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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울의 유언
  • 날짜 : 2006.7.16
  • 설교자 :
  • 본문 : 디모데후서 4:6~13 (신약P346)
성경본문 및 요약
제목> 바울의 유언
성경> 딤후4:6-13
찬송> 44, 380, 378

●들어가면서 - 임종체험장
요사이 이색체험 현장으로 사람들의 관심을 끄는 단체들이 많습니다. 그 중에는 재미를 중심하는 오락위주의 행사들이 많이 있지만 삶의 의미를 더욱 진지하게 살피게 하는 행사를 하는 곳도 많이 있습니다. 그 중의 하나가 바로 임종체험장입니다.
저는 차를 운전해 가다가 임종체험의 현장으로 자신의 삶을 돌아보게 하고 삶을 더욱 진지하게 살도록 하는 교육현장이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이 체험 현장을 취재한 방송을 잠간 보겠습니다.
※미디어다음에서 ‘임종체험하며 삶의 의지 다져’를 검색하여 YTN에서 취재한 동영상 실행)
이 교육에 참가한 사람은 먼저 자신의 유언장을 씁니다. 그리고는 영정사진을 찍은 후 자신의 영정사진을 들고 관이 있는 곳으로 갑니다. 실내에 관이 있는 곳도 있지만 저승사자로 분장한 사람들이 양 팔을 낀 채 밤에 관이 있는 야산으로 가는 곳도 있습니다. 그들은 그 곳에 모여 자신이 작성한 유서를 읽습니다. 이 시간 눈물을 흘리는 사람들이 많다고 합니다. 유서에는 가족에 대한 미안함부터 삶을 잘못 살아온 지난 세월의 후회가 많습니다. 유서 낭독 뒤 좁은 관속에 누우면 관 뚜껑이 덮이고 봉인을 위해 못을 치는 소리를 관 속에서 듣게 됩니다. 관 위에 흙까지 뿌려진 뒤 10분 정도의 정적 속에 이들은 관 속에 누워있게 되고 다소 공포감이 휩싸일 때 관 뚜껑은 열립니다.
이 체험 후에 가장 많은 반응이 ‘더 살고 싶다’는 생각과 함께 ‘잘 살아야겠구나’는 생각을 하게 된다고 합니다. 또 어떤 한 사람은 요사이 '웰빙(well-being) 웰빙'하는데 그것보다 ‘웰-다잉(well-dying)’에 대해서도 깊이 생각해 보면서 살아야겠다고 말했습니다.
여러 단체 중에 이 단체에서만 수료자들이 1만 5천명에 이른다고 합니다. 기회가 되면 성경적인 죽음을 두고 우리 교회에서도 이 행사를 진행해 보고 싶습니다.

마지막 순간에도 후회 없이 죽음을 맞이할 수 있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정말 성공적인 인생을 산 사람이 틀림없을 것입니다. 세상의 권력을 한 손에 다 쥐고 살았고, 명성을 한 몸에 다 받고 살았다고 하더라도 자신의 죽음 앞에서 후회로 가득 차 눈을 감을 수가 없다면 그는 비참한 사람이요, 다른 사람들이 볼 때 보잘것없는 인생처럼 보였을지라도 전혀 후회가 없는 삶을 살았다면 그는 성공한 사람입니다. 중간 평가도 중요하지만 가장 확실한 평가는 마지막에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웰 다잉(well-dying)'! 너무나 중요한 것입니다.

우리는 오늘 말씀에서 6-8절 말씀을 봅시다.
“관제와 같이 벌써 내가 부음이 되고 나의 떠날 기약이 가까웠도다 내가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 날에 내게 주실 것이니 내게만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니라”

자신의 죽음을 직감하고 있습니다. - “나의 떠날 기약이 가까웠도다.” 그러나 담담합니다. 그의 고백은 후회나 아쉬움이 없습니다. 그는 주어진 모든 임무를 다 마친 사명자로서 당당하게 말하고 있습니다. 그는 자신에게 주어질 훈장도 확신하고 있습니다.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내게 주실 것이니”

디모데후서는 그가 그의 영적 아들에게 남기는 유서이며 유언입니다.
우리도 역시 바울처럼 이런 고백을 당당히 할 수 있다면 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그러면 그는 구체적으로 무엇이라 고백하고 있습니까? 이것이 이 시간 하나님이 우리에게 원하시는 간절한 소원으로 받고 우리의 사모하는 기도의 제목이기를 소원합니다.

