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의 표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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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및 요약
제목> 시대의 표적
성경> 마16:1-4
찬송>331, 470장
●대구 지하철 방화 참사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한 주간동안 안녕하셨습니까?
오늘 제가 이렇게 인사부터 시작하는 이유를 짐작하시는 분들도 있을 것입니다.
지난 18일 화요일 오전, 대구 지하철 방화 참사. 그 어떤 말로 이 사건을 설명하기에는 부족합니다.
예수님은 한 사람이 천하를 다 얻는다고 해도 목숨을 잃는다면 무슨 유익이 있느냐고 말씀하셨습니다. 천하를 얻을 목적은 아니었지만 그날 아침에도 그들은 그들 나름의 행복을 위해 아침부터 부지런히 서둘렀던 사람들이었습니다. 이런 귀한 사람들의 목숨이 불과 몇 시간 만에 시커먼 숯덩이로 변하고 말았습니다. 아니 많은 사람들이 집을 나선지 불과 몇 시간 안에 흔적도 찾을 수 없는 재가 되어 있었습니다.
수백의 생명들이 칠흑 같은 어둠, 폐부를 녹여내는 유독가스와 화염 속에서 아무런 준비 없이 마지막 순간을 맞이했습니다. 이 어처구니없는 사건은 한 개인이 우발적으로 저지른 행위여서 우리 모두를 더 큰 절망감으로 내몰았습니다. 지난 한 주간동안 우리 모두는 나 자신의 일처럼 안타까워하며 슬픔의 가슴을 쓸어 내렸습니다.
희생자들의 가족들을 생각해 봅니다. 그들은 사랑하는 이들의 모습을 생각하며 미칠 듯이 울었습니다. 그러다 그들의 슬픔은 이내 분노로 변했습니다.
우리 역시 함께 안타까워하다 분노하였습니다.
저의 경우를 생각해 봅니다. 처음에는 정신병자 한 사람을 향해 분노했습니다.
속으로 외쳤습니다. “미친 자식, 죽으려면 혼자 죽지…”
곧 희생자가 그렇게 많게 된 경위들이 차츰 밝혀지면서 치미는 분노는 더욱 격해졌습니다.
돈 밖에 모르는 이 세상. 몇 푼 더 손에 쥐겠다고 사람의 생명은 생각지 않고 더 값이 싼 것을 찾다 결국 외국에는 팔아먹지도 못하는 전동차를 자기네 동족에게 팔아먹고. 그것도 최저 입찰가에. 사람의 생명이 그렇게 밖에 안 된다는 말인가?
조금 더 수사가 진행되어 지하철 관계자들의 안이한 대처가 밝혀지면서 또 다른 분노가 올라왔습니다.
“저렇게 멍청한 자들에게 우리의 생명을 맡기고 매일 살아왔다는 말인가!”
그러다 지난주일 이 시간, 하나님이 저를 통해 하게 하셨던 말씀이 생각났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조금만 더 영적으로 깨어 있다면 오늘 9시 뉴스를 통해서라고 하나님의 메시지를 들을 수 있을 것입니다.”라는.
그러면서 이성을 찾고 하나 둘 이번 사건을 통해 하나님은 무엇이라 말씀하고 있으신가를 생각하기 시작했습니다. 이 사건을 통하여 하나님이 나에게, 우리에게, 이 우리의 조국 땅에 주시는 메시지는 무엇인가? 생각하며 보도된 사건을 다시 정리해 보아야 했습니다.
●시대의 표적
오늘 본문 말씀에 예수님은 그 시대의 사람들에 대해 답답한 심정을 말씀하셨습니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너희가 저녁에 하늘이 붉으면 날이 좋겠다 하고 아침에 하늘이 붉고 흐리면 오늘은 날이 궂겠다 하나니 너희가 천기는 분별할 줄 알면서 시대의 표적은 분별할 수 없느냐”(마16:2-3)
그렇습니다. 이것은 이 시대를 향해 던지는 하나님의 표적입니다. 이 표적에서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는 이 시대의 지혜로운 성도들이 되시길 바랍니다.
1. 더욱 서로를 사랑합시다.(요13:1)
딸이 아버지에게 다급하게 외칩니다. “문이 안 열려요. 뜨거워 죽겠어요. 살려 줘요.”
아내가 남편에게 마지막 작별 인사를 합니다. “여보 사랑해요. 애들 보고 싶어.”
막내 아들은 노부모에게 사죄한다. “어머니, 불효 자식을 용서해 주세요.”
휴대전화기로 숨가쁘게 건네 온 그 마지막 말들에는 가슴 저리는 사랑이 실렸습니다.
일에 치이고 공부에 치이고 무심한 일상에 치여 하지 못하던 말, “사랑한다”는 말을 그제야 토해냈습니다.
어렵게 공부해 서울대학 합격한 것도 소용이 없고, 세 남매를 버젓이 키워 입신시킨 환경미화원 어머니의 공도 소용이 없었습니다.
그 말을 왜 진작 하지 못했을까요?
이별 의식을 그저 차가운 기계였던 한낱 전화기로 한 것은 너무나 억울하지 않습니까?
우리 예수님 천국 가시기 전에 제사들에게 보여주신 사랑입니다.
(요 13:1) 『유월절 전에 예수께서 자기가 세상을 떠나 아버지께로 돌아가실 때가 이른 줄 아시고 세상에 있는 자기 사람들을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시니라』
주님은 이별하기 전에 최선을 다해, 남김 없이 사랑하셨습니다.
