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산교회채널
 가정교회360
 예배생방송

사역의 지경이 넓혀지는 교회

주일오전예배

말세에 성도가 해야할 일 - 봉사
  • 날짜 :
  • 본문 :
  • 설교자 :
성경본문 및 요약



casttetle.jpg












 



 


 


 


 



 전체보기

제목>말세에 성도가 해야할 일 - 봉사
성경>벧전4:7-11
찬송> 376, 377장

●말세가 맞습니까?
본문은 말세의 때에 성도들이 무엇을 해야할지를 말해주고 있습니다.
7절 말씀에 "만물의 마지막이 가까웠으니"

여러분, 지금은 과연 말세가 맞습니까? 어떤 분들은 "세상 말세라고 말한지가 언제인데 아직도 말세인가?"하고 말합니다. 맞습니다. 주후 1세기에 쓰여진 성경에 이미 말세에 관한 이야기는 시작이 되었습니다. 예수님은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웠느니라"고 말씀하셨고, 예수님의 제자들과 바울은 자신의 당대에 하나님의 나라가 임할 것을 믿고 말세의식, 곧 종말신앙 속에 살았습니다.

어떻게 보면 세상은 항상 말세였던 것 같습니다. '말세, 말세!' 한 것이 언제인데 아직도 세상은 그대로 있습니다. 그래서 말세란 없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의 개인의 종말인 죽음이 분명이 있기는 하지만 그 때를 알 수 없는 것처럼, 우주적이 종말도 그 시기를 알 수 없을 뿐 분명히 있고 그 때는 점점 다가오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에게 종말 신앙이 있는 것은 여러 가지로 유익합니다.
그래서 성경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그러므로 깨어 있으라 집 주인이 언제 올는지 혹 저물 때엘는지, 밤중엘는지, 닭 울 때엘는지, 새벽엘는지 너희가 알지 못함이라 그가 홀연히 와서 너희의 자는 것을 보지 않도록 하라"(막10:35-36)

우리는 우주적인 종말을 믿지만 사실 개인적인 종말을 생각하며 하나님 앞에 하루하루를 경건하게 사는 것이 필요합니다. 우주적인 종말에 대한 염려보다 우리 자신의 개인적 종말을 생각하면, 항상 말세임을 고백하며 살 수 밖에 없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은 분명 매일 말세, 즉 종말을 살아가시는 분입니다. 그렇게 고백할 수 있습니까?
저는 40대 초반이지만 나의 종말을 내가 정할 수 없음을 압니다. 언제 하나님이 나를 부르실지 알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40대의 나이에 이미 하나님의 부름을 받은 동기목사, 후배 목사가 있습니다. 인간적으로 보면 너무 안타까운 일입니다. 어찌 우리가 말세를 살아가는 자들이 아니라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말세에 해야할 일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그러면 이 마지막 때에 우리는 무엇을 하며 살아야 하겠습니까?
성도 여러분, 여러분은 여러분의 남은 날이 석 달 밖에 남지 않았다고 한다면 무엇을 하시겠습니까?
홀연히 주의 재림이 우리 가운데 나타났을 때, 그 때 여러분이 무엇을 하고 있었으면 제일 좋겠습니까?

오늘 본문에서 마지막 때에 성도들이 해야할 것을 구체적으로 명시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참 다행입니다. 고민하지 않아도 이미 답이 우리에게 말씀으로 주어졌기 때문입니다. 오늘 말씀입니다. 무엇입니까?

첫째, 마지막 때에는 기도해야 합니다.(7절)
적당하게 기도해서는 안됩니다. 정신을 차리고 근신하여 기도하여야 합니다.
둘째, 마지막 때에는 서로 사랑해야 합니다.(8)
이것도 적당히 사랑하는 것이 아닙니다. 무엇보다 열심으로 사랑해야합니다.
셋째, 마지막 때에는 봉사해야 합니다.(9)

●봉사하라
오늘 집중적으로 나눌 말씀은 이 말씀입니다. 봉사에 관한 말씀입니다.
크레머라는 신학자는 '교회의 본질은 봉사'라고 했습니다.
즉 내가 교인이라면 어떤 봉사든지 하고 있어야 된다는 말씀입니다. 그 봉사가 모이는 곳이 교회입니다. 실제로 교회에서 봉사를 하지 않으면 주인 의식이 느껴지지 않습니다. 내가 몸담고 신앙 생활해야할 교회라는 생각이 안 듭니다. 항상 손님으로 지낼 수밖에 없습니다.