1. 다 부었노라
바울은 자신의 삶을 ‘전제’(奠祭, a drink offering)에 비유합니다. 전제는 구약에서 제사를 드릴 때 제물 위에 마지막으로 포도주 등을 부어 드리는 제사를 말합니다.(민15:1-10) 여기에서 쉽게 말하면 제사의 마지막 순서라고 생각하면 됩니다. 바울은 롬12:1에는 너의 몸을 거룩한 산 제사로 드리라 이는 너희의 드릴 영적예배라고 하였습니다. 삶 자체를 ‘산 제사’로 여기면서 드렸던 바울은 이제 자신의 삶의 마지막 제사로 드리려고 합니다.
주님을 알지 못했을 때는 모르나, 주를 만난 후에는 주를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부어드렸던 바울이었습니다. 자신의 가문을 드렸습니다. 그는 자신의 학벌을 드렸습니다. 그는 자신의 열심을 드렸습니다. 그는 자신의 젊음을 드렸습니다. 그는 결혼을 하지 않고 여기까지 왔으니 그의 성(性)-‘남성됨’까지도 드린 것입니다. 사실 이젠 더 이상 드릴 것이 없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그러나 그는 또 드리려고 합니다. 자신의 마지막 남아 있는 늙고 병든 몸마저 하나님이 원하신다면 순교의 제물로 부어 드리고자 하는 것입니다. 잔속에 남은 마지막 한 방울까지도 다 부어드리는 전제와 같이 말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어떤 사람이 가장 잘 산 인생입니까? 올 때 가지고 온 것이 하나도 없으니 갈 때 가지고 가는 것이 하나도 없는 사람입니다. 욥의 고백대로 우리는 적신으로 왔으니 적신으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아무 것도 가지고 온 것이 없음이 분명하다면 우리의 받은 것은 다 주님이 주신 것이 틀림없습니다.
그래서 다윗은 성전을 위해 재물을 바치면서 모든 것이 주께로 말미암았사오니 우리가 주의 손에서 받은 것으로 주께 드렸을 뿐이니이다고 말했습니다.
가장 어리석게 산 사람이 누구입니까? 죽을 때 남은 것이 많은 사람입니다. 누가복음 12장에서 예수님은 어리석은 부자의 비유를 통하여 자신의 창고에 가득히 쌓아 둔 부자의 영혼을 부르시면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어리석은 자여 오늘 밤에 네 영혼을 도로 찾으리니 그러면 네 예비한 것이 뉘 것이 되겠느냐”
그렇습니다. 죽을 때 땅에 남겨 둔 것이 많은 사람일수록 더욱 어리석은 자입니다. 이 땅에 남은 것이 많을수록 그의 천국 창고는 비어있을 것입니다. 아무 것도 가지고 갈 수 없으니 다 붓고 가야합니다. 물질이든, 재주든, 건강이든 다 붓고 가야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잔에도 남은 방울이 하나도 없으면 좋겠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혹 마지막 때에 자기에게 남은 것이 없다면 쓸쓸할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남은 것이 없을 때 오히려 더욱 희열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내가 곧 가야할 나라를 위해 다 바쳤기 때문입니다. 아니 내가 곧 가야할 고국을 위해 투자했기 때문입니다.