우리도 뜨겁게 사랑하고 사랑의 고백을 서로 나누며 삽시다.
2. 약한 자에 대해 더욱 큰 관심을 가집시다.(롬12:15)
우리는 더욱 세심한 관심으로 우리 주위에 연약한 자들에 대해 주님의 사랑으로 보살펴 주어야 할 것입니다. 우리는 과정보다도 결과에만 집착합니다. 어떻게 해서든지 성공만 하면 그 성공이라는 결과가 그 사람의 과정을 합리화시켜 버리고, 반대로 실패하면 그 과정이 어떻든지 정죄하는 세상에 너무 익숙해 있습니다.
이번에 방화 사건을 일으킨 김대한씨가 그렇게까지 한 것은 그가 본래 그렇게 나쁜 사람이었기 때문이 아니었습니다. 그의 이웃 주민들의 말은 “중풍으로 눕기 전까지는 누구보다 성실하고 착한 사람이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주민들은 아직도 믿기지 않는다는 반응이었다고 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그가 정신질환자라고 말하지만 그가 앓는 병에 대해 전문의들은 “김씨가 앓고 있는 뇌병변이 활동을 둔하게 하고 판단력 장애를 일으키긴 하지만 정신분열과 동일시할 순 없다”라고 말합니다. 즉, 그의 정신질환으로 인한 방화가 아니라 그가 경험하게 된 절망감이 주된 원인이라고 보는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가 자주 일에 실패하고 느끼는 절망감, 그것이 반복되면 사람 정신 돌아 버리는 것처럼 되는 것 시간문제입니다. 그 사람의 환경이 그를 그렇게 만든 것입니다.
김씨를 15년 동안 알고 지냈다는 한 주민은 “중풍을 앓기 전까지는 하루 온종일 일하다 과로로 입원할 정도로 부지런했다”며 “성격이 소심하긴 했어도 판단력에는 이상이 없는 멀쩡한 사람이었다”고 전했습니다. 지난 1992년부터 김씨와 친분이 있었다는 박모(52)씨도 “6년 동안 트럭운전을 해 개인택시를 장만할 정도로 정말 열심히 사는 사람이었는데 몸이 아픈 뒤로 눈물을 많이 흘렸다”며 “남한테 싫은 소리 한 번 안했던 사람인데 도저히 믿기지 않는다”고 말했다.
다른 주민들은 “김씨가 병이 난 뒤로는 ‘열심히 살았는데 몸이 아프다고 이럴 수 있나, 내가 헛 산 것 같다’는 이야기를 자주했다”고 전했습니다. 가족들은 경찰에서 “중풍에 걸린 뒤로도 재활치료를 위해 매일 열심히 운동을 하는 등 의욕을 보였지만, 뇌졸중 치료가 실패하고 몸에 마비가 오면서 더 이상 희망을 갖지 않는 것 같았다”고 진술했습니다.
19일 입원한 김씨를 상대로 수사를 벌였던 경찰관계자는 “김씨의 진술을 녹취하는 등 대략적인 수사는 끝냈다”며 “김씨가 호흡곤란 등으로 말하는 게 불편하지만 정신질환을 앓고 있다고 보기는 곤란하다”고 말했습니다. 김씨는 경찰조사에서 “자살하려고 마음먹었는데, 혼자 죽기가 너무 억울해 사람들이 많은 곳을 찾다보니 지하철이 떠올랐다”며 “일이 이렇게 커질 줄은 몰랐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이 사람에게 누군가 다가가 복음을 전했더라면. 누군가 이 사람에게 다가가 하나님이 당신과 함께 계신다고 말해 주었더라면, 만약 그가 복음을 받아들이지 않았을지라도 누군가의 관심 속에 살고 있다는 마음이 있었다면.
만약 그 사람에게 조그만 희망이라도 있었더라면 이런 비극이 일어났겠는가?
‘사후약방문’ 즉 ‘소 잃고 외양간 고친다’고 하지만, 이번 참사로 우리정부가 우리 국민이 내는 보상비나 성금으로 일찍 이 사회의 소외되고 어두운 곳을 먼저 돌아보고 시설을 만들고 배려했더라면 이런 일을 방지할 수 있지 않았을까?
그러나 이런 일을 언제든지 다시 나타날 수 있을 것이고 우리는 주님이 이 땅에 오실 때까지 이 죄악 된 세상의 비극의 쳇바퀴가 계속해서 돌아가는 것을 보게 될 것입니다.
바울을 로마교회 성도들에게 편지하면서 이렇게 말합니다.
“즐거워하는 자들로 함께 즐거워하고 우는 자들과 함께 울라”(롬12:15)
그러나 우리는 즐거워하는 자들과는 함께 하기를 즐기면서, 우는 자들과 함께 우는 것에는 무관심한 것은 아닌지. 그러나 성경은 즐거워하는 것만큼 슬픔도 같이 나누라고 말씀합니다.
3. 무사안일주의 의식을 버리고 항상 깨어 살자.(살전5:3)
소위 말하는 안전 불감증이라는 문제는 이번에도 그 심각성을 여실히 드러내었습니다.
우리나라는 상식 밖의 대형사고가 터지는 나라로 소문이 났습니다. 세계가 잊을 만하면 한 건씩 터뜨려 여전히 대형사고라는 면에서는 이름값을 하는 나라임을 과시하곤 했습니다.
