교사를 배정해 주게 될 것입니다. 그러면 모든 선교사를 위해 하지는 못해도 자기 구역에 배정된 선교사들만큼은 기도해 주어야할 것입니다.

선교위원회는 국내선교에 대해서도 관할 할 것입니다. 우리 교회가 후원하는 농어촌 및 개척교회와 기관에 대해서 체계있게 관리하게 될 것입니다. 역시 돈만 보내었지 국내 후원 교회에 대해서도 모르는 곳이 많습니다. 교회는 어디에 있는지, 교역자는 누구인지, 현재 교회의 상황은 어떤지. 이 모든 것을 선교위원회가 맡아 정보를 구하고 각 지회와 구역에 제공하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 교회의 선교적 상황은 선교 위원회에 물어보면 모든 것이 다 파악되도록 해야합니다.

●가장 작은 자, 북한 동포
마지막으로 우리에게 있어 작은 자의 대상으로 정말 빼놓을 수 없는 곳이 있습니다. 북한입니다.
복음에 관한 한 우리가 갚아야할 엄청난 빚을 진 곳이 북한입니다.
우리나라에서 복음이 먼저 꽃은 피운 곳은 이북이었습니다. 한국초대 교회사의 대부분의 배경은 현재의 북한 지역입니다. 평양은 한 때 복음의 꽃이 만개했었던 지역이었습니다. 그래서 평양을 동양의 예루살렘이라고 불렀을 정도였습니다.
또 경제적으로 어떻습니까? 해방되기 전까지 아니 60년대까지만 해도 북한은 남한보다 경제적으로 더 살기 좋은 곳이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어떻습니까? 남한은 10년째 계속해서 풍년인데 북한은 10년째 계속해서 흉년입니다. 손바닥만한 이 작은 땅덩어리에서 어찌 반쪽 북한은 내리 10년째 흉년이요 남쪽은 10년 내리 풍년입니까? 이상하지 않습니까? 그것은 저 북쪽 땅이 흉년이 들 수밖에 없는 환경으로 변했다는 것을 말해주는 것입니다. 먹을 것이 없으니 닥치는데로 산에 나무를 패서 땔감으로 사용합니다. 산은 모두 민둥산이 되었습니다. 적은 비에도 홍수가 납니다.
작년에도 1919년 이후 80년만의 최악의 봄가뭄을 맞이하였다고 합니다. 이미 북한의 기아는 다 알려진 사실입니다. 영양실조에 걸리니 면역체계가 파괴되어 쉽게 병에 걸리고 또 전염병에 대해서도 저항력이 없다고 합니다. 특히, 어린아이들은 더욱 심합니다. 아이들은 제대로 먹지 못해 나이는 중1,2학년 정도되는 아이들이 신제 신체는 초등학교 1,2학년과 같습니다. 재작년 중국을 선교 정탐여행을 청년들과 같이 하였습니다. 실제로 연변에 있는 북한 동포들을 만나고 싶었습니다. 중국에서 만난 탈북한 꽃제비 아아들의 나이를 물어보니 실제 그러했습니다. 거짓말하는 것 아닌가하고 의심했으나 현지의 선교사들의 말이 맞다는 것입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단지 먹을 것이 없어서 국경을 넘어 중국으로 탈북하고 있고 이들을 난민으로 인정해야한다는 주장에 대해서도 중국은 북한과의 관계를 우려하여 인정하지 않고 있습니다. (난민으로 인정되기만 하면 국제적인 보호를 받을 수 있습니다.) 오히려 작년 6월에는 김정일이 중국을 방문하는 즈음해서 탈북자들을 색출해 6,000명이나 북한으로 강제 송환했다는 것입니다. 이들 대부분은 정치범수용소에서 공개 처형을 당하거나 심한 고문을 당하여 고통을 당하다가 죽습니다.