이전에 노산 이은상 시인의 ‘사랑’이라는 시를 소개한 적이 있습니다. 이 시에 홍난파 씨가 곡을 붙여 가곡이 유명했습니다. 요사이 아이들은 가곡을 별로 좋아하지 않습니다만 저희들의 시대에는 가곡이 마음을 많이 끌었습니다. 이 시의 내용은 이렇습니다.
1. 탈대로 다 타시오 타다말진 부디마오
타고 다시타서 재될 법은 하거니와
타다가 남은 동강은 쓰을 곳이 없느니다
2. 반타고 꺼질진대 애제 타지 말으시오
차리리 아니타고 생남으로 있으시오
탈진대 재 그것조차 마저 탐이 옳으니다

이제와서 홍난파 씨도, 이은상 씨도 친일파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자발적 친일파도 있을 것이지만 대부분의 많은 사람들이 일본을 미워하고 반대하다가 할 수 없이 시키는 일을 한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이들이 그렇게 한 일을 합리화 시키지 않고 용서를 구하면 되는 것입니다.
이들은 구한말에 태어나 일제에 의한 민족의 아픔을 함께 나눈 사람들입니다.
이 ‘사랑’이라는 시가 남녀의 사랑을 말한다고도 하고, 어떤 사람을 조국에 대한 사랑을 표현한다고 하기도 합니다. 이성애든 조국애든 그 사랑 할 바에야 적당히 하지 말자는 것 아닙니까? 타나다 남은 동강은 쓰일 곳이 없다고 합니다. 반만 타고 꺼질 것이라면 아예 타지 말라고 합니다. 탈려고 한다면 재 그것초자 마저 다 타는 것이 옳다고 말입니다.
우리의 주님에 대한 사랑이 이러면 좋겠습니다. 주님을 사랑할 바에야 완전히 합시다. 적당히 사랑하고 말거라면 아예 시작도 말자는 것입니다. 사랑하고 또 사랑하여 남긴 사랑이 없이 다 사랑해 버리자는 것입니다. 그래서 나의 사랑의 잔에 한 방울의 남은 물도 없도록 말입니다.

2. 다 싸웠노라
바울은 자신의 삶을 회고 하면서 그 삶을 전투로 비유하였습니다. 그는 싸움을 싸웠다라고 말합니다. 그 싸움은 선한 싸움이었습니다. 꼭 싸워야만 했던 의로운 전투였다는 것입니다. 뒤돌아보니 그 싸움은 참으로 격렬했습니다. 죽을 고비를 수도 없이 넘기며 힘겹게 선한 싸움을 싸운 것입니다.(고후11:23-27) 얼마나 이 전투가 격렬했는지를 보여주는 사건이 사도행전에 나타납니다.
사도행전 23장을 보면 복음의 방해꾼들이 이미 목숨을 내 걸고 달려들고 있습니다. 바울을 죽이기 전에는 먹지도 마시지도 않겠다고 선언한 결사대가 40명이나 조직이 되어 바울이 가는 곳마다 추적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미 바울도 행20:24에서 "나의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 증거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을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고 목숨을 내걸었습니다. 얼마나 치열한 전투 속에 바울이 살아왔는가를 보여줍니다.
목숨을 내 건 극단의 두 부류의 전투인 것입니다. 그러나 이제 바울은 자신을 위해 준비된 면류관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이 영적 전투를 어떻게 하고 있습니까?
한국의 가장 영향력 있는 교회로 알려진 서울의 사랑의 교회를 개척하여 조기 은퇴하고 한국교계를 섬기고 있는 옥한흠 목사님이 ‘광인론’(狂人論)을 외치셨습니다. 광인(狂人), 즉 미친 사람이 되어야 살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요, 세상을 보니 미친 사람들에 의해 주도되어 가고 있는 것이 분명합니다.
미친 사람들에게 미쳤냐고 물어보면 안 미쳤다고 합니다. 적어도 나는 그렇지 않을지라도 다른 사람들이 볼 때에는 미친 것처럼 보여야 합니다. 바울은 베스도 총독과 아그립바 왕 앞에서 자신을 위해 변론하라고 했더니 복음을 전했습니다. 이를 듣고 있는 베스도 총독이 “바울아 네가 미쳤도다 네 많은 학문이 너를 미치게 한다”(26:24)고 하였습니다. 다른 사람이 볼 때 바울은 미친 자였습니다. 벨릭스 총독이 다스릴 때에는 바울을 송사하는 변사 더둘로는 바울을 향해 염병이라고 하였습니다.(행24:5)
“미치지 않으면 미칠 수 없다.”-불광불급
우리나라 사람들만큼 잘 미치는 사람도 없습니다. 월드컵의 거리응원.
미쳐야 합니다. 바로 미치면 됩니다.
성도 여러분, 무엇에 미칠 것입니까?
적당히 해서는 도무지 이길 수 없는 영적전투의 환경 속에 우리가 살아가고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지금은 아주 심각한 때입니다. 멍청하게 신앙생활 하다가는 곧 모든 것을 다 잃고 말 것입니다. 세상은 얼마나 이 기독교 신앙을 편파적이고 이기적인 것으로 매도하는지 모릅니다. 잘못하면 속고 회유를 당합니다.