삼풍백화점 붕괴사건, 성수대교 사건, 대구에서는 지하철에 관계된 대형사고는 두 번째이지 않습니까?
그런데 이 모든 것이 다 인재(人災)라는데 있습니다. 사람의 무사안일주의가 결국 이런 사건의 밑바닥에 깔려 있는 것입니다.
금번에도 몇 번이고 사람들을 살릴 수 있는 기회가 있었습니다. 그런데도 그 정도는 괜찮겠지 하는 생각이 돌이킬 수 없는 상황이 되어 버렸습니다.
불을 지른 사람도, 지하철 관계자들도 한결같이 “일이 이렇게 될 줄은 몰랐다”는 말을 하였습니다. 자신들이 했던 일이 이렇게 참혹한 일이 될지 몰랐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이들만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사실 우리나라 사람들 거의 대부분 이 안전불감증, 무사안일주의 속에 살아가고 있습니다.
북한의 핵문제도 그렇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사태의 심각성을 잘 인식하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핵은 만의 하나라도 가능성이 있는 것이면 모두 끝장입니다. 전쟁문제에서도 태평양 건너 미국에서는 난리인데 같은 땅 남한에서는 전투기가 넘어와도 별 것 아니라는 생각인 것 같습니다. 미군 철수 운운하고.
성도 여러분, 우리의 신앙의 자세는 어떻습니까?
성도 여러분, 앞으로 세상의 많은 사람들이 이와 비슷한 말을 주님 앞에서, 심판대에서 하게 될 것입니다.
“예수 믿지 않는 일이 이렇게 큰 일이 될 줄은 몰랐다”
“신앙생활 제대로 하지 않는 것이 이렇게 큰 일인지 몰랐다”라고 말입니다.
성경은 주님이 재림할 때 세상이 이럴 것이라 말하고 있습니다.
(살전 5:3) “저희가 평안하다, 안전하다 할 그 때에 잉태된 여자에게 해산 고통이 이름과 같이 멸망이 홀연히 저희에게 이르리니 결단코 피하지 못하리라”
“너희는 마치 그 주인이 혼인집에서 돌아와 문을 두드리면 곧 열어주려고 기다리는 사람과 같이 되라 주인이 와서 깨어 있는 것을 보면 그 종들은 복이 있으리로다”(눅12:36-37)
4. 더욱 하나님만을 의지하는 삶을 삽시다.(잠3:5-6)
금번 사건을 통하여 우리는 우리가 믿고 의지하고 살아가는 것이 궁극적으로 믿을 것이 못된다는 사실을 분명히 확인하게 되었습니다.
사실 다른 어떤 대중 수단보다 지하철은 가장 안전한 교통수단으로 알았습니다. 그러나 정말 믿는 도끼에 발등 찍히는 격이 되었습니다.
우리는 오늘날 첨단과학, 첨단기술의 힘을 믿으며 행복을 기대하면 살지만 여러분은 이것들에게 배신을 당할 것입니다. 여러분이 믿는 첨단기술, 첨단과학이 여러분을 멸망시키게 될 것입니다. 그때 우리는 ‘왜 우리가 과학을 믿으며 과학을 발전시켰는가, 왜 고도의 기술을 우러러 보았는가’하며 탄식하게 될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과학이 문제가 아니라 사람이 문제입니다. 사람이 변하지 않으면 사람의 손과 발, 머리에서 나오는 모든 것은 다 우리를 멸망의 길로 몰게 될 것입니다.
저는 이번 사건으로 사람들이 지혜로운 것이 아니라 참 어리석다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참 사람 죽이는 것 쉽구나.’ 정부에서는 지하철은 유사시에 대피소로 이용할 수 있다고 했습니다. 정말 믿을 수 있겠습니까?
여러분, 전쟁이 나면 북한이 피해가 크겠습니까 남한이 피해가 크겠습니까? 이번 사건으로 이미 답이 나 있는 것 아니겠습니까? 우리는 얼마 전에 ‘인터넷 대란’이라는 소동에 떠들썩하였습니다. 정말 많은 사람이 기계 하나에 자신의 삶을 맡기면 살고 있었습니다.
성도 여러분, 이 세상의 기술을 우리가 맹신해서는 안됩니다. 문명의 이기를 우리가 활용하더라도 우리의 신앙의 대상을 명확하게 해야 합니다.
믿어야할 것을 믿지 않는 것은 ‘불신’이고, 믿지 못할 것을 믿고 사는 것은 ‘미신’이라고 하였습니다. 혹 여러분은 ‘과학’이라는 ‘기계문명’이라는 미신 속에 살고 있지는 않습니까?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믿을 것을 믿고 의지하며 삽시다. 나의 몸이 내 것인 것 같아도 병 한번 나니 내 것이 아니고, 내 몸에 뭘 할 수 있어야 내 것이라고 말하지.
영원히 변함이 없으신 분,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신 분, 우리의 믿음의 시작이시오 완성자이신 예수님만을 믿으시기 바랍니다.(히12:2 - ‘믿음의 주 온전케 하시는 분 예수’)
※♬찬539장 - 4절
세상에 믿던 모든 것 끊어질 그날 되어도 구주의 언약 믿사와 내 소망 더욱 크리라.