여러분은 어떨 때 하나님의 자녀임을 느끼십니까? 봉사할 때입니다. 결국 봉사함으로써 하나님의 자녀로 인정받게 된다는 것을 믿으시길 바랍니다.

그러면 봉사를 할 때 어떤 정신으로 해야하겠습니까?

●원망 없이 하라
첫째, 원망없이 해야합니다.
9절 "서로 대접하기를 원망없이 하고"
봉사에 관해 말하면서 왜 이런 말을 하게 되겠습니까? 봉사라는 것은 섬기는 것인데 섬기는 일에 전혀 어울리지 않는 원망, 불평이 나올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봉사한다고 하면서 불평, 불만, 원망하게 되면 봉사의 의미는 없어지는 것입니다. 이러면 크게 시험이 들게 됩니다. 아예 봉사하지 않았으면 모르는데 봉사한다고 뛰어 들었다가 시험들면 크게 실족하여 믿음에 더욱 큰 손해를 보게됩니다. 이런 사람은 다시는 봉사를 잘 하지 않으려 합니다. 그리고 봉사에는 소극적인 사람이 됩니다.

그러면 왜 봉사라는 이름 밑에서 원망이 있겠습니까? 그것은 봉사를 잘못 이해하였기 때문입니다. 봉사 끝에 나타나는 유익을 먼저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대가를 바라고, 인정해 주기를 바라고, 칭찬을 바라고 봉사를 하기 때문입니다.
봉사는 종의 자세로 하는 것입니다. 종은 대가나 칭찬은 두 번째 문제고 항상 우선적인 것이 주인의 명령에 복종하는 것입니다. 교회에서 하는 봉사의 모범은 항상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막10장 45절에 "인자의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
기독교가 다른 종교와 다른 것은, 세상의 많은 다른 종교는 결국 많은 힘을 얻어서 다른 사람의 위에서 군림하려는 것입니다. 그러나 기독교는 힘이 센 사람이 힘이 없는 사람을 섬기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미 봉사하기로 작정하였을 때 섬김을 받는 사람보다 더 높은 위치에 있습니다.
우리가 섬기면서 화를 내고 원망을 하게 되면 그 사람은 높은 위치에 있는 사람이 아닙니다. 힘이 있다는 말은 여유가 있다는 말입니다. 어떤 사람이 어린아이들과 싸우고 있다 합시다. 옳고 그름을 떠나서 모두가 다 아이를 욕하는 것이 아니라 어른을 욕합니다.
여러분이 어떤 사람과 대면을 하였을 때 먼저 의도적으로 화를 내는 것이 아니라, 자기도 모르게 욱하고 화가 나오면 그 사람은 그 싸움에서 이긴 것이 아니라 진 것임을 알아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렇게 작정합시다. 다같이 따라합시다. "봉사하면서 욕 듣기로 작정하자" 칭찬과 인정이 있을 수 있겠지만 '욕 듣기로' 작정하는 것이 실족하지 않습니다.

요사이 새벽기도회 때 고린도후서를 강해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정말 바울 사도만큼이나 사역에 어려움을 당한 사람도 없을 것입니다. 곳곳에서 나타나는 바울의 억울함은 그 서신을 읽는 내가 울분이 치밀어 오를 정도입니다.(중고시절 국사시간에 근대사를 배우면 일본이 우리나라에 행한 만행을 배우게 되는데 정말 울분이 치밀어 올라 공부할 수가 없었던 때를 기억하게 됩니다.) 그런데 바울은 도리어 고린도교인들에게 자신 때문에 실족한 사람이 있으면 용서하라고 말합니다. 정말 속도 없는 사람입니다. 그러나 진짜 속이 없으신 분은 바로 우리 예수님이셨습니다. 주님은 십자가에서 무고하게 자기를 죽이는 사람들을 위해서도 기도를 하신 분입니다. "아버지여 저들을 사하여 주옵소서 자신의 하는 일을 알지 못합니다."
예수님이 자기의 속에 있는 인간적인 생각대로 한다면 우리 중에 살아남을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성경은 '복음과 함께 영광을 받아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도리어 '복음과 함께 고난을 받아라'고 말합니다.