성도 여러분, 다 싸워야 합니다. 포기하거나 양보하지 마십시오.
별 것 아닌데 이유만 있으면 주일을 빼먹습니다. 지난주에 이어 다시 말씀드립니다. 주일은 주님의 날입니다. 이 날은 나의 삶의 중심이 되는 날이어야 합니다. 주일이 주의 날 다워지면 나머지 날이 주님의 인도 속에 살게 될 것입니다. 이 날은 다른 많은 날 중의 하나도 아니며 다 못한 세상일을 보충하는 날도 아닙니다. 이 날은 나 자신의 레저를 위한 날도 아니며 이 날은 세상의 큰일을 치르기 위한 날도 아닙니다.
우리는 각 자 자신의 전쟁터에서 싸울 싸움이 있는 자들입니다. 마지막 날 우리는 우리의 싸움에 대해 어떻게 고백할 수 있겠습니까?

3. 다 마쳤노라
바울은 신앙생활을 마라톤 경주에 비유한 적이 많았습니다. 자신의 삶을 마라톤 경주에 비유합니다. 지금까지 그는 정말 멀고도 험한 길을 달려왔습니다. 그보다 앞서 출발했던 가룟 유다나 그의 뒤를 따라왔던 데마는 모두 곁길로 가고 말았지만(행1:25; 딤후4:10) 그는 믿음의 주요 온전케 하시는 이인 예수만을 바라보고 달려 마침내 완주하였습니다.
그도 때로는 너무 힘들어 주저앉아 버리고 싶을 때도 있었고 두려울 때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결국 그는 승리하였습니다.

●마치면서
바울은 이제 모든 전투를 다 마치고 왕 되신 주님 앞에 나가는 한 노병처럼 우리에게 말하고 있습니다. 그는 자신을 위해 예비 된 훈장을 확신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는 모든 성도들을 향해 도전하고 있습니다.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내게 주실 것이니 내게만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니라”

한 서기관이 예수님께 나아와서 계명 중에 첫 계명을 물을 때 예수님은 성경을 요약해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막 12:29-30
“이스라엘아 들으라 주 곧 우리 하나님은 유일한 주시라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성경은 우리가 적당하게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을 말하지 않습니다. 우리의 하나님이 유일한 하나님이시므로 다하고 다하고 다하고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해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충분히 그렇게 요구하실 자격이 있으십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먼저 우리를 위해 다 주셨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그의 아들을 주심으로 증명이 되었습니다. 우리 예수님은 우리를 위해 고난의 잔을 남김없이 다 마셨습니다. 그리고 또한 십자가에서 우리를 위한 구원을 다 이루셨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다’한 삶을 살아야 합니다.
적당히 살 수 있는 우리가 아닙니다. 적당히 살아도 되는 우리가 아닙니다.
최선을 다한 삶을 살아야 합니다. - 아 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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