굳건한 반석이시니 그 위에 내가 서리라 그 위에 내가 서리라
사랑하는 여러분, 무엇을 믿고 사십니까? 오늘 아침 밝게 웃으며 학원에 가던 아이가 반나절이 채 지나기도 전에 잿더미로 변하는데. 누구에게 여러분의 자녀를, 누구에게 여러분의 부모를, 누구에게 여러분 자신을 맡기겠습니까?
(잠 27:1) 『너는 내일 일을 자랑하지 말라 하루 동안에 무슨 일이 날는지 네가 알 수 없음이니라』
(잠 3:5-6) 『[5] 너는 마음을 다하여 여호와를 의뢰하고 네 명철을 의지하지 말라 [6] 너는 범사에 그를 인정하라 그리하면 네 길을 지도하시리라』
5. 구원의 확신을 가집시다.(고후5:1, 5)
그래도 희생자들이 남긴 마지막 휴대폰 메시지 중에 예수 믿는 사람들의 메시지는 무언가 다른 것을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1)한국기독학생회(IVF)의 간사인 허현씨(29)가 동료인 강지현 간사(29)에게 마지막으로 이런 메시지를 남겼습니다.
“지현아, 나 지금 죽어가고 있어. 나를 위해 기도해줘.”
2)이번 사고로 5남매 중 유일한 딸인 지현양(16·중2)을 잃은 김충국 목사님은 오히려 대구시민회관에서 유족들을 돌보느라 분주했다. 김목사는 “봄방학을 맞아 학원에 가던 길에 변을 당한 것 같다”며 “그날따라 학원에 가길 싫어하면서도 속옷까지 다 갈아입고 집을 나섰다”며 말을 잇지 못했다.
김목사님 부부는 슬픔에 잠겨있는 유족들에게 “우리도 딸을 잃었지만 이렇게 살고 있지 않느냐”며 “하나님께서 이 세상보다 천국에서 더 필요로 하셔서 데려가신 것”이라며 위로한다고 합니다.
3)교회 기도회에 참석하러 가다 변을 당한 대구 남산동 서부교회 김창제 집사님(69)은“나 하늘나라로 먼저 올라가네…할렐루야…아멘.”하는 메시지를 남겼습니다.
휴대폰 전화로 이 말을 마지막으로 들은 석태순씨(66·대구동촌동)는 그로부터 5시간 뒤 성경책을 꼭 품은 채 눈을 감은 남편의 시신을 병원에서 확인할 수 있었다. 그의 신원을 빨리 파악할 수 있었던 것은 성경책 속에 있는 주보 때문이었습니다.
“처음 전화가 걸려왔을 때는 사람들이 웅성거리는 소리만 들렸고 남편 목소리는 잘 들리지 않았어요. 그러다가 전화가 끊어지는 바람에 제가 다시 남편 휴대전화로 전화했지만 연결되지 않았고…. 그러다가 다시 전화가 걸려왔을 때 의외로 남편의 목소리는 차분했어요. 그땐 아마 돌이킬 수 없는 상황이라는 걸 직감한 것 같았어요”
이들은 다 자신들이 갈 곳을 알았습니다. 궁극적으로 가야할 곳이 어디인지 분명히 아는 사람은 두렵지 않습니다. 그들의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 땅의 장막은 잠시 거주하는 일시적 처소일 뿐 하나님이 그들을 위해 예비하신 영원한 장막이 있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1] 만일 땅에 있는 우리의 장막집이 무너지면 하나님께서 지으신 집 곧 손으로 지은 것이 아니요 하늘에 있는 영원한 집이 우리에게 있는 줄 아나니…곧 이것을 우리에게 이루게 하시고 보증으로 성령을 우리에게 주신 이는 하나님이시니라”(고후5:1, 5)
♬찬194-3절
나지금 죄에서 사함받아 거룩한 백성이 되었으니
이육신 장막을 벗을때도 겁날것 없겠네
찬송하세 찬송하세 주님 나를 구하셨네
찬송하세 찬송하세 주가 구원 하셌네
●맺으면서
우리는 이 사건이 내가 당한 사건이 아니니까, 상관이 없는 것처럼 생각하면 안됩니다.
예수님의 공생애 기간에 이와 비슷한 큰 사고가 났습니다. 그것은 실로암 망대가 무너지는 사건이었습니다. 이 사고로 18명이 망대에 깔려 사망하였습니다. 그 당시의 인구비율로 보아서 금번 대구 지하철 방화 사건보다 더 많은 희생자라고 할 수 있는 숫자입니다. 이 실로암 망대 사건을 통해서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실로암에서 망대가 무너져 치어 죽은 열여덟 사람이 예루살렘에 거한 모든 사람보다 죄가 더 있는 줄 아느냐 너희에게 이르노니 아니라 너희도 만일 회개치 아니하면 다 이와 같이 망하리라 ”(눅13:4-5)
예수만 잘 믿으면 됩니까?
그 속에는 목사님의 딸도 있고, 훈련을 잘 받은 선교단체의 간사도 있었습니다. 그리고 오전에 있는 교회의 중직자의 기도회에 가던 신실한 집사님도 있었습니다.
어떤 믿음으로 어떻게 살며, 나의 궁극적인 소망과 목표는 무엇인지 다시 한번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이다.