중국을 방문했을 때, 중국 조선족 교회에서 비밀리에 보호하고 있는 탈북자를 몇 사람 만났습니다. 그 중에 한 청년은 식량을 구하기 위해 국경을 넘어왔다가 중국에서 몇 일을 더 지체하는 바람에 영영 북한으로 돌아갈 수 없는 신세가 되었다고 했습니다. 왜냐하면 자신이 중국으로 나온 기간에 북한에서 선거가 있었다는 것입니다. 북한에서의 선거는 투표율이 100%이기 때문에 투표에 참여하지 않는 사람은 그 지역에 없었다는 것이 당장 발각이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자신이 이제 돌아가면 어디에 갔다왔느냐고 추궁을 당할 것이고 그러면 결국 자신이 국경을 넘은 것이 들통이 날 것이 뻔하기 때문에 돌아갈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몇 년 전에는 북한의 탈북자들이 자꾸 늘어나면서 이 사실이 우리의 관심을 끌기에 충분했는지 남한에서도 심각하게 보도를 했습니다. 그 때 우리가 알게 된 것이 '꽃제비'니 '장마당'이니 하는 단어들이었습니다. 왜 우리가 다른 나라의 기아와 재난의 상황은 속속들이 보도를 하면서 북한에 대해서는 소극적으로 변했는지 모르겠습니다. 북한은 변한 것이 아무 것도 없고 오히려 더욱 악화되어 가는데 우리의 관심은 점점 더 희미해져 가는지 모르겠습니다. 우리가 북한을 자극해서는 안되기 때문입니까? 그러는 가운데 우리의 북한 동포들의 생명은 그렇게 또 죽어갑니다.

●북한에 일어나는 영적 운동
그런데 사실 더욱 놀라운 것은 우리가 이렇게 보고 있는 가운데 하나님은 북한에서 복음의 역사를 일으키고 계시다는 사실입니다. 바로 탈북자들을 통해 복음이 역으로 북한으로 들어가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이들은 일정한 기간 당국의 허락을 받고 오는 사람도 있고 탈북하여 식량을 구해 들어가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런데 이들이 어려운 상황에서 조선족 교회의 도움을 받게 되고 조선족 교회에서 복음을 듣고 들어가는 것입니다. 이들을 위해 비밀리에 선교하는 선교사들이 많이 있습니다.
이제 이 일은 비밀리에 꽤 체계화되어 가고 있습니다. 이들을 비밀한 곳에서 단기간 교육시키는 곳도 생겼습니다. 북한은 이제 이들을 보호하고 복음을 가르치는 선교사들을 위협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선교사들을 실제로 잡아 강제로 북한으로 데려갑니다.(안승운 목사, 김동식 목사)

뜨겁게 회심하고 그리스도를 영접한 이들은 복음으로 재무장해 북한에 들어가서 복음을 전하는데 북한에서 영접한 사람의 명단을 적어오고, 또 북한의 지하교회 성도들을 만나 그들이 가지고 있는 손으로 적은 수첩 찬송가도 보여줍니다. 이들은 자신의 생명을 하나님께 맡기고 쌀과 함께 성경을 가지고 들어갑니다.
이들의 활동으로 국경 근처에 있는 도시들은 많은 사람들이 예수를 믿고 있다고 합니다. 제가 중국에 갔을 때 두만강 근처에 있는 회령, 무산과 같은 도시에는 암암리에 약 30%정도는 기독교 신앙을 가지고 있을 것이라고 말하는 것을 들었습니다.

이에 체제 수호에 위협을 느낀 김정일은 '간첩하나 잡는 것 보다 탈북자 하나 막는 것이 중요하다'고 지시를 내려, 더욱 국경 감시를 철저히 하고 탈북자를 색출하는데 심혈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현재는 현저히 탈북자들의 숫자가 줄어들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겨울이 되어 두만강과 압록강이 얼면 이래 죽으나 저래 죽으나 같기에 탈북자의 수가 는다고 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성경에서 예수님이 말씀 "땅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고 하신 말씀에서 땅끝은 바로 북한이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북한이 문을 열고 복음을 받게 되는 날이 마지막 날이라고 말합니다.

