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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오전예배

영적 침체
  • 날짜 : 2006.10.22
  • 설교자 :
  • 본문 : 왕상19:1-8
성경본문 및 요약
제목> 영적 침체
성경> 왕상19:1-8
찬송> 21, 423, 446

●들어가면서 - 어느 한 목사의 자살
오늘 말씀은 이제까지 계속 해 오던 여호수아서를 잠간 중단하고 ‘영적 침체’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받으려고 합니다. 이 제목으로 말씀을 전하려고 결정한 것은 저에게 있어 근간에 겪은 몇 가지 개인적이며 또한 교계적인 사건 때문입니다. 일단 저에게 아주 충격적이었던 사건을 먼저 말씀드리겠습니다.
어떤 한 교회의 목사님이 자살을 했습니다. 처음에는 심장마비로 급사하신 것으로 알았습니다. 그 분이 갑자기 소천하셨다는 사실만으로도 충격이었는데 나중에 자살을 했다는 소식을 듣는 순간 더욱 충격이었습니다. 이 소식을 접하고는 많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 목사님은 제가 시찰장으로 있을 때 시찰 내의 목사님이었고, 제가 장산교회에 담임으로 올 때 우리교회의 당회장으로 우리교회를 섬겨주신 분이기 때문입니다. 너무나 인격적이고 일 처리를 공평하게 하시려고 했던 분인 것을 가까이서 지켜봐 왔기 때문에 더욱 충격이 되었던 것 같습니다.
근간에 이 목사님은 이전에 우리 교회에 임시당회장을 맡은 것처럼 또 모 교회의 임시당회장을 맡으시면서 그 교회의 행정처리 문제로 사회법정에 불려 다니며 큰 어려움을 겪으시는 것을 안타깝게 지켜보고 있었습니다. 그 사건은 목사님의 건강을 잃게 만들었고 결국 자신이 담임하고 있는 교회에서도 정상적인 목회가 어렵게 되었습니다. 몇 달을 쉬기도 했지만 쉽게 회복되지 않았고 교회를 적극적으로 섬길 수 없었던 목사님에게 성도들은 약간씩의 불만을 표현하기도 했던 것 같습니다. 그러면서 목사님에게 우울증이 찾아왔고 그 우울증은 점차 심해져 갔습니다. 목사님의 설교도 이전과 같이 힘 있지도 못하고 행정적인 면에서 있어서도 이전처럼 인내하기 힘들었습니다. 목사님은 자신이 교회를 사임하는 것이 교회에 덕이 되겠다는 생각으로 사임 의사를 밝혔고, 교회에서도 환영하는 분위기가 많았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주위 동료 목사님이 은퇴를 말렸습니다. 왜냐하면 아직 60세가 채 되지 않았는데 은퇴를 하면 교단의 법으로는 은퇴목사도 되지 못하고 그냥 사직처리만 되기 때문입니다. 결국 교회는 부목사님을 청빙하여 1년을 전권을 주어 목회를 맡기고 목사님은 1년을 쉬고 더 다음 해에 은퇴를 하는 것으로 정리를 해 가고 있었는데 목사님을 또 더욱 괴롭힌 것은 이후에 목사님에 대한 예우 문제였던 것 같습니다. 정확한 내용을 잘 모르기 때문에 저도 그것을 말할 수 없고 혹 여러분도 그것에 대해서는 말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목사님은 이 문제로 주일날 늦게까지 회의를 하시고 이튿날 새벽기도에 나오지 않았습니다. 그날 밤 사모님은 교회에서 기도하셨습니다. 이상해서 사모님이 사택으로 가보니 목사님은 이미 숨을 거둔 상태였습니다.