이번 사건을 통하여 이 시대의 표적을 보면서 하나님의 음성을 분명하게 새기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아 멘-(주후2003-02-23)
성경> 마16:1-4
찬송>331, 470장
●대구 지하철 방화 참사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한 주간동안 안녕하셨습니까?
오늘 제가 이렇게 인사부터 시작하는 이유를 짐작하시는 분들도 있을 것입니다.
지난 18일 화요일 오전, 대구 지하철 방화 참사. 그 어떤 말로 이 사건을 설명하기에는 부족합니다.
예수님은 한 사람이 천하를 다 얻는다고 해도 목숨을 잃는다면 무슨 유익이 있느냐고 말씀하셨습니다. 천하를 얻을 목적은 아니었지만 그날 아침에도 그들은 그들 나름의 행복을 위해 아침부터 부지런히 서둘렀던 사람들이었습니다. 이런 귀한 사람들의 목숨이 불과 몇 시간 만에 시커먼 숯덩이로 변하고 말았습니다. 아니 많은 사람들이 집을 나선지 불과 몇 시간 안에 흔적도 찾을 수 없는 재가 되어 있었습니다.
수백의 생명들이 칠흑 같은 어둠, 폐부를 녹여내는 유독가스와 화염 속에서 아무런 준비 없이 마지막 순간을 맞이했습니다. 이 어처구니없는 사건은 한 개인이 우발적으로 저지른 행위여서 우리 모두를 더 큰 절망감으로 내몰았습니다. 지난 한 주간동안 우리 모두는 나 자신의 일처럼 안타까워하며 슬픔의 가슴을 쓸어 내렸습니다.
희생자들의 가족들을 생각해 봅니다. 그들은 사랑하는 이들의 모습을 생각하며 미칠 듯이 울었습니다. 그러다 그들의 슬픔은 이내 분노로 변했습니다.
우리 역시 함께 안타까워하다 분노하였습니다.
저의 경우를 생각해 봅니다. 처음에는 정신병자 한 사람을 향해 분노했습니다.
속으로 외쳤습니다. “미친 자식, 죽으려면 혼자 죽지…”
곧 희생자가 그렇게 많게 된 경위들이 차츰 밝혀지면서 치미는 분노는 더욱 격해졌습니다.
돈 밖에 모르는 이 세상. 몇 푼 더 손에 쥐겠다고 사람의 생명은 생각지 않고 더 값이 싼 것을 찾다 결국 외국에는 팔아먹지도 못하는 전동차를 자기네 동족에게 팔아먹고. 그것도 최저 입찰가에. 사람의 생명이 그렇게 밖에 안 된다는 말인가?
조금 더 수사가 진행되어 지하철 관계자들의 안이한 대처가 밝혀지면서 또 다른 분노가 올라왔습니다.
“저렇게 멍청한 자들에게 우리의 생명을 맡기고 매일 살아왔다는 말인가!”
그러다 지난주일 이 시간, 하나님이 저를 통해 하게 하셨던 말씀이 생각났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조금만 더 영적으로 깨어 있다면 오늘 9시 뉴스를 통해서라고 하나님의 메시지를 들을 수 있을 것입니다.”라는.
그러면서 이성을 찾고 하나 둘 이번 사건을 통해 하나님은 무엇이라 말씀하고 있으신가를 생각하기 시작했습니다. 이 사건을 통하여 하나님이 나에게, 우리에게, 이 우리의 조국 땅에 주시는 메시지는 무엇인가? 생각하며 보도된 사건을 다시 정리해 보아야 했습니다.
●시대의 표적
오늘 본문 말씀에 예수님은 그 시대의 사람들에 대해 답답한 심정을 말씀하셨습니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너희가 저녁에 하늘이 붉으면 날이 좋겠다 하고 아침에 하늘이 붉고 흐리면 오늘은 날이 궂겠다 하나니 너희가 천기는 분별할 줄 알면서 시대의 표적은 분별할 수 없느냐”(마16:2-3)
그렇습니다. 이것은 이 시대를 향해 던지는 하나님의 표적입니다. 이 표적에서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는 이 시대의 지혜로운 성도들이 되시길 바랍니다.
1. 더욱 서로를 사랑합시다.(요13:1)
딸이 아버지에게 다급하게 외칩니다. “문이 안 열려요. 뜨거워 죽겠어요. 살려 줘요.”
아내가 남편에게 마지막 작별 인사를 합니다. “여보 사랑해요. 애들 보고 싶어.”
막내 아들은 노부모에게 사죄한다. “어머니, 불효 자식을 용서해 주세요.”
휴대전화기로 숨가쁘게 건네 온 그 마지막 말들에는 가슴 저리는 사랑이 실렸습니다.
일에 치이고 공부에 치이고 무심한 일상에 치여 하지 못하던 말, “사랑한다”는 말을 그제야 토해냈습니다.
어렵게 공부해 서울대학 합격한 것도 소용이 없고, 세 남매를 버젓이 키워 입신시킨 환경미화원 어머니의 공도 소용이 없었습니다.
그 말을 왜 진작 하지 못했을까요?
이별 의식을 그저 차가운 기계였던 한낱 전화기로 한 것은 너무나 억울하지 않습니까?
우리 예수님 천국 가시기 전에 제사들에게 보여주신 사랑입니다.
(요 13:1) 『유월절 전에 예수께서 자기가 세상을 떠나 아버지께로 돌아가실 때가 이른 줄 아시고 세상에 있는 자기 사람들을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시니라』
주님은 이별하기 전에 최선을 다해, 남김 없이 사랑하셨습니다.