●은사대로 봉사하라
둘째, 받은 은사를 알고 봉사해야 합니다
벧전 4:10 "각각 은사를 받은 대로 하나님의 각양 은혜를 맡은 선한 청지기같이 서로 봉사하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마다 다른 은사를 주셨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봉사를 지속적으로 하지 못하는 것 중에 중요한 이유가 바로 은사를 바로 알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제가 지난주에 한 이전에 섬기던 교회의 한 사람을 만났습니다. 그 사람은 컴퓨터 프로그램 개발에 탁월한 재능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좋은 프로그램을 개발해 놓고도 제품화하여 보급하는데 항상 실패를 하는 것입니다. 근황을 물었더니 이전보다 더 좋지 않아졌습니다. **와 동업을 했는데 더 많이 손해를 보았다는 것입니다. 제가 그 사람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영업하러 다닐 때 혼자 다니지 말고 다른 사람과 같이 다니라고 말입니다. 그 사람은 영업에 체질이 아니었습니다. 좋은 제품을 개발할 수는 있는 사람이지만 장사할 사람은 아니었습니다.
무엇이 잘못 되었습니까? 그의 은사가 제대로 발휘되는 곳에 있지 않았다는 말입니다. 이런 사람은 결국 실족하게 됩니다. 그리고는 봉사에는 의욕을 잃어버립니다.

그러면 어떤 곳이 자신의 은사에 맞는 곳입니까? 일반적인 것만 말씀드립니다.
1. 일하면 내가 신이 나는 곳입니다.
2. 내가 그 일을 하면 다른 사람들도 흐뭇해하는 곳입니다.
3. 일의 열매가 맺히는 곳입니다.

예) 새들백교회를 가면 매일 자동차부품만 만지는 은사로 교회를 봉사합니다. 교회의 모든 차들을 돌봐주는 것입니다. 이런 분이 사람을 안내하면 정신이 없는 것입니다.

●서로 봉사하라
셋째, 합력하여 봉사해야 합니다.
본문에 유독 자주 나오는 단어가 '서로'라는 말입니다.(8, 9, 10)
또한 내가 알아야 할 것은 내가 하는 봉사만을 고집해서는 안됩니다. 이것이 문제입니다.
자기만 열심히 하면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함께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봉사정신입니다. 왕상 18-19장에 엘리야 이야기가 나옵니다. 엘리야는 신앙의 절개를 지켰습니다. 바알신과 아세라 신을 섬기는 자 850명을 죽였습니다. 그러나 탈진된 엘리야는 생각하기를 이렇게 우상숭배하지 않는 사람은 자기 혼자뿐이라고 교만하게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주님께서 "너 혼자나 아니다. 바알과 아세라 목상에 절하지 아니한 자 7,000명이 있다." 그랬습니다.
우리 봉사하는 사람들이 겸손해야 됩니다. 따라서 봉사는 상호간에 협력이 중요한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도 고전 12장에 우리가 지체이다, 우리 몸이 하나라고 말하게 된 것입니다.

"한 사람이 못을 박으면 다른 한 사람은 그곳에 모자를 건다."라는 영국 속담이 있습니다.
한 사람이 벽에다가 힘들게 못을 박았어요. 아마 그 못을 박다가 손을 찍혔는지도 몰라요. 그런데 또 한 사람은 모자를 걸었습니다. 모자 거는 것은 얼마나 쉬워요. 그런데 못은 왜 박습니까? 모자를 걸라고 한 것입니다. 모자를 거는 사람이 있기 때문에 못박은 것이 가치가 있는 것입니다.

●성령의 힘으로 봉사하라
넷째, 봉사는 성령의 힘으로 하는 것입니다.
11절 말씀에 "만일 누가 말하려면 하나님의 말씀을 하는 것같이 하고 누가 봉사하려면 하나님의 공급하시는 힘으로 하는 것같이 하라"하였습니다.

앞서 일반적인 은사에 대한 확인을 말할 때 '내가 일하면 신이 나는 곳'이라 말하였습니다.
우리가 이 말뜻을 잘 생각해보면 참 의미있는 말입니다. 내가 일을 할 때 신이 난다는 말은 나의 끼가 발휘되어 흥이 나는 것을 의미하는 것 같지만 실은 이 '신난다'는 말은 한자로 더 풀이해서 말하면 '신명'난다는 말입니다. 여기의 신은 하나님 신(神)입니다. 사실은 '나의 흥'이 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흥'이 나셔야 한다는 말입니다. 이 말은 우리가 진정으로 봉사하는 것은 나의 힘이 아니라 성령의 힘으로 해야한다는 것을 말합니다.