사실 이 사건을 가능한 성도들에게는 말을 하지 않으려고 했습니다. 그것은 말을 해서 도리어 덕스럽지 못할 것 같아서였습니다. 특히 그 분의 신분이 목사였기 때문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교계 신문에도, 노회 석상에서도 공식적으로 거론이 되었고, 이 소식을 나보다도 더 빨리 알고 있는 성도들도 있었고 또 그런 식으로 알려지고 처음 제가 생각했던 것보다 더욱 덕스럽지 못한 결과를 가져 올 것이라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정확하게 언급하고 정리하는 것이 더욱 낫겠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혹 이 말씀을 들으면서 여러분 가운데 이 사건을 화제로 삼는 사람이 없기를 바랍니다. 오늘 제가 이 사건을 말씀드리는 것은 첫째는 우리가 잘못 알고 있는 교리적 부분에 대한 정리가 필요하기 때문이며 더욱 중요한 둘째 이유는 이 문제가 그 분만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 자신 모두의 문제도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자살하면 천국에 못가는가?
자살에 대한 성경적인 정리입니다.
자살을 하면 천국에 못갑니까? 천국에 못 간다는 것은 결국 지옥 간다는 말인데, 그러면 자살을 하면 무조건 지옥입니까? 그러면 그 목사님은 지옥에 갔습니까?
제가 본 성경에서는 예수 믿지 않으면 지옥 간다는 말은 있어도 자살하면 지옥 간다는 말은 본 적이 없습니다. 우리가 자살을 하면 지옥 간다고 생각하는 이유가 어디에 있습니까? 그것은 주로 성경에 자살을 한 대표적인 사람 때문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가롯 유다입니다. 예수님의 제자 중의 한 사람이었고 회계를 맡은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그가 자살을 했기 때문에 천국에 못 간 것입니까 아니면 그가 예수님을 구주로 믿지 않았기 때문에 천국에 못 간 것입니까? 분명히 해야 합니다.

그러면 자살을 해도 된다는 말입니까? 그럴 수는 없습니다. 왜냐하면 자살은 심각한 죄이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자신에 대한 살인죄입니다. 살인하지 말라는 것은 십계명 중의 하나입니다. 그는 다른 사람의 목숨을 살해하지 않았지만 하나님이 자신에게 주신 생명을 살해한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또한 알아야 하는 것은 십계명에는 살인죄만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윤리나 도적적인 계명으로는 간음죄도 있고, 도적질하는 죄도, 거짓말하는 죄도, 이웃의 것을 탐내는 것도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죄는 모두가 다 심각한 것임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가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면 그 사람은 중한 죄 중에 다시 더 중한 것을 품고 주님 앞에 서는 참으로 부끄러운 자가 될 것입니다.

더욱 우리가 심각하게 그리고 관심 있게 이런 상황을 받아들여야 하는 것은 이런 일이 남의 일 만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2004년도 우리나라 자살률은 인구 10만 명당 25.2명으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으뜸입니다. 헝가리 22.6명, 일본 18.7명, 핀란드 18.4명 등이 그 뒤를 잇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의 경우 2004년 한 해만 1만 1523명이 자살로 목숨을 끊었다. 하루에 무려 32명꼴이다.
우리가 다른 나라의 사람보다 훨씬 더 자살할 확률이 높다는 것입니다. 이런 결과를 사회적인 이유에서 찾습니다. 우리나라의 상황이 그만큼 불안하다는 것을 말해 주고 있습니다. 물론 그런 분석을 통한 대책도 분명히 필요하겠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또 다른 각도에서 이 문제를 보아야 합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인이기 때문입니다.

사실 이런 결과는 어디에서 시작하는 것입니까? 모두 영적인 침체에서부터 시작합니다.
그러면 그 영적인 침체는 어디에서 옵니까? 그것은 다양한 곳에서 시작됩니다.
우리는 오늘 이 시간 그것이 어떻게 시작될 수 있는지, 또 어떻게 진행될 수 있는지를 보면서 그것에 대한 대처까지 생각해 보는 시간이 되기를 바랍니다.

오늘 성경본문에는 영적인 침체를 만나고 있는 한 사람을 봅니다. 그는 엘리야입니다. 그의 모습은 거의 자살하기 직전의 모습니다. 그는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오, 야훼여, 이제 다 끝났습니다. 저의 목숨을 거두어 주십시오.”(4. 공동번역)
엘리야가 누구입니까? 구약에서 선지자를 대표하는 사람이 아닙니까? 그가 어떻게 이럴 수 있습니까? 아니 이렇게 해도 되는 것입니까? 참 실망스럽지 않습니까?
그러나 약 5:17에는 이 엘리야를 가리켜 ‘우리와 성정이 같은 사람이라’고 말합니다. 그렇습니다. 정말 그는 위대한 하나님의 사람이었지만 또한 우리와 동일하게 연약한 사람입니다. 그래서 그는 문제의 해결자로 우리에게 다가오는 것입니다.