우리도 뜨겁게 사랑하고 사랑의 고백을 서로 나누며 삽시다.
2. 약한 자에 대해 더욱 큰 관심을 가집시다.(롬12:15)
우리는 더욱 세심한 관심으로 우리 주위에 연약한 자들에 대해 주님의 사랑으로 보살펴 주어야 할 것입니다. 우리는 과정보다도 결과에만 집착합니다. 어떻게 해서든지 성공만 하면 그 성공이라는 결과가 그 사람의 과정을 합리화시켜 버리고, 반대로 실패하면 그 과정이 어떻든지 정죄하는 세상에 너무 익숙해 있습니다.
이번에 방화 사건을 일으킨 김대한씨가 그렇게까지 한 것은 그가 본래 그렇게 나쁜 사람이었기 때문이 아니었습니다. 그의 이웃 주민들의 말은 “중풍으로 눕기 전까지는 누구보다 성실하고 착한 사람이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주민들은 아직도 믿기지 않는다는 반응이었다고 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그가 정신질환자라고 말하지만 그가 앓는 병에 대해 전문의들은 “김씨가 앓고 있는 뇌병변이 활동을 둔하게 하고 판단력 장애를 일으키긴 하지만 정신분열과 동일시할 순 없다”라고 말합니다. 즉, 그의 정신질환으로 인한 방화가 아니라 그가 경험하게 된 절망감이 주된 원인이라고 보는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가 자주 일에 실패하고 느끼는 절망감, 그것이 반복되면 사람 정신 돌아 버리는 것처럼 되는 것 시간문제입니다. 그 사람의 환경이 그를 그렇게 만든 것입니다.
김씨를 15년 동안 알고 지냈다는 한 주민은 “중풍을 앓기 전까지는 하루 온종일 일하다 과로로 입원할 정도로 부지런했다”며 “성격이 소심하긴 했어도 판단력에는 이상이 없는 멀쩡한 사람이었다”고 전했습니다. 지난 1992년부터 김씨와 친분이 있었다는 박모(52)씨도 “6년 동안 트럭운전을 해 개인택시를 장만할 정도로 정말 열심히 사는 사람이었는데 몸이 아픈 뒤로 눈물을 많이 흘렸다”며 “남한테 싫은 소리 한 번 안했던 사람인데 도저히 믿기지 않는다”고 말했다.
다른 주민들은 “김씨가 병이 난 뒤로는 ‘열심히 살았는데 몸이 아프다고 이럴 수 있나, 내가 헛 산 것 같다’는 이야기를 자주했다”고 전했습니다. 가족들은 경찰에서 “중풍에 걸린 뒤로도 재활치료를 위해 매일 열심히 운동을 하는 등 의욕을 보였지만, 뇌졸중 치료가 실패하고 몸에 마비가 오면서 더 이상 희망을 갖지 않는 것 같았다”고 진술했습니다.
19일 입원한 김씨를 상대로 수사를 벌였던 경찰관계자는 “김씨의 진술을 녹취하는 등 대략적인 수사는 끝냈다”며 “김씨가 호흡곤란 등으로 말하는 게 불편하지만 정신질환을 앓고 있다고 보기는 곤란하다”고 말했습니다. 김씨는 경찰조사에서 “자살하려고 마음먹었는데, 혼자 죽기가 너무 억울해 사람들이 많은 곳을 찾다보니 지하철이 떠올랐다”며 “일이 이렇게 커질 줄은 몰랐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이 사람에게 누군가 다가가 복음을 전했더라면. 누군가 이 사람에게 다가가 하나님이 당신과 함께 계신다고 말해 주었더라면, 만약 그가 복음을 받아들이지 않았을지라도 누군가의 관심 속에 살고 있다는 마음이 있었다면.
만약 그 사람에게 조그만 희망이라도 있었더라면 이런 비극이 일어났겠는가?
‘사후약방문’ 즉 ‘소 잃고 외양간 고친다’고 하지만, 이번 참사로 우리정부가 우리 국민이 내는 보상비나 성금으로 일찍 이 사회의 소외되고 어두운 곳을 먼저 돌아보고 시설을 만들고 배려했더라면 이런 일을 방지할 수 있지 않았을까?
그러나 이런 일을 언제든지 다시 나타날 수 있을 것이고 우리는 주님이 이 땅에 오실 때까지 이 죄악 된 세상의 비극의 쳇바퀴가 계속해서 돌아가는 것을 보게 될 것입니다.
바울을 로마교회 성도들에게 편지하면서 이렇게 말합니다.
“즐거워하는 자들로 함께 즐거워하고 우는 자들과 함께 울라”(롬12:15)
그러나 우리는 즐거워하는 자들과는 함께 하기를 즐기면서, 우는 자들과 함께 우는 것에는 무관심한 것은 아닌지. 그러나 성경은 즐거워하는 것만큼 슬픔도 같이 나누라고 말씀합니다.
3. 무사안일주의 의식을 버리고 항상 깨어 살자.(살전5:3)
소위 말하는 안전 불감증이라는 문제는 이번에도 그 심각성을 여실히 드러내었습니다.
우리나라는 상식 밖의 대형사고가 터지는 나라로 소문이 났습니다. 세계가 잊을 만하면 한 건씩 터뜨려 여전히 대형사고라는 면에서는 이름값을 하는 나라임을 과시하곤 했습니다.