이 작은 자의 땅 북한, 이들을 위해 누가 주는 자가 되겠습니까? 누가 이들을 돌아보아야 하겠습니까? 우리가 다른 민족에게 복음을 전하면서 우리의 동족에게 영적으로 무관심하다면 이것처럼 모순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바울은 그의 동족 이스라엘의 구원을 생각하면서 이런 애끓는 고백을 하였습니다.
"내가 그리스도 안에서 참말을 하고 거짓말을 아니하노라 내게 큰 근심이 있는 것과 마음에 그치지 않는 고통이 있는 것을 내 양심이 성령 안에서 나로 더불어 증거하노니 나의 형제 곧 골육의 친척을 위하여 내 자신이 저주를 받아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질지라도 원하는 바로라"(롬9:1-3)

(북한의 현 상황에 대해서는 오늘 밤 예배에 여러분들이 오시면 더욱 현장감 있게 들으실 수 있을 것입니다. 북한을 30여 차례, 그것도 북한 당국에서 보여주는 것만 보는 것이 아니라 북한의 실상을 낱낱이 보신 분이 오셔서 북한의 실상과 우리가 어떻게 북한을 선교해야할 것인지 말씀해 주실 것입니다.)

●선교, 몇몇 사람의 몫이 아닙니다.
우리는 다음 주에 선교헌금을 작정하려고 합니다. 제가 조금 이상하게 여긴 것은 몇몇 사람만이 선교헌금을 하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선교는 몇몇 사람에게 주신 명령이 아닙니다. 우리는 내가 가서 복음을 전하든지 아니면 보내든지 해야합니다.
북한과 기타 지역의 선교사를 생각하면서 헌금을 작정해 주십시오. 부담이 되게 작정하지 마십시오. 이것은 일정한 기간이 있는 것이 아니라 주님이 오실 때까지 해야합니다. 우리가 조금씩만 모으더라도 요긴하게 쓰여질 것입니다.(기간은 따로 쓰지 않은 사람은 일단 1년간 작정입니다. 그리고 다시 일년마다 형편대로 작정해 주십시오.)
우리가 한 달에 오천원만 헌금해도 북한의 어린이 한 달을 먹일 수 있습니다.

여러분, 우리나라에서 지금하고 있는 캠페인 중의 하나가 무엇입니까? 음식물 쓰레기 줄이자는 운동을 하고 있습니다. 1년에 우리 나라 음식물 쓰레기를 돈으로 환산하면 8~10조원입니다. 이것을 정상적으로 처리하는 비용만도 4천억이 듭니다. 먹고 남아 버리는 돈만으로도 북한의 전 주민의 최저 식량 공급이 가능한 것입니다. 어떻게 보면 바로 지척에 굶어 죽어 가는 이웃을 두고 모른 채 하며 배를 두드리는 자들이 우리들입니다. 먹고 난 뒤 또 살을 뺀다고 드는 돈은 얼마입니까? 많이 먹어 생긴 병을 고친다고 드는 돈은 또 얼마입니까? 정말 큰 죄입니다.

여러분의 헌금은 선교 위원회에서 국내외 선교를 위해 효과적으로 사용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먼저 주는 것은 믿음이 필요하다.
말씀을 맺습니다.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복되고, 주면 하나님이 후히 채우시겠다고 약속을 하셨지만 그런 삶을 살기에는 상당한 믿음이 필요합니다. 이것은 물건을 주고 팔면서 그 자리에서 바로 이익을 보는 장사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당장은 바로 내가 손해를 보는 것 같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성도 여러분, 이런 선교 대상지역의 사람들에 비교해서 보면 이미 우리는 본전을 다 얻고 보너스까지 받은 사람입니다. 구원의 은혜를 거저 받았고 이렇게 자유스레 신앙생활도 하고 있으니까 말입니다.

이제 우리는 많은 것은 누리고 살고 있음을 인정합시다. 그리고 주며 삽시다. 얼마나 감사합니까? 거저 줘도 아무 할 말이 없을 우리들인데 하나님은 약속까지 주셨습니다. 이렇게 주는 삶을 살 때에 우리에게 '후히 되어 누르고 흔들어 넘치도록 안겨 주겠다'고 말입니다.

이 은혜와 복에 동참하는 여러분이 되시길 축원합니다. - 아 멘 -
주일오전예배 목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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