먼저 나 자신이 영적침체에 빠졌는지를 점검해 봅시다. 이런 상황에 놓인 적인 있습니까? 그 정도는 어느 정도입니까?
사람을 피합니다. 자기를 알아주지 않는 것에 대해 심통이 나고 더 심하면 분노가 일기 시작합니다. 자기 탓이 아니라 전부 남의 탓으로 돌리기 시작합니다. 그래서 사랑하고 싶지도 않고 계속 미워하고 싶습니다. 이제는 하나님 탓이라고 하나님을 비난합니다. 그리고 감사와 기쁨이 사라집니다. 기도하기조차 싫어집니다. 말씀 펴서 읽는 것도 아주 귀찮아집니다. 하나님께서 자기와 동행하신다고 하는 인지 의식이 사라집니다. 하나님께서 위로하려고 하는데 그 위로도 받기가 싫습니다. 구원에 대한 확신이 사라지게 되고 알지 못하는 죄책감이 자기를 붙잡아 매고 자신은 죄책의 철창 속에 가두어 둡니다. 하나님 앞에 예배드리는 것조차 마음에 통하지 않게 됩니다. 모든 것이 귀찮아집니다. 의욕이 사라집니다. 기대가 없어집니다. 소망을 품을 수가 없습니다. ‘왕년에’라는 말을 자주 사용하기 시작합니다. 과거가 좋았다고 과거에 매달려 살려고 합니다. 미래지향적인 사고를 하기보다는 과거회기적인 사고에 안주하려고 하게 됩니다. 이것이 더 깊어지게 되면 스스로 자학하게 됩니다.

그러면 언제 이런 현상이 나타납니까?

1. 영적침체는 감정의 울타리에 갇혀 사실을 사실대로 보지 못하게 될 때입니다.
3절에 “저가 이 형편을 보고”
사실 그가 본 형편은 이전과 그렇게 다른 것이 없습니다. 그러나 그는 이전처럼 사실을 정확하게 보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우리가 발견하는 엘리야는 이전의 엘리야가 아닙니다. 그는 말에는 이미 그가 감정에 의해 눌려있다는 것을 쉽게 느낄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인간에게 주신 감정은 어떤 사건에 대해서 우리를 더욱 감동시키기도 하지만 때로는 더욱 좌절하게도 만듭니다. 그런데 이 감정은 사실과는 거리가 멀 때가 많습니다. 또한 사실이 아닐 때도 많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감정의 울타리에 갇히게 되면 사건을 있는 그대로 보기 어렵게 되는 것입니다.
청춘남녀가 결혼을 하게 되면 처음에는 감정에 의존하는 생활을 하게 될 때가 많습니다. 그래서 결혼이 행복한 것처럼 느낍니다. ‘정말 결혼이란 이렇게 행복한 것이구나’하고 생각하게 됩니다. 그런데 조금 세월이 더 지나면 그런 감정이 없어집니다.
제가 어느 날 자고 일어날 때에 제 옆에 한 여자가 누워있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그런데 이 여자는 어제도 그저께도 제 옆에 누워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날은 이런 생각이 드는 것입니다. “이 여자가 왜 내 옆에 누워있지?” 너무 가까운 사람인데 너무 낯선 사람처럼 여겨지는 것입니다. 혹 저의 가정생활에 심각한 문제가 생겼다고 생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제가 이런 감정을 가졌다 해도 사실이 바뀌거나 변한 것은 아닙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는 언제나 하나님이 가까이 있다고 느끼지 않습니다. 그렇다고 이것이 내가 하나님으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다는 뜻이 아닙니다. 나는 언제나 그리스도인으로 느끼고 있지 않습니다. 그러나 나는 그리스도인입니다. 감정은 때로 거짓이 있습니다. 사단은 이 감정을 이용하여 풍성한 삶에서 우리를 멸망으로 유도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사실보다 감정에 집중하게 되면 문제에 빠지게 되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우리가 어떤 분야에서 실수를 하면 우리는 삶에서 완전히 실패자가 되었다는 느낌을 가지는 경향이 있습니다. 이런 일이 한 번만 더 반복되어 보십시오. 그러면 나는 완전한 실패자로 규정해 버립니다. 우리는 완벽하지 않습니다. 충분히 실수할 수 있는 자들입니다. 그렇다고 실패자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성경은 감정에 의존하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감정에 의존하지 않도록 훈련해야 합니다. 우리는 진리와 함께 살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진리가 우리를 자유케 하기 때문입니다.(요8:32)