삼풍백화점 붕괴사건, 성수대교 사건, 대구에서는 지하철에 관계된 대형사고는 두 번째이지 않습니까?
그런데 이 모든 것이 다 인재(人災)라는데 있습니다. 사람의 무사안일주의가 결국 이런 사건의 밑바닥에 깔려 있는 것입니다.
금번에도 몇 번이고 사람들을 살릴 수 있는 기회가 있었습니다. 그런데도 그 정도는 괜찮겠지 하는 생각이 돌이킬 수 없는 상황이 되어 버렸습니다.
불을 지른 사람도, 지하철 관계자들도 한결같이 “일이 이렇게 될 줄은 몰랐다”는 말을 하였습니다. 자신들이 했던 일이 이렇게 참혹한 일이 될지 몰랐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이들만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사실 우리나라 사람들 거의 대부분 이 안전불감증, 무사안일주의 속에 살아가고 있습니다.
북한의 핵문제도 그렇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사태의 심각성을 잘 인식하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핵은 만의 하나라도 가능성이 있는 것이면 모두 끝장입니다. 전쟁문제에서도 태평양 건너 미국에서는 난리인데 같은 땅 남한에서는 전투기가 넘어와도 별 것 아니라는 생각인 것 같습니다. 미군 철수 운운하고.
성도 여러분, 우리의 신앙의 자세는 어떻습니까?
성도 여러분, 앞으로 세상의 많은 사람들이 이와 비슷한 말을 주님 앞에서, 심판대에서 하게 될 것입니다.
“예수 믿지 않는 일이 이렇게 큰 일이 될 줄은 몰랐다”
“신앙생활 제대로 하지 않는 것이 이렇게 큰 일인지 몰랐다”라고 말입니다.
성경은 주님이 재림할 때 세상이 이럴 것이라 말하고 있습니다.
(살전 5:3) “저희가 평안하다, 안전하다 할 그 때에 잉태된 여자에게 해산 고통이 이름과 같이 멸망이 홀연히 저희에게 이르리니 결단코 피하지 못하리라”
“너희는 마치 그 주인이 혼인집에서 돌아와 문을 두드리면 곧 열어주려고 기다리는 사람과 같이 되라 주인이 와서 깨어 있는 것을 보면 그 종들은 복이 있으리로다”(눅12:36-37)
4. 더욱 하나님만을 의지하는 삶을 삽시다.(잠3:5-6)
금번 사건을 통하여 우리는 우리가 믿고 의지하고 살아가는 것이 궁극적으로 믿을 것이 못된다는 사실을 분명히 확인하게 되었습니다.
사실 다른 어떤 대중 수단보다 지하철은 가장 안전한 교통수단으로 알았습니다. 그러나 정말 믿는 도끼에 발등 찍히는 격이 되었습니다.
우리는 오늘날 첨단과학, 첨단기술의 힘을 믿으며 행복을 기대하면 살지만 여러분은 이것들에게 배신을 당할 것입니다. 여러분이 믿는 첨단기술, 첨단과학이 여러분을 멸망시키게 될 것입니다. 그때 우리는 ‘왜 우리가 과학을 믿으며 과학을 발전시켰는가, 왜 고도의 기술을 우러러 보았는가’하며 탄식하게 될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과학이 문제가 아니라 사람이 문제입니다. 사람이 변하지 않으면 사람의 손과 발, 머리에서 나오는 모든 것은 다 우리를 멸망의 길로 몰게 될 것입니다.
저는 이번 사건으로 사람들이 지혜로운 것이 아니라 참 어리석다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참 사람 죽이는 것 쉽구나.’ 정부에서는 지하철은 유사시에 대피소로 이용할 수 있다고 했습니다. 정말 믿을 수 있겠습니까?
여러분, 전쟁이 나면 북한이 피해가 크겠습니까 남한이 피해가 크겠습니까? 이번 사건으로 이미 답이 나 있는 것 아니겠습니까? 우리는 얼마 전에 ‘인터넷 대란’이라는 소동에 떠들썩하였습니다. 정말 많은 사람이 기계 하나에 자신의 삶을 맡기면 살고 있었습니다.
성도 여러분, 이 세상의 기술을 우리가 맹신해서는 안됩니다. 문명의 이기를 우리가 활용하더라도 우리의 신앙의 대상을 명확하게 해야 합니다.
믿어야할 것을 믿지 않는 것은 ‘불신’이고, 믿지 못할 것을 믿고 사는 것은 ‘미신’이라고 하였습니다. 혹 여러분은 ‘과학’이라는 ‘기계문명’이라는 미신 속에 살고 있지는 않습니까?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믿을 것을 믿고 의지하며 삽시다. 나의 몸이 내 것인 것 같아도 병 한번 나니 내 것이 아니고, 내 몸에 뭘 할 수 있어야 내 것이라고 말하지.
영원히 변함이 없으신 분,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신 분, 우리의 믿음의 시작이시오 완성자이신 예수님만을 믿으시기 바랍니다.(히12:2 - ‘믿음의 주 온전케 하시는 분 예수’)
※♬찬539장 - 4절
세상에 믿던 모든 것 끊어질 그날 되어도 구주의 언약 믿사와 내 소망 더욱 크리라.