우리가 주님의 일을 할 때 인간적인 나의 판단과 뜻으로만 해서는 안된다는 말입니다. 먼저 하나님이 그 일에 대해 나에게 자극을 주실 때 우리는 신중하게 기도하며 하나님의 뜻을 새겨야합니다. 주님의 뜻을 따라 행하면 결국 주님이 힘을 주시는 것입니다. 성령으로 함께 해 주실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여러분은 가끔 이런 사람들을 볼 수 있을 것입니다. '도대체 저 사람은 저렇게 헌신할 사람이 아닌데…'

제가 아는 고등학교 동창생 한 명도 의료선교사로 곧 나가게 됩니다. 그런데 제가 아는 이 친구는 그럴만한 친구가 아니었습니다. 고등학교 때 한 반이었는데 종교문제가 나오면 아주 소극적이었던 것으로 생각되고 적극적으로 기독교를 변호하지 못하는 친구였습니다. 한 번은 국민윤리 시간에 선생님이 다른 종교는 가만 두고 기독교만 그렇게 비판하는 것을 제가 참다못해 선생님께 좀 대어들었습니다. 물론 말로써 선생님의 말의 모순을 제기한 것이죠. 선생님이 좀 당황했습니다. 그러자 종이 울렸습니다. 선생님은 다음 시간에 이야기하자고 말하고 교실을 나갔는데 갑짜기 교회 다니는 친구들이 제 주위로 몰려와서 어느 교회 다니냐고 물으며 관심을 보였습니다. 그 중에 한 친구가 바로 이 친구입니다.
그런데 이 친구가 아프리카 카메룬 오지에 의료선교를 나가겠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냥 안정된 직장에서 일평생 보낼 수 있는 친구입니다. 자신의 아내도 반대하였습니다. 아이도 늦동이를 두어 3살된 아이가 있습니다. 저보고 아내의 마음을 돌릴 수 있도록 기도해 달라고 요청했습니다. 며칠전 선교 소식지가 왔는데 교단에서 하는 선교훈련도 다 마쳤고 이제 파송예배일정을 알려 왔습니다.
도대체 무엇이 이 친구를 이렇게 만들었나하고 생각해 보았습니다. 그 친구에게 하나님의 영이 임한 것입니다. 그리고 그 친구를 가만있도록 만들지 않은 것입니다.

그는 지금 하나님의 영으로 봉사하려고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처음부터 그 속에 자신의 영으로 자극을 주셨고 준비하게 하셨고 이제 나가게 하신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어찌 한 선교사 이야기에게만 적용되겠습니까? 우리의 모든 봉사가 다 그와 같은 것입니다. 여러분이 인간적인 생각만 가지고 봉사하려 하지 마십시오. 하나님이 자극을 주시면 그것 때문에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어떤 경우 기도할 필요도 없이 명확한 답이 있습니다. 헌신만 하면 되는 것이 많이 있습니다.

적용)2002년에는 모든 장산교회 세례교인은 1인 1봉사제를 시행합니다. 무엇이든 좋습니다. 주일학교 교사든, 찬양대원이든, 식당봉사든, 주차안내, 예배안내 등. 찾아보면 여러분을 기다리는 곳이 너무나 많습니다. 우리교회는 앞으로 "어디에 몇 명의 성도의 섬김이 필요합니다".하고 광고만 하면 지원자가 미어터지는 교회가 되기를 바랍니다. 기도하시고 지원하시기 바랍니다. 다음주에는 지원서를 나누어 드리겠습니다.

●기념될 만한 봉사를 해 봅시다.
성도 여러분, 말세입니다. 고전 15장 역시 말세를 의식한 성도들의 이야기입니다. 말세신앙은 있었지만 부활에 대해 오해를 하였기에 바울 사도가 다시 가르치는 것입니다. 그는 부활장을 마치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고전 15:58) 『그러므로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견고하며 흔들리지 말며 항상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 자들이 되라 이는 너희 수고가 주 안에서 헛되지 않은 줄을 앎이니라』

성경에 나오는 바, 천국에는 세 종류의 책이 있습니다. 첫째는 거듭난 하나님의 자녀들의 이름을 기록하는 생명책입니다.(계21:27) 둘째는 우리의 신앙생활의 행위를 기록한 행위록입니다.(계20:12) 마지막으로 우리의 신앙 행위에 기념될 만한 일들을 기록한 기념책입니다.(말3:16)

성도여러분, 우주적이고 또 매일 개인적인 말세를 살아가시는 성도 여러분, 정신을 차리고 근신하여 기도하시는 여러분이 되시길 바랍니다. 서로 열심히 사랑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서로 봉사하시는 여러분이 되셔서 생명책에 여러분의 이름이 기록된 것으로만 만족하지 말고, 우리의 행위록에 아름다운 족적을 많이 남기시고 또 아름답고 귀한 헌신의 봉사를 통하여 기념책에 여러분의 이름을 남기는 성도들이 되시길 축원합니다. - 아 멘 -
게시물 검색

장산교회채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