2. 영적침체는 비교 의식에서 시작될 수 있습니다.
4절. “여호와여 넉넉하오니 지금 내 생명을 취하옵소서 나는 내 열조보다 낫지 못하니이다”
우리 대부분은 “만일 내가 누구와 같으면 나는 좀 더 행복할텐데”라고 생각합니다.
우리 자신을 다른 어떤 사람과 비교하지 맙시다. 모든 사람은 자신만의 유일함을 가지고 있습니다. 다른 사람이 내가 될 수 없고, 나는 다른 사람이 될 수 없습니다. 우리는 이 사실을 다른 사람에게 인정해야 할 뿐만 아니라 자기 자신에게도 자주 인정해야 합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있고 다른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이 따로 있습니다.
예)군대에서 잡초 뽑기 - 성격 문제일 수 있지만 나는 너무 못해.
고후10:12에 “우리가 어떤 자기를 칭찬하는 자로 더불어 감히 짝하며 비교할 수 없노라 그러나 저희가 자기로서 자기를 헤아리고 자기로서 자기를 비교하니 지혜가 없도다”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사단이 우리 속에 역사하는 방법은 이렇습니다.
우리의 약점을 다른 사람의 장점과 비교하게 하고, 다른 사람의 약한 부분에 우리의 강점(장점)이 있다는 사실을 망각하게 만듭니다.

3. 영적침체는 육신의 건강에 이상이 생길 때 생길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육신이 필요를 그때그때 채워야 합니다.
엘리야는 지금 대단히 피곤해 있습니다. 그는 계속 잠을 자려고 하고 있습니다.(5,6) 또한 그는 먹을 것을 필요로 했습니다. 하나님은 계속해서 그에게 먹을 것을 공급하시고 계십니다.
어떤 사람은 믿음을 너무 강조한 나머지 육신의 질병이 믿음이 없어서 그렇다고 말합니다. 그래서 병이 나도 믿음만 있으면 충분히 병이 나을 수 있다고 말합니다.
우리는 오늘 본문에서 아무리 영적인 사람도 육신의 필요를 제 때 공급하지 않으면 문제가 생긴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엘리야는 영의 양식만 필요로 하지 않고 육신의 필요도 채워야 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영혼만 있는 존재로 만들지 않으셨습니다. 우리는 이 땅에 있을 때 육신과 함께 삽니다. 육신에 문제가 생기면 당연히 그것은 정신적인 문제가 되고 정신적인 문제는 영적인 문제로 이어집니다.

예)할 일이 너무 많은 어느 날 몸은 너무 좋지 않고 으슬으슬 춥기까지 했다. 어제까지만 해도 의욕이 넘쳤는데... 비전을 생각하면 가슴이 뛰었는데...
그러나 잠을 푹 자고 난 뒤 다시 그 일을 붙잡고 있는 자신을 발견.

앞에서의 목사님은 예)휴식이 필요했다. 그것은 정신적인 병으로. 결국. 그분은 병으로 죽으신 것이다. 사람이 암으로 죽는 것처럼.

4. 자신만이 그 일에 대한 책임을 져야한다고 생각할 때 올 수 있습니다.
혼자라고 생각할 때 올 수 있다.(19:14)
그러나 하나님은 혼자가 아니라고 말씀하신다.
“그러나 내가 이스라엘 가운데 칠천 인을 남기리니 다 무릎을 바알에게 꿇지 아니하고 다 그 입을 바알에게 맞추지 아니한 자니라”(왕상 19:18

●맺으면서 - 영적침체를 더욱 강한 영적군사로 거듭나는 기회로
1. 영적침체는 영적 절정기 직후에 올 수 있습니다.
그가 기도할 때에 죽은 사람이 살아나는 역사가 있었습니다.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고 역전에 역전을 거듭하면서 참으로 신나는 사역을 하였습니다. 불가능이 없었습니다. 거대한 국가, 민족, 왕을 상대로 싸워서 이깁니다. 갈멜산에서는 바알과 아세라 선지자 850명과 대결해서 승리하고 우상숭배하는 모든 선지자를 죽이기도 했습니다. 그가 기도했더니 비가 오지 않았고 3년 육개월 간이나 내리지 않던 비가 내리기도 했습니다. 그런 역사를 그는 경험하며 살았습니다. 그에게는 승리의 감격이 있었고 자신이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분명히 알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을 보면 엘리야는 로뎀나무 아래에서 죽음을 구하는 사람으로 나타납니다. 분명히 갈멜산에서 보았던 예전의 엘리야가 아닙니다. 지금은 로뎀나무 아래에서 지칠대로 지쳐서 차라리 자신을 데려가 달라고 하나님 앞에 기도하고 있습니다. 가장 나약한 모습으로 밑바닥을 헤매며 아무 소망이 없어 보이는 보잘 것 없는 사람이 지금 엘리야의 모습입니다.

영적침체는 새로운 헌신과 의탁의 기회입니다. - 아 멘 -(주후 2006-1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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