굳건한 반석이시니 그 위에 내가 서리라 그 위에 내가 서리라
사랑하는 여러분, 무엇을 믿고 사십니까? 오늘 아침 밝게 웃으며 학원에 가던 아이가 반나절이 채 지나기도 전에 잿더미로 변하는데. 누구에게 여러분의 자녀를, 누구에게 여러분의 부모를, 누구에게 여러분 자신을 맡기겠습니까?
(잠 27:1) 『너는 내일 일을 자랑하지 말라 하루 동안에 무슨 일이 날는지 네가 알 수 없음이니라』
(잠 3:5-6) 『[5] 너는 마음을 다하여 여호와를 의뢰하고 네 명철을 의지하지 말라 [6] 너는 범사에 그를 인정하라 그리하면 네 길을 지도하시리라』
5. 구원의 확신을 가집시다.(고후5:1, 5)
그래도 희생자들이 남긴 마지막 휴대폰 메시지 중에 예수 믿는 사람들의 메시지는 무언가 다른 것을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1)한국기독학생회(IVF)의 간사인 허현씨(29)가 동료인 강지현 간사(29)에게 마지막으로 이런 메시지를 남겼습니다.
“지현아, 나 지금 죽어가고 있어. 나를 위해 기도해줘.”
2)이번 사고로 5남매 중 유일한 딸인 지현양(16·중2)을 잃은 김충국 목사님은 오히려 대구시민회관에서 유족들을 돌보느라 분주했다. 김목사는 “봄방학을 맞아 학원에 가던 길에 변을 당한 것 같다”며 “그날따라 학원에 가길 싫어하면서도 속옷까지 다 갈아입고 집을 나섰다”며 말을 잇지 못했다.
김목사님 부부는 슬픔에 잠겨있는 유족들에게 “우리도 딸을 잃었지만 이렇게 살고 있지 않느냐”며 “하나님께서 이 세상보다 천국에서 더 필요로 하셔서 데려가신 것”이라며 위로한다고 합니다.
3)교회 기도회에 참석하러 가다 변을 당한 대구 남산동 서부교회 김창제 집사님(69)은“나 하늘나라로 먼저 올라가네…할렐루야…아멘.”하는 메시지를 남겼습니다.
휴대폰 전화로 이 말을 마지막으로 들은 석태순씨(66·대구동촌동)는 그로부터 5시간 뒤 성경책을 꼭 품은 채 눈을 감은 남편의 시신을 병원에서 확인할 수 있었다. 그의 신원을 빨리 파악할 수 있었던 것은 성경책 속에 있는 주보 때문이었습니다.
“처음 전화가 걸려왔을 때는 사람들이 웅성거리는 소리만 들렸고 남편 목소리는 잘 들리지 않았어요. 그러다가 전화가 끊어지는 바람에 제가 다시 남편 휴대전화로 전화했지만 연결되지 않았고…. 그러다가 다시 전화가 걸려왔을 때 의외로 남편의 목소리는 차분했어요. 그땐 아마 돌이킬 수 없는 상황이라는 걸 직감한 것 같았어요”
이들은 다 자신들이 갈 곳을 알았습니다. 궁극적으로 가야할 곳이 어디인지 분명히 아는 사람은 두렵지 않습니다. 그들의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 땅의 장막은 잠시 거주하는 일시적 처소일 뿐 하나님이 그들을 위해 예비하신 영원한 장막이 있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1] 만일 땅에 있는 우리의 장막집이 무너지면 하나님께서 지으신 집 곧 손으로 지은 것이 아니요 하늘에 있는 영원한 집이 우리에게 있는 줄 아나니…곧 이것을 우리에게 이루게 하시고 보증으로 성령을 우리에게 주신 이는 하나님이시니라”(고후5:1, 5)
♬찬194-3절
나지금 죄에서 사함받아 거룩한 백성이 되었으니
이육신 장막을 벗을때도 겁날것 없겠네
찬송하세 찬송하세 주님 나를 구하셨네
찬송하세 찬송하세 주가 구원 하셌네
●맺으면서
우리는 이 사건이 내가 당한 사건이 아니니까, 상관이 없는 것처럼 생각하면 안됩니다.
예수님의 공생애 기간에 이와 비슷한 큰 사고가 났습니다. 그것은 실로암 망대가 무너지는 사건이었습니다. 이 사고로 18명이 망대에 깔려 사망하였습니다. 그 당시의 인구비율로 보아서 금번 대구 지하철 방화 사건보다 더 많은 희생자라고 할 수 있는 숫자입니다. 이 실로암 망대 사건을 통해서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실로암에서 망대가 무너져 치어 죽은 열여덟 사람이 예루살렘에 거한 모든 사람보다 죄가 더 있는 줄 아느냐 너희에게 이르노니 아니라 너희도 만일 회개치 아니하면 다 이와 같이 망하리라 ”(눅13:4-5)
예수만 잘 믿으면 됩니까?
그 속에는 목사님의 딸도 있고, 훈련을 잘 받은 선교단체의 간사도 있었습니다. 그리고 오전에 있는 교회의 중직자의 기도회에 가던 신실한 집사님도 있었습니다.
어떤 믿음으로 어떻게 살며, 나의 궁극적인 소망과 목표는 무엇인지 다시 한번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이다.
이번 사건을 통하여 이 시대의 표적을 보면서 하나님의 음성을 분명하게 새기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아 멘-(주후2003-02-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